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장 광전사 투르@@]
가르딘과 안젤리카는 영지의 서쪽으로 움직였다. 다크 랜드와 인접한 발키리 영지의 성벽이 없는 지역으로 빙 돌아서 갔다. 가르딘은 아직 발키리 영지를 모두 돌아보지 못한 실정이었다.
그렇기에 이번에 영지의 외곽을 한번 둘러볼 생각이었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으면서 영지민들의 반응을 살펴보기 위한 일환이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을 알고 있어야 영지를 운용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 내렸다.
가르딘과 안젤리카는 평상복을 입은 상태였다. 가르딘을 처음 보는 사람들이 발키리 영지의 주인인 영주라고 알아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별로 존재감이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다.
반면에 안젤리카는 눈에 띄는 아름다움을 소유하고 있었다. 드래곤이기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반영하여 폴리모프(변신)마법을 걸었다. 광폭하고 무서운 드래곤의 평상시 모습과는 대조를 이루었다.
가르딘과 안젤리카가 들어간 마을은 작은 마을이었다. 이름이 퍼프칸이라고 불리고 있었다.밀을 심어야 하는 계절이기에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바쁘네요.”
“시기를 놓치면 다시 하기 힘들기 때문이지.”
가르딘은 말을 놓았다. 어차피 지금부터 안젤리카는 자신의 수하였다. 마법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려면 편의상 관계를 정립할 필요성이 있었다. 보는 사람들이 있기에 말을 편하게 하는 가르딘이었다.
가르딘은 마을 안쪽으로 흐르는 수로를 보고 안심했다. 물이 정상적으로 마을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자칫 시기를 놓치면 한해 농사를 망칠 수 있었다. 사람들이 분주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며칠 동안 물이 말랐기에 그동안 밀린 일을 빨리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쿵! 쿵!
가르딘과 안젤리카가 걸어가는 뒤쪽으로 발소리가 들렸다. 발소리가 들릴 정도로 엄청난 거구가 뒤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한 손에는 두 사람이 들어도 들지 못할 정도로 큰 포대를 메고 아무렇지 않게 걸었다.
‘뭐야? 이놈!’
굉장한 덩치였다. 덩치로만 따지면 자신이 여태까지 본 녀석들 중에서 가장 컸다. 몸짓만 보면 오우거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투르, 빨리 따라와!”
“알았어요.”
오우거와 같이 큰 덩치를 가진 녀석이, 앞에서 부르는 사람들의 말을 고분고분 듣고 있었다. 그들이 부르자 가르딘과 안젤리카를 빠르게 지나가는 것이었다. 덩치에 안 맞는 순한 모습이었다.
인상과 덩치가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는다는 말이 있다. 저런 덩치면 절대 저렇게 순한 모습이 나오면 안 되었다. 가르딘의 예리한 눈이 옆으로 지나가는 투르의 몸을 살펴보았다.
“호오!”
가르딘이 짐짓 감탄성을 내질렀다. 외형만을 본 것이 아니라 투르가 가진 몸의 전체적인 특징을 한순간에 파악한 가르딘이었다.
‘금강지체다! 이런 곳에서 금강지체를 보다니!’
금강지체는 말 그대로였다. 태어나면서부터 굉장한 힘과 근력을 가지고 있는 특징이 있다. 또한 다른 사람보다 훨씬 큰 덩치를 타고나기에 선천적으로 굉장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가르침이 없다고 해도 일반기사 정도는 힘만으로 상대가 가능할 정도다. 이런 녀석에게 제대로 된 가르침만 수반된다면 오러를 가진 기사라고 해도 쉽사리 상대할 수 없다.
“몸이 굉장히 큰 사람이네요. 다른 사람보다 족히 머리 세 개 정도는 더 큰 것 같아요.”
“그 정도가 아니야. 저놈 물건이야.”
“예? 물건이라니요?”
“뛰어난 투사가 될 녀석이라고.”
“그런가요.”
별달리 놀라지 않는 안젤리카였다. 인간 중에서 제법 덩치가 큰 것이지 드래곤에 비한다면 비교자체가 불가능했다. 인간이 드래곤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전설로만 내려져 오는 거인종족. 자이언트가 아니고서는 말이 되지 않는다.
스필언과 미토스와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그에 비견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녀석이었다. 그냥 이대로 농사꾼으로 썩는다면 인력낭비였다. 적재적소에 인재를 활용하는 것도 영주의 몫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군. 저 정도의 덩치라면 영지의 수비병에 들어 왔을 텐데.”
“그게 이상한 건가요.”
“영지의 수비병은 18살이 되면 들어와야 하거든.”
무조건 영지의 수비병으로 뽑는 것은 아닐지라도 저 정도라면 충분히 뽑힐 가능성이 있었다. 저 덩치에 농사만 짓는 것이 말이 되지 않았다. 병력을 뽑는 놈들이 병신이 아니라면 말이다.
가르딘과 안젤리카는 거리를 두고, 투르가 농사짓는 모습을 살펴보았다.
일반 사람이 들지 못하는 것을 한 번에 들어서 나르고 있었다. 몇 사람이 일하는 것을 혼자서 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상당히 부지런했다. 농부들이 못하는 것들을 시키는 대로 모두 수행했다.
“여기 좀 도와줘! 투르!”
“예, 조금만 기다리세요!”
‘쿵! 쿵! 쿵!’
큰 덩치를 움직이며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였다. 가만히 보니까 사람들이 너무한다 싶을 정도다. 시키는 것도 정도가 있지 자신이 못하는 것을 다 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문제지만 시킨다고 헤헤거리면서 다 하는 투르도 문제가 있어 보였다.
‘성격이 너무 착한데
어느 정도 자신의 것을 챙기면서 남을 도와야지 무조건 남을 돕는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남의 말에 무조건 따르는 것도 문제가 있다. 사람이라는 것이 편한 것에 빠지다 보면 한도 끝도 없다.
따라서 한번 시키는 버릇이 들다 보면 그 버릇을 고치기도 힘들다. 마땅히 고마워해야 하는 것을 별달리 고마워하지 않게 된다는 말이다.
“저 사람한테 관심이 있나요?”
“있지, 그런데 너무 착한 것 같아.”
“착하면 좋은 것 아닌가요?”
가르딘과 대화하면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안젤리카였다. 보통 사람들의 말이 어떤지 몰라도 어렵다고 느껴졌다.
“요즘 세상에 착하다고 잘된다는 보장이 어디 있어. 어찌 보면 그런 착한 심성 때문에 이용만 당하고 끝나는 수가 있지. 잘봐! 저 사람들을! 마을 사람들이라고 해봐야 그다지 악한 사람은 없어. 그런데도 저런 식으로 사람을 마구 부려먹는다고. 만약 저 녀석이 더 넓은 세상에 있다고 해봐! 간교하고, 악한 녀석들에게 심하게 이용당할 녀석이라고.
”가르딘은 현실을 냉정하게 말하고 있었다. 착한 것도 정도가 있어야 했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 가지고 판단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해도 충분히 생각을 해봐야 하는 문제였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럴 수도 있긴, 저 상태로 지내는 것은 녀석에게도 좋지 않아.
”투르의 경우 자신이 당하는 것을
투르의 경우 자신이 당하는 것을 별로 신경 쓰지 않을 공산이 크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낼 것이고, 변화가 없다면 앞으로도 저 상태로 지내야 한다. 슬픈 현실이라고 판단을 내린 가르딘이었다.가르딘은 투르의 미래를 위해 자신이 나서야 한다는 당위성을 만들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가르딘이 답답해서 하는 소리였다. 뛰어난 신체조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람들의 이용거리가 되는 녀석의 마음이 불쌍해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저 사람은 사람들과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요. 그건 순전히 영주님의 자위적인 생각이잖아요.”
