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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82화 (82/251)

00082  동맹  =========================================================================

생각 같아선 엄마에게 송이를 좀 챙겨 달라 하고 싶었지만, 지금 뜻하지 않은 임신 소식에 충격을 받아 있던 터라 그걸 바라긴 어려웠다. 송이가 다른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엄마가 있어 본 적도 없었기에 임신이 무척 조심스러운 모양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도 모르겠다며, 천계에 들어오기 전 침대 맡에서 고민을 털어 놓았던 송이다.

엄마의 뜻하지 않은 연락 때문에 임신을 알았음에도 그녀를 집에 두고 나왔어야 했다. 서운할 만도 한 일인데, 그런 내색 하나 하지 않는 송이였다. 그래서 태상은 그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뭐든 해주고 싶었다.

유모를 고용하긴 해야 하는데, 그런 건 직접 해본 엄마가 더 잘 알 것이다. 그녀에게 그런 걸 바라는 건 무리다. 아직 세연에겐 시간이 더 필요했다. 해서 그때까지만이라도 혜연의 도움을 받을 생각이었다.

“그래서 네가 좀 도와줬으면 해.”

태상의 말에 혜연이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혜연이라고 임신한 여자에게 뭐가 필요한 지 알 리가 없었다. 그래서 난감해했던 거였고 말이다. 하지만 남자보단 여자가 낫겠지 하는 생각으로 그녀에게 말한 것인지라 태상도 뭔가 거창한 것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

이틀 후.

레드와 만나기로 한 날이 되어 태상 일행은 길드 건물에 다시 모였다.

다 함께 나이트 레드와 만나기로 한 곳으로 움직였다. 그들이 가는 곳은 불카누스 길드 건물이었다.

태상은 두 번째 오는 거였고, 사로나와 카살라는 첫 번째 오는 거였다. 혜연이야 불카누스 길드원이었기에 자주 오던 곳이었고 말이다. 하지만 목걸이에 다른 길드 마크를 달고는 처음이었던 지라 그녀는 긴장한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그들에게로 쏠렸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그들의 얼굴이 낯설었기 때문인지 금방 누군가가 와서 그들에게 방문 목적을 물었다. 태상이 나서서 그에게 말했다.

“레드와 약속이 잡혀 있어서 왔습니다.”

“아! 그분들이셨군요. 따라오시죠. 안내해드리겠습니다.”

태상은 나중에 길드 건물에 저런 사람 하나 고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물론, 아직 신생 길드였기에 다른 사람이 찾아 올 일이 없으니 아직은 까마득한 미래 일이었지만 말이다.

그를 따라가자 태상은 레드를 만날 수 있었다.

레드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 속에 서 있었다. 태상 일행이 들어오자 모두의 시선이 그들에게로 주목됐다.

레드도 그 시선을 따라 태상 일행을 바라봤다.

레드가 손을 들어 올려 자신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리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가 발 벗고 나서는 것을 보며 안에 있는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어서 오세요. 오랜만입니다.”

“네, 오랜만에 만나네요, 레드.”

레드와 태상이 굉장히 가깝게 인사를 하자 그 수군거림은 더욱 거세졌다.

사람들은 태상 일행을 보며 다들 저 자가 그 자야? 하고 수군거리고 있었다. 공간이 넓긴 했지만 태상의 귓가에 모두 쏙쏙 박혀 들어오고 있었다.

레드가 아무래도 태상의 능력을 널리 퍼트린 듯싶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는 불신의 눈초리가 가득했다.

“길마...!”

그때, 혜연이 누군가를 발견하고 작게 중얼거렸다. 사로나는 그녀의 말에 시선을 돌려 혜연이 보는 이를 바라봤다.

검은색 바탕에 화려한 황금 무늬가 그려져 있는 로브를 입고 있는 여자였다.

“저 여자가 불카누스 길마인가요?”

“네, 맞아요. 불카누스 길마 베이라에요.”

불의 정령, 불의 화신 등등... 그녀를 지칭하는 말은 많았다.

아름다운 그녀의 외모 때문에 불의 여신이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고, 반대로 그녀를 불의 마녀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었다. 아름답고 청순한 그녀의 겉모습과는 달리 사용하는 마법공격의 파워가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레드보다 한수 위라고 알려진 여자였으니 얼마나 강할지는 짐작이 될 것이다.

