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화 (31/93)

                 가르딘전기5 건드리고고   @@[Title [email protected]@]

     @@[ 제 1장 전쟁의 시장@@]

  일촉즉발의 긴장 상태.

  발렌타인 성과 그 앞으로 펼쳐진 데드번 평야.

  평야의 끝에 코카 제국군의 진영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끝과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질려버릴 정도의 위용이었다.

  양 진영의 병력은 족히 천만에 달했다. 그 수가 일거에 부딪치면 얼마나 많은 수의 목숨이 사라질지 감히 예측할 수 없다. 대륙의 역사상 가장 참혹하고 무서운 전쟁의 서막이었다.

  제국과 제국.

  제국을 따라 참전하게 된 왕국과 공국.

  대륙의 승자가 누구인지 결정되는 전투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이번 전쟁의 승패로 인해 모든 것을 얻느냐, 아니면 모든 것을 잃느냐가 결정될 것이다.

  숨 막히는 분위기였다.

  양 지영에서 보여주는 군세가 천지를 압박하는 것만 같았다.

  언제 공격을 시작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지만 극히 조용했다. 너무 조용하고, 바람마저 칼바람이 불어 사람의 마음을 시리도록 얼어붙데 만든다.

  긴장감이 대지를 감싸고, 정적만이 고요함과 냉혹함으로 다가오는 시간이었다.

  -발렌타인 성.

  카이로만 제국을 지탱하는 네 명의 공작과 제국의 앞날을 이끌어 가는 황자들도 도착했다. 그들이 도착하자마자 발렌타인 성을 지키고 있었던 버레이크 백장이 마중을 했다. 버레이크 백작은 서론은 생략하고 바로 작전지휘실로 안내를 했다. 파스트론 공작을 비롯한 여러 공장이 왔으니 자신은 참모의 역할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했다.

  작전지휘실의 커다란 탁자를 중심으로 각 공작과 황자들이 앉았다. 버레이크 백장이 앞으로 나와 지금까지 상황을 다시 한 번 설명해 나갔다.

  파스트론 공작을 비롯한 공작들도 전성의 상황을 미리 숙지하고 있었다. 각 공작이 가지고 있는 정보원이 있었다. 정보력과 더불어 전쟁의 상황을 알 수 있도록 바이멘 후작이 정보원을 미리 배치해 둔 효과가 컸다. 정보원들은 각 공작과 후작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며, 감시의 역할을 하기도 함다.

  “적들의 상황은 어떤가?”

  파스트론 공작의 물음에 버레이크 백장이 즉시 전쟁의 상황을 설명했다. 현 상황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인물이 버레이크 백작이었다. 버레이크 백작이 파악하고 있는 내용을 숙지할 필요성이 있었다.

   “10일 전을 기점으로 모든 준비를 끝낸 것으로 판단이 됩니다. 또한 코카 제국의 황제가 데드번 평야에 직접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황제가 직접 친정한 것은 모두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상한 것이 있었다. 10일 전에 준비가 모두 끝이 났으면 산발적인 공격이라도 있어야 정상이었다. 준비도 중요하지만 준비가 너무 길어지게 되면 군 전체적으로 사기가 저하될 수 있었다. 준비가 끝남과 동시에 전략에 따라 공격을 하는 것이 전쟁의 가장 중요한 병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전쟁은 대륙의 패자가 누구인지 결정하는 중요한 전쟁이 될 것이다. 사소한 것이라도 놓치고 지나가면 나중에 커다란 패착으로 다가올 수 있었다. 착오를 일으킬 수 있는 사안을 찾아내어 정확하게 파악하고 분석해야 했다.

  “공격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밖에는 확실하게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버레이크 백작은 사실대로만 상황을 전했다. 확실하지 않은 내용은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귀족들에게 말 한마디는 무엇보다 소중하다. 자신이 지금 무심코 내뱉은 매용으로 인해 자신의 생명과 모든 것이 결정될 수도 있었다. 신중하게 생각하여 사실을 말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처사였다.

  “그렇겠지.”

  적국의 공격 시기까지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버레이크 백작이 코카 제국의 속사정을 모두 알 수는 없는 일이었다. 세작을 보낸다고 해도 지금은 전시였다. 전시에 세작을 파견하는 것을 사지로 보내는 것과 진배없었다. 또한 전쟁의 가장 중요한 전략은 외부로 새어 나가지 못하도록 소수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세작을 보낸다고 해도 소수가 알고 있는 정보를 파악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 정도로 깊이 침투하게 되면 세작이 탈로 날 가능성도 있었다. 그럴 바에는 지금 이대로 주변 정보라도 모으는 것이 나았다.

  “적의 공격 시기보다 중요한 것이 우리의 대비겠지. 우선은 각 왕국과 공국의 준비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파스트론 공작님의 지시대로 남쪽은 카스아이 왕국과 실베니아 왕국이 맡고 있고, 북쪽은 펌프킨 왕국과 오트리니 왕국이 맡고 있습니다. 각 진영의 연결 부분에는 우리 제국의 공국들이 나란히 진영을 구축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카이로만 제국의 준비 역시 계획대로 되어가고 있었다. 3일 전에 각 왕국과 공국의 회의가 이루어졌고, 발렌타인 성에서 지시가 이루어진 상태였다. 계획대로 선점한 지점을 막아내 주기만 한다면 역습의 기회가 올 것으로 판단이 되었다.

  “발렌타인 성을 중심으로 나와 발리스타 공작은 1황자님과 이곳에 남게 될 것이고, 네벨리언 공작과 2황자님은 남쪽을, 타이가라 공작과 3황자님은 북쪽을 맡게 될 것이다.”

  모든 전쟁의 시작은 카이로만 제국에서 주도해야 한다.

  이번 전쟁의 목적은 카이로만 제국의 승리였다. 각 왕국과 공국에게는 안된 말이지만 엄밀히 말해 최강국인 카이로만 제국의 말을 따라야 할 것이다. 반대 의견은 절대로 있을 수 없었다. 힘의 우위에 있는 국가가 몬든 공을 가져가는 것이 현실이었다.

  파스트론 공작의 의견은 황궁회의에서 조율이 완비된 내용이었다. 발렌타인 성의 경우 전쟁의 중심이며, 가장 치열한 격전지로 예상이 된다. 당연히 제국 최고의 기사이자 공작인 파스트론 공작과 발리스타 공작이 맡는 것이 합당한 일이었다.

  다음으로 격전지가 될 곳이 발렌타인 성을 중심으로 남쪽 지역이다. 2황자 지니언과 네벨리언 공작이 맡고 있는 지역으로 어쩌면 더욱 많은 전투가 벌어질지 모른다.

  남쪽 지역은 넓은 평원과 더불어 낮은 산악 지역이 자리한다. 또한 역으로 쳐들어올 수 있는 지점이 많은 곳이다. 전략을 수립해서 싸우는 데는 최적의 장소라고 할 수 있다. 공격이 수도 없이 이루어질 것이다.

  남쪽 지역은 발렌타인 성을 지키기 위해서 반드시 사수해야 한다. 남쪽이 무너지게 될 경우 발렌타인 성이 고립될 위기가 찾아올 수도 있었다.

  그에 반해 3황자 다마트와 타이가라 공장이 지키게 될 불쪽은 지형 자체가 대규모 병력을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지역이다. 산발적인 공격과 더불어 기습을 할 수 있는 정도 밖에는 되지 못한다. 무리하지 않고 수비에 전념을 한다면 방어하는 입장에서 유리한 지역이다. 사실 역습을 하기에도 쉽지 않은 지역이기에 방어가 최선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전쟁의 결과로 황태자가 결정이 될 가능성이 컸다.

  전쟁에 기여하는 정도에 따라서 황자들의 자질을 평가하고,, 황태자에 어울리는 인물을 뽑을 럿이다. 능력과 자질, 모든 것을 겸비했다고 해도 실제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다.

  그에 따라 전투가 많지 않은 곳은, 반대로 말하면 전쟁에 기여하는 점이 없다는 말과 진배가 없다.

  3황자 다마트 황자의 입장에서는 불만이 나올 만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황자는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다지 전쟁에 관심이 없어 보이기까지 했다.

  그 모습을 파스트론 공작이 잠시 시쳐 지나가면서 보았다. 제국 황제의 자리를 원하지 않는 황자가 과연 존재할까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타이가라 공작이 3황자와 함께하는 것을 보면 의심이 되기도 했다.

  ‘황태자 위에 관심이 없는 것인가?’

  모를 일이었다. 황국의 황자 중에서 속내를 읽기 가장 어려운 황자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황태자 위를 놓고 황자들끼리 신경전을 벌이면 전쟁을 수행하기 어려워진다.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전쟁을 이기는 것이었다.

  파스트론 공장이 작전회의를 진행시키고, 각 진영에 대한 전략전달체계까지 완벽하게 이루어졌는지를 검토했다.

  하나의 실수에서 모든 것이 뒤틀어지는 것이다. 그 점을 확실하게 점검해 둘 필요성이 있었다.

  “이번 전쟁에서 중요한 것은 적의 공격을 효율적으로 방비하는 것이오. 그에 따라 임의적으로 전투를 치르거나, 적들의 도발에 대응하여 먼저 공격해서는 안 되오.”

  “물론이오.”

  “알겠소.”

  각 황자들이 공을 세우기 위해서 성급한 결정을 하지 말라는 파스트론 공작의 말이었다. 공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전쟁의 승리였다. 공에 연연해서 큰 틀을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전쟁에서 큰 틀이 전략이다.

  전략을 이루어 나가기 위해서 세세한 전술이 필요하다. 전 술의 실패가 전략의 실패가 될 수는 없지만 피해를 속출시킬 수도 있으니 최대한 전략의 틀을 따라야 한다는 말이었다.

  “각자 맡은 위치로 가서 각 왕국의 참모들과 의논을 거쳐 최선을 다해 전쟁을 수행해주기 바라겠소.”

  -데드번 평야의 중심 코카 제국 진영.

  수많은 막사가 평야를 가득 메웠다.

  평야 전체를 사람이 뒤덮고 있는 듯한 형상이었다. 병사들의 막사들이 에워싸는 중심에 가장 큰 막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 안에 무르카인 황제를 비롯한 제국의 상급 귀족들이 모여 있었다.

  막사 안의 중앙에 용상이 마련되었다. 용상은 말 그대로 황제가 앉는 자리를 의미한다. 따라서 어디에 있든지 황제가 앉으면 용상이 되는 것이다.

  무르카인 황제가 카이로만 제국의 소식을 듣고 입가에 살기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꼬맹이들을 데리고 와서 감히 나와 맞서겠다고? 카이로만의 늙은이가 이제는 거동도 불편한가 보구나! 크하하하! 역시 늙으면 죽어야 해!”

  애송이들이로고 칭한 것은 바로 카이로만 제국의 황자들이었다.

  황자로서 수업을 받았다고 하지만 아직 애송이에 불과했다. 무르카인 황제에 비한다면 상대가 되지 않을 공산이 컸다. 역대로 카이로만 제국의 전략을 수립하는 인물들은 산전수전 다 겪은 인물들이었다. 수많은 목숨이 달린 전쟁에서 경험이 부족한 황자들이 중심일 수는 없지 않은가!

  휼턴 재상이 나섰다.

  제국의 황제가 자만하는 것은 좋지 못했다. 자만은 화를 불러온다는 것이 대륙이 정설이었다. 적국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가장 현명한 결정을 하는 데 자만은 불필요한 요소였다.

  “그러나 황제 폐하! 황자들의 경우 참모 그 이상이 아닙니다. 적 진영에는 파스트론 공작을 비롯한 발리스타 공작이 버티고 있습니다. 전략은 그들의 입에서 나올 것입니다.”

  휼턴 재상의 우려 섞인 말에 무르카인 황제가 아무렇지 않은 듯 말을 이었다. 그 정도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한 말투였다.

   “알고 있다. 어차피 상대해야 할 놈들은 그놈들이겠지. 하지만 좋은 기회가 아니냐! 애송이들은 다음 대 황제가 되기 위해서 공을 세우려고 하겠지. 그걸 이용하는 것이다.”

  “오오!”

  무르카인 황제의 말에 귀족들 모두 감탄을 토했다.

  황제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무르카인 황제가 비정하며 탐욕스럽기는 해도 전략가였다. 도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이기도 했다. 이기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무서운 효웅이었다.

  “각 진영은 모두 완벽하게 준비를 해놓은 상태이겠지?”