“내가 생각하는 것이 무조건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저런 상태로 놔두는 것이 반드시 좋다는 보장도 없잖아. 그리고 내가 약간만 도움을 주면 녀석은 반드시 좋은 재목으로 커갈 수 있다고.”안젤리카는 드래곤이다.
세상경험이 없다고 해도 이제까지 배워온 것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저 현실과 어느 정도의 괴리감이 있을 뿐이지 그녀의 생각이 틀리다는 것이 아니었다. 9서클에 달하는 마법력을 가진 안젤리카가 바보일 리 없지 않은가! 그녀도 나름대로 생각하고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가르딘의 말발이 워낙 대단해서 끌려갔을 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끌려 다닌다는 말이 아니었다.
“그래도 저 사람의 결정이 중요한 것 아닌가요? 영주님의 생각이 옳다고 해도 다른 사람의 생각을 영주님의 자의적인 생각만으로도 결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건 아니지.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는 것을 주변 사람이 도와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 그 사람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데 옆에서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그게 과연 올바른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 사람의 말과 행동을 가지고 안젤리카와 가르딘은 한동안 대화에 빠져 있어야 했다. 세상에 처음 나오는 안젤리카는 모든 것이 궁금 덩어리였다. 그 궁금함을 풀어가기 위한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그녀의 생각과 가르딘의 생각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첫 번째 일이었다.
이미 확고한 자신만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가르딘이었다. 가르딘의 생각이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닐지 몰라도 그 생각을 밀고 나가는 것에는 틀림없다. 결과적으로 옳은 방향이 아닐 수도 있다.그렇다면 일단 결정을 하고 나중에 후회하는 것이 나았다. 해보지도 않고 후회한다면 그것보다 바보 같은 결정은 없었다.
“제 생각이 틀린 것인가요?”
“아니!”
“아니라고요?”
갈수록 대화가 어려워진다.
“당연히 아니지, 스스로의 생각을 말하는데 그게 왜 잘못이지.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인데 그 생각을 막는 것이 잘못인 것이지.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사람들의 생각을 전적으로 다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야. 내가 스스로 판단해서 결정을 내릴 뿐이지. 너도 너 스스로의 생각이 있다면 그 생각이 맞는지 틀린지를 고민하고 맞는다고 확신하면 그대로 밀고 나가야 해.”
가르딘의 말은 상당히 이율배반적이었다.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배움이 있어야 한다. 배움이 없이 어떻게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사고의 확장을 기대할 수 있는가! 일전에 파멜라가 학교를 설립하자는 일에도 반대 의견을 냈었던 가르딘이었다.
자신의 편의를 위해서 사람들에게 배움을 전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사람은 이기적인 동물이다. 누구를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안위를 위해 살아가는 동물이라는 것이다. 가르딘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영주님은 상당히 특이한 사람인 것 같네요. 다른 사람들을 보지 못해서 그런지 몰라도 말이에요.”
“난 특별하지. 그렇다고 날 너무 이상적인 인간으로 보지 말라고, 나는 나와 내 가족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사람들은 모두 비슷해. 일부 헌신적인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자신을 사랑하며 자신을 위해 살아가지.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과연 남을 사랑할 수 있을까! 그건 또 아니라고 생각을 하거든.
”사람의 생각을 알수록 안젤리카는 복잡하다는 것을 느꼈다.
“앞으로 많이 배워야 할 것 같네요.”
“그건 전적으로 너에게 달린 거지.”
“영주님의 곁에서 마법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생각이에요.
”안젤리카가 적극적으로 나서려는 의지를 피력했다. 그저 유희로서 가볍게 세상을 바라보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마음대로 해라.”
가르딘은 안젤리카가 영지에 있다는 것으로 만족했다. 별달리 시킬 생각은 없다. 나중에 라이젠이 알고 부려먹었다고 하면 괜히 피곤해질 가능성이 컸다. 가르딘은 좀 전까지 말을 너무 많이 한 것을 후회했다. 괜한 말을 하는 바람에 안젤리카의 의욕을 상승시킨 꼴이 되었다.
‘나도 완벽하진 않으니까!’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가르딘은 그 순간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세상에 완벽한 존재가 있다면 그건 바로 신일 것이다. 주신 라이니언이라면 완벽한 존재일지 모른다.
“우선은 사람이 부족하니 저놈을 데려가야겠다.”
“억지로 데려갈 생각이세요!”
“아니, 의견을 물어봐야지. 영주라고 해도 남의 인생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는 없지. 하지만 되도록 내 결정에 따르도록 만들어야지.”
저 상태로 놔두는 것이 좋지 않다는 가르딘의 생각이었다.
원래라면 라이나와 브리안이 있는 곳으로 빨리 갈 예정이었지만 좀더 시간을 두기로 했다.
‘라이나, 브리안 하루만 더 기다려! 내가 간다!’
고작 3일도 안 되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3년은 떨어진 것 같은 가르딘이었다.
저녁노을이 지는 시간 동안 가르딘과 안젤리카가 투르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한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파악하기 위한 방법을 지켜보았다. 한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파악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동안 남이 보지 못하도록 안젤리카가 인비저빌리티(투명) 마법을 걸었다.
가르딘의 예상대로 투르는 사람들의 부림을 받고 있었다. 투르 본인은 그런 생각이 들지 않겠지만 보는 사람은 답답했다.
하루 일이 끝나고 나자 투르가 나머지 농사일을 정리했다. 다른 사람이 모두 돌아간 상태에서 혼자서 정리하고 있었다.
“영주님의 말대로 너무하네요.”
“사람이 원래 그래. 그렇다고 저 사람들을 탓할 수는 없지. 저렇게 되도록 한 저 녀석의 성격이 잘못된 거지.”
너무 좋게 지내려다 보니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이용하게 된 것이다. 스스로가 어느 정도 방어를 하고, 사람들과 대화를 하며 거절을 했다면 저렇게 되지 않았을 공산이 컸다.
“이제 가는군. 대화를 시작해야지.”
-디스펠(해제).
안젤리카가 인비저빌리티 마법을 해제했다. 투르가 가는 곳을 뒤따라서 천천히 걸었다.투르가 간 곳은 마을의 외곽에 위치한 작은 집이었다. 집은 통나무를 연달아 이어서 만들어져 있었다. 투박하게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오밀조밀하게 빈틈없이 집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휘익!
투르가 고개를 돌렸다. 뒤에서 인기척이 났기 때문이었다.
가르딘과 안젤리카가 서 있었다. 투르는 바로 뒤에서 사람이 따라오는데도 몰랐다는 데 놀라고 있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주변에 누군가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채는 능력이 있는 투르였다. 불과 10미터 뒤에 있는 사람을 몰랐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제법 감각이 뛰어난데.’
가르딘이 시험을 한 것이다.
인기척을 내기는 했지만 보통 사람은 알아챌 수 없을 정도였다. 전문적으로 기사수련을 하지 않는 이상 감각이 예민해지지 않는다. 수련도 하지 않은 녀석의 감각이 기사와 비견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선천적으로 타고났다고 봐도 무방했다.
‘과연 금강지체야!’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이었다.
보석을 누가 어떻게 다듬느냐에 따라서 녀석은 몰라보게 달라질 것이다.
“누구세요?”
“내가 누구냐고, 누굴 것 같은가?”
“모르겠는데요?”
“이제부터 알게 될 거야.”
쌔앵!
가르딘이 무척이나 빠른 움직임을 보였다. 한 발을 내딛는 순간에 공간을 완벽하게 무시한 가르딘이었다. 발을 한 발 뛰었을 뿐인데 벌써 투르의 코앞에 다가왔다. 투르는 놀랄 틈도 없었다. 어느 순간 벼락 같은 일권이 투르의 복부를 강타했다. 웬만한 충격이 절대 아니었다. 마치 쇠망치를 있는 힘을 다해 친 것과 같았다."
