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6화 〉 [295화]City of Disaster
* * *
도미닉 경은 문득 시야가 조금 더 넓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도미닉 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건물 밖으로 잠시 나가 보았는데, 얼핏 보기에는 방금 전과 그리 다른 점은 없었다.
그러나 뭔가 위화감을 느낀 도미닉 경이 주변을 좀 더 꼼꼼하게 살펴보자, 그는 해일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맙소사. 해일이 사라졌다고? 어떻게?"
도미닉 경은 멍하게 해일이 있었던 방향을 바라보았다.
해일이 있던 방향의 허공에는 마치 칼로 베인 듯 약간 어긋난 부분이 보였는데, 마치 그 균열에 손을 가져다 대면 베일 것만 같은 균열이었다.
도미닉 경은 무심코 손가락을 들어 허공에 있는 갈라진 틈을 가리켰는데, 도미닉 경의 시야와 균열, 그리고 손가락이 일직선을 그리는 순간 도미닉 경은 따끔한 감각과 함께 손가락을 베였다.
"...베인다고?"
도미닉 경은 놀란 눈으로 조금씩 아물기 시작한 미묘한 균열을 바라보았다.
그건 적어도 자연적인 현상은 아니었다.
이런 현상은 타이쿤 시티 곳곳에서 일어났다.
어느 곳에선 검은 슬라임이 나타나 지진으로 생긴 균열을 복구했고, 어떤 곳에선 복슬복슬한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으며, 실험복에 블랙 그룹 마크를 단 과학자들이 나타나 순식간에 허리케인을 잠재웠다.
또 어떤 곳에서는 용이 나타나 폭우를 걷어냈으며, 또 어떤 곳에서는 자신을 빌런이라고 소개한 이들이 나타나 혼란에 빠진 사람들을 안정시켰다.
무언가 이상한 것 같지만, 타이쿤 시티에서 이상하지 않은 것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타이쿤 시티는 조금씩 조금씩 다시 평화를 되찾아갔다.
그리고 재밌게도, 이 평화를 가져다준 사람들은 모두 도미닉 경과 면식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에도 조금씩 평화가 깃들기 시작했으나, 여기 남들처럼 평화를 즐기지 못하는 이가 있었으니...
...
도미닉 경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구름이 걷히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 많던 자연재해는 모두 사라지고, 비는 그쳤으며, 먹구름마저 사라지고 밝은 태양이 솟아올랐다.
도미닉 경은 크게 숨을 들이켰다.
빗줄기에 도시의 매연이 모두 사라진 것인지 공기는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고 시원한 상태였고, 도미닉 경의 폐부에도 그 신선한 공기가 가득 메워졌다.
그리고 도미닉 경은, 그대로 한숨을 내쉬었다.
맑은 공기를 마셨다가 내쉰 탓인지, 도미닉 경의 머릿속도 예전처럼 맑아졌다.
돈을 쫒고 시간에 쫓기던 도미닉 경이 아니라, 그저 기사도의 화신과도 같던 도미닉 경으로 돌아온 것이다.
머리가 맑아진 도미닉 경은 곧바로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세상에.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도미닉 경은 지금까지 타이쿤 시티에서 했던 일을을 생각했다.
도미닉 경은 비록 강인한 정신력으로 저항을 하긴 했지만, 명예롭지 못한 짓들을 많이 저질렀다.
특히나, 방금 전에 돈 카르텔로를 기절시킨 것은 그야말로 기사의 명예를 더럽히는 행위 중에서도 가장 더러운 행위였다.
목적을 위해 다른 이에게 해를 끼치다니.
도미닉 경은 그 사실을 깨닫고 얼굴을 감싸며 부끄러워했다.
그때, 그런 도미닉 경의 등 뒤로 오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마이어였다.
"도미닉 경."
마이어는 얼굴을 감싸 쥔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도미닉 경은 마이어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는데, 도미닉 경의 얼굴엔 후회와 아쉬움, 그리고 안타까움이 공존해 있었다.
