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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3화 (3/251)

00003  피해자와 가해자.  =========================================================================

“잠깐, 생각 좀 정리합시다. 그러니까 내가 갑자기 삼 일 동안이나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는데, 엄마는 검사를 못하게 했다? 그래서 내가 그렇게 된 이유도 모른다?”

“예. 그리고 보호자분은 어머니가 아니라...!”

“됐고! 알았으니까 나가서 일 보세요. 그리고 보호자 오면 당장 일인실로 바꿔달라고 했다고 전해주고.”

의사가 태상의 말에 어처구니없어 하면서도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병실을 나갔다. 태상은 여전히 자신의 목을 부여잡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목소리는 왜 이따구지? 엄마는 뜬금없이 검사는 왜 안 시킨 거고? 일인실도 아닌 이런 곳에 내가 도대체 왜 있는 거야? 진짜 환장하겠네."

머리가 복잡했다.

그렇게 얼마나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갑자기 병실문이 거칠게 열리며 한 여자가 눈물을 가득 담은 채 태상을 향해 뛰어와 안겼다. 태상은 이 계집애는 또 뭔가 싶어 멀뚱멀뚱하게 앉아 있었다.

“명진씨!! 깨어났다는 말 듣고 내가 얼마나 놀랐는줄 알아? 진짜 다행이다...!”

여자는 태상을 이상한 이름으로 부르며 말했다. 눈물을 펑펑 흘리는 게 정말 많이 슬픈 듯 보였다. 태상은 어처구니가 없어져 그 여자를 자신의 품에서 거칠게 떼어놨다.

“이봐 아가씨, 장님이야? 사람 잘 못 봤잖아. 난 명진인지 명란젓인지 그런 사람 아니야.”

“....명진씨. 왜 그래 무섭게.”

태상은 여전히 자신을 이명진이라 확신하는 여자 때문에 자신의 머릿속을 심각하게 뒤져봐야 했다. 자신이 이런 여자를 알았던가? 하지만 평소에도 여자 얼굴을 크게 머릿속에 집어넣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었던 지라 기억이 나질 않았다.

자신이 이 여자에게 가명을 썼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원나잇 할 여자니까 대충 얘기했겠지 싶어 태상이 장난이었다며 웃으며 말했다.

“장난이야. 됐고, 어떻게 알고 여길 온 거야?”

“명진씨 일을 내가 알아야지 누가 알겠어. 몸은 어디 더 아픈 데 없어? 괜찮은 거야? 1인실 가고 싶다고 했다며. 미안, 내가 신경을 못 썼어. 명진씨는 이런 식으로 도움 받는 거 싫어해서 안했던 건데. 미안해.”

“1인실이고 뭐고 다 됐다. 개인적으로 병원 싫어하거든? 이만 퇴원했으면 좋겠는데.”

“벌써? 그치만 의사 선생님이...”

“의사가 뭐? 내가 여기 있기 싫다는 데 문제 있어?”

어쩐지 태상의 목소리가 무척 싸늘했다. 그에게 여자는 그저 놀이감일 뿐이었기에 한 번 놀았던 헌 것은 그다지 취급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이렇게 질척거리는 걸 보면 자신이 그녀에게 늘 해주던 경고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여자랑 놀 때, 책임 안 진다고 분명히 얘기 하고 논다. 그거에 동의하는 여자만 자신과 놀 수 있고 말이다.

태상이 침대에서 일어나 병원 옷 단추를 풀었다.

“내 옷 가져와.”

“으..응...”

여자의 얼굴이 무척이나 이상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평소의 다정다감했던 명진의 모습과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파서 그런 거겠지 싶은 생각으로 침대 옆에 있는 서랍에서 그의 옷을 꺼내주었다.

태상은 옷을 벗다말고 그녀가 건네는 이상한 천쪼가리들을 보고 어이가 없어져 헛웃음을 지었다. 얼핏 보니 명품이긴 했지만 태상과는 맞이 않는 저가형 명품들이었다.

“나보고 지금 이걸 입으라고?”

“이거 명진씨가 입던 옷인데?”

“새 거를 미리 준비했어야 할 것 아냐?! 이딴 싸구려 옷을 어떻게 입어? 재정신이야?”

태상이 불 같이 화를 내자 여자가 울먹였다.

“알았어. 미안해 명진씨. 내가 당장 비서 시켜서 사올게. 근데...오늘 왜 이렇게 무서워? 정말 어디 아픈 거 아니야?”

