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화 〉 [189화]낯선 손님들
* * *
"이거 보세요. 이게 바로 메타죠!"
성좌 아임 낫 리틀이 우쭐거렸다.
그녀는 이번에 새로 나온 ALL 4 ONE이라는 신작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기본적으로 4인 파티를 구성해 마족을 토벌하는 RPG 게임이었다.
도미닉 경의 열렬한 팬인 그녀의 파티는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탱커 도미닉 경, 스팀펑크 도미닉 경, 야전사령관 도미닉 경, 그리고 나이트 배너렛 도미닉 경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4탱커라는 무식한 조합이었으나, 도미닉 경 특유의 높은 스탯과 좋은 특성, 그리고 특수 능력 덕분에 시간은 조금 더 걸릴지언정 안정적인 플레이가 가능했다.
"이거 보세요. 매일 저한테 전략이 부족하다느니 피지컬이 부족하다느니 하던 사람들 다 어디 갔을까? 이게 전략이고 이게 피지컬이죠!"
성좌 아임 낫 리틀이 더욱 우쭐거렸다.
현재 그녀는 3챕터의 보스 타락한 추기경 빈딕투스의 토벌을 눈앞에 둔 상태.
빈딕투스는 사악한 의식으로 도시 하나를 통째로 언데드 소굴로 만들었다는 설정답게 무식할 정도로 많은 잡몹들을 소환했지만, 탱커인 도미닉 경들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아, 재미없게 이걸;;이건 전략도 피지컬도 아니고 그냥 돈으로 찍어 누르는 거잖아요.
"언제는 카드 뽑는 것도 실력이라면서요? 당연히 이건 실력이죠!"
아임 낫 리틀은 평소처럼 시청자들과 투닥거리고 있었다.
"아무튼 이제 거의 다 잡았네요. 이제 한 1분 정도면 잡겠어요."
4딜러 팟이었으면 20분 전에 잡았을 듯.ㄹㅇㅋㅋ
"에이, 그랬으면 진즉에 2페이즈에서 전멸했겠죠. 2페이즈 광역기 살벌한 거 봤잖아요?"
아임 낫 리틀은 여유를 부리며 게임 화면에서 눈을 떼고 채팅창을 바라보았다.
이제 빈딕투스의 체력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
그리고 도미닉 경이 영광스러운 마지막 일격을 때리려는 그때
[긴급 공지.]
시스템 창이 눈앞에 뜨면서 게임이 멈춰버렸다.
"어? 어어? 잠깐, 왜 갑자기 공지가 뜨죠?"
?아무래도 긴급 공지인 듯.
아임 낫 리틀은 갑작스러운 시스템 창의 출현에 당황해 키보드와 마우스를 마구 두드렸다.
ALL 4 ONE은 하드코어 한 게임이었기에 일시 정지를 해도 게임 내부의 시간이 그대로 흘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키보드와 마우스를 눌러도 눈앞에 있는 시스템 창이 사라지지 않자, 아임 낫 리틀은 이내 체념한 채 공지를 읽기 시작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회장님의 뜻으로 콜라보 이벤트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저희도 아직 태어나지 않은 회장님의 의도를 잘 모르겠으나, 현재 콜라보 대상이 된 세 곳은 다음과 같습니다.슈가하트 왕국, 페럴란트, 그리고 오크도크 부족 연맹.]
[다행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이번 콜라보는 실험을 위해 일시적으로 진행됩니다.]
[콜라보가 진행되는 동안 시스템이 불안정해질 예정입니다.]
[혼란스러우실수도 있으니, 대비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이거... 괜히 진지하네요?"
아임 낫 리틀이 공지를 읽고 내린 평가였다.
평상시의 시스템이 공지나 패치 노트를 쓸 때는 괜히 활발하고 유쾌하게 적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지금 시스템 창에 드러난 글은 장난기 하나 없이 웃음기 쫙 뺀, 진지하기 그지없는 글.
