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9 전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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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아아아악!!!!!!”
갑자기 들린 비명소리에 사람들이 모두 놀라 한 곳을 바라봤다. 가던 길을 멈추고, 하던 일들을 멈추며 갑자기 비명을 지른 이를 주목했다. 태상과 사로나도 놀라 가던 길을 멈추고 이 일의 주범을 바라봤다.
태상과 사로나는 현재 천계에서 만나 오늘 있었던 일을 자세히 얘기해주기 위해 적당한 장소를 찾아 이동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가득한 거리 한복판에서 이런 비명소리가 들려 온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 가려 소리를 지른 이의 모습이 자세히 보이지 않았다.
“악마 계약자들이 나타났어요!!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악마 계약자라고?”
“여기에 악마 계약자가?”
“말도 안 돼!”
웅성웅성
여자의 말의 파급력은 컸다.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이 어디인가. 바로 천계의 계약자들이 가장 많은 중심가다. 그런 곳에 악마 계약자가 쳐들어왔다는 건 말이 되질 않았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주변을 둘러 본 계약자들은 곧 악마 계약자들의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뭐야, 도대체 악마 계약자가 어디 있다는 거야? 아무도 없잖아!”
동요하던 사람들이 아무리 주변을 봐도 보이지가 않자 화를 내기 시작했다. 여자에게 집중되었던 사람들이 흥미를 잃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냥 미친 여자라고 생각한 것이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저 좀 살려주세요!! 정말이에요! 악마 계약자가 나타났다고요!”
여자가 떠나려는 사람들의 다리를 붙잡고 매달리기 시작했다.
“이런 미친 여자가!”
여자가 붙든 다리의 주인이 그녀를 힘주어 차버렸다. 여자가 바닥에 나동그라지자 남자는 재수 옴 붙었다는 듯 바닥에 침을 퉤! 뱉은 후 사라졌다. 나머지 사람들도 이상한 여자와 엮이고 싶지 않은 듯 서둘러 사라졌다. 사로나도 흥미를 잃었는지 태상에게 말했다.
“가자.”
“잠깐만.”
하지만 본래 이런 일에 더 관심이 없어야 할 그가 가려는 그녀를 막았다. 사로나가 의아한 얼굴로 보자 곧 우글거렸던 사람들이 사라지고 절규하던 여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여자는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며 사라지는 사람들을 허망하게 바라봤다. 그녀의 모습이 애처롭게 떨리고 있었다.
“제...발...제 말 좀 들어주세요...제발....악마...가..악마가....!”
여자의 몸 이곳저곳에 나 있는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선 천사가 모두 상처를 치료해주기 때문에 미션을 할 때가 아니고서야 저렇게 엉망진창인 모습을 보이는 이는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여자는 천사에게 상처를 치료받지 못했는지 온 몸이 엉망이었다.
유일하게 자리를 뜨지 않은 태상에게로 그녀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향했다.
그녀가 태상을 향해 손을 뻗었다. 태상이 한 발작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아주자 그녀는 유일한 희망을 찾은 듯 그의 팔을 힘주어 잡아당기고 힘겹게 말했다.
“...악마가....악마가 나타났어요...그곳....지구에서...능력을...써서...그곳을...망치려고 해요...!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천사들이...천사들이 제 말을 들어주질 않아요...”
‘천사들이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태상은 생각지 못한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그녀의 몸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그녀도 그것을 느꼈는지 눈을 크게 뜨고 고래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안 돼...! 안 돼! 안 돼에~!!! 가기 싫ㅇ...!!”
그녀의 눈동자에 깊은 절망이 깃들고,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접속이 끊겼는지 그녀의 존재 자체가 사라졌다.
“.....”
아마 그녀는 다시 현실로 돌아갔을 것이다.
모두들 미친 여자라고 생각하고 뒤돌아섰을 때, 태상이 그러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그녀의 모습이, 얼굴이 낯이 익었기 때문이다.
“저 여자...”
“설마 아는 사람이야?”
사로나는 태상이 여자와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았기에 놀라 물었다. 태상은 아니라고 하기에도 뭐하고, 안다고 하기에도 뭐하기에 아무런 답도 하질 않았다.
