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7화 〉 [406화]예상치 못한
* * *
"으응... 하뿌...?"
"일어났나."
도미닉 경은 도미니아 경을 등에 들쳐 멘 채로 거리를 걷고 있었다.
도미니아 경은 꽤 깊이 잠들었는지 한참 동안 걸었음에도 미약하게 코를 골며 쌔액쌔액 잘 자고 있었는데, 이후 무슨 이유에서인지 잠에서 깨어났다.
"오리...?"
도미니아 경은 비몽사몽 한가운데 품에 오리너구리 인형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잠시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듯 눈을 끔벅이며 오리너구리 인형을 바라보던 도미니아 경은 이내 화들짝 놀라며 오리너구리 인형을 바라보았다.
"오리구이!"
아마 오리 너구리라고 말하고 싶었겠지만, 도미니아 경은 발음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기에 그렇게 들렸다.
도미니아 경은 너무나도 놀라 동그랗게 떠진 눈으로 오리 너구리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인형을 품에 꼭 껴안으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꽤 마음에 드는 모양이구나."
도미닉 경은 등 뒤에서 들려오는 도미니아 경의 배시시 웃는 소리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
"빨리 여길 벗어나야 해! 제대로 된 시각은 모르겠지만, 일단 해가 중천에 떠 있던 건 기억해!"
"아니, 나는 왜"
"아, 빨리!"
미래의 도미니아 경은 미네르바의 손목을 잡고 급하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타임 패러독스가 일어나면 우리 존재가 위협 당할 거야! 안 그래도 지금 쫓기고 있는데 여기서 더 문제를 일으키면..."
"뭐?"
"...아니야. 아무튼 빨리 빠져나가자. 문제가 생기기 전에."
미래의 도미니아 경은 기억에 의지해 도미닉 경이 올 만한 길을 피해가기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잠을 자지 않는 거였는데."
도미니아 경은 그렇게 한탄하며 계속해서 골목길을 꺾어 들어갔다.
...
"하뿌! 꾸끼!"
"음?"
도미닉 경은 도미니아 경을 업은 채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도미니아 경은 완전히 잠에서 깬 듯했지만, 걷는 것보다는 도미닉 경의 등 뒤가 더 재밌는지 도통 내려올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걸음을 옮겼을까?
도미니아 경이 무언가를 보고 소리쳤다.
도미닉 경이 도미니아 경의 외침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곳에는 작은 카페가 하나 있었다.
그 카페의 입구엔 '대인기! 쿠키 앤 크림 쉐이크'라고 적힌 포스터가 한 장 붙어 있었는데, 어설프게 만들어진 모양새나 양면 테이프를 손에 들고 뿌듯해하는 남자의 모습을 봤을 때, 방금 전에 만들어 붙인 모양이었다.
도미닉 경은 이런 어설픈 포스터에 누가 구매 욕구가 생기겠나 싶었지만, 도미니아 경에게는 꽤 취향 저격이었던 모양이다.
"꾸끼!"
"먹고 싶으냐?"
도미닉 경이 도미니아 경에게 물어보자, 도미니아 경은 고개를 맹렬하게 위아래로 흔들었다.
도미닉 경은 등 뒤에서 느껴지는 움직임을 통해 도미니아 경이 정말 저 걸 먹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았다.
"뭐, 잠도 다 깼겠다, 인형도 구했겠다..."
도미닉 경은 다시 한번 카페의 입구에 붙은 포스터를 바라보았다.
지금 보니, 꽤 잘 그린 것 같기도 했다.
"조금 쉬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구나."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카페로 걸어갔다.
...
"저기, 도미니아."
"왜!"
"그,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뭔데?"
"그, 내가 착각한 게 아니라면 말이야."
미네르바는 도미니아 경에게 자기가 느낀 점을 말했다.
"우리, 계속해서 한 곳을 뱅글뱅글 돌고 있지 않아?"
"뭐?"
도미니아 경은 그 말에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자, 미네르바의 말이 맞다는 걸 알아차렸다.
