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딘 전기 4 건드리고고 @@[Title [email protected]@]
@@[제 1장 드워프와의 조우@@]
조우가르딘은 하루 동안 라이젠의 레어에서 기거했다.
하루 종일 레어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랜드 마스터라서 그런지 돌아다니면서 운기할 수 있는 동공으로 가볍게 몸을 풀자 별로 피곤하지도 않았다. 사실은 쓸 만한 것들을 찾기 위한 가르딘의 노력이었다.
그 전날 안젤리카에 대한 일은 잘 마무리가 되었다.
3시간 동안 대화가 이루어졌었다. 라이젠은 8천 살을 살아온 자신의 말발을 최대한 동원하여 가르딘을 설득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노력은 성과를 불러온다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결과적으로 가르딘만 좋은 일이 되어 버렸다. 대화를 이어갈수록 이기는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 결과를 보면 이긴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졌다고 하기에도 애매하게 만들어 버리는 가르딘이었다.
라이젠은 드래곤이기에 수면기 이외에는 잠을 자지 않아도 된다. 수면기가 아니니 한 5백 년은 거뜬히 눈뜨고 다닐 수 있다. 그런 라이젠이 평생 처음으로 밤에 수면을 취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말을 했는지 입이 다 아플 지경이다.
가르딘은 라이젠과 협상을 벌이면서 3가지 소원을 더 들어주기로 약조를 받아내었다.
물론 라이젠이 할 수 없는 것이나, 얼토당토한 일을 도와달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인간사회의 변혁을 불러일으키는 일도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가르딘의 사적인 일. 즉 지극히 개인적인 일로 한정을 시켜 놓았다. 또한 들어보고 라이젠이 아니다 싶으면 거절할 수 있는 것이었다.
라이젠의 입장에서도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싶어 허락했다.
가르딘은 라이젠에게서 만년석균과 더불어 드래곤의 호의까지 얻어 버렸다. 놀라운 수완이었다. 원래 나이가 들면 수다가 많아진다고 하지 않는가! 역시 인간의 수다는 드래곤도 능가하는지 모른다.한편, 발키리 영지의 세 사람은 누군가를 걱정하고 있었다. 원래 다들 태평한 녀석들이기는 하지만 동기를 위한 마음만은 진실되었다.
가르딘이 다크 랜드로 간 지 하루가 지나갔다. 굉장히 넓은 다크 랜드를 하루 동안 살펴본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그럼에도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유타, 필리언, 갈라는 아침이 되자 빠르게 일어나서 영주실로 향했다.
그들의 얼굴에 피곤함은 그다지 없어 보였다.
가르딘이 걱정된다고 해서 밤에 잠을 푹 못 잔 것은 아니었다. 영주의 집무실에 들어가자 여인이 한 명 앉아 있었다. 그녀는 필리언, 갈라, 유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파멜라, 일찍 나왔네.”
파멜라가 고개를 들어 필리언, 갈라, 유타를 바라보았다.
그저 빤히 바라보는 것이지만 사실을 실토하라는 무언의 압력이 들어 있었다. 행정관이 되더니 사람 갈구는 능력이 저절로 생겨난 것처럼 보인다. 높은 자리에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위압감이 생긴다. 파멜라의 위압감이 보통을 넘어 경지를 밟고 있었다.
유타와 갈라는 필리언의 뒤에 서 있었다. 잽싸게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능력이 탁월한 녀석들이었다.
탁!
필리언의 등을 가볍게 밀었다.
필리언을 집무실 안으로 밀어 넣고, 유타와 갈라는 뒤도 보지 않고 문을 닫아버렸다. 친구를 사지에 내버려둘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유타와 갈라였다.
앞으로 한 걸음 타의에 의해서 들어간 필리언은 지옥과 천국의 경계가 왜 생겼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저것들이!’곤란한 설명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파멜라가 집요하게 파고드는지라 쉽사리 대답하기 곤란했다. 가르딘의 행동은 절대 영주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영주는 영주 혼자만의 목숨이 아니다. 영주는 영주민을 비롯한 영지의 모든 것들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
“영주님이 어젯밤에 집에 들어오시지 않았어요. 아침에 제가 찾아갔는데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은 문제가 있어요. 행정관인 제가 영주님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게 나도 잘……!”
평소 필리언 경과 유타 경, 갈라 경의 경우 집무실에는 오지도 않았잖아요, 아침부터 이렇게 찾아오다니 심히 의심이 되는군요.”
‘크! 예리하다!’
가르딘이 왜 파멜라에게 행정관을 시켰는지 능히 짐작하고도 남았다. 다른 사람이 쉽게 지나치는 일을 정확하게 꼬집어 내는 능력이 있었다. 사람이라는 것이 막상 듣고 나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하지만 그 별거 아닌 것을 지적하는 능력이 대단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파멜라는 대단한 여인이었다.
주르르륵!
필리언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알… 았다. 말해 주마!”
필리언은 어쩔 수 없이 사실을 말해 주었다. 가르딘이 어젯밤에 다크 랜드로 몰래 갔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벌떡 일어난 파멜라였다. 다크 랜드는 그녀가 생각하기에 가장 위험한 지역 중에 하나였다.
