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화 (25/93)

   @@[제3장 영지 발전(경제편)@@]

  영지의 발전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딱 3가지가 필요하다고 일반적으로 말을 한다. 인구, 땅, 돈 이 3가지가 꼭 필요하다. 나라를 구성하는 것과 비슷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완벽하게 구축이 되었다고 해도 가장 중요한 1가지가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주인의 의지다.

  아무리 좋은 재료와 사람이 있어서 막상 주인이 해야 할 의욕이 없다면 발전은 물 건너 간 것이나 다름없다.

  영지의 주인.

  즉 영주가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가르딘은 의지가 높은가! 그건 또 아니었다. 가르딘은 영지 생활에 만족하면서 조금씩 변화를 주기 원한다. 혁명적인 발전은 피를 요구하는 것이 정석이다. 그러한 파격을 맞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가르딘은 조금씩 개혁을 하면서 천천히 움직이려고 하고 있었다.

  그와는 반대로 파멜라는 영지 발전을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미 자신이 필요한 사람을 모아서 영지에 데려온 상태였다. 파멜라가 데려온 자들은 모두 가르딘의 심사를 받았다. 발키리 영지의 중앙행정관인 파멜라를 보조한 지역행정관들이었다. 그들은 총 30명이었고, 각 영지에 파견되어질 예정이었다.

  그들 중에서 제론, 사이안, 카슨은 파멜라의 곁에서 보조할 중앙행정관 보조로 뽑았다.

  그들은 영지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끊임없이 조사를 한 후 서류로 작성한 상태였다. 그 서류를 파멜라에게 검사를 맞고, 파멜라는 서류에 제안된 발전계획을 추려서 가르딘에게 보여 주었다. 집무실에서 서류를 받아 든 가르딘은 골치가 아파왔다.

  “파이트너 상단에서 파는 밀의 가격은 적당하다고 했잖아. 그런데 이제 와서 가격이 적당하지 않다는 이유는 뭐야?”

  “시간이 부족해서 제대로 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다시 확실하게 조사를 한 거예요. 그 결과 장기적으로는 손해예요! 사실 발키리 영지에서 다른 영지로 가는 길이 너무 협소한 게 사실이에요. 그로 인해서 운송료가 상당히 비싸요! 운송료 대신에 밀의 가격을 제 가격보다 2할 정도 낮추고 있는 상황이거든요.”

  파이트너 상단으로서는 적당한 가격 설정이었다. 운송료를 모두 지불하게 되면 밀 가격을 적당히 맞출 수 없다. 그래서 밀 가격을 싸게 사들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발키리 영지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 중에 하나였다.

  “너 지금 제정신이냐! 운송을 편하게 하자고 도로를 만들자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지금이야 돈이 들겠지만 나중에는 결국 영지의 소득을 높여 줄 수 있어요! 일단 도로가 뚫리면 다른 상단이 들어올 수 있는 계기가 될 거예요.”

  상단이 하나밖에 없어서 경쟁을 할 수 없다. 그로 인해서 적당한 가격 이외에는 절대로 받을 수 없다. 파이트너 상단이 마음 단단히 먹고 가격을 낮추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있었다.

  “여기 보면 도로의 길이가 갈파인 영지까지인데! 너무 멀잖아. 더군다나 자금이 10만 골드나 필요하다며! 영지 예산의 절반 이상을 도로건설에 사용하면 영지경영을 어떻게 해!”

  “그래도 시도를 해야 해요!”

  “당장 돈이 없잖아!”

  이러려고 발키리 영지에 온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해서든 잘 먹고 잘살려고 왔건만 돈이 모자란 상황을 원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이대로 10만 골드를 쓰게 되면 거지가 된다. 이렇게 되면 라이나와 브리안에게 너무 미안했다. 자신의 주장으로 변방 영지에 왔는데 어떻게 고생을 시킨단 말인가!

  “바로 시작하자는 것은 아니에요! 영주님이 하려고 하는지를 알고 싶을 뿐이에요! 이대로 있으면 결국 영지에 불이익예요.”

  ‘음!’

  파멜라도 돈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계속 미룰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서 반드시 이행되어야 하는 일이었다.

  가르딘을 바라보는 파멜라의 모습에서 간절함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가르딘은 그 표정을 보면서 거절하기 힘들었다.

  “알았다. 바로 시작하지는 않아도 검토를 해보자꾸나.”

  “감사합니다. 영주님!”

  “그것보다 고구마 생산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지?”

  영지의 수익을 창출시키기 위해 가르딘이 가져온 고구마를 대량생산하기로 결정했었다. 아직 씨가 많은 편이 아니기에 대량생산은 아무래도 반년이 지나야 가능할 것으로 예상이 되었다.

  “조금만 지나면 대량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이 되요. 만약 영주님의 생각대로만 된다면 영지의 수입이 최소 1.5배 정도 상승할 것으로 계산이 되었어요.”

  “괜찮군.”

  “하지만 영지에 일꾼이 많이 부족한 실정이에요.”

  “부족하다고, 얼마나 부족하지?”

  “영지의 크기는 후작급에 달하는 반면에 영지민이 20만 명밖에 되지 않아요. 최소한 두 배는 더 돼야 생산하는데 차질을 빗지 않을 것으로 예상이 돼요.”