  “그렇습니다. 왕국과 공국에 제국의 공작을 파견했습니다.”

  “잘됐군. 황태자는 어떻게 하고 있지?”

  무르카인 황제의 나이 45세였다.

  그는 황태자를 미리 선정해 놓았다. 코카 제국의 황태자는 하이카인이었다. 이름 뒤에 카인이라고 붙이는 곳은 코카 제국만의 독특한 표현이었다.

  무르카인 황제는 황태자를 정하기 위해서 몇 명의 황자들을 모두 처리해 버렸다. 자식이라고 해도 하나를 선택하기 위한 재료에 불과했다. 물론 죽인 것은 아니었다. 모두 변방의 구석으로 보내버렸고, 다른 귀족들과 절대 연결되지 못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무르카인 황제가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이 내부 단속이었다. 중구난방으로 권력이 분산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해 버린 것이다.

  “하이카인 황태자 전하께서는 제국의 전시체제에 맞추어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전쟁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군수 물자가 제대로 운용이 되어야 한다. 그 일을 황태자가 맡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전쟁을 치르는 가장 중요한 책임을 맡고 있다고 볼 수 있었다.

  “잘하겠지. 그렇지 못한다면....”

  전쟁 수행 물자의 운반이 중요하다지만 전쟁보다는 쉬운 일일 수 있었다. 그것조차 제대로 못 한다면 황태자로서의 자질이 부족할 것일 수 있었다.

  무르카인 황제는 자식이라고 해서 용서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일이 잘못되면 모든 것을 뒤엎어 버릴 수 있었다.

  막사 안으로 한 명의 귀족이 들어왔다. 그는 즉시 무르카인 황제 폐하에게 예를 표하고, 휼턴 재상에게 말을 전했다. 귀족이 준 정보를 확인한 휼턴 재상이 정리하여 무르카인 황제에게 소식을 알렸다.

  “황제 폐하! 헥토르 왕국이 드디어 공격을 했다 합니다.”

  번쩍!

  무르카인 황제의 눈에 살광이 번쩍거렸다. 드디어 시작이 된 것이다. 이때를 기다리느라 조금은 지루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순조롭게 계획대로 진행이 되고 있었다. 이번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었다. 때를 잘 맞추어야 전쟁 수행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시간은?”

  “15일 정도 되면 카이로만 제국의 후방은 무너질 것입니다.”

  “그럼 15일 후에 공격하면 되겠구나!”

  “그렇습니다.”

  부글!부글!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쳐 오른다.

  헥토르 왕을 비롯한 모든 귀족들이 글귀를 보았다. 대문짝만 하게 글을 남겨놓은 상대의 행동이 뻔해 보이지만 화를 참기 힘들었다.

  귀족들은 명예와 명성을 소중하게 여긴다. 따라서 전쟁을 하더라도 저렇게 천박한 글을 쓰지 않는다. 물론 뒤로 암살자를 보내거나 비열한 수단을 쓰기는 하지만 대놓고 사용하지는 않는 것이 정석이었다.

  명예를 목숨처럼 여기는 귀족보다 한 단계위인 왕은 어떤 심정일까!

  사이너스 국왕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사리분별이 뛰어난 자일수록 더 화가 나는 경우였다. 이런 모멸감은 생전 처음이었다. 누가 감히 일국의 국왕 면전에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누구도 생각해 보지 못한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감히 국왕 전하께 저런 글을 써놓다니 놈을 잡아서 사지를 찢어야 합니다!”

   “맞습니다. 바로 진격해서 발키리 영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본보기를 보여야 합니다!”

  귀족들이 한결같은 말을 올렸다.

  분하기는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왕을 농락했는데 아무렇지 않다면 말이 되지 않았다.

  사이너스 국왕의 달아오른 얼굴이 점차적으로 가라앉았다. 놈을 죽이라고 명령을 내리긴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수상했다. 전쟁에서 흥분은 금물이었다. 불안감이 있을 때는 돌아가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일말의 불안감을 무시하고 병력을 운용하기에는 위험부담이 컸다. 특히 카이로만 제국의 오러마스터가 신경 쓰였다. 피닉스기사단에서 오랜 세월을 생활했을 놈이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무언가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물론 발키리 영주가 대군을 상대로 막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계획이 있다고 해도 군사력의 차이가 너무 컸다. 그저 확인이 필요할 뿐이었다.

  사이너스 국왕이 칼슈타인 공작에게 무언가 있을지 모르니 살피라고 했다.

  “앞으로 기병대를 보내 함정이 있는지 살펴보라.”

  “예, 국왕 전하!”

  사이너스 국왕은 잠시 숨을 돌렸다. 발키리 영주의 무리한 도발로 인해 너무 빨리 이동을 했다. 쉼 없는 진군으로 인해 병사들도 조금은 지쳤을 것이다.

  ‘놈! 아무것도 없다면 반드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주마!’

  발키리 영주가 아주 약간의 시간을 벌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이너스 국왕이었다.

  가르딘은 산등성의 끝에서 헥토르 왕국의 진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상당히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다 보였다. 천리안의 경지는 아닐지라도 사람이 볼 수 없는 먼 거리를 볼 수 있는 가르딘이었다.

  가르딘의 옆에 안젤리카가 있었다.

  안젤리케의 공간이동을 통해 이동하고 있기 때문에 거리의 제한도 없게 되었다.

  ‘역시 마법사가 있는 게 편하군.’

  전쟁에서 마법사는 전력이 될 뿐 아니라 정보를 수집하고 모으는 역할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세삼 깨닫는 가르딘이다. 자신도 모르게 기사로서의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마법사를 그다지 신뢰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래서 고정관념이 무서운 것이다. 일정 수준의 나이가 되면 틀에 박힌 생각을 하게 되어 세상을 넓게 보지 못한다. 월급쟁이 기사였을 때는 상관없을지 몰라도 영주가 되었으니 고정관념을 깰 필요가 있었다.

  가르딘은 가자기 멈춘 헥토르 왕국의 군대를 보았다.

  지금까지 빠르게 진격하다 속도를 늦추고 대기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대군의 진영에서 100명의 기병대가 앞으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함정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군.”

  상대가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런 말을 듣고 아무 의심이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물론 그런 저급한 수법에 넘어 가는 놈들이 있기는 하다. 그건 바보보다 더한 멍청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저급하고 지저분한 수법에 넘어가지 않은 헥토르 왕국이었지만 가르딘은 만족했다.

  놈들과 발키리 영지의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피로가 쌓였을 것이다. 또한 헥토르 왕국이 기병대를 보낼 것이라는 것 정도는 예측하고 있었다.

  “파멜라의 진법은 우스운 수준이 아니거든.”

  기병대가 본다고 해도 별반 차이가 없다. 마법사가 세밀하게 살펴도 알아내지 못하는 수준의 진법이었다. 일반적인 병사들이 진법을 발동하기 전에 알아본다는 것은 드래곤이 오크에게 잡아먹히는 것보다 더 불가능한 일이었다.

  가르딘은 돌아가면서 각 지점에 머물고 있는 병사들을 살펴보았다. 병사들을 이곳에 파견한 이유는 신호를 보내기 위해서였다.

  헥토르 왕국의 병력 이동의 움직임을 실피기 위한 방안이었다.

  진법의 가동과 동시에 놈들은 시야를 잃을 것이다. 또한 우리 진영의 시야도 제한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미리 일정한 거리에 병력을 배치해 군사들의 이동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다.

  어차피 이 전쟁은 시간싸움이었다. 적도 그 점을 알기에 서둘러 진격을 했을 것이다.

   헥토르 왕국의 움직임을 봉쇄하고 덤으로 공격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였다.

  “헥토르 왕이여! 나를 공격한 것을 후회하게 해주겠다.”

  제국을 공격한 것은 상관없다.

  하지만 공격 지점이 발키리 영지라는 것에 상관이 있었다. 다른 곳 다 놔두고 왜 하필 이곳인가! 이것은 중차대한 문제다.

  “그럼 이쪽에서도 움직여볼까나.”

  헥토르 왕국이 기병대를 파견하여 상황을 파악하려 한다면, 놈들의 움직임에 따라 우리도 장단을 맞추어주면 되었다. 결국 볼 수 있는 것만 보고 돌아가게 될 것이다.

  “돌아가자.”

  “예! 영주님!”

  -워프.

  가르딘은 안젤리카의 공간이동에 따라 발키리 영지의 군사 진영으로 이동했다. 병사들은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병법의 운용에 문제는 없어 보였다. 반면에 경험이 부족해서 약간은 긴장감이 형성되어 있었다.

  가르딘은 돌아와서 즉시 필리언, 유타, 갈라를 불렀다.

  “놈들이 기병대를 보냈다.”

  “역시 안 통한 거네.”

  “아니, 통했다. 화가 나서 앞뒤 재지 않고 달려왔기 때문에 지쳐 있을 거다.”

  “그런데 기병대를 보내면 위험한 것 아닌가?” “우리도 움직여야지.”

  “움직인다고!”

  “지금 즉시 병력을 움직여 앞으로 간다. 그리고 기병대를 보면 가볍게 공격을 하고 바로 뒤로 빠져.”

  “우리의 전력을 보여주잔 말이지? 좋아, 그렇게 하지.”

  열시 필리언, 갈라, 유타는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제대로 알아들었다. 수도 없이 많은 전쟁을 같이 겪어왔던 필러언, 갈라, 유타였다. 가르딘이 말하면 척이었다. 그 정도도 파악하지 못하면 기사 짬밥을 밑구멍으로 처먹었다고 욕을 하려고 했다.

  “조금 과장된 군세를 보여주자고! 허풍처럼 말이야!”

  과장된 군세로 허장성세를 보인다.

  이걸 파악한 적들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눈에 뻔히 보이는 계책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가르딘이었다.

  헥토르 왕국의 기병대가 본대에서 상당히 먼 거리까지 진격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함정을 만들 만한 곳은 보지 못했다.

  기병대를 이끄는 인물은 헥토르 왕국의 왕국기사단인 타이탄기사단의 베아도르였다. 베아도르는 검술 실력보다는 주변을 탐색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물론 타이탄기사단에 들 정도니 다른 기사단의 기사들보다는 뛰어나다.

  그는 주변을 살피면서 발키리 영주의 전략을 파악하기 위해 애를 썼다. 기병대를 약간은 분산시켜 움직인 것도 주변 지형을 위한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함정을 설치할 수 있는 장소가 부족했다. 이런 평지에 어떤 함정이 있다고 해도 쓸모가 없을 것으로 보였다. 함정의 기본 조건은 좁은 지역, 높은 능선, 성벽 등을 들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장벽으로 가로막혀 있어야 기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게 아닌가! 반면에 이곳은 탁 트였다. 탁 트인 장소에 함정을 만들어봐야 바리게이트 정도뿐이다. 그 정도라면 대군으로 쓸어버리는 데 전혀 장애가 되지 않았다.

  ‘응!’

  움찔!

  베아도르를 비롯한 기병대가 앞에 보이는 군세로 인해 날카로운 느낌을 받았다. 발키리 영지에 다다르자 영지의 군대가 모습을 보인 것이다. 일직선으로 늘어서서 병력을 크게 보이려는 수작으로 보였다.

  ‘훗!’

  적들의 기세는 강했다.

  그에 반해 보이는 병력이 고작 2만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저렇게 기세를 끌어올린 것만으로도 왜 그런지 뻔히 눈에 보였다.

   “어이가 없군. 고작 저 정도의 병력으로 그런 짓을 했단 말인가! 우리 헥토르 왕국을 너무 만만히 보고 있구나!”

  뿌드득!

  이를 가는 베아도리였다. 그도 가르딘이 해놓은 천박한 글을 보았다. 생각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일이었다. 귀족의 명예도 모르는 놈이 아닐 수 없었다. 당장에라도 목을 쳐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슈슈슝! 퍼어엉!

  “커어억!”

  베아도르가 아주 잠시 생각하는 동안 화실이 날아왔다. 적들이 기병대를 발견하고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베아도르는 자신의 부하가 화살에 맞아 죽은 것을 보자 더욱 화가 났다. 놈들은 상대방에 대한 예의도 없었다. 공격한다는 말도 없이 바로 공격하는 것이었다.

  “빌어먹을 놈들!”

  베아도르는 화가 났지만 뒤로 후퇴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기병대만으로 2만에 달하는 병력을 막아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돌아간다!”

