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화 (32/93)

    @@[ 제2장 헥토르 왕국의 계략@@]

  -카이로만 제국의 황제.

  황궁 안 재상의 집무실에는 전쟁에 관한 여러 정보가 나열 되어 있었다. 바이멘 재상의 주변으로 참모급에 해당하는 귀족들이 열 명이나 있었다. 그들은 모두 정보를 분석하고, 분석한 내용을 바탕으로 전략을 짜는 데 집중했다. 귀족 참모 뿐 아니라 바이멘 후작이 직접 선발한 데 집중했다. 귀족 참모 뿐 아니라 바이멘 후작이 직접 선발한 인원들도 따로 스무 명이나 있었다. 그들 모두 전쟁에 필요한 제반사항을 구축하는데 만반의 준비를 다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중심에 재상 바이멘 후작이 앉아 있었다. 바이멘 후작의 집무실 안의 또 다른 방에는 마법사들이 연방 통신구를 살피고 있었다. 통신구에는 전쟁의 상황이 생생하게 전달이 되고 있는 상태였다. 전쟁에서 정보의 전달 속도가 가장 중요하다. 중요한 정보라도 속도가 늦어지면 불필요한 정보가 된다.

  “전방의 상황은 그런 대로 맞을 준비가 다 되어가는군.”

  “그렇습니다. 역시 파스트론 공작님이십니다. 전략을 구성하는 능력은 저희가 따라갈 수 없을 정도입니다.”

  재상의 밑에서 항상 작적을 구상하는 데 일생을 보낸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조차 파스트론 공작의 능력을 인정하고 있었다.

  “파스트론 공작님이 대단한 것은 맞지만 모든 귀족들이 전략에 따라 움직여야 전쟁은 승산이 있는 것이다. 다른 황자님과 공작님들의 상황은 어떠한가?”

  “각 황자님과 공작님들 역시 파스트론 공작님의 전략에 따라 움직이고 있습니다.”

  “움직임을 놓치지 말도록.”

  “예, 재상님!”

  황자들 간의 권력다툼은 전쟁이라고 해서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전쟁을 수행함에 있어서 자중지란은 가장 무서운 적이 되어 다가올 수 있다. 그런 일을 방비하는 것도 재상의 몫이었다.

  후다다닥!

  옆방에서 통신구를 살피던 마법사 알리아딘이 갑작스럽게 집무실로 들어왔다. 다급함이 묻어 나오는 알리아딘이었다.

  “무슨 일인가?”

  “재상님! 큰일 났습니다!”

  “큰일! 설마 전쟁이 시작된 것이가?”

  “발키리 영지로 헥토르 왕국이 3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 왔다는 보고입니다!”

  벌떡!

  “뭐야!”

  바이멘 후작이 놀라서 일어섰다. 다른 귀족들도 마찬가지로 놀라고 있었다. 영원한 우방이라고 생각했던 헥토르 왕국이 오히려 공격을 해왔다.

  “감히! 제국을 배신했단 말인가!”

  헥토르 왕국의 이동 동선이 어딘지 모르게 이상했었다. 단파인 황국으로 이동했다고 보고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보고되지 않은 것부터가 잘못 진행이 된 것이다.

  바이멘 후작은 뒤통수를 제대로 얻어맞은 것 같았다. 하필이면 발키리 영지가 공격받게 되었다. 발키리 영지에 오러마스터가 세 명이나 있기는 하지만 막아내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후방이 거의 무방비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코카 제국이 발렌타인 성을 중심으로 신경정만 벌이고 있었던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이었구나! 제국의 후방을 어지럽히고, 혼란을 조장하여 공격하려는 양동작전에 걸려들었어.”

  헥토르 왕국의 30만 대군을 막으려면 최소한 그에 버금가는 전력이 필요하다. 모든 병력이 발렌타인 성에 집결해 있는 상황에서 군사를 돌리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코카 제국도 지금쯤 공격을 하려고 할 것이다.

  시간이 문제였다.

   “헥토르 왕국이 어디까지 진격했나?”

  “그게....”

  “말을 해라.”

  “아직 발키리 영지에 묶여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알리아딘의 말은 예상 밖이었다.

  바이멘 후작이 보기에 최소 칼파인 영지까지 집어삼켰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쉬운 일이지만 오러마스터들도 병력을 뒤로 빼서 후퇴해야 올바른 방법이었다. 정면으로 30만 대군을 맞닥드리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잘못하면 소중한 전력인 오러마스터가 모두 죽을 수도 있었다.

  “정말인가! 30만 대군을 발키리 영지에서 막고 있어?”

