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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66화 (66/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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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송이의 기분은 싱숭생숭했다.

하루는 참았다.

엄청 바쁜가보네...하는 생각에 안쓰럽기까지 했다.

이틀째엔 솔직히 전화 할까 말까 엄청 고민하다가 아침에 한통, 점심에 한통, 저녁에 한통을 걸어봤다. 하지만 그는 뭐가 그리도 바쁜지 모두 다 받지 않았다.

셋째 날이 되자 송이는 더 이상 안쓰러움이 아닌, 화가 나기 시작했다.

아무리 바쁘다고 해도 그렇게 연락을 했는데, 문자 하나를 못 넣어 준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이건 바쁨의 문제가 아니라 송이의 마음을 무시하는 그의 태도가 문제가 있는 것이었다.

하루 종일 전화기를 붙잡고서 핸드폰만 바라봤다.

전화는 이미 50통을 넘어 60통에 다다르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리고 넷째 날이 되자 그녀가 아는 한에서 명진과 아는 주변인들에게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혹시 그와 연락이 되는지, 아는 건 없는지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명진과 연락을 한지 꽤 오래 전이라고만 답했다.

때문에 넷째 날 새벽이 되자 송이는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잠은 잘 수가 없었다.

언제 화가 났는지 알 수 없게 그녀는 무척 초조 했다. 전화는 여전히 불통이었기에 송이의 가슴이 타들어갔다.

어떻게 해야 할지 쉽게 결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5일 후면 돌아온다고 했지만 지금이라도 경찰서에 실종신고를 내봐야하는 거 아닐까?

아니야...그래도 5일까지만 기다려 보는 게 좋아. 내가 괜히 설레발치는 거면....그런데 5일 동안 연락 한 번 안 되는 일이 정상인 일인가? 하는 등의 별의별 생각들이 그녀를 괴롭혔다.

때문에 그녀의 기분은 최저를 달리고 있었다.

그녀는 집 소파에서 앉았다 일어났다, 현관문을 열어봤다 닫았다 별의 별 짓을 다 하고 있었다. 만약 오늘까지 연락이 닿지 않는다면 송이는 곧장 경찰서에 신고를 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그런 생각은 저녁이 다 되서야 겨우 멈출 수 있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집을 막 나서려 했던 송이는 띵동 하고 울리는 벨소리에 후다닥 현관 앞으로 달려가 문을 열었다.

“명진아!!!”

송이가 문 앞에 서 있는 태상을 보자마다 그를 끌어안았다. 태상은 격렬한 송이의 인사에 어이쿠! 하고 놀랐다가 피식 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그렇게 내가 보고 싶었어? 점점 반기는 게 격해진다 너?”

송이는 너무 멀쩡한 태상의 모습을 확인하자 괜스레 억울해져 그의 품에서 쏙 빠져나왔다. 태상은 그녀를 놓아주고 싶지 않아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은 후 자신의 품으로 당겼다. 그로인해 그녀가 다시 원상복귀 되어 태상의 품에 안기고 말았다

“꺅!”

“서방님 무지하게 피곤하시다.”

“도대체 5일 동안 뭐하다 온 거야? 손가락 열 개 다 멀쩡해놓고 전화 한 통화를 못해줘?”

“많이 기다렸나보네.”

“그럼 당연하지! 얘가 하루 이틀도 아니고 5일 이나 연락두절인데, 걱정 안하게 생겼어? 진짜 너 너무해!”

다치지 않은 게 다행이긴 했지만 그로인해 더 서운해졌다. 연락 한 번만 해줬어도 이렇게까지 걱정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실종신고 할 뻔 했단 말이야!”

송이의 투정이 듣기 싫었던 태상은 그녀의 몸을 으스러지듯 껴안았다.

그녀는 모르겠으나 그는 5일 동안 수없이 많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왔다. 정말 그녀를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뻔 했던 순간들이었다. 만약 자신이 그것들을 견디지 못했다면, 송이는 정말 실종신고를 냈어야 했을 것이다.

그가 다시 돌아오지 못했을 테니까.

송이에겐 그가 전부라는 것을 태상도 잘 알았다.

