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자-44화 (44/251)

00044  악마 메디노  =========================================================================

하지만 당연하게도 사로나는 그녀가 자신을 힐끗힐끗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 있었다. 덕분에 사로나의 표정이 불편해질 수밖에 없었다.

“미안한데, 나중에 보자. 지금 일이 좀 바빠서.”

“아...그래요?”

이곳 일을 끝냈으니 이제 태상은 접속을 끊고 다른 일을 하러 가야 했다.

현실이며 이곳이며 바쁘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근데 이분은 누구세요?”

태상이 이대로 휙 가버릴 것 같아 보이자 레베카가 다급하게 물었다. 그녀에 대해 물은 건 거진 순전히 그를 조금이라도 더 이곳에 붙잡아 두고 싶어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태상이 사로나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이쪽은 사로나. 내 길드원이야.”

“네?! 길드원이요? 설마 길드 드신 거에요?”

레베카가 놀라 눈이 토끼눈이 됐다.

“아니, 내가 길드를 만들었어. 사로나는 내 첫 번째 길드원이고.”

“길드를....만들어요?”

레베카가 당황스러워했다. 그가 길드에 영 생각이 없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길드를 만들어버리기까지 할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그가 왜 굳이 쉬운 길을 두고 어려운 길을 택하는 건지 몰라 안타깝기까지 했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사로나, 그녀가 부럽기도 했다. 그의 길드에 들면 계속 태상과 함께 있을 수 있지 않겠는가. 태상이 길드에 들어오면 길드에 적응할 때까지 많은 도움을 주려고 했었던 레베카로서는 여러모로 아쉬운 결정일 수밖에 없었다.

“왜요? 길드에 드는 것도 정말 나쁘지 않은데....”

서운한 마음이 표출이 된 것인지 레베카의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태상에겐 레베카는 여동생과 같은 느낌을 주지 여자가 아니었기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굳이 같은 길드가 아니라고 해서 못 만나는 건 아니잖아. 나중에 도움 필요하면 도와줄 거지?”

그녀가 서운해 하는 것이 기분 나쁘지 않았기에 태상이 그렇게 말하자 레베카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물론이에요! 도움이 필요하면 꼭! 꼭! 저한테 말씀하세요. 제가 다 도와드릴게요.”

레베카가 초롱초롱하게 태상을 바라봤다. 사로나가 태상에게 눈짓을 했다. 이만 돌아가자는 거였다. 태상이 고개를 끄덕이고 레베카에게 말했다.

“그럼 이만 가볼게.”

“네!”

여전히 태상이 간다는 게 아쉽긴 했지만 바쁜 사람을 계속 붙잡고 있는 무례를 저지를 수 없었기에 선뜻 그녀가 알겠다며 답을 했다. 레베카는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해주었다. 그리고 태상에겐 단번에 이곳으로 올 수 있는 종이를 무더기로 건네주었다.

“어디서든 이곳으로 올 수 있는 텔레포트 스크롤이에요.”

“뭘 이만큼이나 줘. 하나만 주면 되는데.”

“아니에요! 넉넉하게 드릴 게요. 나중에 또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안에 엄청 많아요.”

텔레포트 스크롤을 만드는 건 엄연히 길드자금이었다. 그러니 이렇게 헤프게 쓰면 반에게 혼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태상에게 넋을 놓은 레베카는 혼 날 걸 생각도 못하고 그에게 헤헤 웃기만 했다.

이를 자세히 모르는 태상은 그러냐며 대수롭지 않게 종이, 텔레포트 스크롤을 품에 넣어두었다. 너무 과하게 많은 것 같아 보이긴 하지만 없는 것 보단 낫겠지 생각하며 말이다.

“저 여자아이, 널 좋아하는 것 같은데, 네가 유부남인 거 알고 있니?”

“아니, 모를 걸? 신경 쓰지 마. 저러다 말겠지.”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레베카가 태상을 바라보는 눈빛이 심상치가 않았다. 하지만 태상은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다. 사로나는 저러다가 나중에 사단이 날 것 같단 생각을 하면서도 대충 넘기라는 그의 말 때문에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쉬어라. 난 그 여자한테 좀 가봐야 할 것 같아.”