  “발키리 영주가 막아서고 있는 상황입니다. 최대한 시간을 벌겠으니 주면 영지의 지원을 부탁한다고 했답니다.”

  ‘음!’

  바이멘 후작은 발키리 영지의 영주 가르딘을 다시 보게 되었다. 오러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기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가르딘이 가장 먼저 놈들의 양동작전을 파악했다는 말이 아닌가! 자신보다 먼저 대비를 하고 있다니 놀라운 능력이었다. 뛰어난 검술 실력 이외에 별달리 가지고 있는 것이 없을 것 같았는데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물론 확신은 서지 않았다.

  ‘아니면 미토스와 스필언이 도와준 것인가?’

  상황은 파악되지 않는다.

  그래도 최악의 사태는 아니었다. 지금 즉시 발키리 영지에 군대를 파견해 주어야 했다. 전방에 상황을 알릴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다. 최대한 남아 있는 주변 영지의 전력으로 막아내야 했다.

  “우선은 조금 더 버텨주어야 할 텐데.”

  때마침 통신이 또 들어왔다.

  “재상님! 발렌타인 성으로 코카 제국 연맹이 공격을 시작 했다고 합니다!”

  “그렇겠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테니 말이야!”

  결국 전쟁이 벌어졌다. 작전대로 움직였을 테니 가장 좋은 시기였다.

  “영주들에게 발키리 영지로 병력을 보내라고 전달해. 최대한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모두 전쟁 시 과실로 참형시켜버린다고 해라.”

  한시가 급한 시점에서 미적거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말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대신에 발키리 영지에서 최대한 막아주기를 바랐다. 그동안 코카 제국군과의 전투를 정결시켜야 했다.

  “발키리 영지에 정보원을 파견해서 상황을 바로 연결할 수 있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발키리 영지의 상황에 따라 전세가 달라질 수 있었다. 전쟁과는 가장 상관없는 지역이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 되다니 정말 아이러니한 세상이다. 아니면 가르딘이 재수가 없는 것일 수도 있었다.

  저녁 노을이 지고 있다.

  어둠이 깔리고, 점점 밤에 근접해 간다.

  이 시간대가 가장 어둡다. 사람의 시야를 어지럽히는 땅거미가 혼란을 조장한다. 산란한 시간대에 발렌타인 성의 불빛이 더욱 환하게 정면을 비추었다.

  코카 제국군의 군대가 공격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발렌타인 성의 성벽 위에 올라서 파스트론 공작과 러쉬1황자는 공격하는 놈들의 모습을 보았다. 카이로만 제국도 만반의 준비를 다한 상태였다.

  “전쟁은 누가 얼마나 침착하게, 준비한 전략대로 수행이 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큰 전략의 틀에서 작은 전술을 상황에 따라 효율적으로 생각하는 능동적인 모습도 필요합니다. 또한 전쟁의 사기는 총 책임자의 몫입니다. 전투를 벌이기 전의 초조함은 모든 병사들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이야말로 러쉬 황자님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시기입니다. 병사들에게 전하세요, 러쉬 황자님이 함께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파스트론 공작은 러쉬 1황자가 강해지기를 원하고 있었다. 카이로만 제국은 검을 숭상하는 검의 나라다. 검의 나라에 유약한 황자는 존재해서는 안 되었다.

   “공작의 뜻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내가 가진 무게를 잃지 않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겉으로는 유약한 모습인 반면에 러쉬 1황자는 현명하고 똑똑했다. 검보다는 학문에 열을 올린 결과였다. 그의 뛰어난 점은 상황을 파악하고, 현실을 직시한다는 것이다. 러쉬 황자는 자신이 나약한 성격이라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전쟁이 벌어지는 한가운데 나온 것도 모두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버리기 위한 연습이었다.

  러쉬 황자가 병사들이 모두 들을 수 있도록 소리를 질렀다.

  “나는 자랑스러운 카이로만 제국의 황자 러쉬 카이로만이다! 내가 그대들과 같이 언제나 함께 있을 것이다. 간악한 코카 제국의 야망을 부수어 카이로만 제국이야말로 대륙 최강국임을 증명하겠노라! 모두 나와 함께 적을 맞이하라! 카이로만 제국을 위하여!”

  “카이로만 제국을 위하여!”

  “제국을 위하여!”

  “와아아아아아아!”

  힘창 함성소리와 더불어 전의가 급격하게 상승한다. 카이로만 제국이 이제까지 대륙의 최강국으로 불린 것은 모두 황족과 귀족이 앞장을 섰기 때문이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뒤로 빠졌다면 점차 힘을 잃어갔을 것이다.

