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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78화 (78/251)

00078  세연  =========================================================================

태상은 라마스에게 배 째라는 식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럼 아무 죄 없는 애를 죽여?”

“....그건!”

라마스가 뭐라 반박을 하려는데 혜연이 또 끼어들었다.

“천사로 받아들이지 못하겠으면 저희들과 함께 하면 어떨까요? 어차피 생김새도 저희들이랑 비슷하니까, 날개만 어떻게 잘 숨기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생각해본 적 없는 방법이었다.

그를 태상의 일행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카살라를 살리려면 그 수밖에 없는 건 맞았다. 라마스는 단호하게 그를 천사로 다시 받아줄 수 없다고 하고, 그렇다고 그를 풀어주기엔 나중에 무슨 문제가 생길지 모르니 문제다.

방법은 그를 죽이거나, 옆에서 놔두고 감시하는 것 두 가지였다.

그러니 혜연의 말처럼 그렇게 해서 태상의 곁에 머무르게 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날개를 숨기는 방법이야 뭐...라마스가 어떻게든 마련해주겠지 하는 막무가내 심정이 있기도 했다. 아니, 천계에서 날개 달고 다니는 인간 쯤 하나 있어도 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별의 별 일이 다 일어나는 데 그런 놈이 있다 해도 다 받아 줄 것 같았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혜연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눈만 굴리는 태상과 라마스에게 다시 한 번 물었다.

둘 중 먼저 입을 연 것은 라마스였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셔야 합니까?”

물론 굳이 그렇게까지 꼭 해야 하는 일은 아니었다. 사실 그냥 그를 죽이는 게 더 편하긴 하다.

하지만.....

“뭐 어때. 어차피 길드 자리는 넉넉하잖아. 3명이서 다니다가 4명이서 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고.”

보상 점수가 적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저 전력이 늘어나는 것뿐이다. 위험성이 좀 있긴 하지만 그건 태상이 스스로 막을 수 있다 생각했다. 그에겐 믿을 수 있는 ‘무력화’라는 능력이 있지 않은가.

야호가 자신은 왜 껴주지 않는 거냐며 태상의 옷깃을 물어왔다. 태상은 야호를 힐끗 내려다보다가 어처구니없어 하면서도 말했다.

“알았어, 인마. 4명이랑 1마리.”

그의 말에 야호가 만족했는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라마스는 잠시 깊게 생각하더니 말했다.

“알겠습니다. 날개는 충분히 감출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전에 한 가지 제 조건을 받아주셔야겠습니다.”

“제약?”

“예, 그가 천계에 허락 없이 접근할 수 없도록 하는 겁니다.”

나중에라도 그가 천계에서 다른 짓을 한다면 문제가 되니 그것을 아예 초반에 막으려는 속셈인 듯 했다. 미션을 할 때 천계에 가야 할 때도 있으니 그땐 허가를 받으면 될 거라고 말했다. 태상은 그 정도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상이 카살라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에게 하겠냐는 의견을 묻는 것이었다. 사실 카살라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 않겠다고 하면 태상 일행과 카살라는 서로 싸우는 일밖에 남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하겠습니다.”

천사로 인정받지 못한 인생이지만 그래도 이대로 죽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태상과 싸우기는 더더욱 싫었다. 그는 자신을 위해 해줄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해주었다.

그러니 자신도 그런 제약정도는 감수할 수 있었다.

“그럼 이 녀석 일은 이렇게 해결난 거지?”

더 이상 성 안에 남아 있는 실험체들도 없는 듯 했다. 주변이 소용했다.

라마스는 카살라는 일단 자신이 데려가겠다고 말했다. 그를 제약시키고, 날개를 숨겨야 하는 등의 조취가 필요했다.

“저 형 믿고 잘 다녀와라. 아, 형은 아닌가? 성별이 없으니까.”

태상이 어쩐지 도살장 끌려가는 소 같아 보여 카살라에게 농담을 하며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다시 천계로 이동되어졌을 때, 카살라는 사라지고 사로나와 혜연만이 곁에 있었다.

D등급 미션에서 계획하지 않은 새로운 동료를 얻었다는 것에 모두들 얼떨떨한 모양이었다.

“천사를 길드원으로 받아들인 길드는 저희밖에 없을 거에요.”

혜연이 자신이 낸 아이디어지만 잘 낸 것 같다며 웃었다.

**

태상은 일행과 헤어져 천계에서 접속을 끊고 나왔다.

오늘은 일요일이었기에 아침이 됐음에도 부지런 떨지 않고 실컷 집에서 쉴 수가 있었다.

송이는 아직 그가 검사직을 그만둔 사실을 몰랐다. 그동안 여러모로 일이 바빠서 외박을 한 적도 있지 않았는가. 그 모든 핑계를 검사 일로 했던지라 사실을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평일 아침에 나와 태상은 운동을 시작했다.