아임 낫 리틀은 그만큼 이번 공지가 중요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콜라보, 콜라보라..."
그나저나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지 않음?도미닉 경 다 죽어 가는데?아, 그걸 왜 말해 줌;;
"어?"
아임 낫 리틀이 문득 채팅창에 나온 말을 보고 바로 고개를 돌렸다.
게임 화면을 보던 아임 낫 리틀이 얼빠진 소리를 내었다.
이미 나이트 배너렛 도미닉 경과 야전사령관 도미닉 경은 쓰러진 상태였고, 스팀펑크 도미닉 경과 탱커 도미닉 경은 분전하고 있었으나 당장 손쓰지 않으면 쓰러지기 직전인 상태였다.
"어, 어어?"
그러나 아임 낫 리틀은 이 갑작스러운 상황을 판단하지 못하고 얼이 빠져 버렸다.
결국 마지막 한 대를 남기고 전멸해 버린 도미닉 경 파티.
"..."
아, 방장 과금도 실력이라더니 과금해도 못이기쥬?아ㅋㅋ 이게 메타지ㅋㅋ
"아니, 이건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갑자기 공지가 떠서 못한 건데 실력이랑 무슨 상관이에요!"
아임 낫 리틀이 억울하다는 듯 시청자들에게 소리쳤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여전히 아임 낫 리틀을 놀리는 데 전념할 뿐이었다.
콜라보라는 대형 이벤트를 잊은 채.
...
"여기가 어디지?"
"글쎄올시다. 확실한 건 당신이 길치라는 사실이지."
가차랜드의 외곽.
여기엔 갑자기 나타난 성직자와 용병이 있었다.
성직자는 질 좋은 하얀 예복을 입고 높은 관을 쓰고 있었는데, 키가 크고 깡 마른 체구에 깐깐해 보이는 외모를 하고 있었다.
반면 용병은 키가 큰 성직자보다도 머리 두 개는 더 컸으며 체구는 네 배나 더 컸는데, 마치 오우거나 트롤을 보는 것 같이 험악하게 생겼다.
용병은 자기 키만큼이나 큰 대검을 잠시 어깨에 기댄 채 버섯처럼 보이는 큰 모자를 고쳐 썼다.
"도대체 왜 거기서 숲으로 들어선 거요? 그것도 안개가 가득 낀 숲을 말이오."
"그야... 누군가가 나를 불렀기 때문이지."
용병의 투덜거림에 성직자가 괜히 심통을 부리며 말했다.
분명히 성직자가 잘못한 상황이었으나, 성직자의 자존심이 자기 잘못을 용납하지 못한 것이다.
"부르긴 누가 불렀다는 겁니까."
"성령이 아니겠나?"
"성령은 무슨. 애초에 성지를 순례할 거면 그냥 바로 갈 것이지, 중간중간 호기심만 많아서는..."
"크흠."
용병의 투덜거림이 더 심해졌다.
그러나 성직자는 자기 잘못을 알고는 있었기에 차마 용병을 나무랄 수는 없었다.
"그나저나, 여긴 어디지?"
성직자가 말을 돌리려는 듯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글쎄올시다. 적어도 페럴란트는 아닌 것 같은데."
용병이 높은 건물들을 보며 말했다.
용병은 페럴란트에서 못 가 본 곳이 없다고 자부하는 베테랑이었기에 적어도 이런 양식의 건축물이 페럴란트에 없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국경을 넘은 건가?"
"그럴 리가. 그곳은 국경과 한참 떨어진 곳이오. 아무리 숲이 넓더라도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성직자의 말에 용병이 고개를 저었다.
"안개가 그리 자욱했는데, 국경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나?"
성직자가 용병의 말에 대꾸했다.
"그야, 페럴란트 국경 주변엔 저런 높은 건물은 없으니까."
용병이 퉁명스럽게 말하며 자꾸 흘러내리는 모자를 고쳐 썼다.