  전쟁이 시작되었다.

  코카 제국군은 시작과 동시에 공성무기를 최대한 앞으로 밀착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프스트론 공작은 상황을 파악한 후 바로, 성벽 위에서 발리스타와 투석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명령을 내렸다.

  “놈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화살을 쏴라!”

  “쏴라!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죽여라!”

  쿠과과과광! 꽈과광!

  카이로만 제국군과 코카 제국군이 동시에 투석기를 투하하였다. 서로의 거리 차이와 위치적인 요소에 의해서 카이로만 제국의 우위를 점하는 것 같지만 피해는 서로 만만치 않았다.

  성벽 위를 가격하는 투석기의 위력이 엄청났다. 상당히 먼 거리에서 사람보다 큰 바위를 던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퍼어엉!

  “으아아아악!”

  전장의 사방에서 비명이 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에 홀린 듯이 달려들며 공격한다. 그것이 전쟁이다. 서로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다. 죽고 죽이는 전투 속에 정신은 마비가 되어가고 있었다.

  발렌타인 성에서 수만 발의 화살이 지면에 내리ㅤㄲㅛㅈ혔다. 달려들던 병사들이 화살에 맞고 쓰러진다.

  전쟁은 소모전에 가깝게 진행이 되고 있었다.

  양 군영의 기사들은 병사들을 돌려하여 공격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한다.

  고서클의 마법사들도 전쟁에 투입이 된다. 상당히 먼 거리에서 주문을 영창하여 공격을 가한다. 하지만 코카 마법사들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발렌타인 성의 마법사들도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공격보다는 최소한의 방어가 오히려 마법사들 간의 경쟁에서는 효과적이었다.

  한 치의 양보도 존재하지 않는다.

  물러서면 죽는 것이 현실이었다.

  파스트론 공작은 아직 전초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에 반해 러쉬 황자는 조금 충격을 받은 듯했다. 아무리 강한 척해도 아직 전쟁을 경험해 보지 않은 애송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었다.

  ‘그렇게 하는 겁니다!’

  세상을 조금씩 배워가는 것이다. 황제는 강해야 한다. 그 무엇이 부딪쳐와도 굳건하며 부서지지 않는 정신력을 가져야 했다.

  코카 제국 진영의 무르카인 황제가 전쟁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방에서 수만의 병력이 일시에 공격하고, 방어하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무르카인 황제는 치열한 전장을 무표정하게 보았다.

   “역시 만만치 않군.”

  예상했던 일이었다.

  카이로만 제국군과의 전투가 쉽게 끝날 리 없지 않은가! 오늘은 그저 가볍게 개전을 했을 뿐이다.

  “남쪽과 북쪽도 지금쯤 시작이 됐겠지.”

  “그렇습니다. 각 지점도 팽팽하게 진행이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물고 물리는 전투의 시작이었다.

  균형이 팽팽한 시점이니만큼 방어하는 쪽이 유리할 것이다. 카이로만 제국도 그 점을 알고 방어에 주력을 다하고 있는 상태였다.

  “헥토르 왕국이 공격하고 있으니 조만간 후방이 불안하게 될 테지. 팽팽함이 무너졌을 때 본격적인 전쟁을 시작한다.”

  지금까지 죽은 병사들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버리는 패 정도로 보고 있는 무르카인 황제였다. 목적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치열한 전투와는 어울리지 않는 무르카인 황제의 여유로운 말투였다.

  발렌타인 성의 치열함과는 반대로 발키리 영지의 전투는 지지부진했다. 공격을 제대로 할 수 없는 헥토르 왕국은 발이 묶여 꼼짝없이 제자지를 지키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속이 타는 헥토르 왕국이었다. 전쟁을 시작만 하면 바로 승전보를 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계속 패배를 하고 있었다.

  “하아암!”

  기지개를 늘어지게 한 가르딘이 막사 안에서 나왔다. 전쟁을 하는 인물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남아서 뭘 해야 할지 모르는 모습이 한가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병사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도록 종용했다. 가르딘이 여유롭게 행동하는 이유는 병사들에게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마은을 갖도록 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물론 가르딘도 이제는 여유를 찾은 상태였다. 놈들의 공격을 3일 동안 쉽게 막아내었기 때문이었다.

  “아침 식사는 뭐지?”

  “고구마빵입니다.”

  “하나 가져오게.”

  “예! 영주님!”