“현실에서 아는 거야?”
“아니, 아는 사이까지는 아니고, 현실에서 한 번 본 적 있어. 악마 계약자들이 있던 곳에 저 여자가 있었거든.”
“....!!”
사로나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녀의 말을 다른 계약자들이 귀담아 듣지 않은 건 태상에게 굉장히 다행인 일이었다. 만약 다른 계약자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여러모로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그가 지금 맡은 미션은 최소한의 인원으로 은밀하게 해결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녀가 저렇게 사라져 버린 것은 그에게 다행인 일이었다.
태상이 사로나에게 어서 가자며 고개를 움직였다.
“가자.”
태상이 먼저 걸어가자 사로나가 서둘러 그의 뒤를 따랐다. 사로나는 그럼 방금 전에 미친 듯 살려달라고 하던 말이 미쳐서 그런 게 아니라 사실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방금 전에 저 여자가 얘기하려던 거, 악마 계약자들 얘기였지?”
“응.”
“이번 미션 알려지면 곤란하잖아.”
“어. 그래서 천사가 저 여자를 강제로 접속 해제 시킨 것 같던데?”
“아무리 그래도...저 지경인 사람을 강제로 접속 해제 시키는 건 너무한데....”
“그러니까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지.”
“우리가 갈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사로나는 온 몸을 덜덜 떨며 필사적으로 태상의 팔을 붙잡던 여자가 떠올라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도 사람인지라 그런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지 않았다. 될 수 있으면 그녀를 구해주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운 좋으면?”
“혹시 날 그렇게 급하게 부른 게 저 여자 때문이야?”
태상이 굳이 현실에서 자신한테 전화를 해서 일을 서두르려 한 게 그런 이유였다면, 그렇게 뒤로 빼지 않았을 것이다. 진즉 이런 상황이라는 걸 말했으면 지금 아마도 비행기에 타고 있지 않았을까? 그녀가 빠르게 움직일수록 저 여자를 구해낼 수 있을 확률이 높은 거였다.
“진즉 얘기를 해줬으면 두 말 안 하고 바로 오겠다고 했었을 거야. 그 정도 동정심은 있어.”
사로나의 얼굴이 차가워 보이는 편이라 첫인상이 무섭게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 그녀와 함께 지내보면 그리 차가운 성격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무슨 성격이건 태상은 상관이 없긴 하지만 말이다.
“저 여자 때문이 아니니까 말 안한 거야. 악마 계약자들을 잡는 게 훨씬 더 중요한 문제야. 괜히 쓸데없이 저 여자 구한다고 악마 계약자 놓치는 일 절대 용납 못해.”
“나도 알아. 하지만 미리 얘기했으면 지금보다 더 서둘러서 움직였겠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린 여자를 구하러 가는 게 아니라 악마 계약자들을 잡으러 가는 거야. 저 여자 구하자고 지구 전체를 엉망으로 만들 생각은 아니겠지?”
너무 단호하게 얘기하는 태상이 얄미웠는지 사로나가 정곡을 콕 찝어 말했다.
“그래도 구할 수 있으면 구하려고 할 거잖아.”
태상이 그녀의 말에 헛기침을 하다가 말했다.
“크흠. 글쎄. 구해도 보람이 있을지 모르겠네.”
악마 계약자들에게 당하는 게 단순한 고문으로 끝났다면 정신은 그나마 멀쩡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성적인 폭행이 주를 이를 것이고, 심심한 그들의 유일한 재밋거리인 그녀가 그 모진 고문 속에서 온전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진 장담 못했다.
만약 살아남는다 해도 평생 후유증 때문에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결정은 태상이 하는 게 아니라 그녀가 직접 하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자, 이제 자세히 얘기해봐.”
인적이 드믄 가게를 찾아 자리를 잡은 그들은 본격적으로 얘기를 시작했다. 태상은 오늘 우연히 악마 계약자들에 관한 단서를 찾았고, 그들이 은신해 있는 곳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인원은 다섯이야. 절대 그놈들이 도망을 치게 해선 안 돼. 만약 흩어지게 되면 또 놈들을 잡을 기회가 언제 있을 지 장담 못하니까.”
