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장 사신의 강림@@]
헥토르 왕국과의 지지부진한 전투가 이틀 동안 멈추었다.
이전까지 산발적인 전투가 있어왔던 것을 보면 너무 조용했다. 헥토르 왕국 군대의 움직임이 멈춘 것처럼 보였다.
가르딘을 비롯한 필리언, 갈라, 유타는 상황을 체크하면서 이상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어떻게 생각하냐?”
가르딘이 동기들의 의중을 물었다. 너무 조용한 것은 좋지 못했다. 불안감이 들기에 서로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군대를 뒤로 물리는 것도 아니고, 주둔시키면서 아무런 움직임도 없다니 이상한 것은 맞는데.”
차라리 후퇴를 생각했다면 뒤로 움직이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아니었다. 병사들을 그대로 놔둔 상태로 움직이지 않는 게 더 수상했다.
“딱히 방법이 없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럴 수도 없겠지.”
방법이 없으니 구상하느라 시간을 소비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조용했다.
가르딘은 불안감이 엄습하는 것을 느꼈다. 헥토르 왕국을 지금까지는 잘 막아내었지만 언제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할지 모른다. 놈들이 조용할수록 불안감이 커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막사 안으로 급하게 파멜라가 들어왔다. 무언가 일이 발생 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영주님! 큰일 났었요!”
“왜 그러는데?”
“진의 축이 조금 흔들렸어요!”
이번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진법이었다. 견고한 진법을 만들기 위해서 드워프의 손까지 빌린 것은 진법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약간의 흔들림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중차대한 문제였다.
“어디쯤이지?”
“전법의 흐름상 전방은 아니에요. 아무래도 헥토르 왕국군 진영의 후방이 아닐까 생각해요.”
파멜라라고 해도 진의 흔들림만으로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 정도만 해도 파멜라가 대단하다는 것은 틀리지 않았다. 약간의 흔들림을 간파한다는 것은 그만큼 집중하고 있었다는 반증이이었다.
“뒤라면 어쩔 수 없지. 놈들도 마법사가 있는 상황이니 진법의 흐름을 마법력으로 틀어서 공간을 열었을 가능성이 있어.”
진법의 견고함에 전방과 후방의 차이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마법사들의 마법력을 소진시키기 위해서 노력한 것도 마법사들이 공간을 흔들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현 실적으로 전방의 공간은 마법사들이 뚫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았다면 후방을 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놈들의 후방이라는 것에 있었다. 뒤쪽은 공간을 열려고 시도한다는 것은 철수 준비를 한다는 것과 진배없었다.
“놈들이 후퇴하려고 하는 것 아니냐?”
“피해가 만만치 않고 방법이 없으니 돌아가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는 것 같은데.”
필리언과 갈라, 유타는 그저 전투의 상황대로 말을 했다. 확실히 그럴 수도 있었다. 헥토르 왕국의 입장에서 앞으로 진격하지 않는 이상 여기 계속 있는 것은 손해였다.
가르딘은 고민이 되었다.
‘놈들이 과연 돌아갈까! 상황이 이렇게까지 됐는데!’
카이로만 제국과 헥토르 왕국은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 상황이다. 코카 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 과연 제국이 헥토르 왕국을 그냥 둘까!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제국으로도 배신자를 철저하게 단죄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냥 둔다면 다른 왕국과 공국들과의 동맹관계까지 흔들릴 수도 있었다.
절대 그냥 물러설 헥토르 왕국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헥토르 왕국의 입장에서 딱히 방법이 없으니 물러설 수도 있다고 생각이 되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 말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하나였다. 놈들이 완벽하게 후퇴하는 것을 보지 않는 이상 만반의 준비를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어느 것 하나 확실한 것이 없다. 우선은 놈들이 진법을 건드렸다는 것이 문제일 수 있어. 방법을 찾기 위한 일일 수도 있으니, 파멜라는 진법을 잘 관리하고, 필리언, 갈라, 유타는 놈들의 움직임에 예의 주시해.”
“그건 걱정하지 마.”
“맞아, 우리가 한두 번 해보냐!”
“그래도 확실하게 해라. 우리 입장에서 한순간의 실수가 최악의 실수로 다가올 수 있으니까!”
대군과 소군의 입장 차이였다.
가르딘의 입장에서 적은 병력으로 대군을 이겨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애초의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위험 한 사태를 맞이할 수 있었다. 최악의 상황은 가르딘의 신위가 만천하에 공개되고, 막대한 타격을 입는 것이다. 한 손이 열 손을 막을 수 없듯이 이긴다고 해도 이긴 전쟁이 아니게 된다. 따라서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사전에 준비를 철지히 해두어야 했다.
“또한 최대한 방법을 찾지 못하도록 꾸준히 괴롭혀줘야겠지.”
“그런가! 그럼 후방을 겨냥해 발리스타를 쏴볼까!”
“안 되는 것 알지!”
“물론.”
“되지도 않는 말은 지껄이지 좀 마라, 필리언!”
발리스타의 사정거리가 길다고 해도 뒤쪽 헥토르 왕국 진영의 후방까지 날아가지는 못한다. 가르딘이 타박에 필리언이 실실 쪼개며 헛웃음을 지었다.
“분위기 쇄신을 위해서 그냥 웃자고 한 말이다!”
“안 웃긴다!”
“고품격의 농담을 이해하지 못하다니! 너도 이제 좋은 시절 다 갔구나!”
“호오! 그러셔! 나도 농담 한번 해볼까!”
“얼마든지.”
필리언이 무엇이든 다 받아주겠다는 듯이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유타와 갈라가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예전부터 해온 말장난을 이런 시기에도 할 수 있는 배짱이 다단하다 할 수 있었다.
과도한 긴장과 불안은 사고의 전환을 좁게 만든다. 그걸 알기에 필리언이 잠시 농담을 해 본 것이다. 생각은 자유로우면서 넓게 해야 상대의 진법을 파악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너의 사생활이 담긴 종이를 발리스타에 묶어 제수 씨에게 보내는 것은 가능할 거리이긴 한데!”
‘크윽!’
“그런 가혹한 짓을!” 가르딘의 농담 수준은 갈수록 진보했다. 농담을 농담이라고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아무튼 일을 유연하게 살피는 계기는 되었다. 하지만 적의 마음을 확실하게 안다는 것은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는 일이기는 했다.
진법의 공간을 열었다.
공간과 공간이 벌려지자 아지랑이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멜버른 후작을 비롯한 30명의 마법사들이 공간분리 마법을 사용하였다.
스페이스 디바이드 마법이라는 긴 호칭의 마법이었다. 마법진을 무너뜨릴 때 사용하기는 하지만 상당한 마법력 소모로 인해 잘 쓰이지 않는 마법이기도 했다. 진법을 처음 겪어보는 마법사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시간이 더 있다면 확실하게 분석을 하겠지만, 시간은 헥토르 왕국에게 적이었다. 한시를 지체할 수 없었다. 지금도 너무 많이 지체된 상태였다.
우우웅!
대기의 흐름을 뒤틀어서 공간을 가르자 마나의 흐름과 흐름이 부딪치는 진동이 발생했다. 장기간 공간을 열게 되면 진법 안의 흐름이 변화될 수 있기에 빠른 시간 안에 통과하는 것이 중요했다.
칼슈타인 공작이 이끄는 타이탄기사단이 열린 공간 앞에 섰다.
타인탄기사단은 헥토르 왕국이 자랑하는 최고의 기사단이다. 모두 독이 오를 대로 올라 있었다. 지금까지 적의 간계에 농락당할 만큼 당한 상태였다.
날이 곧추세워진 타이탄기사단은 날카로운 기운을 뿜어내었다. 타이탄기사단을 이끄는 칼슈타인 공작도 독기가 가득했다. 이번 일에 임하는 자세 자체가 달랐다.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필승의 각오가 느껴졌다.
사이너스 국왕이 친히 마중을 나왔다. 이번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헥토르 왕구의 사활이 칼슈타인 공작과 타이탄기사단에 달려 있었다.
“좋은 결과를 기다리겠다.”
“2일 안에 반드시 성공하겠습니다!”
헥토르 왕국의 미래가 달린 일이다. 이번 일이 성공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왕국의 미래가 결정 될 것이다.
“타이탄기사단은 전원 앞으로 진격한다!”
칼슈타인 공작의 명령에 따라 천천히 벌려진 공간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망설이지 않았다. 나라를 위해 충성하는 것이야말로 기사의 목적이기 때문이었다.
칼슈타인 공작을 끝으로 타이탄기사단 500명이 진법의 밖으로 빠져나갔다.
마법진의 무서움을 피부로 느끼는 사이너스 국왕이었다. 바로 앞에 사물의 형체가 보인다. 그러나 그 형상은 진실이 아니라 허상이다. 기사단의 모습이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발키리 영주는 도대체 어떻게 이와 같은 대규모 마법진을 만들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멜버른 후작을 비롯한 마법사들도 뙈 지쳐 있었다. 공간을 인위적으로 여는 작업은 생각보다 마법력의 소모가 컸다. 대규모의 병력을 한꺼번에 이동시키지 못하는 이유가 마법력의 소모 때문이었다.
“뱅가너 공작! 산발적인 공격을 다시 진행하시오! 놈들이 다른 곳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말이야.”
“알겠습니다. 국왕 전하!”
“멜버른 후작은 마법력을 회복하는 즉시 놈들의 마법진을 연구하는 데 주력을 하도록.”
“최선을 다해 반드시 놈들의 마법진을 파훼시키겠나이다!”
진법의 유동이 느껴지고 난 후 다시 헥토르 왕국의 공격이 진해되자 평소와 같은 소모전이 계속되었다. 놈들의 공격 수법이 점차적으로 발전이 된 형태였다. 헥토르 왕국군은 진법안에서 방향을 잃지 않도록 줄로 마지막 방사들을 묶어서 서로의 이동 경로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하였다. 간격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수법이었다. 또한 병사들의 손실을 줄이고, 귀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가르딘은 창기병으로 효과적인 공격을 하면서 발리스타를 사용하였다. 변경된 것은 없지만 헥토르 왕국의 대처가 점차 능숙해지자 피해를 전과 같이 주지는 못했다.
“놈들이 병력에 집중하며 방향을 잃지 않으려고 하니, 우리도 병력을 사용해야겠어.”
“원래 이런 때를 대비해 궁수병을 강화시킨 것 아니냐!”
가르딘과 필리언은 적들의 움직임에 대처하기 위해서 연구를 했다. 심상치 않게 변화하는 적군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연구였다.
“영주님! 진법의 흐름을 계속 방해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어요!”
“마법사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였나 보군.”
파멜라는 진법을 세밀하게 관찰했다. 진법을 구성할 때 대진의 경우 소진을 만들어 대진의 흐름이 소진과 연결되게 만든다. 이러한 이유는 대진의 흐름이 변하는 경우 소진의 흐름도 같이 변하기 때문에 위치를 파악하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대륙을 지도에 그려놓은 것과 같은 이치였다. 파멜라가 직접 움직이지 않고 진법의 흐름을 알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전과 같은 움직임인가?”
“그건 아니에요! 전에가 조금 더 큰 흐름의 변화였어요! 아무래도 마법사들이 진법을 본격적으로 파훼하기 위해 연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요!”
“그렇겠지. 계속 당하고 있지는 않겠지.”
마법사들이 진법을 파훼하면 큰일이었다. 하지만 대진을 모두 감시하는 것은 어려운 점이 있었다. 물론 쉽게 파훼되지는 않을 것이다. 진법은 마법진과 다르게 여러 개의 진법으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 하나의 단순한 진법을 깨는 순간 다른 진법이 앞을 가로막을 것이다. 시간을 조금 더 벌 수 있을 것으로 예상이 되었다.
“파멜라! 너는 진법의 흐름을 감시하면서 변화를 줄 수 있겠니!”
이미 만들어진 진법을 더욱 강화하거나 변화를 주는 것은 가르딘도 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반면에 파멜라라면 이제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되었다. 진법의 요소요소를 파악하고, 흐름의 변화가 산술적으로 계산이 된다면 충분히 가능했다.
“급격한 변화는 할 수 없어요! 마법사들이 흐름을 파악할 때마다 흐름의 변화를 약간씩 줄 수 있을 정도에요!”