  병사를 시켜 고구마빵을 가져오게 했다. 가르딘은 병사들과 같이 식사를 했다. 전쟁에서 병사들에게 먹지도 못하는 음식을 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귀족들은 항상 만찬을 먹는 것과는 대조적인 현상이다. 전쟁을 수행하는 데 가장 중요한 병사들을 소홀히 대해서는 전쟁을 제대로 이겨낼 수 없다. 그 점을 알기에 병사들과 같이 식사를 병행했다. 영주가 같이 먹는 음식이었다. 불만이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쩝! 쩝!

  가르딘은 고구마빵을 한 개 씹으면서 능선으로 올라갔다. 능선에는 미리 배치한 발리스타가 장전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능선 위에는 갈라가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전쟁이 한가로운 것 같지만 하나의 오만으로 인해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 긴장할 때는 긴장을 하고, 필요한 일은 반드시 수행을 해야 한다.

  “상황은 어때?”

  “어제와 같아! 놈들의 움직임이 지극히 제한적이니까. 산발적으로 부대를 보내 진법을 살피고 있기는 한 모양이야.”

  “투르 녀석이 잘 해내고 있으니 그건 걱정하지 마라.”

  하루 정도 자숙의 시간을 가졌던 투르가 다음 날부터 다시 크레이지드래곤 창기병을 이끌었다. 놈들이 3단계 진법 안으로 병력을 보내면 어김없이 창기병으로 전멸시켜 버렸다. 대규모의 병력을 진법 안으로 보낼 수 없는 상황인 헥토르 왕국에서는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활로를 열려고 하지만 가르딘은 그 같은 상황을 가만히 놔두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럼 발리스타를 발사해.”

  “그러지.”

  발리스타는 하루에 총 세 번을 발사한다. 아침 시간과 저녁 시간, 그리고 밤늦은 시간에 한 번씩 발사를 한다. 기름을 실은 발리스타를 계속적으로 발사할 수 있는 양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영지에서 공수가 되는 대로 발사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시간대를 아침, 저녁, 밤늦은 시간을 이용하는 것은 헥토르 왕국군을 괴롭히기 위한 방법이었다.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아침은 방비가 쉽지 않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활발하게 움직일 수 없는 시간이었고, 저녁은 피곤이 몰려오고 어둠이 깔리는 시간이기에 발리스타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밤은 놈들이 자는 시간이다. 피곤이 풀리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공격하게 했다.

  가르딘은 놈들의 체력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다.

  무르카인 황제 못지 않게 가르딘도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가르딘은 병사들의 생명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에 있었다.

  발리스타를 발사하는 것을 본 가르딘은 다시 막사 안으로 돌아갔다. 막사에는 영지에 잠시 들어갔다 온 파멜라가 대기하고 있었다.

  “영지의 분위기는 어때?”

  “조용해요. 전쟁을 하는지도 모르고 있는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잘됐군.”

  발키리 영지 외곽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기에 영지민들은 소식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병사들이 이곳으로 온 것이 이상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전쟁으로 인해 피해가 나오지 않으니 알 도리가 없지 않은가!

  “영지민들이 이곳으로 오지 못하도록 통제를 제대로 하면 괜찮을 거야.”

  불행한 일이지만 영지민이 전쟁 상황을 아는 것은 그다지 좋지 못한 방향이었다. 영지 내의 불안감만 조성하는 일이 된다. 그렇기에 되도록 전쟁에 대해서 알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가르딘이었다.

  “인포메드의 정보원들이 영지 내를 돌아다니면서 정보를 모으고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겠지. 이곳도 살펴봤을지 모르지.”

  “아마 그럴지도 몰라요.”

  “인포메드는 헥토르 왕국의 공격을 이미 알고 있었어. 인포메드의 경우 전쟁이 나도 대륙 협정에 의거해서 보호를 받고 있는 놈들이야. 그래서 영지에 남아서 정보를 모으고 있겠지. 지금쯤 놀라고 있을걸. 우리가 헥토르 왕국의 공격을 막아낼 줄은 몰랐을 테니 말이야.”

  “우리로서는 좋은 게 아니네요. 인포메드에서 영지의 사정을 알수록 정보가 외부로 새어 나가잖아요.”

  “괜찮아. 어차피 새어 나가도 상관없는 정보만 보게 될 거야. 너도 알다시피 전법을 인포메드에서 알 도리는 없잖아. 인포메드도 함부로 정보를 주지는 않을 거다. 나를 살피고, 상황에 따라 행동을 하기는 하겠지. 그보다 진법은 손상된 것이 없나?”

  “심혈을 기울인 진법이에요. 쉽게 알아자리지 못할걸요.”