아무리 오러 마스터라고 해도 홀로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기사단과 병사들을 모두 이끌고 가도 위험한 지역을 홀로 들어가다니 미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지금 그게 발키리기사단의 단장으로서 할 말이에요! 어떻게 영주님을 홀로 다크 랜드에 보낼 수가 있어요!”“어쩔 수 없었다고, 녀석이 간다고 하는데 난들 어떡하라고!”“녀석이라니요, 지금 영주님을 그런 식으로 부르는 겁니까!”
‘헉! 집요하기까지.’
집요하며 까다롭다. 필리언의 눈에는 어떻게 해서든 꼬투리 잡으려고 달려드는 무서운 행정관으로 보였다. 사실 필리언으로서는 할 말이 없었다. 기사단장이 영주를 사지로 혼자 보낸 꼴이었다. 어제 별것 아닌 식으로 가르딘이 말을 해서 그냥저냥 받아들인 것이 탈이 나고 있었다.
무언가 궁색한 변명이라도 하려는 찰나였다.
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시녀 한 명이 급하게 뛰어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시녀는 가르딘의 전속 시녀 중에 한 명인 미네였다.
미네는 다급하게 영주집무실에 들어오면서 파멜라에게 소식을 전했다.
파멜라는 급히 말을 멈추었다. 영주의 다크 랜드 외출에 대한 일은 아직 비밀이었다. 아는 사람이 많아져봤자 불안감만 조성할 뿐이었다.
파멜라가 서둘러 들어오는 미네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지?”
“파멜라 행정관님! 영지에 말랐던 수로가 다시 흐르고 있어요! 지금 영지민들이 모두 나와서 기뻐하고 있어요!”
“진짜!”
“예, 진짜예요!”
“알았다. 그만 나가 봐.”
파멜라는 한시름 놓았다. 현 시점에서 영지에 가장 큰 문제점이 해결되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수로가 마른 것은 파멜라도 태어나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무리 똑똑해도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일까지 모두 해결할 수는 없었다.
수로가 마르면 밀농사를 할 수 없게 된다. 밀농사는 발키리 영지의 가장 주요한 수입원이다. 다크 랜드를 개척한 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영지 내 자산이 그다지 풍족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천재지변까지 발생하면 파산밖에는 답이 없다. 만약 일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으면 자금을 융통하기 위해서 돈을 빌려야 한다. 돈을 빌리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돈을 빌려 앞선 문제는 해결했다 쳐도 빌린 돈의 이자와 더불어 상당한 액수를 마련해야 한다. 쉬운 일이 절대 아니다.
한 가지 일이 해결되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이 남아 있었다.
“응?”
파멜라가 잠시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 사이에 필리언이 은근슬쩍 밖으로 나가 버렸다. 커다란 덩치와는 안 어울리게 빠른 동작이었다.
“영주님과 관련이 있는 건가?”
파멜라는 필리언이 말한 것을 토대로 어느 정도 사태의 윤곽을 잡았다. 가르딘이 이유 없이 다크 랜드로 들어갈 리 없지 않은가! 영지의 수로에 대한 것을 조사하기 위해서 갔을 가능성이 가장 컸다. 또한 일이 원만하게 해결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다크 랜드는 무슨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무서운 대지였다.
‘영주님 제발 무사하세요!’
발키리 영지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사람은 전적으로 가르딘이었다. 그녀의 뛰어난 역량도 가르딘이 없으면 발휘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지금까지 계획한 일도 모두 가르딘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의 파멜라를 만들어준 가르딘이었다. 그녀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 인물도 가르딘이었다. 그녀가 걱정하는 것은 당연했다.
가르딘은 라이젠의 레어를 둘러보다가 밖으로 나와 보았다.
레어 안이 넓다고 해도 빨빨거리며 돌아보니 금세 다 돌아보았다.레어 밖으로 나온 가르딘은 주변을 다시 돌아보았다. 무언가 하나라도 더 주어갈 수 있으면 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드래곤이라!’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드래곤이 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만날 수 있다고는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전설 속에서나 회자되는 종족을 눈앞에서 보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드래곤이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가르딘에게 일어난 것이다.
그 전날 드래곤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할 때 약간은 망설였었다. 어떤 소원이든 들어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이 드래곤이었다. 만능에 가까운 능력을 가진 드래곤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줄 것이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드래곤이라는 신화적인 존재가 가르딘의 인생에 들어오는 것 자체를 꺼려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만약에 드래곤의 정체가 세상에 공개되고 그로 인해서 자신의 존재까지 부각된다면 상황은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일이 존재까지 부각된다면 상황은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일이 커진다. 세상사에 스며들어 조용히 살고 싶은 가르딘의 소망이 산산이 부서질 수 있었다. 드래곤이야 세상의 이목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을 공산이 크다. 어차피 발각이 된다고 해도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면 끝이었다. 인간들이 설마 드래곤의 힘을 얻기 위해서 위험을 자초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르딘은 그래서 한정적인 소원으로 약정을 정해 놓았다. 어차피 대단한 소원을 원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가족, 라이나와 브리안이 건강하게 자신의 옆에서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아주는 것이 전부였다.