“그 정도면 됐어! 놈들이 파악하지 못하도록 계속적으로 조금씩 변화를 주도록 해. 그리고 필리언은 궁수병을 이끌고 창기병의 뒤를 도와줘.”
각자 맡은 바 일을 정해주자 가르딘을 제외하고 막사 밖으로 나갔다.
가르딘은 놈들의 움직임이 잠시 멈춘 시점이 이상하게 여겨졌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저 군대를 정비하기 위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평소와 비슷하면서 점차 변화를 주기는 하지만 그것이 다였다. 지지부진한 소모전은 시간을 소요하게 된다. 이제 조금만 더 지나면 구원병이 오게 될 것이다. 그때즘 되면 헥토르 왕국과의 전쟁은 끝이 난 것과 마찬가지다.
가르딘은 심란햇다.
평소처럼 착착 진행이 되고, 동기들을 비롯한 파멜라, 미토스, 스필언, 투르 모두 제 할 일을 제대로 해주고 있었다.
그랜드마스터에 들면서 감각이 예리하다 못해 예지력에 가까워져 있었다. 그러나 확실하게 미래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불안감이 너무 커서 예민해졌을 수도 있다고 생각되었다.
‘기우겠지.’
슈우웅! 슈우웅! 슈우웅!
가르딘이 심란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 천룡무상신공을 운용할 때, 발리스타가 발사되는 소리가 들렸다. 멀리서 들리는 소리였지만 가르딘의 귀에는 똑똑히 들렸다. 그랜드마스터가 되면 안 좋은 것이 듣지 않아도 될 소리가 들린다는 것에 있었다.
“유타랑 갈라가 아주 신이 났군.”
발리스타를 발사하는 시간을 조절한 유타와 갈라였다. 헥토르 왕국이 식사하는 시간을 유독 노렸다. 식사를 만들기 위해서 불이라도 피우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발리스타를 쏘았다.
대륙의 속담에 ‘빵 먹을 땐 오크도 안 건드린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식사하는 시간은 예민하다. 그 시간에 건드리면 사람이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가르딘이 놈들의 염장을 지르라는 명령을 내리자마자 절묘한 방법을 내놓았다. 역시 가르딘의 동기들답게 사악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군대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다 느낄 수 있는 일이었다. 잠잘 수 있는 시간에 잠을 못 자게 하거나 배가 고픈 상황에서 밥을 제대로 못 먹게 하는 게 얼마나 지독한 고통인지 말이다.
“쏴라! 쏴!”
“저놈들은 오크보다 못한 놈들이다!”
역시나 아주 신이 나서 외치고 있는 갈라와 유타였다. 남 잘되는 것은 두 눈 뜨고 보기 싫은 녀석들이었다. 평온하게 지내던 일상을 바쁘게 만들어준 헥토르 왕국에 대한 보복이 라고 할 수 있었다.
남들이 보기에 창피한 말들이지만 가르딘도 지은 되가 있기에 하지 말라는 말은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좁은 협곡을 따라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500명이나 되는 인원이 한 사람도 낙오되지 않았다. 모두 손쉽게 협곡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좁은 길이라 대군이 가기에는 그다지 좋지 못한 지형이었다. 만일 이곳에 매복이 있어 협곡의 위에서 돌이라도 굴리면 모두 매장당하기 좋은 곳이었다.
칼슈타인 공작은 무리의 선두에 서 있었다. 지도를 보고 지점을 파악하고 있었다. 쉐도우나이트의 3호가 이용했던 길이었다. 가르딘의 집요한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 다크랜드를 선택한 쉐도우나이트였다. 그때에 만들어놓은 지도가 지금에 와서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하지만 쉐도우나이트가 도망친 때와 다르게 혼자가 아닌 500명이나 되었다. 인기척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 도처에 산발적으로 몬스터가 지나다니고 있었다. 예전과 같은 암학의 대지는 아닐지라도 몬스터와 마수가 아예 없는 지역은 아니었다.
킁! 킁!
거대한 소 대가리가 등장했다.
역시나 냄새에 예민한 미노타우르스였다. 암흑의 대지에 존재하는 모스터 중에서 가장 냄새를 잘 맡는 것은 미노타우르스일지 몰랐다.
미노타우르스는 한 마리가 아니라 두 마리였다. 암수가 같이 있는 것으로 보아 부부인 것 같았다.
칼슈타인 공작은 인상이 찌푸려졌다. 예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있었다. 그 이유가 산발적으로 공격하는 몬스터와 마수들 때문이었다. 자잘한 숫자이기에 별 무리 없이 막아내고는 있지만 시간이 부족한 칼슈타인 공작으로서는 귀찮은 일일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이번에 나타난 몬스터는 상급 몬스터 중에서도 가장 힘이 센 미노타우르스였다. 기사 한두 명으로는 절대 막아낼 수 없었다.
“역시 다크랜드답군! 모두 물러서라! 내가 직접 처리하겠다!”
짜증이 난 칼슈타인 공작이 직접 나섰다. 이제까지 기사들을 시킨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우웅!
칼슈타인 공작의 애검.
레드인에서 청백색의 오러가 형상화되어 완벽한 검의 모습이 만들어졌다. 레드인은 붉은 빗줄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한 번 검을 휘두를 때마다 핏물이 수없이 흐른다는 의미였다.
오러블레이드!
모든 기사들의 로망이다.
몇 번을 보았던 것이라고 해도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청백색의 오러블레이드는 압도적인 기세를 내뿜었다. 타이탄기사단의 기사들 모두 존경스러운 듯이 칼슈타인 공작을 바라보았다.
파팟!
지면을 밟았다.
핏 하는 소리와 함께 어느새 미노타우르스의 정면에 도달했다. 칼슈타인 공작의 레드인이 횡으로 움직였다.
사아악! 댕강!
쿠쿵!
으음메에에!
칼슈타인 공작의 횡단 베기에 다리를 잃은 수컷 미노타우르스가 바닥에 쓰러지면서 소리를 내질렀다. 어찌나 큰지 귀청을 뒤흔들었다. 놀란 암컷 미노타우르스가 칼슈타인 공작에게 달려들었다. 그 순간 지면에 닿아 있던 레드인이 아래서 위로 그어졌다. 무섭도록 빠르고 날카로웠다.
사아악!
쩌저저적!
미노타우르스의 몸이 정확하게 반으로 갈라졌다. 아직도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던 수컷 미노타우르스도 칼슈타인 공작의 검이 수평으로 다시 그어지자 머리를 잃고 숨을 거두었다.
"와!“
기사들 모두 감탄했다.
미노타우르스의 경우 익스퍼트 중급이라고 해도 쉽게 이기지 못하는 상급 몬스터였다. 그런 미노타우르스 두 마리를 순식간에 해치운 칼슈타인 공작이었다. 헥토르 왕국이 자랑하는 오러마스터다웠다.
“가자.”
칼슈타인 공작은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바로 움직였다. 미노타우르스는 잠시간의 화풀이 대상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앞으로 마주할 상대를 위한 가벼운 여흥이었다. 복수를 눈앞에 두고 질척거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칼슈타인 공작과 타이탄기사탄은 산을 다섯 개나 타고 넘었다. 다크랜드의 중심도 아니고 외곽에 불과한 지형인데도 불구하고 굴곡이 심하고 길이 험했다.
반나절을 넘어 하루를 꼬박 다크랜드의 좁은 길을 따라 발키리 영지로 가는 데 허비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쉬어주어야 했다.
산은 금새 어두워진다. 지도가 있다고 해도 어둠을 뚫고 앞으로 가는 것은 어려움이 많았다. 자칫 타이탄기사단의 기사들이 부상을 당한다면 시간이 더욱 지체될 수 이었다.
다크랜드의 밤은 음습했다.
작은 공터 안에서 부자연스럽게 쉬어야 하는 타이탄기사단이었다. 그들은 모두 헥토르 왕국의 기대를 받는 후기지수 들이다. 이런 취약한 환경은 그들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발키리 영주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더 화가 치밀었다.
타이탄기사단 모두 분노를 안으로 삭이며 잠을 취했다.
칼슈타인 공작은 타이탄기사단보다 더한 굴욕감과 패배감을 겪고 있었다. 지금까지 전략과 전술에서 항상 이겨왔던 칼슈타인 공작이었다. 그런데 이번 전쟁에서는 한 번도 자신의 의견이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한 번이라도 제대로 겨루어 보았다면 이런 굴욕감과 분노는 느껴지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놈은 기사가 아니었다. 그저 이기기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쓰레기였다. 놈이 그렇게 나온다면 자신도 놈과 같은 방법을 쓸 수 있었다.
뿌드득!
‘모두 죽여주마!’
칼슈타인 공작과 타이탄기사단 모두 살기가 고양되어 있었다. 눈앞에 누가 있든 모두 죽여버리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다크랜드 평야를 마주 보는 발키리 영지의 성벽.
성벽 위에 병사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모든 병력이 전쟁에 참여하느라 이곳에 남아 있는 병력은 100명도 되지 않는 수였다. 병력이 부족한 게 흠이지만 가장 한가한 지역이었다. 요즘 들어 몬스터와 마수들도 쳐들어오지 않는다. 산발적으로 한두 마리가 온 적은 있지만 그 정도는 막아낼 수 있었다. 오히려 가끔씩 쳐들어오는 몬스터와 마수는 일종의 유희거리가 되었다. 화살로 조금 괴롭혀주거나 누가 먼저 쓰러뜨리나 내기를 하기도 했다.
성벽수비병 경력 20년 차인 피터슨은 여전히 이곳에 남아서 방루를 지켰다. 그는 산전수전을 겪었다. 또한 이번에 겪은 두 차례의 몬스터, 마수 대침공에서 살아 남은 것은 큰 일 중에 하나였다. 술이 거나하게 든다 싶으면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의 공적을 떠벌이며 자랑스럽게 행동했다. 구수한 입담을 가진 피터슨이기에 당시의 생생한 장면을 모두에게 알리는 역할을 했다. 물론 자신의 위용 역시 과장하며 말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은 피터슨의 역할이 어떠하다는 것을 알기에 믿지는 않았다.
“꺼억!”
트림을 하는 피터슨이었다. 어제도 술을 많이 먹은 모양이었다. 어찌나 많이 먹었는지 아직도 얼굴에는 술기운이 가득했다.
“아니고! 어제 먹은 마지막 술이 지랄이구먼!”
햇살이 따사롭게 비추는 나른한 오후였다.
점심을 먹고 망루에 올라 뜨거운 태양을 맞이하자 잠이 쏟아졌다. 망루에서 잠을 자는 것은 중형이었다. 그렇기에 잠을 쫓으며 전방을 바라보았다.
“술 한잔 더 했으면 좋겠다!”
어제 엄청나게 많이 마셨으면서도 또 술을 찾다니 대단한 체력이었다. 나이가 들었다고 체력이 약해진다는 말은 술 앞에서 거짓일지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피터슨의 눈빛에 힘이 없어 보였다. 흐느적거리며 돌아보았다. 대충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럼에도 경력이 20년이 넘으면 작은 기척에도 민감하다. 보통 때는 긴장하지 않는 것 같지만 신입보다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 그저 훑어보는 것처럼 보여도 다 보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흔들! 흔들!
때늦은 오후라서 그런지 태양 빛에 의해 아지랑이가 위로 승천했다. 흔들거리는 아지랑이를 사이에 두고 눈을 비비고 있는 피터슨이었다. 흐릿한 영상을 제대로 봐야 했다.
‘응?’
전방에 무언가 흐느적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무섭도록 빠른 속도였다. 일사불란한 것이 몬스터나 마수는 절대 아니었다. 저처럼 정확한 규칙으로 움직이는 몬스터는 피터슨도 보지 못했다.
“뭐야?”
흐느적거리던 정신이 확 깨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다크랜드에서 정체불명의 기사단이 이쪽으로 달려온다. 그것도 전신에 살기를 잔뜩 품은 채로 말이다. 살기가 어찌나 강한지 피터슨은 눈이 따가울 정도였다.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이유도 없이 달려오는 기사단이 아닌 것 같았다. 분명 공격할 의도가 있을 것이다. 피터슨도 짬밥이 20년이 넘엇다. 그 정도는 척하면 척이었다.
“침입자들이다!”
댕! 댕! 댕!
즉시 신호를 울렸다.
안타까운 것은 모든 병력이 발키리 영지 서부지역에 나가 있는 상황이라 지원이 될지가 미지수였다.
