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7 박상현 =========================================================================
사실 지금의 태상은 전용기를 갖고 있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자신만만하게 빌려주겠다고 한 것은 다 믿을만한 게 있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 나 전용기 좀 빌려줘.”
그리고 그건 당연하게도 강태풍. 그의 할아버지 강회장이었다.
사로나에게 미션에 대해 말한 지 하루가 지났다.
태상은 현재 집으로 퇴근하는 중이었다. 운전을 하다가 잠시 차를 세우고 강회장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기왕 알려진 거, 이럴 때 써먹어야지 언제 써먹겠는가. 원래의 몸이었다면 굳이 그에게 직접 말할 필요도 없이 그냥 아랫사람에게 시키면 됐지만 지금은 상황이 좋지 않아 이렇게 번거롭게 움직여야 했다.
강회장은 전용기를 타고 태상이 놀러가는 것이라 생각했는지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같은 시기에 어딜 놀러가려고 전용기를 빌려달라는 게냐?]
“아~ 내가 아니라 친구 좀 태우려고. 걔가 아픈 동생이 있어서 일반 비행기 타고 오면 안 된대.”
[친구? 네 사정 아는 아이냐?]
“그런 거 아니야. 나에 대해서 아는 사람 할아버지 말곤 없어. 나한테 좀 필요한 사람이라서 반드시 데려와야 하거든? 부탁 좀 할게. 아! 그리고 혹시 모르니까 전용기에 유능한 의사 한 명 붙여주고.”
[그래 알았다. 말 해놓을 테니, 전화 오면 시간 장소 말해주거라.]
“응, 할배. 땡큐!”
원래부터 태상이 원하는 것은 모든 들어주었던 강회장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자신의 부탁을 들어 줄 거라고 생각했기에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그녀에게 전용기를 보내주겠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역시나 강회장은 몇 가지 묻긴 했어도 그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사로나가 오는 일은 이렇게 해결이 되었으니, 그녀가 오기 전까지 박상현의 거처를 알아내는 것만 하면 된다 싶었다. 그런데 그때, 끊었던 핸드폰이 반짝거리며 벨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
“누구지?”
핸드폰을 확인하니 본래 이명진과 아는 사이인지 번호가 저장되어 있었다. 그런데 저장 된 이름이 어째 좀 이상했다. 이명진은 핸드폰에 사람 이름을 저장할 때 이름 세 글자만 딱 저장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통화가 온 이의 저장 된 이름이 물고기1였다.
‘물고기??’
누구인지 알 길이 없기에 일단 걸려온 전화를 받기로 했다. 이명진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 알아야했기 때문이다.
“여보세요?”
[명진씨! 나야.]
핸드폰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여자였다.
“나? 나가 누군데?”
여자가 나야 라고 자기를 소개해봤자 물고기로 밖에 적혀 있지 않았기에 알 길이 없었다. 태상이 그렇게 묻자 여자 쪽에서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질 않았다. 태상이 답답한 마음에 다시 한 번 되물었다.
“그러니까 당신 누구냐고.”
[병원에서 그렇게 가버렸다고 이러는 거야? 아니면 그동안 연락 안 해서 화가 난 거야? 정말 너무하네. 내 사정 뻔히 알면서!]
“네 사정이건 뭐건 이름을 대라니까. 나랑 네가 무슨 사...!”
전화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궁금했기에 말을 하던 태상이 문득 말을 멈췄다. 병원이라는 말을 들으니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없는 이명진 기억이 생겨난 게 아니라 태상이 직접 통화 속 여자와 만난 적이 있는 것 같았다.
“너... 나 본 적 있지?”
[역시 병원 일로 화난 거구나? 그땐 정말 미안했어. 사람들이 너무 많았단 말이야. 그러다가 남편한테 들키기라도 하면 나 정말 죽어. 응? 명진씨이~]
여자가 애교를 가득 담아 말했다. 태상은 그 목소리를 들으며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진짜 넌 끝을 모르는 놈이구나. 이명진.’
여자관계가 복잡해도 엄청나게 복잡한 놈이었다. 유부남이 여자 꼬시고 다니는 것도 어이가 없는데, 심지어 그 대상이 유부녀라는 사실에 기가 막혔다. 뭐가 됐든 이놈은 여자 꼬시는 거 하나는 기가 막히는 놈은 분명하다. 태상에게 이런 추억(?)까지 겪게 만드니 말이다.