생각이 길었지만 정리는 되었다.
가르딘은 다시 주변을 돌아보았다. 갑자기 레어 밖으로 나온 것도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 돌아갈 궁리를 하기 위해서였다. 레어 안은 아무래도 라이젠의 영역이기에 조금 꺼림칙했다. 뒤에서 누가 듣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 이거 설마?”
주변을 돌아보며 방향 없이 가다가 가르딘의 시선이 한곳에 머물렀다.
텃밭처럼 만들어진 장소였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형성이 된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그 자리에서 씨앗을 형성하고 그 씨앗이 다시 새싹으로 자라난 자리였다.구황작물이란 것이 있다.
조?피?기장?메밀?고구마?감자 등을 말하는 것으로 구황작물은 가뭄이나 장마에 영향을 받지 않고 걸지 않은 땅에서도 가꿀 수 있어 흉년으로 기근이 심할 때 주식으로 대용할 수 있다. 또한 생산기간이 대단히 짧아서 저장해 놓고 팔아도 수익을 올리기 좋은 작물이었다. 그 중에 하나가 지금 이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바로 고구마였다.
신마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지식대로라면 저 줄기의 모양을 보니 고구마가 아니고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대륙은 식량사정이 매우 좋지 않다. 전체적으로 어떨지 몰라도 굶어죽는 사람이 많은 것이 사실이었다.
영지에서 생산하는 것이 밀밖에 없는 상황에서 또 다른 작물을 생산해낼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이게 웬 빵이냐!’
생각지도 못한 수확이었다.
가르딘은 즉시 고구마 밭으로 가서 살펴보았다. 줄기나 잎이 비슷해도 안의 내용물이 다르면 소용없었다. 가르딘은 그 즉시 고구마를 뽑아서 모양을 보았다. 모양은 생각했던 고구마의 모양은 아니었다. 길쭉하지 않은 대신에 동그란 원형으로 감자와 비슷했다. 또한 대단히 컸다. 일반적인 고구마 크기의 두 배에서 세 배는 족히 되었다.
“식용인지 아닌지를 살펴봐야겠군.”
일반사람이 아무거나 막 먹는다면 위험하다. 독성을 지닌 식물일 경우 죽는 경우도 발생한다. 반면에 가르딘은 달랐다. 천룡신의 경지에 이르면서 독이 통하지만 않는다. 어떤 독도 금세 해독이 되어 버린다. 일전에 부지불식간에 마셨던 악마의 눈물도 해독해 버린 가르딘이었다. 식물에 독이 있다고 해도 그 정도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아삭!
고구마를 뽑아서 줄기를 뜯고, 겉을 깨끗하게 닦아내고 껍질을 벗겼다. 그리고 한입 물었다. 신선한 야채를 먹을 때 나는 아삭거리는 소리가 났다.
“독은 없고, 맛도 괜찮은데.”
독이 있는지 없는지는 먹었을 때 바로 알았다. 하지만 여기서 가르딘이 놓치는 부분이 있었다. 가르딘의 경우 독의 미세한 부분을 판정하기가 애매하다. 먹는 순간 바로 알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천룡신의 경지에 이르면서 독성에 대한 내성이 강하게 작용하여 들어오자마자 바로 해독이 되어 독의 제대로 된 성분을 파악하기가 힘들다. 가령 고구마에 미세한 독이 있을 경우 큰일 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가르딘은 괜찮아도 다른 사람이 괜찮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맛이었는데 맛도 괜찮았다. 이 지역 자체가 영양가 있는 토질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맛이 대단히 좋았다. 씹자마자 고구마에서 쏟아져 나오는 단물이 입안을 달짝지근하게 만들었다.
물론 이 고구마가 이곳 말고 다른 데서도 잘 자라나 준다는 보장은 없었다. 어차피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다. 우연히 얻은 것을 가지고 욕심 부리면 탈이 나기 마련이었다.우선은 여기 있는 고구마를 가져가야 했다. 들고 가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운 일이었지만 걱정할 것이 없었다.
가르딘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필요한 것을 수집하기 위해서 라이젠에게 공간마법이 걸린 주머니를 달라고 했었다. 공간마법이 걸린 주머니 안은 제법 많은 것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공간확장마법이 걸린 주머니 속으로 고구마를 캐서 집어넣었다. 이 시대에 없는 작물을 획득한 것이다. 대륙에 고구마 열풍이 불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크 랜드 안은 사람이 접근하지 않아서 그런지 그 안은 무궁무진한 잠재력이 감추어져 있었다. 어떻게 보면 별거 아닌 고구마지만 식량 대신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정리하자 입을 한번 댄 고구마를 한번 익혀 보았다.
가르딘은 가볍게 삼매진화를 일으켰다. 활활 타오르는 삼매진화가 아니라 은근하게 열을 가할 수 있도록 조절이 가능했다. 능수능란하게 고구마의 안과 겉을 적절하게 익혔다.
고구마의 끝과 끝을 두 손으로 잡고 쪼개 보았다.
모락! 모락!
김이 올라왔다. 그와 동시에 구수한 냄새가 진동한다. 잘 익혀서 그런지 안의 내용물이 진한 노란색을 띠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식욕을 자극했다.
