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화 〉 [55화]청문회 레이드
* * *
히메와 집사는 블랙 그룹의 본사에 도착했다.
"감사합니다. 공주님. 덕분에 제시간을 맞출 수 있었습니다."
달린 것은 집사였고 히메는 그저 업혀왔을 뿐이지만, 빠른 속도에 멀미가 난 히메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화장실을 찾았다.
속에서 무언가가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회장님께서 말씀하신 분들이 여러분들입니까?"
본사의 로비에 서 있던 집사와 히메에게 누군가가 다가왔다.
"반갑습니다. 블랙 바이오의 사장, 돈 미카엘로입니다."
돈 카스텔로와 닮았으나 더 노련해 보이고 세월을 정통으로 맞은 이가 손을 내밀었다.
"지금부터 이 데이터는 가차랜드의 모든 방송국에 전달될 겁니다."
돈 미카엘로가 살이 통통하게 오른손을 내밀어 집사가 가져온 물건들을 건네받았다.
"없어도 그만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후폭풍을 최소화하려면 해야만 하는 일이지요."
집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받은 명령서에도 비슷한 말이 있었다.
더 나은 가차랜드를 위해 필요한 가지치기라는 대목이었다.
"그럼 이만"
"실례지만 하나만 물어도 되겠소이까?"
히메는 제멋대로 나오는 닌자식 말투로 돈 미카엘로에게 물었다.
"화장실이 어디외까?"
여전히 히메는 멀미에 시달리며 올라오려는 구토감을 누르고 있었다.
집사의 달리기는 빨랐으나, 안정성은 개판이었다.
...
트롬은 자기 몸에 끓어오르는 힘을 만끽하고 있었다.
시시각각 자기 스펙이 강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장비는 끊임없이 성장하고 교체되며 더 강한 효과가 도배되었고, 어느새 등 뒤에는 강력해 보이는 용이 튀어나와 트롬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무적! 그 어떤 것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
트롬은 자신이 신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신을 뛰어 넘었다고 생각했다.
"내 강함에 떨어라, 약한 것들아!"
트롬은 화려한 대검을 휘둘렀다.
화려한 이펙트가 검의 궤적을 따라 나타나며 아름다운 호를 그렸다.
대검의 궤도에 있던 이 중 하나가 검날을 세워 대검을 막아 냈다.
검과 검이 부딪치자 화려한 이펙트가 터지며 순간적으로 시야를 가렸다.
그러나 어째서일까?
화려한 이펙트와 장비와는 별개로, 굉장히 멋이 없어 보이는 트롬이었다.
하지만 트롬은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가차랜드에서 강함은 곧 권력이었다. 그리고 권력자인 자신이 가장 강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 사이에 이펙트나 장비는 멋있어도 그만, 아니어도 그만이었다. 그저 성능만 뛰어나면 되니까.
"압도적이군. 압도적이야! 마치 신의 힘이 아닌가!"
트롬은 크게 웃으며 다시 대검을 휘둘렀다.
어째서인지 몇 번 휘두를 때마다 시야를 가리며 떠오르는 광고창이 거슬렸으나, 5초만 기다리면 스킵할 수 있었기에 조금만 불편함을 감수하면 되었다.
압도적인 강함 앞에서, 조금의 불편함은 사소한 것이었다.
그러나 트롬의 강함과 상관없이 다른 이들은 오히려 트롬을 불쌍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아, 이거 PVP로 적어야 하나, PVE 레이드로 적어야 하나..."
운영팀장은 머리를 긁적이며 시스템 인더스트리에 보낼 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트롬이 의원들을 적대한 이상, 가차랜드의 시스템은 트롬을 보스 몬스터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절반은 인간이었기에 구분이 애매해진 것이다.
"아 몰라. 그냥 PVP 보스 레이드로 적고 왜 이렇게 적었냐고 물으면 시말서 쓰지 뭐."
운영팀장은 느긋하게 보고서의 기타 양식에 PVP 보스 레이드라고 적었다.
운영팀장은 펜을 들고 신경질적으로 정수리를 긁었다.
아직 적을 것이 너무 많았다.
운영팀장만 느긋한 것이 아니었다.
이미 의원들은 양산박의 힘에 취한 트롬을 적으로 간주하고 각자의 장비를 교체하고 있었다.
"이건 PVP 세팅이 필요합니까, 아니면 레이드 세팅이 필요합니까?"
"글쎄. 저번 선례를 보자면"
초임 의원들은 선임 의원들에게 공략법을 물었고, 선임 의원들은 각자 생각하는 장비 세팅을 마친 채 트롬이 언제 행동할지 기대하는 중이었다.
그렇다.
청문회장의 그 누구도 트롬의 강력함에 위축된 이는 없었다.
"존슨 리 운영팀장님? 블랙 그룹에서 스테이지 내부의 상점을 열어도 될까?"
모르가나 블랙은 머릿속에서 이미 이 상황을 레이드로 규정하고 행동하고 있었다.
레이드가 열리면 물약과 장비 수리비가 꽤 쏠쏠한 이득을 챙겨 주는 법이다.
"마음대로 하시죠. 아직 열 세 장은 더 적어야 해서."
운영팀장은 이제 보고서의 서른 여섯 번째 페이지를 기입하고 있었다.
쓸데없이 자잘한 양식이 많았으나,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특성상 이런 비효율적인 행정처리는 일상이었다.