마이어는 도미닉 경을 그리 오래 본 사이는 아니지만, 그가 꽤 사업적인 수완이 뛰어난 사람이며, 사람들을 다루는 데 있어서 일만 시키기보다 적절한 휴식을 주려고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타이쿤 시티 내에서야 그런 휴식이 고문이나 다름없었지만, 외부의 일은 타이쿤 시티와 정반대라는 사실도 알고 있던 마이어는, 도미닉 경이 꽤 인도주의적인 성격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마이어는 도미닉 경의 얼굴에 담긴 후회와 아쉬움, 그리고 안타까움을 이렇게 해석했다.
좀 더 빠르게 대처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후회.
사건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지 못했던 아쉬움.
그리고 타이쿤 시티가 엉망이 되어 버린 것에 대한 안타까움.
사실, 도미닉 경은 사업가적으로 행동했던 과거를 후회하고, 빨리 도망치지 못했던 것을 아쉬워했으며, 욕심을 내려놓지 못한 자신에 대해 안타까워했으나 마이어가 이 사실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마이어는 눈에 콩깍지가 낀 상황에서 한 가지 시험을 더 해 보기로 하였다.
"도미닉 경. 어쩌다 보니 타이쿤 시티에 멀쩡하게 남은 곳이 유원지와 시청, 그리고 자네의 농장 밖에 없더군. 그래서 말인데..."
"제 전 재산을 내놓지요. 타이쿤 시티의 재건에 말입니다."
도미닉 경은 마이어의 말에 즉답했다.
도미닉 경의 처지에서는 마이어의 제안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미 도미닉 경은 타이쿤 시티에 정나미가 떨어진 사람이었고, 당장에라도 가차랜드로 도망치고 싶은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나 마이어에게는 그 말이 다르게 들렸다.
"자네는... 참으로 사람이 된 사람이군."
마이어는 도미닉 경의 모습을 보며 탄식을 내뱉었다.
도미닉 경은 이번 사건의 최대 수혜자였다.
타이쿤 시티의 거의 모든 건물들은 재해로 인해 무너졌으나, 중심지에 가까웠던 시청과 유원지, 그리고 도미닉 경의 농장만큼은 멀쩡했다.
물론, 이는 마이어가 진실을 몰라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었지만, 적어도 마이어가 생각하기엔 그랬다.
도미닉 경은 그저 가만히 있으면 타이쿤 시티를 독점할 수도 있었다.
남아 있는 건물들에서 나오는 압도적인 재력으로 엉망이 된 타이쿤 시티를 모두 아우르는 부를 얻을 수도, 일자리를 미끼로 시장의 자리에 나와 권력을 가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을 보라.
도미닉 경은 오로지 돈과 권력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공공의 이익을 위해 기꺼이 자기 이득을 내려놓았다.
마이어는 그런 도미닉 경의 뒤에서 후광이 비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도미닉 경의 인품은 정말... 위인전에서나 나올 법한 것이 아닌가.
몇 번을 말하지만 이는 마이어의 오해였다.
그러나 중요한 건 마이어가 오해를 한 것이 아니다.
마이어가 도미닉 경의 성품에 감화되어, 도미닉 경을 제대로 밀어주겠다고 결심해 버린 것이 문제였다.
"...자네의 돈을 달라는 것이 아닐세. 사실, 어쩌면 돈보다 더 큰 걸 수도 있어."
"...?"
도미닉 경은 마이어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도대체 마이어는 무엇을 부탁하려고, 저리 장황하게 운을 뗀다는 말인가?
그런 도미닉 경의 의문에 답하려는 듯, 마이어는 마침내 입을 떼었다.
...
"으, 머리야. 여기가 어디...지?"
돈 카르텔로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미닉 경의 기습으로 인해 기절 상태에 빠졌던 돈 카르텔로는, 일어난 지 꽤 되었음에도 여전히 머리가 어지러운 상태였다.
"이상하게 날 기습한 사람이 누구인지 기억이 안 나네... 신고하려고 했는데..."
돈 카르텔로는 어째서인지 그를 공격한 사람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이는 도미닉 경이 너무 머리를 강하게 친 나머지 기억의 일부가 날아가 버린 것이었으나, 돈 카르텔로가 그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돈 카르텔로는 범인의 인상착의를 떠올리는 대신, 나중에 잡히면 신고해 버리겠다고 벼르고는 밖으로 나섰다.
"...날씨가 맑아졌네. 소나기였던 모양이지?"
