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6화 〉 [외전 25화]아웃 오브 가차랜드 : 파이널
* * *
도미닉 경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리고
...
며칠 뒤, 가차랜드.
도미닉 경은 저택의 테라스에서 흔들의자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었다.
신문에는 새로운 신진 탱커들의 이야기가 가득 실려 있었는데, 도미닉 경은 잠시 간단한 계산을 해 본 결과 그들은 도미닉 경의 활약을 보지 못한 채 자라난 세대라는 것을 깨달았다.
도미닉 경이 한창 사건과 사고를 수습하고 다녔던 손녀 도미니아 경의 세대와는 다르게, 증손녀 도미나 경의 세대에서의 도미닉 경은 그저 스토리 모드나 깨는 사람 정도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도미닉 경은 그것이야말로 자신이 가차랜드에서 서서히 가치를 잃어가고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새로운 세대가 열리는 건가..."
도미닉 경은 씁쓸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도미닉 경은 며칠 전 아직 태어나지 않은 회장이 그에게 건넨 선택지가 일종의 호의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도미닉 경의 가치가 더 떨어지기 전에 가치를 보존할지, 아니면 조금 더 가치의 하락을 늦출지에 대한 제안이었다.
"...그래도 선택에 후회는 없어."
도미닉 경은 그렇게 이야기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밖으로 나갈 채비를 마쳤다.
어째서인지 도미닉 경은 조금 비틀거렸으나, 그는 개의치 않았다.
...
도미닉 경은 가차랜드 시내로 나왔다.
도미닉 경이 가장 먼저 걸음을 옮긴 곳은 바로 카페였다.
도미닉 경은 그곳에서 그 어떤 추가적인 주문 없이, 그저 에스프레소 한 잔과 치즈 케이크 한 조각을 시켰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포크를 들고는 말없이, 그리고 천천히 에스프레소와 치즈 케이크를 음미하기 시작했다.
그때, 카페에 있던 텔레비전에서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다.
"속보입니다. 조만간 도미닉 경이 은퇴하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탱커 노조에서는 탱커 계의 큰 별이 졌다며"
"아."
도미닉 경은 그 뉴스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은퇴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도미닉 경은 잠시 텔레비전을 노려보더니, 이내 한숨을 쉬며 카페 점장에게 말했다.
"텔레비전 좀 꺼주시겠소?"
"아, 네."
점장은 도미닉 경의 부탁에 곧바로 텔레비전을 껐다.
그도 지금 손님이 도미닉 경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스스로가 선택한 은퇴라고 해도, 마음이 심란한 건 어쩔 수 없겠지.
점장은 그렇게 생각하며 도미닉 경에게 슬쩍 케이크 한 조각을 더 내밀었다.
"그, 서비스입니다."
"...? 고맙소."
도미닉 경은 점장이 준 케이크를 받아들고는 에스프레소를 홀짝였다.
...
또다시 며칠 후.
도미닉 경은 다시 그 안락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은퇴를 결정한 이후 많은 사람이 찾아왔지만, 도미닉 경의 뜻은 단호했다.
그동안 열심히 달려왔으니, 쉴 때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도미닉 경의 은퇴에 슬퍼했으나 이내 도미닉 경이 거의 한 세기 동안이나 활약했다는 것을 기억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래, 도미닉 경이 쉴 때가 되긴 했지. 라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이런 도미닉 경을 의심스럽게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다.
바로, 성좌들이었다.
...
"어째서 도미닉 경은 성좌가 되지 않은걸까요?"
성좌 아임 낫 리틀이 도미닉 경의 선택에 의문을 가졌다.
"성좌가 된다고 해서, 가차랜드에서 살지 못 하는 것도 아닌데."
아임 낫 리틀은 도미닉 경이 성좌가 되는 것이 가장 이득이라고 생각했다.