크윽! 쿠쿵!
커다란 덩치를 가진 투르의 몸이 일순간에 공중으로 붕 떴다가 바닥을 찍었다. 투르는 데굴데굴 굴러서 다시 일어섰다. 일어섰지만 복부에 가해진 충격이 가시지는 않았다. 어찌나 아픈지 투르의 일생을 따져 봐도 처음이었다.
“왜… 이러세요!”
“그냥!”
상대방의 화를 돋우는 말이다. 이유도 없이 때린다는 말이 아닌가! 그렇지만 투르는 화를 내지 않았다. 투르는 여태까지 화를 내본 적이 없어서 끝까지 참고 인내하려고 했다.
“이러… 지 마세요!”
퍼퍼퍽! 커억!
다연발로 이어지는 무지막지한 가르딘의 주먹이었다. 투르가 막아낼 수 있는 능력을 한참이나 벗어나갔다. 전신 곳곳의 약점을 정확하게 찌르고 들어오는 권격이었다. 투르가 막으려고 해봤자 이미 충격을 받은 후였다.
[이게 대화인가요?]
[대화지? 주먹대화?]
[이해할 수 없네요!]
[이해할 필요 없어. 끝까지 상황을 지켜보기만 해. 그럼 알게 될 거야!]
안젤리카는 돌연한 가르딘의 행동에 의문을 제기하며 메시지(통신) 마법을 사용했다. 가르딘도 전음으로 응답을 해주었다. 전음수법에 안젤리카는 조금 놀랐다. 마법사도 아니면서 마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것처럼 보였다. 가르딘의 놀라운 능력에 점점 인간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대단해!’
투르는 갑자기 나타나서 자신을 때리는 가르딘을 이해할 수 없었다. 또한 계속 맞으면 버티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까지 동네 아이들에게 맞을 때도 가만히 있었다. 그들이 때리는 것은 별반 충격을 주지도 못했다.
아프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저 같은 마을 사람이고, 친구들이라 별달리 생각하지 않고 넘겨 버렸다. 하지만 가르딘의 주먹은 달랐다. 계속 맞다가는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나지?”
가르딘의 한마디가 가증스럽게 느껴지는 투르였다. 투르의 생애에 처음으로 화가 치밀었다.“순진하고 약하면 당하는 게 세상이지.”
“아니에요! 엄마! 아빠가 착하게 살라고 했단 말이에요!”
“그런가! 하지만 현실은 아니지!”
가르딘의 주먹은 매서웠으며 인정이 전혀 실리지 않아 보였다.투르는 가르딘이 부모의 말까지 무시하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이제는 돌아가신 부모님이지만 투르에게 가장 소중한 기억이자 추억이었다. 그 추억을 무시당하자 참을 수가 없었다.
“아니… 란 말이야!”
퍼어억!
주르르륵!"
투르가 주먹을 휘둘렀다. 가르딘이 왼팔을 들어 올려 투르의 주먹을 일부러 막아내었다. 그러자 저절로 뒤로 몸이 밀려나갔다. 힘을 더 준다면 막아내는데 별다른 장애가 없겠지만 가르딘은 적당히 조절하며 상황을 맞추고 있었다.
파팟! 타타타탓!
주먹과 발이 동시에 교차였다. 가르딘과 투르가 서로 섞이면서 주먹과 발을 교환했다. 투르의 주먹과 발은 투로가 정확히 정형화되어 있지 않았다. 마구잡이식으로 휘두를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과 속도가 보통을 넘었다. 일반기사는 전혀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다. 가르딘은 적당히 부딪치며 녀석의 주먹과 발을 막아내었다.
투르는 점점 더 힘을 내었다. 이제까지 안에 쌓였던 것들을 폭발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억눌러 놓은 투르 본연의 또 다른 인성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힘만으로 이 정도라니! 이거 정말 대단한데!’
파파파팟! 타탁! 파파팡!
처음에는 화가 나서 휘둘렀던 주먹이었다. 그런데 주먹을 휘두를수록 기분이 점점 좋아지는 투르였다. 이런 기분은 생애 처음이었다. 상대에 대한 화를 냈을 뿐인데, 그리고 주먹을 날렸을 뿐인데 이런 기분이 들다니 이상했다.
한참 동안 공방을 주고받았다.가르딘은 투르가 전심전력을 다하도록 교묘하게 유도했다. 한계치를 점점 더 끌어올리도록 힘과 속도를 점차적으로 올렸다고 하는 것이 맞았다."
1시간 동안 대결이 지속되었다.
말이 좋아 1시간이지, 그동안 검만 휘둘러도 지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단한 체력을 소유한 투르였다. 수련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믿을 수 없을 지경이다.
허억! 허억!
땀이 비오듯이 흘러나오는 투르였다. 점차 힘에 부치고 있었다. 가르딘은 지금이 한계라는 것을 파악했다.
가르딘이 공격을 멈추자 투르도 멈추었다.
“지금 기분이 어떻지?”가르딘의 물음에 투르는 뜻밖의 대답을 했다. 스스로도 믿지 못할 말들이었다.
“즐…거워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저 제안에 또 다른 제가 있는 것 같아요!”
“너의 부모님이 어떤 심정으로 너에게 말했는지 모르지만 너는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했어. 부모님이 착하게 살라고 해서, 너의 인생을 희생하는 것은 오히려 죄악이야! 네가 진정으로 부모님을 위한다면 너 스스로의 발전을 해야 해. 어떤가! 내 뜻을 따라 오겠는가!”
“그…럴께요!”
가르딘의 말에 너무 쉽게 빠져들고 있었다.
사실 가르딘은 투르의 욕망을 움직이기 위해 사념안을 약간 동원했다. 투르의 본능과 잠재력을 격발시키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러기에 쉽사리 가르딘의 말에 동화되었던 것이다.
‘현혹마법인가요?’
‘뭔 말인지 모르겠는데!’
안젤리카는 가르딘이 사용한 수법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현혹마법 같기는 하지만 아니었다. 마법을 사용하려면 마나의 유동이 존재해야 했다. 마나의 유동은 드래곤이라고 해도 무시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마나의 유동도 없이 마법을 부렸다고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가르딘은 오늘도 횡재했다고 생각했다.
가는 곳마다 득템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드래곤과 생사결을 한 위험한 일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원만히 해결이 되고 있었다.
“네가 진정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주마.”
“정말이요!”
“물론이다. 난 한 입으로 두 말 하지 않는다.”
‘사실 두 말 이상 하지.’
거짓을 사실처럼 사실을 더 사실처럼 말을 하는 가르딘이었다. 온갖 감언이설로 투르를 꿰어내고 있었다. 세상물정 모르는 투르가 가르딘의 화법에 넘어가지 않고서는 베기지 않았다. 드래곤도 두 손, 두 발 다든 가르딘의 화법이었다. 누가 감히 상대할 수 있으랴! 상대가 있다면 피닉스기사단의 바자바인 후작 정도뿐이었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
“모르겠는데요.”
“내가 바로 영주다.”
“예! 영주님이시라고요!”
“그래 거짓말 같으냐.”
“아니에요. 감히 영주님에게 제가 무례하게 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내가 먼저 시작한 일이니 괜찮다.”
투르는 영주가 직접 자신을 이끌어 주겠다고 하자 감격했다. 10살 때 부모님이 죽고 혼자가 된 투르였다. 투르는 그동안 혼자서 너무 외로웠다. 사람들이 시키는 것을 모두 한 것도 외로움 때문이었다. 그런 일 모두가 자신을 위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고 있었던 것인지 몰랐다.
가르딘과 안젤리카는 투르의 집에 들어갔다.
