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6화 〉 [405화]예상치 못한
* * *
"삼촌이라고?"
도미닉 경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는 카게야샤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습니다. "
카게야샤는 그렇게 말하며 도미닉 경 앞에 한쪽 무릎을 굽히며 절했다.
"다시 인사드립니다, 도미닉 삼촌! 돈 카게야샤라고 합니다!"
"음?"
도미닉 경은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다시 한번 카게야샤에게 되물었다.
"돈 카스텔로의 아들이오?"
"돈 카르텔로 쪽이죠."
"?"
도미닉 경은 연속으로 일어난 예측할 수 없는 결과에 당황했다.
"그렇게 보실 것 없습니다. 제가 조금 이국의 문화에 푹 빠져 있는지라..."
카게야샤는 그렇게 말하며 얼굴을 가리고 있던 야차 가면을 벗었다.
그러자 그곳에는, 순박하게 생긴 금발 벽안의 사내가 있었다.
덩치에 걸맞게 꽤 호쾌한 생김새였으나, 눈매가 축 처져서 그런지 상당히 착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도미닉 경은 그 모습에서 언뜻 돈 카르텔로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내가 당신에게 삼촌이라고 불릴 만큼 돈 카르텔로와 친분이 없는 것 같은데."
도미닉 경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아버지께서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도미닉 경의 의문을 해소해주려는 듯, 돈 카게야샤가 말을 꺼냈다.
"가차월드 사건 때, 도미닉 경이 없었더라면 자기는 그저 그런 사람이 된 채 자기 가치만 깎아 먹다가 사라졌을 운명이라고요. 지금처럼 유원지의 주인으로서 가치를 유지할 수 있게 된 건 전부 도미닉 경의 덕분이라고 하셨습니다."
귀에 피가 날 정도로 말이죠. 라고 카게야샤가 중얼거렸다.
"그래서 아버지께선 제가 태어난 날, 도미닉 경에게 가서 무릎을 꿇고 대부가 되어달라고 하셨다고 했습니다. 도미닉 경은 그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이셨고, 이후 제게는 삼촌이 되셨죠."
"아."
도미닉 경은 카게야샤의 말에 납득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의 친구들을 삼촌이라고 부르라고 하듯이, 카게야샤의 경우도 그런 모양이었다.
페럴란트에서 동료 기사의 아내가 출산을 했을 때, 동료들이 우르르 몰려가 축하해 본 적이 있었기에 이는 도미닉 경도 아는 사실이었다.
"과연. 그런 의미의 삼촌이었구려."
도미닉 경은 계속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다른 곳에서 의문이 솟아났다.
"잠깐, 그럼 어째서 내게 대련을 요청한 거요?"
"아, 그건..."
카게야샤는 말하기 곤란하다는 듯 어색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었다.
그러나 차마 무사로서 거짓말은 하지 못하겠다는 듯, 한숨을 푸욱 내쉬고는 이렇게 말했다.
"객기라고 할까요. 사실 도미닉 삼촌에게 단 한 번이라도 이겨보고 싶은 마음에 그만..."
"한 번이라도 이기고 싶었다니?"
도미닉 경은 카게야샤의 말에 잠시 고개를 갸웃했으나, 이내 그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미래의 카게야샤는 미래의 도미닉 경에게 자주 도전했고, 도전할 때마다 졌음이 틀림없었다.
"그냥 진 것도 아닙니다. 처절하게 졌죠."
카게야샤가 도미닉 경의 얼굴을 보며 생각을 읽은 듯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 과거의 삼촌이라면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도전이라도 해 본 겁니다. 게다가 같은 성급이기도 하구요."
"같은 성급이라고?"
도미닉 경은 너무 놀란 나머지 기사의 예법도 잊고 큰소리를 치고 말았다.
그 말인 즉, 도미닉 경의 앞에 있는 이 청년, 돈 카게야샤가 4성이라는 소리가 아니던가.