수비병들 모두 성벽 위에 올라섰다. 그들 모두 궁을 꺼내 들었다. 기사단과 정면충돌은 자살행위라는 것은 모두 알고 있었다. 성벽 위에서 화살을 날리는 것만이 살길이었다. 놈들이 성벽을 넘지 못하도록 말이다.
파파파파팍!
지면을 박차고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기사단은 바로 칼슈타인 공작이 이끄는 타이탄기사단이었다. 아침이 되자마자 출발하여 이곳까지 내달린 것이다. 그들 모두 돌진 이외에는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모두 검을 휘두를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하며 앞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전원 진격한다! 눈에 띄는 놈들은 모조리 다 죽여라!”
칼슈타인 공작의 잔인한 진격 명령이었다.
기사의 도리를 모두 배제한 상태다. 저항하지 못하는 자라고 할지라도 타이탄기사단의 눈에 띤다면 살아날 노리가 없어 보였다.
슈슈슝! 슈슈슝! 슈슈슝!
100명의 수비병이 타이탄기사단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이번에 새로 지급받은 궁이었다. 이전의 궁보다 훨씬 위력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용없는 저항이었다. 기사단은 날아오는 화살을 가볍게 검으로 쳐내며 돌진을 늦추지 않았다. 오러를 사용하는 기사에게 수비병의 화살은 그다지 위력적이지 않았다.
어느새 성벽의 지근거리까지 접근을 한 타이탄기사단이었다. 이제 믿을 수 있는 것은 가로막고 있는 성벽뿐이었다.
성벽의 입구, 성문까지 다다른 칼슈타인 공작이 검을 치켜 들었다.
검에서 또다시 청백색의 오러블레이드가 생성되었다. 수비병들도 보는 눈이 있었다. 저것은 예전 몬스터, 마수 대침공 때에 가르딘이 보여준 것과 같은 것이었다. 바로 오러블레이드였다.
피터슨을 비롯한 수비병은 기겁했다. 상대할 수 있는 적이 아니었다. 병력이라도 많았다면 어찌 어찌해서 막아내겠지만 고작 100명으로 500명의 기사단을 어떻게 막는단 말인가! 이제는 도망쳐야 했다. 일단은 살고 봐야 내일을 도모할 수 있었다. 이런 곳에서 개죽음을 당한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었다.
피터슨은 금세 눈치를 채고, 근처의 수비병들과 같이 도주를 했다. 눈치라도 발라야 오래 산다는 것을 다년간의 경험으로 체득한 피터슨이었다. 도망칠 때 한방향으로 도망치면 죽음이었다. 사방으로 도망쳐야 그나마 생존율이 높았다. 눈치가 있는 수비병이 중구난방으로 퍼져서 도망쳤다.
“모두 도망쳐!”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성문이 반으로 갈라 졌다. 성문은 타이탄기사단의 공격을 방어할 수준이 되지 못했다. 단 몇 번의 검질에 무너져 버렸다.
사아악! 쿠쿵!
성문이 힘을 쓰지 못하고 오러블레이드에 속수무책으로 잘려 나갔다. 바닥에 떨어진 성문은 더 이상 성문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수비병들이 놀라서 뒤로 후퇴를 했다. 수비병들 대부분이 본능적으로 가르딘을 찾았다. 가르딘만이 자신들을 보호해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불운이었다.
칼슈타인 공작이 원하는 곳은 발키리 영지의 저택. 즉 가르딘이 머무는 저택이었다. 그곳을 향해 도망가는 것은 나 죽여달라고 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방해되는 놈들!”
앞에서 달려가는 수비병의 속도가 기사단을 능가할 리 없었다. 어느새 따라온 타이탄기사단이 수비병을 순식간에 무참히 도륙해 버렸다.
반으로 쪼개지고, 머리가 잘려 나가는 것은 기본이었다. 어떤 수비병은 다리와 허리, 머리가 모두 잘려 나갔다.
“크아악! 커억!”
비명성이 울렸다. 반항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일반 병사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잘린 육편들이 바닥에 떨어지고, 핏물이 땅을 적셨다. 가르딘의 저택은 성벽과 그다지 멀지 않은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저택으로 가는 길 중간에 칼버린이라는 마을이 존재했다.
칼버린의 길을 지나가게 된 타이탄기사단은 눈에 띄는 생명을 벌레처럼 죽여나갔다. 기사들이 아니라 도살자들이 짐승을 죽이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였다.
“살려줘! 크아악!”
발키리 영지 최악의 혈풍이었다. 반항하지도 못하는 연인이라고 할지라도 가차없었다. 그동안 쌓인 분노로 인해 칼슈타인 공작과 타이탄기사단에게는전쟁과 상관없는 농민들도 화를 풀기 위한 대상일 뿐이었다.
혈풍이 지나가자 칼버린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마을의 대로는 피바다가 되어 있었다. 곳곳에 죽어 나간 인육이 비릿한 혈향을 내었다.
댕! 댕! 댕!
비상종이 성벽에서 전달이 되어 가르딘의 저택으로 전달이 되었다. 갑작스러운 비상사태였다. 하지만 기사단이 침입을 한 것으로는 절대 생각하지 못했다. 다크랜드에서 기사단이 침입한다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라이나는 비상종 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브리안을 찾았다.
브리안은 밖에 나가 있는 상태였다.
“브리안을 찾아!”
라이나는 브리안을 찾으라고 시녀들을 시켰고, 바로 록산느의 방으로 갔다. 록산으도 긴장을 한 채 방 안에 웅크리고 있었다. 비상종은 그녀에게 있어 남편을 앗아간 좋지 않은 기억을 떠올리는 도구였다. 갑작스러운 비상종에 패닉 상태가 되어버렸다. 아직까지 가슴속 깊숙한 곳에 남아 있는 가슴 아픈 상처가 다 낫지 않은 것이다.
“어서 정신 차리세요!”
록산느가 제정신이 아닌 것을 알기에 라이나는 강제로 끌어안았다. 가르딘이 말하길 위험이 있으면 반드시 지하실로 피신해 있으라고 했다. 지하는 가르딘의 서재의 뒤족의 비밀 문을 열면 되었다.
록산느를 챙기고 나자 브리안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시녀인 미네가 데리고 왔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피하라고 해!”
그러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비명이 들려와다. 비명은 길지 않았다. 거의 단말마 수준이었다. 놈들은 일검으로 사람을 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크아악!”
“살려줘!”
여인과 남성의 비명이었다. 소리가 들려오자 다급해진 라이나였다. 우선은 브리안과 록산느를 챙기는 것이 먼저였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라이나로서는 다른 사람을 도울 여유가 없었다.
“빨리 가자!”
남아 있는 사람이라도 살아야 했다.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보니 몬스터와 마수는 절대 아니었다. 사람들의 공격이었다. 지금 공격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적국의 사람들뿐이다. 라이나도 바보가 아니었다. 놈들이 가정 먼저 노리게 될 사람이 누군지 알았다.
적들은 분명 가르딘이 막고 있는 헥토르 왕국이 틀림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과 브리안이 잡히게 된다면 가르딘이 흔들릴 수 있었다. 발키리 영지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든 놈들에게 잡혀서는 안 되었다.
라이나가 록산느와 브리안을 데리고 앞으로 나아가는데, 누군가 앞에 서 있었다. 친근한 얼굴을 한 그 사람은 라이나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당신은!”
발키리 영주의 저택은 엉망진창이었다.
칼슈타인 공작과 타이탄기사단은 저택에 있는 사람들을 살려둘 생각을 하지 않았다. 보이는 족족 죽여나갔다. 죽은 사람들은 차가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칼슈타인 공작이 타이탄기사단에 명령했다.
“발키리 영주의 아내와 딸을 생포하라! 방해하는 놈들은 모조리 다 죽여라!”
“충!”
저택에 남아 잇는 시녀와 집사들은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다. 도망친다고 해도 타이탄기사단의 사정권 내였다.
발키리 영지의 저택을 멀찍이서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다. 영지의 유일한 마법사인 안젤리카였다. 그동안 같이 지내온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것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유희의 법칙상 처음에 정한 법칙을 어겨서는 안 되었다. 6서클 이상의 마력을 사용해서 직접적으로 도와주게 된다면 법칙을 위반하는 행위였다. 안젤리카는 인간과의 정과 법칙 사이에서 고민했다.
“어쩌지?”
안젤리카의 고민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고민이 끝나자마자 바로 공간이동을 했다. 방법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이번 일은 그가 해결해야 하는 일이었다.
슈슉!
안젤리카의 신형이 공간속으로 사라졌다.
전장을 살피고 있는 가르딘이었다.
헥토르 왕국군의 움직임이 점차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유동적으로 변화는 적의 전략에 따라 가르딘도 전략을 다시 구상해서 별 무리 없이 막아내었다. 지속적으로 막아 내다보니 어느 정도 순조롭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전장을 살피던 가르딘의 시선이 오른쪽으로 향했다.
공간이 움직이는 기의 파동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가르딘은 누군지 이미 알고 있었다. 여지 내에서 공간이동을 이처럼 자연스럽게 할 존재는 두 명밖에 없다. 하나는 라이젠이고 나머지는 안젤리카였다. 그리고 마법사로서의 역할을 드러낸 존재는 안젤리카뿐이었다.
안젤리카의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다급해 보였다. 초조한 모습과 창백한 모습에서 안 좋은 일이 방생한 듯한 느낌이었다.
드래곤을 다급하게 하는 일이라!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금세 간파한 가르딘이었다.
“무슨 일이야?”
“저택에 기사단이 침입했어요!”
“뭐야!”
놀라서 눈을 부릅뜬 가르딘이었다.
자신이 지키려고 한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저택에 있었다. 가르딘의 동요가 눈에 띄게 보였다. 안젤리카도 보았다. 안젤리카의 아버지, 라이젠과 싸울 때도 흔들리지 않았던 가르딘이 처음으로 동요했다.
“상...황...은?”
목소리마저 심하게 떨리고 있는 가르딘이었다.
“저택에 침입하자마자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죽이고 있어요!”
쿵!
천지가 개벽하고, 심장이 멎을 것 같은 충격이 가르딘의 마음속에 울렸다. 전신의 떨림이 가시지 않는다. 가르딘은 생에 두 번째로 분노라는 것을 느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형들의 냉대 속에 느꼈던 분노와는 차원이 다른 분노였다. 분노만으로 세상을 모두 부서뜨릴 수 있을 정도로 굉장했다.
오싹!
부르르르!
뇌를 관통하는 듯한 기분을 느낀 안젤리카였다. 그녀는 이처럼 무서운 기운은 처음이었다. 가르딘의 기운은 이제까지 약간 허무하고 권태롭기까지 했다. 그러나 지금 느껴지는 기운은 폭풍과 같았다. 세상을 무너뜨릴 수 있을 정도로 광폭했다. 드래곤을 떨리게 만들 정도로 강력한 기운이었다.
“가자!”
가르딘은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잠시의 시간 지체로 인해 벌어질 사태는 생각하기도 끔찍했다.
안젤리카는 가르딘과 함께 공간이동을 했다.
발키리 영지에 임시로 마련한 인포메드 지부에 인포머가 달려 들어왔다. 그는 상당히 다급한 듯한 표정이었다.
“지부장님! 큰일났습니다!”
“큰일?”
큰일은 이미 벌어졌다. 헥토르 왕국과의 전쟁이 벌어진 시점에서 더 큰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영지에 기사단이 침입해서 영지민을 무참히 학살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도대체 어떤 기사단이 침입했다는 거야?”
“좀처럼 가까이 접근할 수가 없었지만 입고 있는 갑옷을 보니 아무래도 헥토르 왕국의 정예기사단인 타이탄기사단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이곳까지 온 거지? 설마 영주가 진 건가?”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타이탄기사단의 출현 장소가 다크랜드였습니다. 헥토르 왕국의 진격 방향과는 정반대에 가깝습니다.”
테이란은 타이탄기사단의 이동경로를 보고 의아해했다. 다크랜드에서 발키리 영지로 들어오다니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크랜드는 대륙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 중에 하나다. 그곳을 통과해서 영지로 들어오다니 미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헥토르 왕국으로서도 다급했군!”
무모해 보이까지 한 전략이지만 성공한 것으로 보였다. 그렇지 않다면 타이탄기사단이 영지 안까지 들어오지 못했을 것이다.
“이동 방향은?”