"감히, 감히! 이렇게나 강한 나를 무시하다니! 평상시에도 얼마나 나를 무시했을지 안 봐도 뻔하군!"
"봤잖습니까. 평소에 당신이 어떤 취급을 당했는지."
머슬만이 트롬의 말에 반박했다. 트롬은 어이가 없는지 말문이 막혀 어버버 거리고 있었다.
"그래, 네놈은 항상 탱커라는 높은 위치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그나저나 도미닉 경. 물어보고 싶은 거라도 있습니까?"
트롬은 분을 이기지 못하고 머슬만을 도발하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머슬만은 도미닉 경에게 지금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도미닉 경이 도대체 이건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한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미닉 경은 완전히 분노해 날뛰기 시작한 트롬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자가 강해진 건 맞지만, 어째서인지 원래보다 약한 느낌이 들어서 그렇소."
도미닉 경은 이 모순된 감각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으나 머슬만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일입니다. 가차랜드의 특징 때문이지요."
"특징?"
"가치 말입니다."
머슬만은 이제 완전히 보스화되어 스테이지에 귀속된 불쌍한 트롬을 보았다.
"양산박에게 받은 힘은 단기적으로 보면 강해지긴 합니다만, 이는 겉으로 보이는 스탯의 상승입니다. 물론 가차랜드에서는 성능도 가치에 들어가긴 하지요."
머슬만이 힐끗 운영팀장을 바라보았다.
마침 운영팀장은 보고서 작성을 끝내고 모르가나 블랙과 상점의 물건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성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비교할 대상이 없다면 어떨까요? 성능이 좋아도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면? 성능은 가치를 위해 존재하는 요소지, 가치를 해쳐가면서 가질 요소가 아닙니다."
트롬은 그 사실을 망각한 것이죠. 불쌍하게도. 라고 머슬만이 혀를 찼다.
가차랜드에서 가치란 목숨보다 중요한 것이었다. 목숨은 가치를 입증하기만 한다면 무한했으니까.
"무엇보다 가차랜드 중앙 시스템은 상태창의 다양함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양산박의 시스템은 중앙 시스템이 허가하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머슬만은 도미닉 경의 대답을 기다리겠다는 듯 흥미로운 눈으로 도미닉 경의 눈을 바라보았다.
도미닉 경은 갑자기 몰아치는 정보의 파도에 정신이 없었으나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다.
"그"
"내 공격력은 23경 3800조다! 힘은 22억이고 민첩은 17억이야! 그 누구도 나를 이길 수 없다!"
그러나 트롬의 말이 먼저였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 엄청난 수치를 외쳐 뽐내고 있었다.
그런 트롬의 말에 머슬만은 답이 나왔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어린애들이 자캐 만들 때나 보이는 수치를 누가 가치 있다고 보겠습니까? 그저 웃음벨일 뿐이지. 시스템도 그 사실을 알기에 양산박의 시스템에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는 겁니다. 시스템 자체의 가치가 훼손될 것이라고 판단하거든요."
그렇기에 그들은 양산을 통해 불법 시스템의 점유율을 높이려고 하는 것이지요. 기존의 시스템을 대체할 때까지 말입니다.
머슬만은 트롬의 외침에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도미닉 경은 트롬이 외치는 숫자가 얼마나 큰지는 몰랐지만, 방금 전 처음 본 자기 스탯을 생각하면 압도적인 수치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트롬은 힘에 취해 주변의 의원들을 모두 한 번은 죽였다. 다행스럽게도 가차랜드에서 목숨은 가치가 있는 한 지속적으로 제공되었기에 의원들은 그 자리에서 즉시부활을 통해 다시 나타났다.
모두 죽이겠다는 계획은 초장부터 어긋났으나 트롬은 부활할 수 없을 때까지, 그러니까 너무 많은 패배로 모두의 가치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죽이고 또 죽이겠다고 생각했다.
불가능한 계획이었으나, 이미 양산박의 힘에 취해 뇌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트롬은 이것이 굉장히 놀랍고 천재적인 계획이라며 자찬했다.
그때, 트롬의 눈에 도미닉 경이 보였다.
도미닉 경은 머슬만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다 저 녀석 탓이다. 트롬은 그렇게 생각했다.
엄청난 살의가 트롬의 등골을 타고 올라왔다.
탱커가 사기라지만, 지금의 자신은 도미닉 경을 한 번에 죽일 수 있을 만큼 강하다.
그렇게 생각한 트롬은 도미닉 경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트롬의 살기에 반응해 그가 얻은 '조금만 과금해도 서버 1등이 되는 힘'은 엄청난 오오라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물론 불법적인 시스템이라도 잠깐은 중앙 시스템을 속이는 것 정도는 가능합니다. 그렇기에 지금 트롬 의원이 날뛸 수 있는 거구요 그러나"
트롬이 도미닉 경의 코앞에 다가왔다. 그리고 있는 힘껏 황금과 백금, 그리고 진은으로 장식된 대검을 도미닉 경의 정수리로 내려찍었다.
도미닉 경은 깜짝 놀라 방패를 들어 올렸다.
압도적인 기세의 검날이 도미닉 경의 방패와 충돌했다.
틱.
맥이 빠지는 소리가 도미닉 경의 귀에 들렸다.
순간 소리가 들렸나? 라고 되물을 정도로 작고 하찮은 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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