투르가 조촐하게 음식을 해왔다. 가르딘은 투르가 살아온 세월을 들어주었다. 10살 이후 누구도 투르의 말을 귀 기울여 주지 않았다는 것을 안 가르딘이었다.
‘그것보다 이 녀석 17살이었어!’
가르딘을 가장 놀라게 한 녀석이었다.
겉모양을 보면 이십대 중반은 되어 보였다. 거대한 덩치와는 다르게 순진한 것도 이해가 되는 일이었다. 아직 어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또한 수비병이 되지 않은 이유도 알게 되었다. 18살이 되지 못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너의 몸은 특별하다. 그러니 그에 맞는 일을 찾아야지.”
“제게 맞는 일이 있는 건가요?”“지금 몸이 어떤가?”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지친 몸이 금세 회복되었고, 전보다 더 힘이 넘쳐흐르지 않나?”
가르딘의 말에 투르는 잊고 있었던 것을 깨달았다. 좀 전까지 힘에 겨울 때까지 몸을 움직였다. 더군다나 가르딘의 권격을 온몸으로 다 받아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이 전보다 더 힘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보니 힘이 더 세진 것 같아요!”
“너의 몸은 두들길수록 더 강해지는 몸이다.”
“설마!”
맞을수록 강해진다니! 그건 변태였다. 투르가 두려운 듯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표정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 가르딘은 고개를 저었다.
‘이거 멍청해도 유분수지!’
투르는 아직 너무 어리고, 생각하는 것이 한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순진한 것의 도를 넘었다. 이것은 문제가 심각하다. 어느 곳에 가서도 이용당하기 딱 좋았다. 약간은 사악해질 필요성이 있었다.“이상한 생각하지 마라. 너의 몸이 맞을수록 더욱 강한 힘을 내기 때문에 말을 한 것뿐이다.”
가르딘은 투르를 가격하면서 진기의 타통을 시켜주었다. 주먹을 날리면서 금강지체의 원천인 금강지력을 건드렸다. 금강지체만이 가지는 독특한 흐름을 파악하여 두들겨 주었다. 금강지력은 반탄력과 비슷하다. 더욱더 강한 힘을 줄수록 반발력이 지속적으로 강해진다.
결국에는 때리는 것만으로도 금강불괴지체에 가까워진다. 일부러 주먹을 먼저 선보인 것도 금강지체의 속성을 알고 있기에 사용한 것이다.
“오늘 네게는 독특한 공부를 가르쳐주도록 하겠다. 이것은 네 마음을 더욱더 강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물론 선택은 네가 하는 것이다.”
투르는 잠시 망설였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전처럼 맞는 것은 사양하고 싶었다. 싸우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지만 맞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전처럼 맞는 것은 아니다. 너의 마음을 굳세게 만들어주는 것뿐이다.”
“그럼 하겠어요!”
맞지 않는다는 말에 투르는 선택을 해버렸다. 더군다나 여린 마음을 강하게 해준다는 말에 홀라당 넘어가 버렸다.
안젤리카가 안타깝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르딘의 화술을 당해낸다는 것은 아직 어린 투르로서는 불가능했다. 자신조차 그의 교묘한 화술에 넘어가지 않고서는 베기지 못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안젤리카가 가장 궁금한 것은 가르딘의 행동과 말이다. 그가 한 행동을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결론적으로 투르의 몸에서 활성화되는 마나의 파장이 강해진 것도 사실이었다.
몸속에 흐르는 기운을 타격으로 소통시킨다는 것 자체를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안젤리카였다. 무척이나 생소하고 특이한 경험이었다. 나중에 한번 시험 삼아 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진기타통은 고난이도의 수법이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 보고 알아낼 수 있는 수법이 아니었다.
“축하한다. 너의 용감한 행동은 돌아가신 부모님도 잘했다고 축하를 해주었을 것이다.”
“정말이요!”
“나는 영주다! 영주가 거짓말 할 것 같은가?”
“아니에요! 저는 영주님을 전적으로 믿어요!”
“그래, 그래 나만 믿고 따라오너라!”
열렬한 믿음을 불태우게 만들어주는 가르딘이었다. 가르딘이 비록 투르를 이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투르에게 나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에게 맞는 일을 찾아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내가 할 일은 별로 없어지게 되겠군.’
인재가 많을수록 결과적으로 가르딘이 할 일이 별로 없게 된다. 그 시간 동안 가르딘이 할 일은 가족들과 오붓하게 보내면 되는 것이다.
“안젤리카 잠시 나와 투르를 보호해 줘. 중요한 일이니까 절대 건드리지 마.”
“알겠습니다. 영주님!”
가르딘은 투르에게 신공을 가르쳐줄 생각이었다. 가르치는 것을 구결로 하면 좋겠지만 투르의 지능을 볼 때 힘들었다. 또한 금강지체를 타고났기에 일단 흐름을 파악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몸 스스로 기억하는 것은 다른 어떤 몸을 타고난 녀석보다 탁월할 것으로 보았다.
“상위를 벗고, 등을 돌려 편안하게 앉아라. 그 상태에서 절대 입을 열어서는 안 된다. 이 일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네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모두 너의 노력이지, 다른 누구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예, 영주님!”
가르딘은 등을 돌린 투르의 몸을 보았다. 수련을 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락부락한 근육이 전신을 풀레이트아머로 두른 것처럼 강력하고 단단해 보였다.
등 뒤에 자리한 기경팔맥의 한 혈인 독맥에 엄지를 대었다. 그리고 천천히 순환시켜 나가기 위해 천룡무상진기를 미세하게 컨트롤하여 주입했다.
우우웅!
점차적으로 가르딘의 기운이 거세졌다. 그에 따라 투르의 몸에서 잔 경련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기가 몸 안의 기경팔맥을 따라서 십이정경에 도달해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전신혈맥으로까지 진기가 움직여야 한다.
금강지체의 반발력의 모태는 외공이라고 할 수 있다. 몸을 구성하는 수많은 세맥에 진기를 유통시켜 전신 모공에 충격을 준다. 충격은 반발력을 불러오고, 반발력은 더욱더 단단한 힘을 낼 수 있게 해준다.
“내가 전수할 내공은 광천패황신공이라고 한다.”
광천패황신공.
신마가 되기 이전 천무의 별호가 붙은 시절에 얻은 광마의 마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무공에 관심이 많은 신마가 광마의 절기를 시험 삼아 패력지공에 대해서 집중적인 연구를 해보았다.
패도무학에 있어서 광마의 절기만한 것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광기가 문제였다. 광마가 중원무림에서 무림공적으로 몰린 가장 큰 이유가 그의 광적인 살육행동 때문이었다. 신공이기는 하지만 그 안에 서린 광폭함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부작용이었다.
절대적인 무공이라도 심성을 다스리지 못하는 무공은 있 으나 마나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신마는 그런 광천패황마공을 신공으로 탈바꿈시켜 버렸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광마 역시도 불세출의 기재라고 불릴 만한 인물이다.
그조차도 광천패황마공의 단점을 해결하지 못하고 끝내 죽음을 당했다. 신마의 뛰어난 능력이 아니라면 절대 불가능한 일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크윽!’
투르의 입에서 거친 신음이 들렸다.
금강지체의 특징은 전신혈맥이 모두 강력하게 단련이 된 상태로 태어난다는 것에 있었다. 혈맥이 단단하니 그 안으로 움직이는 기운이 쉽사리 터져 나가지 않는다.
내공이 빠르게 증진되지 않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내공이 점차적으로 강해질수록 외공은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지는 장점이 있었다. 더군다나 가르딘이 전수하는 광천패황신공은 애초에 마공이라고 불리는 내공심법이었다.