“흠! 좋은데.”
처음 먹어보는 것이지만 입에 쩍쩍 달라붙는다. 간식으로 사용해도 부족하지 않은 작물이었다. 하나만 먹어도 배가 부르니 말이다.
고구마로 배를 채운 가르딘은 레어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드래곤 레어를 제집 드나들 듯이 할 수 있는 사람도 가르딘밖에 없을 것이다. 누가 감히 드래곤 레어 근처를 이처럼 자연스럽게 돌아다닐 수 있겠는가! 그랜드 마스터다운 배짱이 아닐 수 없다고 가르딘은 생각했다.
‘암! 세상천지에 나만한 진짜 사나이는 없지.
’레어 안으로 들어가자 라이젠과 안젤리카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부터 부녀간의 이별을 통보하는 대화가 이루어졌었다. 하루 종일 딸을 붙잡고 담소를 나누고 있었기에 가르딘이 무엇을 하건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다. 그에 따라서 가르딘도 편하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반면에 돌아갈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지체되었다.
원래 계획은 물길만 점검하고 난 후 바로 돌아가려고 했었다. 드래곤과 조우하는 바람에 뜻하지 않게 계획에도 없는 일정을 소화해야 했던 가르딘이었다. 이제는 걱정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빨리 영지로 돌아가야 했다.
라이젠은 안젤리카를 위해서 위험사항을 알려주었다.
“위험한 일에는 절대 가지 않는 거다.”
“알았어요! 아빠!”
가르딘은 콧방귀가 나올 뻔했다.
‘드래곤이 위험한 일이 어디 있다고!’
대마왕이 강림하지 않는 이상 위험한 일은 절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마계와 이곳 중간계는 차원의 벽으로 가로막혀 있다고 전해졌다. 절대로 무너질 수 없는 것이라고 배운 가르딘이었다. 마법사가 아니라고 해도 알고 있는 기초상식을 드래곤이 모를지 없지 않은가!"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지 이 애비를 부르렴!”
“물론이에요!”
가르딘은 또다시 같잖다는 듯이 비웃었다.
‘드래곤이 힘든 일이 뭐가 있다고!’
마법의 조종이라고 불리는 만능생물 드래곤이었다. 인간에게는 힘든 일이지만 드래곤이 하면 순식간이었다. 그런 드래곤에게 힘든 일이 발생한다면 세상이 종말한다는 것과 진배없었다.
“이보게 자네!”
가르딘이 딴 곳을 바라보며 능청을 부릴 때 라이젠이 불렀다.
“왜 그러십니까?”
“내 딸이 순진해서 자네가 말하는 것을 모두 들어줄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마음대로 부려먹어서는 안 되네.”
“여부가 있겠습니까?”
부려먹을 생각은 전혀 없다.
드래곤의 존재자체가 드러나는 것을 꺼려하는 가르딘이다. 또한 영지 내 고서클 마법사가 있다고 자랑하지도 않을 생각이었다. 카이로만 제국은 검을 숭상하는 기사의 나라라서 마법사의 존재가 그다지 많지 않다. 마법사의 효율성을 생각하면 좋지 못한 일이기는 하다. 그렇기에 고서클 마법사는 제국 내에서도 인정받는 존재들로 대접을 받는다.
‘순진! 그게 더 무서운 거라는 것 모르나!’
사람이 순진한 것은 나쁘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드래곤이 순진한 것은 문제가 다르다. 순진한 괴물이 어찌 좋을 수 있는가" 그릇된 판단이라도 하는 날에는 순진이 아니라 악마나 다름없게 된다. 순진한 것이 무서운 또 한 가지 이유는 말이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남의 말보다는 자신의 생각이 더 중요한 아집으로 변할 수 있기에 무서운 것이다. 보통 이것은 일반적으로 발생하는 모든 일 중에 하나다.
아직 가르딘을 모르는 라이젠이었다.
라이젠은 인간인 가르딘이 욕심을 부릴지 모른다는 노파심에서 말을 한 것이다. 그것은 가르딘을 한참 모르는 행동이었다. 만약 알면 뒤로 자빠질지 모른다.
“그럼 이만 가죠. 영주가 영지를 오래 비우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니라서요.
”가르딘이 가자고 하자 안젤리카가 잠시 자신의 레어에 들렸다 가자고 했다. 공간이동을 통해서 이동할 수 있다고 하니 거절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안젤리카의 레어로 가서 발키리 영지로 들어가는 것이 더 가까웠다.
“그렇게 하죠.”
-워프(공간이동).
안젤리카가 마법을 외우자 그 즉시 공간 이동이 되었다. 2천 살이 된 웜급 드래곤이었다. 라이젠에 비해 떨어지는 면이 있지만 고룡에 비해서지 인간에 비하면 말도 안 되는 수준 차이였다. 비교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었다.
탕! 탕!"
" 망치질 소리와 더불어 만드는 소리가 진동했다. 여기저기 분주하게 짤따란 종족이 움직였다.가르딘의 눈에도 그 종족이 들어왔다.
다리가 짧고, 몸통이 뚱뚱하며 얼굴이 수염으로 덮여 있다. 생각나는 종족은 하나뿐이다.