성좌가 된다고 해서 가차랜드에 간섭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 또 원래 가차랜드에서 살던 것과 크게 다른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비록 간섭을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고, 성좌들이 사는 외곽지대에 살아야 한다는 단점은 있었지만, 성좌가 된다는 것은 장점이 한가득인 일이었다.
"성좌가 되면 바로 같이 가차튜브를 운영하자고 하려고 했는데."
아임 낫 리틀이 도미닉 경의 가장 큰 팬이라는 건 가차랜드의 사람들이라면 모두 아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도미닉 경에게서 스타성을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 중 하나였으며, 여전히 스타성이 있다고 믿는 사람 중 하나였다.
간섭에 필요한 비용이란 바로 성좌에 대한 신앙을 의미했고, 가차랜드에는 도미닉 경을 거의 신처럼 생각하는 이들로 가득했으니까.
"그런데 은퇴라니... 도미닉 경 답지 않아요."
아임 낫 리틀은 여기서 잠시 고민했다.
그 말 대로, 은퇴라는 수단은 도미닉 경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죽더라도 전장에서 죽을 남자였으니까.
"도대체 왜...?"
아임 낫 리틀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있는 힘껏 머리를 쥐어짜고, 머리를 쥐어뜯고, 머리를 쥐어박으며 왜 도미닉 경이 그런 결정을 했는지 고민하던 아임 낫 리틀.
그런 그녀의 발밑에 빠진 머리카락이 살짝 쌓일 무렵, 문득 그녀는 한 가지 가설에 도달했다.
"...설마?"
아임 낫 리틀은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팔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생각이 맞다면...
도미닉 경은, 진심으로 은퇴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
도미닉 경은 가장 먼저 행정부에 도착했다.
그리고 서류 두 장을 공무원에게 건넸다.
공무원은 도미닉 경을 알고 있던 사람인지, 도미닉 경을 보며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 모습이 사뭇 비장했다.
"...은퇴 서류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이건"
"혹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디로 가야 하오?"
"행정부에서도 해드릴 수 있지만, 아마 시간이 걸릴 거예요. 가장 빠르게 하려면 시스템 인더스트리로 가는 것이 가장 좋을 겁니다."
"고맙소."
도미닉 경은 한 장의 서류를 다시 돌려받았다.
그리고 걸음을 옮겨 시스템 인더스트리로 향하기 전, 행정부 구내 식당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었다.
비록 도미닉 경이 좋아하는 페럴란트식 식단은 아니었지만, 꽤 먹을 만 한 수준이었다.
도미닉 경은 점심을 해결한 뒤 바로 시스템 인더스트리로 향했다.
오늘은 왈록이 경비를 서는 날이었는지, 입구로 들어오는 도미닉 경에게 왈록이 손을 흔들었다.
"어이! 후배!"
"...선배."
왈록은 제발 한 번만 여기서 자폭하게 해 달라는 폭탄마의 부탁을 또 한 번 거절하며 도미닉 경에게 다가왔다.
"은퇴했다며?"
"네."
"마음이 좀 심란하겠어."
"...네."
왈록은 도미닉 경의 마음을 잘 아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도미닉 경이 은퇴하기 한참 전에 은퇴를 하고, 이제는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경비에 더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난 장생종이라 오래 살지만, 너는..."
"뭐, 가치가 떨어질 때까지는 죽지 않으니까요. 아직 제 가치는 저 위에 있고 말이죠."
"...그건 그래. 어쩌면 나보다 더 오래 살지도."
왈록은 그렇게 말하며 도미닉 경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가차랜드에서 은퇴라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시스템 인더스트리에는 무슨 일로 온 거야?"
"별 건 아니고, 이걸 제출하려고 왔습니다."
도미닉 경은 왈록에게 가져온 서류 한 장을 보여 주었다.
왈록은 잠시 도미닉 경이 보여 준 서류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이내 황당하다는 듯 도미닉 경에게 되물었다.
"...정말로?"
"네."
"이거, 지금까지 네가 쌓은 모든 것이 사라질지도 모르는데?"
