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5화 〉 [294화]City of Disaster
* * *
도미닉 경이 생각한 대로, 현재 이 타이쿤 시티에는 돈 카르텔로의 초대받은 이들이 가득 몰려들고 있었다.
물론 초대받은 모두가 몰려오는 것은 아니었다.
일부는 일이 바빠 대리인을 보내거나 불참하기도 했고, 일부는 그저 귀찮다는 이유로 참석을 거부했다.
그러나 그런데도 이 타이쿤 시티에 온 도미닉 경의 지인들은 한두 명이 아니었고, 그중에는 가차랜드에서도 손꼽히는 강자들도 있었다.
히메의 아버지, 운류 무사시가 바로 그 예였다.
"아버지. 꼭 이렇게 따라오셨어야"
"아빠."
"...아빠. 꼭 이렇게 따라왔어야 했어요?"
히메가 부끄럽다는 듯 무사시에게 짜증을 부렸다.
"그렇단다. 딸이 좋아하는 사람이 초대를 했다는데, 그래도 얼굴 한 번 봐야 하지 않겠니. 그렇지 않소, 여보?"
무사시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내 운류 이치코에게 동의를 구했다.
그러나 이치코는 딸 편이었다.
"너무 팔불출이에요, 여보. 아무리 장래의 사위라지만, 그래도 요즘엔 프라이버시라는 것이"
"여, 여보."
무사시는 이치코의 말에 당황했다.
설마 이치코가 그렇게 말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아빠가 저렇게 당황하는 모습은 오랜만이네. 안 그래? 어, 언니?"
철립을 쓴 츠키가 히메의 뒤에 나타나 히메에게 말을 걸었다.
밖에선 여전히 히메를 언니라고 부르는 것이 어색한 츠키였으나, 이제는 그래도 제법 언니라고는 부르고 있었다.
"...그러게."
히메는 이 촌스러운 희극같은 상황에 한숨을 내쉬었다.
어째서 이렇게 된 거지? 라고 스스로에게 묻는 히메.
그러나 히메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었다.
...
며칠 전, 히메는 돈 카르텔로가 보낸 초대장을 받았다.
처음엔 그저 스팸 메일이라고 생각해 버릴 생각이었지만, 문득 겉에 쓰여져 있던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도미닉 경과 동업하는 돈 카스텔로가 보냄.'
도미닉 경?
히메는 도미닉 경이라는 말에 홀린 듯 그 초대장을 방으로 가져와 개봉했다.
그리고 거기엔, 도미닉 경의 투자로 지어진 유원지가 개장하니, 완공식에 참석해 줄 수 없냐는 말이 적혀 있었다.
도미닉 경이 사업도 했던가?
히메는 도미닉 경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다고 자신하고 있었으나, 사업가 도미닉 경은 도저히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초대장이 온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도 도미닉 경이 투자를 했다는데 가보기라도 할까...?"
히메는 이미 마음을 정했으나, 겉으로는 아닌 척, 생각하는 척했다.
마음속에 있는 것을 드러내기가 너무 부끄러웠던 것이다.
사실, 히메의 처지에서는 도미닉 경을 본 지도 꽤 지난 상태라고 생각했고, 히메도 도미닉 경을 보고 싶어 했기에 이미 초대에 응하기로 결정한 상황이었다.
"언니! 밥 먹으러 오래!"
"히끅?"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츠키가 들어왔다.
츠키는 이제 꽤 이 생활이 익숙해졌는지 거리낌 없이 히메의 방에 들어왔다.
히메는 갑자기 문이 열리자 깜짝 놀라 온몸의 털이 다 곤두서는 느낌이 들었다.
"...? 뭐 해?"
"아니, 아니야. 그나저나 들어올 땐 노크하라고 했지?"
"노크 했는데?"
히메는 초대장을 조심스럽게 다시 접어 봉투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방에 있던 화장대 위에다가 초대장을 두었다.
"아, 진짜 노크했다니까?"
"그래, 그래. 그런 거로 하자. 밥 먹자고 했지? 밥 먹으러 가자."
그리고 이 생활에 익숙해진... 무서울 정도로 익숙해진 츠키를 지나 방을 빠져나갔다.
"...진짜 노크 했는데."
츠키는 괜히 억울한 듯, 긴 머리를 긁으며 짜증을 부렸다.
그리고 히메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려던 순간
"응?"
츠키의 눈에 특이한 무언가가 보였다.
그건 개봉된 봉투였는데, 가차랜드의 양식과는 조금 다른 양식이었다.
"이건 뭘까...?"
츠키는 잠시 그 봉투를 바라보며 열까말까 고민하더니, 이내 더 이상의 고민 없이 봉투 안의 내용물을 꺼내 확인했다.
혹시나 러브레터나 그런 거라면, 히메의 약점을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초대장?"
그러나 그건 러브레터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건 타이쿤 시티에 새롭게 만들어질 유원지 완공식의 초대장이었다.
츠키는 도대체 왜 이런 중요한 문서가 운류 가문 앞으로 온 것이 아닌 히메 개인에게 온 것인지 궁금해했으나, 이내 이 안 건은 운류 가문 전체가 다뤄야 된다며 히죽거렸다.
물론, 이는 언니... 히메를 곤란하게 하려는 여동생의 음모였다.
"안 내려올 거니? 하나가 올라가니까 하나가 또 안 오는구나."
"아, 가요!"
츠키는 이치코의 외침에 황급히 방을 벗어나 아래로 향했다.
