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8화 〉 [187화]이상현상 : 미스 달콤달콤
* * *
"저기, 저 좀 여기서 꺼내주시겠어요?"
도미닉 경은 인절미 가루에 파묻힌 사람을 바라보았다.
분홍색과 붉은색, 그리고 보라색으로 재단된 고스로리풍 드레스를 입고, 사탕과 젤리가 가득 달린 탑 햇을 쓴 여성.
분홍색에 하얀 브릿지를 한 긴 머리에 일자로 자른 앞머리는 눈을 가리고 있었다.
그녀는 인절미 가루 위로 상반신만 내밀고 있었는데, 인절미 폭풍의 영향으로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바라만 보지 말고 좀... 도와... 주시겠... 으으."
여성은 억지로 몸을 빼내려는 듯 드러나 있는 팔로 땅을 밀어내고 있었으나, 힘이 부족한지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
모기처럼 작은 목소리로 힘겹게 도움을 청하던 그녀에게 사람들의 시선이 몰렸다.
꽤 내성적인 성격이었는지 도움을 요청하던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더 작아졌다.
그리고... 이내 울먹이기 시작했다.
"이런 건 계획에 없었는데... 분명 멋지게 빠져나갈 수 있었는데..."
여성이 패닉에 빠져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긴 앞머리로 인해 눈을 볼 수는 없었으나, 분명히 그녀는 울고 있으리라.
"...혹시 미스 달콤달콤이야?"
도미니카 경이 물었다.
그녀의 복장은 자신을 강하게 주장하려는 듯 달콤한 것들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하면 여기서 꺼내주실 거예요?"
여성이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말했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이 여성은 미스 달콤달콤이 맞는 듯 보였다.
...
"감사합니다. 하마터면 생매장 당할 뻔했어요..."
미스 달콤달콤이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얼마나 절도 있게 감사 인사했던지, 그녀가 쓰고 있던 모자가 공중에 뜬 채 그녀의 상체만 굽실거릴 정도였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그녀의 머리에 탑햇이 다시 자리하자 그녀는 모자를 매만지며 또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정말 당신이 미스 달콤달콤이오?"
도미닉 경이 미스 달콤달콤에게 물었다.
도미닉 경은 도저히 눈앞의 내성적인 소녀에게서 방금 전 당당한 빌런을 연상할 수 없었다.
"아무리 봐도 방금 전과 전혀 성격이 다른 데."
도미니카 경이 말했다.
도미니카 경이 보기에도 방금 전의 빌런과 지금의 미스 달콤달콤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그... 제가 사실 너무 내성적인 성격이라..."
미스 달콤달콤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꿍얼거렸다.
"그... 죄송한데요... 저 잠시 변장이라도 하면 안 될까요...?"
미스 달콤달콤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여린 마음으로는 도저히 지금 상황에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그러시오."
도미닉 경이 도미니카 경과 히메를 바라보았다.
도미니카 경과 히메 둘 다 고개를 끄덕였다.
물어볼 것은 산더미처럼 많은데, 지금 미스 달콤달콤의 상태를 보면 도저히 무언가를 물어볼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미스 달콤달콤이 또 한 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풍성한 프릴이 달린 치마 아래에서 메이크 업 도구 상자를 꺼내더니, 이내 얼굴에 대고 분칠을 하기 시작했다.
앞머리를 까고, 진한 분칠을 하고, 광대가 도드라지게 과한 볼터치를 하고, 강렬한 붉은 립스틱을 칠한 미스 달콤달콤.
마지막으로 스포이드를 꺼내 도미니카 경의 갈색 머리카락을 콕 찍은 미스 달콤달콤은 다시 페인트 통을 꺼내 머리 위에서 뒤집었다.
미스 달콤달콤의 머리에 뒤집어쓴 페인트가 방울져 뚝뚝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그곳에는... 분홍색이 가득한 고스로리풍 드레스를 입은 도미니카 경이 있었다.
"후. 살 것 같네. 내가 얼굴이 드러나면 부끄러움이 많아지는 성격이라서."
미스 달콤달콤이 도미니카 경의 얼굴로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누가 보더라도 고혹적인 미소.
그야말로 팜므파탈.
도미니카 경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내 얼굴로 그런 표정 짓지 말아 줄래?"
도미니카 경이 화난 듯 주먹으로 벽을 쿵 쳤다.
아직 건물에 붙어 있던 인절미 가루가 우수수 떨어졌다.
"뭐, 그렇다면야."
미스 달콤달콤이 고개를 끄덕였다.
놀리는 것은 언제나 재미있는 일이지만, 완전히 사로잡힌 상태에서 도발은 좋은 선택지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도미닉 경이 이 난장판을 수습하려고 말을 꺼냈다.
"당신이 미스 달콤달콤은 맞는 거요?"
"맞아."
미스 달콤달콤이 즉답했다.
"내가 바로 빌런, 미스 달콤달콤이지, 허니."
도미니카 경의 모습으로 도미닉 경에게 애교를 부리기 시작한 미스 달콤달콤.
그러나 도미닉 경은 그런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떠오르는 의문만 꺼냈다.
"도대체 왜 가차월드에 이런 일을 저지른 거요?"
"와 세상에. 너 남자 아니지?"
미스 달콤달콤이 재미없다는 듯 야유를 보냈다.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 앞에서 뭐 할 말 없는 거야?"
"묻는 말에나 대답하시오."
