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3화 (3/528)

〈 3화 〉 [2화]가차랜드 1­1

* * *

"오, 세상에."

도미닉 경은 양복과 악수하던 그 순간 바로 세상이 바뀌었음을 느꼈다.

하늘 높이 솟은 마천루. 그사이에 존재하는 이질적인 톱니바퀴와 익숙한 양식의 건물들.

전광판에는 다양한 클랜을 알리는 광고가 지나가고 있었고, 그 아래에 현수막에는 새롭게 등급이 올라간 이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사람들은 각양각색이었는데, 제각기 자기 성향과 특기를 뽐내기라도 하는 듯 보이는 이들과 계절과 전혀 상관없는 수영복이나 바니걸을 입은 이들도 있었고, 무장도 총기, 검, 활, 대포와 전차처럼 겹치는 것이 거의 없었다.

처음 보는 것들도 많았음에도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이 정도는 기본적인 소양이라며 자연스럽게 주입된 지식이었다.

"이건 또... 신기하군."

도미닉 경은 화려하게 눈길을 사로잡는 전광판과 모니터들을 보며 시골에서 올라온 촌놈처럼 행동했다.

사실 시골에서 온 촌놈은 맞았다.

그가 살던 페럴란트는 제국에서도 외곽 중의 외곽이었고, 오지 중의 오지였다. 평생을 페럴란트에서 살았으며 야전을 전전한 그로서는 이런 도회적인 분위기가 썩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공지사항 : 지금부터 2시간 뒤인 15시, 북부 경기장에서 안 그룬드 클랜과 비예른 클랜 간의 대항전이 있을 예정입니다. 관람을 원하시는 분은 북부 경기장 서쪽 3번에서 7번 게이트로 입장해주시고­]

깜짝 놀랐다.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문구는 처음 보는 글자였으나, 반 이상 문맹인 그도 술술 읽을 수 있었다. 그나저나 대항전이라니. 싸운다는 의미인가? 제법 흥미가 돋는 말이었다.

도미닉 경은 무의식적으로 걸음을 옮겼다. 북부 경기장이 어디 있는지는 알고 있었다. 이 역시 가차랜드를 살아가기 위해 필수적이라며 주입된 지식이었다.

북부 경기장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이내 도미닉 경은 커다란 위기를 맞이하고 만다.

"실례지만, 혹시 클랜을 가입하셨습니까?"

"...아니오."

"그렇다면 혹시 스토리 모드 2­4를 깨셨습니까?"

"글쎄올시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혹시 시즌 패스라도 사셨는지?"

"...어디서 사는 거요?"

"실례지만 그렇다면 입장하실 수 없습니다."

경기장의 입구를 막아선 경비가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이럴 수가. 그가 하는 말은 이해가 되었으나, 또한 이해되지 않았다. 경기장을 들어가기 위해선 조건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그 조건에 맞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끙. 혹시 조건을 충족하려면 어디로 가야 하오?"

"잠시 경기장에 손을 대어 보시겠습니까?"

도미닉 경은 경비의 말을 따라 손을 대어보았다. 그러자 그곳에는 이런 문구가 떠올랐다.

[경기장에 입장하기 위해선 다음과 같은 조건이 필요합니다!]

[스토리 완료! (2­4 클리어 필요) [바로가기]]

[클랜 가입하기! (3­1 클리어 필요)[바로가기]]

[시즌 패스 구입! (1­5 클리어 필요) [바로가기]]

"바로가기를 누르면 되는 거요?"

"적어도 빠르게 이동할 수는 있지요. 가차랜드를 살아가려면 알아 둬야할 테크닉입니다."

도미닉 경은 경비에게 감사의 의미로 고개를 숙이고는 바로가기를 눌렀다. 일단은 가장 빠른 시즌 패스를 통하는 것이 좋겠지.

그러자 그의 몸이 붕 뜨는 느낌과 함께 순식간에 배경이 바뀌었다.

방금 전과는 또 다른 풍경에 잠시 두리번거리는 사이, 또 눈앞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1­1 기초훈련 I☆☆☆]

☆모든 적 처치

☆전원 생존

☆5분 이내로 클리어

아무래도 이것이 스토리 모드인 모양인데...

도미닉 경은 조심스럽게 눈앞에 뜬 문구를 손으로 눌러 보았다.

[!] [에너지 10을 써서 1­1에 입장하시겠습니까?] [네/아니오]

이건 또 황당하군. 도미닉 경은 행복해졌다. 비록 알 수 없는 것으로 가득했으나 본능적으로 이것이 사람의 기본적인 심리를 건드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조심스럽게 도미닉 경은 네를 눌렀다. 그러자 다시금 세상이 변화했다.

이번엔 새하얀 공간과 함께 허수아비가 나타났다.

[기초 훈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1­1에서는 간단한 움직임을 테스트할 것입니다.]

[1­1은 총 5가지 테스트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아주 기본적인 것이니 잘 알아두시길 바랍니다.]

이질적인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누가 말하나 싶어 두리번거리다가 문득 손이 묵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개를 내려보자 평소에 쓰던 검과 방패가 있었다. 이건... 오랜만이라고 해야 하나.