“아무래도 레드가 소개시켜 줄 사람들 모두 다 장난이 아닌 것 같네요. 청룡무사 반카인도 있어요.”

은빛 갑옷에 긴 창을 들고 있는 남자가 눈을 반짝이며 태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 모두 레드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정상급 들이었다.

같은 A등급 미션을 하는 A등급 계약자라고 해도, 그 강함의 척도는 천차만별이었다. 그리고 이곳에 모인 이들 모두 A등급 계약자 중 상위 클래스들이었다.

“처음 보는 분도 계시군요. 새로운 동료이신가요?”

레드가 카살라를 보며 물었다. 태상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아아, 맞아요. 이번에 저희 길드에 가입했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나이트 레드입니다. 태상씨 길드에 들어가신 걸 보니 실력이 좋으실 것 같군요.”

레드의 말에 카살라가 특유 멍 때리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다가 느릿하게 말했다.

“...반갑습니다. 카살라 입니다.”

“쟤가 좀 멍 때릴 때가 많으니 이해해요.”

태상이 당황하는 레드에게 웃으며 말했다.

태상 일행이 사람들 사이, 그 중 베이라의 앞으로 모였다. 베이라는 흥미롭다는 눈초리로 태상 일행을 바라보고 있었다. 레드가 베이라에게 먼저 태상을 소개했다.

“이쪽은 내가 말했던 강태상씨. 이쪽은 저희 불카누스 길마 베이라입니다.”

“강태상입니다.”

“베이라에요. 레드한테 말을 워낙 많이 들어서 처음 보는 것 같지가 않네요.”

베이라의 말에 레드가 멋쩍다는 듯 말했다.

“그런 얘기를 왜 해.”

“뭐가 어때서. 됐고, 본론으로 들어가죠. 그쪽이 저희 길드랑 동맹을 맺고 싶다고 했다던데 맞죠?”

일단 먼저 동맹을 제시한 건 태상 쪽이 맞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태상이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자 베이라가 시원하게 망설이지도 않고 까칠한 말을 내뱉었다.

“저희 불카누스 길드가 쉬워 보이셨나요?”

“베이라!”

레드가 황급히 그녀를 불렀으나 소용없는 짓이었다. 이미 태상이 그녀의 말을 들은 후였기 때문이다. 그는 당황하는 표정 하나 짓지 않고, 웃음을 피어 올렸다.

“그러는 불카누스 길드는 저희 길드가 쉬워 보이셨나봅니다. 이런 말을 하시고.”

“미안합니다, 베이라 성격이 원래 저래서....”

“아아, 괜찮아요. 저런 화법 좋아해요.”

“그래요? 나랑 잘 맞네. 그럼 서로 솔직하게 터놓고 말해볼까요?”

베이라가 씨익 미소를 짓자 청순한 외모 속에 숨겨져 있는 색기가 흘러나왔다.

“우리 불카누스가 당신 길드와 동맹을 맺어 지켜주는 대가로 뭘 주실 수 있나요?”

그녀는 수많은 계약자들을 관리하는 길마였다. 그러니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 한 기업의 회장을 만나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만약 이 길드가 현실에서도 존재한다면 대기업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태상은 그런 자리가 아주 익숙했다.

그의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런 쪽 사람들뿐이었으니 말이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이런 자리에 오게 되면 절로 위축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태상은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런 자리가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다는 것을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베이라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관찰하고 있는 중이었고 말이다.

그녀는 속으로 ‘제법인데?’ 하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단기인지, 장기인지에 따라 다를 겁니다.”

태상이 그녀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짧게 답했다. 베이라는 예상치 못한 단기와 장기라는 단어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말이죠? 이해를 못하겠네요.”

“좀 더 풀어 얘기하자면 단기 동맹인지, 장기 동맹인지에 따라 다르다는 뜻입니다.”

단기 동맹이라는 개념은 처음 듣는지라 베이라의 얼굴에 더욱 궁금증이 깃들었다.

“저희 동맹에 단기 같은 건 없어요. 한 번 맺은 동맹은 끝까지 신뢰를 지키는 길드에요. 동맹을 제안했으면 그런 것쯤은 알아봐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적어도 그런 말을 뱉기 전에, 단기 동맹이 뭔지 장기 동맹이 뭔지 물어봐야 하는 게 길마로서 해야 하는 일 아닙니까?”