  “진법은 너만 믿고 있는 실정이다. 자만하지 말고 진법의 흐름을 제대로 살펴. 하나라도 이상하면 바로 나에게 말을 하는 것을 잊지 마라.”

  “알겠어요.”

  가르딘의 예상대로 인포메드의 지부장 테이란은 고민에 빠졌다.

  헥토르 왕국의 공격은 이동 동선을 파악한 후, 곧바로 알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발키리 영지가 너무 조용하다는 것에 있었다.

  불바다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어떻게 됐어?”

  테이란이 인포머(정보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전쟁물자를 움직이고 식량까지 공수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전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 역시 영주가 직접 헥토르 왕국을 막고 있다는 말이네.”

  “그렇습니다. 영지의 서쪽 외곽지역에 군영을 설치했습니다. 이상한 것은 전쟁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움직임이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건 이상한 일이었다.

  30만 대군을 고작 2만으로 막아낸다.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도대체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지 확인이 되지 않았다. 방법을 알아내야 했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발키리 영지와는 전혀 달랐다. 또한 발키리 영지를 다스리는 영주 또한 보통 인물이 아닌 것 같았다.

  “좀더 접근할 수 있나?”

   “무립니다. 영지 내에서 전장으로 가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통제를 하고 있습니다. 그곳을 뚫고 접근하기가 쉰지 않습니다. 자칫 우리의 정보원이 들키게 되면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발키리 영주가 인포메드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섣불리 움직이는 것은 무모한 짓이었다. 어차피 이곳에 정착을 한 상태니 점차적으로 정보를 모으면 되었다.

  “가르딘 영주의 신상내역과, 가족관계 모두 파악됐나?”

  “신상내역과 가족관계는 모두 이전의 것과 같습니다. 별달리 특이점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가?”

  테이란은 이제까지 이처럼 고민되는 사람이 처음이었다. 속을 알 수가 없었다. 어떻게 보면 멍청한 것 같은데, 이미 전쟁 준비를 하고 있었다. 테이란의 속이 상한 것은 전번에 영주를 보았을 때 전혀 헥토르 왕국의 공격을 예상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는 것에 있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어떤가! 미리 알지 못하고서는 전혀 대비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다. 이제야 그날 농락당한 것은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르딘의 성격을 파악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정보를 준 꼴이 되었다. 가르딘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났으니 기분이 좋을 리 만무했다.

  테이란이 가르딘의 신상조사를 다시 시킨 것도 그때의 일 때문이었다. 그저 그런 별 볼일 없는 기사가 영지를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제대로 잘 다스린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이리 아닐 수 없었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지?’

  인포메드의 지부장으로서 반드시 가르딘의 정체를 파악하겠다고 다짐하는 테이란이었다. 이대로 농락다한 채 물러서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인포메드의 중요 인물로 성장하기 위한 장애물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이번 임무를 성공리에 마무리 져야 자신의 미래가 보장된다고 믿었다.

  “우선은 가족들을 자세히 살펴봐.”

  “알겠습니다.”

  본인은 완벽하게 숨겼을 수 있어도, 가족까지 숨길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어딘가에 약점이 있을지 모르기에 그 점을 파악하려고 했다.

  “에이치!”

  가르딘이 기침을 했다. 코끝이 갑자기 간지러워서 기침을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왜 그러세요? 감기 걸렸나요!”

  파멜라가 기침하는 가르딘을 보고 물었다.

  “아니, 그저 코끝이 간지러워서.”

  가르딘은 누군가 자신을 가절하게 파악하려고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생판 모르는 누군가의 관심을 그다지 달갑지 않다.

  ‘나는 라이나와 브리안만 있으면 돼!’

  가르딘은 라이나와 브리안의 관심만 있으면, 한 천 년은 너끈히 살 수 있었다. 인간이 천 년을 산다니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가르딘은 그랜드마스터이니 가능할지 몰랐다. 그게 더 무섭게 느껴지는 가르딘이었다.

  브리안이 커서 할머니가 되어도 살아 있다면 그건 저주였다. 라이나 업이 어떻게 그 오랜 시간을 버틴단 말인가!

  ‘가만, 그럴 수도 있잖아!’

  순간적으로 스쳐 가는 고민이었는데, 그게 커다란 문제였다. 가르딘은 이 문제점이 엄청나게 크게 와 닿고 있었다. 잘못하면 10대손까지 볼 수 있을지 모른다. 가르딘보다 늙은 후손들이 일렬 종대로 모여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자 소름이 끼쳤다.

  ‘방법은 하난데!’