반의 길드 건물에서 좀 떨어지자 태상이 사로나에게 헤어지자고 말해왔다. 태상이 말한 ‘여자’가 악마 계약자들에게 심하게 당했던 여자를 말하는 것이었기에 사로나가 말했다.

“나도 같이 갈까?”

“밤에 그렇게 왔다 갔다 해도 되겠어? 아이라는 어떡하려고.”

“아.”

아이라라는 말에 사로나가 멈칫했다. 확실히 아침에 깨어나서 자신이 없으면 아이라가 놀랄 게 분명했다. 쪽지를 놓고 온다 해도 자신 스스로가 마음에 놓이지 않으니 그렇게 하기가 꺼려졌다.

“넌 날 밝으면 와. 아니면 그냥 아이라랑 관광이나 더 해도 괜찮고. 그 여자는 내가 알아서 처리 할 테니까.”

그러고 보면 아이라를 데리고 병원에 가기도 뭐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계속 병원을 들락날락거려야 했던 아이라가 여행을 와서까지도 병원에 데려가면 분명 질색을 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태상이 조취를 제대로 해놓지 않은 것도 아니고, 믿을만한 의사에게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해놨으니 그녀까지 신경을 쓸 필요는 없었다.

긴 밤이 될 거란 생각은 했지만 하루에 무척 많은 일들을 겪은 태상이었다.

접속을 끊자 새벽 동이 트고 있었다.

태상은 호텔에서 몸을 씻고, 아침 식사를 대충 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그녀가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을 해야 이곳 일이 완전히 마무리 됐다고 생각이 들 것 같았다.

그가 호텔에서 준비하고 음식을 먹는 사이 해는 완전히 뜨고 출근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젯밤 부재중 통화가 와 있었기에 그는 이 시간쯤엔 일어나 있을 게 분명할 강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야.”

[그래. 얘기 들었다. 어떤 여자를 치료해달라고 부탁을 받았다고 하던데 괜찮은 게냐?]

“응, 덕분에 일 다 잘 끝났어. 고마워 할아버지. 한 번 찾아 갈게.”

[그래, 그래야지.]

“아, 그리고 이명진 그 녀석, 가만히 내버려뒀지?”

이명진만 생각하면 이가 갈리는지라 태상이 물었다. 강회장이 마침 얘기하려고 했던 지라 얘기를 꺼냈다.

[네 말대로 회사 일 시키게 했다. 언제쯤 네 자리로 다시 돌아 올 거냐.]

“돌아가라고? 어디를?”

태상은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물었다. 하지만 강회장은 이미 그에게 말했다시피 그를 후계자로 만들 생각이었다. 태상이 어떤 몸에 들어가 있든 상관없었다. 그는 자신의 평생을 받쳐 일군 회사를 자신의 뜻을 받아 운영해줄 ‘태상’이 필요한 거였다.

강회장은 태상이 다시 후계자 자리에 돌아오길 바랐다. 태상을 자신의 후계자로 낙점지은 만큼 강회장은 그에 대해서 아주 잘 알았다. 그의 약점이 무엇인지도 말이다.

[네 엄마가 요즘 다르다.]

“...엄마가 왜?”

갑자기 나온 엄마라는 단어에 태상이 움찔했다.

[어멈이 그 놈한테서 이상함을 느낀 모양이야. 예전같이 대하질 않아. 어미니까 느끼겠지. 제 새끼가 아니라는 걸. 그게 어디 머리로 하는 거냐. 마음으로 하는 거지.]

“.....”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뜻밖의 말이었다.

그라면 껌뻑 죽는 걸 빤히 알기에 그녀가 눈치를 채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태상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녀가 태상을 사랑해주는 만큼 태상도 엄마라면 끔찍이 아꼈다.

[네가 예전 같지 않다며 내 아들이 아닌 것 같다고 울더구나.]

강회장이 그런 태상의 약점을 건드려 온 것이다.

“젠장, 흉내 좀 잘 낼 것이지! 어떻게 했기에 울기까지 해? 그 둔탱이가 눈치 챌 정도면....”

태상이 예상대로 반응하자 강회장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네가 어서 돌아와야지. 자리를 되찾아야하지 않겠느냐.]

