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자-68화 (68/251)

00068  납치  =========================================================================

동영상을 실행시키자 아까 전에 보았던 장면 그대로가 재생되기 시작했다.

의자에 묶여 축 늘어져 있는 세연과 얼굴이 보이지 않는 범인의 목소리였다.

[이 여자는 대기업 이사인 강태진의 아내다. 이 여자는 내가 납치했다. 난 돈을 원하지 않는다. 내가 이 여자를 납치한 이유는 한 가지다. 강태진이 나에게 사과를 하고, 잘못을 비는 것이다.]

남자의 목소리는 그것을 끝으로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잠시 동안 세연의 모습이 좀 더 보이다가 영상이 끝났다.

영상에선 확실하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이 일의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도대체 일을 어떻게 했기에!!!”

태상이 분노했다. 늘 회사 일 때문에 엄마를 외롭게 하던 사람이 바로 그의 아버지였다. 가정 일보다는 회사 일을 중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 강회장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해서 결국 그의 인생은 가족도, 회사도 둘 다 어중간하게 걸친 인생이 되었다.

회사 일 때문에, 아버지 때문에 엄마가 저런 일을 당해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엄마가 깨어난다면 저 어두컴컴한 곳에 갇혀 얼마나 무섭겠는가.

자신도 당해봐서 잘 알았다. 그리고 그래서 더욱 한 시라도 빨리 그녀를 구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중이었고 말이다.

“무슨 이유에선간에.....”

이 일을 한 걸 뼈저리게 후회하게 해줄 것이다.

죽음보다도 더 끔찍한 고통 속에서 발버둥 치다가 죽일 거다. 그러려면 경찰에서 그를 찾는 것보다 먼저 그가 세연을 찾아야 했다. 그래야 그렇게 자신의 죄를 뼈저리게 후회하게 만들 수 있었다.

지금 그의 납치 계획이 언론에 모두 흘러갔으니 경찰에서 당연히 움직였을 것이다.

태상은 납치범이 법의 심판을 받는 걸 원하지 않았다.

태상이 이를 으드득 갈았다.

그의 눈동자가 흉흉해졌다. 야호가 그의 살기를 느꼈는지 귀를 쫑긋 세우더니 소파에서 일어나 고양이처럼 사뿐하게 아래로 내려왔다.

자신보다 두 배는 높은 소파인데도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다. 불과 며칠 전만해도 낑낑거리기만 하던 녀석이 말이다.

야호는 짧은 팔다리를 움직여 살기가 느껴지는 근원지로 움직였다.

살짝 열려 있는 문으로 야호가 들어와 태상이 보이는 곳에 앉아 그를 빤히 바라봤다.

시간이 좀 더 지나자 메일이 한 통 더 왔다. 실시간으로 정보가 그에게 보내지고 있는 것이기에 수시로 확인했던 태상은 재빨리 메일을 확인했다.

그곳에는 범인의 윤곽이 드러났다는 정보가 나왔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범인의 이름은 이동춘이라는 50대 중년의 남자였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다가 이번에 회사가 문을 닫았는데, 그 과정에서 태상의 아버지가 연관되어 있었다.

"도대체 어딜 봐서 안전하게 구해낼 수 있다는 거야?"

단순히 돈이었다면 태상은 그리 걱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예전에 있었던 일처럼 돈을 주고 구출하면 될 일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번 문제는 그렇지가 않았다. 이동춘은 아버지에 대한 원한으로 세연을 납치한 거였으니 그 조건이 까다로웠다.

태상은 일단 천계에 접속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서 자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구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

태상이 천계에 접속하자 라마스가 그를 반겼다.

천계에서 점수로 할 수 있는 것은 상상 그 이상으로 많은 것들이 가능했다. 그러니 그가 원하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생각한 것이다.

태상은 라마스가 어서오십시오 라고 말을 함과 동시에 그에게 다급하게 물었다.

“사람이 어디 있는지 찾고 싶어. 가능해? 여기서 말고, 인간계에서.”

다짜고짜 오자마자 하는 말에 라마스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당연하다는 듯 라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악마 계약자가 아닌 일반인이라면 가능합니다.”

태상이 그 말에 주먹을 꽉 쥐었다.

그가 원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저걸 이용해서 세연이 어디에 있는지만 알 수 있다면 그녀를 구출해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더욱이 자신은 일반인보다 훨씬 강하고 빠른 육체를 가졌다. 그렇기에 경찰보다 훨씬 더 그녀를 안전하게 구출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그럼 지금 당장 그거 구매해줘.”