마공의 장점은 속성이었다. 가르딘이 보기에 느린 것일 수 있으나 다른 사람이 본다면 지극히 빠른 진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2시간이 금세 지나가 버렸다.
가르딘이 손가락을 떼었다. 진기를 더 이상 주입하지 않아도 스스로 운기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어느새 가부좌를 튼 투르가 눈을 감고 지속적으로 운기하고 있었다. 오늘 하룻밤 동안 계속될 지 몰랐다.
“안젤리카 우리는 이만 쉬지.”
“이대로 놔두어도 되는 건가요?”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깰 거야. 그때까지 절대 건드리지 마!”
“그렇다면 알겠어요.”
안젤리카는 자지 않아도 되었다.
그녀는 투르의 몸에서 움직이는 기운의 유동을 일일이 체크하고 있었다. 몸 안에서 움직이는 흐름이 놀랍도록 패도적이고 강력했다. 그녀가 보기에도 만만치 않은 기운이었다. 이런 기운이 한순간에 형성이 된다는 것 자체가 신기할 지경이었다.
‘어떻게 한 거지?’
가르딘과 함께할수록 점점 미궁 속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가르쳐 달라고 하지는 않았다. 드래곤이라는 자존심이 존재했다. 인간이 했다면 드래곤인 자신도 할 수 있다는 오기가 있었다.
날이 밝아 오는 동안 안젤리카는 그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마법사는 탐구하는 존재다. 드래곤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끊임없는 탐구하고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스스로 밝혀내었을 때 또한 보람도 크지 않은가!
가르딘은 투르의 침상에서 잠을 때리고 있었다.
점점 어두워지다가 시간이 흘러 다시 밝아지고 있었다. 가르딘의 눈꺼풀 사이로 빛이 점차 들어오고 있었다. 투르의 집 창문으로 빛이 스며들었다.
아침이 되었다는 것을 느낀 가르딘이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투르는 여전히 가부좌를 튼 상태였고, 그 옆으로 안젤리카가 잠도 자지 않고 세심하게 살피고 있었다. 둘 다 놀라운 집중력이었다.
“이제 시간이 됐을 텐데.”
때마침 투르의 눈이 떠졌다.
예전의 순수했던 눈빛보다는 광기가 약간 배어 있는 눈빛이었다. 광천패황마공이 신공으로 탈바꿈되었다고는 하나 광기를 완벽하게 지운 것은 아니었다. 가르딘이 광천패황신공을 전수해 준 것은 조금이나마 투르의 성정을 강하게 만들기 위한 일환이었다. 그 성과가 지금 나타나고 있었다.“제법 완성이 된 것 같은데, 느낌이 어떠냐?”
“화가 나는데요!”
“화가 난다고?”
“지금까지 마을사람들이 저를 부려먹었다는 것에 무척이나 화가 나요! 모두 잡아서 목을 비틀어 주고 싶은 심정이에요!”
‘응?’
이건 도를 넘었다.
그저 성정을 조금 강하게 한다는 것이 너무 난폭하게 변해 버렸다. 강함과 난폭은 그다지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더 과하냐 아니냐에 구분이 있다. 지금 투르는 과한 정도를 넘어선 것 같았다.그때에 투르의 집 밖에서 마을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농민은 부지런하다. 그렇기에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 농사일을 시작한다. 일찍 일어난 마을 사람들 중에 한 명이 집 앞에 와서 투르를 불렀다.
“투르, 어서 나와! 일하러 가야지!”
투르가 문 밖으로 나왔다.문을 열자마자 흉악한 기세가 느껴졌다. 투르를 불렀던 마을 청년 스티븐은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평소의 투르가 아닌 것 같았다.
“너 왜… 그래?”
“어릴 때부터 날 잘도 부려먹었겠다!”
번쩍!
투르가 한 손으로 스티븐의 멱살을 잡아서 들어 올렸다. 종잇장이 들리듯이 가볍게 들어 올려진 스티븐의 얼굴이 시퍼렇게 질려 버렸다. 투르가 뿜어내는 투기가 상상 이상으로 강력했다. 투기가 조금 더 강하면 스티븐의 마음에 충격을 줄 수도 있었다.
“그만!”
가르딘이 도를 넘어서는 투르의 행동을 저지했다.“하지만 영주님! 이놈들은! 저를…….”
“시끄러, 이미 지난 일을 가지고 사내답지 못하게 화풀이하는 것이냐! 너는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 녀석인 것이냐!”
자기도 뒤끝 심하게 강하면서 투르에게는 한 점의 망설임도 없이 질타하고 있었다. 사실 이렇게 된 이유가 모두 가르딘이 전수한 광천패황신공의 영향 때문이었다. 따지고 보면 가르딘의 탓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거 어떡하지? 애를 완전히 버려 버렸네!’
그저 세상살이에 이용당하지 말라고 전수한 것인데, 너무 심하게 호전적인 성격으로 변해 버렸다.
“죄… 송해요. 영주님!”
투르의 심적인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가르딘의 말은 절대적으로 듣고 있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 말을 안 들었으면 아주 골치가 아팠을 것이다. 이미 전수한 광천패황신공은 다시 회수가 불가능한 신공이었다.
가르딘이 투르의 몸 상태를 살펴보니 하루 만에 광천패황신공이 골수까지 스며들어 있었다. 놀랍도록 빠른 진전이었다. 내공이 늘은 것이 아니라 광천패력이 금강지력과 융합이 된 상태라는 말이었다.
둘은 서로의 반발력을 흡수하면서 강해지고 있었다. 이 상태에서 한 가지를 떼어놓게 되면 균형이 깨져버리게 된다. 깨져버린 균형은 다시 회복하기 힘들어질 수 있었다.
‘아주 골 때리게 됐는데!’
생각한 것과는 다른 결과가 나왔다.
그에 따라 안젤리카가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이런 결과를 예상한 건가요?”
성격을 완벽하게 바꾸어버리는 놀라운 일이었다. 안젤리카는 대단한 일을 한 가르딘을 보고 존경하게 되었다.
존경스럽게 바라보는 안젤리카를 보고 어떻게 실패했다고 말을 하겠는가! 가르딘은 전혀 당황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당당하게 말을 했다.
“물론이지. 다 내가 예상한 범위 안에 일어난 일이야.”
“대단하네요.”
어디로 튈지 모르는 투르를 마을에 두고 올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대로 같이 데리고 가는 것이 상책이었다. 투르의 정신과 몸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어떻게 변했는지 확인해야 했다.
“투르! 넌 내가 시키지 않은 이상 함부로 힘을 사용하지 마라.”
“알았어요! 영주님!”
발키리 영주의 저택.
그 앞으로 50명에 달하는 기사가 서 있었다. 그들 모두 굳은 표정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비장한 표정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 앞으로 필리언, 갈라, 유타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서 있었다. 보기에는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놈의 생명력은 트롤보다 질긴데!’
필리언, 유타, 갈라가 생각하기에 절대로 가르딘이 죽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굳이 이런 출정이 필요하지 않다고 보았다.
그와 반대로 미토스와 스필언은 흔들리지 않은 표정으로 출정을 서두르고 있었다.
파멜라는 3일이 넘어도 돌아오지 않는 가르딘을 위해 기사들을 파견하기로 마음먹었다. 다크 랜드로 출발하기 위해서는 일반병사로는 어림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모든 기사들을 소집했다.
특히 이번 [가르딘 백작 구출작전]에 핵심은 스필언과 미토스였다. 아무래도 오러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기사가 필수적으로 필요했다.
“이번 일은 발키리 영지 사람들이 알아서는 안 돼요. 영주님의 부재로 영지민들이 불안해할 수도 있어요! 더군다나 다른 영지에서 알아서도 안 되는 것을 명심해야 할 거예요!”
