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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4화 (4/528)

〈 4화 〉 [3화]가차랜드 2­1

* * *

[1지역을 완료하셨습니다. 2지역이 개방됩니다.]

"마침내."

악으로, 깡으로.

도미닉 경은 일주일이라는 시간 끝에 튜토리얼이라고 할 수 있는 1지역을 통과했다.

난이도는 그리 어렵지 않았으나, 가차랜드 내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서비스는 1지역을 통과해야 열리는 구조였다.

[2지역부터는 가차랜드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무작위 시스템이 도입됩니다.]

[2­1 개성 발현 I☆☆☆]

☆모든 적 처치

☆15분 이내로 클리어

☆캐릭터성 1레벨 충족 [NEW!]

눈앞에 뜬 상태창.

도미닉 경은 지금까지 한 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으나, 이내 마지막 줄에 적힌 한 문구에 시선이 멈췄다.

캐릭터성 1레벨 충족.

도대체 이게 무슨 의미일까? 그는 한참 그 문구를 바라보며 고민했다.

오랜 시간 고뇌했음에도 답이 나오지 않았으나, 마침 시스템의 설명이 이어졌다.

[가차랜드에서는 성능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개성입니다.]

[당신은 지금부터 다양한 상황에 직면할 것입니다.]

[그 상황을 어떻게 모면하느냐에 따라 당신의 상태가 결정됩니다.]

도미닉 경은 어느 정도 이해하기는 했으나 완전히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느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래. 일단 직면하고 보는 거다.

도미닉 경은 자연스럽게 2­1로 진입하기 위해 손을 올렸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배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엉망진창으로 뒤섞인 세계로.

뚝. 하고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도미닉 경은 갑자기 어두워진 시야에 당황했으나, 이내 곧 어둠에 적응이 되었는지 흐릿하게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긴... 동굴인가?"

동굴이라.

도미닉 경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 공간이었다.

눈이 하나밖에 없는 도미닉 경은 어두울수록 헷갈리는 거리감이 싫었다.

아예 어둡거나 혹은 아예 밝다면 모르겠으나, 동굴이란 곳은 언제나 어정쩡하게 어두웠다.

특히 이런 동굴에는 언제나 마족이나 언데드가 숨어 있었고, 둘 모두가 아니라면 고블린이나 오크가 숨어 있었다.

곰과 늑대 정도라면 쉬운 축에 속했다.

"그나저나... 15분 이내로 완료해야 한다면, 도대체 무얼 해야 하는 거지?"

도미닉 경은 곰곰이 생각하면서 방패와 검을 들어 올렸다.

이는 본능적인 영역이었는데, 지금까지 그가 겪었던 경험들로 유추했을 때 미리 대비하지 못하면 큰일이 일어나곤 했다.

아니나 다를까, 방패에 충격이 전달되었다. 돌멩이 같은 둔탁한 무언가가 텅­ 하는 소리와 함께 도미닉 경의 발치에 굴러떨어졌다.

"아하."

역시나. 라고 도미닉 경은 생각했다.

아무래도 이 상황을 타개하는 것이 이번 미션의 조건이겠지.

그는 충격이 전달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기껏 적응한 시야가 다시 어두워졌으나, 오히려 어설픈 것보다 나았다.

어둠에 적응하지 못해 시야가 차단되자, 반대로 다른 감각들이 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스무 걸음. 작은 인간형."

그는 평소에 하던 대로 작게 중얼거렸다.

지금은 그 혼자였지만 과거 이런 일을 같이 하던 기사들에게 경고하던 버릇이 튀어나온 것이다.

그러곤 그는 천천히 방패를 머리까지 올리고 앞으로 전진했다.

저 생명체가 어둠에 얼마나 익숙한지는 모르겠으나 도미닉 경의 경험보다는 덜 익숙할 것이라고 믿었다.

걸음을 옮기며 그는 다양한 상황에 대한 대처를 생각했다.

소리가 나지 않으며 공기의 움직임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방패의 건너편에 있는 것은 고블린은 아니라고 생각해야 했다.

대개 이런 상황에서 튀어나오는 작은 인간형의 무언가는 골렘이나 정령, 혹은 인간형으로 조각된 함정 조각상일 가능성도 높았다.

만일 골렘이라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쪼글쪼글하게 변할 테니 바로 옆으로 피해야 했고, 정령이라면 공격할 방도가 없으니 그냥 도망가야 했다.

"그렇다면 함정이길 바랄 수밖에."

도미닉 경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함정이라면 차라리 나았다.

그리고 2지역의 첫 미션부터 부조리한 무언가가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건 감이 아니라 양복이 주입한 지식에 들어 있는 내용이었다.

툭. 하고 무언가 방패에 닿는 느낌이 들었다.

퉁. 하고 둔탁한 무언가가 충돌하는 느낌이 들었다.

함정이군. 그것도 고전적인 화살형 함정.

도미닉 경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함정을 해체하는 방법 따위는 몰랐으나 지금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알았다.

도미닉 경은 방패를 함정 앞에 세우고 검집을 비스듬하게 세워 방패가 넘어지지 않게 지지대로 사용했다.