“무슨 일이신지는 모르겠지만, 알겠습니다.”

라마스가 잠시 사라졌다가 나타났다. 그의 손에는 동그란 시계모양의 물건이 들려 있었다.

“가격은 500점, 이것의 이름은 추적시계입니다. 한 사람만 추적 가능한 일회용이며, 지속시간은 5시간입니다.”

태상이 라마스의 손에 들린 추적시계를 강탈하듯 빼앗아 들었다.

“사용은 어떻게 해?”

“추적하려는 이의 체취가 묻은 물건이 있으면 됩니다.”

체취가 묻은 물건....

태상은 난감해졌다. 그에겐 세연의 체취가 묻어 있는 물건이 단 한 개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걸 사용하려면 집으로 들어가 그녀의 물건을 가져와야 했다.

가뜩이나 세연의 납치로 인해 사방에 경계가 삼엄할 것이다. 그렇다고 강회장에게 다짜고짜 세연의 체취가 묻은 물건 하나만 달라고 하기에도 굉장히 이상했다.

도대체 그녀의 체취가 묻은 물건을 뭐에다 쓸 거냐고 물으면 태상은 할 말이 없을 테니 말이다.

태상이 난감해져 머리를 긁적였다.

“방법이 그 것뿐이야?”

“그걸 사용하는 다른 방법이 한 가지 있긴 합니다. 그걸 착용하시고, 찾으려는 사람을 아주 강렬하게 떠올리는 겁니다. 뚜렷하게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성공 확률이 높습니다. 하지만 실패하게 되면 전혀 다른 곳을 알려주기 때문에 권해드리진 않습니다.”

물건을 구할 방법이 없다면 그렇게라도 하는 게 나았다. 시간적으로 봤을 때에도 그게 더 빠르다고 생각했다.

세연을 떠올리는 것은 태상에게 아주 쉬웠다.

더욱이 근래에 그녀를 직접 눈으로 보기까지 하지 않았는가. 자신의 엄마를 떠올리는 건데, 실패할 리 없었다. 태상은 그 정도면 됐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불안은 했기에 두 번 걸음하지 않으려 추적시계를 하나 더 구매했다.

접속을 끊은 태상은 자신의 손에 추적시계 두 개가 온전하게 함께 딸려왔음을 확인하고 안도했다.

잔뜩 심각해져 있다가 다짜고짜 자겠다며 이불을 덮고 누운 태상 때문에 송이는 한참을 황당해하다가 잠이 든 상태였다. 그녀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일어나 밖으로 나온 태상은 두 개의 추적시계 중 하나를 손목에 차고, 세연을 떠올렸다.

그녀의 눈, 코, 입.......그리고 목소리.....

그의 머릿속에 확실하게 새겨진 세연의 모습에 반응하듯 추적시계에서 동서남북이 나타나고, 방향을 가리키는 붉은색 화살표도 생겨났다.

화살표는 남쪽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그 말은 세연이 지금 이곳에서부터 남쪽에 있다는 뜻과 같았다.

당장 움직이기 시작한 태상은 차를 몰고 남쪽으로 향했다.

차가 움직이자 방향도 그때그때마다 조금씩 바뀌며 태상을 안내했다. 시계에서 화살표가 아닌 동그란 표시가 나타나자 그곳이 바로 세연이 있는 곳임을 눈치 챈 태상이 차를 멈추고 시동을 껐다.

그의 앞에 있는 곳은 허름한 창고였다.

오랫동안 쓰지 않은 게 분명했다. 주변에는 이름 모를 잡초들이 길쭉길쭉하게 자라나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주변에는 창고 외에는 건물이 존재하지도 않았다. 오래 전 버려진 창고가 분명했다.

추적시계를 다시 한 번 바라보니, 빛 한 점 없는 어두컴컴한 창고를 계속해서 가리키고 있었다.

태상은 기척을 죽이고 조심스럽게 창고 쪽으로 움직였다.

창고 안으로 들어가자 넓은 공간이 보였다.

버려진 것으로 보이는 빈 통들이 너저분하게 있었는데, 태상은 그 빈 통들 사이로 들어가 몸을 숨기고 움직였다. 추적시계의 빨간점은 계속해서 움직이지 않고 한 군데를 가리키고 있었기에 굳이 창고에서 세연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됐다.

빨간 점과 그와의 거리가 얼마 남지 않았기에 그의 걸음걸이가 바빠졌다.