"삼촌께서 4성이 되는 데까지 2년밖에 걸리지 않으셨잖습니까. 그런 삼촌 아래서 10년을 배웠으니, 조금 늦은 감이 없잖아 있습니다."
카게야샤는 도미닉 경의 말에 그렇게 말했다.
20년의 세월이 그다지 짧은 편은 아니긴 했지만, 가차랜드에서 10년은 제법 짧은 시간이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3성을 도전하거나 혹은 3성을 달성했을 시간.
그 짧은 기간 동안 4성이라는 것은, 눈앞에 있는 이가 보통 재능이 넘치는 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물론, 도미닉 경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성급 상승을 이뤄냈는지를 알려주는 것이기도 했고.
"평소에 같은 급이면 제가 이길 거라고 그렇게 호언장담을 했는데도 그저 뭔가 알고 있으신 듯 웃으시더니, 이런 상황을 기억하고 계셔서 그랬던 거군요."
카게야샤는 미래의 도미닉 경이 카게야샤의 허세에 매일 헛웃음을 터뜨리던 이유를 알아내었다.
같은 급이더라도, 도미닉 경과 카게야샤의 사이에는 커다란 실력의 틈이 있었다.
그리고 이미 과거에 그 사실을 겪어 본 미래의 도미닉 경은 그런 카게야샤의 허세가 황당할 뿐이었다.
"아무튼, 약속은 약속이니 이제 이걸 드리겠습니다."
카게야샤는 도미닉 경에게 오리너구리 인형 하나를 건넸다.
망태기에 눌려 조금 찌그러지긴 했지만, 그리 신경 쓸 정도는 아니었다.
"여기 이걸 받으십시오."
"아, 고맙소."
도미닉 경은 곧바로 오리너구리 인형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카게야샤는 볼일이 다 끝났다는 듯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이에 도미닉 경이 다급하게 카게야샤를 불렀다.
"이보시오. 이제 어딜 가려고 하는 거요?"
"사실 여기에 온 건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카게야샤는 다시 야차 가면을 얼굴에 쓰며 그렇게 말했다.
"어머니께 드릴 선물도 완성시켜야 하고, 삼촌께서... 그러니까, 미래의 삼촌께서 부탁하신 일도 완수해야만 합니다."
"미래의 내가?"
"네."
도미닉 경은 미래의 자신이 도대체 무슨 일을 시켰는지에 대해 강렬한 호기심이 생겼다.
"혹시 내가 뭘 부탁했는지 알 수 있겠소?"
"아쉽지만 불가능합니다, 삼촌. 삼촌에게도 비밀로 하라고 했으니까요."
그땐 무슨 말장난인가 싶었지만, 이제 보니 그 말의 의미를 알겠군요. 라고 카게야샤가 작게 중얼거렸다.
"아무튼, 도미니아 경에게 잘해주십시오."
"?"
"그녀는 이 시기를 정말 행복하다고 표현했거든요."
카게야샤는 그렇게 말하며 문을 나섰다.
도미닉 경이 문밖으로 나가 카게야샤를 마중했지만, 그는 이미 복도에서도 완전히 사라진 이후였다.
"도미니아 경이 가장 행복해하던 시간이라."
도미닉 경이 고개를 돌려 어린이용 의자에 앉은 도미니아 경을 바라보았다.
도미니아 경은 오랜 싸움에 지쳐 버렸는지 침을 흘리면서 꾸벅꾸벅 자고 있었다.
도미닉 경은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면서 도미니아 경을 자리에서 들어 올려 품속에 끌어안았다.
그리고 방금 받은 오리너구리 인형을 도미니아 경의 품속에 포옥 안기고는 몸을 돌려 방금 전까지 심판을 보던 이를 바라보았다.
"고생하셨소."
"별말씀을. 애초에 저희가 해야 하는 일이었는데요, 뭘."
심판은 환한 미소와 함께 모자를 살짝 들어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이 경기는 도미닉 경의 완벽한 승리로 기록해드리죠."