“내 몸뚱이가 이명진인데 어떻게 되찾아. 설마 엄마한테 내가 진짜 강태상이다 뭐다 그런 말 하라는 거야? 엄마가 그걸 믿을 것 같아?”

[믿고 안 믿고는 어멈이 할 일이다. 넌 네 엄마를 다 안다고 생각하겠지만 난 아닐 거라고 본다. 나도 핏줄인 널 단 번에 알아봤는데, 설마 어멈이 널 몰라보겠냐.]

“.....”

어쩌면 이명진한테 완전히 복수하고 싶다면 강회장의 말처럼 가족까지 모조리 다 되찾아 오는 게 더 완벽한 복수가 될지도 모른다. 태상도 평생 가족들을 보지 않고 살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강회장이 아닌 엄마와 아빠에게 자신의 상황을 이해시킬 수 있을까 고민이 들었다.

[널 양자로 입양할 거다. 그러니 그렇게 알고 있어라.]

강회장은 태상에게 통보하듯 말했다. 태상은 일단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이명진이 저지른 일들이 계속해서 사방에서 튀어나와 그를 옥죄고 있었다. 그는 내일 당장부터라도 이명진에 대해 조사를 시작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명진은 탐욕이 많고,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놈이었다. 사람의 감정을 갖고 노는 데에 아주 익숙하고 말이다. 그런 자가 어째서 엄마의 마음은 얻지 못했는지 의아함이 들긴 했지만 말이다.

어찌됐든 그런 놈이라면 이대로 계속 가족의 곁에 두는 건 오히려 그들을 위해 안 좋은 일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엄마를 울렸다 이거지....”

S등급 미션 때문에 잠시 미뤄두었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천사들이 메디노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 와야 하는 시간과 반이 사람을 구하는 시간 총 일주일 정도가 비었으니 그 시간동안 이명진에 대한 것을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상의 눈이 매섭게 반짝였다.

**

여자는 중환자실에서 잠들어 있었다. 수술 후유증으로 깨어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거란 의사의 소견을 들어야 했다. 길면 삼일, 짧으면 하루나 이틀 후에 깨어난다고 했다.

태상은 여자가 깨어나면 연락을 달라고 부탁을 해놓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태상은 오랜만에 송이의 품에 안겨 숨을 크게 들이 쉬었다. 오랜만이라고 해도 고작 하루 만인지라 이렇게 과하게 오자마자 자신을 끌어안고 코를 킁킁대는 태상의 행동에 송이가 질색을 했다.

“뭐하는 거야?”

“어허. 좀 가만히 있어봐. 지금 휴식하고 있잖아.”

태상이 발버둥치는 송이의 몸을 꽉 끌어안았다. 송이가 눈을 깜빡였다.

“많이 피곤해? 밤 샜어?”

얼굴 좀 보자며 그의 얼굴을 두 손으로 덥석 쥔 송이가 세심하게 그의 얼굴을 살폈다.

“좀 야위었는데?”

태상이 피식 웃으며 그녀의 어깨에 턱을 올리고 몸을 기댔다.

“그러니까 배터리 충전 좀 하자고. 가만히 있어 충전기.”

“내가 무슨 충전기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한다며 투덜거리긴 했지만 송이는 움직이지 않고 그의 몸 무게를 견뎠다.

그때, 둘 사이를 방해하며 핸드폰이 울렸다. 태상이 끄응...소리를 내며 그녀의 품에 떨어져 보자 사로나에게서 온 전화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휴식시간을 방해 받았던 지라 그의 입에서 고운 소리가 튀어나오지 않았다. 굉장히 퉁명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무슨 일이야?]

[오빠! 나야 아이라~!]

사로나라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아니라 아이라이자 태상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아이라구나.]

[언니가 오늘은 안 온다고 하던데, 정말이야? 난 오늘도 오빠랑 같이 놀고 싶은데.]

태상은 아이라와 통화에 집중하느라 송이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녀가 아는 한 그는 프랑스어를 배운 적이 없었다. 그런데, 태상이 한 번도 배우지 않은 불어를 하고 있자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태상은 송이가 경악하고 있는 것도 모르고, 능숙하고 익숙하게 불어로 통화를 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