[첫 번째 테스트는 움직이기 입니다. 가볍게 앞뒤로, 혹은 좌우로 움직여보세요.]

나는 지시에 따라 몸을 움직여 보았다. 전후좌우로 움직이자 다시금 그 목소리가 들렸다.

[훌륭합니다. 다음 테스트로 넘어가죠. 점프해 보세요.]

폴짝. 하고 뛰어오르자 무미건조한 박수 소리와 기묘한 환호성이 들린다. 어디선가 팡!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종이 조각이 휘날렸다.

[점프는 훌륭한 게임의 필수요소입니다. 정말 훌륭한 요소! 다음 테스트는 기본 공격입니다. 허수아비를 향해 공격해 보세요.]

흠. 미심쩍었지만 일단 미션을 깨야했기에 검을 휘둘렀다. 평상시보다 가벼운 느낌이 들었지만 충분히 무게감이 있는 공격이었다.

[기본 공격은 특수 공격을 위한 게이지를 채웁니다. 특수 공격을 위한 게이지는 타격시에도 올라가지만 피격시에도 올라갑니다.]

[다음은 특수공격해보죠. 게이지를 소모해 공격해 보세요. 이번 테스트 중에는 게이지가 최대치로 유지됩니다.]

...이건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대충 방패로 치는 시늉을 하니 넘어가는 것을 보아 이런 것인 모양이다.

[마지막 테스트는 앞에서 배운 모든 것을 써야합니다. 도망가는 허수아비를 부수세요!]

마지막이라는 문구가 나타나자마자 눈앞의 허수아비가 도망치기 시작했다. 매우 느린 속도로 도망갔으나 중간중간 장애물이 나타나기도 하는지라 제법 시간이 걸리긴 했다.

마침내 허수아비가 박살 나자마자 시간이 느리게 가기 시작했다.

"...도대체 가차랜드란..."

나는 이 기묘한 경험에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젠 익숙해져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과거와 다르다지만, 지금 살아갈 곳은 여기 가차랜드였으니까.

[☆MVP☆]

[도미닉 경]

[공헌 100%]

...아니. 지금 내 모습이 나오는 것을 보니 아직은 익숙해지지 않을 모양이었다.

나가기 버튼을 누르자 다시 세상이 변했다.

[1­1 기초훈련 I★★★]

[1­2 기초훈련II☆☆☆][NEW!]

다음과 같이 말이다. 나는 문득 경기장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1­5는 깨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방금 전과 같은 난이도라면 얼마든지 오늘 안으로 깰 수 있을 것이다.

의욕적으로 다음 미션을 눌렀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경고! 에너지가 부족합니다. 클랜에 가입해 더 많은 에너지를 얻거나, 주군을 섬겨 당신의 에너지를 늘리거나, 상점을 통해 에너지를 구입하세요!]

아이고. 맙소사. 도대체 저게 다 무슨 말인가.

고개를 저었다.

적어도 하나는 알 수 있었다. 하루에 한정된 에너지를 사용해 스토리를 밀고, 스토리를 밀고 나야 제대로 된 생활이 시작된다는 점.

"어쩔 수 없지. 일단 시간이 지나서 다시 와야겠다."

한숨을 쉬며 돌아가려는 찰나, 다시금 눈앞에 문장이 나타났다.

[하지만 하루 한 번! 무료로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습니다! (0 ­> 10)]

[지금 충전하시겠습니까?] [네./네!]

선택지가 없군. 헛웃음이 나왔다.

손을 들어 [네.] 를 클릭한다. 흐. 황당하기도 하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이 상황을 유도한 사람은 꽤 오래 살 거다. 욕을 바가지로 먹을 테니까.

다시금 손을 들어 미션을 클릭한다.

[1­2 기초훈련II☆☆☆][NEW!]

☆모든 적 처치

☆전원 생존

☆5분 이내로 클리어

[!] [에너지 15를 써서 1­2에 입장하시겠습니까?] [네/아니오]

[!] [에너지가 부족합니다! 안타깝네요.] [알겠어요...]

...정말 오래 살 것이다.

엉망진창으로 사는 나조차 욕이 나올 뻔했으니.

오랜 시간 에너지가 찰 때까지 관찰한결과, 에너지는 3시간에 하나 차는 모양이다.

1­2가 15, 1­3이 20이었으니 하루를 꼬박 채워도 하나 깨기 어려운 셈이었다.

결국 기다리다 못해 다시 도심으로 나왔다. 시간이 꽤 지났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는지 마천루 사이의 하늘은 까맣게 빛나고 있었고, 건물 사이사이에 있는 전광판과 간판들은 더욱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렇게 가다간 내가 원하는 것을 시작하기도 전에 답답해 미칠 것 같다.

무언가 대책이 필요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골목을 지나치며 주입된 지식을 정리해 본다. 분명히 이런 상황에서 헤쳐 나갈 지혜가 그 안에 숨어 있을 것이다.

'1지역 스토리 공략 : 초반은 그냥 악으로 깡으로 버티세요. 꼬우면 접으시던가.'

...찾아낸 것은 지혜라고 부르기엔 엉망진창인 것이었지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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