이곳에서도 천계와 같은 체력을 갖게 되었기에 닥치는 대로 전부 다 배우고 있는 중이었다. 하루 종일 운동을 배워도 태상의 체력이 버텨줬다. 처음엔 솔직히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조금 힘들었는데, 적응이 되니 요즘엔 좀 더 배우는 걸 늘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곳에서 싸우는 법을 배워두는 게 천계에서 싸울 때 무척 도움이 많이 됐기에 힘들어도 의욕이 솟았다.

하지만 주말인 오늘, 태상은 운동 대신 오랜만에 송이와 시간을 보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동안 그녀에게 너무 신경을 써주지 못했으니 삐진 것을 달랠 겸 말이다. 그녀는 요즘 따라 그와의 잠자리를 피하고, 어쩐지 고민이 있는 듯 가끔 심각하게 혼자서 생각에 빠져 있곤 했다. 그게 단순히 짧게 지나가는 게 아니라 오랫동안 지속되었기에, 시간을 내서 그녀의 기분을 풀어줄 생각이었다.

그는 집을 열심히 청소하고 있는 송이에게 다가가 말했다.

“데이트 하자.”

무슨 결투 신청하듯이 말하는 태상이었다. 하지만 송이는 그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했다.

“데이트? 갑자기 무슨 데이트?”

“데이트 가자면 가는 거지. 뭔 말이 많아. 하기 싫어?”

송이가 곧장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아니, 싫은 건 아닌데 너무 갑자기 그러니까....”

“어디 가고 싶은 곳 없어? 휴가철인데 휴가도 못 갔잖아.”

태상이 너무 일이 바빠 여태 휴가도 못 갔다. 송이는 갑자기 어딘가를 가려고 하니 선뜻 생각이 나지 않는 듯 했다.

“으음.....생각을 안 해봐서 당장 생각이 안나.”

“넌 그런 것도 생각 안 해보고 뭐했냐? 그리고 내가 사람 쓰라고 했지?”

예전에 혜연의 집에서 봤던 노예가 떠오른 태상은 못 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이 넓은 집을 매일 쓸고 닦고 하는 게 그녀의 유일한 일이었다.

태상이 사준 백화점 옷들은 여전히 옷장에 박혀 있고, 송이가 입고 다니는 옷들은 면 티와 추리닝 바지들이었다.

머리를 예쁘게 자르면 뭐하는 가. 관리 받지 않아 어느새 그녀의 머리가 많이 자라 있었다. 송이는 자신을 가꾸는 법을 모르는 여자였다. 자고로 여자는 가꿀수록 아름다워지는 법이다. 파티에서 보여주었던 아름다웠던 모습을 떠올렸을 때, 지금의 모습은 하늘과 땅이었다.

태상은 고심하다가 그녀를 데리고 갈 곳을 결정했다.

“온천가자.”

“싫어! 따, 딴데 가자. 온천 말고 다른 곳..음...우리 맛있는 음식 먹으러 갈래? 아니,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태상은 예상을 비켜간 그녀의 말에 잠시 어리둥절해했다. 갈 곳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그가 가자면 알겠다고 따라올 줄 알았는데, 너무 단호하게 싫다고 하니 무안했다.

“온천이 싫어?”

“응.”

송이가 또 다시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태상은 송이가 요즘 잠자리를 피하는 게 그냥 싫어서 그런 게 아니라 이유가 따로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지금 그에게 자신의 몸을 보여주기 싫어 저러는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잠자리도 피하고, 온천도 가기 싫다 할 이유가 없었다.

태상은 괜스레 심각해져 송이를 빤히 바라봤다.

송이는 태상의 시선을 바라보지 못하며 자꾸만 눈을 피했다. 뭔가 죄라도 지은 것 같아 보였다. 무슨 사고라도 친 걸까?

딴 남자랑 잔 건 아니겠지?

그런 생각을 하자 울컥 화가 치솟았다. 다른 사고는 다 이해할 수 있지만 그건 봐줄 수가 없었다. 태상은 아직 모르는 일이었기에 애써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고, 그녀에게 물었다.

“너 왜 그래?”

“뭐가?”

“나랑 눈도 못 마주치잖아.”

“내가 언제?”

“지금.”

“안 그랬어.”

“그럼 내 눈 똑바로 봐봐.”

태상이 그녀의 얼굴 앞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댔다. 하지만 송이는 하지 말라며 피할 뿐 그와 시선을 마주하지 않았다. 며칠 전부터 계속 저랬다. 그래서 태상이 심각성을 깨닫고 그녀가 단단히 삐졌다는 생각에 데이트를 하려 한 것이었다.

그런데, 저렇게 다 싫다고만 하고, 의도적으로 무언가를 숨기려 하니 답답하고 슬슬 화가 나기까지 했다.

“당장 말 해. 내가 그동안 일 때문에 너한테 신경을 못 써줬다고 삐진 거야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거야?”

“.....안 삐졌어. 그런 거 아니야.”

“그런 거 아니면 왜 이러는데. 며칠 전부터 갑자기 이러잖아. 나랑 자지도 않고.”