그런 그녀에게서 그가 사라지게 된다면 송이는 과연 어떻게 될까? 고작 5일 연락 없었다고 이렇게 난리를 피우는 게 영 마음에 걸렸다. 가뜩이나 작은 송이의 얼굴이 반쪽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5일 동안 연락두절이면 누구나 걱정을 하긴 하지만, 태상의 가족은 연락이 안 닿으면 그의 비서에게 연락을 해서 스케줄을 확인하면 되었기에 굳이 연락이 안 된다 해도 걱정하지 않았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태상의 가족은 연락을 그리 자주 하는 사이가 아니었다. 각자 너무 바쁜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그의 엄마인 세연도 가끔은 한 달 가까이 연락이 안 될 때도 있었다.

한 달 동안 파티를 하는 크루즈 여행을 갔다는 것을 비서가 나중에 알려주어 알았던 태상이다.

그런 곳에서 자란 태상은 고작 5일 연락이 되지 않았다고 호들갑을 떠는 송이가 얼떨떨했다.

“넌 나 없어지면 어떻게 살라고 고작 5일 없었던 것 같고 이러냐?”

“네가 왜 없어져. 나랑 약속했잖아. 평생 나랑 같이 있을 거라고.”

“..그래도 만약이라는 게 있잖아. 내가 불의의 사고로 죽을 수도 있고.”

송이가 태상의 말에 기겁했다.

“그런 만약이라는 게 어디 있니?! 생각하기도 싫어.”

송이가 너무 질색을 하자 태상이 한숨을 쉬었다. 역시나 송이는 자신이 없어지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아예 안 해본 것 같았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생각을 안 하려 하고 있는 게 맞았다.

끼잉..낑낑!

“응? 이게 무슨 소리지?”

그때, 갑자기 둘 사이를 끼어드는 소리에 송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송이와의 격한 해우에 주머니에서 곤히 잠들어 있던 것이 깨어나고 만 것이다. 태상은 그 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잘 알았기에 주머니에서 그것을 꺼내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워낙 작은지라 주머니에서 쏙 들어가는 크기의 야호였다. 천계에서는 날개가 보여 어떡하나 난감했는데, 이곳에 오니 날개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렇기에 태상은 송이에게 아무런 문제없이 보여 줄 수가 있었다.

당연하게도 송이는 야호를 보자마자 비명을 질렀다.

“꺄악! 세상에~ 이게 뭐야? 귀여워라~!!!”

송이는 낑낑대는 야호를 태상에게서 받아 들고 이리저리 살피며 야호의 귀여움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어디서 났어?”

“일하러 갔다가 거기에서 주웠어. 어미를 잃은 것 같아서 데려왔지.”

“어쩜...불쌍해라...”

송이는 낑낑 대는 야호가 불쌍한지 녀석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어주었다.

“배고픈가봐. 아기 강아지는 뭘 먹여야 하지....생우유는 먹이면 안 될 텐데...”

입을 쩝쩝대며 낑낑대는 녀석을 보며 송이가 재빠르게 캐치하고 중얼거렸다. 태상은 호랑이를 강아지로 착각한 송이 때문에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려야 했다. 송이는 왜 갑자기 태상이 웃는지 몰라 왜 그러냐며 그를 바라봤다.

“들어가자. 할 말이 많네.”

아직도 현관에서 서 있는 둘이었기에 태상이 그렇게 말했다. 송이도 야호에게 줄 수 있는 게 뭔지 인터넷이라도 찾아 볼 요량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

한편, 회사 로비가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힐끗힐끗 그곳을 바라보다가 이내 소란의 진원지가 강태진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아 뜨거워라 하고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에게 걸리면 잘 다니던 회사에서 싹뚝 잘릴 지도 몰랐다. 강이사가 끼인 문제는 그냥 모르는 척 지나가는 게 상책이라는 게 회사의 불문율이었다.

“강이사님!!! 강이사님!!!! 제발 저희 회사 좀 살려주십시오!

강이사, 강태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자신의 다리에 매달린 남자를 빤히 바라봤다.

“뭡니까?”

미처 그를 막지 못한 경비가 안절부절 못하며 그것을 바라봤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던 것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그를 떼어내야 하는지, 아니면 얘기를 나누는 걸 지켜봐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 그는 오늘 처음 들어 온 신입이었기 때문이다. 신입을 케어하기 위해 옆에 있었던 선배 경비는 화장실에 가기 위해 자리를 비운 참이었고, 다른 경비들은 점심을 먹기 위해 자리에 없었다.