"어차피 밑져야 본전 아닙니까?"
"네 가치가 싹둑 잘려 나갈지도 모르는데?"
"기사는 두려움을 모르는 법이죠."
왈록은 도미닉 경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그만큼 도미닉 경이 할 행동은 황당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이었다.
"...좋아. 네 결정을 존중하지."
왈록은 도미닉 경에게 길을 비켜 주었다.
"그 서류, 제출하려면 22층으로 가면 될 거야. 거기가 이 문제에 대해선 전문가들이니까."
도미닉 경은 왈록에게 감사하다며 고개를 끄덕인 뒤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그 뒤에서 왈록이 도미닉 경을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미친놈..."
...
도미닉 경은 22층에 도착했다.
그리고 서류를 직원에게 제출했다.
"...정말로 이렇게 하시겠습니까?"
"그렇소."
도미닉 경은 직원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요?"
"그렇소."
직원은 도미닉 경에게 반문했으나, 도미닉 경은 단호했다.
"..."
직원은 도미닉 경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많은 부와 명예를 쌓아 두고 이제 편히 즐길 일만 남았는데, 어찌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말인가?
그러나 이미 도미닉 경의 의지는 확고했고, 직원은 더 이상 도미닉 경을 말릴 방도가 없었다.
직원은 더 이상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서류에 도장을 쾅. 하고 찍었다.
"이로써 도미닉 경은..."
도미닉 경은 은퇴한 이후 검과 방패를 잡아본 적이 없었다.
이제 쓰지도 못할 뿐 더러, 혹시라도 은퇴 결정을 번복할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늘 도미닉 경은 다시금 방패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반대편에, 검 대신 거대한 중기관총을 들었다.
"...원딜입니다."
"고맙소."
상상도 못 한 정체!
도미닉 경은 이제 탱커가 아니었다.
이제부터 도미닉 경은 원딜이 된 것이다!
어째서 도미닉 경은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일까?
...
며칠 전.
도미닉 경이 아직 태어나지 않은 회장을 만났을 때.
"...또 다른 선택지는 무엇입니까?"
"음?"
"분명 세 가지라고 하셨을 텐데요."
"그렇지."
"도미닉 경이라면 이 사실을 알아챌 거로 생각했어."
아직 태어나지 않은 회장은 도미닉 경의 신중함에 경의를 표했다.
"마지막 세 번째는 간단해."
"클래스를 바꾸고, 새롭게 태어나는 것."
"가차랜드에서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는 것."
"그리하여, 영원히 가차랜드에서 살아가는 것."
"그게 바로 세 번째야."
"..."
도미닉 경은 회장의 말을 듣고는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고민은 깊지 않았다.
도미닉 경은 전사요, 기사요, 투사였고, 전장에서 싸울 수 있다면 지금 있는 모든 것은 그 어떤 가치도 없었다.
아, 물론 가족들은 빼고.
도미닉 경은 결정을 내린 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세 번째를 골랐다.
그리고... 도미닉 경은 이제 탱커 도미닉 경이 아닌, 원거리 딜러 도미닉 경으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
매는 늙으면 선택해야한다고 한다.
그저 늙어 죽을지, 혹은 부리와 날개, 발톱을 부수고 오랜 고통을 감내한 뒤 이윽고 새로운 삶을 얻을지.
사실 이건 거짓말이라고는 하지만, 이 정보가 루머인지 아닌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도미닉 경은 늙어 죽는 것 대신, 가진바 중요한 것들을 버리고 오랜 고통을 감내하는 쪽을 선택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비록 새로운 클래스는 도미닉 경에게 있어 어색할 테지만, 도미닉 경은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다.
도미닉 경은 이로써 영원히 전장에 설 수 있고, 영원히 싸울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으니까.
도미닉 경은 오늘도 전장에서 행복한 웃음소리를 터뜨리며 적들에게 중기관총을 난사한다.
그야, 도미닉 경은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