  베아도르는 놈들의 수가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파악했다. 돌아가서 보고만 하면 놈들을 전멸시켜 버릴 수 있었다.

  “거참! 빠르게도 도망친다.”

  가르딘은 기병대가 방향을 바꾸어 도망가는 것을 보고 따로 투르를 불렀다. 투르는 창기병을 모아놓고 대기하고 있는 상태였다.

  지금까지 험난한 수련관 투르의 억압, 폭력, 만행을 겪은 크레이지드래곤 창기병은 예리한 창 그 자체였다. 보는 이로 하여금 소름이 돋게 만드는 위용을 보이고 있었다.

  카르딘이 병력으로 놈들을 공격한 것은 일부러 한 것이다.

  이제부터가 중요했다.

  허장성세가 들키지 않도록 만전을 다한다는 느낌을 받게 해주는 것이 필요했다. 그 점에 있어서 창기병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었다.

  “도망치는 놈들의 뒤를 사력을 다해 쫓는 것처럼 하고 몇 명만 보내주어라.”

  “예, 영주님.”

  “그럼 우리는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 모두 후진!”

  지금까지 날카로운 기세를 뿜어내던 병사들이 뒤로 돌아 가기에 바빴다. 원래 자리를 지키는 것이 먼저였다.

  가르딘은 우선 2만만 보여주었다. 1만의 병력은 나중을 대비하기 위한 준비로 놔두었다. 어차피 중요한 것은 주여주는 만큼 놈들이 아는 것이 목적이었다. 목적을 이루었으니 다음 단계로 빠르게 진행하는 것이 중요했다.

  파앙!

  말발굽이 땅바닥을 거세게 찼다.

  다크랜드의 오지를 내달리던 야생의 말 다크호스가 힘찬 발걸음을 한 것이다. 무척이나 빨랐다. 말들이 달리는 것이 폭풍을 연상케 한다. 검은 폭풍이 일거에 대지를 뒤엎어 버리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뒤로 물리는 발키리 영지의 병력이 화살대라면 크레이지드래곤 창기병은 화살이었다. 화살처럼 빠르게 튕겨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쌔애애앵!

  바람을 가르며 질주하는 크레이지드래곤 창기병이었다.

  검은색의 물결이 이루어졌다. 이번에 출전하는 병력은 100명이었다. 나머지 400명은 나중에 부여줄 생각이다.

  본대에 알리기 위해서 달려가던 베아도르는 뒤통수가 따끔거렸다.

  무언가가 쫓아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기병대에게 주어진 말들은 헥토르 왕국에서도 가장 빠르다는 플래시호스였다. 달리는 속도가 가히 섬광을 방불케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이었다.

  당연히 쫓아오지 못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대륙에서 손에 꼽히는 빠른 말이었다. 뒤를 돌아다 볼 필요가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 베아도르는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서 느껴지는 섬뜩한 한기와 대지를 진동시키는 광폭한 소리 때문이었다.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작은 소리가 점점 커진다는 것은 가까워진다는 뜻이 아닌가!

  ‘응?’

  타타타타타타타탁!

  “검은바람?”

  바람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플레시호스가 느리게 걷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든다. 점점 바르게 다가오는 검은 바람이었다.

  “저럴 수가! 어찌 말이 저처럼 빠르단 말인가!”

  빠른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따라잡으려고 달려오는 말은 빠르며 컸다. 일반 말보다 족히 두 배는 되어 보인다. 베아도르는 급했다. 이대로라면 따라 붙을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말 위에 타고 있는 놈들의 모습도 모두 검은색이었다. 더군다나 눈 끝을 예리하게 찌르는 날카로운 기세를 뿜어내었다. 보통 놈들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베아도르가 급히 기병대 절반 정도를 따라 빼서 막으라고 했다. 시간을 벌기 위한 방법이었다.

  “놈들을 막아!”

  “알겠습니다!”

  기병대의 병사들 모두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검은색 전투복의 창기병이 대단하다고 해도 수가 비슷하다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막을 수 있다는 생각과는 다르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베아도르는 급히 말을 몰았다.

  ‘놈들은 허장성세를 들키지 않으려고 한다! 어서 빨리 도망쳐야 한다!’

  60명 정도면 시간을 충분히 벌어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절반의 기병대를 버리는 패로 사용했다.

  투르의 앞으로 헥토르 왕국의 기병대 60명이 막아섰다.

  투르가 이끄는 창기병은 거침없었다. 정면을 향해 전진만이 있을 뿐이었다. 뒤를 본다는 것은 애초에 생각하지도 않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서로 충돌해서 누가 이기는지를 가려 보자는 식이었다.

  막아서는 기병대도 앞으로 돌진했다.

  기병대와 창기병이 동시에 부딪쳤다.

  타아앙!

  “크아아앗!”

  비명성이 일순간에 울려 퍼졌다.

  크레이지드래곤 창기병의 돌진력은 집채만 한 바위도 일순간에 뚫어버릴 정도로 강했다. 헥토르 왕국의 기병대가 아무리 뛰어나도 창기병의 돌진력을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무참하게 짓밟았다.

  말 그대로였다.

  기병대를 짓밟고 앞으로 거침없이 돌진해 나가는 투르의 창기병이었다.

  밟히고 튕겨 나간 병사들은 힘없는 나뭇잎 같았다.

  막는 것이 아니라 그저 지연이었다. 잠시간의 부딪침으로 고작 지연을 시킨 것이 기병대가 한 전부였다.

  전속력으로 질주하던 베아도르가 잠시 뒤를 돌아보다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을 본 사람의 표정이 되었다.

  “저놈들은 도대체 뭐야! 마치 검은 악마 같지 않은가!”

  기병대가 조금이라도 시간을 늦춰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놈들은 단숨에 무찌르고 자신을 또다시 쫓아도고 있었다.

  베아도르의 다리와 채찍이 빨라졌다. 어떻게 해서든 검은 악마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만이 가득 찼다.

   이대로 있다가는 사진마저 검은 악마에게 짓밟힐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타다다다다다닥!

  말발굽 소리가 베아도르의 머릿속에 천둥치는 것처럼 들렸다. 점점 소리가 커지자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왔다.

  베아도르는 나머지 기병대에게 놈들을 막으라고 소리쳤다.

  “놈들을 막아라!”

  살아남아 있는 기병대도 두려웠다. 그러나 베아도르의 명령을 무시할 수 없었다. 뒤로 돌아 크레이지드래곤 창기병을 막아섰다.

  투르의 크레이지드래곤 창기병이 거대한 창을 일직선으로 뻗은 상태였다. 그 상태로 헥토르 왕국의 기병대와 부딪쳤다.

  푸아아앙!

  “크아악!”

  이번에도 어김없이 날아가는 기병대였다. 무모한 저항에 불과했다. 창대에 부딪친 기병대는 한순간에 목숨을 잃었다. 살아서 다시 말을 탈 수 없는 세상으로 가버렸다.

  다만 베아도르가 거리를 벌릴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기는 했다.

  투르를 비롯한 창기병들이 모두 멈추어 섰다. 가르딘의 계획은 여기까지였다. 더 이상의 추격은 계획을 망치는 일이 되었다.

  “그래도 쉽게 보내주면 안 되겠지.”

  투르가 말안장의 뒤쪽에 놓아둔 거대한 배틀엑스를 한 손으로 가뿐히 들었다. 배틀엑스는 힘이 있는 자들만이 사용하는 도끼다. 도끼 중에서도 가장 무거운 무게를 자랑한다. 그런 일반적인 배틀엑스보다 세 배는 더 무거운 것이 투르가 들고 있는 배틀엑스였다. 한 손으로 든다는 것 자체가 기가 막힐 일이었다.

  투르는 배틀엑스를 가볍게 들고서는 도망치는 베아도르를 겨냥했다.

  투르의 몸 안을 활개 치는 광천패황신공이 급속하게 운용 되었다. 활성화된 활화산 같은 기운이 투르의 어깨와 팔로 이어져 나갔다. 패기와 광기가 뭉쳐진 힘이 배틀엑스에 전해졌다. 배틀엑스가 흉흉한 기세를 뿜어내었다. 배틀엑스의 도끼날에 날카로운 기운이 서렸다.

  “잘 가라!”

  휘익!

  배틀액스가 긴 곡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일반적으로 배틀엑스는 일직선으로 날아가지 않는다. 던지면서 부메랑과 같은 곡선을 기리는 것이 정석이다. 또한 사각에서 돌아오는 형대로 날아가기에 막는 것도 쉽지 않다. 차라리 일직선은 예측이 가능하기에 막아내기 쉬운 편이다. 그렇다고 투르의 배틀엑스가 곡선이기는 하지만 빠르지 않다는 것은 아니었다. 힘과 빠르기 모두 일반 병사가 상상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광천패황신공의 위력이 고스란히 실려 있기 때문이다.

  “이놈들! 기필코 복수를... 크앗!”

  어느새 날아온 배틀엑스가 베아도르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엄청난 거리 차이였다. 도끼가 날아온다고 생각할 수 없는 거리였음에도 불고하고 베아도르를 공격했다.

  “으아아아악!”

  오른쪽 어깨 부분이 예리하게 잘려 나갔다. 팔이 속수무책으로 잘려 바닥에 떨어졌다. 떨어진 팔이 바닥에서 파닥파닥 뛰었다.

  베아도르는 고통 속에 몸부림치면서도 도망치는 데 사력을 다했다. 여기서 멈추었다가는 팔이 아니라 목이 잘려 나갈 수 도 있었다.

  척!

  원심력을 이용한 투르의 배틀엑스 던지기였다.

  다시 날아온 배틀엑스를 잡은 투르는 빠르게 멀어지는 베아도르를 잠시 응시하다 말을 돌렸다. 목적은 이룬 셈이었다.

  “돌아가자.”

  “예! 대장!”

   헥토ㅤㄹㅢㅤ 왕국의 진영.

  발키리 영지의 코앞에까지 온 상태에서 기병대를 기다린 헥토르 왕국이었다. 기병대가 한참 후에 돌아왔다.

  100명이나 되는 기병대 중에서 돌아온 기병대는 고작 1명.

  그것도 온전히 돌아오지 못했다. 팔이 잘리고, 출혈이 너무 심해 죽기 일보 직전이었다. 100명의 기병대가 모두 전멸 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살아온 베아도르는 가물거리는 정신을 부여잡고, 발키리 영지에 대한 일을 설명했다. 죽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자신을 이렇게 만들고, 기병대를 전멸시킨 발키리 영지에 대한 원한이 너무 컸다.

  멜버른 왕정마법사가 베아도르를 치료하며 설명을 들었다.

  베아도르의 말은 들은 후 곧바로 사이너스 국왕에서 전했다.

  멜버른 후작도 안색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이미 대부분의 마법력을 소모한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 마법을 다시 사용하느라 얼굴이 창백했다.

  발키리 영지에 대한 설명을 모두 들은 사이너스 국왕은 화를 참지 못했다. 놈들은 철저히 자신을 농락했다.

  “감히 짐을 향해 기만책을 부렸단 말인가!”

  “발키리 영주는 최대한 자신들의 전력을 들키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아직 제국의 병력을 보충받지 못한 상태입니다. 이대로 시간을 벌어서 우리를 이곳에 묶어두려는 속셈입니다!”

  전력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상대를 도발했다. 도발해서 함정이 있음을 인지하게 만들려는 수작을 부렸다. 또한 기병대를 향해 필사적으로 추격한 것으로 볼 때, 결론은 하나였다.

  전쟁의 시간을 지연시키려는 전략을 구상한 것밖에는 없었다.

  사이너스 국왕이 칼슈타인 공작에게 물었다.

  “발키리 영지의 영주를 어떻게 생각하나?”

  “상당한 전략가입니다. 우리를 도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비밀병기로 창기병을 구상해 놓았습니다. 기병대는 우리 왕국의 최정예 부대의 군사들이었습니다. 한순간에 쓸어버릴 정도면 상대의 창기병이 예상 이상으로 강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전술이 수적 열세를 숨기기 위한 전략인 것 같습니다. 시간을 지체하는 것이 우리에게 득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겠지.”

  “또한 발키리 영주는 승리를 위해서는 명예를 생각하지 않는 인물 같습니다. 상대하기 무척이나 까다로운 자입니다. 이런 자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 자체가 위험을 자초하는 일입니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오른다.

  지금가지 상대의 전략에 농락당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당장에라도 놈을 잡아 껍질을 벗기고 싶은 심정이다.

