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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77화 (77/251)

00077  타락천사  =========================================================================

다들 일반적인 천사와는 다른 생김새를 갖고 있었다. 등 뒤에는 활짝 펼쳐진 천사 날개를 달고 있다는 게 그들의 유일한 공통점이었다. 여성체도 있었고, 남성체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어딘가 조금 더 많이 이상했다.

처음 태상이 발견했던 타락천사보다 말이다.

그들은 마치....

“실험체...인 것 같지?”

실험체.

그것도 하다가 실패해서 버린, 그런 존재들 같아 보였다.

인간 형태를 하고 있는 이들도 있었지만 몬스터와 비슷한 생김새를 한 채로 날개를 달고 있는 자도 있었다. 그들 상태가 모두 온전하지가 못했다.

날개 한 짝이 없는 이도 있고, 팔 혹은 다리가 없는 이도 있었다.

한 눈에 봐도 그들은 실패작이었다. 그리고 아마 태상 일행이 처음 만났던 타락천사는 성공 직전까지 갔던 실험체일 것이고 말이다.

성이 갑자기 무너지고, 곧장 저들이 튀어나온 것을 보니 그 원인이 저들에게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마 태상 일행이 악마를 죽였기에 저들을 가둬두었던 무언가가 기능을 잃어 생긴 일인 듯했다.

타락천사는 갑자기 나타난 자신과 비슷한 존재들에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기억이 없는 그에게 이런 갑작스러운 변화는 혼란만 가증시킬 뿐이었다.

타락천사가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대들도 나와 같은 존재들인 겁니까?”

그는 날개를 갖고 있기도 했지만 엉덩이 부분에 파충류의 것으로 보이는 기다란 꼬리를 갖고 있기도 했다. 그의 고개가 천천히 움직여 타락천사에게 닿았다.

불행이도 문제는 그때부터 생기기 시작했다. 멍한 표정을 짓던 그의 눈동자가 점점 붉어지며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크르르르....

태상은 직감적으로 그들이 타락천사처럼 이성이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조심해!!”

태상이 타락천사에게 경고했다. 하지만 그의 경고는 늦은 감이 있었다. 이미 타락천사는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서 대답을 기대했던 타락천사는 도리어 공격을 받고 아래로 추락하고 있었다.

그는 왜 그들이 자신을 공격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나와 똑같은 존재인데 말이다.

타락천사는 자신과 같은 흰 날개를 달고 있는 그들에게 공격을 받았다는 게 믿겨지지가 않았다. 자신은 비슷한 저들 사이에서도 배척되는 존재인 것 같았다.

태상이 달려가 떨어지는 타락천사를 받아냈다. 타락천사는 갑자기 느껴지는 온기에 놀라 태상을 바라봤다.

“....절 구해주신 겁니까?”

“저놈들 아무래도 상대가 너보다 더 안 좋은 것 같다. 그니까 그나마 덜 상태 안 좋은 네가 이해하라고.”

태상은 바닥에 그의 몸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타락천사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실은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으면서 말이다.

한 명의 눈동자가 붉어지자 다른 실패작 실험체들의 눈동자도 하나 둘씩 붉어지기 시작했다. 전염이라도 되는 것 마냥 말이다. 사로나가 타락천사를 공격했던 실험체의 목을 베어버렸다. 놈이 공격을 멈추지 않고, 타락천사를 향해 달려오려 했기 때문이다.

타락천사는 목이 떨어져 죽어버린 실험체를 빤히 바라보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저들을 왜 죽이시는 겁니까?”

“우리를 공격하니까.”

“공격 받으면, 공격한 자를 죽여야 하는 건가요?”

“네 아량에 따라 다르지. 우린 그래야 하는 성격이니까 그렇게 하는 거야. 근데 솔직히 이런 상황이면 죽여야 한다고 봐. 저들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당하는데, 목숨이 100개도 아니고 봐줄 이유가 없잖아?”

저렇게 전부 다 일관성 있게 죽일 듯 살기를 가득 담아 바라보고 있는데, 가만히 두고 볼 순 없었다. 붉어진 눈빛을 보니 하나같이 제정신들이 아닌 듯 보였고 말이다.

애초에 이성이 존재하긴 하는 건지 의심도 들었다.