“아프긴 개뿔 하나도 안 아파!”

태상이 짜증스레 침대에 다시 걸터앉았다.

“근데 왜 이렇게 내 몸이 이상하지? 좀 호리호리해진 것 같은데....아파서 살이 빠졌나?”

태상은 덩치가 좀 있는 편이었다. 인상도 솔직히 미남형이라기보단 험상궂은 편이어서 웃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무서워하곤 했다. 덩치도 있는데 근육을 만들어서 몸 덩치가 상당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몸이 가볍고 팔 다리가 얇아져 있었다.

이런 몸을 한 자신이 어색했다. 마치 내 몸이 아닌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말이다.

이상함을 느낀 태상이 소매를 걷어 올려 자신의 팔뚝을 바라봤다. 그는 울룩불룩한 근육을 찾아 볼 수 없는 삐쩍 마른 팔을 목격하고 비명을 질렀다. 물론 그 마른 팔이라는 표현은 지극히 태상의 관점에서 나온 마름이었다.

그의 몸은 적당히 균형잡힌 근육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게 뭐야!?”

갑자기 소리를 지른 탓에 여자가 화들짝 놀라 눈을 꿈뻑꿈뻑 떴다. 주변에 입원해 있는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며 태상을 봤다. 하지만 그는 그런 시선을 전혀 신경 쓸 수가 없었다.

이딴 삐쩍 꼬른 팔뚝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다 낯설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가 두 팔로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건 내 몸이 아니잖아!

태상이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살피며 발작하듯 움직이자 여자가 황당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그가 갑자기 왜 그러는 건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하는 행동이 딱 미친 놈이었다.

“왜 그래 명진씨?!”

태상은 여자의 목소리를 들을 정신이 없었다.

그가 여자를 밀치고 화장실을 찾아 복도로 움직였다. 팔에 꼽혀 있던 링거가 강제로 뽑혀 팔에서 피가 났지만 그는 그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달려서 도착한 화장실에서 그가 거울을 바라보고 기함했다.

진짜 그의 짐작대로 거울에 비친 얼굴은 자신의 얼굴이 아니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덩치 크고 사나운 인상이었던 태상의 몸은 어디로 가고 삐쩍 마른 기생 오라비 같은 놈이 거울 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이건 꿈이야....꿈일 수밖에 없잖아....내가 왜 이딴 몸이야? 내가 왜?”

태상이 이마를 짚고 헛웃음을 지었다. 눈을 깜빡여도 보고, 볼을 꼬집어 봐도 여전히 앞에 보이는 거울 속 그의 모습은 변하질 않았다.

“하!”

다리에 힘이 풀린 태상은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병원복을 입고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태상에게 혹여 무슨 문제가 있나 싶어 지나가던 환자가 간호사에게 태상의 상태를 알렸다. 그러자 간호사들이 태상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그가 있는 화장실 안으로 들어와 그를 부축했다.

“환자분, 어디 불편하세요?”

간호사가 계속해서 태상에게 물었지만 그는 아무런 답도 하질 않았다. 그럴 정신머리가 없었다. 하루아침에 갑자기 몸이 바뀌었으니 당연했다.

이건 납치보다 더 생각지 못한 당황스러운 전개였다.

태상의 몸이 힘없이 축 늘어지자 병원 사람들이 그를 부축해 이동시켰다. 그의 얼굴을 알아 본 간호사가 그의 병실로 태상의 몸을 옮겼다.

몸...몸.....그럼 내 몸은?

정신을 놓고 있던 태상이 다리에 힘을 번쩍 주고 일어섰다. 그를 부축해 이동하던 이들이 깜짝 놀라 그를 보는데, 태상이 팔짱 껴진 사람들의 팔을 쳐내버리고 간호사 한 명의 멱살을 잡았다.

“꺄악!!”

“어-어어!!”

“막아!”

갑작스러운 태상의 행동으로 난리가 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태상은 간호사의 어깨를 부여 잡고 물었다.

"강태상. 강태상 그 이름을 가진 환자 없어? 강태상! 그런 환자 있냐고! 어...아마 VIP 아니지 VVIP 실로 입원했을 텐데? 빨리 찾아 봐. 당장!!”

“우선 이것부터 놓고 말씀하세요!! 환자분!!! 경찰 부르기 전에 어서요!!”

