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6 박상현 =========================================================================
S등급이라니, 자신이 잘못 들었겠지 싶었다. 그런데 태상이 그런 그녀에게 확인 사살하듯 말했다.
“나도 S등급 미션은 처음이라서 좀 걱정되긴 하는데, 그래도 꼭 해야 하는 미션이라서 어쩔 수가 없어. 그리고 아예 막막한 것도 아니고 단서는 찾았으니까.”
“지금 S등급이라고 했어? S등급? A도 아니고 S?!”
“맞아, S등급. 왜 그래? S등급 미션 처음 받아 보는 사람처럼.”
태상은 S등급이 얼마나 희귀하고 드문 등급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사로나가 이곳 생활을 한지 제법 됐으니 S등급 미션이야 한두 번쯤은 받아봤겠지 하는 가벼운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아주 많이 잘못됐다.
사로나도 S등급은 처음 받아보는 거였다.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의 다 S등급 미션은 처음 받아보는 것일 것이다.
“당연히 처음이지! S등급 미션이 그리 흔한 줄 알아?”
“...그래?”
태상이 자신의 볼을 긁적였다.
그야 이곳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S등급을 받은 거야? 천사한테서나 다른 곳에서나 그런 얘기 들은 적 없는데...S등급이라면 분명 소문이 퍼져야 하는 게 정상이잖아.”
아마 S등급이 뜬 걸 알았으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런데 사로나는 그런 얘기를 전혀 들을 수가 없었기에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태상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 목걸이를 확인하기까지 하는 그녀였다.
미션을 받으면 목걸이에 박힌 보석의 색이 반짝거리며 등급에 맞게 바뀐다.
F등급은 갈색 E등급은 남색 D등급은 초록색 C등급은 노란색 B등급은 빨간색 A등급은 하얀색 S등급은 보라색 SS등급은 검정색이었다.
목걸이가 한 번도 보지 못한 보랏빛으로 반짝이는 것을 본 사로나는 정말 그가 수락하게 만든 게 S등급임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 미션이 좀 특이해. 그래서 지금 알고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그런 미션이 어딨어!”
태상이 특별하게 천사들한테 총애를 받고 있는 게 아닌 이상 절대 그럴 수 없었다. 천사들이 미션을 누군가에게 지정해서 주는 건 분명한 차별이었다.
태상은 믿지 않는 사로나에게 자신이 겪었던 일을 대략적으로 설명해주었다.
악마 계약자들이 현실에서 천사 계약자들을 죽이고 있으며, 그들은 현실에서도 이곳과 마찬가지로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지금 이 문제가 퍼지게 되면 엄청난 혼란이 생길 게 분명하기에 알고 있는 이는 천사들과 태상 자신밖에 없다고도 말했고 말이다.
얘기를 들은 사로나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럼 만약에 이 미션을 성공하지 못하면....”
“그곳이 엉망진창이 되겠지. 그곳엔 여기처럼 악마와 천사를 나누어주는 공간조차도 없을 테니까.”
“이 미션이 왜 S등급인지 알 것 같네. 이건 너무 어마어마하잖아.....”
사로나는 벌써부터 이 미션을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지 막막한 듯싶었다.
“내가 직접 경험해본 결과 그곳에서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 몸 상태도 비슷해지는 것 같더라.”
“잠깐만, 그럼 우리들도 현실에서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거야? 악마계약자들만 가능한 게 아니라?”
“그래야 그들을 막을 수 있지. 그들의 힘은 똑같은 힘을 가진 사람들만 제압할 수 있어. 그쪽은 능력을 쓸 수 있는데 우린 쓸 수 없다고? 그럼 이 미션은 s등급이 아니라 ss등급이라고 해도 모자를 걸?”
태상의 답에 사로나가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잠시 끙끙거리며 생각을 하던 그녀가 고개를 들고 태상에게 말했다.
“그럼 이 미션, 애초부터 무의미한 거 아냐? 악마들이 하려는 짓을 막았다고 쳐봐. 현실에서도 이곳처럼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됐는데, 그걸 사람들이 쉽게 포기하려고 할까?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현실에서도 할 수 있게 되면 사람들은 갖고 싶은 걸 모두 가지려 할 거야.”
그건 이미 태상도 다 생각해 본 일이었다. 그렇기에 이 미션은 최대한 은밀하고, 빠르게 해결해야 하는 거였다.
