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3 악마 메디노 =========================================================================
“생각보다 내가 엄청 많이 보고 싶었나보네.”
“핫!”
정신이 든 레베카가 황급히 그의 품 안에서 빠져나왔다. 그녀의 얼굴이 부끄러움에 빨갛게 달아올랐다.
“죄, 죄, 죄송해요!!! 반 아저씨 불러올게요오~!!!”
레베카가 그렇게 외치며 다다닥 계단 위로 올라가 사라졌다. 딱 봐도 부끄러워 도망가는 모양새인지라 주변에 있던 이들이 낄낄거리며 웃음 터트렸다.
“어이, 너 저번에 C등급 미션에서 공헌도 1위 했던 그놈 맞지?”
태상이 C등급 미션을 할 때 만난 적이 있는 듯 태상에게도 얼굴이 낯익은 이가 그렇게 물어왔다. 태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다고 대답하자 이야~~하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완전 초보였는데, 며칠 지났다고 옆에 예쁜 여자까지 끼고 다닌데? 인드고의 눈물 판 거냐?”
언제 봤다고 친한 척인지 모르겠으나 굳이 대답할 이유가 없었기에 태상은 어깨를 으쓱하고 답을 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다다닥 달려가 서둘러 반을 불러 온 레베카 덕분에 남자가 따질 타이밍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애송이 왔냐?”
반이 계단을 내려오는데, 그의 뒤에 숨어 레베카가 힐끔힐끔 태상을 쳐다봤다. 태상과 반이 서로 악수를 하며 웃으며 인사를 했다.
“오랜만.”
“용케 아직까지 안 죽었구나. 그래, 딱 보니 길드 가입하겠다고 온 것 같아 보이진 않고, 나한테 할 말 있는 거냐?”
태상이 씨익 웃으며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레베카의 얼굴이 굉장히 시무룩해졌다. 반은 일단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이곳에서 나누기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일단 자리를 옮길까?”
“좋지.”
레베카가 따라오고 싶어 하는 눈치를 보였지만 반이 그녀에게 고개를 저어 말렸다. 반은 계단을 타고 올라가 그들을 조용한 방으로 안내했다.
테이블에 앉자 일단 태상이 사로나와 반을 서로 소개시켜 주었다.
“이쪽은 사로나고, 이쪽은 반.”
“예쁜 아가씨로군. 이거냐?”
반이 새끼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사로나는 이곳에 들어서고 나서부터 입을 꽉 다물어버린 상태였다. 아무래도 예전 길드에 있었던 그때가 생각이 나는 듯 했다. 덕분에 아니라고 해명 해야 하는 건 태상의 몫이었다. 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나랑 같이 미션 하나만 하자.”
“미션? 무슨 미션인데? 네가 몰라서 그렇지 우리 몸값이 제법 된다. 허접한 미션엔 잘 움직이지 않다고.”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그의 목소리에 장난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그가 하는 말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쯤은 쉽게 알 수 있었다. 태상은 특유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S등급 미션도 발로 뻥 찰 정도로 몸값이 높은 줄은 몰랐네.”
“......뭐?”
태상이 S등급이라고 한 말을 반이 단 번에 이해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말이 안 되는 등급 난이도가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방금 S등급이라고 했냐?”
“응. S등급이야. 미션은 A등급 악마 죽이기. 간단해.”
‘그게 뭐가 간단한 거냐!!!’
반이 황당한 눈빛을 보냈지만 태상은 자신이 얼마나 황당한 말을 했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반이 잠시 깊게 고민을 하다가 꿀꺽 침을 한 번 삼키더니 눈빛이 달라지며 태상에게 말했다.
“네가 저번에 공헌도 1위 한 걸로 말들 많았는데 너 믿어 줬던 거 기억하지?”
“기억하지. 근데 그건 왜?”
“임마, 그니까 내 말은 우리한테 우선권을 좀 달라 이거지. 원래 세상사는 게 학연지연 그런 거 아니냐?”
반은 당연히 A등급 악마를 죽이는 데에 많은 이들이 참가 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미션이 왜 S등급 미션이겠는가. 참가 할 수 있는 총 인원은 20명뿐이 안 되고, 직접 악마가 있는 마계 쪽으로 가야 했기에 위험성이 무척 높았다.