“발키리 영주의 저택입니다.”
“음!”
생각을 해봐야 했다.
발키리 영주의 저택을 급습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일 수 있었다. 아직 전쟁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지루한 소모전을 계속하는 헥토르 왕국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일지 모른다. 발키리 영주의 저택을 급습하여 가르딘 영주를 흔들어 놓는 것이 가장 최우선일 것이다. 그 점에 있어서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또한 가르딘 영주의 부인과 딸을 인질로 내세워 전쟁을 이기려고 할 것이다. 선택은 물론 가르딘 영주가 하겠지만 사람인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가족들이 위험한 상황에서 냉정한 판단을 내린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영주의 저택으로 사람을 보낼 수 있나?”
“불가능합니다. 현재 발키리 영지에 파견된 저희들만으로는 접근 자체가 위험합니다. 자칫 인포머들이 모두 죽을 수 있습니다.”
“그렇군.”
발키리 영지에 파견된 인포머(정보원)들은 3급의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인포머들은 정보수집 능력과 은신술의 실력에 따라 5단계로 나뉘게 된다. 3급이라고 하면 인포메드에서 제법 대접을 받지만 이번 일은 1급의 실력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기사단들의 감각은 예민하기 이를 데 없다. 3급의 실력으로는 접근했다가는 다가가기도 전에 모두 주살되어 버릴 수 있었다.
“가까이 접근하지 말고 그 주변의 동태를 계속 주시해. 어차피 이번 일은 전쟁이 끝이 나야 알 수 있는 것이니까!”
“알겠습니다.”
정보원이 나가고 난 후 테이란은 모인 정보를 토대로 상황을 예견해 보았다.
‘영주가 과연 이대로 끝날까!’
그때 본 영주는 결코 호락호락한 위인이 아니었다. 이대로 당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상황이 이처럼 불리한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자신도 이해하지 못했다. 인포메드는 객관성이 있는 정보만을 취급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주관은 절대 수용하지 않는다.
‘만약 막아낸다는 영주는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이겟지.’
발키리 영주의 저택의 주변은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저택을 살피고 있는 하인과 시녀들, 그리고 수비병들이 모두 타이탄기사단의 검에 당해 죽어 있었다.
눈에 띄는 생명체를 모두 말살하려는 듯이 타이탄기사단의 검에는 사정이 없었다. 인정 사정없이 사람들을 죽이는 살귀들이었다.
타이탄기사단은 열 개조로 나누어서 저택을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저택의 주변으로 빠져나갈 수 없도록 에워싸는 형태였다.
칼슈타인 공작은 전면에서 기사단을 지휘했다.
“찾았나?”
“아직 찾이 못한 것 같습니다.”
칼슈타인 공작은 영주의 아내와 딸이 도망가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직 안에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은 저택 내부에 비밀 방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내가 직접 들어가겠다.”
칼슈타인 공작이 직접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발키리 영주의 저택이 다른 귀족들의 집에 비해 크다고 할 수 없지만 귀족의 집이었다. 넓지 않다면 말이 되지 않았다.
칼슈타인 공작은 귀족의 습성상 비밀 방이 있다는 것과, 그곳은 귀족의 이동 동선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저택 내부적으로 이동 동선에 해당되지 않는 부분에 비밀 방이 있게 되면 나중에 도피하기도 전에 잡힐 수 있다는 것을 계산한 것이다.
칼슈타인 공작은 우선 가르딘이 머물렀던 곳을 중점적으로 살피도록 명령했다. 그와 동시에 자신은 집무실로 향했다.
가르딘은 집무실은 단출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명색이 백작급의 저택인데, 안에는 덩그러니 책상과 서재 정도만으로 이루어졌다. 화려함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어 보였다.
“여기가 우리를 그렇게 괴롭힌 자의 집무실인가.”
칼슈타인 공작은 이런 하찮은 자에게 계속 당했다는 것에 화가 났다. 그는 검에 오러블레이드를 형성했다. 가르딘의 집무실을 박살 내버리고 싶었다. 칼슈타인 공작은 주저 없이 검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휘이익! 휘이익!
서걱! 서걱!
오러블레이드의 위력 앞에 서재를 비롯한 모든 것들이 쉽사리 잘려 나갔다. 칼슈타인 공작이 검을 휘두르는데 무언가 둔탁한 흔들림이 있었다. 잘려 나가면서 쇠를 자른 듯한 느낌이었다.
서재에 쇠로 된 부분이 있을 리 만무했다. 칼슈타인 공작은 차가운 눈을 빛내며 서재의 한쪽 부분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살펴보았다.
“역시.”
꽂힌 책 충에 하나를 뽑자 문이 열리는 방식으로 되어 있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구성이 된 비밀 방이었다. 열린 문안으로 칼슈타인 공작이 들어갔다. 비밀 문을 열고 들어가면 부인과 딸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슈슝!
자신의 저택 앞에 나탄난 가르딘과 안젤리카였다.
가르딘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저택 내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모두 죽어 있었다. 놈들은 반항조차 하지 못하는 자들을 짐승처럼 도륙했다. 인간들이 할 짓이 아니었다. 저택 밖으로 나가려는 자들 역시 등 뒤가 베여 죽었다. 도망가는 자들까지 따라가서 죽였다는 말이다.
“넌 뒤로 빠져라.”
“예?”
“빠지라고!”
“알았어요.”
가르딘의 말두가 차가웠다. 만약 안젤리카가 힘을 발휘했다면 저와 같은 참상을 방생하지 않았을 거이었다. 가르딘은 그 점이 못마땅했다. 물론 드래곤의 입장에서 인간의 죽음이 그다지 마음에 와 당지 않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르딘의 입장에서는 원망스러웠다. 보인조차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힘을 쓰지 않았으면서 말이다. 이율배반적인 마음이지만 그것이 인간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인간은 이기적이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불완전한 존재였다. 가르딘도 그와 같은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가르딘은 화가 났다.
끓어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분노가 정점에 이르니 도리어 마음이 차가워졌다.
차가운 분노.
가르딘의 주위로 극한의 냉기가 흐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오싹한 한기가 퍼져나가자 주변이 모두 얼어붙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저벅! 저벅!
가르딘은 앞으로 걸어가면서 아내와 딸의 기운을 찾았다. 감각을 극도로 끌어올려 아내와 딸의 기운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저택 안에서 아내와 딸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설마?’
죽은 자는 기운이 없다.
가르딘은 눈앞에 거대한 절망이 막고 있는 듯했다. 분노를 표출해야만 했다.
가르딘은 몸서리가 쳐질 정도로 차가워지는 자신을 느꼇다. 놈들을 모조리 다 죽이지 않고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가르딘이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때마침 30명의 타이탄기사단이 앞을 가로막았다. 그들은 모두 흉흉한 기세를 뿜어내며 가르딘을 죽이려는 듯했다.
가르딘은 타인탄기사단의 흉폭한 기세를 보면서도 그다지 표정 변화가 없었다. 기세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기세가 강해도 실력 차이를 무시하지 못한다.
가르딘의 무심하면서도 차가운 눈을 보자 타이탄기사단의 표정이 변했다. 이제까지 도망치던 사람들까지 무참히 죽였던 타이탄기사단이었다. 자신들을 보자마자 도망치던 놈들을 보면 통괘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지금 앞에 있는 놈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타이탄기사단의 비스턴이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고통이 뭔지 알게 해주마!”
“너는 아는가?”
가르딘의 반문에 비스턴이 어이없어 했다. 그와 동시에 미친놈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다른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혼자인 주제에 30명의 기사에게 그따위 헛소리를 하다니 제정신으로 보이지 않았다.
“이런, 너무 겁나서 실성했나 보군.”
“그 말 돌려주지.”
“곱게 죽지 않겠다는 말로 들리는구나! 좋다, 어디 해봐라!”
“나는 네놈들을 곱게 죽이지 않을 테니 마음껏 욕해도 좋다.”
“이거 그냥 미친놈이 아니라 완전히 미쳤구나!”
타이탄기사단은 가르딘을 비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르딘은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감정이 죽었다고 하는 편이 맞았다.
가르딘은 놈들을 그냥 죽이지 않을 생각이었다. 자신에게 이런 고통과 절망을 선사하고 편안하게 죽인다. 그건 말이 되지 않았다. 인세에 지옥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줄 작정이었다.
“이놈! 주둥이를 나불대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마!”
비스턴이 가르딘을 향해 달려들었다. 나머지 기사들은 모두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비스턴은 타이탄기사단에서도 제법 실력이 뛰어났다. 자신들까지 나서지 않아도 비스턴이 알아서 처리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타다닥!
휙! 휙!
가르딘은 빠르게 다가온 비스턴이 검을 휘두르기 전에 순간적으로 검을 검집에서 뺐다. 비스턴의 내달린 힘이 가르딘의 바로 앞에 멈추어 섰다. 힘껏 내리치려던 검을 잠은 채 몸을 떨었다.
부들! 부들!
비스턴은 몸을 떨며 움직이지 못했다. 이미 그는 극심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눈이 돌아가서 흰자위만 보였다. 그와 동시에 온몸에서 핏물이 흘러내렸다. 입이 찢어지고 코가 잘려 나갔다.
비스턴의 몸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곳이 모두 잘려 나갔다.
“크아아아아아악!”
귀를 찢는 듯한 비명이 비스턴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비명성을 제대로 내기도 힘들었다. 전신에 힘이 빠지고 있었다. 입이 찢어져서 말도 제대로 못 했다. 죽음이 다가오는데도 불구하고 고통은 생생하게 전해졌다.
-무극칠검식-제4절초-극한살인검.
무극칠검식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살초이며, 가장 잔인한 검법이다. 인체를 구성하는 모의 혈 중에서도 가장 고통스러운 열여덟 개의 혈맥을 끊어버리는 수법이었다. 일단 검초를 받은 자는 자신의 생애 가장 고통스러운 경험을 맛보며 죽어간다. 생생하게 전해지는 고통은 인간의 껍질은 산 채로 벗기는 것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정확하게 15분을 고통 속에 헤매다가 죽는다.
말이 15분이지만 직접 겪는 자는 생이 왜 이렇게 긴가를 생각할 정도로 극악한 살초다.
극한살인검은 신마가 무림공적이 되면서 죽이고 싶어 했던 놈들을 생각하면 만들어진 검법이었다. 지극히 살인적이며 극악했다. 놈들의 고통을 지켜보겠다는 의미가 강했다.
너무도 잔인하고 지독하기에 가르딘도 웬만하면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놈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다른 사람은 다 죽어도 라이나와 브리안은 안 되었다. 이기적이라고 욕을 해도 상관하지 않았다.
“이놈! 감히!”
30명의 타이탄기사단이 그제야 상대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검을 언제 휘둘렀는지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쓰러진 비스턴은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엄청난 피를 쏟고 있었다.
씨익!
가르딘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지어졌다. 그 모습이 타이탄기사단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 가르딘을 향해 일시에 달려 들었다. 동료의 복수를 하기 위해 나아갔다.
“죽어랏!”
가르딘은 다가오는 놈들을 향해 극한살인검을 사용했다. 놈들 모두 그냥 죽이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불같은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죽어 나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랜드마스터와 오러익스퍼트 급의 기사.
실력 차이가 엄연히 존재했다. 가르딘 앞에서 타이탄기사단의 돌격은 사신의 아가리에 자진해서 들어오겟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사악! 사악! 사악!
“크아아아악!”
“크아아아악!”
느렸다.
타이탄기사단이 검을 휘두르기도 전에 가르딘의 검이 출수되었다.
30명의 기사들 모두 변변한 반항조차 데대로 하지 못했다. 가르딘의 극한 살인검은 오러마스터라고 해도 막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물며 일반 기사들이 상대가 될 리 없었다.
털썩! 털썩! 털썩!
바들! 바들! 바들! 바들!
바닥에 쓰러진 타이탄기사단은 전신이 뒤집히는 듯한 고통 속에 온몸을 떨었다. 비명을 질러도 고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전신의 피가 급격하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가르딘이 딛고 서 있는 곳은 핏물이 흥건하게 적시었다.
비명성을 듣고 달려온 100명의 타이탄기사단이 황당한 듯이 바라보았다.
그들의 앞에 펼쳐진 현실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30명이 바닥에 쓰러져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고, 처럼한 풍경 속에 한 사람이 유유히 서 있었다.
“저...럴 수가!”