  필요한 것을 모두 확인했으니 이제는 진격하는 일만이 남았다. 그동안 쌓였던 것을 전투로 화끈하게 풀어버리면 되었다.

  “전군에 알려라! 당장 진격하라고!”

  “명을 받듭니다!”

  헥토르 왕국의 진격 명령이 떨어졌다.

  지금까지 머물고 있던 진영을 빠르게 수습하고, 모든 병력이 일사불란하게 진격 준비를 마쳤다. 헥토르 왕국의 정예병들은 많은 훈련을 거친 병사들이었다. 준비는 빠르고 신속했다.

  진격준비가 끝이 나자 능숙하게 돌진하기 시작했다.

  발키리 영지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다. 막아서는 것은 무엇이든 부숴버릴 수 있는 구세를 보여주었다.

  멍! 멍! 멍!

  가르딘의 옆에 있던 개가 짓는다.

  개가 연거푸 세 번 정도 짖었다. 이것이 신호였다. 가르딘은 신호를 울릴 때 개들만 들을 수 있는 개피리를 사용하도록 했다. 몬스터들처럼 소리가 들리든 말든 상관없는 것들이야 종을 사용하면 되었지만 상대는 인간이었다. 이상하다는 낌새를 느끼게 해서는 안 되었다.

   개피리는 대륙에서 아주 우연하게 발견이 된 것이다. 쇠로 된 피리를 실수로 떨어뜨려 휘어졌다. 소리가 나지 않는데, 이상하게 개들이 반응을 보였다. 그때부터 일부에서 사용이 되기 시작했다.

  가르딘은 개피리를 이용해서 신호를 보내도록 했다. 각 분기점에 도착할 때마다 신호의 횟수를 조절했다.

  “1단계에 돌입했군.”

  “조화진을 가동하겠어요.”

  “그렇게 해.”

  파멜라가 1단계 진법인 조화진을 개진했다. 조화진은 주변 사물과 동화되어 그다지 차이를 보이지 않다가 점차적으로 흐름을 분리시키는 진법이다. 시각적으로 빠져들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장점이 있다. 일단 빠져들고 나면 다시 방향을 찾기 어렵게 될 것이다.

  “놈들도 시간이 지나면 눈치를 채겠지.”

  1단계에 개진한 조화진만으로는 헥토르 왕국군을 막아낼 수 없다. 그저 시간을 더 버는 수법으로만 사용이 가능하다. 본격적인 것은 2단계에 돌입했을 때부터다.

  “투르!”

  “예! 영주님!”

  “너는 즉시 훈련한 지점으로 이동한다. 생문이 열리는 다섯 개의 지점을 신호에 따라 움직이면서도 막아내야 한다.”

  “알겠습니다, 영주님!”

  투르는 시시했던 기병대의 접전을 생각하며 투지를 불태웠다. 무섭도록 강렬한 투지였다. 눈앞에 적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는 광전사와 같았다.

  “황궁에 소식이 알려진다고 해도 병력이 이곳까지 오기 위해서는 시간이 20일 이상 소요될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는 최대한 놈들을 막아낸다. 전략대로만 된다면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가르딘이 예상한 대로만 된다면 헥토르 왕국은 발키리 영지에 들어오지도 못한다. 3만의 병력이 있기는 하지만 정면 대결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정명대결을 한다면 한순간에 모두 전멸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1단께 신호가 울리고 난 후 얼마 있다가....

  멍! 멍! 멍!

  개가 또 다시 짖었다.

  헥토르 왕국이 2단계에 들어섰다는 뜻이다.

  ‘훗!’

  가르딘의 입가에 웃음이 번져 나왔다. 스스로는 안전 제일 주의를 내세웠지만 전투가 벌어지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다지 생소하지는 않았다. 수많은 전투를 벌이면서 생겨난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본인이 인정하지 않을 뿐이기에 무시했었던 감정이었다.

  그것은 필리언, 갈라, 유타도 마찬가지였다. 한동안 쉬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들의 눈동자가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전투가 벌어지자 몸 안에 숨죽이고 있던 본성이 칼을 내밀었다.

  “왜 웃냐! 미친놈처럼!”

  “너도 눈은 웃고 있잖아.”

  “그런가.”

  “그렇구나!”

  가르딘과 동기들은 알고 있었다.

  꽤 정상적이지 않은 행동임을 말이다.

  “변환진과 미로진을 가동하겠어요!”

  “그렇게 해라.”

  파멜라가 변환진과 마로진을 가동시켰다.

  변환진은 조화진의 변화를 가속시키는 역할을 한다. 놈들이 미처 대처하지 못하는 순간에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또한 미로진은 놈들의 시선을 분산시킨다. 방향을 혼란하게 만들어 놈들의 병력을 분산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3단계에 들어서기 전에 발리스타를 모두 앞의 능선으로 이동시켜.”

  “알겠다.”

   발리스타는 가르딘이 드워프 마을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때를 대비하기 위한 비밀병기라고 할 수 있었다. 발리스타를 시범적으로 사용해 보았다. 실전에서 사용하기 전 훈련을 위한 목적이었다.

  훈련에 참여한 병사들 모두 발리스타의 위력에 모두 놀랐다. 굉장한 비거리와 더불어 파괴력이 압도적이었다. 또한 가장 놀라운 것은 정확성이었다. 아무리 거리가 멀고, 파괴력이 강해도 정확성이 떨어진다면 무용지물이었다. 드워프가 만들어놓은 발리스타는 계산한 대로 수천 미터를 날아갔다.

  굉장히 무서운 무기였다.

  “모든 병력은 이곳에서 대기를 하며, 놈들이 4단계를 통과했을 때를 대비한다.”

  최대한 3단계 안에서 놈들을 괴롭히고 막아내야 한다.

  그래야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었다.

  헥토르 왕국의 진격은 거침없었다.

  일사불란하게 진형을 유지하며 적들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는 상태였다. 산발적인 공격 따위는 무시해 버릴 수 있는 방패진형이었다.

  맨 앞에서 칼슈타인 공장이 타이탄기사단을 이끌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 뒤로 각 진영의 병사들이 따르고, 중심에 사이너스 국왕이 자리하고 있었다. 뒤는 뱅가너 공작이 맡고 있는 상태였다.

  마법사를 이끌고 있는 멜버른은 이상한 감각을 맛보고 있었다. 주변에 분포하는 마나의 성질이 변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10만에 0달하는 병사들을 치료하는 데 소모한 마법력으로 인해, 감각이 예리하지 않은 상태였다. 30명의 마법사들 모두 지쳐 있었다. 진군을 하는 것만으로도 피로가 쌓이고 있었다. 최대한 쉬면서 마나를 보충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착각인가?”

  대기 중의 마나가 일시적으로 변하는 일도 일어나기 때문이다. 지형 변화, 자연재해로 인해 마나가 흔들리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그런 경우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마나가 흔들리려면 보통 변화로는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마법사들의 경우 감각이 예리하다. 보통 사람이 생가하지 못하는 부분을 볼 수 있다. 또한 실력이 상승할수록 그러한 감각은 더욱 날카로워진다.

  멜버른 후작은 조금 불안했다.

  불안감이 들지만 보고할 수는 없었다. 사이너스 국왕이 분노한 것을 알았다. 분노한 사이너스 국왕에게 활실치도 않은 말을 전하기는 어려웠다. 또한 국왕의 분노와는 별개로 불안감을 조성하여 대군의 사기도 저하시킬 수 있었다. 입을 열기 어려운 처지에 놓인 멜버른 후작이었다.

  ‘기우겠지.’

  멜버른은 불안감을 애써 지웠다. 괜히 불안감을 조장할 필요는 없다고 보았다.

  그때였다.

  맨 앞에서 진형을 이끌던 칼슈타인 공작이 진군을 멈추었다.

  칼슈타인 공작은 오러를 끌어올려 보았다. 주변의 흐름이 변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전진하는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조금씩 뒤틀리고 있다는 것을 파악했다. 공간과 공간이 뒤틀려서 방향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오러마스터가 방향감각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그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한참을 진격할 때도 느끼지 못했다. 너무 미세한 흐름 변화였다. 빠른 진격 속도에 맞추기 위해서 주변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결과였다. 분노로 인해 경각심이 무뎌진 것을 깨달았다. 설마 하는 심정이 사실로 드러나게 되었다.

  ‘응?’

  또다시 변화했다.

  흐름이 이제는 급속하게 변했다. 앞에 보이던 풍경이 갑자기 변해버린 것이다.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다면 믿지 못할 기현상이었다.

  칼슈타인 공작이 멈춘 것을 이상하게 여긴 병사들도 환경이 갑자기 변하자 어리둥절해졌다. 멀쩡하던 공간이 변했으니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런 기현상을 자주 겪어 보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이게 뭐야?”

   “왜 앞이 변한 거지?”

  “우리가 환상을 보는 건가?”

  저마다 소곤거릴 만했다. 이런 현상을 본 적이 있기나 하겠는가! 전투가 벌어지면 달려들기만 했던 병사들이 말이다.

  칼슈타인 공작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뒤통수를 제대로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설마 했는데 놈들의 기만책 역시 전술이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도 함정이란 말인가?”

  만약 그렇다면 정말 심각한 일이었다. 이 일대에 아무래도 마법진이 펼쳐진 것 같았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불가능했다. 앞에 무엇이 있는지 확이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칼슈타인 공작은 그 즉시 사이너스 국왕에게 갔다.

  사이너스 국왕 역시 진군이 멈추자 의아하게 여겨 밖을 내다보았다.

  "무슨 일인가?“

  “아무래도 함정인 것 같습니다.”

  “함정? 그게 무슨 말이야! 어떻게 이 넓은 대지에 함정이 있다는 것인가!”

  “마법진을 만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마법진!”

  칼슈타인 공작도 제대로 판단을 하지 못했다. 나타난 현상을 놓고 보면 마법진이 확실한 것 같다. 하지만 넓은 대지에 마법진을 설치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기 때문에 확신을 할 수 없었다.

  “멜버른은 어디 있느냐?”

  사이너스 국왕이 멜버른 후작을 불렀다.

  사이너스 국왕의 부름에 멜버른 후작이 서둘러서 달려왔다.

  “부르셨습니까, 국왕 전하!”

  “지금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라!”

  “알겠습니다, 국왕 전하!”

  멜버른 후작은 그 즉시 마법사들을 풀어 마나의 흐름이 이상해진 원인을 찾았다. 한 시간 정도가 소모가 되었다.

  멜버른 후작은 그 즉시 마법사들을 풀어 마나의 흐름이 이상해진 원인을 찾았다. 한 시간 정도가 소모가 되었다.

  멜버른은 확인을 하면서도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마법력이 떨어진 마법사들에게 마나의 흐름을 완벽하게 파악하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더군다나 앞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뚫어낸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종류의 마법진이 있단 말인가?”

  멜버른 후작이 희미하나마 가능성을 찾았다. 이것은 마법진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마법진과는 달랐다. 마법진의 경우 마법사의 마법력이나 마정석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에 반해 이곳에서는 마법력이나 마정석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주변의 흐름과 마나의 성질이 변화를 일으켜 일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마법력이 원상태이고, 시간이 많았다면 더욱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은 시간이 얼마 없었다.

  급한 대로 당장 확인한 내용을 보고를 해야 했다.

  멜버른 후작이 사이너스 국왕에게 살펴본 결과를 말하였다.

  “아무래도 마법진과 비슷한 진인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마법진이면 마법진이지, 비슷한 진이라니. 짐을 놀리는 것인가?”

  “아니옵니다. 제가 감히 어찌 국왕 전하에게 그런 말을 하겠습니까? 저를 비롯한 마법사들 대부분이 마법력을 소진한 상태입니다. 지금 당장 앞에 펼쳐진 마법진을 완벽하게 확인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끄응!”

  일이 꼬이고 있었다.

  마법사가 확인을 제대로 할 수 없다니! 그것도 병사들을 치료하느라 소모된 마법력 때문에 말이다. 자신이 지시를 한 일이니 지금에 와서 후회에 봤자 소용없었다.

   “마법력을 회복하려면 얼마나 걸리겠는가?”

  “최소 5일은 소모될 것입니다.”

  “5일이나! 어찌 그리 오래 걸리는가?”