  사람을 채우는 일은 쉽지 않다.다른 영지에서 이곳 발키리 영지로 올 리 없지 않은가! 지난번 두 차례 벌어진 몬스터대량침공으로 인해 발키리 영지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좋지 않은 편이었다. 지금에 와서 안전하다고 해도 한번 틀에 박힌 인식을 바꾸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더군다나 사람은 영지의 재산 중에 하나이자 힘이었다. 각 영지의 사람들을 데려오려면 상당한 자금이 필요했다.

  ‘뭘 해도 돈이네! 제기랄!’

  시간이 무척이나 많이 소모되는 일이 바로 인구 증강이었다. 한 번에 확 늘어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한데, 방법이 별로 없었다.

  ‘다크 랜드에 평원도 개발해야 하는데!’

  이제는 다크 랜드의 몬스터를 걱정할 필요성이 없었다. 대신에 성벽의 반대쪽으로 펼쳐진 기름진 대지를 개발해야 했다. 그 땅만 제대로 개발해서 농지로 만들어낸다면 수익은 지금보다 족히 2배 이상은 창출될 것이다. 그러려면 사람이 많이 필요했다.

  리베시안 찻잎을 생산하는 것도 1년이 필요했다. 모종을 기르고, 찻잎으로 성장을 시킨 다음 말리는 작업까지 마치기 위한 시간이었다.

  “하나씩 해결하자, 우선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돈을 만들 방법을 생각해 보자.”

  “정 필요하다면 파이트너 상단에 돈을 빌리는 것이 어떻습니까?”

  “안 돼!”

  가르딘이 가장 싫어하는 일이 돈 빌리는 것이었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고, 사람 일이라는 것은 돈이 걸리면 치사해지기 마련이었다. 그런 일은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 돈이 없다면 여기서 멈추면 그만이었다. 굳이 발전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당장 죽지 않는다.

  “그럴 거면 도로고, 학교고 다 때려치워! 모두 안 하면 그만이지!”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겠어요!”

  파멜라로서도 더 이상 말을 올릴 수 없었다. 가르딘의 마음이 너무 확고했다. 그리고 파멜라가 생각하기에 영지 발전에 그다지 목메지 않는 가르딘이었다. 평소의 여가시간을 모두 가족들과의 일과에 소비하는 것으로 봐서는 거의 확실했다.

  그만 나가 봐. 생각 좀 하게.”

  “예, 영주님!”

  파멜라가 나가고 나자 가르딘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전에 드래곤이 소원을 들어준다고 했을 때 돈을 달라고 할 걸 하는 후회가 물밀 듯이 밀려왔다. 일단 저지르고 난 후 후회하는 가르딘이었다. 그렇다고 이미 지난 일을 가지고 고민하지는 않는다.그리고 드래곤들이 영지 일에 개입하는 것이 그다지 달갑지 않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게 세상일이었다. 드래곤이 영지에 있다는 것이 알려질 이유는 없겠지만 굳이 알릴 필요도 없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오랜만에 심도 있게 고민하고 있는 가르딘이다.

  놀라운 일 중에 하나였다. 요 근래 일은 모두 파멜라에게 떠넘기고 그녀가 알아서 처리했기에 그다지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않았던 가르딘이었다. 하지만 발리키 영지는 파멜라의 것이 아닌 가르딘의 것이었다. 영지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시기였다.

  돈을 벌기 위한 원초적인 것을 생각했다. 쉬운 것에서 시작해서 단서를 잡고, 점점 넓혀갔다. 처음부터 대단한 것을 시작해서는 절대 돈을 벌 수 없다. 시작은 기틀이 중요하고, 기틀이 마련되어야 큰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먹으려면 음식이 필요하고, 음식을 담으려면 그릇이 필요하다. 요즘에 사용하는 그릇은 나무그릇, 철제그릇, 은그릇, 황금그릇인데, 이것들 모두 소모품이 되기 쉽고 불편한 점이 있는데.”‘아! 토기!’

  흙으로 만든 그릇을 말한다.

  이 시대 사람들은 모두 나무 아니면 철로 그릇을 만든다. 하지만 일단 만들어진 것은 아름답지도 않을뿐더러 오래 사용할 수 없는 단점이 존재한다. 물론 흙으로 만든 그릇은 예전에 사용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이것 역시 오래 사용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토기는 신마의 지식 속에 남겨진 기억이었다.

  토기를 그냥 흙으로 만들어냈다고 해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만들어낸 것은 지금의 그릇과는 차별성이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유약이었다. 유약으로 겉 표면을 발라주어야 제대로 된 토기, 즉 도자기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우선은 가마부터 만들어야겠다.”

  가르딘은 사람을 불렀다.

  가마를 만들어서 실험을 해봐야 했다. 지식만으로 금방 도자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수십 번, 수백 번의 실험이 필요했다. 가뜩이나 시간이 없는 상태이니 바로 시작해야 했다.

  “잘만 되면 돈이 된다.”

  3개월 정도를 잡고 계획을 짠 가르딘이었다. 다른 곡물보다 훨씬 빠른 시간이었다. 제대로만 된다면 대륙의 그릇시장을 획기적으로 개혁할 수 있었다.

  10일 정도가 흘렀다.

