00083 동맹 =========================================================================
“.......이건 또 무슨?”
베이라가 더 황당해진 그의 말에 헛웃음을 지었다.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건가요?”
장기 동맹이면 동맹 기간이 쭉 이어진다는 뜻일 텐데 아무런 대가도 주지 않는다니, 이건 장난하자는 뜻과 마찬가지였다. 물론 태상은 무척 진지했지만 말이다.
“장난하자는 거 아닙니다. 저희 T.P길드와 불카누스 길드가 서로 동등한 조건에서 동맹을 맺는 거니 당연히 대가를 드릴 순 없죠. 대신 동맹 기간은 쭉 이어질 겁니다.”
서로 동등한 조건에서 동맹을 맺는다는 건 대형길드와 대형길드가 동맹을 맺을 때나 있는 거였다. 신생길드인 T.P와 그런 식의 동맹을 맺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레드가 설명을 듣더니 다짜고짜 말했다.
“후자로 합시다.”
“레드! 너 정말 왜 그래?”
하지만 레드의 선택은 옳은 것이었다. 태상의 길드가 앞으로 얼마나 더 커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단순히 초반에 이름만 빌려주고 끝냈다가 나중에 그의 길드가 커진다면 생색도 낼 수 없는 상황이 아닌가.
그를 초반에 도와주었다는 것 하나가 나중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 레드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내 말 들어. 그게 불카누스 길드를 위한 일이야.”
레드가 진지하게 베이라에게 말한 후 태상에게 말했다.
“원래 이러려고 소개시켜 드린 건 아니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렸네요. 일단 이 얘기는 나중에 하시죠.”
레드가 적절할 때 끊었다. 지금 당장 그녀에게 선택하라고 한다면 아예 하지 않겠다고 하거나 단기 동맹을 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레드는 다른 이들도 자신이 본 그것을 본다면 생각이 바뀔 것이라 확신했다.
해서 서둘러 B등급 미션을 하러 떠나려고 한 것이다.
“미션은 누구누구랑 가는 겁니까?”
사람이 많았기에 설마 이 인원 전부 다 가는 건가 싶었다. 그러자 레드가 콕콕 사람들을 찍기 시작했다.
그가 찍은 사람들 중에는 청룡무사 반카인도 포함되어 있어 사로나와 혜연을 놀라게 만들었다. 그때, 베이라가 말했다.
“나도 갈 거야. 사실 가지 않으려고 했는데, 흥미가 생기네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어요.”
태상은 해볼 테면 해보라는 어투로 말했다.
“마음대로.”
당당한 그의 태도에 베이라는 어디 한 번 두고 보자....라는 생각을 하며 겉으로는 미소 지었다.
갑자기 엄청난 실력자들이 모이게 되어 굳이 거추장스러운 사람들이 필요 없어졌다. 덕분에 소수정예로 미션에 임하게 된 것이다.
불의 여신 베이라
청룡무사 반카이
나이트 레드
이 셋은 정말 말 그대로 일당 백 아니, 일당 천은 됐다.
청룡무사 반카이는 불카누스의 길드원이 아니었다. 하지만 레드와 베이라 둘 모두와 친밀한 관계였기에 이곳에 참석한 거였다. 레드의 말을 듣고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정말 그런 능력이 존재한다면 자신의 소속 된 길드와도 동맹을 추진할 생각이었다.
그는 거의 말이 없는 편이었다.
아직은 상황을 살펴 볼 생각이 더 많아서, 태상에게 나중에 둘이서 얘기를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고 하고 통성명만 끝냈다.
“워낙 이곳이 다니는 곳만 다니고 그러다 보니까 대부분 실력자들끼리 친분이 유지되고 있어요. 그래서 서로 척을 지고 아예 쳐다도 안 보는 사이가 있긴 하지만요.”
혜연이 설명했다.
길드건물 아니면 처음 태상이 갔었던, 용병식으로 미션을 함께 할 사람을 구하는 곳. 그리고 그 주변이 계약자들이 다니는 거진 대부분의 행동반경이었다. 해서 혜연의 말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곳에서 자주 마주치곤 했던 것이다.
그들은 레드에게 미션에 대해 설명을 듣고, 공유 받은 후 길드 건물로 되돌아 온 상황이었다. 내일B등급 미션을 하러 움직이게 될 것이다.
여러모로 이 기회에 그런 자들과 친분을 다져두면 좋다며 혜연이 말을 덧붙였다.