저 앞에 보이는 것은 방금 전 도미니아 경과 미네르바가 나왔던 카페였다.
그 말인 즉, 도미니아 경은 골목을 돌고 돌아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는 뜻이었다.
"맙소사. 왜?"
도미니아 경은 이 상황에 패닉에 빠져 버렸다.
얼마나 심하게 패닉에 빠졌는지, 카페에 한 남성과 어린아이가 들어갔다는 사실조차 알아채지 못할 정도였다.
"아무래도 무언가 우리에게 간섭하는 것 같아."
미네르바가 짧은 소견을 내뱉었다.
"경찰 대학에서 배웠어. 이런 식으로 같은 곳을 뱅뱅 돌게 만들어서 범죄자를 잡는 수법이 있다고. 아마 그런 것 같은데..."
미네르바의 말에 도미니아 경은 무언가 찔리는 것이 있는지 몸을 움찔했다.
그 모습을 본 미네르바는 도미니아 경이 무슨 일에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말았다.
"...말해 줘. 도대체 무슨 상황인 거야?"
"...그게"
도미니아 경은 미네르바의 말에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친구에게까지 숨길 수는 없다고 판단하고는 지금 자기 처지에 대해서 말하려고 했다.
그러나 갑자기 나타난 또 다른 이로 인해 도미니아 경의 말은 시작하기도 전에 끊기고 말았다.
"여기 있었네, 도미니아."
"!"
도미니아 경은 골목길에서 들린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갈색 단발머리의 여성이 있었는데, 푸른 경찰 제복을 입고 손에는 진압봉을 들고 있었으며, 등에는 진압 방패와 산탄총이 메어져 있었다.
산탄총에는 SD화 된 도미닉 경 열쇠고리가 달려 있었는데, 하나만 달린 것이 아니라 세 개가 달려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골목에서 나와 도미니아 경과 조금 떨어진 곳에 멈춰 섰다.
그러자 골목마다 숨어 있던 경찰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도미니아 경과 미네르바를 감쌌다.
도미니아 경은 저 여경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는 듯, 경계심 어린 표정으로 방패를 들어 올렸다.
"메리."
"그래, 도미니아. 반가워. 하루 만인가, 이틀 만인가?"
메리라는 이름의 여경은 도미니아와 꽤 친분이 깊은 사이인지 도미니아를 그냥 이름으로 불렀다.
"네가 여긴 어떻게...?"
도미니아 경은 메리가 여기에 온 이유를 알고 있었지만, 그런데도 모르는 척 괜히 메리에게 여긴 왜 왔는지에 대해 물었다.
"당연한 일이잖아."
물론, 이미 확신을 가지고 여길 찾아온 메리가 그런 어수룩한 속임수에 속을 리는 없었다.
"범죄자를 잡으러 왔지."
"범죄자?"
메리는 허리춤에 찬 수갑을 절그럭거리며 도미니아 경에게 손을 뻗었다.
메리의 말에 미네르바는 놀란 눈으로 도미니아 경을 쳐다보았다.
뭔가 불안한 듯 행동하더니, 설마 범죄를 저질렀을 줄이야.
"...메리."
"그래, 도미니아. 내 이름은 메리가 맞아. 그러니까 괜히 시간끈답시고 내 이름을 한 번 더 말하는 짓은 안 해도 돼."
도미니아 경은 메리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메리는 일단 한 번 듣기나 해 보겠다는 듯 여유로운 표정으로 진압봉으로 손바닥을 탁탁 두드렸다.
이미 사방은 봉쇄되어 있었고, 도미니아 경에게는 이동기라고 할 만한 기술이 없는 상황.
도미니아 경은 이 상황을 어떻게든 돌파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으나, 딱히 좋은 수가 나오질 않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미네르바가 도미니아 경에게 물었다.
"범죄는 뭐고, 저들은 누구야?"
"별 건 아냐. 오해가 좀 있어서 그래. 그리고 저들은 시간 경찰들이야."