여전히 방패는 퉁퉁 거리며 무언가 충돌하고 있었지만, 적어도 더 이상 도미닉 경에게 위해를 가하지는 못했다.

함정 하나를 무력화시킨 도미닉 경은 이내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내 완전히 어둠에 순응한 눈이 동굴 내부의 윤곽을 흐릿하게 보여주고 있었으나 더 이상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좋아. 아무래도 이 함정이 완전히 무력화가 되면 클리어겠군.

도미닉 경은 검을 왼손으로 옮겨 한 바퀴 휘릭 돌렸다.

방패의 무게가 사라지자 왼손이 허전했다.

퉁. 퉁. 하고 규칙적으로 들리던 소리가 이내 그쳤다.

혹시 모르니 잠깐 기다리던 도미닉 경은 이내 완전히 무력화되었다고 판단하고 다시 검집과 방패를 수거했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놀라운 기지로 함정을 파악했지만, 기술의 부재로 인한 임기응변으로 상황을 모면했습니다.]

[방패를 사용한 행위로 클리어하셨기에, 특성 [탱커]가 추가됩니다!]

[[탱커] : 저길 보세요! 탱커입니다! 멸종 위기종이죠. 당신은 가만히 있어도 누군가가 파티에 끼워줄 확률이 큽니다!]

[첫 특성을 얻으셨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개성을 추구하기에는 너무 단조롭죠. 2지구를 클리어해 당신의 개성을 늘려보세요!]

어지러울 정도로 올라오는 시스템 창.

"그렇군. 어렴풋이 알 것 같아."

도미닉 경은 가차랜드의 특징을 생각하며 왜 진정한 시작이 2지구를 클리어한 뒤인지 알 것 같았다.

가차랜드의 모든 이들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 라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시너지를 일으키는 특성을 선호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캐릭터로서의 개성을 확립하는 2지구는 필수적인 코스라고 볼 수 있다.

도미닉 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탱커라는 단어가 무엇인지 처음엔 몰랐으나, 지식을 더듬어 최전방에서 피해를 막아 내거나 아군을 수호하는 임무를 주로 한다는 내용을 떠올리고는 나름 괜찮다고 여겼다.

"망설일 것 없지. 에너지가 모이는 대로 다음 미션을 완수하면 되겠어."

그는 스토리 모드에서 빠져나왔다.

미션을 클리어할 때마다 에너지의 상한선도 올라갔으나, 아직 초반부에 불과해 여전히 하루, 혹은 이틀에 하나씩밖에 깨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작 한 시간도 되지 않는 시간.

하루를 24시간으로 보더라도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다.

도미닉 경에게 있어 이 세계를 알아가는 것은 행복한 일이었으나 너무나 짧은 행복이다.

"다른 방법이라도 찾아야겠어. 남은 시간 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말이야."

도미닉 경은 고뇌했다.

엉망진창으로 구겨진 지식을 더듬다 보면 무언가 수가 나올지도 몰랐으니까.

"저기, 실례합니다."

그러나 고뇌는 오래가지 못했다.

피곤한 목소리가 도미닉 경의 등 뒤에서 튀어나왔다.

도미닉 경도 화들짝 놀라 그 자리에서 튀어 올랐다.

"어... 그 정도로 놀랄 일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도미닉 경이 검을 뽑아 들고 뒤를 돌아보자, 거기에는 청바지에 낡은 조끼를 입은 청년이 있었다.

그의 왼손에는 공구통이 있었고, 허리춤에는 무전기로 보이는 것이 달려 있었다.

그의 머리는 길었으나 푸석해 마치 빨간 건초더미를 보는 듯했고, 눈은 크고 선량했으나 그 아래 깊게 드리운 다크서클이 그 선한 인상을 날려 버리고 있었다.

"당신은 누구요?"

도미닉 경은 그의 외관을 통해 그가 자신을 공격할 의사가 없음을 알아차렸다.

그리하여 검을 휘두르는 대신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 [GM 그래머]입니다. 정기점검하러 왔거든요. 시스템 창으로 14시부터 18시까지 점검이라고 공지했는데, 못 보셨나요?"

자신을 GM 그래머라고 밝힌 남자는 구부정한 허리와 구부정한 거북 목을 살짝 피고는 자신에게 겨눠진 검의 옆면을 밀어냈다.

그는 너무나 피곤해 보였다.

얼마나 피곤해 보였는지, 도미닉 경은 머쓱해져서 검을 검집에 수납하고는 사과했다.

"미안하오. 사과의 의미로 이거라도 드리리다."

도미닉 경은 1­3에서 클리어 보상으로 획득한 에너지 드링크를 건넸다.

무려 5의 에너지를 회복할 수 있는 이 작은 병은 그가 내일 어정쩡하게 에너지를 회복했을 때 쓰려고 남겨 놓은 물건이었다.

GM은 그 드링크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거, 그건 당신이 마시세요. 야근하느라 언제나 달고 살고 있다 보니 신물이 납니다."

그러고는 주머니를 뒤져 그와 비슷한 병 몇 개를 꺼내 역으로 건네주었다.