손에 그 초대장을 든 채로 말이다...
이 초대장은, 가족 모두가 모인 곳에서 아버지 운류 무사시에게 전달될 예정이었다.
...
그렇게 해서 운류 가문은 히메에게 자초지종을 물었고, 히메는 우물쭈물 하면서도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리하여 운류 가문의 전체가 도미닉 경을 본다는 명목으로 히메를 따라 타이쿤 시티에 온 것이었다.
"그나저나, 내일 완공식이라던데 이렇게 폭풍이 쳐서야 아무것도 못하겠네요."
히메가 창밖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말에 화기애애하게 다투던 무사시와 이치코가 움찔거리며 몸을 멈췄다.
"그러고 보니 그렇구나."
무사시가 붉은 장갑을 낀 손으로 붉은 텐구 가면의 턱 부분을 쓰다듬었다.
"도미닉 경도 곤란하겠네요."
이치코가 우아하게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여보. 당신이 도미닉 경을 도와주면 어떨까요?"
이치코가 무사시에게 그렇게 물었다.
"미래의 사위에게 점수를 좀 따두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알잖소. 5성 이상은 그 힘을 제멋대로 휘두를 수는"
무사시가 곤란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가차랜드의 무사들 중에서도 손으로 꼽히는 강함을 가진 무사시로서는, 힘으로 무언가를 해결하는 건 썩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여보. 미래의. 사위를. 위해서. 점수를. 좀. 따두죠."
그러나 이치코는 한 글자 한 글자를 또박또박 강조해가며 무사시에게 다시 한번 제안했다.
말이 부탁이었지, 사실상 강요나 다름없었다.
"...알겠소. 다만 모든 걸 다 해 줄 수는 없고, 해일 정도만 해결하겠소."
"좋아요. 나머지는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하겠죠."
이치코는 무사시의 말에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그럼, 다녀오리다."
그러나 무사시는 이치코의 말에 시무룩해져서는 결국 밖으로 나갔다.
무사시는 운류 가문의 가주였으나, 그만큼 아내에게 잡혀사는 팔불출이기도 했으니까.
잠시 후.
"다녀왔소."
"수고하셨어요."
무사시는 갑옷에 빗방울을 묻힌 채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밖에 내리는 비를 생각하면 이상할 정도로 적은 양의 물방울이었으나, 갑옷에 물방울이 맺힌 건 사실이었기에 이치코는 수건을 가져와 무사시의 갑옷을 정성스럽게 닦아주었다.
"피곤하시죠? 차라도 끓일까요?"
"음."
무사시는 힘겹다는 듯 손을 달달 떨고 있었다.
이치코의 말대로 차 한 잔을 마시며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아 보였다.
"저기."
그때, 츠키가 무사시와 이치코 사이에 끼어들었다.
"아버지, 제가 아직 실력이 미흡해서 그렇습니다만"
"아빠."
"...네. 아빠. 제가 아직 실력이 미흡해서 그렇습니다만, 아직 해일은 그대로인 것처럼 보입니다."
"음."
무사시는 츠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안목이 그리 성장하지 않은 츠키로서는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었으니까.
그러나 히메는 달랐다.
히메는 아무리 먼 곳이라도 볼 수 있는 눈이 있었고, 어떤 함정도 구분해낼 수 있는 안목이 있었다.
히메는 츠키의 말에 문득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밖에는 100층 건물도 삼킬 만큼 높은 해일이 몰려오고 있었는데, 아직은 거리가 제법 멀었지만 수십 분 뒤에는 여기를 덮칠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 해일은 츠키의 말대로 아무런 미동도 없이...
잠깐, 아무런 미동도 없이?
"서, 설마...!"
"히메는 알아차린 모양이구나. 그래. 무엇이 보이더냐?"
무사시가 히메의 안목을 칭찬했다.
그러나 아직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츠키를 위해, 무사시는 히메에게 무엇을 보았느냐고 물었다.
히메는 뻣뻣하게 굳은 채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무사시를 향해, 자기가 본 것이 맞는지 확인했다.
"제가 보기엔... 아버지는, 검으로 저 해일의 진행을 멈춘 것 같습니다."
"아빠."
"...네. 아빠는 검술로 저 해일을 멈췄습니다. 아닙니까?"
"그렇다. 더 정확하게는 해일을 죽여 버린 거란다."
"...네?"
츠키는 히메와 무사시의 대화를 듣고 황급히 창문 가까이 붙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해일을 바라보았다.
해일은 여전히 미동도 없이 공중에 떠 있었으나, 츠키가 관찰한 지 1분 정도 지나서야 해일은 뒤로 고꾸라지더니 다시 바다의 일부가 되어 소멸되었다.
"느리구나. 쓰러지는 것조차."
저 멀리 철퍽 소리가 나자, 무사시는 이치코가 내온 차를 홀짝이며 그리 말했다.
그러나 츠키와 히메는 이 엄청난 광경에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무사시는, 자연재해를 죽여 버릴 정도의 검술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가차랜드의 5성, 혹은 그 이상의 경지.
"이 차는 맛이 좋구려. 가져온 거요?"
"아뇨. 이 앞에 농장에서 산 거랍니다."
"그런가. 가는 길에 좀 사가야겠소."
무사는 해일을 갈라 자연재해를 소멸시키는 업적을 달성하고도 평상시처럼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저 차 한 잔과, 담소 한 마디를 나누면서.
운류 무사시는 그런 남자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