"시간 경찰이면... 그 초법적 기관?"
"그래."
"그런 곳에서 왜 널 잡으려고 온다는 말이야? 혹시"
"시간을 이용한 범죄를 저질렀냐고 물으면, 절대 아니라고 대답하겠어."
"오."
미네르바는 도미니아 경이 짜증을 내자 정말 도미니아 경이 무고하다고 생각했다.
도미니아 경은 무언가 숨길 때 오히려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렇게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는 경우는, 오히려 진짜 억울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 잡으러 온 것도 사실이지."
도미니아 경은 그렇게 속닥거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대로 잡힐 수는 없어. 이대로 잡히면 내 죄는 진짜가 되어 버릴 거야."
"...이런. 어쩌지?"
미네르바는 도미니아 경의 말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일단 도망치고 봐야지."
도미니아 경이 당연하다는 듯 속삭였다.
"다행인 점은, 넌 아직 수배가 되지 않은 민간인 신분이라는 점이야. 그러니까 내가 도망치는 동안, 여길 빠져나가면 저들이 너에겐 관심을 주지 않을 거야."
"그럴 순 없어."
도미니아 경은 미네르바를 걱정해 도망치라고 했지만, 미네르바는 그럴 수 없었다.
절친인 도미니아 경을 두고 도망칠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거 외엔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잠깐. 내게 좋은 생각이 있어."
도미니아 경은 고집을 부리는 미네르바에게 짜증을 내었지만, 미네르바는 좋은 생각이 있다며 도미니아 경에게 속삭였다.
도미니아 경은 일단 듣고나 보자는 마음으로 미네르바의 계획을 들었다.
그리고 아주 그럴싸한 방법에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어차피 범죄자 취급받는 내 처지와 민간인 신분인 네 처지를 이용하자는 거지?"
"정확해."
도미니아 경은 슬쩍 눈을 돌려 메리를 바라보았다.
메리는 아직 멀었냐는 듯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여전히 도미니아 경이 행동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 셋을 세면 바로 실행하자고."
도미니아 경이 미네르바의 작전을 수락했다.
"좋아. 셋은 내가 세지. 셋!"
미네르바의 신호와 함께, 둘은 아주 놀라운 작전을 선보였다.
정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멋진 작전을 말이다.
...
도미닉 경과 작은 도미니아 경은 카페에서 쿠키 앤 크림 쉐이크 2잔을 시킨 채 기다리고 있었다.
도미니아 경은 무엇이 그리 신나는지 리틀 도미닉 경 인형과 오리너구리 인형을 양팔에 끌어안고는 마구 볼을 부비고 있었다.
도미닉 경은 그런 도미니아 경을 흐뭇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오리너구리 인형을 구한 보람이 있었다.
"음?"
그때, 도미닉 경은 문득 가게 밖에서 병장기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도미닉 경은 슬쩍 고개를 돌려 가게 밖을 바라보았다.
가게 전면은 통유리로 되어 있었기에 충분히 밖을 볼 수 있는 구조였다.
그때, 창밖에서 흰 머리의 누군가와 검은 머리의 누군가가 슬쩍 보였다.
도미닉 경은 그들이 누구인지 자세히 보려고 눈을 찌푸렸으나
[메모리 부족.]
[메모리 부족으로 인해 시스템을 재부팅합니다.]
라는 메시지와 함께 갑자기 세상이 어두워지는 바람에 두 사람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다시 세상이 밝아졌을 때 도미닉 경이 본 것은, 어디론가 우르르 달려가는 경찰들의 모습이었다.
"...근처에 범죄자라도 있나 보군."
도미닉 경은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쿠키 앤 크림 쉐이크 2잔 나왔습니다."
"아, 고맙소."
도미닉 경과 도미니아 경은 쿠키 앤 크림 쉐이크를 먹으며 행복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호아..."
도미니아 경은 거의 녹아내린 아이스크림처럼 보일 정도로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도미닉 경은 그런 도미니아 경의 표정에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제법 행복한 한 때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