돈 카르텔로는 쨍한 해가 뜬 하늘을 바라보며 눈을 찌푸렸다.
너무 어두운 방 안에만 있었던 탓에 빛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고 보니 원숭이 손에게 빈 첫 번째 소원이 비나 눈이 오는 거였지."
어떻게 소원처럼 되긴 했네. 라고 생각하며 돈 카르텔로는 걸음을 옮겼다.
방금 전 책상 위를 확인했을 때 그 위에 있던 서류가 사라진 상태였기에 사무실로 가서 다시 복사해 올 생각이었다.
"세 번째 소원이 내일 있을 완공식이랑 개장식이 성공하게 해 달라는 거였던가."
이 상태라면 내일도 모레도 문제 없겠어. 돈 카르텔로는 멀쩡하다못해 깨끗한 놀이기구들과 건물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자연재해는 다른 곳을 엉망으로 만들었으나, 유원지만큼은 깨끗하게 청소한 것이다.
말도 안 되지만, 그게 바로 타이쿤 시티 아니겠는가.
"두 번째 소원은 그거였던가? 유원지가 유명해지게 해 달라고 했던 거? 하하. 생각해 보니 나도 참 어리석네. 아직 개장도 안 해 놓고 유명해질 생각을"
헛된 소원을 빌었다며 자기 성찰을 하던 돈 카르텔로는 걸음을 옮기던 마침내 사무실의 앞에 거의 다다랐다.
그러나 돈 카르텔로는 사무실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사무실의 앞에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바글바글했기 때문이었다.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나..."
"도미닉 경은 시장과 대화를 나눈다고 사라졌고, 그렇다면 돈 카르텔로 뿐인데..."
돈 카르텔로는 사무실 앞에 모인 사람들을 보며 잠시 주춤했다.
그들의 기세가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곧 그들의 입에서 도미닉 경의 이름과 돈 카르텔로의 이름이 나오자, 돈 카르텔로는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이 앞섰다.
왜 갑자기 자기 이름이 나오는지 궁금해진 것이다.
결국 궁금함을 참지 못한 돈 카르텔로는, 이내 걸음을 옮겨 모인 사람들의 가장 뒤에 있던 이의 어깨를 두드렸다.
"저기"
"뭐요? 지금 돈 카르텔로를 기다리느라 아주 바쁘오!"
"지금 뭣 때문에 모여 있는 거요?"
"그야 당연히 유원지 문제 때문 아니겠소? 지금 도미닉 경과 마이어 시장이 손을 잡고 타이쿤 시티 재건의 일환으로 다른 건물들이 돌아올 때까지 타사 직원들을 유원지에 고용한다고 합의했소. 그러니 그에 대한 기사를 위해... 잠깐. 당신, 낯이 익은데."
돈 카르텔로의 물음에 짜증을 내면서도 제대로 답변한 남자가 고개를 돌려 돈 카르텔로를 바라보았다.
돈 카르텔로를 유심히 바라보던 남자는, 잠깐 고민하더니 이내 눈앞의 이 사람이 돈 카르텔로라는 걸 알아차렸다.
"도, 돈 카르텔로!"
"어? 어디, 어디!"
"비켜! 내가 먼저야! 돈 카르텔로씨? 현재 가차랜드에서 단 셋 밖에 남지 않은 기업의 주인이신데, 기분이 어떻습니까?"
"저런 찌라시 기사만 쓰는 기자의 말은 듣지 마십쇼! 돈 카르텔로씨! 타이쿤 시티 복구작업의 일부에 기꺼이 유원지의 일자리를 내놓으셨다고 들었는데, 그때 무슨 심정이었습니까?"
"그런 질문 따위는 시시해! 내 노래... 아니, 질문을 들어!"
사무실 앞에 모여 있던 기자들은 순식간에 돈 카르텔로를 에워쌌다.
기자들은 돈 카르텔로에게 진실을 요구하고 있었으나, 방금 전까지 기절해 있었던 돈 카르텔로가 이 진실을 알고 있을 리가 만무한 상황.
그런데도 기자들은 진실을 듣고자, 돈 카르텔로를 에워싸고 무려 12시간 동안이나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돈 카르텔로가 빌었던 두 번째 소원, 유원지가 유명해지게 해 달라는 소원마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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