고작 한 명이 타이탄기사단 30명을 쓰러뜨렸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오러익스퍼트 급의 기사들이었다. 오러마스터라고 해도 이처럼 쉽사리 쓰러뜨리지 못한다. 더군다나 상대는 생채기 한 없어 보였다. 흡사 유령을 보는 듯했다.
“네...놈은 누구냐?”
“나를 모르나?”
타이탄기사단에게는 가르딘이 말장난하는 것으로 보이고 있었다.
“말을 못 하는 것을 보니 두려운 모양이구나!”
“저택의 주인도 알아보지 못하는 눈은 있으나 마나 한 거겠지.”
“저택의 주인? 설마!”
발키리 영지의 저택을 주인이라고 칭하는 자는 단 한 명뿐이다. 헥토르 왕국을 지금까지 농락하며 괴롭힌 존재. 즉 가르딘 카이로스였다. 헥토르 왕국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척살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발키리 영주로구나!”
“이제 알겠나.”
타이탄기사단의 제임스 부단장은 주변을 살폈다. 발키리 영주 이외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는 말은 혼자라는 것. 오러마스터가 아무리 강해도 타이탄기사단을 모두 상대한다는 것은 불가능 했다.
“혼자서 우리를 모두 상대할 수 있다고 보는가?”
한 점의 망설임도 없이 가르딘은 대답했다.
“물론.”
“뭐야! 오만도 이런 오만이 없구나!”
타이탄기사단의 기사들 모두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다. 상대라 오라마스터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저토록 쉽사리 대답하다니 타이탄기사단을 무시한 것과 진배없었다.
“말이 너무 많군.”
가르딘은 더 이상 말하기도 귀찮았다. 놈들에게 극한의 고통만을 남겨주면 되었다. 그것이 지금 해야 될 사명이었다.
가르딘이 움직이자 제임스 부단장이 소리쳤다.
“놈에게 타인탄 기사단의 무서움을 알려주자!“
“이얍!”
기합소리와 함께 타이탄기사단과 가르딘이 부딪쳤다. 100명이나 되는 기사단과 싸우는 가르딘의 모습이 무모해 보였지만 실상은 달랐다.
일검이 휘둘러지자 세 명의 기사가 힘 한번 못써보고 바닥에 쓰러졌다. 가르딘의 움직임은 광속에 가까웠다. 신형이 보이지도 않았다. 눈을 한 번 깜빡이고 정면을 보는 순간 자신의 몸이 검에 의해 잘려져 있었다.
타이탄기사단은 말 못 하는 인형에 불과했다.
가르딘은 종횡무진으로 움직였다.
제임스 부단장은 마치 유령을 보는 듯했다. 바로 앞에 있던 가르딘이 순식간에 사라졌을 때 이미 기사단 열 명을 쓰러뜨리고 난 후였다. 쓰러지 기사단은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며 비명성을 내질렀다. 최강의 기사단이며 극강의 인내력을 보유했다는 타이탄기사단의 기사들이 고통을 참지 못하며 바등거리는 모습은 생소하기까지 했다.
타이탄기사단이 수적인 우세로 인해 가졌던 자신감은 금세 공포로 변해갔다. 차라리 많은 병력에 의해 죽어 나갔다면 덜 공포스러웠을 것이다. 자부심을 가졌던 실력이 가르딘 앞에서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알자 자괴감과 더불어 두려움이 마음을 지배하게 되었다.
휘잉! 사아악!
“크아아악!”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다섯 명에서 여섯 명이 바닥을 뒹굴었다. 그냥 죽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 모두 아직 살아 있었다. 온모에 피칠갑을 한 듯한 모습으로 악귀처럼 바등거리는 모습은 생각하기도 싫은 모습이었다.
섬전보 앞에 타이탄기사단의 플래시 스텝은 무용지물이었다. 속도에서 따라오지 못할 정도의 괴리감이 존재했다.
기사단이 검을 휘둘렀을 때는 이미 가르딘의 검이 그들의 전신을 난자한 뒤였다.
제임스 부단장의 시야에 보인 장면은 지옥 그 자체였다. 타이탄기사단이 맥없이 끄러져 나갔다. 반항이라도 제대로 했다면 이와 같은 참담함은 존재하지 않았을지 몰랐다.
“악...마!”
더군다나 깨끗하게 죽이지도 않았다.
한 번은 그럴 수 있다고 해도 연거푸 계속 일어난다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상대는 일부러 고통스럽게 기사들을 죽이고 있었다.
10분이 지나자 바닥에 서 있는 자라고는 제임스와 가르딘을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100명이나 되는 타이탄기사단이 고작 10분을 버티지 못했다. 말도 안 되는 현실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투려움에 떨어야 하는 제임스였다.
“기...사라면 차라리 깨끗하게 죽여라!”
마지막 용기를 짜내듯이 말을 한 제임스였다.
그러나 가르딘은 제임스 부단장의 말을 비웃었다.
“기사라, 웃기는군!”
“무엇이 웃기느냐! 너도 기사라면 기사도를 지켜야 하는 것이 맞지 않는냐!”
호통치듯이 소리를 지르는 제임스였지만 가르딘은 가차없었다.
“힘없는 영지민을 도륙한 주제에 말은 잘하는군. 이미 너희들은 기사라고 할 수도 없다. 전쟁 중에 사람을 죽이는 것이야 상관없다. 그것을 어쩔 수 없이 명령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겠지. 하지만 이들은 전쟁과는 상관없었다. 그저 이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 죽은 것이다. 싫든 좋든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학살당했다. 그러고도 너희들은 떳떳하게 기사라 할 수 있는가!”
“그...건!”
제임스는 할 말을 잃었다. 자신들이 한 짓을 그제야 실감했다. 분명 인간이 할 짓은 아니었다. 그러나 저런 평민 따위가 자신들과 비교된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궁색한 말이라도 하려고 할 때 갑자기 가르딘이 미친 듯이 웃었다.
“하하하하하!”
“이런! 이런! 나도 어이가 없군. 다 웃기는 말이지. 나도 말이야! 나도 내 가족 때문에 이렇게 분노하는데 말이야! 다 필요 없다. 나는 그저 내 분노를 표출하고 싶을 뿐이다! 그 희생양으로 너희들이 결정됐다는 것뿐이지! 이렇게 만든 너희들을 그냥 죽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는 말이다! 그러니 고통스럽게 죽어라!”
가르딘 영지민의 억울한 죽음이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보다 가족이 죽었을지 모른다는 것에 더 분노했다.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 라이나와 브리안을 건드렸다는 것 자체가 화가 나는 일이었다.
가르딘은 혼자 남은 제임스도 극한살인검을 이용하여 죽여버렸다.
“다 죽인다! 남김없이 다!”
가르딘의 누빛은 점차적으로 살성을 띠고 있었다.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듣을 정도로 잔인한 눈빛이었다.
가르딘의 집무실 서재 아래로 통하는 비밀의 방, 지하로 내려갔던 칼슈타인 공작은 이상을 찌푸리며 올라왔다. 아래로 내려가 보니 아무것도 전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비밀의 방이 하나가 아니기에 다른 데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집무실의 창문 밖으로 기이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 오러마스터의 시력으로도 비현실적인 일이었다.
한 명을 상대로 타이탄기사단 전원이 당하고 있는 장면이엇다. 500명이나 되는 타이탄기사단중에 살아 남아서 버티고 있는 인원이 고작 50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저택을 수색하는 50명을 제외하면 400명이 차가운 바닥에 쓰러졌다는 말이 되었다.
타이탄기사단의 경우 두 제국의 기사단보다 떨어질지 몰라도 다른 왕국의 기사단보다는 월등히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저처럼 허무하게 당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자신이 지하로 내려갔다 올라오는 시간. 그 짧은 시간에 모두 당했다는 것인데 그게 말이 되는가!
“저...럴 수가 있는 건가!”
놀람은 두려움으로 바뀌는 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남아 있는 타이탄기사단의 기사들이 두려운 나머지 도망치기 시작했다. 악마와 같은 기사는 도망치는 기사들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검에서 오러샷(검탄)이 뿜어져 나가 도망치는 놈들의 심장을 꿰뚤어 버렸다.
상대는 오러블레이드를 자유자재로 다룰뿐더러 지치지도 않았다. 오러샷을 사방으로 날리면서도 정확했다.
자신이라고 해더 저렇게 할 수는 없었다.
아니, 오러마스터 최상급이라고 해도 저럴 수 있을까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결론은 아니었다.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실력이었다.
“도대체 누구냐? 어디서 저런 괴물이 나타난 것이냐?”
칼슈타인 공작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모두 전멸당할 수 있었다.
“설마 이런 식으로 쓸 줄이야!”
칼슈타인 공작은 마지막 최후의 비밀병기를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놈의 실력이 아무리 강해도 헥토르 왕국의 비밀병기를 이겨낼 수 있다고는 보지 않았다.
-가이안 소환!
칼슈타인 공작의 애검. 레드인의 그립(손잡이) 아래 박혀 있는 붉은색의 보석이 오러를 받아 빛을 뿜어내었다.
주춤! 주룸!
타이탄기사단의 기사들 전원을 상대하고도 숨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가르딘이었다. 그 모습이 괴물처럼 보이는 타이탄기사단이었다. 상대는 절대 인간이 아니었다. 인간이 어떻게 저렇게 강할 수 있단 말인가!
이제 남은 인원은 50명밖에 되지 않았다. 도망치는 것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몇 명이 도주하다가 머리통이 박살이나서 그 자리에서 즉사해 버렸다.
가르딘은 도망치는 놈을 가장 먼저 죽여버렸다. 오늘 가르딘에게 자비는 모두 출장 간 지 오래였다.
“인...간이 아니야!”
“악마다!”
“오지 마라!”
‘훗!’
가르딘은 자신을 악마라고 지칭하는 놈들의 모습이 가증스러웠다.
영지민을 도륙할 때는 아무 말도 없던 놈들이. 자신들이 당하자 이런 말을 한다. 그 모습이 가르딘에게는 어떻게 보이겠는가! 가증스러운 놈들이 아닐 수 없었다. 저런 놈들은 살아 있다는 것이 죄악이었다.
가르딘이 또 다시 움직였다.
검들 들어 놈들에게 다가가서 일검, 일검을 박아주었다. 검을 쓰는 데 한 점의 망설임이 존재하지 않았다.
50명이 남았지만 그들의 뇌리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이미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두려움으로 몸이 마비가 된 것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 드래곤 앞에 놓인 오크같았다.
그때였다.
“멈춰라! 이놈!”
쿠아아앙!
저택의 벽을 뚫고 나오는 거대한 병기가 있었다.
크기가 7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병기가 위풍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내었다. 전신에 플레이트 아머를 두세 겹씩 끼워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굳건한 모습은 그 어떤 것에도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가르딘의 시선이 새로 나타난 병기를 향했다.
"골렘인가?“
예전에 본 전투롤렘과 비슷하게 생긴 것처럼 보였다. 그 차이점은 그다지 크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상대가 누구인들 절대 살려둘 마음이 없었다.
칼슈타인 공작은 현재 가이안의 안에 탑승해 있었다. 카이안의 내부는 사람이 들어갈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각 관절에 공기주머니와 같은 역할 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어 내부에 탑승자를 외부 기체와 연결이 될 수 있도록 타이트하게 만들어주었다.
기체 안에 타고 있는 칼슈타인 공작과 가이안의 싱크로율(일제화율)이 완비된 순간, 칼슈타인 공작과 가이안은 하나가 된 듯한 움직임을 낼 수 있다.
칼슈타인 공작은 가르딘의 말을 들었다.
헥토르 왕국 최강의 병기인 가이안을 고작 골렘 따위와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불쾌한 일이었다.
“나는 대 헥토르 왕국의 칼슈타인 공작이다. 그리고 이것은 헥토르 왕국이 자랑하는 타이탄 카이안이다. 한데! 네놈은 누구냐?”
“하하하!”
가르딘은 속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않았다.
고작 일개 왕국 따위가 대 헥토르 왕국이란다. 카이로만 제국의 가사인 가르딘으로서는 가소롭기 짝이 없는 말이었다.
“뭐가 웃기느냐?”
“감히 카이로만 제국에 쳐들어와서 그따위 망발을 하다니 어이가 없어서 그런다.”
“이놈이 감히!”