태상이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했다. 베이라는 잠시 생각하는 듯 입술을 오물거렸다. 레드가 옆에서 태상을 거들었다.

“그의 말부터 들어. 날 무시하는 게 아니라면 그래야 할 거야.”

레드까지 태상의 편을 들자 베이라가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레드가 의외로 덤벙거린다는 것을 잘 아는 그녀는 태상이 저 멍청이를 어떻게 홀렸기에 저렇게까지 하나 싶어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를 무시했으면 이런 놈을 만나지도 않았을 거고, 대화를 하고 있지도 않았을 거다. 신생 길드와의 동맹 문제를 자신이 직접 나서야 하는 건지 아직도 반신반의하고 있는 중이었다. 레드가 말한 내용이 워낙 말도 안 되는 것들이라서 일단 속는 셈치고 나온 거였다.

진짜라면 정말 이 동맹을 반드시 잡아야 하는 게 맞긴 했다.

“좋아요, 내가 너무 공격적으로 말했네요. 원래 이런 성격이니까 이해해줘요. 단기 동맹은 뭐고, 장기 동맹은 뭔지 알려주시겠어요?”

“뜻은 짐작하시는 게 맞습니다. 대형 길드들이 신생길드가 자라지 못하도록 막는다는 건 다들 쉬쉬하는 공공연한 비밀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그래서 그걸 막기 위해 불카누스에게 동맹을 제안했죠.”

거기까지는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단기 동맹은 불카누스라는 이름을 통해 보호 받게 해주는 대신 일정한 대가를 받는 겁니다. 길드가 자리를 잡을 동안... 그러니까 한 6개월에서 1년 사이 정도면 적당하겠군요. 그 정도의 기간 동안 빌려주시면 됩니다. 대신 저희들이 불카누스 길드에게 이름 외에 다른 도움을 청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도움을 청하지 않을 거면 왜 동맹을 하자고 하는 거죠? 이해가 되질 않네요. 신생길드가 대형 길드와 동맹을 맺는 이유는 지원 때문 아닌가요?”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잘 만들어지지도 않거니와, 만약 신생 길드가 생긴다면 대형 길드와 동맹을 맺기 위해 일정한 대가를 주는 건 지금 현재도 이뤄지고 있는 일들이었다. 대형 길드는 대가를 받아 신생 길드에게 도움을 주며 그들을 비호해준다.

다른 대형 길드로부터 말이다. 그 도움은 대부분 사람을 파견시켜주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미션을 깰 수 있을 실력자가 있어야 길드가 클 수 있으니, 그 방법이 가장 큰 원조였고, 동맹의 핵심부분이었다.

그런데 태상은 고작 이름만 빌리겠다고 하고 정작 가장 필요한 도움은 모두 받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배보다 배꼽이, 주된 목적이 뒤바뀐 것과 같은 이치였다. 하지만 정말 태상은 그들에게 그 이상 다른 지원을 바라지 않았다. 왜냐면, 그들은 지원을 받을 필요 없이 이미 충분히 강하기 때문이었다.

태상이 솔직하게 그녀에게 말했다.

“필요 없습니다. 그런 도움은. 저희들끼리 알아서 할 수 있으니까요.”

“.......”

베이라는 이런 말도 안 되는 해괴한 동맹이 어딨나 싶어 잠시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레드가 그 사이 태상에게 장기 동맹은 무엇인지 물었다.

“단기 동맹이 그거라면, 장기 동맹은 뭐죠?”

태상이 기다렸다는 듯 그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장기 동맹은, 저희 쪽에서 불카누스 길드한테 대가를 주지 않는 동맹입니다.”

============================ 작품 후기 ============================

( 기승전 추천! 추천 한 번씩만 부탁드립니다.)

점심 먹으며 기다리신다는 말에;; 급하게 올립니다.

저도 이제 점심 먹으러 가야겠네요.

후원쿠폰을 많이 주셔서 안 쓸 수도 없고... 제 손가락이 남아나질 않겠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도 3연참이 가능 할지는 잘 모르겠어요. 살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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