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9화 〉 [188화]이상현상 : 후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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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곧 다시 만나게 될 거예요..."
미스 달콤달콤은 자베르 경감의 인도 하에 가차랜드에서 추방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다른 빌런들도 멀쩡히 활동하는 상황에 다소 가혹한 게 아니냐는 의문이 있었으나, 정작 미스 달콤달콤이 추방된 이유는 다른 것이었다.
"설마 가차랜드에 불법 체류자가 있을 줄이야. 중앙 시스템에 건의해 차원 보안을 강화해야겠습니다."
자베르 경감이 도미닉 경에게 말했다.
도미닉 경은 지금까지 가차랜드에 있으면서 추방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으나, 이번 기회를 통해 가차랜드의 추방 시스템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화려하거나 특별한 것은 없었다.
그저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불안정한 부분에 추방자를 던져 버리는 것.
그게 전부였다.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불안정한 부분은 다른 차원과 가차랜드를 이어 주는 역할도 하니까요."
히메가 말했다.
미스 달콤달콤은 추방되는 와중에도 히죽히죽 웃으며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시선이 방패에 닿을 때마다 살짝 몸을 떨기는 했으나, 미스 달콤달콤은 시종일관 여유를 잃지 않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린 다시 만날 거예요. 도미닉 경."
미스 달콤달콤이 도미닉 경에게 보낸 마지막 인사.
그 말을 마지막으로 미스 달콤달콤은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불안정한 부분에 던져졌다.
뿅. 하고 존재조차 없이 사라져 버린 미스 달콤달콤.
도미닉 경은 미스 달콤달콤이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 동안 그 불안정한 부분을 쳐다보았다.
"왜 그리 멍하게 있어요?"
"아, 히메 공."
도미닉 경의 상태가 이상했던지, 히메가 다가와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별 건 아니오. 그저 마지막 말이 마음에 걸려서 말이외다."
"아."
도미닉 경이 마음속에 있던 의문을 말하자 히메가 고개를 끄덕였다.
"크게 마음 쓰지 마세요."
히메가 도미닉 경에게 한 발자국 다가왔다.
그녀의 여우 귀와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빌런들의 말은 대부분 그럴싸한 헛소리에 불과하거든요."
"반대로 말하자면, 일부는 중요할 수도 있다는 소리겠지."
도미닉 경이 그렇게 말했다.
히메의 말에 다소 마음을 정리한 도미닉 경이었지만, 어째서인지 마음 한 켠에는 불편함이 남아 있었다.
"...도미닉 경."
히메가 도미닉 경의 불안을 알았는지 도미닉 경을 불렀다.
도미닉 경이 히메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히메가 도미닉 경을 향해 한 발자국 더 다가왔다.
둘의 사이는 한 사람이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워졌다.
"도대체 무엇이 그리 불안한 건가요?"
"..."
히메의 물음에 도미닉 경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해 보니 그렇구려. 불안할 이유가 없는데 말이오."
도미닉 경이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감이 내게 경고하고 있었소."
"감이요?"
히메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하긴. 도미닉 경은 전장을 헤쳐나왔다고 했으니 감도 꽤 단련되 있겠죠."
히메가 나름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지금까지 감이 경고하는 건 대부분 반드시 일어나다 보니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고 여겼나보오."
도미닉 경이 그렇게 말한 뒤 다시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불안정한 부분을 바라보았다.
"뭐, 그렇구려. 감이 거의 맞는다는 말은, 때때로 맞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니까."
도미닉 경은 히메의 말에 깨달음을 얻은 듯 개운한 표정을 지었다.
히메가 그런 도미닉 경을 빤히 바라보았다.
역시나. 히메는 도미닉 경을 빤히 바라보았다.
자기가 이런 상태에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분명히 주변의 조언마저 무시한 채 자기만의 세상에서 온갖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겠지.
히메가 그렇게 생각했다.
그랬기에 히메가 도미닉 경을 더욱 동경... 아니, 관심을 가지고... 아니, 사랑하는지도 몰랐다.
자신과 다른 그 당당하고 털털한 모습에 말이다.
그래서일까?
히메의 표정이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부끄러움으로 채워졌다.
하지만 히메는 이제 소녀라고 불릴 나이는 이미 지난 쿠노이치.
그녀는 큰 마음을 먹고 도미닉 경에게 소리쳤다.
"도미닉 경!"
"잠시."
아니, 소리치려고 했다.
"잠깐 기다려 봐. 지금 날씨가 좀 이상한데."
도미니카 경이 도미닉 경과 히메 사이를 끼어들며 말했다.
도미니카 경은 방금 전까지 자베르 경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상황이었다.
도미닉 경과 히메와 제법 떨어져 있었기에 둘이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였다.
그래서일까?
도미니카 경은 히메가 가장 크게 결심한 때에 우연찮게 둘의 대화에 끼어들고 말았던 것이다.
"...날씨가 말이오?"
도미닉 경이 도미니카 경을 보며 말했다.
"날씨가 말이죠..."
히메가 시무룩하게 답했다.
간만에 의욕이 가득한 상황이었으나, 그 상황에 방해가 들어오자 의욕이 빠르게 식어 버린 것이다.
"일단 나와봐. 여긴 불안정해서인지 기상이 잘 관측되지 않으니까."
