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297화 (297/528)

〈 297화 〉 [296화]타이쿤 시티 후일담

* * *

"유원지의 성공적인 완공을 축하하네."

도미닉 경은 그에게 다가와 축하 인사를 건네는 마이어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도미닉 경은시장 마이어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도미닉 경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으나, 겉으로는가식적으로 환한 웃음을 지었다.

"그나저나 이렇게나 많은 명사들이 모이다니 이거, 내가 자네를 너무 과소평가했었구만."

마이어는 완공식이 끝나고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몇몇은 돈 카르텔로와 친분이 있었으나, 대부분은 도미닉 경이 아는 얼굴들이었다.

"설마 블랙 그룹에 행정부, 시스템 인더스트리는 물론이고 그 운류 가문과 진짜 용과도 친분이 있을 줄은."

마이어는 순서대로 레미와 팬텀 박사, 머슬만 의원 대신 참석한 판데모니아, 도미닉 경의 선배인 왈록, 무사시와 이치코, 히메와 츠키를 지나 카드 팩 교환소의 쉔롱까지 훑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저 친구들은 자네와 무슨 관계인가?"

마이어가 도미니카 경과 앨리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도미닉 경과 비슷한 느낌의 도미니카 경과, 큰 덩치를 가지고 있음에도 순박한 미소를 잃지 않는 앨리스를 처음 본 마이어는 그 둘이 꽤 신기한 듯했다.

"혹시 애인이라거나? 오, 맞춘 것 같군."

도미닉 경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마이어의 말이 더 빨랐다.

"그래. 영웅은 원래 삼처 사첩이 기본이지. 무협지에서 배운 거긴 하지만 도미닉 경과 같은 호걸은 마땅히 그래도 되지 않겠나?"

"...그런 말 마시오. 소름 돋소. 일단은 유전적으로 나와 같은 이요. 일단은."

"오. 남매였구만. 미안하네."

나도 여동생이 있어서 잘 알지. 엮이는 걸 엄청 싫어해서 말이야, 레트로 그라드로 이민을 가 버릴 정도지 뭔가. 마이어는 그렇게 말하며 도미닉 경에게 사과했다.

"실례합니다. 혹시 대화가 끝났습니까?"

도미닉 경과 마이어가 서로 더 나눌 대화가 떨어질 때쯤, 누군가가 둘의 대화 사이에 난입했다.

그는 양복을 입고 복면을 쓴 이였는데, 여기저기 닌자스러운 부분이 잔뜩 보였다.

"운류 무사시님께서 도미닉 경을 보고 싶어 하셔서 말입니다."

"오, 그렇지. 이거 내가 너무 혼자 붙잡고 있었군. 도미닉 경과 대화하고픈 사람들이 꽤 많을 텐데 실례했네."

마이어는 그렇게 말하며 미안하다는 듯 도미닉 경에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럼, 완공식도 성공적으로 끝났으니 난 이만 가 보겠네. 재건을 위한 일이 남아 있어서 말이야."

"들어가시오."

도미닉 경은 마이어를 보며 작별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계속해서 기다리고 있는 이 닌자... 집사에게 말을 걸었다.

"이제 시장과의 대화는 끝났소. 그나저나 운류 가문이라고 했소?"

"그렇습니다. 히메 아가씨와 츠키 아가씨라고 말하면 아실 테지요."

아. 도미닉 경은 얼마 전 도트화 사건에서 히메의 성을 본 적이 있었다.

운류 히메. 도미닉 경은 그때 운류라는 말을 보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히메 공의 성이 운류였지. 기억하고 있소. 그렇다면 히메 공이 나를 부른 거요?"

"그건 아닙니다. 방금 전에도 말했듯이, 운류 무사시님께서 호출하신 터라."

"운류 무사시?"

"네. 운류 가문의 가주이자, 현 가차랜드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아니, 어쩌면 가장 강할 수도 있는 무사시지요. 그리고 히메 아가씨의 아버지시기도 합니다."

도미닉 경은 자기를 보려고 하는 사람이 히메가 아니라 그의 아버지라는 사실에 놀랐고, 그의 아버지가 히메처럼 쿠노이치가 아니라 무사라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그런 동요를 겉으로 보이지 않은 채 턱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그런 분께서 나를 보자고 하신다라..."

도미닉 경은 왜 그런 사람이 자기를 보고자 하는지 알 수 없었으나, 문득 어쩌면 딸의 친구에 대해서 알아보려는 아버지의 마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히메는 도미닉 경이 이 가차랜드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사귄 친구였고, 그만큼 히메의 아버지가 도미닉 경에 대해서 궁금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도미닉 경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일.

도미닉 경은 이 닌자 집사가 말한 대로 운류 무사시를 만나 보기로 마음먹었다.

"좋소. 안내하시오."

"음. 따라오시지요."

닌자 집사는 발목에 방울을 달고 있었으나, 방울 소리는 물론이요, 발소리와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게 길을 안내했다.

도미닉 경은 그를 따라가면서도 그가 숨을 제대로 쉬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저게 진짜 닌자로군. 실제로 싸우면 성가시겠어. 히메 공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군.

도미닉 경이 그렇게 닌자에 대해 이해하는 사이, 닌자 집사는 어느 곳에서 발길을 멈췄다.

"여기입니다. 도미닉 경."

"...? 여긴 벽이잖소."

도미닉 경은 닌자 집사가 가리킨 방향을 보았다.

