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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57화 (57/528)

〈 57화 〉 [56화]청문회 레이드

* * *

틱. 하고 작고 하찮은 소리가 도미닉 경의 귀에 들렸다.

여전히 트롬의 검은 강력한 기운이 넘실거렸고 화려한 이펙트가 나타나고 있었으나, 방금 전의 엄청난 무력과 다르게 정말 미약한 소리였다.

"이게 무슨...?"

이 허접한 일격에 도미닉 경은 자신이 잘못 들었나 귀를 매만지고 잘못 보았는지 손등을 들어 하나밖에 없는 눈을 비볐다.

그만큼 당혹스러운 일격.

그러나 당황한 것은 도미닉 경뿐만이 아니었다.

트롬도 이 황당한 타격감에 놀라 도대체 왜 이런지 생각하느라 눈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버그인가? 트롬은 제일 먼저 버그라고 생각했다.

그는 방금 전까지 트롬은 시종일관 의원들을 압도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어째서인지 전혀 피해를 주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당연한 일이다.

트롬은 알아차리지 못했으나 그는 점점 인간에서 데이터로 변하고 있었다.

가차랜드의 중앙 시스템 그가 양산박의 힘을 쓰면서 올라간 허망할 정도로 허황된 데이터를 보고 그의 가치가 사라져 마지막 발악을 한다고 판단했다.

양산박의 고객들은 하나같이 인생의 막장에 위치한 이들이었고, 결국 양산박의 손에 파멸했다. 예외는 없었다.

중앙 시스템은 빅 데이터를 통해 트롬도 그럴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인생의 끝에 있는 이들은 더 이상 가치를 입증할 수 없다.

가치가 사라진 이들은 이제 완전한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었으나 중앙 시스템은 이런 이들에게 가끔 마지막 찬스를 주고는 했다.

스테이지의 보스가 될 기회를.

시스템은 몬스터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으나, 그 몬스터들은 0과 1로 구성되어 단조로운 행동만 가능했다.

가차랜드를 유지하기 위해선 다양한 패턴을 가진 몬스터가 필요한 법.

중앙 시스템은 이런 인생의 끝자락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기 위해 그들을 데이터화 시켜 보스 몬스터로 만들고는 했다.

그들의 의견은 상관없다. 중앙 시스템은 인간이 아니다. 인간다운 감성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이 내용은 그들이 가차랜드에 오며 작성한 계약에 0.3포인트 크기의 굵은 궁서체로 명시되어 있기에 법적으로도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계약서는 꼼꼼하게 읽어야 하는 법이다.

아무튼 지금 일어난 상황, 즉 이펙트와 공격판정은 있되 피해를 보지 못하는 것은 트롬이 데이터화를 거쳐 보스 몬스터가 되어가는 도중 우연이 겹쳐 생긴 상황이었다.

중앙 시스템에 기록된 그의 스탯과 스킬은 말소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스 몬스터가 되어가며 중간에 스탯이 빈 상황이 발생했다.

아직 인간적인 부분이 남아 있었기에 공격 판정은 일어났으나, 공격력 스탯이 없어 피해 판정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그의 스탯이 사라지고 보스 몬스터의 스탯이 덧씌워지는 그 짧은 순간의 우연.

"이럴 순 없어."

트롬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칼을 붕붕 휘둘렀다.

"이 힘은 압도적일 텐데! 절대적인 힘을, 서버 제일의 힘일 텐데!"

그러나 휘둘러진 칼은 이펙트만 화려할 뿐, 이상하게도 목각인형이 휘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트롬은 있는 힘껏 도미닉 경의 방패에 검을 휘둘렀다.

틱. 틱. 톡. 통. 팅.

그러나 화려한 이펙트와는 달리, 여전히 소리는 허접하고 하찮다.

"도대체 뭘 하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군."

도미닉 경은 이 화려하기만 하고 내용물이 없는 공격에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방패를 내렸다.

톡. 틱. 톡.

검이 도미닉 경의 몸에 닿았으나 도미닉 경은 그저 툭툭 건드리는 느낌이 기분 나쁠 뿐,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저게 바로 양산박의 힘에 취한 자의 말로죠."

머슬만이 씁쓸하게 말했다.

"괜히 양산박이 범죄자 집단으로 불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힘은 사람을 파멸시키지요."

그렇기에 뒷골목에서 양지로 나올 생각하지 않는 것이겠죠. 라고 덧붙인 머슬만은 완전히 스테이지에 귀속되기 시작한 트롬을 지켜보았다.

"도.대채 외!"

문법과 맞춤법이 엉망인 언어가 트롬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트롬은 놀라 입을 막았다.

"내 말히 외이러지?"

혀가 꼬이기 시작한다.

트롬은 점점 괴상한 언어를 내뱉기 시작했다.

"부작용이 일어나기 시작했군요."

머슬만은 당연하다는 듯 트롬을 쳐다보았다.

"양산박의 시스템은 반드시... 언어에 문제가 생깁니다. 문법이 엉망이 되고, 맞춤법은 지켜지지 않으며 마치 국어책을 읽듯 말하게 되죠."

가엾게도.

"불법 시스템의 번역 기능에 문제가 있다고는 들었지만, 부작용이 저렇게나 심한 건 처음 보는군요. 아무래도, 힘을 더 얻기 위해 대가를 많이 지불한 모양입니다. 나중에 한 번 조사해 봐야겠군요. 양산박의 꼬리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전철기는 뭐다? 이는 알 수 없는!"