  라이나와 브리안도 그랜드마스터로 만드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라이나가 싫어할지 모르지만 미래를 위해서 꼭 필요했다. 아니, 가르딘을 위해서였다. 혼자는 너무 외롭다.

  먼 훗날, 무적가족의 탄생을 알리는 시초가 이렇듯 아무렇지 않게 시작되었다.

  헥토르 왕국군의 진영은 침울함 그 자체였다.

  가랑비에 옷이 젖는다고 하지 않는가! 가르딘의 철저한 농략전술에 병력 손실이 무려 7만에 달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군 전체적으로 사기가 급속하게 저하되고 있었다. 앞으로 가지 못하고 안에만 갇혀 있으면서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니 당연한 귀결이었다.

  쉴 만하면 공격하고, 앞으로 장찰을 내보내면 소식이 없다. 헥토르 왕국의 수뇌부들도 속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특히 칼슈타인 공작과 뱅가너 공작은 답답하기까지 했다. 이틀의 시간을 준다고 사이너스 국왕이 명령을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일이 지나는 동안 해결책을 내놓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정말 마의 장벽이 앞으로 가로막고 있는 것 같구나!”

  “놈들이 도대체 어떻게 저런 마법진을 만들었는지 도저히 알아낼 방법이 없소이다!”

  “이대로라면 이곳에서 고사될 수도 있소.”

  사이너스 국왕은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다지 말이 없었다. 말로는 책임을 묻는다고 했지만 방법이 딱히 없는 상황에서 신하들을 문책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스스로도 그 사실을 알기에 침묵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참을 수 있을지 본인도 알 수 없었다.

  “국왕 전하를 볼 낯이 없소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요.”

  정찰부대를 파견하는 것은 더 이상 방법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희생만을 요구하다 보니 병사들도 두려워하고 있었다. 앞으로 가기만 하면 깜깜무소식이니 그럴 만도 했다.

  칼슈타인 공작과 뱅가너 공작은 후퇴는 생각할 수 없었다. 국왕 전하의 분노도 문제지만 이대로 후퇴하게 될 경우 헥토르 왕국이 위험했다. 만약 카이로만 제국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될 경우 헥토르 왕국은 배신자로 찍혀 멸망할지 모른다. 또한 코카 제국이 이겨도 승리하는 데 아무런 공헌을 하지 못해 결국 얻는 것도 없이 피해만 입을 것이 분명했다.

  오히려 코카 제국의 야망에 재물이 될 가능성이 컸다.

  “차라리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 어떻소?”

  “음! 그건 왕국 최후의 보루가 아니오. 정면공격도 아니고, 마법진안에서 사용이 가능할지 미지수요.”

  왕국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전략무기를 말하는 것이다. 솔직히 그 병기만 제대로 이용이 된다면 병력의 수와 관계없이 압도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병력 싸움이 아니었다. 마법진을 우선 해체시켜야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사용한다 해도 승산이 없어 보였다.

  칼슈타인 공작과 뱅가너 공작이 작전을 구상하는 막사 안으로 멜버른 궁정마법사가 들어왔다.

  멜버른 후작의 얼굴은 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마법력을 소진했을 때는 창백한 모습이었는데, 이제는 오히려 전보다 더 좋아 보았다. 아니, 젊어 보인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5일 동안 마나심법을 전심전력으로 운용한 덕분이었다. 마나공백과 심적인 부담을 극복한 멜버른 후작은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 있었다. 이제까지 7서클이 마법사이기는 하지만 완벽한 마스터라고 하기에는 미진한 점이 있었다. 반면에 지금은 완벽한 경지에 이르러 다음 서클을 바라보는 상황이 되었다.

  칼슈타인 공작과 뱅가너 공작은 오러마스터였다. 멜버른 후작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성취를 축하하오!”

  “감사합니다.”

  멜버른 후작의 능력 상승과는 별개로 작전회의 찾아온 것이 의아한 두 공작이었다. 전략, 전술에 관한 모든 것을 칼슈타인 공작과 뱅가너 공작이 진행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보다 무슨 일이오?”

  “상의할 것이 있습니다.”

  “지금의 작전 희의 중이오. 중요한 것이 아니라면 나중에 하시오.”

  “아주 중요합니다. 이번 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수 있습니다.”

  “정...말이오?”

  그동안 알게 모르게 멜버른 후작은 경시했던 두 공작이었다. 그가 뛰어난 마법사이기는 하지만 전쟁에 관해서는 자신들을 따라갈 수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궁지에 몰려 있었다. 상대가 누구든 전쟁에 승리를 가져온다면 반드시 고려해 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문제없습니다.”

  “그럼 어디 말해 보시오!”

