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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67화 (67/251)

00067  납치  =========================================================================

아침에 회사 로비에서 강태진에게 애걸복걸 했다가 폭행을 당하고 돌아 온 남자는 작은 모텔 방 안에 웅크리고 앉아 넋을 놓은 듯 가만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의 퀭한 두 눈과 이곳저곳 흙이 묻어 있는 몰골을 보면 거지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의 옆에 놓여 있는 핸드폰은 웅-웅- 진동이 울렸다가 끊기고, 다시 진동이 시작됐다고 끊어지길 반복했다. 남자는 증오스럽게 핸드폰을 바라보다가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모든 게 끝났다.

이제 다 틀린 거다.

결국 회사는 부도가 났고, 그는 빚더미에 앉았다.

아마 지금쯤 가족들은 마른하늘에 날벼락 맞은 듯 집안 곳곳에 빨간 딱지 붙는 걸 보았을 것이다. 회사가 부도가 났고, 모든 게 끝났다는 것을 알았으니 저렇게 계속해서 전화를 거는 걸 것이다.

그를 책망하고, 원망할 거다.

남자는 그것이 무서워 차마 가족의 전화를 받을 수가 없었다. 가족들의 전화 외에도 투자자들의 독촉 전화에 이미 이골이 날 때로 난 남자였다.

힘들다.

이렇게까지 오게 되는 과정에게 가족에게만은 알릴까 생각도 해봤다. 갑작스러운 회사 부도에 다들 얼마나 놀랐을까?

이 지경이 왔음에도 도저히 말 할 수가 없었던 것은, 어떻게든 혼자서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미루고 미뤘기 때문이었다.

할 수 있을 거라고, 이번 위기만 잘 극복해내보자고 다짐했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현실은 냉정했다. 결국 남자는 모든 걸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말이다.

‘죽을까?’

모든 걸 자신이 가져간다면 적어도 가족들이 빚을 떠 앉지는 않을 수 있었다. 상속만 거부하면 되는 일이니 말이다. 아무 것도 없는 삶을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그래, 죽자. 죽으면 편할 거야.

이곳이 지옥인데,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차라리 죽는 게 훨씬 편할 것이다.

남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옷을 챙겨 입었다.

막상 자살을 생각하니 어떻게 죽어야 할지가 막막했다. 최대한 아프지 않게 죽고 싶었기에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다리에서 떨어질까?’

아니야, 물에 빠지면 숨이 막혀서 아플 거야.

‘건물 옥상에서 뛰어 내릴까?’

떨어질 때 중간에 기절해서 아픔을 못 느낀다던데....

남자는 이런 고민을 하는 자신의 처량한 신세에 깊게 한숨을 쉬었다.

“이게 다 그놈 때문이야. 그놈이 갑자기 투자 취소만 하지 않았어도...!!”

그는 너무 억울했다. 강태진이 투자를 해주겠다고 했기에 무리하게 회사를 확장했던 거였다. 그런데, 그가 일을 다 벌려 놓으니 갑자기 투자 취소를 해버린 것이다. 강이사를 보고 투자자들이 몰리는 바람에 그는 이번에 제대로 회사를 만들어보겠다 생각하고, 일을 훨씬 크게 벌려 놓은 상황이었다.

그로인해 자금이 바닥을 드러냈고, 소문을 들은 투자자들까지 투자금회수를 요청하기 시작했다. 은행에선 돈을 빌려주지 않았기에 결국 회사는 부도를 맞게 됐다.

그러니 모든 게 자신을 찾아와 투자를 해주겠다고 현혹시킨 강태진, 그놈의 잘못이었다.

이대로 죽기엔 너무 억울했다.

자신이 죽는다고 그놈이 조금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나 할까?

아니, 절대 아닐 것이다. 그놈은 아마 뉴스에서 투신자살을 한 그의 내용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낼 것이다. 모든 건 다 그놈 때문인데 말이다.

강태진이 자신이 죽었다는 소식에 낄낄 비웃는 모습이 환상처럼 시야에 어른거렸다.

남자는 이를 으드득으드득 갈며 주먹을 꽉 쥐었다.

“안 돼, 이 대로 죽을 순 없어. 이게 다 그놈 때문인데, 나만 억울하게 죽을 순 없다고!!”

남자는 무언가 결심한 듯 갑자기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어느 한 곳을 발견하고 시선을 멈췄다. 저 가게에 가면 남자가 원하고 있는 것을 팔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의 눈동자가 반쯤 초점이 풀려 있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가게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그는, 잘못 된 길을 걷기 시작했다.

**

수상한 검은 승용차 한 대가 누군가의 집 대문 앞에 주차됐다.