“드워프!”
소수 종족 중에 하나인 드워프였다. 미드라이언 대륙 자체가 이제는 거의 인간들의 세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소수 종족은 점차적으로 구석으로 몰려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인간들의 세상이 넓어진 폐해 중에 하나였다. 그로 인해 소수 종족인 드워프, 엘프 등이 거의 자취를 감추고 있는 실정이다.
간혹 가다 드워프와 엘프 노예를 보기는 하지만 카이로만 제국에서는 소수 종족 노예제도가 엄격히 통제되어 있는 실정이라 본 적이 없는 가르딘이었다.
카이로만 제국이 코카 제국과 다르게 소수 종족인 엘프와 드워프를 노예를 부리지 못하게 한 이유는 카이로만 대제가 제국을 세울 때 도움을 준 종족들이기 때문이다.
생소한 드워프들을 가르딘은 신비롭게 바라보았다.
가르딘의 경우 오크나 오우거, 고블린 같은 마수들은 많이 보아도 다른 종족은 거의 보지 못했다. 가르딘의 생활행동 반경이 그다지 넓지 않다는 반증이다. 기사생활을 오래 했기에 전쟁터를 많이 다녀본 것이 전부다.
여행을 많이 하거나 이곳저곳 돌아다닌 것은 절대 아니었다. 또한 결혼 후에는 집에만 붙어 있으려고 하니 생활의 폭이 넓어질 리 만무했다. 물론 일반 사람들에 비해서는 상당히 넓고 다양한 경험을 한 가르딘이다. 더군다나 신마의 지식까지 가지고 있으니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드워프를 봤다고 해서 많이 놀라지는 않았다.드래곤도 봤는데, 드워프가 눈에 찰 리 있겠는가!
“레어를 짓고 있군요.”
“전에 말하지 않았는가! 내 딸의 레어일세.”
“거의 윤곽을 모두 잡아가는 것 같네요.”
레어는 완성이 되어가고 있었다. 보기에 따라서는 완성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드워프들이 만드는 일이었고, 드래곤이 마음에 들어야 하기에 아직 미진한 부분을 다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라이젠과 안젤리카를 본 드워프의 촌장인 루인돌프가 와서 인사를 올렸다.
“오셨습니까?”
“자네가 수고가 많네.”
“아닙니다. 그런데 옆에 계시는 분은 누구신지?”
못 보던 드래곤(?)이 있었다. 금발의 미청년과 금발의 미녀 옆에 멀뚱히 서 있는 중년의 가르딘을 보고 한 소리였다. 드래곤과 같이 있으니 같은 드래곤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설마 인간이라는 생각은 전혀 해보지 않았다.
“가르딘이라고 합니다.”
“루인돌프입니다. 위대한 종족을 뵙게 되어서…….”“아! 저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그런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헉!”
루인돌프는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인간이 드래곤과 같이 있다니 대륙이 반으로 갈라지는 것보다 더 놀랐다."
다니 대륙이 반으로 갈라지는 것보다 더 놀랐다.루인돌프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작금의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했다. 인간인데도 불구하고 드래곤 앞에서 태연하게 말을 한다. 상식적인 드워프 종족의 촌장인 루인돌프로서는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번에 내 딸의 유희를 도와줄 사람이네.”
“그렇습니까.”
안젤리카가 웜급에 들었으니 유희를 시켜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을 잡아들여 조교를 한 후 길잡이로 사용한 것으로 판단 내렸다. 이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생각이라고 루인돌프는 생각했다.조교가 너무 완벽해서 그런지 약간은 맛이 가 버린 것처럼 보인다.
그 낌새를 바로 알아챈 가르딘이었다. 눈치라면 어디 가서 맞아죽지 않을 정도로 빠른 가르딘이었다. 물론 모른다고 해도 맞아죽지 않을 실력도 가졌다.‘이 양반이 날 도대체 뭘로 보고!’
“전 그런 사람 아닙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날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았습니까! 마치 애완동물처럼요!”
“그… 무슨 소리요, 내가 언제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오.”
루인돌프는 순간 깜짝 놀랐다.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을 들키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가르딘은 굳이 지적하지 않아도 되지만 지적했다. 이런 것은 지적할 수 있을 때 해주어야 무시 받지 않는다.
황제나 귀족들 앞에서는 말 한마디에도 신중한 가르딘이지만 여기서는 달랐다. 그들은 귀찮아질 것 같으니까 말을 조심한 것뿐이었다. 드워프들이야 권모술수를 쓸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한 종족이 아니기에 별 탈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런데 말은 왜 떨고 있습니까? 정곡을 찌르니까 그런 것 아닙니까?”
“험험! 정말 아…니요!”
“아니라고요! 내 눈을 보고 다시 한 번 말을 해보십시오!”
“아니라는데 왜 그러시오!”“여기 라이젠 님과 안젤리카 양을 보고서 한번 다시 말해 보시지요!”
가만히 있는 라이젠과 안젤리카까지 거론하면서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가르딘이었다. 듣기에 따라서 라이젠과 안젤리카는 상황파악이 쉽지 않았다. 왜 갑자기 저러는지 이해를 못하는 눈치였다.선뜻 대답을 못하는 루인돌프였다.