  이곳은 대기의 마나가 뒤틀린 장소입니다. 무리하게 마나를 운용하다가는 마나서클이 모두 깨질 수 있습니다.“

  마법사에게 마나서클이 깨지는 것은 최악의 상황이나 마찬가지다. 마법력을 다시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한 번 깨진 마나서클은 절대 다시 회복하지 못하는 것이 마법계의 정석이었다. 간혹 있을 수 있지만 드래곤하트를 흡입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했다. 드래곤하트가 굴러다니는 돌멩이도 아니고 어떻게 흡입하는가!

  “헛!”

  사이너스 국왕의 입에서 헛바람이 나왔다.

  발키리 영주의 영악함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놈은 처음부터 이런 상황을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일부러 병사들을 중독시켜 마법사들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자신을 충동질해 앞뒤를 잴 수 없게 만들었다. 서둘러 진격을 하게 만들기 위한 기만책 역시 훌륭하다고 할 수 있었다.

  발키리 영주에게 계속적으로 농락당하고 있었다.

  놈의 목적은 뻔히 보였다. 일부러 시간을 지체하도록 하고 있었다. 알고 있는데도 뚫어내지 못하고 허우적거리고 있는 상태였다.

  속에서 염불이 터졌다.

  화가 머리끝까지 나면서도 사이너스 국왕ㅇ은 최대한 화를 참아내었다.

  화를 낸다고 해서 작금의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다. 군주는 항상 냉정해야 한다. 냉정하지 못한 판단으로 인해 올 파급효과가 크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칼슈타인 공작!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마법사들의 회복을 위해 5일씩이나 기다리는 것은 좋은 판단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시간은 절대적으로 불리합니다. 더군다나 5일을 기다려 마법사들이 회복한다고 해서 방법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병사들을 분산시켜 진격을 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합니다. 이 넓은 대지에 마법진을 견고하게 모두 설치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방향을 찾기만 하면 그곳을 집중적으로 노리면 됩니다.”

  멜버른 후작은 불쾌했다.

  칼슈타인 공작의 말은 자신들을 무시하는 발언이었다. 하비만 그 말이 틀리지 않기에 가만히 있어야 했다.

  사이너스 국왕은 쉽사리 반응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발키리 영주의 손바닥 안에서 놀았다. 지금의 상황 역시 그가 의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분명 칼슈타인 공작의 방법은 옳은 말이다. 지체할수록 놈들의 방어선은 더욱 강해질 것이 확실하다. 딱히 칼슈타인 공작의 방법 이외에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항상 올바른 결정을 했던 칼슈타인 공장이었다. 이번에 실패를 한 번 하기는 했지만 그의 의견을 무시하는 것은 좋지 못했다. 한번 정도 더 믿어보았다.

  “공작의 뜯대로 하게.”

  “감사합니다, 국왕 전하!”

  칼슈타인 공작은 즉시 병력을 이동시키기 위한 준비를 하기 위해 움직였다.

  남겨진 멜버른 후작에게 사이너스 국왕이 한마디했다.

  “칼슈타인 공작이 의도가 있어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니니 너무 상심하지 말게.”

  멜버른 후작이 황송한 듯 고개를 조아렸다.

  “아닙니다, 국왕 전하!”

  “대신에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마법력을 회복하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칼슈타인 공작은 병사들을 열 개의 조로 나눈 후, 각 조에 3,000명의 병사들을 구성했다. 각 조그이 명령체계를 위해서 타이탄기사단의 기사 세명을 배치했다.

  “진군은 가급적 천천히 하되 방향을 제대로 잡도록 하고, 기사들은 오러를 끌어올려 대기의 흐름을 파악하며 움직여라. 또한 마법진의 경우 각 지역마다 마법사나 마적석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곳을 될 수 있으면 파괴하도록 해라.”

  “예, 공작님!”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도록 다짐을 받아놓았다. 이번 임무는 기사들과 병사들의 유기적인 움직임이 중요했다. 서로 맡은 바 진영을 확실하게 정해놔야 하는 상황이었다.

  열 개의 조는 각자 맡은 방향을 잡고 대기했다.

  “모두 앞으로 가라!”

  척! 척! 척!

  기사들의 지휘 아래 병사들이 열 개의 방향으로 움직여 나갔다. 3만이나 되는 병력이 이동하는 것이었다.

  칼슈타인 공작은 병사틀이 이동하며 앞으로 나가는 것을 뒤에서 묵묵히 보다가 경악했다.

  “이...럴 수가!”

  병사들이 나아간 방향으로 한참 멀어지자 모습들이 보이지 않았다. 바로 앞에 있었던 병사들이 사라진 것이다.

  칼슈타인 공작의 동요는 약과였다. 지켜보고 있던 병사들마저 유령에 홀린 듯 한 기분이 들었다.

  “공간과 공간의 뒤틀림이 이 정도란 말인가?”

  섣불리 대규모 병력을 움직였다가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앞으로 진격한 부대가 성공하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어 보였다.

  멍! 멍! 멍!

  가르딘은 개 짖는 소리에 놈들이 3단계 진법 안에 들어갔다는 것을 파악했다. 계획대로 놈들은 전력을 분산시켰다.

  전쟁은 잔인하다. 상대를 배려한다. 그것은 사치다. 이겨도 내가 살아야 하는 것이 전쟁이다. 필요 없는 배려는 지옥의 구렁텅이에 버린 지 오래였다. 가장 잔인하고 무섭게 끝을 내는 것이 아군의 피해가 적다는 것을 전장에서 배웠다.

  “지옥에 온 것을 환영한다.”

  끝까지 한다면 가르딘도 끝까지 갈 생각이다.

  적을 전멸시킨다고 해도 전혀 동정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한 놈도 살려두지 않을 계획이었다.

  “크레이지드래곤 창기병은 바로 움직여서 놈들을 분쇄시키라고 해!”

  “알겠습니다, 영주님!”

  가르딘이 병사에게 명령을 내리자 그는 즉시 크레이지드래곤 창기병에게 신호를 보냈다.

  “놈들의 공성기가 있는 지점은 확인됐나?”

  가르딘이 필리언에게 물었다. 전투는 크레이지드래곤 창기병에게 맡기고, 다음 작전을 구상했다.

  “군대의 뒤쪽에 자리한 것으로 확인됐다.”

  “잘됐군.”

  가르딘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필리언도 알고 있었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수단이 더러우면 어떠하리! 이거면 장땡이다. 지고 나서 후회해 봤자 알아주지도 않는다. 그것이 가르딘과 동기들의 지론이다.

  “창기병의 공격이 끝나는 대로 알지?”

  “물론.”

  진법의 안으로 들어간 헥토르 왕국 군대의 병사들은 주변이 변화하는 것 때문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전후좌우를 모두 살피며 천천히 움직여 나갔다. 신경이 곤두서자 체력 소모가 두 배로 빨랐다.

  병사들의 앞으로 흐름을 파악하는 타이탄기사단의 기사 클로드와 제롬, 마이언은 오러를 끌어올려 대기의 흐름을 파악하는데 주력했다.

  “마법진을 경험해 보기는 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인데, 대기의 흐름이 전혀 잡하지 않아!”

  “그러게!”

  “앞으로 제대로 가는지도 모르겠군.”

  그들은 일직선으로 가려고 했다. 발키리 영지와는 그다지 먼 거리가 아니기에 앞으로 가다 보면 마법진의 끝이 보일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방향을 잡지 못해 같은 자리를 들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찌릿!

  클로드와 제롬, 마이언의 눈가를 찌르는 광폭한 살기가 전해졌다. 무섭도록 강한 기운이었다. 살기와 광기가 뒤섞여있었다. 정예기사의 몸을 움찔거리게 만들 정도였으니 병사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뭐지?”

  타다다다다닥!

  거칠고, 광폭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검은 질풍을 연상케 하는 무리가 클로드와 제롬, 마이언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생각이고 자시고 할 것도 없는 상황이었다. 너무 빠르기에 서둘러 병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적이닷! 모두 방어진형을 갖추어라!”

  차차착!

  기사들의 명령에 따라 병사들이 병기를 들고 방어선을 구축했다. 이중, 삼중이 아니라 사중에 달하는 방어진형이었다. 헥토르 왕국의 전형적인 방어구축 진형이라고 할 수 있는 타이탄 방어술이었다. 앞의 병사들을 뒤에서 잡아주고, 그 뒤의 병사들이 다시 잡는다. 굳건한 바위를 연상케 하였다. 달려오는 돌진력을 단단한 바이로 막아서 분쇄시킨다. 그것이 타이탄 방어술의 목적이었다.

  그 앞으로 클로드와 제롬, 마이언이 버티고 있었다.

  “적은 얼마 되지 않는다! 모두 방어에 집중해라! 일단 막고 놈들을 가둔다!”

  창기병에 대한 전형적인 전술이었다. 일단 막고 포위 형식으로 둘러싸면 아무리 강한 창기병이라고 해도 방향과 힘을 잃어 갇히게 된다. 돌진력이 떨어진 창기병은 별사들에게 별것 아닌 존재가 된다. 창기병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겠지만 여전히 그 문제는 창기병의 발목을 잡았다.

  “건방진 놈들! 감히 우리가 누구라고!”

  “헥토르 왕국의 힘을 보여주마!”

  고작 500기의 창기병으로 3,000명의 병력을 상대하겠다니 제정신이 아닌 모양이었다. 클로드와 제롬, 마이언은 비웃었다.

  그러나 비웃음은 한 번의 결돌로 사라졌다. 아니! 표정 자체가 웃음에서 격악으로 변하는 데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쿠아아앙!

  “크아아아앗!”

  비명성이 천지를 울렸다.

  달려오는 다크호스의 돌진력과 겁을 모르는 크레이지드래곤 창기병의 놀라운 위력이 공개되었다.

  굳건한 바위라고 생각했던 타이탄 방어술이 한순간에 허물어졌다. 아니, 허물어졌다기보다는 밟혀서 짓이겨 버렸다고 하는 것이 맞았다.

  입을 다물지 못했다.

  클로도, 제롬, 마이언은 처음에는 놀랐다가 분노하기 시작했다.

  한 번의 돌진으로 700명이나 죽어 나가버렸다.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병상들은 일사불란할 수 없었다. 압도적인 파괴력이었다. 이것은 부딪치면 사망이라는 공식과 같았다. 앞으로 돌진했던 크레이지드래곤 창기병이 다시 돌아서 역으로 돌진했다.

  다크호스의 장점이 여기서 발휘가 되었다. 다크호스는 대퇴부를 비롯한 다리 근육이 일반 말보다 훨씬 두껍고 단단하다. 짧은 거리에서 가속도를 내는 시간이 짧았다.

  돌진력을 무기로 하는 창기병에 짧은 시간의 가속도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장점이었다. 순식간에 속도를 올린 크레이지드래곤 창기병이 질주했다.

  그 선두에 투르가 서서 배틀엑스를 이리저리 휘둘렀다. 한번의 휘두름에 네 명에서 다섯 명이 반토막이 되어 육편이 이리저리 날아가 버렸다. 헥토르 왕국의 병사들이 썩은 지푸라기처럼 잘려 나갔다.

  병사들은 도륙하는 투르의 과격한 모습에 화가 난 클로드가 투르를 막아섰다.

  “이놈!”

  클로드는 오러익스퍼트 급의 기사였다. 검에서 오러의 기운이 솟아올랐다. 클로드는 우선 놈의 배틀엑스를 막을 생각이었다. 배틀엑스가 무식하게 크기는 하지만 오러를 사용한 검을 부러뜨릴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댕강!

  쩌저저적!

  클로드의 검이 반항 한 번 제대로 못 하고 잘려 나갔다. 그와 동시에 클로드의 머리통이 배틀엑스에 노출되었다. 무방비 상태의 머리통을 반으로 쪼개버리는 투르였다. 기사든 병사든 잘려 나가는 것은 별반 차이가 없었다. 머리가 쪼개진 클로드의 몸이 바닥에 쓰러졌다.

  “헉!”

  제롬과 마이언도 이번에는 몹시 놀랐다. 클로드는 타이탄 기사단들의 기사들 중에서도 가장 강한 축에 속했다. 그런데 방어조차 제대로 못 하다니, 투르가 지옥에서 올라온 괴물처럼 보였다.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크레이지드래곤 창기병은 돌진력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병장기를 사용하는 기술과 힘이 엄청났다. 일반 병사들은 그들 한 명의 힘을 버티지 못하며 나가떨어졌다.

  “뭐가 이리 싱거워!”

  투르를 비롯한 창기병들 대부분이 입가에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지옥을 경험한 이들만 지을 수 있는 웃음이었다.