“그래서 이 미션을 아는 사람이 나밖에 없는 거라고 했잖아.”
“하지만 이제 다른 사람들한테 미션을 공유 할 거잖....설마 너...?”
사로나가 무언가 눈치 챈 듯 말도 안 된다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태상은 씨익 웃으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최소한의 인원으로 해결할 거야. 어차피 공유 가능한 인원도 스무 명밖에 안 돼. 물론 그 스무 명을 다 채울 건 아니지만.”
“S등급 미션을 20명이서 하겠다고!? 너 미쳤니? 아니, 원래 좀 제정신 아닌 놈이라는 건 알았지만 이건 아니잖아! 절대 해결 못 해. 불가능하다고!”
사람이 한 몇 백 명은 있어야 겨우 해결할까 말까한 미션이었다. A등급만 해도 몇 백 명이 달려드는 데, 그 보다 한 단계 위인 S등급을 고작 20명으로 해결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태상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로나에게 걱정 말라며 말했다.
“단서가 있어. 악마 계약자로 보이는 놈 한 명을 알 거든. 그놈이랑 얘기를 해볼 생각이야.”
“악마 계약자가 너한테 고분고분하게 상황을 다 얘기 해 줄 거라고 생각하니? 아니면 고문이라도 할 생각이야?”
“미안하지만 고문은 내 취미가 아니라서. 다 방법이 있어. 그놈이 날 악마 계약자로 믿게 하면 돼.”
어차피 서로 악마 계약자인지 천사 계약자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는 처지였다. 그러니 이미 한 명 속여 봤으니 한 번 더 속이는 건 누워서 떡먹기였다. 더욱이 놈은 악마 계약자인 이명진을 아는 놈이었다.
비록 계약을 하지 못한 상태였긴 하지만, 계약을 하는 방법을 찾아다니던 이명진과 얽혀 있는 놈들이니 악마 계약자라고 해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S등급 미션을 해결 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가 박상현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 네가 나한테 좀 와줘야겠다.”
“그게 무슨 소리야?”
사로나가 그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자 태상이 말했다.
“여기서 말고, 현실에서 만나자고. 그래야 미션을 해결할 수 있을 거 아냐. 지금 받은 미션은 이곳에선 아무 것도 못하는 미션이라고. 현실에서 악마 계약자 놈들을 잡아서 이런 짓을 꾸민 악마 놈을 죽여야 해.”
“.....”
S등급 미션은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을 막아야 하는 것이기에 사로나와 함께 미션을 공유한 이상 그녀가 태상이 있는 곳으로 와야 했다. 그녀가 오지 않으면 태상이 가야 했는데, 지금 유일한 미션의 단서는 태상의 곁에 있었다.
그러니 그녀가 태상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하는 게 맞는 것이다.
“나보고 한 번도 안 가본 너희 나라로 오라고?”
“문제 있어?”
“당연하지. 지금 내 상황이 다른 나라로 가고 말고 할 겨를 없어.”
“뭐가 문젠데?”
대부분의 계약자들은 돈으로부터 자유롭다.
천사나 악마에게 소원을 빌기도 했거니와 미션을 완수하면서 받을 수 있는 다양한 혜택들이 있기 때문에 말이다. 사로나는 자신의 개인적인 일을 그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게 되면 태상이 무조건 오라고 자신을 스카웃 했었을 때처럼 할 것 같아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알다시피 길드를 나오면서 많은 걸 줘야 했어. 그래서 지금 현실에서도 꽤 팍팍하게 살고 있어. 내가 일을 해야 가족이 사니까, 현실에서까지 이곳 일로 쓸 시간 없어.”
길드에서 나오면서 많은 걸 준 게 아니라 빼앗긴 거라는 사소한 거짓말이 있긴 했지만 사실인 말이었다. 태상은 뭐가 문제냐며 그녀를 설득했다.
“일을 해야 한다고 하는 걸 보니, 돈이 문젠 거야? 그런 거야 내가 해결해 줄게.”
태상이 그렇게 나올 줄 알았기에 사로나가 재빨리 말했다.
“돈 때문도 있지만, 지금 동생도 문제야. 그 아이가 많이 아프거든. 그래서 간호 때문에 오래 자리를 못 비운다고. 죽을 뻔 했던 아이였는데 겨우 살린 아이야.”