도미닉 경이 말을 돌리려는 미스 달콤달콤을 노려보았다.
도미닉 경의 뒤에선 도미니카 경이 부끄러움을 참으려 벽을 계속 두드리고 있었고, 히메는 이 촌극이 우스운지 고개를 돌리고 웃음을 참고 있었다.
"재미없어라."
미스 달콤달콤이 김이 빠진다는 듯 축 늘어졌다.
왜 저런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거람? 미스 달콤달콤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뭐, 이건 사실 재미로 그랬어."
"재미로?"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프로젝트의 일환이긴 하지만 일을 벌인 건 내 독단이야."
미스 달콤달콤은 정말 모든 것을 나불나불 말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기상 현상을 이상하게 만든 건 모두..."
"그래."
도미닉 경의 되물음에 미스 달콤달콤이 즉답했다.
"모든 건,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거지. 왜냐고? 난 빌런이니까."
미스 달콤달콤이 도미니카 경의 모습으로 매혹적인 자세를 취했다.
도미니카 경이 당장에 총을 뽑아 들었으나 히메의 만류로 다시 진정할 수 있었다.
"...좋소. 이유 없는 사건. 빌런의 동기로 충분할지도 모르겠소."
도미닉 경은 미스 달콤달콤의 말에 납득했다.
하지만 아직도 여러 가지 의문점은 남아 있었다.
도미닉 경이 그중 하나를 입 밖으로 꺼냈다.
"그나저나, 왜 히메 공의 모습으로 변장한 거요? 당신이 부끄러움이 많아 본 모습을 드러내기 싫어한다는 사실은 알겠으나, 왜 하필 히메 공이었소?"
"어라. 그러네. 왜 히메 양이었을까?"
미스 달콤달콤이 빙글빙글 웃으며 애교를 부렸다.
그러나 여전히 도미닉 경은 요지부동.
이것도 아닌가 보네. 라고 말한 미스 달콤달콤이 이내 재미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뭐랄까... 재밌을 것 같기도 했고. 애초에 내가 미스 달콤달콤이잖아? 달콤한 과자와 사탕, 젤리 뿐만 아니라 허니, 스위티, '여보옹'이나 '자기잉' 같은 달달한 인연도 좋아한단 말이지."
미스 달콤달콤이 의도적으로 칭호를 말할 때 콧소리를 가득 집어넣었다.
강인한 도미니카 경의 모습과 전혀 맞지 않는 애교에 도미니카 경이 뒷목을 잡고 쓰러졌다.
놀랍게도,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는 탱커인 도미니카 경마저 쓰러뜨릴 정도로 파급력이 컸다.
"...그래서."
도미닉 경마저 그 위화감이 가득한 끔찍한 행위에 정색했다.
"정확한 이유가 뭐란 말이오?"
"그야... 지금 가차랜드에서 가장 사랑에 빠진 소녀가 바로"
"그만! 그마안! 멈춰요!"
히메가 당황한 듯 손발을 휘적거리며 미스 달콤달콤의 말을 막았다.
그녀의 머리엔 이미 여우 귀가 쫑긋 솟아난 상태였다.
"더 이상 말하면 가문의 힘을 빌려서라도 당신을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히메가 미스 달콤달콤을 노려보았다.
"...세상에. 무서워라. 이거 무서워서 말이나 제대로 하겠어?"
미스 달콤달콤이 히죽히죽 웃었다.
역시 달달한 게 최고라니까. 라고 생각하며.
"뭐, 그래. 아무래도 그 질문은 누군가의 강력한 부탁으로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네."
"...그렇소?"
도미닉 경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아무튼..."
도미닉 경이 다리를 후들거리며 일어나는 도미니카 경과 완전히 새빨개진 얼굴로 맹렬하게 꼬리를 흔드는 히메를 번갈아 가며 바라본 뒤 말했다.
"더 이상 대화했다간, 다른 사람들이 위험할 것 같군. 아무래도 정신적인 피해를 입히는 것 같은데..."
도미닉 경이 방패를 꺼내 들었다.
"이제 포기하고 잡히시오. 미스 달콤달콤."
"포기는 진작에 했어."
미스 달콤달콤이 도미니카 경의 모습으로 양팔을 도미닉 경에게 뻗었다.
그리고 사랑이 가득한 표정으로 도미닉 경을 도발했다.
"그래서, 넌 도미니카 경의 모습을 한 나를 제압할 수 있을 꿻."
도미닉 경은 무의식적으로 애교가 가득한 미스 달콤달콤의 얼굴에 방패를 휘둘렀다.
그냥 휘두른 것도 아니었다.
모서리로 정확하게 그녀의 인중을 때린 것이다.
그야말로 무의식의 극의, 무의식이 만들어낸 위대한 일격!
그 일격에 맞은 미스 달콤달콤은 그 자리에 털썩 쓰러졌다.
도미닉 경이 쓰러진 미스 달콤달콤의 곁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내게도 정신 공격을 시도하려고 했겠지만..."
도미닉 경이 개구리처럼 엎어진 미스 달콤달콤을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도미니카 경의 얼굴이었으나, 도미닉 경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진정한 기사라면, 그 어떤 유혹도 이겨 낼 수 있어야 하는 법이오."
도미닉 경이 당당하게 말했다.
그 말에 히메가 한숨을 내쉬었다.
도미니카 경은 여전히 미스 달콤달콤의 정신 공격에 빠져나오지 못한 채 부끄러움에 벽을 칠 뿐이었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