“다섯이나 되는 능력자들을 우리 둘이서 어떻게 상대하려고? 무리라고 생각하는데.”
사로나는 태상의 능력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두 명이서 다섯을 상대한다는 것에 부담감을 느꼈다.
태상은 전혀 걱정할 필요 없다며 말했다.
“그건 걱정할 필요 없어. 충분히 가능할 거야.”
“네가 그렇게 강하다고 자신하는 거야?”
절대 실수가 없어야 한다는 그가 너무 자신만만해 하는 게 걱정이 됐다. 악마 계약자들이 얼마나 강한지 실력에 대한 정보가 아예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자신의 실력만 믿고 쳐들어가기엔 이 미션에 걸린 게 너무 커다랬다.
그들이 실패하게 되면 단순히 둘의 목숨을 잃은 건 시작일 뿐이다. 천사와 악마 계약자들 사이에서의 싸움이 인간계에서 동시 다발 적으로 일어날 것이고, 그것은 결국 멸망의 지름길이었다.
의심하는 사로나에게 태상은 자신의 진짜 능력을 알려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능력이 뭐라고 생각해?”
“.....”
갑자기 묻는 말에 사로나가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
그와 함께 했던 미션에서 분명 무슨 수를 썼다는 것은 알았지만 정확히 그게 뭔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능력조차도 모르는 그를 도대체 뭘 믿고 이렇게 따라다니는 건지 모르겠다.
자신이 이렇게 사람에 대해 경계심이 없는 사람이었나 싶기도 해 헛웃음이 나왔다. 절대 그럴 리가 없는데 말이다.
“솔직히 감도 안 잡혀. 알려 줄 거야?”
“물론, 넌 내 첫 번째 길드원이니까 자격 있어.”
사로나가 길드라는 말에 표정을 굳혔다. 얼떨결에 태상이 만드는 길드에 들겠다고 하긴 했지만 또 다시 같은 실수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그녀의 심정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녀는 아직까지도 자신의 선택이 옳았는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길드라는 말 때문에 잠시 딴 생각을 하던 사로나의 귓가로 태상의 목소리가 기습적으로 꽂혀들어왔다.
“내 능력은 무력화야.”
사로나는 자신이 잘못 들었다 싶어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솔직히 그의 능력이 엄청 대단한 거라 짐작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무력화가 튀어나오니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사로나도 무력화 능력에 대해선 잘 알고 있다. 언뜻 보기에는 좋아 보이는 능력이지만 실제로 그걸 얻게 된 능력자들에게 들으면 엄청 쓸모없는 능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무력화 한 번 사용하면 딜레이가 긴 건 일차적인 문제였다. 무력화를 사용해도 아예 먹히지 않는 내성 강한 놈들이 있기도 했거니와 이름이 무력화임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공격력을 잠깐 0으로 만들어주는 게 고작이었다. 긴 딜레이에 비해 지속시간도 적었고 말이다.
그래서 무력화는 보조로 빠지는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닌 능력이라는 고정관념이 생긴 것이다. 무력화 능력을 사용하는 계약자는 가끔 힐러들을 보호하는 역할로 쓰이는 것밖엔 할 일이 없었다.
“....무력화는 보조 능력 아니야?”
무시하려는 건 아니지만 너무 생각지 못한 능력인지라 사로나가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물었다. 태상은 여유 만만한 표정을 지우지 않으며 피식 웃었다.
“맞아. 보조능력으로 분류 되더라.”
“널 무시하려는 건 아니지만, 솔직히 무력화를 믿고 다섯을 상대하려고 했다면 다시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은....”
말을 하던 사로나가 갑자기 말끝을 흘렸다. 사로나는 그가 어떻게 온지 하루 만에 페앙을 죽이려고 수작을 부리던 악마 계약자를 발견했는지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때 미션에서 나랑 수색하자고 해놓고 느리게 걸어서 이동했잖아. 그때 계속 네 능력을 쓰고 있었던 거였어?”
설마하며 묻긴 했으나 그녀는 태상의 대답이 yes일 거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역시나 태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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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