[나 이번에 자기랑 연락 끊고 고민 많이 했어. 솔직히 난 자기랑 헤어질 수 있을 줄 알았어. 사랑보단 가정이, 내 아이가 우선이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그게 아니더라고. 나 미친 여자였어. 자기한테 미친 여자. 남편이랑 이혼할게. 우리 합치자.]
태상이 딱 잘라 얘기했다.
“미안한데 아줌마. 난 당신이랑 결혼이니 뭐니 그런 거 하면서 놀 생각 없어.”
[내가 자기랑 결혼을 해주겠다는데도 화가 안 풀리는 거야?]
확실히 미친 여자가 맞긴 맞는 것 같았다. 확실하게 의사를 밝혔음에도 여자는 자신의 생각에서 전혀 깨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명진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을 거란 확신을 가진 듯 했다.
결혼 하자는 것도 아니고 결혼을 해주겠다고?
태상의 자존심이 꿈틀거리며 삐져나오기 시작했다. 그와 더불어 화는 서비스였다.
“이봐. 정신이 돌아서 내 말 뜻을 잘 이해 못하나본데, 내가 확실하게 얘기해 줄 테니까 잘 들으세요. 내 좆이 아줌마한테 안 서. 아줌마 축 늘어진 가슴 평생 빨아도 안 선다고. 당신 젖 나한테 물릴 생각 말고, 아이한테나 더 물려. 안 봐도 성형했을 테니 젖이 나올진 모르겠지만. 알겠어?”
[........]
태상의 거친 언행에 상대방에선 아무런 말도 하질 못했다.
당황스럽고 황당해서 할 말을 잃은 게 분명했다. 여자로서 굉장히 수치스럽고 모욕적인 욕이었다.
“진짜 어이가 없네.”
태상의 입장에서도 기분이 더러울 수밖에 없었다. 여자들과 원나잇을 많이 하긴 했지만 이렇게 너저분하게 놀지는 않았다. 적어도 그는 여자랑 자기 전에 난 잔 여자랑은 두 번 안 논다고 확실하게 얘기를 해주기 때문이다. 여자 쪽에선 속궁합으로 자신을 휘어잡아 보거나 임신으로 발목 잡아보려는 수작 때문인지 그 말을 듣고 물러나는 여자는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원나잇을 하면서 놀았던 게 순수하다고 포장하진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이명진보단 깨끗하게 놀았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태상은 이명진의 뻔히 보이는 수작들이 역겹고 더러웠다.
자신이 늘 속으로 욕하던 사람의 몸에 들어 온 터라 더 기분이 나쁘기도 하고 말이다. 이 몸으로 들어오고 나서 마음에 드는 건 송이 빼곤 없었다.
상대방 여자는 한참 말이 없다가 정신적 충격이 좀 가라앉았는지 입을 열었다.
[너, 너 나한테 이러고도 멀쩡히 검사직 할 수 있을 것 같아?!]
여자의 목소리에 물기가 서려 있는 것이 아무래도 충격을 받아 우는 듯 했다. 지금까지 태상은 자신의 신분으로 협박을 해봤지 당해본 적이 없었기에 나름 신선하게 그녀의 말을 받았다.
“멀쩡히 검사직 안 해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데? 그리고 어차피 검사 곧 그만 둘 거라서 상관없어. 그렇게 만들어서 그쪽 분이 풀리면 그렇게 해.”
이번 사건만 해결되면 어차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버리고 갈 생각이었다. 남들은 되고 싶어 안달인 검사직이지만 그쪽으로는 전혀 흥미 없는 태상에겐 거추장스러운 직업일 뿐이었다.
“당신 같은 스타일 딱 질색이지만 어찌됐든 지금 관계에선 그쪽이 피해자니까 한 마디 충고 하지. 그쪽한테 모든 걸 다 줄 것 같이 사랑하는 척 하는 놈이 또 나타나면 100% 저놈 속이 시커멓다고 생각해. 이런 놈한테 한 번 잘 못 물리면 재산 다 뺏기고 인생 쫑나는 거야. 알아? 그런 거 제일 경계해야 된다는 거 알잖아. 바보같이 왜 당했어?”
사는 곳이 높으면 인간관계의 중요성도 알아야 하지만 무서움도 알아야 한다.
언제 자신의 뒤를 칠지 모르는 게 바로 검은 머리를 한 놈들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인간은 아주 무서운 짓을 저지를 수 있는 종족이었다. 그러니 사람을 쓰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적아를 잘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회사를 잘 운영한다느니 뭐니 그런 거 다 필요 없이 사람을 쓰는 법을 아는 자가 높은 곳에 오를 자격이 있는 것이다.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몸이 하나이기 때문에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능력 있는 인재를 잘 배치하는 자가 진정한 리더인 것이다.