  “그전에 잠시 저와 같이 가볼 때가 있습니다. 가시겠습니까?”

  “멜버른 후작! 정말 확실한 방법이오. 시간 낭비를 하는 것이라면 지금이라도 관두시오.”

   “물론 아닙니다.”

  “좋소, 그럼 후작의 말대로 가봅시다.”

  멜버른 후작을 따라 이동하게 된 두 공작이었다.

  멜버른 후작은 전방으로 이동하는 게 아니라 후방으로 이동을 했다. 칼슈타인 공작과 뱅가너 공작은 멜버른 후작의 뜻을 짐작하지 못했다. 후방은 후퇴할 때나 필요한 곳이다. 지금 당장 후퇴는 왕국의 소멸이었다.

  “이곳까지 온 이유가 무엇이오?”

  “다 왔습니다.”

  멜버른 후작이 도착한 지점은 헥토르 왕국군 진영의 후방에서 조금 더 떨어진 거리였다. 멜버른 후작은 이곳에서 멈추어서 설명을 해나갔다.

  “여기를 보면 역시나 대기의 흐름이 불규칙하빈다. 작은 앞뿐만 아니라 뒤쪽도 마법진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가!”

  후퇴를 생각해 보지 않아서 뒤를 보지 않았던 것이다. 두 공작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천지구분 못 하고 앞만 보고 내달린 꼴이 아닌가! 생각만 해도 부끄러울 지경이다.

  파멜라는 진법을 설치하는데 발키리 영지와 가까운 곳에 가장 많은 신경을 썼다. 그와 동시에 적군이 갇히게 될 지점도 확인을 하며 진법을 설치했다. 그러나 후방진법은 3문 금쇄진 정도로 고 단위의 진법이 아니었다. 전방진법이 단단한 철벽이라면 후방진법은 흙으로 쌓아놓은 벽 정도였다. 애초에 적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도주하는 적들까지 신경을 쓰지 못한 결과였다.

  멜버른 후작은 그 차이점을 파악했다.

  “제가 직접 전방의 마법진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전방의 마법진은 견고하기가 드래곤본을 능가하더군요. 그에 반해 이곳의 마법진은 공간 마법을 이용하면 일정 넓이 정도를 열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공간이동 마법을 사용한다는 것이오!”

  블링크 마법을 얘기하는 칼슈타인 공작이었다. 공간이동을 통해 병사들을 이동시키자는 뜻인 줄 알았다.

  “안 됩니다. 공간이동은 너무 위험합니다. 대기의 흐름이 이처럼 불규칙한데 공간이동을 했다가는 이동 중에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 것이오?”

  “말 그대로 공간을 열어 이동하자는 것이지요.”

  칼슈타인 공작과 뱅가너 공작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지금 그 말은 공간을 열어 후퇴하자는 말이 아닌가! 절대 그럴 수 없었다. 이대로 후퇴한다는 말을 했다가는 사이너스 국왕이 절대 가만히 두려 하지 않을 것이다.

  “후퇴는 할 수 없소!”

  ‘후후!’

  멜버른 후작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아직 두 공작은 뜻을 모르고 있었다. 멜버른 후작은 자신만이 알고 있는 방법에 자신감을 가졌다.

  “후퇴가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오! 이곳을 열어서 들어간다는 것은 돌아가자는 말과 다르지 않지 않소!”

  “공간을 열어 다크랜드로 들어가는 겁니다. 지금가지의 조사에 따르면 이 부근의 몬스터와 마수들은 대부분 사라졌다고 합니다. 다크랜드의 좁은 길을 따라 발키리 영지로 침투하는 겁니다.”

  ‘음!’

  그제야 이해를 한 칼슈타인 공작과 뱅가너 공작이었다. 분명 일리 있는 말이었다. 다크랜드에 대한 조사는 쉐도우나이트를 통해 이루어졌다. 발키리 영지에 몬스터와 마수의 습격이 급격하게 준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단 많은 병력이동은 불가능합니다. 이 부분 때문에 두 분을 따로 부른 겁니다.”

  “분명히 일리가 있군.”

  “좋은 의견이오!”

  멜버른 후작의 의견에 칼슈타인 공작과 뱅가너 공작은 동조를 했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반전을 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세부적인 계획을 세우고, 국왕 전하께 의견을 알립시다.”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해야 하오! 아니라면 국왕 전하를 뵐 면목이 없소이다!”

  반나절 동안 계획을 철저하게 손을 본 칼슈타인 공작, 뱅가너 공작, 멜버른 후작은 즉시 사이너스 국왕의 막사로 들어갔다.

