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118화 (118/404)

118.마나 플라워

세인이 위태롭게 말을 몰아가는 카일의 곁으로 바짝 붙었다.

“말을 탄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엄청 익숙해 보이네요.”

“아직 달리지도 못하는걸요. 겨우겨우 매달려가는 수준에 불과합니다.”

“아니에요. 정말 빨리 배우고 계세요.”

“그런가요. 다행입니다.”

카일이 계면쩍다는 양 코끝을 문질렀다. 그리고는 잠시 망설이다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실은 아까 그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아가씨에게 너무 아까운 기회라, 어렵사리 알려드리게 되었습니다.”

“경지를 넘는 일이라면… 마음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미 그 건에 대해서는 마음을 접었어요.”

세인의 음성은 경쾌했으나, 검을 잡은 한 사람의 검사로서 경지를 돌파할 계기가 찾아왔다는 말은 잊기 쉬운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설마 세인 경, 초급 엑스퍼트 영역을 넘으신 건가요?”

두 사람의 이야기를 얼핏 들은 시안느가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무안했는지 세인이 시안느의 시선을 피했다.

“아뇨. 경지를 뛰어넘었다는 게 아니라, 그럴 기회가 찾아왔다는 거예요.”

“세상에….”

스무 살. 이제 몇 달이 지나면 한 살이 늘기는 하지만, 중급 엑스퍼트에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왔다는 것 자체가, 그녀의 뛰어난 재능을 증명하는 방증이었다.

“이미 지나간 일인걸요.”

“무슨 말이세요. 지금이라도 당장 돌아가 검술수련에 박차를 가해야죠.”

시인느가 자신의 일처럼 버럭 화를 냈다. 중급 이상의 검술을 익힌다고 해도, 모두가 중급의 경지에 오르는 것은 아니었다. 높은 단계의 검술을 익혀도 자질이 없으면 소드 유저에도 미치지 못했다. 반대로 뒷받침해 줄 능력만 있다면 중급 검술로 상급에 올라설 수도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보일이었다. 카일의 도움이 있었지만 분명 보일의 재능이라면 언젠가 상급에 오르긴 했을 것이다.

만일 시안느였더라면, 그녀는 결코 샤론 마을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힐튼 남작이나 보일의 옆에 남아, 중급에 오를 때까지 남아 검술수련에 전념했을 것이다. 그린넨 백작가 가문도 그녀를 탓하진 않을 것이다. 되려 늦게 와도 좋다는 전서구를 보내 왔을지도 몰랐다.

“전 돌아가지 않아요. 설령 영영 중급 엑스퍼트가 되지 못한다 해도 말이에요.”

안장 위에서 펄펄 날뛰던 시안느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훌륭한 성장 기회를 포기하고, 여기에 남으려는 마음에서 굳은 결심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마음이 이 정도까지 간절하단 말인가?’

시안느가 무표정한 카일을 바라보았다. 그는 세인의 말에도 담담한 표정을 유지며 속내를 내비치지 않았다.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요.’

상념에 젖어 있던 그녀의 귓가로 경악할만한 소리가 들어왔다.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닙니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지금 아가씨의 상태라면, 마나를 압축시켜 인위적으로 경지를 끌어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 지금 인위적으로 상대의 마나를 압축시켜 초급 엑스퍼트를 중급으로 만들 수 있단 말인가요!”

가공할만한 정보에 시안느는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 큰 목소리에 이엘은 물론 워드까지 관심을 보이며 다가왔다.특히 초급 엑스퍼트인 워드는 지금껏 봤던 눈빛 중 가장 반짝이는 눈으로 카일의 말을 기다렸다.

“카일 방금 말한 게 정말인가요?”

이엘이 황급히 대답을 보챘다. 만약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다면 대륙에 엄청난 파란이 일어날 것이다. 중급 엑스퍼트를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아뇨 그런 뜻이 아니라, 세인 아가씨처럼 조건이 갖춰져 있을 때 시도해 볼 방안이란 겁니다. 심지어 이론으로만 존재할 뿐 확신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네 사람, 특히 이엘을 제외한 세 사람은 흥미를 거두지 않았다. 이들은 모두 초급 엑스퍼트의 끝자락에 닿은 사람들이었다. 그런 만큼 아무리 실험적인 방법이라도 관심을 가지는 건 당연한 노릇이었다. 성공만 한다면 그들도 꿈에 그리던 중급 엑스퍼트 단계에 오를 수 있었으니까.

절실함이 담긴 세 사람의 표정에 카일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 어떻게 하는 건진 얼마든지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만, 문제는 이건 저만이 가능하다는 걸 꼭 기억하세요. 다른 사람이 사용하면 큰 문제가 생길 겁니다. 까먹으시면 안 됩니다.”