[흑...흑흑....흑흑흑....]
태상의 말이 결국 그녀의 울음보를 터트렸는지 우는 소리가 들렸다. 태상은 더 이상 듣고 있고 싶지 않아 전화를 끊으려 했다. 그런데 그때, 그녀가 태상에게 말했다.
[흐윽...흑...훌쩍...흐윽....명진씨 뜻....잘 알았어. 복수는...하지 않을 게. 당한 내가 멍청한 거였으니까. 훌쩍...근데 내가 줬던 건 다 돌려줘. 아니, 다른 건 다 됐고 별장. 별장 그거만은 돌려줘. 흐어어엉...!!]
‘별장? 이 여자한테서 별장을 받았어?’
그깟 별장이 뭐 그렇게 대수라고 저렇게 구질구질하게 구는 건지 이해는 안 되지만 그깟 거 다시 가져간들 그에겐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가져가라고 말을 하려던 순간, 태상은 그 ‘별장’이라는 말이 굉장히 거슬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별장이라는 단어가 그의 속을 시원하게 긁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별장, 거기 주소가 정확히 뭐냐?”
[허어어엉...엉엉.....별장..주소? 알면서 그건 왜 갑자기 새삼스럽게 물어?]
태상이 훌쩍이는 여자의 목소리에 답답했는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만 좀 울어! 세상 끝나냐?! 다 필요 없고 별장 주소 부르라고!”
[꺅!]
여자가 놀라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의 호통이 효과가 있긴 있었는지, 서둘러 그녀가 주소를 불러주었다. 태상은 재빨리 차 시동을 걸어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핸드폰은 어느새 보조석에 던져 놓은 후였다.
별장.
갑자기 여자에게서 듣게 된 뜻밖의 장소에 태상이 바로 이거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별장은 휴식하기 위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몸을 숨길 때 가장 편리한 공간이기도 했다.
그는 이명진이 박상현을 여자에게서 받은 별장으로 데려갔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박상현을 어디에서 찾을까 싶어 고민이 많이 됐는데, 일이 이런 식으로 풀릴 줄 몰랐다. 전혀 생각지 못한 곳이기에 만약 여자의 전화를 받지 않았거나 귀찮아하며 끊었다면 절대 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 미션을 완수하는 데에 굉장히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고 말이다.
아무래도 이명진의 과거 인연에 대해 자세히 조사를 해봐야 할 듯싶었다.
이놈이 어떤 놈이었는지, 그리고 어떤 이들과 관계를 맺고 다녔는지에 대해 전부 조사할 생각이었다. 자기 자신을 조사한다는 게 좀 웃긴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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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셨습니까, 회장님.”
“이리 앉거라.”
명진은 평소와는 달리 자신에게 자리를 권하는 강회장의 행동에 놀라 몸을 움찔 떨었다. 강회장의 눈동자가 명진을 집요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를 눈치 채지 못한 명진이 조심스럽게 그가 권한 자리로 가 앉았다.
명진은 긴장으로인해 침을 꿀꺽 삼켰다.
“여기 차 좀 내오너라.”
“예, 회장님.”
수행원이 모두 자리를 비우자 방 안에는 강회장과 명진만이 남게 되었다. 그는 오늘도 불렀다가 몇 마디 시키곤 자신을 보낼 거라 생각했는데, 뜻밖으로 자리에 앉게 되어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
“얘기는 목 좀 축이고 하자꾸나.”
“네.”
곧 수행원이 녹차와 커피를 내왔다. 명진은 회장과 자신 사이에 미묘하게 놓인 두 잔을 힐끗 보다가 녹차를 들어 강회장의 앞에 놓고, 커피를 자신에게로 옮겼다. 강회장은 그의 행동을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몸은 좀 어떠냐?”
“많이 좋아졌습니다. 근데, 아직 기억은 돌아오질 않네요.”
“그래?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거라.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는 법이란다.”
“네, 그러겠습니다.”
강회장이 명진의 어깨에 손을 올리더니 그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늘 호랑이 같이 무서운 모습만 보여주던 강회장의 뜻밖의 행동이었다. 명진은 이제 서야 자신이 완전히 강태상으로 인정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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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태상 이라고 하셔서 뭐지....하고 생각하다가 만수릌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