송이는 태상의 말에 갑자기 얼굴을 들면서 그를 노려봤다.

“그거 하는 게 그렇게 중요해?”

“누가 그게 중요하대? 네가 피하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으니까 문제라는 거지.”

태상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송이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입을 다물었다.

“.....”

“말 안할 거야?”

송이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말하기 싫다는 것이었다. 태상은 깊게 한숨을 쉬었다.

“.......”

"........"

잠시 동안 침묵이 돌고, 결국 태상이 졌다 생각하며 그녀에게 제안했다. 송이가 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으니 그걸 들어 줄 생각이었다.

“네 말대로 밥 먹으러 가자. 뭐 먹고 싶어?”

송이는 잠시 침묵하다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족발.”

참 메뉴 선택도 깜찍한 송이였다.

맛집을 검색해서 송이를 태우고 족발집으로 움직였다. 가는 내내 송이는 말이 없었다. 태상도 그녀 때문에 머리가 복잡했기에 입을 열지 않았다.

아직 저녁시간이 아니라서 그런지 손님이 꽉 차있지는 않고, 군데군데 떨어져 있었다. 매장이 워낙 컸기에 태상과 송이는 좀 구석 쪽으로 들어가 앉았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에도 서로 짧게 대화만 할 뿐 대화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족발이 나올 때까지도 말이다.

서로의 사이에 풀리지 못한 냉기류가 맴돌았다.

"먹어."

태상이 젓가락을 들었다. 하지만 송이는 젓가락을 드는 대신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우욱!"

태상이 놀라 송이를 쳐다봤다.

송이가 설명도 없이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뛰어갔다.

"송이야!"

갑자기 사라져버린 송이 때문에 황당했던 태상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따라갔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송이를 따라가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는 여자 화장실임에도 불구하고 망설이지 않고 들어가 송이가 변기를 붙잡고 구역질하는 소리가 들리는 화장실 칸 문을 두드렸다.

"송이야! 괜찮아?? 문 좀 열어!"

"이봐요! 여기 여자화장실이거든요?!"

여자 손님이 화장실을 사용하고 있었기에 태상을 째려보며 항의했다. 하지만 태상은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화장실 문을 계속해서 두드렸다.

송이가 작은 목소리로 태상에게 말했다.

"나가 있어...! 난 괜..우욱...!"

"젠장!"

태상이 화장실 문고리를 잡아 그대로 힘주어 뜯어버렸다.

화장실 고리가 속수무책으로 뜯겨 문이 힘없이 열렸다. 태상이 칸 속으로 들어가 송이의 몸을 붙잡았다.

"너 왜그래. 왜 이러냐고!!"

태상은 송이가 어디 큰 병이 걸렸을까봐 심장이 덜컹 내려 앉아 있는 상태였다. 송이는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

"내가 가 있으라고 했잖아."

"네가 이딴 꼴을 하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가만히 있어?!"

어림없는 소리였다. 송이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

토하진 않았다. 그냥 헛구역질이었다. 냄새가 너무 역했다. 분명 집을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족발이 땡겼는데, 가게에 들어와 냄새가 풍기자 뛰쳐나오고 싶었다. 그리고 결국 족발이 나오자 참지 못한 것이다.

송이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쁜놈아! 그냥 내 말 좀 들어주면 안 돼?"

"나 원래 나쁜놈이야. 그러니까 왜 이러는지 당장 말 해. 아니, 다 필요없고, 병원 가자."

태상이 송이의 몸을 일으켰다. 송이는 팔로 그의 가슴을 밀어내고 말했다.

"갈 필요 없어. 왜 이러는지 알아."

"안다고? 이게 처음있는 일이 아니야?"

"....."

송이가 또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그에게 여자 화장실이라며 나가라고 했던 여자손님이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태상은 답답해져 버럭 소리를 질렀다.

"몸이 안 좋으면 나한테 제일 먼저 말을 했어야 할 거 아냐!!"

"몰라!! 모른다고! 멍청아! 눈치도 없어?"

"여기서 뭔 눈치!"

송이가 서러워져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에게 진실을 털어놓았다.

"나 임신했어!!"

송이의 외침에 태상의 얼굴이 멍청해졌다.

"으응?"

그의 목소리가 삑사리를 내며 갈라지는 건 덤이었다.

============================ 작품 후기 ============================

음음. 몇몇분들이 눈치를 채고 계셨던 부분이죠? 이제야 터트리는 군요.

전화 코멘 부분

1. 칸살라 TS가능한가요?

애석하게도 없을 것 같습니다. 어떤 분께서 여자들만 잔뜩 나온다고 뭐라고 하셔서 작정하고 만든 남캐입니다!!

2. 제가 보는 거요? 발굴한 건 아니에요....순위노블 읽은 거라...허허..;; 다들 알고 계시는 그 작품들입니다. 노블이 2일 남았길래 아까워서 급 읽기 시작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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