  사이너스 국왕은 막사의 의자에 앉아서 술을 한잔 마시고 있었다. 며칠째 지지부진한 전투와 병사들의 손실로 인해 속이 상했던 것이다. 여태까지 한 것이라고는 발키리 영지의 외곽에 자리를 잡은 것뿐이다. 헥토르 왕국의 정예군 30만을 데리고 와서 7만의 손실을 본 것이 고작이었다. 역대 헥토르 왕 중에서도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자신이 말이다.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을 수 없을 지경이었따.

  가장 답답한 것은 놈들의 작전이 극명하게 드러났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답이 없다는 것에 있었다. 어떻게 해야 마법진을 뚫고서 정면대결을 벌일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발리키 영주, 네 이놈!”

  생각만 해도 혈압이 오르는 이름이었다. 그놈을 향해 매일 저주를 퍼붓고 있었다. 매일매일 살을 가르고 뼈를 부수는 꿈을 꾸었다.

  크음!

  몇 잔을 쉬지도 않고 연거푸 마셨다.

  막사 안으로 들어오는 공작과 후작의 모습을 봐도 심드렁한 사이너스 국왕이었다. 해결책을 찾으라고 한 지 며칠이 더 지났다. 그동안 찾은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사이너스 국왕의 표정이 좋을 리 없지 않은가!

  “무슨 일인가?”

  “국왕 전하! 방법을 찾았습니다!”

  “뭐라고?”

  사이너스 국왕은 좀 전까지 취기가 약간은 돌고 있었다. 칼슈타인 공작의 말에 취기가 금세 사라졌다. 눈빛이 다시 살아난 사이너스 국왕이었다.

  “말해 보라.”

  멜버른 후작의 의견을 종합해서 칼슈타인 공작이 말을 이어나갔다. 작전계획을 듣자 서서히 사이너스 국왕의 기운이 변해갔다.

  사이너스 국왕은 만족스러운지 입가에 미소가 실리고 있었다. 미소는 그다지 친근하지 않았다. 오히려 살벌함이 가득했다. 이제까지 속을 썩였던 것을 시원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가 되었다.

  “놈들의 후방을 교란하자, 이 말이지?”

  “그렇습니다. 드크랜드의 성벽에는 병사들이 없을 것입니다. 놈들도 미처 그곳까지 방비를 하고 있지는 않을 겁니다. 모든 병력이 이곳을 향해 집중하고 있는 상태니 충분히 성공 할 수 있습니다.”

  “다크랜드의 협곡의 많은 지역이라고 생각되는데, 병력 구성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아무래도 타이탄기사단을 모두 출동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최대한 빠져나갈 수 있는 병력이 500명을 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 일반 병사들로는 절대 발키리 영지의 후방을 노릴 수 없다. 500명이 정예병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의 결과다. 따라서 기사단을 파견해야 한다. 기사단 500명이라면 발리키 영지의 뒤쪽을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을 것이다.

  “제법 공을 들였군.”

  “만전을 기하기 위해서 이번 출정에 제가 가겠습니다.”

  “자네가 말인가!”

  칼슈타인 공작이 직접 출정을 하겠다고 한 것이다. 왕국의 공작이 직접 위험한 일에 출정하겠다는 말에 사이너스 국왕을 비롯한 뱅가너 공작, 멜버른 후작도 놀랐다. 계획에는 없던 내용이었던 것이다.

  “비밀병기를 사용하겠습니다! 놈들이 아무리 강해도 막아 낼 수 없을 겁니다.”

  “음!”

  헥토르 왕국 최후의 보루인 비밀병기였다.

  멜버른 후작이 전쟁 직전에 겨우 가동을 시켰다. 칼슈타인 공작이 운용을 한 비밀병기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했다. 이번 전쟁을 확실하게 이기기 위해서 가져온 무기였다.

  “자네의 뜻이 그렇다면 그렇게 하게.”

  “감사합니다.”

  사이너스 국왕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는 단순히 후방을 교란하는 것만으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이제까지 속을 썩인 발키리 영주에게 응징을 해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다크랜드의 성벽에 인접한 곳에 발키리 영주의 저택이 있겠지.”

  “그렇습니다.”

  “짐을 농락한 놈에게 지옥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해줄 필요가 있다.”

  사이너스 국왕뿐 아니었다.

  칼슈타인 공작과 뱅가너 공작, 멜버른 후작도 모두 가르딘의 행동에 분노하고 있었다. 사이너스 국왕의 뜻을 짐작하고도 남았다. 입가에 맺힌 미소만으로 모두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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