영주가 없게 되면 도노반 자작의 경우처럼 새로운 영주가 올 수도 있었다. 이제까지 이루어 놓은 일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파멜라는 가르딘이 걱정되면서 영지에 대한 일도 걱정이 되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기사들도 가르딘에 대한 충성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한 번의 위기에 보여준 가르딘의 카리스마와 관용으로 인해 기사들은 가르딘을 진정한 주군으로 모시고 있었다. 기사들 모두 다크 랜드에 대한 두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출전하는데 망설이지 않았다.
“비밀리에 영주님을 구출하는데 최선을 다해 주세요.”
이동경로는 기사들도 이미 알고 있었다. 가르딘이 이번에 다크 랜드로 간 이유가 모두 수로 때문이었다. 물길을 따라가다 보면 가르딘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을 했다.
가르딘은 집에 돌아와서 라이나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생각으로 가득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점점 가벼워졌다. 그와 반대로 인상을 잔뜩 쓰며 따라오는 투르였다. 투의 표정이 전과 다르게 상당히 무서웠다. 원래 무서운 얼굴인 데다가 표정까지 무섭게 짓자 함부로 건드리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안젤리카는 가르딘의 옆에서 묵묵히 따라서 걸을 뿐이었다.
가르딘의 시야에 영주 저택이 보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그 앞으로 기사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무슨 일이지?”
필리언, 갈라, 유타는 물론, 스필언과 미토스까지 있었다. 모든 기사들이 비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전투를 치르러 가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누가 침입했나?”
말을 들어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었던 가르딘이 즉시 모여 있는 기사들을 향해 뛰어갔다. 가르딘이 서둘러서 앞으로 뛰어가자 그 뒤로 안젤리카와 투르가 따라서 움직였다.
달려온 가르딘이 기사들을 향해 물었다.
“뭐 하는 거야?”
“응?”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사들 모두 뒤를 돌아보았다. 돌아보자 그 앞으로 가르딘이 서 있었다. 모두들 걱정한 것과는 다르게 가르딘은 멀쩡하게 모습을 드러내었다. 어디 소풍이라도 다녀온 것과 같았다.
또한 그 뒤로 아리따운 여인이 가르딘의 뒤에 서 있었다. 투르의 거대한 덩치를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와야 정상이지만 안젤리카의 아름다움이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영… 주님!”
“영주님!”
모두들 가르딘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크 랜드에서 실종이 된 것을 알고 얼마나 걱정을 했던가! 무사귀환을 했으니 천만다행이었다.
“내가 죽은 줄 알았나!”
파멜라가 다가왔다.
“영주님이 3일 동안이나 돌아오시지 않아서 어쩔 수 없었어요!”
“내가 그 정도로 신임을 주지 못했나.”
“하지만 너무 무모했어요! 암흑의 대지라고 불리는 다크 랜드에 홀로 가시다니!”
“어차피 같이 간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잖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 판단을 하고 결정을 한 것이다.”
파멜라는 잔소리를 할 수 없었다. 이미 원천봉쇄를 한 가르딘이었다. 영지를 위해서 발 벗고 나서는 가르딘의 모습은 진정한 영주의 모습 그 자체였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확실하게 보여 주었으니 기사들도 영주를 더욱더 신임하게 되었다.
“영주님이야말로 진정한 영주님이십니다!”
고트의 말이 파장이 되어 기사들 모두 가르딘을 연호했다. 가르딘이 희생해서 수로를 다시 원상복귀시켰다는 사실에 감격을 했다. 영주의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고 가만있을 수 없었다. 모든 기사들이 가르딘을 위해 노력하기로 다짐했다.
가르딘은 기사들을 충성을 받으면서 영주실로 들어갔다
영주실 앞에 라이나와 브리안이 서 있었다.
“여보!”
“아빠!”
라이나와 브리안이 흘러내릴 듯한 눈물을 지으면서 가르딘에게 달려왔다. 그리고 와락 안겼다.
“걱정했어요!”
“내가 누구야! 그 정도 일로 절대 죽지 않아. 당신과 브리안이 있는 이상 나는 천하무적이야!”
한 팔에 브리안을 들고 다른 한 팔로 라이나의 허리를 감쌌다. 그리고 돌아보았다.
“모두 눈 돌려라!”
휙!
기사들 모두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렸다. 가르딘은 라이나와 브리안에게 기습 키스를 감행했다.
쪽! 쪽! 쪽! 쪽!
누가 보건 말건 상관하지 않았다.
일이 원만하게 해결되고 집무실로 돌아온 가르딘이었다. 3일 동안 영지 내에 일어난 일들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파멜라가 서류를 작성해서 탁자에 올려놓았다.
“별다른 일은 없었군. 피곤할 테니 너도 가서 쉬어라.”
“피곤하지 않아요.”
“걱정을 많이 한 것 알고 있으니 쉬랄 때 쉬어. 네가 쓰러지면 내가 감당하지 못해.”
“알겠어요.”
파멜라는 3일 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가르딘의 일 때문에 걱정이 되어서 잠을 잘 수 없었다. 가르딘이 돌아오고 나서 안심을 하자 피곤이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가르딘의 말이 아니었다면 지금 당장 쓰러져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파멜라가 나가고 난 후 필리언, 갈라, 유타가 들어왔다.
그들 모두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너희들은 또 왜?”
“너 다크 랜드에 간 것 아니지?”
“뭔 소리야?”
“다크 랜드에 그처럼 아름다운 여인이 있다는 게 말이 돼!”
“사실대로 불어!”
필리언, 갈라, 유타는 가르딘이 안젤리카와 밀월여행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수로야 한번 말랐다가 다시 흐를 수도 있는 것이었다.
가르딘이 해결했다고 생각하기에도 이상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뭐야? 그럼 지금 내가 바람 폈다는 거야!”가르딘이 불같이 화를 내었다. 그의 일생에 여자는 라이나뿐이었다. 다른 여인과 바람이라니 이건 천재지변보다 더한 재앙이었다. 그런 말을 듣는다는 것 자체가 라이나에게 죄를 짓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가르딘이었다.
가르딘의 주먹이 섬광처럼 뿌려졌다. 정확히 3방이었다. 빛보다 빠른 가르딘의 권격은 오러 마스터라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뇌전을 방불케 하는 가르딘의 섬전삼격이었다.
"퍼퍽! 퍼퍽! 퍼퍽!“
“아이고! 내 눈이야!”
오른쪽 눈을 부여잡고 발을 동동 구르는 필리언, 갈라, 유타였다. 어떻게 때렸는지 보지도 못했다. 말을 한순간 빛이 번쩍였고, 지옥과 같은 고통이 밀어닥쳤다.
“세상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눈은 필요 없지. 어디 다시 한 번 말을 해보렴.”
가르딘의 사악한 말이 이어졌다.
한 번 더 이상한 소리를 하면 나머지 한쪽 눈마저 처벌을 내려주겠다는 말이었다.
“너 수상하다! 이렇게 오버할 일이 아닐 텐데.”
필리언도 지지 않고 반박했다. 오버하는 게 수상하다는 식으로 말을 이었다.
“넌 생각하는 게 죄다 이상해! 너희들이 뭔가 착각하는데 안젤리카는 대외적으로 5서클 마법사이며, 내가 아는 한 6서클 마법사야!”
“뭐?”
가르딘은 오해하는 녀석들을 풀어주기 위해 말을 해야 했다. 사실대로 드래곤이라는 말을 죽어도 할 수 없다. 믿지도 않을뿐더러 더 오해할지 몰랐다. 가르딘이 영지에 돌아오기 전에 생각한 것을 거침없이 토해내었다.