카일이 경고에도 네 사람은 머리를 쭉 빼내고 귀를 쫑긋거릴 뿐이었다. 이엘은 카일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과연 저 머릿속엔 얼마나 놀라운 것들이 쌓여있을까?’

잠시 멍하니 카일을 바라보고 있는 이엘의 표정을 모른 채 카일이 입을 열었다.

“검술이나 마나 연공검을 수련하면 몸 안으로 마나가 스며듭니다. 이 마나를 체내에서 순환시키면 순도 높은 마나인 오러가 만들어집니다.”

“각 검술이나 마나 연공검이 자극하는 마나 포인트가 달라, 사람마다 오러의 특성이 다르다는 건 이미 알고 있어요.”

시인느가 재빨리 카일의 말을 받았다.

카일이 말한 내용은 검술을 배우면 가장 처음 알게 되는 내용으로, 용병들도 잘 알고 있는 가장 기초적이고 중요한 내용이었다. 그래서 같은 검술이나 마나 연공검을 익힌 게 아닐 시, 오러를 서로의 몸에 주입하는 일은 엄격히 금기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제 오러는 조금 특이해 상대의 몸에 들어가도 큰 장애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때문에 저만 가능한 방법이죠.”

세인뿐 아니라 힐튼 남작에게 가르침을 받은 시안느도 잘 아는 사실이었다. 이미 최상급에 다다른 남작이 카일과 보일의 오러 특성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저 보일의 검술을 더욱 발전시키면서, 카일의 오러가 달라졌다고 판단하고 있을 뿐이었다.

“세상엔 많은 검술이 세상에 존재하지만, 모든 검술과 마나 연공검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공통점이라니요? 그게 뭔가요?”

“검사가 마나를 수련하고 경지를 넘으려면, 몸 안에 있는 6개 커다란 마나 포인트를 서로 연결해야 합니다.”

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살폈다. 그들로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쉽게 말씀드리죠. 소드 유저는 보통 이 두 곳에 마나를 쌓습니다.”

카일이 양손을 들어 보였다.

“이곳이 다른 마나 포인트보다 더 많은 마나를 받아들이고 저장할 수 있기 때문이죠.”

검을 잡고 가장 많은 자극을 받는 곳이 바로 손이었다. 용병들도 노력만 한다면 소드 유저에 오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양손에 있는 마나 포인트가 끊임없이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다음이 발바닥입니다. 용병들이 기사들보다 엑스퍼트에 오르기 힘든 이유가 바로 하체 단련을 등한시하는 문제도 있지만, 기사의 정통 검술에 비해 스텝의 활용도가 지극히 낮기 때문입니다. 하급검술일수록 스텝보다는 손과 팔을 비롯한 상체를 활용한 검술이 주를 이루지요.”

카일이 검으로 발바닥을 툭 치며 말했다. 손이 대기의 기운을 끌어당기면 발바닥은 땅에서 마나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여기가 바로 중급에 오르기 위해 반드시 열어야 하는 곳입니다.”

카일이 아랫배로 손을 가져갔다. 배꼽에서 대략 손가락 5개 정도의 위치였다. 카일이 말한 위치들은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다. 카일 역시 태극권을 수련하며, 기존에 알고 있던 단전과 비슷한 곳에 커다란 마나 포인트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손과 다리에서 시작한 오러가 이곳에서 합일을 이루어야 비로소 중급에 오를 수 있습니다. 세인 아가씨는 바로 지금 이 단계에 와 있는 겁니다.”

손과 발바닥에서 시작된 세인의 마나는 팔과 다리의 마나 포인트와 이어지며 몸의 중심, 즉단전으로 모여들기 위해 몸이 본능적으로 주변의 마나를 더욱 내부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경지를 넘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무의식의 영역을 넘어 의식적으로 마나를 끌어모아야 했다. 또한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마나를 정제하여 오러를 압축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이번에 아랫배에 마나를 쌓지 못하면 중급으로 올라가는 건 불가능한가요.”

“네. 중급으로 넘어갈 수 없습니다. 물론 다시 기회가 올 순 있습니다. 용병들도 엄청난 실전과 훈련을 통해 중급에 오르니까요.”

그말인즉슨 지금의 기회를 놓치면 또다시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세인은 뛰어난 검술이 있고 재능도 있어 용병들보다는 쉽게 기회를 잡을 수 있지만, 그들 못지않은 땀방울을 흘려야 할 것이다.

“그만큼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라는 말이군요.”