이를 모르니 반은 이 기회에 보상 두둑하게 챙겨 갈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태상은 씨익 웃으며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길드 안 데려갈 거야. A~B등급 악마 죽이고 다닌다고 들었는데, 잡을 수 있지?”
“물론이지!!”
반이 자신의 가슴을 탕탕 치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는 어서 빨리 목걸이를 내어 놓으라며 태상을 재촉하기까지 했다. 태상은 미션에 대해 좀 더 알려주려 했지만 혹여 다른 이에게 빼앗길까 싶어 반은 거의 재정신이 아닌 듯 했다. 그의 정신을 이렇게까지 만든 게 바로 S등급 미션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태상은 거진 반 강제로 반에게 목걸이를 빼앗기듯 미션을 공유해주었다.
미션 공유를 받자 정말 S등급이라는 것을 확인한 반이 활짝 미소를 지었다.
“내 생애 S등급 미션을 받을 줄이야....말로만 들어보던 것인데...! 이런 복덩이자식!!”
반이 태상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었다. 태상은 질색을 하며 반에게서 떨어져 흥분 좀 가라앉히라고 말해야 했다.
“흥분 좀 가라앉혀! 왜 이래 진짜?”
“크흠흠! 그래. 그래야지. 그래서 S등급 미션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 좀 해봐. 어떻게 A등급 악마 죽이는 게 S등급 미션으로 구분이 된 거냐? S등급 미션이면 고작 그걸로 끝날 것 같지 않은데.”
S등급이라는 말에 흥분해서 하겠다고 하긴 했지만, 그만큼 어렵다는 소리라는 것은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 그는 S등급이라 해도 해결 할 자신감이 있기에 태상에게서 미션을 공유 받은 거였다. 이곳에 있는 자라면 절대 S등급 미션을 할 기회를 놓치는 자는 없을 것이다.
A등급 악마를 죽이는 미션은 거의 대부분 B등급이나 A등급 미션으로 빠진다. 그런데 A등급 악마를 죽이는 게 어떻게 S등급이 될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태상이 드디어 그에게 진실을 알려주었다.
“이 미션이 좀 까다롭거든. A등급 악마를 죽여야 하는데, 총 인원수가 20명으로 제한되어 있어.”
태상의 말에 반이 잘 못 들었나 싶어 자신의 귀를 손가락으로 후볐다.
“뭐라고?”
“나랑 사로나 둘 빼고 남은 게 18명인데 채울 수 있겠어?”
“그러니까...잠깐....고작 20명으로 A등급 악마를 죽여야 된다는 뜻이냐?”
“거기에다 악마 놈이 숨어 있는 마계로 가야 하니 더 위험하겠지.”
“억!”
반이 뒷목을 잡고 뒤로 쓰러질 듯 휘청거렸다.
지금 그게 깨라고 있는 미션일 리가 없다. 그런데 그걸 태상이 받아와 자신에게 준 것이다. C등급 미션을 깨려고 해도 수많은 계약자의 힘이 필요하다. 그런데 100명이라 해도 기가 찰 판에 미션을 받을 수 있는 이가 스물이 되질 않는다고 하니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 A등급 악마를 죽이는 미션이 S등급이 된 게 그것 때문이었던 거냐!? 넌 도대체 이걸 깰 수 있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인 거야!?”
반이 말도 안 된다며 벌떡 일어났다.
“이 미션은 받고, 안 받고의 문제를 따져야 하는 게 아니었어. 성공하느냐, 성공하지 못하느냐. 그 두 가지만 생각해야 했거든.”
“사람이 구해지지도 않을 거다. 누가 죽으러 가는 게 빤한 일에 뛰어 들겠냐.”
반드시 해야만 하는 미션이었다는 말에 반이 복잡해졌는지 자신의 머리를 긁적였다.
“이 미션을 성공하지 못하면 아주 끔찍한 일이 일어나게 될 거야. 천계와 마계의 오랜 전쟁이 끝나게 될지도 모르지. 물론 승리하는 쪽은 악마 일 테고.”
그 정도로 중요한 미션일 줄 몰랐던 반은 지금보다도 더 신중하게 생각을 해야 했다. 태상의 말대로 이 미션은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닌 듯 했다.