딱 보기에도 으리으리한 집 대문 앞에 멈춘 그 차는 시동이 꺼졌음에도 불구하고 운전석에서 아무도 내리지 않았다. 차 안, 운전석에 타고 있던 남자는 집 대문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누군가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눈치였다. 하지만 남자가 나오길 기대하는 이는 쉽게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아니면 아예 아직 들어오질 않았을지도 모른다.

남자가 집 앞에서 차를 대고 멈춰 기다리기 시작한지 3시간 째.

무더운 여름날에 에어컨도 켜지 않고 기다려야 했기에 남자의 온 몸은 땀범벅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집 대문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의 시선은 여전히 흉흉했다.

바드득 바드득 이를 갈며 남자가 중얼거렸다.

“어서 와라....어서 오란 말이야....”

남자는 한 손을 자신의 바지 주머니에 넣어 놓은 상황이었다. 주머니 속 물건을 만지작거리며 남자가 초조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그때였다.

하늘이 그를 돕기라도 한 것인지 소망이 이뤄졌다.

맞은편에서 차 한 대가 그가 서 있는 집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남자는 재빨리 보조석에 두었던 사진들을 살폈다. 덜덜 떨리는 손 때문에 남자는 간신히 사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진 속 외제차의 외형과 번호표가 다가오고 있는 외제차의 외형과 번호표 모두 일치했다. 그가 기다리고 기다렸던 이의 차가 맞는 것이다.

긴장으로 인해 입이 바짝 마르고, 손은 여전히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가 신경질을 부리듯 사진을 차 뒤쪽으로 던져버렸다.

남자는 일단 모자를 써서 얼굴을 가렸다.

지금이라도 그만 둘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돌아다녔지만, 그렇게 하는 대신 바짝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고 문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한편 세연은 대문 앞에 주차되어 있는 차 앞에 시동을 끄고 내렸다. 그녀가 이렇게 대충 대놓고 들어가면 나중에 다른 이가 그녀의 차를 차고에 주차를 해주기 때문이었다.

트렁크에 한가득 담겨 있는 짐도 굳이 챙길 필요 없었기에 가볍게 핸드백을 챙겨들고 그녀가 차에서 나왔다.

그리고 대문으로 들어가려는데, 갑자기 뒤에서 그녀에게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저, 저기요. 혹시 여기가 강이사님 댁 맞습니까?”

강이사?

세연이 자신의 남편을 지칭하는 말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누구세..읍!”

고개를 돌린 그녀의 입이 강제적으로 무언가에 막혔다.

순간적이었지만 위험한 일을 당한 것임을 눈치 챈 세연이 비명을 지르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입을 막은 것에 약이 묻어 있었는지 그녀의 정신이 빠르게 아득해지기 시작했다. 세연이 몸을 발버둥 치며 남자의 손아귀에서 도망치려 했다.

남자는 생각보다 오랫동안 세연이 정신을 잃지 않자 다급하게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칼을 꺼내들었다.

“소, 소리 지르면 찌, 찌를 거야! 조, 조용히 해!!”

칼을 본 세연은 버둥거리던 것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을 직접 당하는 건 처음이었기에 당황스러워 제대로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더욱이 입을 막은 손수건에 약품이 묻어 있어 그녀의 정신을 계속해서 어디론가 끌고 가고 있는 중이 아닌가.

그녀는 이게 납치라는 것을 깨달으며 정신을 까무룩 잃고, 축 늘어졌다.

오래 전, 그태상이 납치를 당해 집안에 난리가 났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자신도 지금 그때와 똑같은 납치를 당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세연은 저도 모르게 속으로 한 사람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다.

‘태상아....!!!’

**

쨍그랑!

“괜찮아?!”

갑자기 들리는 유리 깨지는 소리에 놀라 주방으로 달려간 송이는 태상이 깨진 물 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걸 보고 놀라 물었다.

다행이 다친 곳은 없어보였기에 송이는 서둘러 고무장갑을 끼고 유리를 치우기 시작했다. 움직임 없이 그걸 보던 태상은 그녀의 어깨를 잡아 말렸다.

“내가 할게.”

“고무장갑 꼈으니까 내가 하는 게 나아. 근데 갑자기 왜 그런 거야? 손이 미끄러졌어?”

“....응.”

태상이 잠시 뜸을 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

그때였다. 갑자기 태상의 핸드폰 벨이 울렸다. 송이는 어서 받아보라며 말하고 유리를 치우기 시작했다. 태상은 웬만하면 받지 않으려 했지만, 강회장인 것을 확인했던 터라 자리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응, 무슨 일이야?”

[뉴스보고 놀랄 것 같아서 미리 전화했다. 머리카락 하나도 다치지 않게 데리고 올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전화 한 거다.]