  가르딘이 지시한 대로 사람들을 모아서 장소를 마련하고 도자기 가마를 만들었다. 장소는 영지의 저택 뒤에 있는 공터를 채택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장소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했다. 가르딘은 자신의 지식을 남들과 공유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파멜라는 가르딘이 무엇을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영주님이 도대체 무얼 하는 것인지? 카슨, 너는 알겠니?”

  “모르겠습니다.”

  “그렇겠지. 우선은 우리 일을 마무리하자, 아직 처리해야 할 사안이 많고, 영지발전 계획을 짜기 위해서는 시간을 줄여야 해!”

  “알겠습니다.”

  가르딘은 딱 10명만을 선별했다.

  발키리 영지 내에서 손재주자 제법 뛰어난 녀석들을 모아서 가르치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10명을 가르치고 제대로 되면 비밀리에 기술을 전수하면 되었다. 또한 이들 10명은 저택에 머물면서 특수 수당을 받게 될 것이다. 노력한 만큼 대가를 주는 성과급 계약을 체결했다.

  “영주님! 준비가 끝났습니다.”

  “알았다. 그럼 내가 하는 것을 잘 지켜보도록.”

  “예, 영주님!”

  영주가 직접 기술을 가르쳐주는 자리였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가르딘 영주는 특이한 사람이었다. 기사이면서 이런 이상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일단 영주님이 시키는 일이기에 군소리 없이 따르기는 했지만 자신들도 제법 실력 있는 장인이었다. 그다지 기대는 하지 않았다.짙게 반죽을 한 흙을 가지고 그릇 모양으로 만들어내는 가르딘이었다. 일단 만들기 전에 도르래를 만들어서 발로 밟아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놨다. 발을 지속적으로 눌러주자 그릇모양의 흙이 돌아가고, 손이 움직이자 놀랍게도 미세하게 점차 형상이 만들어져 갔다.

  그저 흙일 뿐인데 모양이 제법 특이했다.

  만들어진 그릇을 떼어놓자 유려하면서도 아름다운 선이 살아 있는 그릇이 되어 있었다. 가르딘의 경우 실전에서 처음 하는 일이지만 그랜드 마스터에 이르면 손의 감각이 누구보다 뛰어나진다.

  그로 인해 처음이지만 처음 같지 않았다. 물론 여기까지는 상관없었다. 어차피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유약을 바르고, 굽는 것이 중요했다. 구울 때의 온도와 유약의 성질, 배합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그릇의 질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가르딘은 유약을 흙과 나무재를 통해서 만들었다. 다른 것도 있을지 모르지만 구하기가 쉽지 않았고, 시간이 별로 없었다. 배합을 잘해서 제법 색이 나왔다. 청아한 색이었다.

  20개 정도를 만들어서 유약을 바르고, 가마로 들여놨다.

  “이대로 하루 정도 구워야 한다. 항상 불의 세기를 봐주어야 해.”

  가르딘은 굽는 일까지 직접 실행을 했다. 영주가 오랜만에 열심히 하자 지켜보는 사람들은 잠도 자지 못하고 열심히 지켜봐야 했다.

  라이나가 걱정이 되어서 가르딘을 찾아왔다.

  “여보, 무리하지 마세요!”

  “걱정 마라. 내가 한 체력 하니까!”

  “이거라도 한잔하세요.”

  찻물과 더불어 꿀을 넣어 달게 만들어 놓은 차였다. 가르딘은 아내의 정이 담긴 차를 마시며 좋은 기분을 만끽했다. 생각 같아서는 바로 불타는 밤을 보내고 싶지만 일단 먼저 해야 하는 일이기에 마무리를 지을 때까지는 거사는 뒤로 미루었다.

  ‘안타깝구나!’

  영주님과 영주부인의 오붓한 만남.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닭살 돋는 장면이었다.

  장인들이 모두 고개를 돌렸다. 더 보다가는 닭이 되어 날아갈 것 같았다.

  하루가 지났다.

  아침에 되어서 가마 안에 놓아둔 도자기를 꺼내보았다. 도자기의 상태는 엉망이었다. 한 번에 성공한다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색깔이 바래지고, 열을 견디지 못한 그릇이 일그러져 있었다.

  가르딘은 단계를 두고 20개를 반으로 나누어 성분을 조절했다. 그 중에서 3개 정도는 멀쩡한 편이었다. 은근히 빛이 나기도 했다. 제법 괜찮은 것 같았다.

  ‘유약을 조금 더 진하게 해야겠군.

  도자기를 본 도공들의 눈이 빛났다.

  실패를 한 것들 중에 몇 개뿐이지만 저 정도만 되도 제법 가격이 나갈 것 같았다. 은은하게 빛나는 색깔이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었다.

  “실험을 몇 번 더 해보면 완성품이 나오겠어!”

  가르딘의 생각대로 20일 정도 지나자 완성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완성품은 장인들이 생각한 것보다 더욱 뛰어났다. 그들이 만들고서도 믿어지지 않는 듯했다. 더군다나 도자기는 기존의 것과는 전혀 다른 그릇이었다. 희소성을 생각하면 그릇가격은 천정부지였다.

  가르딘은 집무실에서 우쭐했다.

  파멜라는 가르딘이 허튼짓을 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허튼짓이 아니었다. 잘만 되면 영지의 수익이 몇 배는 많아질 것이다.