  소름이 돋는 장면이었다. 병사들은 한순간에 도륙해 버리고 저런 웃음을 짓다니 인간들이 아니었다.

  “이 잔인한 놈들!”

  “닥쳐!”

  제롬과 마이언의 말에 투르가 시끄럽다고 소리쳤다. 죽으면 다 똑같다. 잔인하게 죽나, 그냥 죽나 모두 같다는 말이다. 투르에게 적은 죽여야 할 대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쳐들어온 주제에 뭐가 이리 말이 많아!”

  “이놈!”

  제롬과 마이언이 화를 참지 못하고 투르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만용이었다. 클로드조차 한번의 도끼질에 나가떨어졌는데, 그들이 나선다고 달라질리 만무했다. 투르는 전과 동일하게 상대해 나갔다. 즐거운 듯이 배틀엑스를 휘둘렀다.

  휘이익! 휘이익!

  철퍼덕! 철퍼덕!

  목을 잃은 두 개의 몸뚱이가 바닥에 쓰러졌다. 헥토르 왕국은 1개조가 완전히 괴멸되는 순간이었다.

  “그럼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별다른 감흥은 없다. 다음 장소로 이동해서 놈들을 도륙하면 그만이었다. 광천패황신공은 전투를 거듭할수록 더욱더 강력해지고 있었다. 그에 따라 성향도 전투적으로 바뀌어 나갔다. 첫 전투라고는 믿을 수 없는 호전성이었다. 피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가르딘은 투르의 전과를 보고 받았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수간에 3개조를 격멸시켰다. 500명으로 9,000명을 죽인 것이다. 창기병의 돌진력으로 상대를 격동시키고, 혼란한 상황에 처한 병사들을 일방적으로 도륙한 결과였다.

  “거참! 생각보다 대단하네!”

  몇 명은 죽을 줄 알았다. 전쟁에서 한 명도 죽지 않고 이긴다. 그건 상상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전쟁이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유치한 일인가!

  그러나 일방적으로 이겼다고 해도 창기병의 체력이 마냥 지속되는 것은 아니었다. 다음 조를 공격할수록 희생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컸다. 애초에 놈들의 병력이 너무 많았다. 아직은 사용할 때가 많은 창기병이다. 이대로 힘을 모두 소진 시키는 일은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없다.

  “투르는 어떻게 하고 있지?”

  필리언은 이곳에 남아 상황을 전해 듣고 있었다. 갈라와 유타는 발리스타를 쓸 지점에 나가 있었다.

  “남은 조를 상대하겠다고 하던데.”

  “체력이 회복될 수 있도록 쉬면서 하라고 해! 무리한 공격으로 인해 돌진력이 감소하면 창기병은 한순간에 괴멸될 수도 있어.”

  “그렇겠지. 하지만 그놈이 내 말을 듣겠냐! 한 번 전투에 들어가면 그 광기를 제어하기 쉬지 않아.”

  “쯧쯧!”

   가르딘이 한심하다는 듯이 필리언을 보았다.

  아직 열어덟 살밖에 되지 않는 놈을 다스리지 못한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야! 너 그러는 것 아니다! 날 한심한 놈으로 보기 전에 네가 하니 짓을 생각해! 그놈에게 가르친 게 도대체 뭐냐? 어떻게 했기에 사람을 그런 놈으로 만들었냐?”

  필리언은 한동안 투르 때문에 속을 무지하게 썩었다. 그래서 놈의 뒷조사를 좀 해보았다. 투르가 살았던 마으로 가서 투르의 가정 조사를 해본 것이다. 들어보니 어이가 없었다. 마을 사람들 애기를 들어보니 순진하다 못해 바보 같은 놈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사람이 변했다는 것이 아닌가! 그건 즉 가르딘이 어떤 짓을 했다는 것이다. 인간의 성격을 갑자기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그다지 없다. 악마의 수법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었다.

  가르딘의 말이 국생해졌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투르의 성격을 더럽게 만든 것은 가르딘이었다. 그 일에 대해 일말의 책임은 니끼고 있었다.

  “네가 못 하면 다른 사람 시키면 되잖아!”

  가르딘이 방법을 알려주었다.

  가르딘이 바라본 곳에는 스필언과 미토스가 서 있었다. 투르에게 있어 가르딘 다음으로 무서운 사람이 바로 스필언과 미토스라고 할 수 있다.

  기사의 정석이라고 불리는 스필언과 미토스다. 기사와는 거리가 먼 이단아인 투르에게 있어 정석보다 무서운 사람이 없었다. 따지고 자시고가 없다. 이유불문하고 명령과 체계를 우습게 여기면 개 패듯이 팼던 스필언과 미토스였다.

  “그렇군!”

  “나 참! 머리가 안 돌아가는 놈하고는 얘기가 안 통해! 차라리 오크하고 담화를 나누는 게 낫지, 너는 어떻게 오그보다 더 힘드냐!”

  부들! 부들!

  필리언이 화를 억지로 참았다. 역시 말을 하면 이길 수 없는 녀석이었다. 남의 약점을 굳이 지적하지 않아도 됨에도 불구하고 꼭 지적하는 놈이었다.

  “너 다음에 두고 보자!”

  삐친 필리언이 즉시 스필언과 미토스에게 달렸다.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전투였다. 가르딘과 결판은 전쟁이 끝난 후 하면 되었다. 동기들 대부분이 속이 좁다. 원한은 잊어버리지 않고 꾹꾹 쌓아두어서 몇 배로 부풀린다.

  몬스터 중에서 화가 나면 참지 못해 심장이 터져 버리는 것이 있다. 이름은 벤타이라고 한다. 그래서 붙여진 속담이 하나 있었다. 벤타이 소갈딱지 같은 놈이라고 하면 속이 무척이나 좁은 놈이라는 말로 전해진다. 동기들 모두 그와 별반 차이 없다고 보면 되었다.

  달려가는 필리언을 보며 가르딘은 어이없게 웃었다. 어린 놈이나 다 큰 놈이나 삐치는 것은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자기도 비슷하면서 남은 잘도 평가를 하는 가르딘이었다.

  “참! 애도 아니고, 그 정도 갖고 그래.”

  “영주님이 조금 심하셨어요.”

  파멜라가 옆에서 지켜보더니 한심한 듯 영주와 기사단장을 바라보았다. 노는 수준이 결코 영주와 기사단장이 아니었다. 꼭 애들끼리 싸우는 것처럼 유치했다.

  “뭘! 늘상 우린 이러고 놀아!”

  가르딘과 동기들은 하찮은 말꼬리 잡기로 놀고 그랬다. 이게 보기엔 한심해도 노는 사람들은 재밌다. 동기들과 술 먹고 얘기하다가 한 명이 화장실에 가는 날이면 그놈은 찍힌 것이다. 술상 위의 안주가 된 것이다. 어떤 놈이 건드려도 되는 상황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다들 술 마시면서 혼자 화장실 가기 두려워한다. 때에 따라서는 한 명을 더 데리고 가야 안심이 되기도 한다. 혼자 죽는 꼴을 절대 보지 않는다.

  “애들 같아요!”

  “나이 먹었다고 달라지는 게 아니야! 그저 현실과 타협하며 주변의 눈치를 보기 때문에 그런 거지. 우리끼리만 있는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

  나이 먹었다고 달라진다.

  그건 아니라고 본다. 사람의 본성은 어디까지나 같다. 그저 사회를 살아가다 보니 막히는 장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순응하며 본성을 숨기는 것뿐이다. 보통 사람들이 나이 먹고 철 들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좋은 말이 아니라 슬픈 현실을 반영하는 말이라고 할 수도 있다.

  “발리스타로 공격할 때 필요한 기름은 다 채웠지.”

  “이미 준비는 다 되었어요.”

  미안한 말이지만 기름이 필요한 때였다. 거리가 멀어질수록 요격률이 낮아진다. 드워프가 준 발리스타의 위력을 못 믿는 것은 아니지만 만약의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방법이다.

  “크하하하하!”

  “좋다! 다 죽는 거다!”

  “와아아아!”

  또다시 1개조를 격멸시킨 투르의 크레이지드래곤 창기병이었다. 압도적인 실력 차이에 본인들도 믿지 못할 지경이었다. 점점 자만심이 차올라 체력이 고갈되고 있다는 생각마저 잊어버리고 있었다. 헥토르 왕국의 정예병이 별것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 얼마 남지도 않았다.

  헥토르 왕국이 보낸 2개조만 더 부숴버리면 오늘 맡은 임무를 모두 끝낼 수 있었다. 한시도 지체하지 않았다.

  “다음 지점으로 이동한다!”

  빠르게 다음 지점으로 이동하는 투르였다. 크레이지드래곤 창기병 중에서도 힘이 점점 끓어 넘치는 인물이 투르였다. 그로 인해 창기병들의 속력이 느려졌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전투에 타고난 실력을 보이는 반면에, 전투 경험이 일천했다. 역량과 전술, 상대의 힘과 자신들의 힘을 파악하는 능력이 많이 부족한 것이다.

  위험한 상황이었다.

  다음 지점으로 이동한 투르가 또다시 돌진 명령을 내렸다.

  헥토르 왕국의 10조를 맡고 있는 솔카이젠과 알포소, 데라르트는 경험이 많은 기사들이었다.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보이지는 않지만 이상했다. 거리가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것 같은데도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이상한 공간에 있다는 것을 파악했다.

  “이상해?”

  “그렇구. 좀 전까지 인기척이 느껴졌었는데 지금은 사라졌어.”

  “맞아. 미세하지만 흐름이 조금 변한 것 같다.”

  이기척이라고 해봐야 무척이나 미세했다. 결국 오랜 전투 경험을 가지고 있던 본능적인 직감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전투에서 본능적인 감각은 무시할 존재가 아니었다. 생명을 지켜주는 귀중한 방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심코 스쳐 지나가는 감각을 잡느냐, 잡지 못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좌우되기도 한다.

  타다다닥!

  “무언가 온다!”

  “응?”

  “창기병이라니!”

  검은새의 풀 플레이트를 입은 창기병들이 압도적인 크기의 검은 말을 타고 돌진하고 있었다. 헥토르 왕국의 제일방어전술인 타이탄 방어술이 소용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정도의 돌진력이라면 한 번의 부딪침으로 상당한 타격을 받을지 몰랐다.

  “놈들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지 않는다. 2열 종대로 피한다!”

  일단 처음의 공격을 정면으로 맞이하지 않기로 결정한 기사들이었다. 기사들의 명령에 따라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2열로 갈라졌다. 그 사이로 돌진하게 된 크레이지드래곤 창기병이었다. 이제까지 정면대결만으로 상대하다가 놈들이 2열로 길을 열어주자 난처하게 된 상황이었다.

  한순간에 돌진력을 잃자 다시 공격 할 수 없게 된 투르였다.

  “제기랄! 얕은 수를 썼어! 모두 공격해!”

  헥토르 왕국의 기사들이 창기병의 약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공격했다. 하지만 아무리 빠르게 2열로 포진한다고 해도 돌진력이 떨어지지 않았다면 그 전에 공격이 가능했을 것이다. 힘이 떨어진 것을 파악하지 못한 투르의 잘못이었다.

  창! 차창! 파파팡! 챙! 챙!

   크레이지드래곤 창기병은 500명 대 3.000명이라는 수적인 열세에도 불고하고 모두 맹렬하게 싸웠다. 체력과 무관하게 투기와 살기는 대륙 최강이라고 할 만했다.

  솔카이젠과 알폰소, 데카르트는 투르와 대결하고 있었다. 1대 3의 대결이었다. 그럼에도 세 명이 밀리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병사들이 창기병들을 상대로 분전하고 있기에 승산이 있었다. 아니었다면 상당히 위험했을 것이다.

  ‘어디서 이런 놈이!’

  솔카이젠, 알폰소, 데카르트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발키리 영지에 이처럼 위험한 창기병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으며, 세 명의 오러마스터 이외에도 투르 같은 괴물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투르의 배틀엑스를 막을 때마다 세 명의 기사들은 모두 손이 저려왔다. 오러를 있는 대로 끌어올려 방어하는 것이 전부였다. 이대로 놈들의 창기병이 지칠 때까지 기다린 후 승부를 지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무리하게 공격해서 피해를 속출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젠장!”

  투르의 속이 부글거렸다.