“그런 이들과 친분을 만든다면 굳이 불카누스 길드의 이름이 필요가 없을 거에요. 그들과의 친분 자체가 저희 길드를 무시하지 못하게 만들 테니까요.”
“그것도 괜찮은 방법이긴 하지만, 남들에게 보이기 가장 좋은 게 불카누스 길드에요. 없어서 나쁠 건 없죠.”
“음...그렇긴 그렇죠.”
대형길드의 횡포라는 걸 아직 직접적으로 겪어보지 못해 와 닿는 얘기는 아니지만, 사로나가 예로 들려준 상황들을 봤을 때, 꽤나 골치 아프게 한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보통 대형 길드에선 아무런 가호를 받지 못하는 신생길드를 발견하면, 찾아가 대가를 요구한다.
내가 너희들을 봐주는 대신 그 대가를 내놓으라는 말이었다. 대놓고 뇌물을 원하는 거다. 만약 그들에게 뇌물을 주지 않고, 거절한다면 그때부터 횡포가 들어가기 시작한다.
저 길드는 우리의 적 길드이니, 다른 길드는 우리 길드와의 우호적인 관계를 위해 그 길드에 절대 지원을 하지 말라는 공표를 내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었다. 그 외에 길드 건물을 부순다던지 하는 등의 자잘한 비겁한 행동들은 덤이고 말이다.
그렇게 되는 걸 막기 위해서는 그 전에 다른 대형길드와 동맹을 맺어야 했다. 누군가의 비호를 받지 않으면 다른 대형길드가 그런 수법으로 그들을 좀먹게 할 테니 말이다.
대형길드보다 인원이 적으니, 신생길드는 어쩔 수 없이 그들에게 매번 대가를 주거나, 영영 사라져야 했다.
만약 동맹을 맺지 않는다 해도 나이트 레드가 물꼬를 틀어 준 덕분에 그것을 이용하면 버틸 만큼은 버틸 수 있을 듯싶었다. 입소문이라는 게 원래 빠른 법이니 말이다. 아무튼, 이번 기회에 좀 더 다른 이들과 안면을 틀어 둔다면 좋을 것은 분명했다.
“광대도 아니고 마음에 안 들긴 한데, 어쩔 수 없지.”
길드를 위한 일이니 태상이 희생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라고 지금 B등급 미션이 그의 힘을 시험해보기 위해, 구경하기 위해 만들어진 미션이라는 것을 어찌 모르겠는가. 그들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 재롱을 부리라는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자존심이 상하지만 이번 문제는 태상이 길드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나중을 위해서라도 이번 일은 반드시 해야 했다.
이번 일을 시작으로 T.P 길드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천천히 스며들기 시작할 테니 말이다.
대외적인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반드시 해야 하는 미션이었다. 어떤 미션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그다지 탐탁지 않은 시작인 건 분명했다.
**
콰앙!!
쾅쾅!! 쾅!!!!!
반카이가 허무해져 무기를 늘어트렸다.
“저거....너 보라고 그러는 것 같은데?”
그는 옆에 있던 베이라에게 말했다. 그녀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봐도 보란 듯이네.”
지금 그들이 보고 있는 건, 4명이서 B등급 악마를 갖고 놀고 있는 장면이었다. 음...갖고 놀고 있다는 말을 쓰기가 참 뭐하긴 한데 그렇게밖에 느껴지지가 않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말 그대로 그들은 B등급 악마를 자기네들끼리 상대하고 있었다. 그것도 도움을 줄 필요가 없을 정도로 훌륭하게 말이다.
저게 진짜 B등급 악마가 맞긴 한 걸까? B등급 악마가 마나건 한 발을 맞고 피를 뿜으며 다리를 휘청거리는 모습은 처음봤다. 그가 쥔 마나건이 사실은 엄청나게 뛰어난 무기인가 싶어도, B등급 악마가 휘청거리는 원인이 저 무기에만 있는 게 아니었던 지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없었다.
사로나가 들고 있는 검에 B등급 악마의 귀가 떨어져 나갔다. 큼직한 녀석의 귀가 바닥에 툭! 하고 바닥에 떨어지자 크아아아아악!! 하고 고통어린 비명을 내질렀다.
놈이 발악을 하듯 꼬리를 이리저리 휘두르며 태상 일행을 위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혜연이 그것을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다. 그녀는 거대한 바위 하나를 염동력으로 뛰워 놈의 꼬리 위에서 떨어트려버렸다.
