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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81화 (81/251)

00081  세연  =========================================================================

어느새 그가 자신의 아들인지 아닌지 생각하는 건 뒷전으로 밀려져 버렸다. 그녀에겐 지금 그토록 불안해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사실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태상이 그녀의 정신을 쏙 빼놓으려고 작정이라도 했는지 또 다시 화재를 돌렸다.

“아,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도 티 내지마. 내가 식구들이랑 만나고 있다는 걸 들키면 곤란해.”

“너, 화재 돌리지마. 지금 당장 그 여자, 여기로 불러. 어떤 여잔지 엄마가 좀 봐야겠어.”

“나중에 소개시켜 줄게. 그건 나중에 하고, 지금은 이게 더 중요하니까 내 말부터 좀 들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다. 지금도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데, 어떻게 차분하게 다른 소리를 드고 있을 수 있겠는가. 그녀의 정신이 그곳에 콕 하고 꽂혀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태상은 정말 그녀가 다른 소리를 귀 기울여 들을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다시 한 번 얘기하는데, 이명진한테 이번 일 절대 티 내선 안 돼. 솔직히 엄마 때문에 그동안 그놈 처리 못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됐으니 속 시원하게 물을 게.”

“말 돌리지 말라고...!”

세연이 반항을 해봤으나 이어진 다음 말에 결국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놈을 죽여도 될까?”

“...!!”

계속 놈을 봐주고 있었던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바로 엄마가 충격을 받을까봐서다.

애지중지하던 아들을 하루아침에 잃게 되면 그녀가 받을 충격이 얼마나 클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래서 놈을 죽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알게 된 이상, 그녀에게 물은 것이다.

세연이 만약 그를 죽이는 데에 아무런 충격도 받지 않는다는 확실한 대답만 해준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놈을 끌어내서 숨통을 끊어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세연은 태상의 질문에 선뜻 그러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가 자신의 아들 몸을 빼앗은 나쁜 놈이라는 건 알지만, 어찌됐든 그가 들어가 있는 몸은 자신이 배 아파 나은 내 아들 몸이 아닌가!

“네 몸을 네가 죽이겠다는 거니 지금?”

세연은 목소리를 낮추며 그러지 말라고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를 생각을 했냐며 그를 나무랐다. 태상의 생각대로 세연은 단번에 그에 대한 정을 끊어낼 수가 없는 듯싶었다. 당연히 태상의 몸을 쉽게 포기할 순 없을 것이다. 태상이 진짜 태상이 아니라는 것을 오늘 알았기에 더욱 그럴 것이고 말이다.

그녀에겐 지금 시간이 필요했다.

엄마에게 다그칠 생각이 없었던 태상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모든 일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시간이 지나길 기다리기로 했다. 세연은 태상에게 다시 몸을 되돌릴 만한 방법이 있을 지도 모른다며 자신도 백방으로 알아보겠다고 말했다.

“방법이 있을 거야. 그런 일이 일어났는데, 다시 돌아가는 법이 없으리라곤 없잖아.”

“그럴 필요 없어. 내가 이미 다 알아봤으니까 괜한 헛고생 하지 마.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어.”

태상이 그렇게 말을 해봤지만 세연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것 외에 분명 다시 몸을 원래대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태상은 결국 세연에게 절대 놈에게 티를 내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뒤 헤어졌다. 부디 그녀가 그를 대하는 데 큰 변화가 없도록 연기를 잘 해내길 바랐다.

세연은 그와 헤어진 다음 뒤늦게 송이에 대한 얘기가 다시 떠올라 황급히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녀는 태상과 통화를 할 순 없었다. 의도적으로 그가 그녀의 전화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갑자기 심각한 얘기로 넘어가는 바람에 혼이 제대로 쏙 빠진 세연이었다.

**

“무슨 일 있으세요? 기분이 좋아 보여요.”

혜연은 오늘따라 기분이 좋아 보이는 태상에게 물었다.

“무슨 일은, 그냥 길드건물이 생겼다는 게 좋아서.”

태상은 생각지 못하게 길드건물을 받게 됐다.

길드건물은 신생 길드답게 작은 이층크기의 건물이었지만 공으로 받았기에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그들 인원이 그리 많지 않았기에 이층 건물로도 충분했다.

아직 대형 길드에 비하면 부족한 게 많았기에 완전히 만족하진 않아도, 받게 된 길드 건물은 그럭저럭 흡족했다. 더욱이 아무런 점수도 주지 않고 얻을 수 있어 더욱 좋았다.