라이젠은 일족을 구해주었으며, 이번에는 일족의 미래까지 책임져 주었다. 그런 위대한 존재 앞에서 거짓을 말할 수 없게 된 루인돌프였다. 식은땀이 이마에서 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도대체 이 앞에 있는 인간이 과연 사람이 맞는지 의심이 드는 순간이었다.
“왜 대답을 못하십니까?”
“미… 안하게 되었네, 내가 오해를 하고 말았소!”
“말로만.”
“나중에 도울 일이 있으면 도와주겠소. 그러니 그만 하시오.”
“뭐, 정 그렇다면 마지못한 심정으로 도움을 받아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행위는 대단히 위험하며, 불쾌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밝히는 바입니다.”
‘하!’
기가 막혔다.
라이젠과 안젤리카는 왜 그제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는지 이해가 되었다. 드워프에게서 뭔가 얻을 것이 있었기에 한 행동이었다.
말도 안 되는 것을 끄집어내어 원하는 결과로 만들어내다니 수단이 거의 악마적이기까지 했다.
‘역시 무서운 놈이다.’
‘대단해!’
라이젠은 가르딘의 말발(화술)이 보통을 넘어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을 인정했다. 또한 안젤리카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저 말발을 배워 놓는 것만으로도 유희의 절반은 달성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크크! 잘됐다. 어차피 진법설치를 비롯한 기관, 장치 등 만들어야 할 것들이 많았는데.’
진법에 대한 지식이야 파멜라가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기관진법 공사를 하기 위해서는 정교한 기술자가 필요하다. 인간 기술자가 있기는 하겠지만 상당히 고급인력에 속한다. 텅 빈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는 것이 무척이나 아까운 가르딘이다. 새는 돈을 막기 위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또한 드워프들이라면 정보가 새어 나가지 않는다는 중요한 장점이 있었다. 진법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알지 못하는 것이다. 상대가 알았을 때와 알지 못했을 때의 차이점은 1과 100의 차이로 극명하다.
영지 주변 곳곳에 기관진식을 설치해 놓으면 성벽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적의 공격에 쉽게 대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루인돌프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만 울컥하고 있었다.
생각이 현실이 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생각을 해보니 자신이 전혀 미안해할 것이 아니었다. 괜히 상대의 화술에 넘어가 지레 부탁을 들어주기로 한 것이 아닌가!
“지금 이게 말이 된다고 보시오!”
“저 나이가 어떻게 되십니까?”
따지려는 루인돌프를 향해 뜬금없이 나이를 묻는 가르딘이었다. 원래 나이를 물어보면 자신도 모르게 조건반사적으로 대답하게 되어 있었다. 이것은 본능이라서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5백… 살이 넘었소!”
“그럼 말 편하게 하세요. 저보다 한참이나 많군요.”
“그… 러겠네.”
가르딘이 금세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와! 대단하군요! 대규모의 공사를 이처럼 빠르고 정교하게 하다니 과연 드워프군요!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일 같습니다.”
“그…렇지.
”팅!"
루인돌프가 들고 있는 쇠를 가르딘이 손가락으로 두드려 보았다.
“오! 청철을 이처럼 순도 높게 만들다니 화염의 강도를 제대로 조절했군요!”
“그걸 알아보다니! 자네의 눈썰미가 대단하군!”
가르딘의 화술에 점점 말리고 있었다.
숲 속에서 평생 물건만 만들어낸 드워프가 가르딘의 상대가 될 리 없었다. 순식간에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가르딘이었다.
감언이설의 달인.간신 가르딘 선생이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아무리 들어도 너무 좋은 말만 하고 있었다. 루인돌프가 잠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물었다. 그러자 가르딘이 정색한 표정으로 대답을 해주었다.
“저는 38년 동안 거짓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그… 렇군!”
“제가 듣기로는 드워프는 한 번 말한 것을 반드시 지키는 솔직하며, 정의롭고, 대의를 생각하는 종족이라고 하던데 아닌가요!”
“물… 론이네. 여태껏 약속을 지키지 않은 적이 없네!”
당할 수가 없다.
가르딘의 놀라운 말발이 루인돌프를 완벽하게 장악해 버렸다.
가르딘의 뻔뻔함에 다시 한 번 놀란 라이젠이었다. 라이젠과 안젤리카는 왠지 모르게 가르딘이 점점 무서워졌다. 라이젠은 속으로 곰곰이 따져 보았다.
‘생각해 보니 얻을 것은 다 얻어가는구나!’
큰 소원 하나를 얻는 대신에 얻을 수 있는 현실 가능한 것들을 모두 얻어낸 가르딘이었다. 드래곤의 호의와 더불어서 소원 3가지, 그리고 안젤리카라는 마법사, 마지막으로 드워프의 협조까지 얻어냈다.
가르딘은 도와 달라고 하면서도 염치없이 굴지는 않았다. 단순한 말이지만 그 말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종족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들어줄 용의가 있었다.
“만약에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하십시오. 제가 도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도와드리겠습니다.”