  “도자기의 희소성을 생각해서 극소수로 비싸게 파는 것부터 시작하지.”

  “파이트너 상단과 연계를 할 생각이에요.”

  “나중에 한번 지점주를 불러와야겠군.”

  “물론이에요!”

  “또한 도공들에게 대접을 잘 해주도록, 기술유출이 되지 않도록 신변에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해.”“이미 지시를 내려놓았어요.”

  “잘했군. 이번에 벌어들이는 수익으로 노예들을 사오는 거야.”

  “노예들을요?”

  “그래.”

  “그래.”

  가르딘은 이번에 영지 앞에 있는 평야를 개척하기로 마음먹었다. 한번 시작을 했으면 탄력 받을 때 밀고 나가는 게 좋았다. 시들해지면 다시 하기 귀찮아질 수 있었다. 파멜라는 학교와 더불어 기타 일반시설에 돈을 투자하려고 한다.

  그 일을 하기 전에 먼저 처리할 수 있는 일을 미리 밀어붙이기로 마음먹은 가르딘이었다.

  안젤리카는 영지의 마법사로서 대접을 전혀 받지 못했다. 그녀 스스로 마법사로서 발키리 영지소속이 되었지만 정작 가르딘이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 따지고 보면 그녀 스스로도 어떻게 해야 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맞았다.

  그녀는 매일 발키리 영지를 돌아다니면서 사람구경을 하는 데 정신이 없었다. 사람들이 생활하는 것을 살피고,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였다. 하지만 이런 일도 하루 이틀이지 매일 같은 패턴으로 생활하는 것은 드래곤 레어에 있는 것보다 못한 일이었다.

  안젤리카는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을 했다.

  영지의 마법사라고 해도 그저 지위만 있을 뿐이었다. 마법의 조종이니 마법을 연구하는 것도 별로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유희였다. 유희를 즐기려면 목적의식을 가지고 노력을 해야 했다.

  드래곤의 수명이 길다지만 시간을 허비하며 살아가지는 않는다.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데.”

  안젤리카가 고민하며 걸어가는데 그 앞으로 4명 정도의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한 아이가 술래를 하며 다른 아이들을 잡으러 다니고 있었다. 별로 대단한 놀이도 아니었다. 그저 힘들게 쫓고 쫓는 놀이였다.

  ‘저게 재밌나?’

  “이얍!”

  한 아이가 소리를 지르더니 다른 아이를 잡았다고 환호성을 질렀다. 한참을 뛰었으니 힘든 것이 사실이었다. 아이들의 연령대는 10살에서 14살 정도였다.

  안젤리카가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아이들이 그제야 안젤리카를 바라보았다. 안젤리카는 대륙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해도 무방했다.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아이들이라고 해서 미추의 구분이 없다고 하는 것은 거짓이다. 오히려 아이들이 아름다움에 대해 더욱더 솔직하다. 순간적으로 아이들도 넋을 잃었다. 그러나 다가가지는 못했다. 그녀의 옷과 더불어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품이 귀족이라고 말하기 때문이었다.

  안젤리카는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에게 말을 했다.

  “지금 하는 놀이가 재밌니?”

  갑자기 물어보는 것이지만 아이들은 솔직하게 대답을 해주었다.

  “조금 있다가 아빠, 엄마의 농사일을 도와드리러 가야 해요. 짧은 시간에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어요.”

  “놀 수 있는 게 별로 없구나, 그런데 농사일은 힘들지 않니?”

  “아빠가 그러는데, 농사는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 했어요! 다른 일은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요.”

  “그래. 알았다. 어서 가보렴.”

  아이들의 대답을 듣고 난 후 안젤리카는 머릿속에서 광영이 비췄다.

  아이들은 태어나서 할 수 있는 일을 1가지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의 부모, 그리고 그들의 조상들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틀리다고 할 수는 없다. 그들이 지켜온 농사일이야말로 살아가기 위한 가장 원초적인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이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과연 그것이 맞는 것일까! 스스로 노력을 하면 다른 일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마법사다. 나만이 아니라 나의 마법을 사람들에게 가르쳐주는 거야.”

  드래곤의 모든 마법을 가르치지는 않더라도 재능이 있는 녀석들을 가르치는 것이다. 영지마법사로서의 각성을 시작한 안젤리카였다. 그녀는 즉시 가르딘에게 달려갔다. 물론 달려갔다고 하는 것은 어폐가 심하다. 마법으로 공간이동을 했으니 말이다.

  ‘끙!’

  가르딘은 바로 앞에 워프된 존재로 인해 뒷골이 지끈거렸다. 집무를 끝내고 점심식사를 하러 가는 도중에 나타난 안젤리카였다. 라이나의 따뜻한 음식을 기다리게 하는 것은 모독이었다.

  “무슨 일이야?”

  약간은 되바라진 목소리의 가르딘이었다.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리는데, 건드린 꼴이었다. 가르딘의 지금 심정을 말로 표현하면 가히 광견이라고 할 만했다.

  “마법을 가르치겠어요!”

  “마법을 가르친다고? 그래서?”

  “마탑을 세워주세요!

  ”띠잉!

  마탑.

  마법사의 연구실이다. 그뿐만 아니라 마법사들을 가르치고, 독자적인 실험과 연구를 끊임없이 하는 마법사들의 종합연구실이라고 불린다.