태상은 알 수 없는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태상은 한 손에 전화기를 들고, 리모컨을 찾아 TV를 틀었다. 뉴스를 보고 놀랄 것 같아 전화를 했다고 했으니 그가 궁금해 하는 것을 그곳에서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마침 태상이 TV를 틀자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소파에서 웅크리고 자고 있던 야호가 TV소리가 거슬려 눈을 떴다가 그가 심각한 표정으로 TV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야호는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덩치를 키우고 있었는데, 집에 온지 삼 일만에 주머니에 들어가던 녀석이 팔뚝만큼 자라 있었다.

송이는 왜 이렇게 빨리 크냐며 우울해했지만 태상은 녀석이 점점 말귀를 알아듣는 걸 보며 흡족하게 미소를 지었었다.

아무튼, 태상이 튼 뉴스에서는 정말 그가 놀랄 만한 일을 연신 보도하고 있었다. 강회장은 통화음 너머로 TV소리가 나자 말했다.

[놈이 원하는 건 돈이 아니었다. 이 사건을 최대한 널리 퍼트리는 거였지. 우리에게 연락하기 전에 언론에 흘린 모양이다. 이미 인터넷에 도배가 된 터라 막을 수도 없었다. 일단 다른 사건으로 최대한 덮을 생각이다.]

“.....”

태상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지금 그 말은, 뉴스에서 나오는 저게 다 사실이라는 거야? 엄마가 납치당했다는 저 개소리가??”

[...그래, 맞다.]

강회장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뉴스에서는 동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그 영상은 태상의 엄마, 세연이 의자에 꽁꽁 묶여서 정신을 잃고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이었다.

뉴스에서 영상을 다 보여주지 않고 영상에 나와 있는 여자의 얼굴과 세연의 평소 모습의 사진을 비교하며 둘이 동일 인물이 맞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다.

태상은 영상이 저것으로 끝인지 궁금했기에 물었다.

“저게 끝이야? 뭘 원하는지, 왜 엄마를 납치 했는지 아무것도 몰라?!”

태상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송이가 유리를 다 치우고 나와 그를 바라봤다. 태상이 너무 심각해보였기에 무슨 일인지 차마 물을 수 없었다. 결국 송이는 태상을 위해 자리를 비켜줄 수밖에 없었다.

[신경 쓰지 말라고 전화했는데, 도리어 신경 쓰게 만들었구나. 무사히 구출 할 거다. 그때처럼 말이다. 그러니 믿고 기다려라.]

‘그때처럼’이 가리키는 건 태상이 어릴 적 겪었던 납치를 말하는 것이었다.

태상은 그때 느꼈던 공포와 두려움을 세연이 고스란히 겪을 것을 생각하니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그는 강회장에게 그런 자신의 상태를 숨기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았어. 그래도 일단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지는 알아야 겠으니까 모든 정보, 나한테도 넘겨. 아무것도 모르고 바보같이 앉아서 기다리고만 있으라는 말, 내가 들을 것 같아 보여?”

그거라도 해주지 않으면 절대 따르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강회장은 알겠다며 태상에게 정보를 모두 넘겨주기로 약속했다.

강회장에게 가만히 있겠다 약속하긴 했지만 그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경찰이 그녀를 무사히 찾는 것보다, 자신이 혼자서 움직여서 그녀를 찾는 게 더 안전하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강회장은 이놈이 단순히 돈을 원해서 시작한 납치가 아니라고 얘기했다.

돈을 원했다면 언론에 알리는 게 아니라 은밀하게 그들에게 접촉을 해야 하는 게 맞았다. 어릴 적 태상을 무사히 구해낼 수 있었던 것은 범인이 단순하게 돈을 목적으로 했기 때문이었다.

근데, 지금은 그게 아니지 않은가.

범인의 목적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내는 게 가장 시급했다.

그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야 딜을 하고, 그 사이 그녀가 있을 곳을 찾아낼 것 아니겠는가.

곧 강회장이 지시를 내렸는지, 그의 이메일로 정보가 든 파일이 오기 시작했다.

집 앞 CCTV에서 모자를 눌러 쓴 남자가 3~4시간 정도가량 주차를 하고 기다리고 있다가 도착한 세연을 납치하는 모습이 찍힌 영상이 있었다.

그리고 뉴스에서 나왔던 동영상의 풀버젼도 있었고 말이다.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 2박 3일 무사히 여행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선작이 많이 늘어서 기분이 좋네요.

후원쿠폰 주신분들, 귀찮으실 텐데도 추천 눌러주시는 분들, 선작으로 제 작품 읽어주시는 분들 모두모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재밌게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오타지적 정말 감사합니다. 미처 발견 못했는데, 감사합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온 터라, 이것밖에 없네요.

오후에 연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65편에 키헤르츠님이 궁금한 점 적어주셨는데...답변 못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예약해놓고 간 거라서 ㅎㅎ; 음... 정말 그렇게 해서 전쟁을 끝낼 수 있을 수도 있겠네요!? 의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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