다크 랜드의 계곡이 빗물로 인해 무너져 내렸고, 그로 인해 물길이 막혀 버리게 되었다. 때마침 안젤리카가 마법수행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만나게 되었고, 마법으로 계곡의 흙을 퍼내었다. 한 번에 퍼낼 수 있는 양이 아니라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
내용은 대충 이러했다.
가르딘의 설명을 모두 들은 필리언, 갈라, 유타는 그래도 미심쩍은지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연의 일치가 너무 심했다. 그래도 딱히 아니라고 할 만한 것도 없었다. 가르딘이 라이나에 대해서 가지는 마음은 자신들이 생각해도 대단했다. 그런 가르딘이 바람 같은 걸 필 리는 없다고 보지만 안젤리카의 미모가 너무 대단해서 한마디 한 것뿐이었다. 또한 오버하는 가르딘의 모습을 보자 조금 더 의심이 들었었다.
“아니라면 다행이고.”
“우리가 항상 보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
가르딘은 어이가 없었다. 역시 이놈들은 만만한 놈들이 아니었다. 한 대 맞았다고 기가 죽는 놈들도 아니었고, 할 말을 속에 담아 두는 녀석들도 아니었다.
오히려 드래곤과 드워프가 속이기 더 편한 종족이었다.
“그것보다 네가 데려온 그 성질 더럽게 생긴 녀석은 뭐냐?”
“앞으로 너희들 밑으로 올 예비기사다. 잘 가르쳐라!”
“그러냐? 그럼 걱정하지 마라. 우리가 잘 가르쳐 제대로 된 기사로 만들어 주마.”
투르가 비록 덩치가 크지만 기사한테는 상대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한 필리언이었다. 그렇기에 아무렇지 않게 대답해 버렸다. 투르의 힘과 능력을 안다면 이처럼 방만한 대답을 하지 못 했을 것이다.
가르딘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어디 당해봐라!’
은혜는 사분지 일로, 원한은 백만 배로 돌려준다. 가르딘의 평소 지론이다.
고트, 델가도, 펠칸이 새로 온 투르의 실력을 시험하기 위해서 기사연무장에 기사들을 모이게 했다.
고참, 중견, 신입이 서열대로 모두 모였다. 한쪽에 멀뚱히 투르가 서 있었다.
투르의 덩치는 상당히 컸다. 기사들의 덩치도 일반사람들보다 큰데도 불구하고 머리 두 개 이상 차이가 났다. 고트가 투르의 군기를 잡기 위한 말을 했다.
“이제부터 너도 발키리기사단 소속의 기사가 되었다. 기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주군에게 충성하고 영지민을 보호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기사들 간의 서열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할 수 있겠느냐?”
고트의 말에 투르는 뉘 집 개가 짖느냐는 표정이었다. 왜 자신을 불러 놓고 이런 말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식이었다. 콧구멍을 파면서 건방지게 짝다리까지 집고 있었다. 후벼 판 코딱지 덩어리가 엄청나게 컸다. 코딱지 맞고 사망할 정도다.
“알겠냐고 물었다!”
“모르겠는데.”
투르는 광천패황신공의 영향으로 가르딘 이외에는 절대 따르지 않는 성격이 되어 버렸다. 자신보다 강하지 않으면 말을 듣지 않을 것 같았다. 고트의 미간의 꿈틀거렸다.
“아무리 영주님이 데려온 녀석이라고 해도 기사들간의 규율이 있다. 네놈이 이런 식으로 나오면 가만히 둘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지!”
“가만히 안 두면! 어쩔 건데!”
빠직!
고트의 인상이 마신처럼 변해갔다. 건방진 놈을 왜 영주님이 데려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영주님이 데려온 녀석이라 되도록 감싸주려고 했지만 버릇이 너무 없었다. 나이가 17살이라고 했다. 나이도 어린놈이 건방지기가 하늘을 찔렀다.
어린 싹은 잘 밟아 주어야 더욱 굳세고 똑바로 자라는 법이었다.
“슈안, 녀석에게 기사가 무엇인지 보여 주어라!”
신입기사지만 제법 실력이 있는 슈안이 나섰다.
투르는 덤비려는 슈안을 보고, 가소롭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대련이다! 예의를 갖추어라!”
투르는 여전히 고트의 말을 무시해 버렸다. 듣지도 않는 듯한 표정이었다. 가르딘이 가르쳐준 광천패황신공의 부작용이 너무 심각한 상태였다. 순진한 녀석을 악마의 길로 들어서게 만들었으니 그 죄를 누가 감당할지. 단! 가르딘은 절대 아니었다.
필리언, 갈라, 유타가 멀찍이서 기사연무장으로 들어왔다. 가르딘과 대화를 끝낸 후 바로 연무장으로 걸어왔다.
“대련인가 본데.”“가르딘이 데려온 녀석이 얼마나 대단한지 볼까!”
“아무리 강해도 기사수련을 하지 않은 녀석이 일반 기사를 이긴다는 게 말이 되냐.”
힘이 세다고 해도 그 힘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기초적인 기술도 배우지 못한 이가 고된 수련을 이겨낸 기사를 이긴다면 노력한 자들이 억울할지 모른다.
슈안과 투르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투르의 경우 검을 든 적이 없기에 무기 없이 주먹을 들었다. 슈안도 검까지 들 생각을 하지 못했다. 슈안은 요 근래 익스퍼트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으며 수련에 몰두한 결과였다.
“하는 꼴이 너무 건방지구나! 그 버릇을 고쳐주마!”
“그러든지 말든지.”
후비적!
콧구멍을 쑤시며, 대꾸도 시원찮았다.
슈안이 발끈하며 덤벼들었다. 슈안도 나이가 어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생각보다는 몸이 먼저 움직이는 시기였다.
투르가 미처 반응하기 전에 사각으로 돌아서서 옆구리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퍼퍽! 탕!
“크윽!”
주먹을 날린 슈안은 뒤로 물러섰다. 몸을 때렸는데 쇳소리가 들렸다.
‘뭐야! 마치 철판을 때리는 것 같잖아!’
옆구리에서 복부 사이에 주먹을 맞으면 일시적으로 호흡이 곤란하다. 그 점에 착안해서 가격한 것인데 때린 슈안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오히려 맞은 투르는 가려운 듯이 옆구리를 긁는 것으로 끝을 내었다.
슈안이 오러를 끌어올렸다. 몸 전체적으로 오러를 사용하면 운동 능력이 3배 이상 상승한다. 오러를 사용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실력이 달라진다. 기사들이 검술과 더불어 오러를 가장 중요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슈안이 오러를 끌어올리자 투르가 반응을 했다. 본능적인 감각이 누구보다 뛰어난 투르였다.
슈안이 투르의 앞에서 좌우로 현란하게 움직였다. 덩치가 큰 투르의 몸을 생각해서 혼란을 주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투르는 그 정도의 움직임에 동요하지 않았다. 처음이지만 가르딘과 대결했던 것을 눈과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가르딘의 움직임에 비하면 슈안은 그다지 위력적이지 않았다.
슈우웅! 퍼어어엉!
주르르르르륵!
움직임을 정확하게 포착한 투르의 주먹이 슈안의 몸을 가격했다. 슈안이 투르가 휘두른 주먹의 궤도를 파악하고 막아내기는 했지만 위력이 상상초월이었다. 그 자리에 선 상태로 7미터나 밀려나가 버렸다.
욱씬! 욱씬!
팔이 부러질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오러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쓰러진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투르의 권격을 막은 슈안은 팔이 마비가 되었다. 더 이상 손을 쓰기가 어려웠다.
조금 전 상황을 지켜본 고트를 비롯한 기사들 모두 놀랐다. 오러를 사용한 주먹도 아니고 단순한 주먹질이 저토록 위력적인 것은 처음 보았다.
“저… 럴 수가!”
“저게 말이 되는 거야!”