“뭐, 상관은 없어. 어차피 부숴버리면 고철덩어리에 불과한 것을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네놈들과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도 않으니까.”
부르르르!
헥토르 왕구그이 비밀병기를 고철덩어리로 보다니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을 수 없는 칼슈타인 공작은 이를 갈며 말을 이었다.
“어디 지금부터도 그런 건방진 말을 할 수 있는지 보겠다!”
“해보시지.”
슈슈슉! 슈유웅! 슈우웅!
가르딘은 칼슈타인 공작이 말하는 동안에 검탄을 출수했다. 일거에 50여 발에 달하는 검탄이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헬버스터를 압축시켜 놓은 듯한 위력이었다.
칼슈타인 공작의 등장으로 안심하던 타이탄기사단의 기사들이 멍하니 있다가 머리통이 뚫려버렸다. 방심이 화를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방심하지 않고 있었다고 해도 피할 수 있는 수법이 아니었다. 검탄의 속도는 눈으로 쫓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강력했기 때문이다.
“비...겁한!”
“네놈과 상대하다 도망칠 것 같아서 말이지. 그럼 쫓기 귀찮거든.”
말하는 도중에 공격하다니 비겁함의 극치였다.
가르딘은 칼슈타인 공작의 말에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놈들은 상대를 이기기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자신의 가족까지 죽였다.
어느 쪽이 비겁한지는 상황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무표정한 가르딘이었지만 그의 속내는 뒤집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던 것이다.
일생을 살아가면서 처음으로 행복을 알았다. 라이나와 브리안, 가르딘에게는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자 희망이다. 차라리 자신이 죽었다면 이처럼 괴롭고 분노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 죽이다!’
분노는 점점 타올라서 가르딘의 마음을 악마처럼 만들었다.
가르딘과 마주하는 칼슈타인 공작도 분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헥토르 왕국의 제일기사단인 타이탄 기사단이 지금 거의 몰살당했다. 남아 있는 인원이 고작 50명밖에 되지 않는다. 이 책임을 그냥 넘어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네놈을 산 채로 갈기갈기 찢어주겠다!”
가르딘을 향한 분노를 퍼붓는 칼슈타인 공작이었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먼저 놈의 정제를 알고 싶었다. 대륙에 이놈처럼 강한 놈이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네놈은 누구냐?”
“훗!”
가르딘은 여전히 비웃었다.
아직도 자신의 정체를 모르다니 놈들의 머리가 정상이 아니라고 보았다.
“아직도 짐작이 가지 않는가!”
“겁이 나지 않는다면 밝혀라!”
“내가 바로 발키리 영주다! 그토록 날 죽이고 싶어하던 놈들이 정작 나를 몰라보다니 세상 참 웃기지 않는가!”
쿵!
칼슈타인 공작은 그 순간 심장이 덜컹하고 내려가는 충격을 받았다. 설마 눈앞에 있는 악마 같은 놈이 발키리 영주일 줄은 몰랐다. 발키리 영주가 오러마스터라는 것은 이미 조사해서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 수준은 단순한 오러마스터가 아니지 않는가! 순수 실력만 놓고 따지면 대륙 제일기사라는 말이 부족하지 않은 실력이었다. 대륙에서 타이탄기사단 전체와 싸울 수 있는 기사가 있다는 소리는 들어 보지도 못했다.
‘대륙이 모두 속고 있었구나!’
칼슈타인 공작은 가르딘이 철저하게 자신을 숨기고 있다고 보았다. 언젠가 그 숨은 야망을 드러낼지 몰랐다. 이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변방 영지에 머물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놈은 무언가를 노리고 있는 것이 분명 하다고 보았다. 놈이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 몰라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있었다.
가르딘이 위험한 놈이고, 헥토르 왕국을 위해서 반드시 죽여야 한다는 것 말이다.
기사로서의 순순 실력으로는 가르딘이 훨씬 더 강하다.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차이가 난다. 하지만 헥토르 왕국의 비밀병기인 타이탄 가이안을 타고 있는 이상 무서울 것이 없었다. 가이안만으로 공국 정도는 한순간에 무너트릴 수 있었다.
타이탄은 현 태역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병기가 아니다. 가이안은 이 시대의 병기가 아니라 아득히 먼 고대, 즉 마도시대의 병기다. 마법과 연금술, 마법공학이 극도로 발달한 시대에 만들어졌다고 알려진 고대의 마도병기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의 머법력과 연금술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꿈의 무기였다. 그 위력 또한 엄청나서 드래곤을 잡을 수 있다는 말까지 전해질 정도다.
헥토르 왕국은 아주 우연히 가이안을 발견했다. 헥토르 왕국의 초대 국왕이 나라를 세우면서 발견한 것을 꾸준히 연구하여 지금에 이르러서 작동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만드는 것은 할 수 없을지 몰라도 이미 만들어진 것을 연구하여 가동시기는 것은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 되었다. 그 정도만 해도 대단한 성과라 할 수 있었다. 마법수준이 아니라 마도공학 쪽으로는 헥토르 왕국이 가장 앞선 나라일지도 몰랐다.
칼슈타인 공작은 가이안을 시범적으로 사용했을 때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가공할 위력은 직접 겪어보지 않은 자는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오러마스터조차 입이 다물어 지지 않을 정도의 위력이었다.
“가이안의 위력을 보여주마!”
“고작 골레 따위로 나를 이기겠다는 간가.”
가르딘은 여전히 가이안을 골렘의 일종 정도로 보고 있었다. 사람이 타는 것과 타지 않는 것의 차이를 그다지 비중 있게 보지 않았다. 솔직히 타이탄이 뭐 하는 것인지도 잘 모른다. 그딴 것은 알고 싶지도 않았다.
가르딘과 칼슈타인 공작이 대치하는 동안 저택 안에서 수색하고 있던 타이탄기사단 50명이 밖으로 나왔다. 그들 모두 밖에서 벌어진 사태에 망연자실했다. 고작 한 명에게 타이탄기사단 450명이 전멸당했다. 직접 보지 않았다면 믿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돌료가 죽어 있다는 것에 분노했다.
스르르렁!
4미터는 되어보이는 거대한 검이 뽑혔다. 가이안의 왼쪽 허리 축에 매인 대검이었다. 검 하나만으로도 집을 반으로 갈라버릴 수 있을 정도의 위용이었다.
가이안의 위압감은 무시무시했다. 정면에서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질려버릴 정도의 압박감을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르딘은 그다지 표정 변화가 없었다. 무기에 의지해서 이긴다는 것 자체가 우습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칼슈타인 공작은 가르딘의 건방을 그냥 두고 보지 않았다.
가이안의 대검 주위에 청백색의 기운이 형성되었다. 이것이 타이탄만이 할 수 있는 오러전이였다. 내부에 탑승자가 가진 오러를 증폭시켜 외부의 타이탄 기체의 검에 형성시키는 기술이었다. 오러의 양이 믿지 못할 정도로 상승하며, 그 위력 또한 본래의 오러블레이드를 훨씬 초월한다. 부피가 커진 오러는 밀도가 작아지기 마련이지만 오러전이를 통한 오러블레이드는 차이가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 강하다고 봐야 했다.
오러전이를 통해 강력해진 가이안의 대검이 2미터가 더 늘어나서 6미터는 되어 보였다. 집채만 한 대검이 수직에서 아래로 하강하면 속절없이 반으로 잘려 나갈 것만 같았다.
“죽여주마!”
“오라!”
가르딘도 물러서지 않았다.
물러선다는 것 자체를 고려하지 않는 듯했다. 상대가 누구든 부서뜨릴 수 있다고 믿었다.
휘이이잉!
가이안의 대검이 바람을 갈랐다. 바람을 가르자 귀를 어지럽힐 정도의 파공성이 들렸다.
대지가 반토막이 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타이탄은 골렘과 다르게 무척이나 빨랐다. 타이탄 기체 자체적으로 탄력을 가지고 있어 스피드에서 속도를 가일층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타아아앙! 쿠아아아앙!
가르딘의 검에도 오러블레이드가 형성되었다.
오러블레이드와 거대 오러블레이드가 정면충돌했다.
무섭도록 강력한 충격파가 그 둘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상식적으로 상대가 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가르딘의 검이 조막만 하게 보일 지경이니 말이다.
주르르륵!
지면이 파지면서 뒤로 밀렸다. 땅을 파고 들어간 흔적이 2열로 늘어서 있었다.
가르딘은 천룡무상신공을 익히고 난 후 처음으로 밀렸다는 것을 알았다. 타이탄이 가르딘의 예상보다 강력하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제법 강하군.’
가르딘은 타이탄이 예상보다 강하다는 것을 몸으로 체감했다. 그러나 별반 두려움이 없었다. 그에 반해 칼슈타인 공작은 눈을 부릅떴다. 믿을 수가 없는 현실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럴 수가!”
가이안과 정면충돌하고 고작 뒤로 밀리는 것으로 끝이 나다니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놈의 무력이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가이안의 일검이라면 성벽을 반으로 조개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가르딘은 칼슈타인 공작이 놀라든 말든 공격에 집중했다. 타이탄이든 골렘이든 약점은 하나였다. 바로 다리 부근이었다. 아무리 빨라도 덩치가 큰 기체였다. 다리 부근이 잘려버리면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유효한 거리에서 섬전보를 운용했다. 무섭도록 빠른 가르딘이었다.
사사사사사삭! 슈우우웅!
부우웅!
무극칠검식의 제2절초인 일격참뢰가 가이안의 다리를 노리며 날아갔다. 그런데 의외로 가이안이 공중으로 솟구쳐 오르는 것이 아닌가! 공중으로 가볍게 도약하더니 위에서 아래로 가르딘을 향해 공격했다. 가이안은 두 손으로 대검을 잡고 가르딘의 전신을 향해 검술을 시전했다. 칼슈타인 공작의 독문절기라고 할 수 있는 드래곤 검법의 드래곤버스터(용의광선)였다. 용이 브레스를 쏘는 것과 같은 위력을 보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다. 좌우 반경 4미터에 해당하는 광선이었다. 가이안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도 드래곤버스터는 바위덩어리를 산산조각 내는 데 부족하지 않았다. 하물며 가이안을 대동한 위력은 상봉우리를 날려버릴 수 있었다.
슈아아앙! 꾸과과과광!
드래곤버스터가 파고든 지점을 기점으로 사방 8미터 정도가 완전히 부서져 나갔다. 그 안에 살아 있는 존재는 모두 소멸이 됐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칼슈타인 공작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놈이 비록 무섭도록 강하다지만 절대 살아 있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상대로 공격 지점에는 살아 움직이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움푹 파여 어둠만이 자리했다.
엄청난 피해를 보았지만 이겼다.
지켜보던 타이탄기사단의 기사들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괴물 같은 놈을 드디어 해치웠다는 안도감이었다.
“휴우우!”
“악마같은 놈이 이제 죽었구나!”
대결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땀에 흠뻑 젖은 기사들이었다. 설마 했는데 정면으로 가이안의 검을 받을 대는 눈이 뒤집어질 뻔했다. 타이탄과 힘과 힘의 대결에서 밀리지 않았다는 말이 아닌가! 사람이 아니라 괴물을 보는 것 같았다.
“좋은가!”
“응?”
기사들 모두 목소리가 들린 뒤로 고개를 돌렸다. 그 뒤에 가르딘이 멀쩡하게 서 있었다. 언제 저곳에서 이곳으로 이동했는지 누구도 보지 못했다.
가르딘은 가이안이 공격했을 때 이미 이곳으로 와 있었다. 섬전보가 극성에 이르면 이형환위 정도는 우스웠다. 칼슈타인 공작의 공격은 환영을 공격한 것에 불과 했다.
가르딘은 타이탄기사단을 한 놈도 살려두지 않을 작정이었다. 소리 없이 다가간 가르딘은 무차별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가르딘의 검은 마치 살아 있는 듯 했다. 상대의 검을 타고 흘러 적을 섬멸해 나갔다.
휘이이익! 휘이익!
“크아아아악!”
무극칠검식의 극한살인검이 다시 펼쳐졌다. 순식간에 기사 열 명이 바닥을 뒹굴었다. 전신에 피칠갑을 한 것처럼 피를 뿜어내면서도 고통스러워서 비명성을 내질렀다. 기사들은 반항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르딘은 항거불능의 존재였다.
“이놈! 멈춰라!”