사람과 짐승을 구분하는 방법은 말이 통하느냐, 통하지 않느냐라는 말이 있다.

도미닉 경은 페럴란트의 오랜 격언을 생각하며 완전히 스테이지에 귀속된 트롬을 바라보았다.

눈앞에 있는 자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과연 지금의 그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럴순 업다! 무어가 잘못댄 것.이 틀림업다! 그래, 나리. 이건 탱커의 음모입니다다! 눈 압에 이건 뭐입니까? 광고? 알 수 없다! 스킵! 스킵!"

여전히 트롬은 인간의 모습에 화려하지만 촌스러운 장비와 강력해 보이는 부착물들을 달고 있었다.

진은으로 된 봉황과 용이 그려진 갑옷은 이름표가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으며 마지막까지 성장한 용이 그의 뒤에 있었다.

그러나 그는 시야 가득 광고가 띄워져 있었고, 아래엔 200연차라고 적힌 상자가 보였으며, 스스로 움직이려고 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했다.

이제 더 이상 그는 의원 트롬이 아니었다.

미쳐 버린 청문회의 망령, 양산형 보스 트롬이 되어 버린 것이다.

도미닉 경과 청문회의 의원들은 트롬을 바라보았다.

도미닉 경은 트롬을 보며 가차랜드의 가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고 있었다.

가차랜드를 처음 겪었던 때엔 여기서 유쾌하고 즐거운 일만 가득할 것으로 생각했으나, 뜻밖에 가차랜드는 가치가 없는 이들에게 가차없었다.

나도 나중에 가치가 사라지면, 트롬처럼 추한 모습이 될까?

도미닉 경은 트롬을 보며 철학적인 사색에 빠졌다.

그러나 다른 의원들은 말 그대로 다른 의미로 트롬을 바라보고 있었다.

"보상 테이블 언제 연결되지?"

"기다려. 퍼스트 킬은 내꺼야. 레이드면 보상이 달달하겠지?"

"그래도 수백 명이 참가하는 레이드잖아요. 요즘 막타친다고 뭐 줍니까? MVP를 노려야지."

그렇다.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직원들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레이드와 스테이지는 가차랜드의 기본이었으나, 가끔 드물게 중앙 시스템의 변덕으로 돌발성 이벤트와 야생 스테이지, 그리고 인스턴트 레이드가 나타나기도 했다.

말 그대로 무작위로 나타나는 이 컨텐츠들은 정기적인 컨텐츠에 비해 보상이 꽤 짭짤한 편이다.

이런 무작위 이벤트를 찾아다니는 모험가가 따로 존재할 정도로 기존에 비해 희귀한 보상이 떨어진다.

의원들은 가차랜드에서 최소 수십 년 이상을 살아왔으며, 모두가 4성 이상일 정도로 가차랜드를 즐기며 사는 사람들.

그런 이들이 이런 이벤트를 놓칠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까진 왜 소극적으로 행동했는가?

"보상 테이블이 연결되었네요. 이제 잡으면 보상이 드롭될 겁니다."

보고서를 보내고 답신을 받은 운영팀장이 사람들에게 외쳤다.

그렇다. 의원들은 보상 테이블이 연결될 때까지 기다린 것이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다른 계획이 필요 없었을지도 모르겠군요."

의장은 높은 곳에서 스테이지에 귀속되어 버린 트롬을 바라보았다.

마치 법정에서 죄인을 내려다보던 판사가 판결을 내리듯, 의장은 망치를 두드려 선고했다.

"지금부터 트롬 의원은 그 자격을 잃었기에 부득이하게 의원직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혹시 트롬 의원의 해임을 반대하거나 다른 의견이 있으신 분?"

그러나 의원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트롬은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갇은 공격수끼리 같이 살아야 하지 않나습니까, 나리. 버리지 말아 주십다, 나으리. 의원 트롬이 이렇게 빕.니,다."

트롬은 마지막으로 사람들의 감성에 호소했다.

적어도 근접 딜러 연합은 자신을 이렇게 무시해서는 안 됐다. 자신이 얼마나 당에 헌신했던가!

이미 데이터화가 끝나 보스가 된 그의 앞에 [살려 준다], [처치하다]라고 적힌 선택지가 떠오르며 [살려 준다]가 팔딱거렸다.

트롬은 미친 듯이 살려 준다를 향해 휘적거렸으나 그에겐 선택권이 없었기에 그의 손은 그저 허공을 가를 뿐이다.

트롬은 사람들에게 애처로운 눈빛을 보냈다.

그러나 의원들은 트롬을 가만히 둘 리가 없었다.

이미 레이드 준비는 끝났다.

모르가나 블랙 회장은 이미 시스템 인더스트리 운영팀장과 조율을 끝내고 모든 의원들에게 온갖 종류의 포션과 수리도구를 팔았다.

이미 만반의 준비가 끝난 의원들의 눈빛은 이지적인 인간의 눈이 아니라, 먹잇감을 노리는 짐승의 것이었다.

그 모든 것을 바라보던 도미닉 경은 가차랜드를 이해하려면 아직 멀었구나, 라고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신, 그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행복하지 않으면, 머리가 복잡해 미칠 것 같았으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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