놀라기는 필리언, 갈라, 유타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길 가다 주어온 놈이라고 가르딘이 말을 했다. 그런데 그냥저냥한 놈이 아니었다. 요 근래 발키리기사단의 실력이 상당히 늘어 있는 상태였다. 그 중에서도 슈안은 제법 실력 있는 녀석이었는데, 고작 주먹 한 방에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제기랄!’
‘가르딘 그놈이 웃을 때부터 이상했어!’
‘마법사를 데려온 녀석이라고!’
6서클 마법사를 데려온 녀석이었다. 가르딘이 간사한 미소를 지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뭐 하는 거야! 밟아!”
세상사 다 그렇다. 홀로 독불장군 하는 녀석은 필요 없다. 못된 싹을 밟아 주어야 인생이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필리언이 기사들을 다그쳤다. 한두 명이 상대할 수 없다면 여러 명이서 밟아주어 세상이 무섭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기사체면을 별로 생각하지 않는 필리언이었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기사체면을 왜 따지는가! 지켜볼 때만 잘하면 되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어느새 다가온 스필언이었다.
어느새 다가온 스필언이었다.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네가 상대한다면 알겠다.”
스필언이 상대하겠다면 안심이었다. 이대로 개망신을 당하는 것보다는 폼이 조금 살아나는 것 같았다.
발키리기사단의 기사들은 분노했다. 고작 애송이 하나 이겨내지 못한 것이 짜증이 났다. 슈안의 실력은 제법 뛰어났다. 그런 녀석이 한 방에 나가 떨어졌으니 다른 기사들이 덤빈다고 반드시 이긴다는 보장이 없었다.
물론 검을 들지는 않았지만 상대도 검을 들지 않았다. 자존심이 무척이나 상하는 상황이었다. 스필언이 투르의 앞으로 다가섰다.
움찔!
투르가 본능적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무표정한 스필언이었다. 무척이나 잘생긴 얼굴 뒤에 숨겨진 힘을 본능적으로 느낀 투르였다.
“상당히 강하군. 영주님의 수련을 받은 것이냐?”
“그…렇다!”
“그렇군.”
스필언은 결코 경시하지 않았다. 가르딘은 사람의 능력을 파악하고 가르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시간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자신들도 고작 몇 마디 말로 오러 마스터에 올려놓은 가르딘이었다.
깨달음은 한순간에 온다고 했다. 밑거름만 받쳐준다면 언제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그럼 시작하지.”
“덤벼! 내가 질 줄 알아!”
투르는 순식간에 투기를 발산했다. 무섭도록 강력한 투기였다. 아직 어리다고 하지만 투르는 이미 전사에 가까워졌다. 투기는 마음만 먹는다고 생성되지 않는다. 본능적으로 상대를 파악하고 기운을 발산할 수 있어야 한다.
전사라는 마음가짐을 가지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투르가 먼저 움직였다. 육중한 몸매와는 다르게 상당히 빠른 움직임이었다. 돌진하는 힘을 바탕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슈우웅!
주먹이 크고 빨라서인지 풍압이 발생했다. 무척이나 빠른 권격이었다. 슈안과 상대할 때보다 더 빨랐다. 스필언은 주먹이 날아오는 궤적에서 벗어나지 않고 가볍게 발을 내디뎠다. 피하면서 날리는 주먹은 힘을 실을 수 없다. 앞으로 나가면서 날리는 역공격이야말로 달려오는 힘과 내 힘을 모두 실을 수 있다. 그 힘은 2배가 아니라 4배에 가깝다.
퍼퍽! 퍼퍽! 퍼퍼퍽!
스필언의 주먹이 투르의 턱, 가슴 정중앙 명치, 복부를 정확하게 10여 발 날렸다. 투르의 몸이 흔들거리면서 뒤로 밀려나갔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스필언은 투르의 몸이 엄청나게 단단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러를 함축한 주먹을 맞고서도 버티다니!’
기사들이 주먹만으로 상대해서는 이기기 힘들었다. 사실 투르의 입장에서 검이 아니고서는 절대 위협이 되지 않았다. 압도적으로 투르가 유리한 상황이었다. 금강지체와 더불어 광천패황신공을 배웠다는 것을 알지 못한 기사들의 불운이었다.
스필언이 가르딘에게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오러의 운용이었다. 오러를 사용함에 따라서 검이 아니라 몸으로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신에 오러를 활발하게 운용해 나갔다. 강함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단단하다면 유연함으로 그 단단함을 무너뜨리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투르는 한 번 정도 꺾여야 했다. 기사로서 들어왔다면 기사의 율법에 따라야 한다. 성격이 어떻든 단체생활에서 중요한 것을 배울 필요성이 있었다.
스필언의 권에 오러가 뿜어져 나왔다.
‘응?’
필리언, 갈라, 유타의 눈이 번쩍 뜨였다. 오러 익스퍼트 최상급에 이른 기사들이었다. 스필언의 주먹에 오러가 뿜어져 나온 것을 보지 못할 리 없었다.
‘피스트 오러잖아!’
‘그러게!’
‘저 괴물 같은 놈!’
검이 아닌 주먹에 오러를 형성하는 게 더 어렵다는 것은 상식 중에 상식이었다. 오러 마스터에 들어선 지 얼마나 됐다고 이제는 피스트 마스터에 이르러 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투르는 정말 정신없이 맞았다. 스필언의 주먹이 보이지도 않았다. 투르의 주먹이 한 발 앞으로 나갔을 때 이미 20여 발의 주먹이 투르의 전신을 두들겼다. 오러를 사용한 권격에는 충격을 받는 투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르는 포기하지 않았다. 정말 죽도록 맞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 주었다.투르가 보여 주는 무섭도록 강렬한 투기에 기사들 모두 질린 표정이었다. 스필언의 공격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알기 때문이었다.
‘괴… 물을 데려왔어!’
투르의 모습만 보면 광전사라고 불리기에 충분했다.
필리언, 갈라, 유타뿐만 아니라 기사들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
‘스필언 저놈도 무섭다!’
저처럼 무서운 투기를 보면 일반적으로 질리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표정 하나 없이 사람을 두들겨 패고 있었다. 봐주는 것 따위는 애초에 없었다. 스필언의 주먹은 인정이 서려 있지 않았다. 오히려 화를 내며 때리면 그나마 인정이 있어 보였을 것이다.
쿠쿵!
투르의 거대한 신체가 바닥에 쓰러졌다. 커다란 덩치가 쓰러지자 지면에 균열을 일으켰다. 쓰러졌음에도 다시 일어서려는 투르였다. 그러나 일어날 수 없었다. 쓰러져 있는 상대를 향해 스필언이 발로 밟았기 때문이었다. 스필언은 상대가 항복할 때까지 발로 밟았다.
“크으윽!”
퍼퍼퍼퍼퍼퍼퍽!철퍼덕!
철퍼덕!
한참 동안 맞은 투르가 쓰러졌다.
스필언이 뺨으로 흐르는 땀 한 방울을 닦아내었다.
“제법이었다.”
기절한 투르였다.
투르의 한계라고 하기에는 무리였다. 아직 어떤 기술도 배우지 않은 상태에서 오러 마스터의 주먹을 버텨 낸 것이다. 제대로 된 수련을 한다면 상상도 못할 능력을 발휘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고생 꽤나 하겠군!’
‘그렇겠지.’
‘그놈은 우리를 부려먹지 못해서 안달인 것 같아!’
필리언, 갈라, 유타가 가르딘을 속으로 욕하면서 대련이 끝이 났다. 기사들 모두 투르가 쓰러진 것에 안심하기는 했지만 속이 쓰렸다. 앞으로 투르를 대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저 미친놈처럼 지랄하는 놈을 다스리려면 자신들도 죽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