도미니카 경의 말에 도미닉 경과 히메가 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히메는 시무룩한 상태인지 그녀의 귀와 꼬리가 축 늘어져 있었다.
"도대체 무슨"
도미닉 경이 불안정한 지역에서 안정적인 지역으로 돌아오자, 도미닉 경의 코에 무언가가 닿았다.
차갑진 않지만, 어째서인지 달콤하고 하얀 무언가.
도미닉 경이 코에 닿은 하얀 무언가를 손끝으로 찍어 바라보았다.
그건, 무언가의 알갱이었다.
가벼운 결정으로 된 알갱이.
도미닉 경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그 알갱이를 혀끝으로 맛보았다.
그건 설탕이었다.
그것도 정제가 꽤 잘 된 하얀 설탕.
"...설탕?"
히메가 하늘에서 내리는 설탕을 손으로 받으며 말했다.
그때, 시스템 메시지가 사람들의 눈앞에 나타났다.
[예보되었던 설탕 폭설은 기상 시스템의 복원으로 설탕 눈으로 바뀌었습니다.]
[너무 늦게 복구된 나머지 완전히 막지 못한 점, 양해바랍니다.]
[이번 이상 기후로 인해 피해를 본 가차랜드의 시민들께 사과를 드리며]
"...그래도 어느 정도 막아 낸 모양이네요."
히메가 도미닉 경에게 말했다.
"그러게 말이오."
도미닉 경이 하늘에서 내리는 하얀 설탕들을 멍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페럴란트에선 설탕이 귀했다.
사탕수수나 사탕무에서 뽑아낸 달콤한 시럽 정도는 있었으나 그마저도 귀족들의 전유물이었고, 가난한 기사였던 도미닉 경은 그런 설탕과는 연이 없었다.
물론 주군을 따라 사교계에 호위로한두 번 따라가며 설탕이 들어간 것들을 맛본 적은 있었지만, 그마저도 너무 오래되어 기억나지도 않는 상황.
가차랜드에 도착해 설탕이 들어간 달달한 것들을 잔뜩 먹을 수 있게 된 도미닉 경이었으나, 이렇게 많은 설탕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설탕이란 이렇게 하얀 것이구나. 라고 감탄한 도미닉 경.
그때, 도미닉 경은 옆에서 자기를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히메 공?"
"아. 네."
히메가 멍한 눈으로 도미닉 경을 바라보다가 도미닉 경의 말에 화들짝 놀라 답했다.
"어디 아픈 것 아니오?"
도미닉 경이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히메의 얼굴은 도미닉 경이 걱정할 만큼 빨갛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아니, 아니에요."
히메가 손사래를 치며 부정했다.
그리고 화제를 바꾸려는 듯 황급하게 설탕 눈을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꽤 낭만적이지 않나요?"
"낭만?"
도미닉 경이 되물었다.
도미닉 경은 다시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땅을 쳐다보았다.
젤리와 깨진 사탕, 그리고 인절미 가루로 엉망이 된 땅을 하얀 설탕이 소복이 덮는다.
세상이 하얗게 변하며 반짝인다.
만일 이것을 낭만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확실히. 낭만적이구려."
도미닉 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지금 가차랜드에 내리는 설탕 눈은 아름다웠으니까.
"그나저나..."
도미닉 경이 문득 무언가 생각났던지 히메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 날 불렀던 이유가 무엇이오?"
"...네?"
도미닉 경이 방금 전의 상황을 기억하고 되묻자, 히메가 당황했다.
그녀의 꼬리가 맹렬하게 흔들리고, 귀가 쫑긋하고 긴장된 상태가 되었다.
"그, 그, 그 아니에요. 별말은 아니었어요."
"그렇소?"
필요 이상으로 당황한 히메의 모습에 도미닉 경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하늘을 쳐다보았다.
도미닉 경은 정말 히메가 별말을 하려던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직설적인 성격이기에 할 수 있는 착각.
그러나 히메는 오히려 여기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내 마음이 정리가 되면... 그때..."
"음? 뭐라고 했소?"
"...아니에요."
히메가 결심을 작게 중얼거렸다.
"참, 낭만적인 상황이다 싶어서요."
히메가 하늘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설탕으로 된 눈은 아름답게 빛나며 하늘하늘 내려오고 있었다.
...
행정부의 깊은 곳.
이곳에서는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간부들과 행정부의 수뇌부들이 모여 있었다.
블랙 그룹에서도 한 명이 있었는데, 바로 모르가나 블랙 회장이었다.
["지금부터 아직 태어나지 않은 회장님의 전언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모여 집중하고 있자, 중앙 시스템이 모인 이들에게 말했다.
["아시다시피, 여기 계신 분들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회장님의...다른 자식들이 있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우리 가차랜드 외에도 말입니다."]
모여 있는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회장이 처음부터 가차랜드의 중요한 순간에만 태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가차랜드의 초창기에는 언제나 회장이 가차랜드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여기 있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차원들이 생겨나며 아직 태어나지 않은 회장의 시선이 분산되어 지금의 상태가 되었다는 것도 모두 아는 사실이었다.
["회장님께서 제안하셨습니다."]
모든 이들의 관심이 중앙 시스템에게 몰렸다.
["차원과 차원 간의... 교류를 말이죠."]
그건, 가차랜드에서도 꽤 큰일이 될 발언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