"보아하니 뉴비신 것 같은데, 뉴비가 남에게 주는 거 아닙니다. 뉴비는 받아야 하는 입장이에요."

도미닉 경이 멍하게 그 병들을 바라보자, GM은 억지로 그의 주머니에 에너지 드링크들을 쑤셔 박았다.

"당신 같은 뉴비가 있어야 가차랜드가 삽니다. 기억하세요."

그러곤 GM은 공구통을 내려놓았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방금 도미닉 경이 쉬고 있던 자리에 전선이 가득한 공간이 생겼다. 정기점검이라더니, 저것을 말하는 것인가?

도미닉 경은 주머니에서 강제로 받은 에너지 드링크를 꺼냈다.

무려 10의 에너지를 회복하는 물약이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무려 10개짜리 패키지다.

문득 상점에서 5를 회복시키는 물약이 3000크레딧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 물약의 가치가 얼마인지... 아직은 모르겠다.

그러나 꽤 비싼 것임이 틀림없다.

아. 도미닉 경은 문득 시간을 때울 방법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이는 기회일까? 눈앞에 보이는 이는 이 세계에 대해 잘 아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그에게 시간을 때울 방법에 대해서 물어본다면 답해주지 않을까?

방금 전 그의 행동을 생각하면, 이는 아주 괜찮은 생각이었다.

"저기..."

"뭐! 뭐요! 아. 죄송합니다. 코드가 좀 꼬여서 제 배알도 좀 꼬였던지라. 무슨 일이시죠?"

순간적으로 GM이 버럭 화를 냈다가 순해졌다. 마치 두 가지 인격을 가지고 있었던 언데드 군단장, 기워 붙인 역병 의사가 생각날 정도로 극명한 온도차이였다.

도미닉 경은... 그래. 순간 쫄았다.

그러나 기사로서 서약한 맹세에는 그 어떤 순간에도 뒤돌지 않는 용기를 가지겠노라고 적혀 있다.

도미닉 경은 용기를 내어 궁금한 점을 물었다.

"그... 다른 이들은 남는 시간을 어찌 활용하는지."

그러자, GM의 미간이 슬쩍 구겨졌다.

기분 나쁜 구겨짐은 아니었다. 그저 무언가 생각하는 듯, 눈을 굴리며 먼 과거를 보는 것 같았다.

"음... 아무래도 직업이 있으면 덜하죠. 다만 직업도 잘 선택해야 합니다. 까딱하면 저처럼 잠도 못 자고 구르는 수가 있어요."

GM은 손가락을 접어가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디지털, 서버 관리 같은 현대 직업은 피하시고, 그나마 괜찮은 직업이... SF 쪽도 괜찮고. 혹시나 다른 장르에 거부감이 없으시다면 히어로 계열이나 마법 소녀 계열에서 무너진 건물 복구 같은 것도 괜찮구요, 판타지는 피하세요. 돈은 꽤 괜찮게 벌리는데 화장실이 영... 그리고 조금 빡세도 괜찮다 싶으면 시스템 인더스트리로 찾아가 보세요. 거긴 늘 인력 부족이라."

GM은 속사포처럼 빠르게 추천 직업을 나열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아직 정리된 지식이 없었기에 대부분의 말은 그저 한쪽 귀를 지나 다른 쪽 귀로 흘러나갈 뿐이었고, 그나마 제대로 들은 것이라고는 시스템 인더스트리를 찾아가 보라는 것이었다.

"시스템 인더스트리라... 감사하오."

"네. 그리고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살 수 있겠다 싶으면 그냥 직업 때려치우시는 것도 좋아요. 나중에 가면 이벤트니 레이드니 하면서 바빠질 거라서."

도미닉 경은 GM이라 불린 자를 보며 감탄했다.

그가 보기에 GM은 아주 이 세계에 정통한 현자였고, 또한 아직 무얼 할지 모르는 그에게 있어 이정표로 보였기 때문이다.

"혹시 더 알고 싶으신 게 있다면, 다른 GM들을 찾아가세요. 제가 지금 점검 일정 맞추려면 조금 빡빡할 것 같아서. 그럼 이만."

GM은 그 말을 끝으로 다시 배선을 만지고 있었다.

가끔 '도대체 왜 완벽한 거야? 불안하게.' 라거나 '아, 이거 연장해야 하나...'라고 중얼거렸으나, 도미닉 경에게는 그 말이 마치 마법처럼 들렸다.

아니, 아니지.

도미닉 경은 정신을 차렸다.

주머니에 있던 에너지 드링크를 매만졌다.

당장에라도 이 비약을 마시고 2지역을 깨고 싶었으나, 점검의 영향인지 스토리 모드는 회색으로 비활성화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잘 됐다.

앞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시간을 때울 직업은 필수일 것이다.

마침 GM이 직업에 대해서 말해줬으니, 도미닉 경은 그가 말한 시스템 인더스트리로 향할 생각이었다.

도미닉 경은 조심스레 GM의 등 뒤로 고개를 숙여 경의를 표했다.

그가 봤을지는 모르겠지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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