가족이 핑계로 나오자 태상의 입이 꾹 닫혔다.
그녀가 본 태상은 가족을 핑계로 한다 해도 계속해서 뜻을 굽히지 않고 우길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생각 외로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자 의외라는 듯 그를 봤다.
태상이 잠시 침묵 하다가 말했다.
“...많이 심각하냐?”
제법 진지하게 묻는 뜻밖의 행동에 사로나가 당황했다.
“아니 뭐 그 정도로 심하게 아프고 그런 건 아니야. 천사한테 소원 빌어서 지금은 크게 아프지 않으니까.”
“그래? 그럼 다행이네.”
천사에게 소원을 빌어 살렸다는 건 말하지 않으려 했는데, 얼떨결에 그녀가 진실을 토해냈다. 그럼 상관없는 거 아니냐고 따질 줄 알았던 태상은 깊게 한숨을 쉬었다.
“어쩔 수 없지. 그럼 누구랑 해야 되지.”
아무리 태상이라 해도 혼자서 이번 미션을 해결할 자신은 없었다. 적어도 공격능력자 한 명 정도가 태상의 곁에서 도움을 줘야 악마 계약자를 쉽게 제압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녀라고 이런 중요한 일에 몸을 빼고 싶겠는가. 더욱이 S등급이라면 지금까지 받았던 보상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여러모로 그의 일을 돕고 싶은 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병이 다 나았다 해도 여전히 약한 동생을 혼자 두고 떠나오기도, 그 아이를 데리고 비행기를 타서 먼 나라까지 가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안정을 취해야 할 아이가 고된 비행을 견뎌 낼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게 끝이야?”
“응? 끝이라니?”
너무 쉽게 태상이 포기하자 사로나가 복잡 미묘하게 물었다.
지금 태상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굴러가고 있었다. 사로나가 안 된다면 다른 사람이 필요한데, 그 다른 이를 누구로 해야 할지 고민이 되는 것이다.
이곳에서 아는 이라곤 사로나가 아니라면 반이나 레베카 다니엘, 안나 뿐이었다. 그들은 길드에 소속되어 있는 이들이었기에 보안이 신경 쓰여 솔직히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 되는 사람들이긴 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다면 그들밖엔 방법이 없었다.
“잠깐만...! 일단 의사선생님한테 물어볼게. 워낙 약하게 태어난 아이라서 비행이 가능할진 모르겠는데, 혹시 모르니까 물어는 볼게.”
태상이 사로나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게 아쉽듯, 사로나도 S등급 미션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해서 그녀는 혹시 모르니 물어보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럴래?”
태상이 반색하며 반겼다.
“뭐, 물어보는 걸로 돈 드는 것도 아니니까.”
사로나가 괜스레 얼굴을 붉혔다. 안 된다고 말한 건 본인이면서 그 말을 바꾸려고 하니 쑥스러웠던 것이다. 태상은 만약에 비행기가 된다고 하면 자신이 전용기를 보내주겠다며 한 술 더 떠 그녀에게 말했다.
“전용기..?”
사로나는 소원을 동생을 위해 쓴 터라 큰돈을 만질 기회가 없었다. 점수로는 오로지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강해지는 데 썼다. 매달 빠져나가는 병원비와 수술비가 줄어 현실에서 그녀가 일을 하면서도 먹고 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계약자답지 않게 전용기라는 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계약자들 대부분이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긴 했지만, 솔직히 전용기를 쓸 만큼 어마어마하게 돈을 많이 갖고 있는 이들은 드물었다. 그녀처럼 제대로 현실을 직시하고 있는 이들은 점수를 강해지는 데에 썼고, 그렇지 않은 어중이떠중이들은 악마 계약자들의 먹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진짜 부자는 몇 되지 않는 것이다.
이곳에서 진짜 강한 사람만이 현실에서도 떵떵거리며 살 수 있었다.
“전용기로 움직이면 좀 편하게 오갈 수 있을 거야. 의사도 붙여줄게. 여행 온다고 생각하고 와.”
그런 상황을 모르는 태상은 계약자들이 다들 전용기 정도는 갖고 다니면서 사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사로나는 소원을 동생을 위해 썼기에 그럴 수 없는 특이한 케이스로 생각하고 말이다.
사로나는 일단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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