  단, 마법사들이 벌이는 실험은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간다. 마탑을 만들고, 마법사를 끌어들이는데 들어가는 돈은 이제까지 벌인 일들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예전에 가르딘이 마법아이템 하나 사려고 할 때 얼마나 놀랐던가!

  그런 마법아이템을 만드는 존재들이 푼돈에 움직이겠는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가르딘의 머리가 지끈거렸다.

  지금까지 안젤리카를 방치해 놓은 이유는 나중에 라이젠이 부려먹었다는 말을 할까 봐 그랬다. 또한 드래곤이 개입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달갑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안젤리카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었다.

  눈 속에는 찬란한 광채를 띠고 말을 하는데, 거절하기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단호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가르딘의 영지 예산에서 마탑을 세우는 일은 계획되지 않았다.

  “마탑을 세우려면 돈이 엄청나게 많이 들어가는데, 그 돈이 지금 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요.”

  안젤리카도 보는 눈이 있다. 가르딘이 필사적으로 돈을 모으기 위해서 애쓰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런 사람에게 돈이 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마탑을 세운다는 거야. 마탑이 누구 개 이름이야!”

  “영주님은 그냥 허락만 해주세요, 마탑을 세우는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응?’

  알아서 한다.

  이것을 꼼꼼히 해석해 보면 자신은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말과 일치한다. 말 한 마디하면 마탑이 세워진다. 하지만 뭔가 꺼림칙했다. 한번 허락해 버리면 나중에 탈이 날지 모른다는 경고성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울리고 있었다.

  ‘잠깐! 마탑을 세우려면 대륙의 5대 마탑에 허락을 받아야 하는 건가?’

  무턱대고 마탑을 세웠다고 말을 하면 위험할지 몰랐다. 마법사들 간에는 기사들이 알지 못하는 율법이 있을지 모른다. 제사들 간에는 기사들이 알지 못하는 율법이 있을지 모른다. 제삼자의 입장에서는 별거 아닌 일이 마법사들에게는 심각한 일이 될 수 있었다.

  “공개적으로 할 건가?”

  “물론이에요. 영지에 마탑이 있으면 재능이 있는 아이들을 마법사로 키울 수 있어요. 그렇게 되면 결국 영지에 마법사가 늘어나는 것이에요.”

  “마탑이라는 것이 마법사들의 자존심으로 만들어진 곳이라고 들었다. 공개적으로 하려면 그들의 허락이 필요할지도 모르는데, 그건 생각해 본 것이겠지.”

 안젤리카가 인간사회의 마법사 구조를 알고 말했을 리 만무했다.

  ‘음!’

  고민하는 안젤리카를 보고 가르딘은 확신했다.

  ‘뭐야! 그저 즉흥적으로 생각한 거야!’

  제대로 계획을 세우고 와서 말을 한 줄 착각할 뻔한 가르딘이었다. 안젤리카의 말대로 허락을 해주었다면 큰일 날 뻔했다.

  “네가 말하기에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곳이라고 했지. 그럼 마법학교 정도로도 괜찮지 않을까?”

  “아! 그렇네요!”

  처음부터 너무 거창하게 시작할 필요가 없음을 지적한 가르딘이었다. 그 말에 안젤리카도 바로 수긍했다. 그런데 문제는 마법학교라고 해도 필요한 기구며, 실험실, 정작 중요한 학교설립에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다.

  “돈은?”

  “제가 낼게요.”

 " 제가 낼게요.”

 “그럼 적당한 부지를 마련해 줄 테니. 그곳에서 학교를 만들도록 해.”

 “영주님! 고마워요.

 ”쪽!

 안젤리카가 한순간에 접근해서 기습적인 키스를 볼에 날렸다. 가르딘은 얼떨떨한 상태에서 뽀뽀를 당하고 말았다.

 ‘이런!’

 가르딘은 안젤리카를 보았다. 행동을 보니 감사해서 한 것으로 보였다. 연인의 감정을 가지고 한 행동은 아닌 것으로 보았다.

 안젤리카가 한 기습키스는 원래 라이젠과 있을 때 한 행동과 같았다. 라이젠이 부탁을 들어주었을 때 습관적으로 뽀뽀를 했기에 자신도 모르게 한 행위였다.

 ‘다행이군.’

 드래곤과의 사랑.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나중에 부부 싸움하다가 잡혀먹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또한 가르딘에게는 라이나뿐이었다. 라이나 이외의 여인에게는 아무 관심이 없다.

 가르딘은 모든 것을 잊고 라이나와 브리안이 있는 곳으로 갔다. 다른 모든 시간보다 가족이 함께 모이는 이 시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르딘이다. 방해받는다면 심검을 아가리에 쑤셔줄 태세였다.

 가르딘이 급하게 걸어서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영주전용 식당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곳에서 가르딘은 가족과 식사를 한다.

 크고 긴 식탁을 가르딘은 4분지 1로 잘라 버리라고 명령했다. 가족이 서로 말을 전할 수 없는 거리에서 식사를 한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 결과 식탁은 6인 가족이 즐겁게 대화를 나누면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으로 변했다.

 “어서 오세요.”

 “모두 모였군. 어서 식사하자고.”

 귀족의 예의는 숙지하고 있었다. 다만 보는 사람이 없는 데서까지 예의를 차리라고 하지는 않았다.