“알겠네.”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드워프들도 살아 있는 생명체다. 식량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일단은 전에 살던 데에서 가져오기는 했지만 다시 일구려면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식량이 필요하다면 문제없습니다. 제가 밀 2,500포대 정도 보내 드리겠습니다.”
드워프의 진법 설치는 대규모 공사다. 그 일을 하는데 이 정도 호의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2,500포대 정도면 드워프들이 1년 가량 생활하는 데 무리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루인돌프는 정말 생각지도 못한 행운으로 여겼다. 인간들이 위험한 존재이기는 하지만 여기는 다크 랜드였다. 다크 랜드의 중심에다가 드래곤이 존재했다. 인간이 함부로 행동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드래곤과 같이 있는 인간이었다. 보통의 인간이 아니기에 믿을 수 있었다."
드래곤은 아무나 사귀지 않는다. 지금까지 말장난에 불과한 것을 암묵적으로 허락한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루인돌프도 연륜이 있었다. 생각이 없다면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이왕 이렇게 된 거 하나 더 선물을 드리지요.”
가르딘이 공간확장마법이 걸린 주머니 속으로 손을 넣어 고구마 4개를 꺼냈다.
꺼낸 고구마의 흙은 잘 털었다. 흙을 떼어낸 후 고구마를 삼매진화를 이용해서 익혔다.
라이젠과 안젤리카가 신기하게 보았다. 마법이 아닌 기운으로 불의 기운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었다. 가르딘이 대단한 기사라는 것은 겪어봐서 알겠지만 저런 기술까지 사용할 줄은 몰랐다.
“도대체 어떻게 한 건가?”
“이것 말씀입니까? 이건 오러의 기운을 불의 기운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오러 심법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지요. 사용하기에 따라서 오러의 쓰임새도 다양하게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라이젠조차 모르는 내용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가르딘이었다. 가르딘에게는 별다른 것이 아니지만 라이젠과 안젤리카에게는 달랐다. 그들의 눈에 탐구에 대한 생명력이 짙게 빛났다. 호기심, 탐구, 연구에 대한 드래곤의 탐욕은 대단하다 볼 수 있었다.
알지 못하는 것을 파악하여 진리에 근접하려고 한다. 이것은 드래곤의 본능이라고 할 수 있었다. 반면에 능력이 워낙 대단하게 태어나다 보니 그다지 궁금한 것이 없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놀랍군. 인간의 능력이 이처럼 대단하다니!”
“뭐, 원체 태어날 때부터 대단한 분과는 다르게 인간은 살려고 발버둥치니까요. 그러기에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지요.”
노력하기에 발전하는 것이다.
생명이 오가는 일을 겪으면서 인간은 발전을 한다. 전쟁이 왜 발전을 초래하는가! 사람이 많이 죽기는 하지만 죽지 않기 위해서 더 많은 노력을 하기 때문이다. 잔인하지만 약육강식이라는 말이 괜히 생겨난 것이 아니다. 강자가 되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한다. 그 무슨 짓이 발전을 초래한다. 세상은 잔인하게 물고 물리는 노력 속에서 점점 강해진다.
어려운 말은 구수하게 익어 나오는 고구마의 향기로 인해 중단되었다. 그저 작물의 일종이지만 작물 중에서도 가장 맛있는 것이 바로 고구마다. 누구나 먹을 수 있으며, 처음 먹는 데도 거부감이 전혀 없는 작물이다.
모락! 모락!
김이 아지랑이처럼 흘러나오는 고구마를 라이젠, 안젤리카, 루인돌프에게 주었다. 가르딘은 먼저 시범을 보여 주었다.
“고구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렇게 먹는 게 가장 먹음직스럽습니다.”
잘 익은 고구마를 반으로 가른 다음 껍질을 벗겨 한입에 털어 넣는 가르딘이었다. 그러자 나머지 라이젠, 안젤리카, 루인돌프도 따라서 맛을 보았다."
오물! 오물!
뜨거움에도 불구하고 입안에서 퍼지는 구수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었다. 아무런 양념도 하지 않은 단순한 채소에 불과하지만 그 맛이 정말 대단했다.
‘호오!’
“이거 제법 맛있구먼!”
“그러게요, 입안에서 퍼지는 향긋하고 구수한 맛이 정말 좋아요.”
“그렇죠.”
라이젠과 안젤리카는 고구마가 정말 맛있다고 했다. 반면에 루인돌프는 먹는 데 치중하고 있었다. 입안으로 계속 고구마를 집어넣었다.
한 개를 다 먹은 루인돌프는 놀랍다는 듯이 가르딘을 보았다. 루인돌프는 고구마의 맛보다 한 개를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배 안을 가득 채우는 포만감에 놀랐다.
“도대체 이게 뭔가?”
맛과 더불어 식량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기에 물어보았다.
가르딘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식량이 필요한 드워프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일단은 가르딘이 식량을 준다고 했지만 지속적으로 필요한 식량을 생산해낼 수만 있다면 가장 중요한 걱정거리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르딘이 선심 쓰는 척 고구마를 꺼낸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드워프와는 공조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앞으로 자주 필요하게 될지 모르니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어 놓기로 결정한 가르딘이다.
“고구마라는 작물입니다.”