하필이면 지금 이 순간 문제가 터지다니, 운이 나빴다.

“강이사님! 저 모르시겠습니까? 제발 조금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조금만 손 내밀어주시면 저희 회사 살릴 수 있습니다!!”

애타게 매달리는 남자를 빤히 바라보던 강태진이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경비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의 매섭고 차가운 눈초리에 경비가 찔끔했는지 그제야 서둘러 움직여 남자를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자네, 혼자인가?”

태진이 경비에게 물었다. 그는 혹여 책망을 받을까 싶어 서둘러 말했다.

“아, 아니오! 잠시 화장실을 가느라 자리를 비운 것뿐입니다. 곧 오실 겁니다.”

“젊어 보이는 청년인데, 그래가지고 어디 사람을 끌어내겠나?”

태진이 못마땅한 듯 혀를 쯧쯧 찼다. 여전히 행패를 부리는 이를 떼어놓지 못하고 쩔쩔 매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비원의 등줄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어떻게 취업한 곳인데, 이대로 회사 높은 분한테 밉보여 해고되긴 싫었다.

경비가 죽어라 힘을 주고 버티고 있는 남자의 옆구리를 발로 차기 시작했다.

퍽! 퍽!

“억!! 으억!!!악!”

남자가 경비원의 폭행에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었다. 덕분에 태진의 다리를 부여잡고 있던 남자의 손에서 풀려난 그는 주름진 양복바지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옆에 서 있는 비서를 향해 말했다.

“지금 당장 10분 안에.”

“예.”

비서가 무엇을 시켰는지 정확히 말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망설이지 않고 움직였다. 그가 옷을 새로 사오라는 것을 모를 수가 없었던 것이다.

태진은 여전히 경비한테 구타를 당하고 있는 것을 보며 만족스럽게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이걸 또 가만히 보고만 있으면 후에 문제가 생길 수 있었기에 잔뜩 흥분해 있는 경비원을 제지시켰다.

“그만, 그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사람을 그리 때리면 쓰나! 적당히 하셔야지.”

태진이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수표를 두둑하게 꺼내들었다. 못해도 천은 넘어 보이는 숫자였다. 남자가 배를 부여잡고 끙끙거리고 있자 태진이 그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남자의 얼굴 쪽에 돈을 툭! 하고 떨어트리며 말했다.

“문제없이 잘 치료해드리고 보내시게. 보아하니 신입인 것 같은데, 앞으로 계속 일하려면 그래야 할 거네.”

태진의 경고를 알아들은 경비가 고개를 끄덕이며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예! 알겠습니다!”

만약 경비의 행동이 잘못되었다 생각했다면 경비원을 잘랐을 것이다. 하지만 태진은 자르는 대신 일을 잘 처리하고 돌려보내라고만 했다. 그건 그의 행동이 태진의 마음에 들었다는 뜻이었다.

태진은 제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놈들한테는 저런 매운 맛을 보여줘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태진이 뚜벅뚜벅 걸어가며 로비를 나갔다. 남자는 한 손으론 아픈 배를 부여잡으면서도 다른 한 손으로는 그가 사라지는 곳을 향해 손을 뻗었다.

만약 태진이 조금의 도움만 준다면, 아니 조금만 자비를 베푼다면 회사가 부도나는 것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자비를 베풀어 준다고 이런 거대 기업을 운영하는 태진이 손해를 보는 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애탄 청을 고려해볼 생각도 하지 않으며 무시했다.

그게 분하고 억울했던 남자는 피눈물을 흘리는 심정으로 뚝뚝 눈물을 흘렸다.

이제 모든 게 끝이다. 회사는 망할 것이고, 그는 빚더미에 앉는 거다. 태진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는 남자의 시선에 증오가 서리기 시작했다.

그가 이렇게 된 것이 모두 강태진 때문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의 원망이 태진을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경비가 수습을 위해 그의 몸을 일으키면서도 남자의 시선은 여전히 그의 뒤를 따랐다.

============================ 작품 후기 ============================

강태풍-강태진-강태상

3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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