  앞으로 진격도 제대로 못 하고, 솔카이젠, 알폰소, 테카르트에게 막히고 있다는 것 자체가 짜증이 치밀었다..

  크레이지드래곤 창기병 중에서도 사상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지칠 대로 지친 체력이 문제였다. 승부가 길어지자 피로가 더욱더 빨리 쌓이고 있었다. 사상자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투르는 동요했다.

  배틀엑스의 움직임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 그 반증이었다. 헥토르 왕국의 3기사는 집요하게 투르의 약점을 공략하며, 위험하면 뒤로 빠졌다.

  “크아아아앙!”

  사나운 포효를 내지르는 투르였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투르의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광천패황신공의 무지막지한 기운이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상처받은 괴수는 무섭기 짝이 없었다.

  “무서운 기운이다!”

  “피햇!”

  “젠장! 커억!”

  투르의 공격을 받은 알폰소가 나가떨어졌다. 간신히 검을 들어 막았지만 다시 싸우기에는 힘들어 보였다. 두 팔이 역방향으로 어긋나 버렸기 때문이다. 알폰소를 향해 일격을 휘두른 순간에 투르의 옆구리가 비어버렸다. 동료가 나가떨어졌지만 그 틈을 놓치지 않는 솔카이젠이었다.

  “죽어랏! 괴물!”

  탕!

  ‘헛!’

  “이럴 수가!”

  설마 했는데 검이 피부를 완벽하게 뚫지 못했다. 오러를 사용한 검이 투르의 외피를 조금 흠집 낸 것이 전부였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사람의 피부가 어떻게 오러를 입힌 검을 막아낸단 말인가! 순간적으로 몸이 경직되어 버렸다. 아무리 노련한 기사도 처음 당해보는 일에는 속수무책이었다. 투르가 공격당한 순간 반사적으로 왼팔을 휘둘렀다.

  퍼어억!

  우드드득!

  멍청하게 서 있던 솔카이젠의 얼굴이 투르의 광폭한 주먹에 부셔져 나갔다. 얼굴이 함몰되어 버렸다. 단숨에 숨통이 끊어져 버리는 상황이었다.

  주춤! 주춤!

  투르의 광기에 저절로 뒤로 물러선 데카르트였다. 동기들이 당했는데도 불구하고 싸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병사들을 불러 같이 공격해야 할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병사들이 외각에서 공격받고 있었다. 그것도 무참하게 도륙되고 있었다. 병사들이 창기병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에 아연실색하는 데카르트였다. 노련한 기사인 데카르트 역시 연속적으로 벌어지는 생소한 상황에는 침착하지 못했다.

  “뭐...야?”

  사아악!

   털썩! 털썩! 털썩!

  일검이 휘둘러진다. 그 앞에 자리한 놈들은 무엇이 지나간 지도 모른 체 잘려 나갔다. 이승과 저승의 간격을 구분하지 못한 순간에 이미 병사들의 숨은 꺼져 있었다.

  지배력을 잃은 병사들의 몸이 그 자리에서 서서히 쓰러졌다.

  광폭함이 지배하는 전투의 장소에서 한기가 불어오고 있었다. 이질적인 두 사람이 전투에 참가한 순간부터 시간이 정지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병사들의 움직임은 그 두 사람에 비해서 한참이나 느렸다. 한 발을 내딛고 지나가자 서너 명의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다.

  -토네이도 임팩트.

  -마하임팩트.

  스톰 검법과 일렉트릭 검법의 향연이었다.

  삽시간에 1벽에 달하는 병사들이 죽어 나갔다. 병사들은 아직까지 수가 많다는 것에 의지하여 물러서지 않았다. 하지만 오러마스터 앞에 병사들의 수는 소용없는 저항에 불과했다.

  스필언과, 미토스의 능력은 가히 군계일학이라는 평가가 무색할 만큼 대단했다.

  다른 병사 없이 고작 두 사람이 3,000명의 병사들을 압박했다. 그에 힘을 받은 크레이지드래곤 창기병이었다. 지쳐있던 마지막 힘을 폭발시켰다.

  전투는 삽시간에 마무리가 되었다.

  헥토르 왕국의 병사들을 전멸시켰다.

  스필언과 미토스는 헥토르 왕국 병사들의 주검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죽은 병사들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 안에 크레이지드래곤 창기병의 주검도 보였다. 이번 전투에서 50명이나 죽었다. 부상자도 70명은 되었다. 압도적인 승리이기는 해도, 입지 않아도 되는 피해를 입었다.

  저벅! 저벅!

  스필언이 투르에게 다가갔다. 투르는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는지 씩씩거리고 있었다. 분노하는 투르의 앞에 선 스필언이었다. 스필언의 눈은 슬프도록 푸르렀다. 어떤 감정도 실리지 않는 무표정한 눈빛이었다.

  짜아아악!

  휙!

  수신간에 벌어진 일이다.

  스필언의 손바닥이 투르의 뺨을 가격했다. 무척이나 빠르고 강렬했다. 뺨을 때리는 소리가 모두에게 들렸다.

  투르가 눈을 부릅떴다. 스필언은 여전히 무표정한 채 말을 이었다.

  “너의 실수다”

  “하...지만!”

  “변명은 필요 없다. 너의 실수로 수하들을 잃은 것이다.”

  “내가 뭘 그렇게!”

  “창기병은 여러 번의 전투로 체력이 소진되어 있는 상태였다. 너는 너만이 아닌 창기병의 대장이다. 대장으로서 수하들의 상태도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 말이 되는 것이냐! 그러면서도 한 무리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나!”

  “그...건!”

  할 말이 없는 투르였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스필언의 독설은 날카로운 비수와 같았다. 가차없이 투르의 잘못을 지적했다. 금강불괴에 가까운 신체도 스필언의 독설 앞에서는 소용없었다.

  “너를 믿고 인정하신 영주님의 신의를 배반한 일이다.”

  털썩!

  투르가 화를 삭이며 무릎을 꿇었다. 투르는 잘못이 있어도 그다지 연연하지 않지만 가르딘에 대한 충성심만은 진심이었다.

  “죄송합니다.”

  “됐다. 그리고 다시는 무릎을 꿇지 마라.”

  미토스는 신속하게 창기병의 주검을 챙기도록 명령했다. 우선은 돌아가서 재정비하는 것이 먼저였다.

  “돌아간다.”

   첫 전투에서 크레이지드래곤 창기병은 놀라운 업적을 남겼다. 3만의 병력을 모두 전멸시킨 것이다. 사상자와 부상자가 120명밖에 되지 않는 것이 놀라울 정도다.

  하지만 투르를 비롯한 크레이지드래곤 창기병은 떳떳이 고개를 들지 못했다. 50명의 죽음을 묵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강제로 맺어지게 된 인연이었지만 동료를 위하는 마음만은 어느 누구보다 강했다.

  가르딘은 투르의 실수를 탓하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기다려주었다. 한 번의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다시 한 번 그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번 전투는 투르에게 있어서 첫 전투였다. 실수를 할 수 있다는 것도 감안을 해놓고 있었다. 그래서 스필언과 미토스를 보낸 것이다. 그 두 명이라면 투르의 실수를 만회하고도 남았다.

  앞으로의 전투에서 투르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전투를 통해 경험을 쌓고, 자신의 미진한 점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한 상태다. 이번 전투로 인해 투르는 또 한 번 성장하고 강해질 것이다. 이제 투르는 열여덟 살의 청년이 아니라 성인이자 한 단체의 수장이라는 것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너희들이 수고가 많다.”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가르딘은 미토스와 스필언의 수고를 치하해 주었다. 아니라고 해도 치하해 주는 것도 필요한 일 중에 하나다. 말 한마디로 오러마스터를 부려먹는 일이었다. 사소하게 치부해 버리면 안 되는 중요한 문제였다.

  필리언이 가르딘의 뒤에서 입을 삐죽거렸다. 스필언과 미토스를 출동시긴 것은 자신이 한 일이지 가르딘이 한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모든 공은 가르딘에게 가니 짜증이 치밀었다.

  “그럼 나가봐라.”

  “예, 영주님!”

  뒤에서 구시렁거리는 필리언이 거슬린 가르딘이었다. 여기서 칭찬한마디 안 해주면 삐쳐서 얘기도 안 할지 몰랐다.

  “너도 수고했다. 이번 일은 너의 공이 컸다.”

  “그렇지. 내가 원체 일을 철저히 하는 사람 아니냐!”

  칭찬 한 번 해줬다고 좋아라 한다. 애나 어른이나 칭찬 좋아하지 않는 사람 드물다는 말이 사실은 모양이었다.

  참 문제였다. 빈말을 저처럼 좋아하니 아니라고 하기에는 양심에 찔리는 가르딘이었다.

  물론 필리언도 모르지는 않는다.

  “그럼 이만....”

  “말로만!”

  스필언과 미토스처럼 말 한마디로 날로 먹으려던 가르딘이었다. 그런데 역시 그냥 넘어가지 않는 필리언이었다.

  “뭘 원하냐?”

  “알잖아?”

  오러마스터의 오의를 계속 내놓으라는 필리언의 협박이었다. 조금만 잡으면 오러마스터가 될 것 같은데 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간직한 필리언, 갈라, 유타였다. 정말 감질맛 나는 상황이었다. 오러의 양은 오러마스터에 이르렀는데 왜 넘어가지 못하는 알 수 없는 동기들이었다.

  “참 너희들도 둔하다.”

  “뭐가?”

  “나중에 기회를 만들어줄 테니 알아서 채득해 봐라. 지금 당장은 무린 것 너도 알지?”

  “그렇게까지 말하니 인내심 많은 내가 조금 참아주지.”

  필리언, 갈라, 유타의 경우 현재 간그그이 끝에 서 있었다. 오러익스퍼트 최상급과 오러마스터의 차이. 따지고 보면 그다지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그 미묘한 간극이 중요한 차이점으로 다가온다. 동기들은 오러의 양이 많이 늘어난 만큼 심법의 수련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뇌전폭풍심법을 이용해서 오러의 밀도를 응축시켜 폭발시킬 필요성이 있다. 응축시켰다가 폭발시킬 때 일어나는 바디체인지를 겪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동기들은 지금 바디체인지를 하지 못하고 있다. 왜냐! 두렵기 때문이다. 몸이 버티지 못한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억제하고 있었다.

   다음으로 깨달음이 따라주지 못한다. 몸을 변화시켰다고 해도 오러마스터의 깨달음이 필요하다. 스필언과 미토스처럼 말로만 해서 깨닫는 것은 만에 하나 일어날까 말까 한 일이다.

  동기들은 아직 익스퍼트 최상급을 이해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한 단계라면 모를까 두 단계를 한 번에 뛰어넘을 수는 없지 않은가! 따라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얻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놈들을 뒤집어볼까나. 능선으로 가자.”

  “그러지.”

  가르딘은 능선에 배치한 발리스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시간을 번 것은 맞지만 헥토르 왕국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 상황을 모두 이해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따라서 놈들이 수를 부리기 전에 모든 것을 차단하는 것이 효율적이었다.

  처음은 진법이었고, 다음은 창기병, 이번에는 발리스타였다.

  아직까지는 차근차근 계획대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조금만 있으면 황궁에 연락이 갈 것이다.

  가르딘이 도착한 곳에는 열 대의 발리스타가 배치가 완비되어 있었다. 능선이라고 하지만 그다지 높은 곳은 아니었다.

  “거리는 조절이 다 된 거지?”

  “물론 놈들의 위치를 파악해서 각도를 조절해 놨지.”

  “기름은?”

  “그것도 완비했다.”

  “그럼 바람이 불 때를 기다려 볼까나.”

  “조금 있으면 북쪽으로 불어올 거다.”

  시간대를 조절한 가르딘이었다. 발키리 영지에서 오랜 시간 살아온 노인장에게 물어서 알아온 것이다. 이맘때에 부는 바람은 대부분 서쪽으로 불게 되지만 한시적으로 바람이 바뀌는 시간이 있었다. 사람은 참 놀라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가르든이었다. 언제 불지 모르는 바람을 기억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화살을 날리고 난 후에 이것을 놈들에게 보내줘라.”

  가르딘이 종이를 건네주었다.

  “별거 아니야. 열 좀 받게 해줘야지.”

  발키리 영지의 마법진을 살피기 위해 보낸 병사들에 대한 소식이 전무했다. 한참을 기다려도 병사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헥토르 왕국의 사이너스 국왕은 심기가 불편했다. 상황이 점점 악화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병사들이 돌아오지 않는 경우는 한 가지뿐이다. 놈들이 만들어 놓은 마법진에 당한 것이다.