그렇게 말한 심판은 수첩을 꺼내더니 그곳에 '도미닉vs카게야샤 1:0 PERFEKT'라고 적었다.
"제가 좀 발음이 쎈 곳에서 살았던지라서."
'
심판은 괜히 perfect를 perfekt로 적은 것에 대해 변명했다.
"아무튼, 완벽한 승리를 축하드립니다, 도미닉 경. 이 콜로세움이 생긴 이래로 이런 적은 그다지 많지 않죠. 베타 테스트 이후로는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업적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 말한 심판은 도미닉 경에게 악수를 청했다.
"이런 기록을 세운 분과 악수를 할 기회를 청하고 싶군요."
"좋소."
도미닉 경은 도미니아 경을 안고 있지 않은 쪽 손을 내밀어 심판과 악수를 나눴다.
"영광스러운 날이군요. 이런 경기의 심판을 봤다는 것 자체가."
심판은 도미닉 경과 악수를 한 이후 더욱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이제 나도 가 봐야겠소."
도미닉 경은 품속에서 뒤척이는 도미니아 경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살펴 가시길."
심판은 그런 도미닉 경에게 다시 꾸벅 인사를 하며 모자를 살짝 들어 올렸다.
그렇게 도미닉 경이 방을 나가려고 할 때쯤.
"아 참."
심판이 갑자기 무언가 생각이 났다는 듯, 도미닉 경에게 외쳤다.
"이번 이벤트말입니다만, 어째서인지 불편함을 호소하는 지휘관들이 많다고 하더군요."
"?"
"아니, 그냥 알아두시라는 소리입니다."
심판의 말에 도미닉 경은 고개를 갸웃했으나, 이내 그저 별것 아닌 잡담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몸을 돌렸다.
도미니아 경이 이렇게 자고 있었으니, 집으로 가는 것은 무리더라도 근처의 카페라도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
시스템 인더스트리.
가차랜드의 유지와 보수를 담당하는 이 거대한 회사에서는 현재 미래 세계 이벤트에 대한 것들로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 가장 바쁘게 돌아다니는 코더들이 있었으니...
"이번 이벤트, 최적화 왜 그래?"
"아, 전무님. 그게 어쩔 수가 없습니다. 미래의 데이터를 불러오기 위해선 그 사이에 있는데이터를 일단 모두 다운받아야 하고, 또"
"그만, 그만! 지금 변명하라고 부른 줄 알아! 메모리는 튀지, 발열은 심하지, 지휘관들이 아우성을 치니까 그 대책을 세우라고 부른 거 아냐!"
전무라고 불린 이가 겉옷을 벗어 코더에게 집어던졌다.
코더도 꽤 낮은 직급은 아닌 것처럼 보였지만, 전무의 기세에 눌려 안절부절못하다가 겉옷에 그대로 맞고 말았다.
"이거, 어떻게 해서든 최적화 문제 해결해."
"어, 언제까지 말입니까?"
"...내일!"
전무는 오늘 당장이라고 하려고 했으나, 그래도 그건 코더들에게 너무 가혹한 것 같아 하루의 시간을 주기로 했다.
물론, 코더들의 처지에서는 몇 시간이나 하루나 그다지 차이가 없었다.
"하루 가지고는 메모리 문제도 잡지 못할 겁니다. 그러니"
"하루. 단 하루야. 만일 그러지 못하면, 나도 민간 신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어!"
"민간 신앙이라니, 무슨..."
"너희를 제물로 바치면, 최적화의 신께서 감격해 이 사건을 해결해주시겠지. 안 그래?"
"...최대한 빠르게 해결해 보겠습니다."
전무라고 불린 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코더들을 갈아넣겠다라고 선언했고, 코더들은 그런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라며 전무가 제안한 하루라는 시간을 수락했다.
과연, 최적화 문제로 인한 발열과 메모리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 것인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