 “브리안은 그새 더 컸구나!”

 어제 키를 재보고 난 후였다. 오늘 보니 더 컸다고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가르딘은 브리안이 또 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식당에는 록산느와 파멜라도 같이 와 있었다. 식사를 할 때는 같이 왁자지껄하게 먹자는 가르딘의 뜻이었다.

 파멜라와 록산느의 경우 처음에는 부담이 되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같이 대화하는 것을 즐겼다. 오랫동안 귀족의 예법을 따지는 생활을 했었다. 염증이 날만도 했던 것이다. 두 모녀는 전보다 지금 가족의 정을 더 느꼈다.

 “파멜라를 잘 돌봐 주셔서 감사해요, 영주님!”

 “아! 별것 아닙니다. 제가 조카를 챙겨야지 누가 챙기겠습니까?”

 록산느는 가르딘이 무척이나 고마웠다. 그녀의 삶이라고 여길 수 있는 도노반 자작이 죽었을 때 돌봐주었을 뿐만 아니라 딸의 잠재력을 파악하고 재능을 꽃필 수 있도록 해주었다. 록산느는 가르딘이 고마웠고 가족의 정이 넘치는 것이 부러웠다.

 안젤리카는 가르딘의 집무실에서 나온 후 마법학교를 만들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다. 돈만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혼자서는 무리야, 파멜라에게 부탁을 해봐야겠어.’

 안젤리카도 파멜라가 똑똑한 것은 알고 있었다. 그녀에게 마법학교를 만들 기초적인 도움을 받기로 생각했다.

 슈슈슝! 파팡! 타타탕!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무섭도록 강렬했다. 기운과 기운이 부딪치는 충격음이 보통을 넘어 소름끼치도록 강력했다. 안젤리카는 호기심에 자신도 모르게 연무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연무장 안에는 두 명의 기사가 서로의 검을 부딪치고 있었다.

 안젤리카도 알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바로 스필언과 미토스였다. 발키리 영지에서 가장 잘생긴 두 명의 기사라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사내의 잘생긴 얼굴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안젤리카였다. 잘 생긴 것도 인간의 기준일 뿐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대단한데!’

 미토스와 스필언이 지금 이 시간에 대련하는 이유는 한적하기 때문이었다. 모두 식사하러 간 시간에 나와 서로의 실력을 살피고 있었다. 둘의 실력은 여전히 백중세였다. 이 둘이 같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였다.

 서로에 대한 경쟁의식으로 인해 항상 멈추지 않았다. 그로 인한 실력상승이 눈에 띄게 보였다.

 ‘유희생활 동안 결혼도 해야 하나.’

 씨익!

 저 둘 중 아무나 하고 결혼을 한다면 그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안젤리카였다.안젤리카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연무장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싹!

 대련을 하다가 둘 모두 검을 멈추었다. 순간적으로 오싹한 기분이 들었던 스필언과 미토스였다. 예민한 감각을 소름끼치도록 파고드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았다.

 “왜 그래?”

 “너는?”

 “잘 모르겠는데?”

 “나도.”

 가르딘은 파이트너 상단지점의 몬타나 지점주를 집무실로 불렀다. 백작이 직접 지점으로 가는 것은 체면 떨어지는 짓이라는 파멜라의 말 때문이었다.

 파멜라의 말이 일리가 있기에 몬타나를 불렀다. 원래는 귀찮은 일이라 파멜라에게 시키려고 했었다. 하지만 가격측정에 있어서 파멜라보다는 가르딘이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가르딘은 미리 준비한 도자기 세트를 한쪽에 마련해 놓았다. 물론 들어오는 순간 몬타나가 볼 수 있는 장소에 마련해 놓았다.

 가르딘은 몬타나가 들어오기 바로 전에 열심히 집무를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서류를 펼쳐 놓았다. 영주가 놀고 있다는 모습은 보기에 좋지 않은 모습이었다. 사실을 따지면 파멜라가 다하기에 뭐라도 해야 했다.

 똑! 똑!

 “파이트너 상단 지점주인 몬타나입니다.”

 “들어와.”

 몬타나가 조심스레 문을 열고 집무실로 들어왔다. 가르딘에 대한 조사를 이미 끝을 낸 몬타나였다.

 -카이로만 제국 최고의 기사단인 피닉스기사단의 오러 마스터.

 그것 하나만으로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거물이었다. 그런 거물이 이곳 변방에 있는 것이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제국의 식량창고를 지키는 일이 결코 작은 일이 아니기에 별달리 생각하지 않았다.

 가르딘이 처음 발키리 영지에 와서 한 숙청작업은 충격적이었다. 너무도 빠르고, 간결하게 모든 일을 해결해 버렸다. 그러한 일은 힘만 가진 기사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뛰어난 지능과 예리한 상황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하며, 일을 빠르게 이끌어갈 수 있는 지도력과 카리스마를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몬타나는 틈을 주지 않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다했다.

 ‘그런데 왜 나를 부른 것인가?’

 몬타나의 경우 가르딘 백작에게 잘못한 것이 없었다. 있다면 밀의 가격인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변방 영지에서 대륙으로 뻗어나가는 길을 담당하는 것을 전적으로 파이트너 상단이 하고 있었다.