그래서 태상이 그렇게 말을 한 거였음을 반은 그제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아주 복잡한 문제가 이 미션에 섞여 있는 거로군.”
“맞아.”
반이 결심한 듯 탁자를 쿵! 하고 쳤다.
“좋아. 이미 미션을 공유 받기까지 했는데, 지레 겁먹고 뒤로 물러날 순 없지. 근데 다른 놈들은 몰라도 나한테까지만은 알려줘야겠다. 이 미션에 무슨 일들이 숨겨져 있는지 말이야.”
반이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태상이 잠시 사로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사로나는 반에 대해 잘 모르기에 불안한 표정을 지었지만 태상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하자고 말해왔다. 사람 한 명을 파악하기엔 다소 짧은 시간이라고 생각할 순 있으나 신뢰하게 만들만큼의 태도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S등급 미션이 시작 된 건 지구에서 만난 악마 계약자 놈들 때문이었어.”
태상이 이야기를 시작하자 처음 반은 말도 안 된다며 믿지 못했다가 악마 계약자의 행동에 분노했고, 끝내 모든 것을 납득했다.
이 미션을 완수하지 않으면 지구가 엉망이 될 거란 소리는 반도 절대 쉬이 넘길 수 없는 애기였다. 보상을 생각하는 건 나중 얘기였다. 이게 지구의 운명을, 그리고 천계의 운명을 짊어진 미션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건 정말 반드시 성공시켜야 할 미션이구나. 나참. 현실에서도 능력을 쓸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을 줄이야...”
“비밀 지켜줄 거라고 믿어.”
“이런 어마어마한 걸 떠들고 다닐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미션이 성공하지 못하면 그 여파가 모두에게 미칠 것을 알게 되었으니 더 이상 발을 빼거나 물러날 수 없었다. 중요한 비밀을 자신에게 알려 준 태상에게 고마우면서도, 미워졌다.
“이런 걸 들었는데 발 뻗고 잘 순 없겠네. 우리 길드에서 해결 될 문제가 아니야. 내가 아는 놈들한테 수소문해서 제일 쌘 놈들로 나머지 파티원 채울 테니 나만 믿고 기다려!”
“부탁 좀 할게.”
반은 지금부터 발로 뛰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S등급 미션이 나왔다는 소문이 들리면 침을 질질 흘릴 놈들이 한 두 명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들 모두를 데려갈 순 없으니 최고 실력을 가진 이들로 추려야 한다. 그게 아마 꽤 골치 아픈 일일 것이다.
반은 자신에게 딱 일주일의 시간을 달라고 말했다.
“일주일만 주면 그 안에 나머지 17명 싹 채워 오마! A등급 악마를 죽일 최정예들로 말이야.”
반과 대화를 끝낸 태상은 한결 홀가분한 기분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 반은 레베카가 마중을 해줄 거라며 덕분에 바빠졌으니 나중에 연락하겠다는 말을 하고 둘을 내보냈다.
계단을 내려오며 사로나가 태상에게 물었다.
“괜찮겠어? 저 사람 믿을 만큼 친한 거야?”
“오랫동안 알고 지내진 않았지만 충분히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건 알아.”
“그래? 네가 그렇다면야....”
사로나는 길드 자체와 친하질 않다. 그래서 여전히 찝찝한 마음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나마 마음을 놓이게 하는 것은 반이 나쁘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과 길드 분위기가 좋아 보인다는 것이었다.
“태상씨! 벌써 가세요?”
태상과 사로나가 내려오자 레베카가 그를 발견하고 곧장 달려왔다. 레베카의 눈동자에 아쉬움이 가득했다. 태상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가 눈치 없는 사람도 아니고, 그녀가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모를 수가 없었다.
태상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은 그가 생각하기에 레베카가 자신에게 호감을 보일 이유가 없다는 것 때문이었다.
레베카는 좀 더 있다 가라며 그를 붙잡았다.
“다니엘이랑 안나 언니 안 만나보고 가세요?”
“나중에 보면 되지.”
레베카와 태상이 얘기를 나누는 것을 사로나가 팔짱을 끼고 묵묵히 쳐다봤다. 레베카가 힐끗 그녀에게 시선을 주긴 했지만 태상이 눈치 채기 전에 눈동자를 돌렸기에 그녀가 사로나를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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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에 만나요!
선추코쿠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