그곳은 세 방향이 벽으로 막힌 막다른 곳이었는데, 벽의 높이도 제법 높아 여길 지나갈 방법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닌자 집사가 익숙하게 무언가를 조작하자, 벽이 돌아가면서 안에 있는 비밀 공간이 나타났다.

도미닉 경은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해야 하나 싶긴 했으나, 일단 분위기를 타 그 안에 들어갔다.

...

"어서 오게."

도미닉 경은 어두운 방 안에서 호롱불 하나를 바라보며 앉아 있는 갑옷을 보았다.

그 갑옷은 본디 붉은색이었지만 호롱불 때문인지 주황빛을 띠고 있었는데, 얼굴엔 오니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가면은 도미닉 경이 가까이 다가오자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말을 건넸다.

이때 무사와 도미닉 경의 사이의 거리가 정확하게 열 걸음이었다.

"...당신이 운류 무사시요?"

도미닉 경은 눈앞의 갑옷 무사의 기세가 범상치 않음을 느꼈다.

페럴란트에서 만난 마족들은 물론이고, 검의 달인이라고 불리던 이들의 기세마저도 눈앞의 무사의 기세에 비하면 아주 미약한 것이었다.

도미닉 경도 그 엄청난 기세에 당장에라도 다리가 풀릴 것만 같았으나 정신력으로 겨우 버티고 있는 것이었다.

"서 있는 것으로도 모자라 말까지 할 수 있다니, 요즘 자주 언급되는 이라는 것이 허언은 아닌 모양이구나."

갑옷 무사는 호롱불을 들어 올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벽을 걸으며 벽에 걸려 있는 횃불에 불을 붙였다.

그러자 전체적인 공간이 드러났는데, 폐쇄적이긴 하지만 꽤 넓은 공간이었다.

무사는 벽에 있는 모든 횃불에 불을 붙이고 나서 손가락으로 호롱불의 심지를 비벼 불을 껐다.

그리고 다시 자리에 돌아와 앉으며 도미닉 경에게 자리를 권했다.

"여기 앉게."

"난 아직 대답을 듣지 못했소. 당신이 운류 무사시요?"

"..."

도미닉 경은 눈앞의 무사를 노려보았다.

그가 얼마나 강한 기세를 가졌는지는 상관이 없었다.

그저 도미닉 경은 아직 대답을 듣지 못했고, 대답을 듣길 원한다는 것만이 중요했다.

이른바 기세 싸움이라는 것이었다.

"재밌군."

붉은 갑주의 무사는 도미닉 경의 행동에 감탄했다.

지금까지, 정확하게는 그가 운류 가의 가주가 된 이후부터 이런 기개를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 내가 바로 운류 무사시다. 운류 가문의 가주이자, 히메의 아버지기도 하지."

무사시는 도미닉 경에게 경의를 담아 대답했다.

이토록 강인한 남자라면, 그의 존중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여긴 것이다.

"좋소. 나는 페럴란트의 도미닉 경이오."

도미닉 경은 자세를 바로잡은 채 무사시의 앞에 있는 좌식 의자에 앉았다.

가부좌는 힘들었으나, 어설프게나마 무사의 앞에 앉을 수는 있었다.

"대단한 사내로군. 범상치가 않아."

"당신도 마찬가지요."

무사시와 도미닉 경은 서로 덕담을 주고받았다.

기세싸움보다는 서로를 존중하는 쪽으로 노선을 바꾸었던 것이다.

"좋군. 히메와 만나는 남자가 이렇게 건실한 사람이라니."

"...?"

무사시는 눈앞의 사내가 마음에 들었다.

이 정도의 기개라면, 충분히 딸을 맡길 수 있을 정도로.

그러나 도미닉 경은 무사시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만큼 무사시의 말은 갑작스러웠고, 또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갑자기 히메의 이야기가 왜 나오는 거요?"

"음? 집사가 설명해주지 않았나?"

무사시는 당황하는 도미닉 경을 보며 오히려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들은 바가 없었기에 고개를 저었다.

"이런, 우리 집사가 또 건망증이 도진 모양일세."

그렇게 말한 무사시는, 다시 한번 기세를 끌어모아 말했다.

"이번에 자네를 만나고자 한 것은, 가주로서의 내가 아닐세. 바로 히메의 아버지로서지."

도미닉 경은 방금 전보다 더 강한 기세에 얼굴의 핏기가 싹 가셨다.

얼마나 기세가 흉흉했던지, 무사시의 등 뒤에 붉은 구름에서 노니는 용이 도미닉 경을 노려보는 것만 같았다.

"사실, 이 한마디를 물어보려고 부른 것이네만­"

무사시는 허리춤에 찬 일본도의 손잡이에 손을 올려 두었다.

마치 엉뚱한 답하면 베겠다는 것처럼.

무사시의 태도를 확인한 도미닉 경도 조심스럽게 검집에 손을 올렸다.

여차하면 반격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온몸에 긴장을 끌어올린 것이 무색하게도, 도미닉 경은 순식간에 힘이 쭉 빠지고 말았다.

"자네는, 우리 딸을 어떻게 생각하나?"

무사시의 말 한마디 때문에 말이다.

그때 도미닉 경이 무슨 대답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도미닉 경은 도망치듯 모든 것을 버리고 타이쿤 시티를 벗어나 가차랜드로 돌아갔다는 것.

그것은 도미닉 경의 인생에서 자의적으로 행한 첫 번째 도망이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