 운송료에 대한 부담이 밀의 가격에 포함되는 것은 적정한 가격측정이었다. 이것에 대해서는 절대 물러설 수 없기에 단호하게 대처해야 했다. 마음을 먹은 몬타나가 방으로 들어가자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이것은 조건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가르딘의 뒤쪽,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옆에 마련된 도자기에 반사되어 청아하고 오묘한 빛을 뿜어내었기 때문이었다. 상인의 눈이 향하는 곳이 어디겠는가! 바로 돈이 되는 곳에 눈이 향한다. 그것은 본능이기에 거부할 수 없었다.

 씨익!

 가르딘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도자기 세트를 자신의 옆쪽에 놓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빛이 반사되어 가장 아름다운 색을 낼 수 있는 장소에 마련해 놓은 것이다. 들어와서 바로 도자기를 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

 가르딘의 마수가 몬타나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고 있었다. 일단 걸리면 빠져나올 수 없는 가르딘의 마수였다.

 ‘아직 하수야!’

 상인의 원초적인 본능을 자극한다. 그 본능마저 억제하는 자는 상인 중에 상인이라고 할 수 있다. 본능을 억제하고 최대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재능이었다. 만약 그 정도의 재능이 있는 자라면 여간 까다로운 자가 아닐 것이다.

 “어디를 그렇게 보는 건가?”

 짐짓 화가 난 듯한 가르딘의 표정이었다. 바로 앞에 백작을 보지 않고 다른 쪽을 보았으니 화가 날만도 한 것이라고 몬타나는 판단했다. 당황한 몬타나가 즉시 고개를 돌려서 죄송하다고 했다.

 “죄송합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우선은 그 앞으로 않게.”

 “예, 가르딘 백작님!”

 몬타나는 좀 전에 가르딘의 심경을 불편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귀족 중에서도 상급귀족에 속하며, 오러 마스터의 심정을 불편하게 한 것이다. 집무실에 들어오자마자 실수한 것에 정신이 팔리고 말았다. 잘못하면 영지에서 쫓겨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귀족모독죄.

 말이 모독죄지 귀족의 심기가 수틀렸을 때 행하는 말도 안 되는 죄목이었다. 신분이 깡패라는 말이 괜히 생겨난 말이 아니었다.

 “차를 한잔 마시면서 얘기를 해보지.”

 “감사합니다. 백작님!”

 가르딘의 전속시녀 미네가 차를 가져왔다.가르딘이 차를 마시면서 몬타나와 대화를 나누었다. 가르딘은 몇 마디 하지도 않았다. 그저 평범하고 소소한 일에서부터 시작해서 파이트너 상단과의 보편적인 관계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몬타나는 가르딘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굉장한 위압감에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위축이 될 지경이었다.

 ‘이것이 오러 마스터인가!’

 “자네 상단과는 꽤 오랜 시간 거래를 한 것 같군.”

 “그렇습니다. 영지가 개척되는 위험한 시기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관계가 지속되기 바라네.”

 차를 마시며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는데 시간을 소비하고 있었다. 몬타나는 애가 타고 있었다. 가르딘의 옆에 있는 물건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하다. 가르딘이 도자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으니 알 도리가 없었다.

 알려면 먼저 물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주도권이 넘어가 버린다. 말의 시작이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서 주도권이 달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가르딘은 유대관계를 좋게 하기 위해서 불렀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진행시켰다. 그리고 대화가 끝이 났으니 이만 가보라는 듯한 말을 하려고 할 때였다.

 결국 참지 못한 몬타나가 먼저 백기를 들었다.

 “영주님!”

 “왜 그러나?”

 “저기에 놓인 물건이 무엇입니까?”

 가르딘은 별로 대단치 않다는 듯이 말을 했다. 얼핏 들으면 지나가는 말처럼 들렸다.

 “도자기라는 걸세.”

 “도자기요? 그게 뭡니까? 뭔데 저렇게 우아한 빛이 납니까?”

 한번 물어보자 궁금한 것을 계속 물어보게 되는 몬타나였다. 변방의 지점주로 오랜 기간 동안 있었던 몬타나였다. 그의 능력이 뛰어나다면 여기에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저 시세에 따라 융통성 있게 넘어가는 능력이 조금 있을 뿐이었다.

 “자네가 정 궁금하다면 얘기해 주겠네.”

 “감사합니다. 영주님!”

 주도권이 가르딘에게 완전히 넘어가 버린다. 상술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반면에 사람 다루는 능력은 일품인 가르딘이었다. 가르딘의 말발에 상대할 수 있는 자는, 같은 경지에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가르딘은 가볍게 시작하면서도 유독 독자적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자신이 아니면 생산해낼 수 없으며, 소규모 생산이라는 단서까지 달았다. 다른 모든 말들은 그저 부수적인 내용일 뿐이다. 부수적인 내용이 더 길고 장황해서 듣기에 따라서는 무엇이 중요한지 알아들 수 없을 정도다.

 “오오! 영주님이 이런 예술작품에 관심을 가지고 계실지 몰랐습니다!”

 “그런가, 그런데 도자기에 왜 그렇게 관심이 많나?”