**

모닥불이 활활 타오르며 타닥- 타닥- 소리를 냈다. 불똥이 튀면서 생긴 소리를 따라 시선을 돌리면 무언가를 분주하게 만지고 있는 남자, 동춘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카메라를 만지작거리고 있었고, 그 옆에는 노트북이 불빛을 내며 반짝였다.

인터넷 검색어 1위를 달리고 있는 세연의 납치 소식을 다룬 기사가 클릭되어 있어서, 동춘이 그것을 관심 있게 보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으으으...음....”

그때였다.

갑자기 세연의 몸이 꿈틀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서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강제적으로 잠들어 있었다가 깨어난 터라 머리가 깨질 듯 아파왔다.

세연이 움직이는 것을 본 동춘이 벌떡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갔다.

세연은 눈을 떴다가 바로 앞에 서 있는 동춘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아아악!”

동춘은 세연의 비명소리에 씨익 웃음을 지었다.

“얼마든지 질러도 좋아. 여기에선 누구도 도와주지 않을 테니까.”

세연의 얼굴에 겁이 잔뜩 깃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생각같아선 도망치고 싶었지만 몸이 꽁꽁 묶여 있어 그럴 수가 없었다.

“당신 누구야?! 흑...흐흑....!”

세연의 목소리에도 그 두려움이 깃들었는지 덜덜 떨리고 있었다. 동춘은 꿀꺽 침을 삼키고 노트북을 가져와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이걸 한 번 봐봐. 지금 난리가 났어. 네가 납치당했다는 걸 다들 알고 있지. 내가 다 알렸거든. 널 내가 납치했다고.”

세연은 인터넷을 볼 정신이 없었다. 흑흑 눈물을 흘리던 그녀는 비명을 지르듯이 말했다.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돈이야? 돈 때문에 이래?!”

세연은 그런 것이라면 굳이 이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설명하려 했다. 그녀의 가족에게 원하는 액수를 말했다면 당장 그것을 주고 그녀를 구하려 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세연의 말에 동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의 말이 동춘의 신경을 크게 건드렸다.

“내가 왜 이러냐고? 그걸 몰라?”

“흐흑...흑...!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난 당신 처음 본단 말이야!”

동춘은 초조한 듯 자신의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까드득 까드득- 소리가 나자 세연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소리가 너무 끔찍했던 것이다. 동춘은 손톱을 깨물면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그렇지. 얘기를 못들은 거구나.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그놈은 자기가 얼마나 나쁜 짓을 저질렀는지 얘기하고 싶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내가 그렇게 되게 안 할 거야. 세상 사람들한테 전부 다 얘기할 거야! 네 남편이 얼마나 끔찍한 악마인지!!!”

“꺄아아아악!!! 사람살려!!! 꺄아아아악!!”

꽁꽁 묶여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발버둥 치며 소리를 질렀다. 꽉 묶인 줄에 쓸려 그녀의 흰 피부에 빨갛게 변하고 있었지만, 세연은 그것이 아프다는 것도 느끼지 못했다.

공포가 아픔을 잊게 했기 때문이다. 동춘은 세연의 비명을 감미로운 클래식 음악을 듣는 듯 눈을 지긋이 감고 즐겼다.

잠시 그녀의 발버둥을 지켜보던 그는 아무도 도와주는 이가 오지 않는 것을 보라며 세연에게 말했다.

“자, 봐봐. 내 말이 맞지? 난 그놈처럼 거짓말 안 해. 아무도 널 도와주지 않을 거라고 했잖아.”

“흐흐흐흑..흐흐흐흑..흑..흑...흑.....”

세연이 펑펑 울음을 터트렸다.

그제야 자신이 있는 곳이 인적 드믄 창고 안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이런 곳에서 소리를 질러봐야 구해주러 올 이는 없을 것이다. 세연의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계속해서 창고를 울렸다.

동춘은 세연의 턱을 잡아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세연이 고개를 움직여 그의 손을 피해보려 했지만 그가 힘주어 잡자 그럴 수가 없었다.

"자, 이제 그만 울고, 내 얘기를 들어. 넌 그래야 해. 알겠어? 내가 왜 널 납치했는지 그 이유를 지금부터 알려 줄 테니까!"

동춘이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들었다. 그 행동은 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는 뜻과 같았기에 세연은 어쩔 수 없이 그와 시선을 마주해야 했다.

============================ 작품 후기 ============================

연참 했어용!

즐겁게(?) 읽어주셨다면...추천 한 번 씩만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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