방은 이층에 네 개, 일층에 두 개가 있어서 한 사람씩 쓰는데도 충분했고, 일층에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계단으로 내려가면 넓은 공간이 나오는데, 그곳은 창고로 쓰기 딱 좋았다.

각자 방 하나씩 골라잡은 태상 일행은 그곳에 가구를 놓고,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1층에는 커다란 테이블과 의자를 마련해 그곳에서 다 함께 대화를 나눌 수가 있게 만들고 말이다.

아마 이제부터 1층 테이블에 앉아 회의를 하게 될 것이다.

가장 반가웠던 것은 무사히 카살라가 태상 일행의 품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이었다.

태상은 그를 보자마자 안 잡아먹혔네? 하고 진담 섞인 농을 걸며 그를 반겼다. 카살라의 등 뒤에는 천사의 날개를 더 이상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아마 라마스가 취한다는 조취가 성공한 듯 했다.

신기해 하는 일행에게 카살라는 날개를 떼어낸 것은 아니고, 날개를 접은 뒤 투명화 시켰다고 알려주었다. 카살라는 그것 뿐만 아니라 천사들이 생각과는 달리 아주 친절하게 그를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주었다고 말했다.

“제 기억을 되찾아 보게 하려고 많은 것들을 시도해봤지만 결국 돌아오진 않았습니다.”

“그래? 안됐네. 기억이 돌아왔으면 천사로 돌아갈 수도 있었을 텐데.”

태상이 말하자 카살라가 고개를 저었다.

“절 헤치지 않고, 이렇게 받아주신 것만으로도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것까찌 감히 바라지 않습니다.”

카살라가 태상을 향해 감사인사를 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가 그런 말을 해주지 않았다면 카살라는 지금처럼 살아 움직이고 있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살 수 있었던 것이 모두 그 덕분이었다.

“감사해 할 필요 없어.”

태상은 카살라가 들어 온 이상 제대로 써먹어 주겠노라 생각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태상의 시커먼 속도 모르고 카살라가 자신의 목에 걸려 있는 목걸이를 꺼내 보여주었다. 그 목걸이는 태상 일행이 차고 있는 목걸이의 모양과 똑같았다.

아무리 무늬만 천사라 해도 계약자의 목걸이를 메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건 제가 천계를 돌아다니지 못하도록 막는 봉인구이기도 하고, 눈속임용이기도 합니다. 계약자들은 이런 목걸이를 다들 차고 다닌다면서요?”

“아아~ 맞아. 모두 다 있어. 네가 우리들이랑 같이 다니려면 계약자 흉내를 내긴 해야겠지.”

태상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가까이 다가가 목걸이를 쥐어 살피자 그들이 갖고 있는 계약자 목걸이와 다르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외관은 같으나 같은 능력을 가진 건 아니었던 것이다.

태상은 기분이 좋아보이는 카살아에게 말했다.

“이 길드 건물, 네가 생전에 갖고 있던 것들의 소유권을 포기하는 대가로 우리한테 준 거라며?”

라마스에게 건물을 받을 때 들은 것인지라 태상이 얘기를 꺼낸 것이다.

실제 카살라가 갖고 있었던 것들을 다 처분하면 이런 낡은 길드 건물이 아니라 휘황찬란한 건물을 받아야 했지만, 이미 죽은 것으로 쳐져서 다른 이들에게 소유권이 넘어간 것들이었다. 그래서 이런 작은 길드건물을 대가로 받게 된 것이다.

아예 아무것도 받지 못하고 나갈 수도 있었으나, 과거 카살라와 친분이 있었던 천사들이 반박을 해서 얻어낼 수 있었던 거였다.

본디 자신을 위해 써야 했으나 카살라는 태상이 원하는 것을 주는 것으로 대가를 교환했다.

“기억에 없는 것들로 대가를 받으려고 하니, 마땅히 생각나는 게 없었습니다. 그리고 절 구해주신 보답을 하고 싶기도 해서...”

카살라가 부끄러운 듯 목소리를 점점 작게 줄였다.

“사내자식이 왜 이렇게 힘이 없어! 힘 좀 주고 다녀.”

“아! 네, 알겠습니다!”

태상의 말에 카살라가 제 딴에는 씩씩하다고 생각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여전히 멍한 표정이 남아 있긴 하지만, 처음처럼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멍한 표정은 아니었던지라 훨씬 생기가 돌았다.

“목걸이 좀 확인해봐. 빛나고 있어.”