"페럴란트는 척박한 곳이오. 그 주변이라고 다를 건 없단 말이오."
"...그런가."
성직자가 용병의 말에 납득했다.
애초에 마족들과 싸운 전장이라는 사실과 수많은 영웅들이 잠든 곳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페럴란트는 정말 별 볼 일 없는 곳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일단 여기가 어디인지 확인이라도 해야 할 텐데... 아, 여보시오. 여기가 어디요?"
성직자는 마침 지나가던 사람을 하나 붙잡았다.
그는 머리카락을 앞으로 바짝 세워 돌돌 만 이상한 머리를 한 사람이었는데, 의복도 그렇고 꽤 심상치 않은 사람이었다.
"앙? 너흰 뭐냐!"
"나는 페럴란트의 주교인 아르쿠스고, 이 친구는 내 호위이자 용병인 오그레손이라고 하오."
"아앙? 페럴란트? 외부인이냐! 여긴 가차랜드다 임마!"
불량하기 그지없는 사람이로다. 성직자 아르쿠스가 그렇게 생각했다.
"가차랜드라니, 그게 어디에 있는 지역이오?"
용병 오그레손이 물었다.
오그레손은 아르쿠스보다는 조금 더 이런 상황에 익숙한 편이었다.
"가차랜드는 가차랜드지 임마! 보아하니 외부에서 온 사람들인 것 같은데, 이거나 받으라고!"
불량한 사람이 주머니 두 개를 아르쿠스와 오그레손에게 툭 던졌다.
무심코 그 주머니들을 받은 둘은 도대체 이 주머니가 뭔지 궁금해 그 자리에서 주머니를 열어 보았다.
안에는 붉은색 포션이 가득했다.
"내가 요즘 알바를 3개 뛰어서 자금이 조금 넉넉하단 말이다! 그러니까"
"이게 도대체..."
아르쿠스가 놀란 눈으로 포션을 하나 꺼내 유심히 바라보았다.
놀랍도록 신비한 붉은 물약.
이건 분명히 포션이 아니던가.
그 비싼 포션을 이만큼이나 주다니.
"말을 끊지 말라고! 뉴비니까 봐준다! 아무튼 그거 고작 내 한 달 생활비의 절반밖에 안 하니까 부담 가지지 말고 팍팍 쓰란 말이다, 뉴비 녀석아!"
그렇게 말한 불량배가 휘적휘적 걸어 골목으로 사라졌다.
"더 주지 못해서 미안!"
그렇게 마지막 말을 건네고서는 말이다.
"...이거 정말 포션이오?"
오그레손이 놀란 눈으로 아르쿠스에게 물었다.
아르쿠스는 대답 대신 허리춤에 찬 예식용 단검을 꺼내 손가락 끝을 살짝 벴다.
피가 흘러나오자, 아르쿠스가 포션 하나를 따 조심스럽게 다친 손가락 위로한 방울 떨어뜨려 보았다.
그러자 순식간에 아무는 상처.
아르쿠스는 벌렁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오그레손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이건 포션이 맞는 것 같네."
아르쿠스와 오그레손은 이 엄청난 보물더미에 놀라 그저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
이러한 일은 아르쿠스와 오그레손에게만 일어나지 않았다.
"여기가 어디지?"
"모르겠다 뿅! 하지만 엄청난 스위티 에너지가 느껴진다 뿅!"
프릴이 가득 달린 드레스를 입은 소녀들과 말하는 귀여운 동물들.
"두목! 여기가 목적지인가 보다!"
"멍청한 녀석아! 어떻게 봐서 여기가 목적지야! 우린 인간들의 요새로 가야 한다!"
"하지만 여길 봐라! 높은 벽과 강해 보이는 인간들이 잔뜩이다! 여기가 바로 요새 맞다!"
"...그런가?"
어딘가 모자라보이는 오크들도 가차랜드 곳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의 등장으로 가차랜드에 어떤 새로운 바람이 불게 될까?
그건 지켜봐야만 할 일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