실패작이면 처분을 할 것이지, 뭐하러 저렇게 모아뒀는지 모르겠다. 태상은 이미 심장이 되어버린 악마 놈을 향해 으드득 이를 갈며 마나건을 힘주어 잡았다.

“저놈들 다 너 노리고 있는 거 보이지? 그니까 얌전하게 여기 있어라. 그럼 지켜줄 테니까.”

태상은 타락천사도 자신이 죽여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았으나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리 말했다. 그가 얌전히 있어줘야 싸우기가 편하다.

그들은 더 이상 기다려주지 않았다. 사방에서 붉어진 눈동자로 공격을 해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황당하게도 적아를 구분하지 못했다. 자기네들끼리 달라붙어 싸우는 놈들도 있었고, 끊질기게 일행만 쫓아 공격하는 놈도 있었다.

야호는 천사 날개를 가진 이들이 주인을 공격하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주춤댔다. 일단 공격준비는 하긴 했는데 진짜 공격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모양새였다. 태상이 당황스러워하는 야호에게 단호하게 명령했다.

“싸워! 저놈들 모두 적이다. 천사가 아니라고!”

야호가 곧장 태상의 명령을 받아들였다. 야호는 땅을 박차고 뛰어올라 실험체의 다리를 잡고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바닥에 쓰러진 실험체는 그리 오랫동안 살아 움직이지 못하고 야호의 이빨에 목숨을 잃어야 했다.

실험체가 실패작이어서 그런지 그리 위협적인 공격은 없었다. 태상이 그들에게 무력화를 쓸 필요도 없었다. 사로나와 혜연이 능숙하게 실험체들을 상대하며 수를 줄여나갔다.

아무리 수가 많다고 해도 일당백인 그들을 이길 순 없었다. 야호에게도 당하는 놈들이 얼마나 강하겠는가. 귀찮고 거슬리긴 했지만 위협은 될 수 없었던 그들은 그렇게 바닥에 피를 적시며 죽어나갔다.

타락천사는 그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태상은 몇 남지 않은 실험체의 숫자를 보고 사로나와 혜연, 야호에게 정리를 맡겼다.

마냥 그를 혼자 내버려둘 순 없었다.

태상이 다가가자 타락천사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저도 저들처럼 죽어야 하나요?”

그는 다짜고짜 태상의 정곡을 찔러왔다.

“왜 갑자기 그런 소리를 해?”

“저들도 천사가 아니고, 저도 천사가 아니니까요. 전 죽어야 하는 거죠?”

맞는 말이었다.

날개를 갖고 있긴 했지만 저들은 천사가 아니었다. 그러니 죽여야 하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타락천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들과 타락천사의 사이에는 실패와 성공이라는 차이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 차이점이 그를 살리진 못할 것이다.

“사실 널 죽이려고 찾은 게 맞아.”

타락천사가 사형선고라도 받은 듯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그에겐 허용된 기억이라곤 고작 몇 시간밖에 없었다. 고작 이렇게 살고 죽기엔 너무 아쉬운 게 많았다.

태상이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입을 닫았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라마스가 그러더라고. 네가 곧 이성을 잃고 저것들처럼 우리들을 공격할 거라고. 그러니 위험하니까 널 죽여야 한다고 했어.”

“......죽고 싶지 않습니다. 전 아직 제가 누구인지조차 모릅니다. 이대로 죽을 순 없습니다.”

타락천사가 말했다. 그의 눈동자가 서서히 붉어지려고 하고 있었다.

그는 태상이 자신을 공격하면 그에 따른 맞대응을 할 기세였다.

태상이 그를 느끼고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이 자식이, 사람이 말하면 끝까지 들어! 누가 너 죽인대?”

타락천사는 태상의 말에 살기를 지우고 특유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절 죽이지 않으신다는 말입니까? 아까 전에 절 죽이기 위해 오셨다고 하셨잖습니까.”

“내가 보기엔 좀 상태가 안 좋은 것 같긴 해도, 말귀도 제법 알아듣고 괜찮은 것 같거든. 그러니까 라마스랑 한 번 만나보는 게 어떨까 싶어. 그게 어려운 일도 아닌데, 아무것도 안 해보고 포기하기엔 좀 아깝잖아? 멋들어진 이름도 있는데.”

악마 계약자를 서슴없이 죽이긴 했어도, 목숨 귀한 건 태상도 안다. 자기 목숨이 소중하니 남 목숨도 그렇다는 것을 말이다.