칼슈타인 공작은 공격이 실패한 것을 알자 분노가 치솟았다. 더군다나 놈은 자신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기사단을 몰살시키려고 작정한 것 같았다. 자신을 이처럼 무시하는 놈은 처음이었다.
카아아앙! 쿠아아앙!
“크아아악!”
칼슈타인 공작이 내리친 검을 가르딘이 교묘하게 받았다. 검날의 사선을 타고 흐르듯이 유연하게 받아들인 가르딘은 이화접목의 수법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자 그 자리에서 멍하니 서 있던 다섯 명의 기사들이 가이안의 대검에 피박살이 나버렸다. 일시간에 육체가 모조리 박살이 나버린 것이다.
“이...놈!”
휘이잉! 파아아앙!
“으아아아악!”
가르딘은 유연하게 이화접목과 사량발천근의 수법을 사용하여 칼슈타인 공작을 농락했다. 칼슈타인 공작의 공격이 오히려 타이탄기사단에게는 악몽이 되고 있었다. 가르딘이 교묘하게 방향만 틀어서 타이탄기사단을 공격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고작 네 번 정도의 공격으로 인해 타이탄기사단의 기사중에 남아 있는 수가 열 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두려운 듯이 몸을 떨었다. 차라리 적의 공격에 죽는다면 괜찮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정작 자신들의 수장인 칼슈타인 공작의 손에 죽고 있었다. 이것이 더 두려웠다. 동료의 손에 죽는 것이 어떤 고통인지 깨달았다. 놈은 상대방에게 무엇이 가장 고통스러운지 알고 있는 듯 했다. 무서워서 모서리가 처질 지경이었다.
씨익!
가르딘의 비웃음이 비수가 되어 칼슈타인 공작의 가슴을 꿰뚫었다. 고작 아군을 죽이는 데 사용하는 고철덩어리라는 시선이었다. 대륙최강의 병기라는 타이탄을 탄 칼슈타인 공작은 비참하기 이를 데 없는 감정을 느꼈다.
“네 이놈! 네놈이 기사라면 이래서는 안 된다! 어찌 인간이 이런 잔인한 짓을 한단 말이냐! 네놈이 그러고도 기사란 날인가!”
“흥! 닥쳐! 내 분노는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아! 이곳에서 네 놈들을 모두 죽이고 난 후 헥토르 왕국까지 모조리 다 부숴버릴 테니까! 네놈들이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를 완전하게 소멸시켜 버리겠다.”
가르딘의 분노를 정면으로 받은 칼슈타인 공작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완전히 미친놈이었다. 하지만 그 말이 진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놈은 절대 이대로 끝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죽여야 한다! 이놈은 반드시 죽여야 한다!“
가르딘을 죽이지 못하면 헥토르 왕국이 위험했다. 놈은 그렇게 하고도 남는 놈이었다.
가르딘은 남아 있는 기사단에게 접근했다.
칼슈타인 공작은 최후에 죽이면 그뿐이었다. 놈이 탄 타이탄이 강하다고 하지만 가르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저벅! 저벅!
천천히 걸어오는 가르딘의 발걸음이 천둥소리처럼 들리는 타이탄기사단이었다. 사신의 발걸음이 바로 이와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들은 사신을 건드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후회가 정신과 육체를 감쌌다. 그러나 이미 늦어버렸다.
“살...려....!”
“크아악!”
살려달라는 놈들의 얼굴이 가증스럽게 느껴지는 가르딘은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극한살인검을 무섭게 휘둘렀다. 놈들에게는 처절한 고통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기어이 타이탄기사단을 전멸시킨 가르딘이었다.
칼슈타인 공작은 필살의 일격을 준비했다. 시간이 조금 걸리는 것이 문제였다. 가이안과 자신의 모든 힘을 집중시켜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동안에 죽어 나가는 기사들을 모른척해야 했던 것도 최후의 일격을 위해서였다.
모든 오러를 가이안의 대검에 집중했다. 놈의 신경이 기사들에게 가 있는 이 시점에 공격해야 했다.
우우우우웅!
가이안의 대검이 울었다. 칼슈타인 공작의 모든 오러가 집중되자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검이 울자 대기가 흔들거렸다.
“이것으로 죽어라!”
-드래곤 익스를로젼(용폭).
“크아아앙!”
드래곤의 거친 노성이 티지는 듯한 소리였다.
날아오는 고대한 기운을 정면으로 바라본 가르딘이었다. 칼슈타인 공작의 드래곤 익스플로젼은 검환을 연상시켰다. 집채만 한 둘그런 강기 덩어리라고 봐도 무방했다.
가르딘은 주저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천룡무상신공이 운용이 되어 검으로 전이되었다. 가르딘이 들고 있는 검 역시 검명을 토해내였다.
-부극칠검식 제5절초 파천멸환.
푸아아아아아앙!
휘이이이이이이잉!
드래곤 익스플로젼과 파천멸환이 가르딘과 칼슈타인 공작의 중간 거리에서 부딪쳤다. 부딪치자마자 폭발이 발생했다.
사팡으로 충격파가 퍼져나갔다. 반경 20미터 이내가 모조리 다 사라져 버릴 정도의 위력이었다. 타이탄기사단의 시체들조차 그 충격으로 인해 산산히 부서져 나갔다.
뿌연 먼지가 주변을 가득 메웠다.
휘이잉!
바람소리와 함께 먼지가 사라졌을 때 칼슈타인 공작은 정면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가라졌어야 할 가르딘이 어느새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것이 아닌가!
“괴...물...이구나!”
드래곤 익스플로젼은 칼슈타인 공작의 최강 절초였다. 가이안의 힘을 받은 드래곤 익스플로젼은 원래의 위력보다 족히 다섯 배는 더 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르딘을 이기지 못했다.
두려움으로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죽으란 말이다!”
휘이잉! 휘이잉!
칼슈타인 공작의 공격에 힘이 실리기는 했지만 가르딘의 움직임을 잡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탁!
가볍게 가이안의 대검에 발을 댄 가르딘이 솟구쳐 올랐다. 허공을 밟듯이 날아서 가르딘이 가이안의 왼쪽 어깨를 장악했다.
칼슈타인 공작은 다급했다. 왼쪽에 있는 가르딘을 떼어놓아야 했다. 움직여서 날려버리려고 했지만 가르딘은 요지부동이었다.
가르딘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 천근추의 수법을 사용하여 가이안의 왼쪽 어깨를 무겁게 내리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떨...어져라! 이놈!”
참다 못한 칼슈타인 공작이 들고 있던 검으로 가르딘을 공격했다. 가이안의 대검이 가르딘을 향해 날아왔다.
가르딘은 가아안의 어굴을 잡고 반대로 돌았다. 빙판을 미끄러지는 듯이 유연하게 움직였다.
카카캉!
그러자 왼쪽 어깨를 스스로 공격한 꼴이 되어버린 칼슈타인 공작이었다. 가르딘은 철저하게 상대를 농락했다. 이제는 오른쪽 어깨로 타고 온 가르딘이었다. 가이안의 전신에서 떨어지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제 그만 죽어라.”
가르딘으 가이안에 올라타면서 칼슈타인 공작의 신체를 찾았다. 감각을 끌어올려 가이안의 몸체 안을 투영했다.
가이안의 몸통 부분의 중앙에 칼슈타인 공작이 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가르딘의 검에서 오러블레이드가 형성되었다. 형성된 오러블레이드를 가이안의 등 뒤에서 찔러 내려가기 시작했다. 타이탄의 전신은 파이럴로 만들어져 있었다. 명검을 만들기 위해 소량을 추가하는 파이럴로 전신을 감사고 있으니 그 단담함은 최강이라는 표현이 부족하다. 그러나 가르딘의 오러블레이드는 보통의 오러블레이드와는 달랐다. 오러를 몇 배로 압축해 놓은 순도 높은 오러블레이드였다.
천룡무상신공의 기운으로 형성이 된 천룡강기였다. 천룡강기로 운용이 되는 오러블레이드가 파이럴로 감싸고 있는 가이안의 외부갑판을 종잇장 자르듯이 휘저었다. 검은 정확하게 외부갑판의 폭을 60센티미터 이상 잘라내었다.
가이안의 몸 안에 있던 칼슈타인 공작이 대경실색했다. 설마 가이안의 외부갑판을 잘라낼 줄은 몰랐던 것이다. 가이안의 외부갑판에는 오러가 으근히 흐르기에 일반적인 파이럴의 강도를 초월한다. 오러블레이드라고 해도 쉽사리 분해가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타이탄이 무적의 병기라고 불리는 것이다. 압도적인 크기와 빠르기, 단단함을 무기로 일수에 적들을 섬멸하는 멸절의 마병기로 불린다. 그런 마병기가 이처럼 허무하게 뚫리다니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했다.
철커덩!
뚫린 위부갑판이 히없이 떨어져 나갔다. 내부가 무방비로 노출이 된 칼슈타인 공작이었다. 싱크로율(일체화율)로 인해 몸이 가이안과 합일된 상태였다. 몸을 움직이기가 쉬지 않았다.
칼슈타인 고장의 훤히 보이는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가르딘이었다. 가르딘의 표정은 냉정함 그 자체였다. 500명이나 되는 기사들을 죽이고, 가이안과 싸운 기사치고는 너무도 잔잔했다. 표정 하나 없는 가르딘의 모습이 더 싸늘하고, 무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덜! 덜! 덜!
몸이 떨렸다.
오러마스터가 되고 나서 두려움은 존재하지 않았던 칼슈타인 공작이었다. 모든 일이 자신의 뜻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늘 자신의 모든 것이 무너질 상황에 처했다. 세상에 어찌 저런 괴물이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500명의 타이탄기사단과 타이탄 가이안을 단독으로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렸다.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이럴 수는 없었다.
저놈은 인간이 아니었다. 인간이라면 이런 힘을 가질 수 없다.
“네놈은... 누구냐?”
“이미 알 텐데.”
“너 같은 놈이 인간일 수 없다! 차...라리 마족이라고 해라!”
가르딘이 인간이 아니라면 이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인간이 아닌 그 이상의 존재라면 납득이 될지 모른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은 것이다.
‘흥!’
“마족이라! 말은 잘도 하는구나. 나의 이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무너뜨린 네놈들에게 나는 마족보다 더한 마왕이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다. 아니, 내가 마왕이 되어 친히 헥토르 왕국을 멸망시킬 것이다. 주춧돌 하나도 남기지 않고 싸그리 다 몰살시킬 테니 두고 보는 게 좋을 거다.”
부르르르!
“어찌 너 하나를 건드렸다고 그럴 수가 잇는 것이냐? 네놈은 미쳤다!”
가르딘의 말에는 거짓이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 그렇게 할 것으로 보였다. 칼슈타인 공작은 자신만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헥토르 왕국의 공작인 칼슈타인 공작이 왕국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가! 왕국을 위해 목숨도 버릴 수 있었다. 헥토르 왕국이 저 괴물의 손에 망가지는 것은 두고 볼 수 없는 일이었다.
“나 하나로고! 차라리 날 죽이지 그랬느냐! 그랬다면 이처럼 분노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 가족을 건드리고 무사히 끝날 줄 알아!”
가르딘의 말이 격해지고 있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가르딘을 억제하는 최후의 보루이자 희망이었다. 그것이 무너지자 이성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고 있었다.
칼슈타인 공작은 억울했다. 놈의 가족은 죽이지 못한 상황이었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상황에서 자신뿐 아니라 헥토르 왕국까지 위험하게 되었다.
다급하게 변명을 할 수밖에 없게 된 칼슈타인 공작이었다.
“네 가족은 아직 살아 있을 것이다!”
“네 말을 믿으라고! 결국 살기 위해 발악을 하는구나!”
“내... 말은 사실이다!”
“시끄럽다.”
가르딘의 기감은 상식선을 넘어서 있었다. 특히 라이나와 브리안의 기운은 반경 1천 장 안에 있다면 어디에 있더라도 알 수 있는 감각을 가졌다. 그런데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가르딘은 칼슈타인 공작이 살기 위해 거짓을 말한다고 생각했다.
일국의 공작이 거짓을 말하자 더욱 화가 난 가르딘이었다.
“아니다. 내 말은 사실이다!”
“닥치라고 했다!”
광폭하기까지 한 가르딘이었다.
전신에서 압도적인 기운이 형성되었다. 폭사되어 나가는 기운이 모두 살기가 되어 칼슈타인 공작의 전신을 난자하는 것 같았다.