 가르딘은 그 이유를 알면서도 모르겠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었다. 몬타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자칫 잘못 말했다가는 오해를 살 수도 있었다. 귀족의 경우 돈만 밝힌다는 듯한 인상을 받는 것을 대단히 큰 모욕으로 여긴다. 돈보다는 명예를 위해 살아가는 족속들이었다. 그 점에 유의해서 말을 했다. 가르딘을 한참이나 잘못 판단한 몬타나였다. 가르딘의 속내는 가족과 돈이었다.

 ‘이것만 제대로 유통시키면 내 명성도 더 올라갈 거야!’

 파이트너 상단에서의 위치를 공고히 할 수 있는 기회였다. 몬타나는 놓치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 생겼다.

 “영주님! 제게 이 작품들을 세상에 공개할 수 있는 영광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세상에 공개라니? 설마 팔겠다는 건가?”

 가르딘은 기분이 나쁜 듯이 고개를 돌렸다. 예술작품을 돈 주고 팔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라는 표정이었다. 표정만은 정말 질색하는 듯했다. 가르딘의 연기력은 수준급을 넘어 달인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크크 걸렸다! 사람 낚시가 별거냐!’

 ‘영주님은 예술에 대한 혼을 숭상하시는 분이구나! 과연 제국의 검이라 불릴 만하시구나!’

 가르딘의 의중은 완벽하게 오해하는 몬타나였다. 이미 팔려는 마음을 굳혀 놓은 가르딘에게 예술의 혼은 모독 그 자체였다.

 “제게 맡겨 주신다면 영주님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음!’

 이렇게까지 간절하게 말하는데 거절하면 몬타나는 다시 말하기 어렵게 된다. 귀족이 하는 말이 가진 무게를 생각하면 신중하게 대답하되, 빨리 결정을 내려주어야 한다.

 “자네의 뜻이 그렇다면 알겠네!”

 “아! 감사합니다. 그런데 수량이 얼마나 되는 겁니까?”

 “지금 당장 가진 것이 100개 정도고, 만들고 있는 게 조금 더 있네.”

 “그럼 200개 정도를 사겠습니다. 가격은 개당 최소 300골드를 쳐 드리겠습니다!”

 ‘헙!’

 순간 헛바람이 나올 뻔한 가르딘이었다.

 예상가격은 고작 10골드였다. 그런데 예상을 넘는 가격 상승이었다. 개당 300골드라면 6만 골드라는 말이었다. 산술적으로 계산이 되지 않는 엄청난 돈이었다.

 ‘땡 잡았다!’

 가르딘은 다시 표정을 굳혔다.

 “제가 책정한 가격이 맘에 드시지 않는 것입니까?”

 몬타나는 조마조마했다. 지금 가격이 제 가격이었다. 몬타나가 보기에 저걸 제대로만 판다면 400골드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이 되었다. 100골드의 차액을 순이익으로 남기려는 몬타나였다. 몬타나 입장에서 최대한의 결정이었다.

 “자네의 결정대로 하세.”

 “분명 좋은 결정을 하신 것입니다! 우선은 상부에 보고를 해서 돈을 융통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알겠습니다. 또한 앞으로 생산하는 것은 소량이되 점차 보급이 되므로 가격 하락은 생각하셔야 합니다.”

 “알겠네! 참! 정말 자네의 상술에는 내가 이길 수가 없구먼, 정말 대단한 솜씨일세. 앞으로 자네의 성장이 기대가 되는구먼.”

 “아… 닙니다. 그저 저는 영주님의 물건을 제값에 쳐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가르딘의 입에 발린 말이 작렬했다.

 가르딘은 자신의 말로써 몬타나를 낚은 게 아니라 몬타나의 말에 낚인 것처럼 말을 하고 있었다.“오늘 정말 즐거웠네.”

 “저야말로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그럼 가보게.”

 “영주님의 앞날에 무궁한 영광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몬타나가 집무실로 나가고 나자 바로 파멜라가 들어왔다. 파멜라는 약간은 상기된 표정으로 물었다.

 “어떻게 됐나요?”

 “개당 300골드.”

 ‘헉!’

 파멜라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설마 했는데 30배에 달하는 가격상승이었다. 지금까지 만들어 놓은 1,000개의 도자기를 생각하면 앞으로 더욱 더 많은 수익창출이 기대되었다.

 “영주님!”

 “왜 그러냐?”

 “어떻게 구워삶은 건가요? 설마 협박하신 건 아니지요!”

 파멜라가 심히 의심스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날 어떻게 보고, 난 정당한 방법을 사용했을 뿐이야.”

 정당한 방법을 사용했다는 말에 의심에서 존경으로 급하게 변하는 파멜라였다. 도대체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대단해요!”

 “위대한 영주님을 모시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져라.”

 우쭐해 있는 가르딘의 말에 다시 사그라드는 존경심이었다. 그러나 오늘 일로 인해 가르딘과 파멜라가 원하는 일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영지의 돈이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가르딘의 저택을 나온 몬타나는 돌아가는데 왠지 모르게 당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한 것 같지는 않은데 당한 것 같은 아리송한 기분이 사람을 똥 같은 기분으로 만들었다.

 ‘이상해!’

 충분히 이상할 만했다. 팔려고 하지도 않는 사람이 도자기를 100개나 만들어 놓고 또 만들고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상식적으로 곰곰이 따져보면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인데 그 허점을 파악하지 못했다. 가르딘과 대화를 한 모든 사람들의 공통점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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