타락천사는 태상의 말 중에 문득 그의 귀를 콕 집고 사라지는 것을 느끼고 되물었다.

“멋들어진 이름....이요?”

“그래. 라마스한테 물어봤어. 네가 하도 궁금해 해서.”

“......”

타락천사가 긴장했는지 표정을 굳혔다.

드디어 그가 자신의 이름을 듣게 되는 것이다. 깨어났을 때부터 그토록 갈구했던 자신에 대한 정보였다. 이름을 듣고 모든 기억이 떠오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해도 상관없었다. 태상은 기대하는 타락천사에게 말했다.

“네 이름은 칸살라야.”

칸살라....

칸살라.......

타락천사, 아니 칸살라는 자신의 이름을 혼잣말처럼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라마스가 알려준 바에 따르면 그가 살아 있을 때엔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가 실험체가 되어 저런 꼴이 되기 전엔 A등급 천사로 꽤나 이름 날리던 녀석이었단다. 전쟁을 하다가 목숨을 잃었고, D등급 악마의 손에 우연히 들어가 다시 살아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칸살라와 친분이 두터웠던 천사 한 명이 죽은 줄 알았던 그의 존재감이 마계에서 느껴지자 이상함을 느끼고 이번 일을 조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야호에게 죽은 악마가 천사의 심장을 개조해서 병기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고 말이다.

D등급 악마가 A등급 천사의 심장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되겠는가.

그동안 낮은 등급 천사의 심장으로 저런 실험체들을 만들어내다가 고대하던 A등급 천사의 심장을 갖게 된 그는 실험 성공 단계까지 다다를 수가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모든 계획은 천사에게 들켜 태상에게 저지당했고 말이다.

야호가 D등급 악마를 쉽게 죽일 수 있었던 것은 그 악마가 전투 쪽으론 능력이 영 젬병인 녀석이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실험실에 쳐 박혀 키메라 연구를 하는 놈이었으니 당연히 C등급 악마의 심장을 흡수한 야호를 당해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실험체들이 모두 정리가 되자 태상은 목걸이를 꺼내 라마스를 다시 불렀다.

라마스는 일이 모두 정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마계로 이동했다.

“저 자는...?”

하지만 죽었을 거라 생각했던 타락천사가 말똥말똥한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자 라마스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태상은 그가 무척 당황하자 설명을 위해 입을 열었다.

“이놈이 좀 맛이 가긴했는데, 그리 완전히 간 것 같진 않아서.”

태상이 자신의 말에 잘 맞장구치라고 했기에 혜연이 잽싸게 치고 들어왔다.

“저분, 굉장히 순하세요. 저희들 공격하고 막 그럴 사람 아니, 천사가 아닌 것 같아요. 아무 잘못도 없는데, 천사를 왜 죽여요. 안 그래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로나는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혜연처럼 할 자신이 없는지 뒤늦게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저 자는 이미 죽은 존재입니다. 더 이상 천사가 아닙니다. 저희들은 그를 천사의 일원으로 받아드릴 수 없습니다.”

라마스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미 천사로서 싸우다가 죽은 존재였다. 더욱이 악마가 만든 존재를 어떻게 천사의 일원으로 다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카살라가 다시 악마들과 싸우는 전쟁에 나간다 해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카살라는 그녀의 단호한 말에 표정이 침울하게 가라앉았다. 기억이 아무것도 없기에 그는 지금 자신과 똑같은 천사를 처음 만나는 거였다.

그 실험체들은 외향 때문에 자신과 비슷한 존재라고 생각했지만, 직접 진짜 천사를 만나고 나니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느낌 적으로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존재는 라마스가 처음이었다.

그는 라마스가 나타나자마자 반가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라마스는 카살라에게 어떠한 살가운 표정도 지어주지 않고 있으니 절로 실망감이 들었다.

============================ 작품 후기 ============================

77편인데 추천77개되는 행운은 없나요?

아... 쿠폰받았다!!

감사합니다! 그래....비축분 따위....!!

조아라 소설 재밌는거 발견해서 스마트폰으로 보다가 새벽에 잤더니 두 손이 전부 다 아프네요. 제 스마트폰이 노트라...엄청 무겁습니다. 노트 사지 마세요.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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