오러마스터에 이르면 오러피어(무형지기)가 발산이 된다. 가르딘의 무형지기는 공포를 넘어서서 살기를 띠었다. 오러마스터조차 전신을 벌벌 덜게 만드는 기운이었다. 가르딘의 마음이 살기가 되어 칼슈타인 공작을 공격하고 있었다.
심형살기라고 할 수 있는 경지였다. 마음으로 상대를 죽일 수도 있는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크윽!’
‘이럴 수가!’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칼슈타인 공작은 그제야 가르딘의 실체를 조금이나마 본 것 같았다. 오러마스터를 기운으로 제압하는 능력. 이것은 인간이 아니었다. 아니, 인간이라고 해도 이 정도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면 그때부터는 괴물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이...놈은... 건드...드려서는 안 되는... 놈이야!’
헥토르 왕국을 위해서 말을 하고 싶었다. 이 괴물이 본격적으로 움직이면 헥토르 왕국은 끝장이었다. 차라리 제국과 전쟁을 하는 것이 나을지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칼슈타인 공작의 생각은 말로 전해지지 못했다.
공작의 눈앞으로 새하얀 섬광이 다가왔다.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섬광이었다. 눈부신 섬광이 닿았을 때 칼슈타인 공작의 시야는 영원한 암흑으로 물들어갔다.
가르딘의 검이 칼슈타인 공작의 목을 잘라버린 것이다. 가르딘은 가이안의 내부에 있던 칼슈타인 공작의 머리를 잡고 집어 던졌다. 머리는 나중에 쓸모가 있었다. 헥토르 왕국의 국와 사이너스에게 선물로 줄 생각이었다. 놈들의 일그러지는 표정과,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눈으로 선명하게 지켜볼 것이다.
처절하게 복수는 했다.
그러나 가르딘은 공허했다. 마음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사라져 버리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주르르륵!
가르딘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슬픔과 분노에 의해 미칠 듯이 터질 것 같은 가슴을 부여 잡을 수밖에 없는 가른딘이었다. 절망이 무엇인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라이나와 브리안은 그저 가족이 아니었다. 가족이야말고 가르딘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폭포수처럼 솟아오른 눔물은 멈추지 않았다.
“크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악!”
가르딘이 괴성을 지르며 울부짖었다.
화를 토해내듯이 천룡무상신공을 최고로 끌어올렸다. 끌어올린 기운이 전신에 퍼져나갔다. 천룡강기로 무장이 된 가르딘의 몸은 천룡신의 경지에 이르렀다. 광폭한 기운이 사방을 휘저었다. 천룡이 아니라 한 마리의 미친 광룡이 된 것처럼 보였다.
고철이 된 가이안을 향해 분노를 터뜨렸다.
지금 당장 무엇이라도 부숴놓지 않으면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사사사삭! 철커덩! 사사삭! 철커덩!
심검지경의 경지에 이른 막강한 길력의 가르딘이었다. 고철이 된 가이안이 버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검이 휘둘러지는 곳마다 철 조각이 되어 바닥에 떨어져 나갔다. 7미터나 되는 거대 기체 가이안이 반토막이 되어버리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휘이이이잉!
가르딘을 중심으로 회오리가 형성이 되어 퍼져나갔다. 부노는 점점 가일층되어 갔고, 이성은 마비가 되었다.
-천룡이 분노하여 광룡이 되었을 때를 조심하거라!
신마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사념이 마지막으로 한 말이었다. 천룡무상신공의 주화입마를 뜻하는 것이었다. 분노를 억제하고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 것이 천룡무상신공이었다. 무념무상을 이루어 정신과 몸을 관조하여 천지와 소통하고, 마음을 우주로 개방하여 천룡무상신공의 진정한 극의로 나아가야 할 때 찾아오는 마지막 고통이라고 할 수 있다.
“모두 죽인다!”
“죽이긴 뭘 죽역.”
어느새 누군가 다가왔다.
공간이동을 통해 이곳에 모습을 드러낸 인물은 노인이었다. 가르딘도 익히 아는 인물 중에 한 명이다.
다크랜드 산맥의 주인이자 골드드래곤의 고룡인 라이젠 크라이스가 나타난 것이다. 가르딘은 무심히 라이젠을 보았다.
“아무리 라이젠 님이라고 해도 저의 분노를 막을 수는....”
“네 가족은 살아 있다.”
움찔!
가르딘이 미처 말을 하기 전에 먼저 선수를 친 라이젠이었다. 주화입마에 들어가기 일보 직전의 가르딘이었다. 상당히 위험한 상태였기에 어떤 상황이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거짓말같이 가르딘의 광폭한 기운이 사라졌다. 어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한 변화였다.
“있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라이젠 님이라면 충분히 저를 막으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 좀 전에 한 말을 다시 한 번 해 주십시오!”
“네 가족은 살아 있다.”
“정말입니까?”
“드래곤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역시 라이젠 님이십니다. 제가 그럴 줄 알았습니다!”
와락!
가르딘의 신형이 순식간에 라이젠의 코앞에 다가왔다. 무방비의 라이젠이었다. 라이젠의 어깨를 강렬하게 끌어안은 가르딘이었다. 사실 피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공간이동을 무색하게 만드는 신형이었다. 라이젠이 미처 반응할 틈도 없을 정도로 빨랐다.
“고맙습니다! 이 은혜 죽어서도 잊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내 레어에 있네.”
“그럼 어서 빨리 가시지요.”
“우선은 이곳을 정리하는 게 낫지 않은가?”
가르딘은 주변을 보았다.
저택의 절반 정도가 박살이 났고, 주변에는 시체들과 고깃덩어리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지옥의 아수라장이 따로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박살이 난 장소였다. 심약한 사람이 보았다면 심장마지 걸려서 죽을 수도 있을 정도였다.
“이런 모습을 아내와 딸에게 보여줄 것인가! 자네 모습 좀 보게.”
“아! 그렇군요! 역시 라이젠 님은 현명하십니다. 미천한 인간의 두뇌를 가전 저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현명하십니다!” 가르디은 라이젠이 어떤 말을 해도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입에서는 술술 아부가 흘러나왔다. 가족이 살아 있는 것만으로 가르딘은 예전으로 돌아가 있엇다. 정말 좀 전의 그 광폭한 인간이 과연 지금의 능글맞은 인간이 맞는지 의심이 가는 라이젠이었다.
라이젠은 가르딘의 아부ㅤㅅㅏㄲ인 말에 마냥 좋아할 수 없었다.
‘좀 전의 그 기운은 나조차도 감히 막아서기 힘들었다!’
폭발적으로 형성된 기운은 섬뜩할 정도로 무서웠다.
라이젠은 아직도 몸이 떨리고 있는 것을 느꼈다. 만약 조금만 늦었다면 과연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지 생각을 해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본체로 돌아간다고 해도 이긴다는 보장이 없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놈이군. 이놈에게 가족이라는 안전 장치가 이Rrl에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큰일 날 뻔했다.’
라이젠이 고민을 심각하게 하자,
“라이젠 님, 무슨 고민이 그렇게 많으십니까! 이 정도는 금세 다시 복구할 수 있습니다. 행여나 고민을 많이 하다 레어의 공간이동 좌표를 잊어버리시면 어떻게 합니까! 여로하신 라이젠 님은 그만 고민하십시오.”
걱정하는 건지 아닌지 헷갈리는 말투였다.
“지금 내가 늙었다는 겐가?”
“그런 말은 아닙니다. 그저 걱정이 되어서 그렇습니다. 사실 그럴 나이가 되긴 하지 않았습니까!”
“됐네. 나는 아직 정정하네! 내 딸아이가 결혼해서 앙팡지고 귀여운 소자를 볼 때까지 정정하게 무병장수할 거네.”
“그래야지요. 암! 암! 꼭 그렇게 될 겁니다.”
가르딘은 라이젠이 무슨 말을 해도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이든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같았다. 어딘지 모르게 나사가 하나 빠져 모자라 보이기까지 했다.
라이젠은 가르딘의 머리를 열어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도대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우선은 정리를 해야 하는데. 안젤리카!”
가르딘이 안젤리카를 불렀다.
고룡인 라이젠을 시킬 수는 없어도 안젤리카는 괜찮았다. 영지의 마법사로 유희 중이니 영주가 시키은 일을 처리하는 것은 당연했다.
멀리서 가만히 있었던 알젤리카가 다가왔다.
“여기 좀 깨끗하게 치워 줘.”
“예, 영주님!”
“그럼 우리는 갈까요?”
“자네 내 딸에게 내가 보는 앞에서 일을 시키고 가고 싶은가?”
“영지 마법사 아닙니까. 이 정도는 괜찮지 않습니까!”
“그럼 자네만 가게. 나는 딸아이가 고생하는 것은 보지 못하겠네.
슈웅!
라이젠이 가르딘만을 자신의 레어로 공간이동시켰다.
가르딘을 공간이동으로 날려버리고 난 후 라이젠은 안젤리카에게 다가갔다. 안젤리카는 표정이 그다지 밝지 못했다. 오늘 그녀는 제대로 일을 수행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영지 마법사라고 하지만 그것이 다였다. 그저 지켜보고 있는 것이 그녀가 한 모든 것이었다. 무엇을 했어야 옳았는지 판단을 제대로 내리지 못한 것이다.
“제가 먼저 나섰어야 했나요?”
“그렇지는 않다. 드래곤의 율법을 지키는 것도 중요한 거니까.”
“그럼 지금의 제 행동이 옳았나요?”
“모르지. 세상사 돌아가는 일을 드래곤이라고 할지라도 모두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지. 다만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서 책임지고 감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오늘 너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 인간사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율법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그동안의 친분 관계를 위해서 나설 것인가를 고민했을 것이다. 안 그러냐?”
“맞아요. 하지만 저는 관여했으면 했어요. 아니, 아버지처럼 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생각이 짧았던 것 같아요.”
“아니, 너는 잘 했다. 원칙을 지키면서 경험을 쌓아가는 것이다. 무조건 원칙을 어기면 앞으로 나아가는 방향과 판단에 더욱더 혼란을 줄 수 있다. 너는 아직 경험이 부족한 것뿐이다. 지금처럼 하니씩 배워가면서 융통성을 키워가면 되니 걱정하지 말거라. 이리 딸은 아빠 닮아서 강하니 이번 일로 더욱 강해질 거지?”
“아빠, 고마워요! 영주님을 도와주셔서.”
“그것보다 그놈을 잘 지켜봐라. 오늘 그놈은 상당히 위험 했었다.”
“정말이요?
“너도 봤을 것 아니냐! 녀석은 폭주 일보 직전까지 가 있었다. 보통 인간의 폭주라면 상관없겠지만 녀석은 보통이 아니니까. 네가 옆에서 잘 보조를 해주어라.”
“알았어요. 제가 영주님을 잘 보필할게요.”
“우선은 이곳을 정리하고 녀석을 다시 데려오자꾸나.”
라이젠의 레어로 공간이동이된 가르딘이었다.
그는 곧바로 라이나와 브리안을 찾았다.
“느껴진다!”
살아 있다는 것을 확신하자 가르딘은 너무 기뻤다. 다시 한 번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가르딘이었다. 라이나와 브리안이 없다고 생각하자 가슴속이 모두 부서진 것 같았다. 그런데 이제는 다시 차올랐다. 충만하게 차올라 더 이상 차오를 데가 없을 것처럼 보인다.
가르딘이 떨리는 마음으로 걸어갔다.
레어안으로 걸어 들어가자 그 안에 라이나와 브리안이 참을 취하고 있었다. 라이젠은 라이나와 브리안을 슬립 마법으로 재워놓고 레어로 데려왔다. 아직은 자신이 드래곤이라는 것을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침대 위에서 잠을 자는 모녀였다.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는 가르딘이었다.
새근새근 자는 모습이 천사들처럼 보였다. 깨우는 것이 미안하다는 마음까지 들었다. 가르딘은 라이나와 브리안을 보면서 다짐했다.
‘여보! 그리고 브리안! 다시는 당신과 브리안을 위험에 처하지 않겠다고 맹세하겠소! 내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소!’
가르딘은 생애 처음으로 강렬하게 바라게 되었다. 라이나와 브리안을 지키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강해져야 했다. 혼자만 강한 것이 아니라 라이나와 브리안의 주변까지 모두 강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