  다시 병사를 보낸다고 해서 뚫어낸다는 보장이 없었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다시 군대를 보내기에는 위험이 너무 컸다.

  “답답하군! 여기서 발목이 잡히다니 이게 말이 되는 것인가!”

  사이너스 국왕의 한 소리에 칼슈타인 공작과 뱅가너 공작은 할 말이 없었다. 조금만 더 가면 발키리 영지인데 바로 앞을 내딛지 못하고 있는 한심한 상황이었다.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입이 있어도 말하기 부끄러웠다.

  사이너스 국왕이 밖으로 나와 앞의 마법진을 바라보았다. 보기에는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 그런데 발을 들이면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었다.

  휘이이잉!

  살랑! 살랑!

  사이너스 국왕의 머리카락을 흘들리게 만드는 바람이 불었다. 이제까지 등 뒤에서 불던 바람이 방향을 바꾸어 맞바람이 불고 있었다. 바람의 변화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바람의 방향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든 뚫을 방법을 찾아라!”

  “예, 국왕 전하!”

  사이너스 국왕의 심기를 어지럽히지 않기 위해 귀족들은 애를 썼다.

  귀족들의 시선은 모두 전방을 향해 있었다. 바로 앞에 있는 저 악마의 장벽을 넘어야만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앞에서 무언가 날아왔다.

  쌔애애앵! 푸아아앙!

  화르르르르르! 활! 활! 활!

  거대한 쇠활이 날아왔다. 날아온 활은 상당히 멀리 날아갔다. 사이너스 국왕의 머리 위를 넘어 한참이나 날아간 화살이 어딘가에서 터져 나갔다.

  화실이 박히자마자 무언가가 터지면서 불바다가 펼쳐졌다.

  순신간에 퍼져나가는 화기는 바람을 타고 더욱더 타올랐다. 전쟁의 전화를 가속시키는 듯한 불꽃의 향연이었다. 불꽃은 아름답게 타올랐다. 그러나 마냥 아름답게 바라 볼 수 없는 헥토르 왕국 진영이었다.

  화살이 연속적으로 10여 발이 또 날아왔다. 화살은 정확하게 한곳만으로 노렸다. 기름을 담은 화살이 헥토르 국왕이 마련한 공성병기에 내리꽂혔다.

  푸아아아앙! 우지지지근!

  쇠활은 위력이 엄청났다.

  한 방에 공성병기가 절반 이상이 무너져 내렸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화살에 실린 기름통이 부서지면서 화기가 공성병기를 뒤덮었다.

  사이너스 국왕의 시선이 불길이 치솟는 곳을 향했다. 공작을 비롯한 모든 귀족들도 불길을 멍하니 보고 말았다.

  무언가 대책을 세우기도 전에 공성병기가 전소되어 가고 있었다.

  “뭣들 하는 것이냐! 어서 빨리 불을 꺼라!”

  공성병기는 적국의 성벽과 무기를 상대할 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들이다. 이처럼 쉽게 사라져서는 안 되었다. 어떻게 해서든 막아내야 하는 상화이었다.

  사이너스 국왕의 호통에 공작들이 병사들을 지휘했다. 멀쩡한 공성병기를 옮기고 불을 끄는 것이 먼저였다.

  “어서 불을 꺼라!”

  “기사들은 병사들을 지휘해서 불을 끄도록 해!”

  칼슈타인 공작과 뱅가너 공작이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한번 번진 불을 끄기에는 인력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마법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였다.

  마나심법으로 마법력을 회복하고 있는 상태의 마법사들이었다. 이제 조금 회복한 상황에서 다시 마법을 사용해야 했다. 마법사들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 간신히 회복한 마법력을 또다시 소모하게 되면 다시 회복하는데 더 오래 걸리게 된다.

  30명의 마법사들이 불에 타고 있는 공성병기를 향해 마법을 사용했다. 고서클의 마법을 사용하기에는 마법력이 현저히 부족했다. 어쩔 수 없이 저서클의 마법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워터샤워

  샤아아아악!

  물을 일순간에 쏟아낼 수 있는 마법이었다.

  마법력이 떨어져서 워터스톰(물폭풍), 워터서지(해일), 워터토네이도(물회오리) 등의 마법은 사용할 수도 없었다. 그나마 워타샤워라도 사용할 수 있는 게 다행이었다.

  30명이 일시에 펼치는 마법에 그나마 불길이 조금씩 잡히기 시작했다.

  “허억! 허억! 허억!”

  고작 한 번 마법을 사용했을 뿐인데 대부분의 마법사들이 지쳐서 얼굴이 창백해졌다. 마나 공백은 마법사에게 절대 느끼고 싶지 않은 것 중에 하나다. 온몸에 힘이 쭈욱 빠져버렸다. 일부 마법사는 버티지 못하고 그 자리게 쓰러졌다.

  물을 사용해서 불을 끄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공성무기가 화기에 손상을 당한 상태라 다시 사용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가져올 때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던 공성병기가 뼈대만 남았다. 볼품없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마저도 유지하지 못하고 부서져 내릴 것 같았다.

  “남아 있는 공성무기의 위치를 옮겨라!”

  칼슈타인 공작은 놈들의 공격 지점이 너무 정확한 것을 파악했다. 알고서 공격을 했을 것이다. 우선은 공성무기를 옮겨서 남아 있는 것이라고 건사해야 한다.

   ‘놈들이 공성무기 말고 식량창고도 노릴 수 있었을 것이다!’

  칼슈타인 공작은 이곳에 진영을 구축하면서 미리 식량창고를 여러 곳으로 분산해 놓으라고 명령했다. 놈들이 만약 그곳을 노리면 정말 위험한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만일을 대비한 것인데 그나마 놈들에게 들키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쩝!’

  가르딘은 조금 아쉬웠다.

  공성무기와 더불어서 한 가지 더 공격하고 싶었지만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전쟁을 수행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그것은 바로 식량이다. 사람은 먹지 않고서는 일어설 수 없다. 움직이는 데 필요한 식량이 사라지게 되면 더 이상 전쟁은 수행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식량창고의 위치는 왜 파악하지 못한 거냐?”

  “놈들도 바보가 아니야? 이런 전투에 대비해서 식량창고를 여러 곳으로 분산 배치를 해놓은 것 같다.”

  “제법 머리가 돌아가는 놈이 있었군.”

  식량창고를 산개해서 위치를 파악당하지 않게 한 것이다.

  수적이 열세가 확연하게 느껴지는 전투에서 상대편이 노릴 수 있는 것은 지극히 한정되어 있다. 그중에 가장 중점적인 타격 대상이 되는 것이 식량창고다. 그 점을 파악하고 있는 헥토르 왕국도 식량을 여러 곳으로 분산배치해서 안전을 확보한 것이다.

  “어쩔 수 없지. 우선은 대기하고 기다려. 이제 놈들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테니! 시간을 조금 더 번 셈이지.”

  필리언, 갈라, 유타도 결과에 만족스러워했다. 공성무기가 없어진 상태이니 만큼 위험한 공격은 도중에 차단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화살 공격이야 방패로 막는다고 해도 공성병기의 공격을 방패로 막기는 힘들었다.

  “아! 그건 발사했지?”

  “물론 지금쯤 정중앙에 내리꽂혔을 거다.”

  “다행이군.”

  불길을 잡기는 했지만 피해가 상상 이상이었다.

  헥토르 왕국의 전력 중에서 공성무기가 가지는 비중이 제법 컸다. 특히 헥토르 왕국의 전략무기라고 할 수 있는 공성무기는 타 왕국의 공성무기보다 몇 배는 뛰어난 성능을 보유하고 있었다. 공성무기를 제대로만 사용하면 성을 허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런 중요한 공성무기가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사이너스 국왕은 침통했다.

  놈들은 야금야금 헥토르 왕국의 전력을 깎아내리고 있었다. 전략에 있어서 가장 짜증나는 일을 겪고 있는 상황이었다. 화끈하게 전면전을 벌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적을 보면서 공격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오도가도 못 하는 상태로 놈들의 공격을 일방적으로 받고 있었다.

  “피해 상황은?”

  “공성무기 200여 기 중에 140기가 모두 불에 탔고, 나머지 60기 중에 30기는 절반 이상 파손이 되어 사용이 불가능합니다. 사용 가능한 무기는 30여 기에 불과합니다.”

  “크음!”

  침음성이 막사 안을 울렸다.

  공작을 비롯한 각 귀족들의 표정도 밝지 못했다. 전투라도 제대로 해봤다면 억울하지도 않을 일이었다. 이런 숨 막히고, 짜증나는 전투는 그들도 처음이었다. 숨이 턱턱 막히고 풀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좀! 지저분한 표현이지만 똥을 싸다 다 싸지 못하고 끊은 듯한 느낌이었다.

  찝찝함이 막사 안을 가득 메웠다.

  누구 하나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적의 계획을 뚫을 비책이라도 있다면 입을 열겠지만 괜히 나섰다가 사이너스 국왕의 노기를 받을 수 있었다.

  침묵이 막사 안에 자리 잡았다.

  조용한 가운데 내리꽂히는 파공성이 들렸다.

   푸아앙!

  여러 막사의 정중앙으로 발리스타의 쇠활이 하나 떨어져서 꽂혔다. 사이너스 국왕이 있는 막사와는 거리 차이가 얼마 없었다.

  만약 그 쇠활이 국왕의 막사를 겨냥했다면 큰일 날 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국왕의 막사는 여러 막사들과 섞여 있고, 위치를 교묘하게 숨겨놓았다. 노리고 쐈다는 것은 말도 안 되었다.

  쇠활에 다가간 병사들이 무언가를 발견했다. 쇠활의 뒤쪽 부근에 무언가가 묶여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즉시 칼슈타인 공작에게 전해 주었다.

  칼슈타인 공작은 서신을 보았다.

  부들! 부들!

  칼슈타인 공작은 읽는 도중에 서신을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감히 이따위 저속한 말을 계속적으로 보내다니!”

  발키리 영주는 미친놈이 분명했다. 귀족으로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격식이 있건만, 그것조차 없었다. 발키리 영주는 천박하기 이를 데 없는 놈이었다.

  “뭐라 적혀 있는가?”

  “폐하! 이것은 도저히!”

  사이너스 국왕도 짐작이 갔다. 이제까지 계속 보아온 것들이다. 지금 다시 본다고 해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가져오라.”

  칼슈타인 공작인 화를 참으며 어쩔 수 없이 서신을 사이너스 국왕에게 전했다.

  내용은 이렇다.

  <헥토르 왕은 보아라.

  그러기에 내가 그만 돌아가라고 했잖아. 지금이라도 후퇴한다면... 아! 이미 내가 제국에 꼬질렀구나! 어쩔 수 없지. 곧 제국군이 올 거다! 그때는 너도 네 왕국도 모두 끝장날 거다. 하하하하!>

  저속한 말의 집대성이었다.

  감히 일국의 왕을 향해 계속 모욕하고 있었다.

  사이너스 국왕은 저속한 말을 읽으면서도 의외로 침착했다. 이제는 화도 나지 않는다.

  그저.

  “크하하하하하하!”

  갑자기 통쾌하게 웃기 시작한 사이너스 국왕이었다. 공작을 비롯한 귀족들은 국왕의 돌연한 웃음에 의아해했다. 분명히 모욕적인 글이 적혀 있을 것이라 짐작했다. 그런데 웃는다.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장면이었다.

  잠시간 화통하게 웃다가 웃음을 멈추었다.

  싸늘하게 식어버린 분위기였다. 귀족들 모두 그 분위기에 취해 절로 위축이 되었다.

  오싹!

  움찔!

  사이너스 국왕의 기색은 침착했지만 눈가에 번지는 한기를 귀족들은 눈치 챘다. 사이너스 국왕은 화를 안으로 삭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사실은 무섭게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대신들 모두 그 눈빛에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짐은 오늘처럼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 한 것이 처음이다. 지금부터 명령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발키리 영지를 공략할 방법을 세워라! 이틀의 시간을 주겠다. 그동안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짐의 분노를 그대들이 맞이하게 될 것이다.”

  사이너스 국왕은 한다면 하는 성격이었다.

  패왕의 기질을 가지고 있는 그는 지금까지 이루어놓은 것들을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귀족들은 모두 그러한 것을 알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방법을 찾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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