겨우 바위가 B등급 악마의 꼬리에 상처를 줄 수 없는 게 당연한 거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바위가 꼬리 위로 떨어져 쿵! 소리를 내며 먼지를 흩뿌리자 B등급 악마가 발버둥침에도 불구하고 꼬리를 빼내지 못했다.
그러니까 저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장면이냐고!!
베이라가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을 토해냈다.
“이러다가 공헌도 0으로 끝나겠는데?”
레드는 이렇게 될 거라 생각했기에 거보라는 듯 말했다. 그 모습을 보고 반카이가 그의 옆구리를 슬쩍 찔렀다.
너 그러다가 베이라한테 한 대 맞을 것 같아.
“B등급 악마가 왜 저렇게 방어력이 약하지? 그냥 칼이 그이는 데로 쭉쭉 찢어지잖아. 이거 B등급 맞아?”
베이라는 자신의 목걸이 색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하지만 목걸이의 색은 여전히 B등급 미션이라는 것을 가리키는 빨강으로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 죽어간다.”
"벌써?!"
B등급 악마를 죽이는데 도대체 얼마나 걸린 걸까? 전투가 시작 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정말 악마는 온 몸에 피범벅이가 되어 숨이 끊어질 듯 휘청거리고 있었다.
그녀가 직접 눈으로 목격했으니 말도 안 된다 할 순 없었지만 정말 이건 밸런스 파괴였다.
“저게 다 그가 가진 무력화 능력 덕분이다. 저 녀석도 B등급 악마인데, 설마 방어력이 저렇게 약하겠어? 태상씨는 체력, 방어, 공격력 전부 다 약화시키는 엄청난 능력을 갖고 있다고.”
“그래, 진짜 네 말이 사실이었네. 난 또 어디서 홀려갖고 사기당한 줄 알았더니.”
“...도대체 언제까지 날 예전의 레드로 볼 거냐? 나 나이트 레드다.”
표정을 굳히고 진지하게 말하는 레드의 말을 싹 무시한 베이라가 죽은 악마를 확인하고 태상을 향해 움직였다.
한편 태상은 생각지 못한 카살라의 활약에 놀라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무려 힐러와 비슷한 능력을 쓸 수 있었던 것이다. 길드에서 가장 필요한 능력은 힐러였다. 전투를 할 때 힐러가 있으면 죽지 않을 확률이 훨씬 올라간다. 그러니 카살라가 힐러의 능력을 쓸 수 있다는 건 아주 큰 도움이 된다는 뜻이었다.
“이제 보니 카살라가 복덩이였네.”
태상이 흡족하게 웃자 카살라가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했다. 처음엔 몰랐는데, 저 녀석은 꽤나 부끄러움을 잘 타는 놈이었다. 남자인지라 귀여운 맛은 전혀 없다는 게 흠이지만.
“잘 봤어요.”
기어코 악마가 쓰러지자 베이라가 다가왔다. 태상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옮겨졌다.
광대짓을 해보라기에 제대로 보여준 태상은 그 소감이 궁금했다. 기왕 해야 하는 일, 화끈하게 보여줘서 제대로 각인시킬 생각이었는데 그게 잘 먹혔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 걱정을 할 필요도 없이, 그의 의도는 베이라에게 아주 훌륭하게 먹혀 들어간 상태였다.
“솔직히 B등급 악마를 5분도 안 걸려서 잡을 수 있다는 건 오늘 처음 알았네요.”
태상이 어깨를 으쓱하며 그녀의 말의 대답을 대신했다.
베이라가 그의 앞에 손을 내밀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치고 그러지 않을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절로 고개가 저어지는 엄청난 광경이었다.
“훌륭했어요. 아니, 경이롭기까지 하네요. 무력화가 정말 악마한테도 통한다는 걸 증명하셨으니 저희도 그에 따른 보답을 할게요. 저희랑 장기 동맹하시죠. 원하신다면 적극적으로 지원도 해드리겠어요.”
베이라는 신중하지만, 이미 선택한 일은 화끈하게 진행시키는 성격이었다.
“뭐, 정말 저희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 보이진 않지만요. 사람들을 파견하는 것 말고도 저희들이 해줄 수 있는 지원은 다양해요. 높은 등급 미션을 공유해주는 게 당신 마음에 들 것 같네요.”
"그렇게 해주신다면 마다하진 않겠습니다."
그녀의 짐작처럼 후자의 지원은 태상의 마음에 쏙 들었다. 누구나 원하지만 그것까지 공유해주는 동맹길드는 거의 없었다. 그러니 지금 베이라가 한 말은 굉장히 이례적인, 적극적 지원을 약속한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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