“고구마라! 이걸 이곳에 심을 수도 있는 것인가?”
“당연하죠, 이곳에서 나는 것을 제가 찾은 것입니다.”
‘오오!’
점점 구미가 당기고 있었다. 가르딘은 루인돌프의 생각을 꿰뚫고 있었다. 상대의 생각을 미리 알고 대처하는 자와 조급해하는 자. 과연 누가 유리할까! 이것은 생각해 보지 않아도 뻔히 보이는 결과였다.“
그… 걸 우리에게도 줄 수 있는가?”
“음, 루인돌프님께서도 알다시피 고구마는 식량으로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척박한 기후조건에서도 쉽게 생산해낼 수 있습니다.”
“대단하군. 정말 최적의 식량이라고 할 수 있겠어!”
“물론입니다. 그러나 저는 아무런, 전혀, 절대 조건을 걸지 않고 무상으로 드리겠습니다. 저는 순수한 호의로 드리는 것입니다. 절대, 전혀 아무런 부담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절대 부담 갖지 마십시오. 어! 점점 부담 갖으시는 것 같은데, 부담 갖지 말라니까요!”
“부… 담 안 갖네! 자네… 의 성의에 정말 감사하네!”
라이젠과 안젤리카는 기가 막혔다.
‘저게 어떻게 부담 갖지 말라는 태도냐?’
‘그러게요. 갖지 말라고 해도 부담 백배일 것 같네요!’
가르딘과 루인돌프의 대화로 인해 라이젠과 안젤리카는 소외가 되었다. 그러나 굳이 대화에 끼지 않았다. 저 둘의 대화 속으로 들어갔다가는 가르딘이 구사하는 악마의 화술에 휘말릴 수 있었다. 괜히 안 주어도 될 것을 빼앗길 가능성도 있었다.
가르딘은 호의로써 준다고 하지만 루인돌프로서는 그 호의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드워프는 등가교환의 법칙을 가장 철저하게 지키는 종족 중에 하나였다. 하나를 받으면 반드시 하나를 주는 종족이었다. 가르딘의 호의에 대한 대가를 주어야 했다. 가르딘은 나중에 부탁하면 들어주는 것을 3가지로 늘렸다.
원하던 결과를 얻은 가르딘은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루인돌프는 레어 공사를 진행해야 하기에 다시 공사에 집중했다. 안젤리카도 자신의 레어가 계획대로 진행되는지 살펴보기 위해 들어가 보았다.
남겨진 라이젠과 가르딘은 안젤리카를 기다렸다.
“자네 너무 뻔뻔한 것 아닌가?”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순수한 호의로 대했습니다. 싫다고 싫다고 하는데도 계속 주겠다고 하는 루인돌프님의 성의를 무시하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말이나 못하면.”
가르딘이 뻔뻔한 태도를 취한 것은 모두를 위해서였다.
만약 철저한 거래관계였다면 서로에게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또한 같은 종족도 아닌 타종족이었다. 서로에 믿음을 주기 위해서 선택한 방법이기도 했다. 인간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드워프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서로 교류를 많이 하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다. 보지도 않고 어떻게 서로를 믿을 수 있는가!
딸을 외지로 보내는 심정.
너무 안타깝다. 다시 보려면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기회를 잡아서 딸을 보기 위해 어떤 수를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라이젠이었다.
레어 공사에 대한 진행을 확인한 후 라이젠은 안젤리카와 헤어졌다. 유희는 혼자만의 수행이었다. 그 수행에 아버지가 따라가는 것은 유희라고 할 수 없다.
“어떻게 해야 자연스럽게 발키리 영지에 간다?”
딸을 핑계 삼아 가는 것이 아닌 가르딘을 핑계 삼아 가는 것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서로 다른 유희를 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형식적이지만 중요한 일이었다. 물론 가장 중요한 이유는 딸을 보기 위한 구실에 불과하다.
고작 1시간 정도 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남겨진 빈 공간이 너무나 컸다. 수면기라면 자느라 모르겠지만 깨어 있을 때 딸과 떨어진 적이 거의 없었던 라이젠이었다.
다크 랜드 북부로 한참을 가다 보면 야생동물 평야가 나온다. 몬스터의 대지라고 해서 몬스터와 마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초식동물들이 돌아다니기도 한다.
하지만 다크 랜드에 사는 초식동물은 보통 수준이 아니다. 무섭도록 예민한 감각과 탄탄한 근육을 가지고 있어 몬스터라고 해서 쉽사리 잡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러기에 다크 랜드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초식 동물 중에서도 가장 빠른 녀석들이 다크 랜드 북부 평야에 있다. 그 녀석들의 이름은 다크호스였다. 말이지만 온순하지 않다. 야성에 너무 젖어 있어 광폭하고 무섭다. 일반적으로 다스리기 힘든 종류의 말이다.
‘말을 가지고 가면 되겠어.’라이젠은 다크호스를 잡아서 발키리 영지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라이젠도 유희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딸과 같은 직업으로 발키리 영지에 가는 것보다는 말을 관리하는 인물로 가는 것이 가장 적당해 보였다.
다스리기 힘든 말을 관리하는 특수한 능력을 가진 말 관리 조련사로서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