그때, 사로나가 태상에게 말했다. 그녀의 말에 목걸이를 꺼내 확인하니 정말 빛이 나고 있었다. 그 빛의 원인은 누군가가 태상에게 연락을 넣은 것 때문이었다.

[아, 이제 받으시는 군요. 접니다, 레드.]

“레드? 오랜만이네요.”

태상이 그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하지만 레드에게서 갑자기 연락이 올 줄 몰랐기에 얼떨떨하긴 했다.

[미안합니다. 아직 동맹에 대한 건 확답이 내려지지가 않았습니다.]

“아, 그 얘기 때문에 연락 하신 거였어요?”

레드는 아직까지도 태상에게 한 말을 지키지 못하고 있었다. 길드 회의 때 열심히 주장하고 있긴 하지만 길드원이 10명도 안 되는 신생길드와 동맹을 하는 일이 그리 쉬울 수가 없었다. 태상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너무 부담 갖지 말라고 말했다.

되면 좋은 거지만, 솔직히 아직까진 거대 길드의 횡포를 당해본 적이 없어 크게 와 닿지가 않았다. 레드와의 친분만으로도 동맹과 비슷할 정도의 효과가 있으니, 아직까지는 그것으로 대체가 가능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아쉬운 사람은 태상이 아니라 레드였다.

그의 길드가 커지기 전에 손을 써야 하는데, 자꾸 차일피일 미뤄지기만 해서 애가 탔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번 기회에 길드원들에게 태상을 소개할 생각이었다.

[사실 그 일 때문은 아니라, 한 가지 제안을 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연락을 한 겁니다.]

“제안이요?”

레드가 이번에 길드원들이랑 미션을 가는데, 그곳에 태상 일행과 함께 가고 싶다는 말이었다. 미션 난이도는 B등급이었다. 레드는 이번 기회에 태상이 얼마나 뛰어난 능력을 가졌는지 길드원들에게 알려 동맹을 공론화 시키려는 속셈을 갖고 있었다.

B등급처럼 높은 등급의 미션을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기에 당연히 태상은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거절할 이유가 없긴 한데, 왜 굳이..?”

A등급 미션을 깨는 것도 아니고, B등급 미션인데 레드가 깨지 못할 것 같아 도움을 요청하는 건 아닐 것이다. 레드가 그의 물음에 대답했다.

[소개 시켜드리고 싶은 이들이 있습니다. 저와 함께 자주 다니는 녀석들인데, 안면을 익히면 좋을 것 같아서요.]

레드가 아는 사람이니 어중이떠중이들은 아닐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이트레드가 소개시켜준다는 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태상은 그의 제안을 승낙했다. 잠시 몇 마디 좀 더 나누다가 레드가 모일 시간과 장소를 알려주고 연락을 끊었다.

둘의 대화를 모두 듣고 있었기에 사로나가 곧장 입을 열었다.

“나이트 레드가 동맹에 굉장히 적극적이네.”

“저도 그렇게 느꼈어요. 하긴, 태상님의 능력을 봤으니 잡고 싶었겠죠.”

혜연이 사로나의 말을 이어 말했다.

“불카누스 쪽에서 이렇게까지 해주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지 않아?”

“맞아요. 저희는 아직 신생길드니까 불카누스의 이름을 얻을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거에요.”

“길드 횡포를 막을 수 있는 제일 좋은 방법이겠지.”

태상도 그렇게 생각했기에 레드에게 동맹을 제안했던 것이기도 하다.

레드와 다시 만나기로 한 날짜는 이틀 후였다. 그때 미션을 확인하고, 공유 받은 뒤 함께 미션을 떠나게 될 것이다.

“난 미션이 있어서 이만 가볼게.”

사로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E등급 미션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혼자서 가능했다. 해서 굳이 두 사람이 그녀를 따라 움직이진 않았다. 그녀를 배웅해주고, 혜연과 태상, 그리고 카살라가 남자 그가 혜연에게 말했다.

“이따가 인간계에서 송이랑 어딜 좀 다녀와 줄 수 있어?”

“네? 어딜요?”

혜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녀가 태상에게 언제든지 일이 있으면 불러만 달라 말하긴 했지만 그가 무언가 부탁을 하는 건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다. 더욱이 천계가 아닌 그곳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혜연은 그에게 받은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고 싶어 했기에 그가 하는 부탁이라면 무엇이든 환영이었다.

“송이가 임신을 했거든.”

“네에?!”

============================ 작품 후기 ============================

네, 네? 5, 5연참이요?;;;;(외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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