태상, 본래의 몸이었다면 그들의 힘에 당하지 않았겠으나 명진의 몸은 달랐다. 결국 남자 몇 명이 달라붙자 그는 간호사에게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상은 계속해서 강태상이라는 이름의 환자를 찾아오라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런 환자분 없어요!!”

간호사가 컴퓨터로 환자 이름을 찾아보고 돌아와 태상에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태상은 몸에 힘이 쭉 빠지고 말았다. 그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그를 말리던 이들이 헉헉 거친 숨을 쉬었다.

“없...다고? 아예?”

“네. 없어요!”

“이 사람 보호자 어딨어!?”

태상의 보호자를 찾는 사람들 사이에서 방금 전까지 그와 대화를 나누던 여자가 고개를 푹 숙이고 사람들 몰래 빠져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아무래도 그와 아는 사이임을 들키고 싶지 않은 듯 했다.

태상은 여자가 사라졌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여자 대신 훨씬 초라하고, 볼품 없는 여자가 그의 보호자라며 나타났기 때문이다.

“제가 보호자에요!!”

여자는 갸날픈 목소리를 가졌음에도 우렁차게 사람들 사이에서 소리쳤다. 때문에 태상은 그 여자의 존재감을 단 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여자임에도 꾸민 흔적 없는 질끈 묶은 머리와 바지 면 옷이 태상의 눈길을 끌었다.

“깨어났으면 나한테 연락을 했어야지 도대체 누구한테 연락을 한 거에요?”

딱 봐도 그다지 부와는 인연이 없어 보이는 여자였다. 태상이 그 꼴을 보고 저도 모르게 말했다.

“난 저런 여자 몰라.”

여자는 태상의 말에도 불구하고 씩씩거리며 다가와 태상의 손목을 덥석 휘어잡았다.

“난 당신 모른다니까?”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태상이 멱살을 잡았던 간호사와 그를 막기 위해 힘을 썼던 사람들에게 그녀는 고개를 90도로 숙여 인사를 했다. 진짜 모르는 사람이 사고를 친 사람 대신 허리 숙여 사과 할 이유가 없으니 모른다고 말하는 태상의 말에는 신빙성이 없었다.

도리어 대신 사과하는 여자에게 동정어린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이었다.

태상은 가뜩이나 미치고 팔짝 뛸 상황에서 난데없이 나타난 여자가 그의 손목을 잡고 우악스럽게 놔주질 않아 황당했다. 무슨 여자가 이렇게 힘이 쌘 건지 아무리 뿌리쳐보려 해도 되지가 않았다.

“일단 병실로 들어가자.”

상황이 좀 진정이 되자 여자가 성큼성큼 그를 데리고 다시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안으로 들어오자 병실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그에게로 쏠렸다. 여자는 그 모습을 보고 배시시 웃으며 또 다시 죄송합니다. 하고 사과를 해 태상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도대체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저 사람들에게 사과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정작 저 여자가 사과해야 할 대상은 그들이 아니라 자신이었다. 지금 그는 손목이 끊어질 듯 아픈 고통을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좀 진정이 돼?”

“......”

태상은 말없이 여자를 빤히 바라봤다. 그러자 여자가 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 솔직히 말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네가 갑자기 깨어나지 않은 이유가 있을 거 아냐! 모른다고 발뺌 하지 마. 네 다락방 들어가서 다 봤으니까.”

태상은 여자의 말을 당연히 몰랐다. 그는 강태상이지 이명진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말 속에 다락방이라는 말이 그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었다.

“다락방?”

“어. 깔끔 떠는 애가 다락방을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 자체부터가 말이 안 돼. 거짓말 할 생각하지 말고 빨리 얘기 해.”

여자가손을 허리춤에 올리고 따지듯 말했다.

직접 겪은 자신도 믿기 힘든 엄청난 일인데, 저런 여자가 믿게 만들려면 어지간한 말로는 어림도 없을 거다. 태상은 일단 그 다락방에 당장 가보고 싶은 마음에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여기선 말하고 싶지 않아. 집으로 가. 그럼 다 얘기해줄 테니.”

“퇴원을 하자고?”

“어. 지금 당장.”

여자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녀는 태상을 다그치며 말했다.

“명진아, 너 지금 하루 이틀도 아니고 무려 삼 일만에 깨어난 거야. 검사라도 해보는 게 어때? 네가 절대 네 놈에 손대지 말라고 해서 검사 안 받게 하긴 했는데, 이건 좀 아닌 것 같아.”

“이놈이 자기 몸을 검사하지 못하게 했다고?”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추천, 코멘, 선작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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