카일의 말을 이해한 이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시안느나 워드는 심각한 얼굴로 세인을 바라보았다. 말로 쉽게 설명을 했기에 이엘이야 쉽게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갈 수 있지만, 검을 잡고 밤잠을 설치며 수련하는 검사인 이들은 세인이 얼마나 중요한 순간에 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습니다.”

“그럼 상급으로 올라가려면 어디에 마나를 쌓아야 하나요?”

이엘은 평범한 질문을 하듯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사실 이 의문이야말로 제일 핵심적인 부분이었다.

“여기 가슴입니다.”

카일은 별달리 숨기려 들지 않았다. 어차피 처음부터 모두 이야기할 심산이었다.

“흉부의 정중앙에도 마나 포인트가 존재합니다.”

카일은 손으로 자신의 갈비뼈 사이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아랫배에서 뭉친 오러가 흉곽으로 이어지는 작은 마나 포인트를 지나, 가슴에 있는 큰 마나 포인트와 연결되면 비로소 상급에 오를 수 있습니다. 전 이런 마나 포인트를 마나 플라워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마나로 이루어진 꽃이란 말이군요.”

세인이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네. 처음에는 작은 꽃망울이지만 하나의 마나 플라워를 개화시킬 때마다, 더욱더 높은 경지로 나아갈 수 있는 거죠.”

“그렇담 총 6개의 마나 플라워를 개화시켜야 상급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말이군요. 그럼 상급을 넘어 최상급으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안느가 열정적인 학생처럼 손까지 들어가며 물었다. 혹 카일은 상급을 넘어 최상급에 오를 방법도 알아낸 건 아닐까?

상급에 대해 알았다면 최상급으로 가는 길도 알고 싶은 것이 사람 욕심이었다.

“제가 알아낸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제가 알지 못하는 마나 플라워가 존재하는지, 아니면 다른 방법이 있는지 더 이상은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카일의 말에 다들 아쉬운 것같이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지금 알게 된 내용만으로도 그들은 많은 것을 얻었다. 마치 답을 알고 문제를 풀 듯 이젠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런 건 어떻게 알게 된 건가요?“

“마나를 수련하며 생긴 궁금증을 풀어 본 겁니다. 마침 확인할 방법도 있었고요.”

카일의 말에 모두들 너무 쉽게 납득해 버렸다. 이미 카일의 곁에는 상급 엑스퍼트가 있으니, 그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럼 인위적으로 중급으로 끌어올린다는 방법은 카일이 직접 오러를 주입한다는 말이로군요.”

“그렇습니다. 제가 마나 포인트에 직접 오러를 불어넣고, 마나를 압축시켜 길을 뚫는 겁니다.”

카일의 방법은 지금껏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었다. 몸 안에 마나 포인트가 있다는 사실은 모두 알고 있지만, 경지를 넘을 때 반드시 마나 플라워를 개화시켜야 한다는 건 알지 못했다. 애당초 ‘마나 플라워’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발과 손에 있는 마나 플라워에 압축된 오러를 집어넣으면, 오러가 아랫배에 있는 마나 플라워로 몰려들 겁니다. 이때 아랫배에도 압축된 오러를 집어넣으면 반드시 개화가 시작될 거라 생각합니다.”

카일의 말에 세인의 안색이 붉게 달아올랐지만, 이엘은 짐짓 모르는 척 새로운 의문을 던졌다.

“오러를 주입하려면 당연히 살과 살이 맞닿아야 하겠군요.”

“당연하죠. 오러를 움직이는 작업은 아주 세심하고 섬세한 작업이라, 중간에 방해되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당연히 제가 직접 마나 포인트에 손을 올려….”

주절거리던 카일은 몸을 딱딱하게 굳혔다. 그제서야 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손과 마나 포인트가 맞닿아야 한다는 뜻은, 달리 말하면 카일이 세인의 살에 손을 대야만 한다는 말이었다. 그것도 옷을 입지 않은 맨몸을 말이다. 그나마 손이라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으나, 발은 물론이고 아랫배에 손을 댄다는 것은 혼인하지 않은 귀족가의 여인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는 남자라도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물론 중급 엑스퍼트에 오를 수만 있다면 거부할 사람은 없겠으나 흔쾌히 받아들일 일은 아니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그, 그만 실수를… 정말 다른 뜻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닙니다.”

카일이 버벅거리며 사과했다. 카일은 정말 다른 뜻이 있어서 한 말이 아니었다. 그저 경지를 넘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너무 쉽게 포기해버리는 것 같아 고심 끝에 알고 있는 방법을 말한 것뿐이었다.

절절매는 카일의 모습이 재미있는지 이엘과 시안느가 큭큭거렸다.

카일은 비상한 머리와 검술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지만, 가끔 이렇게 어리숙한 모습을 보이곤 했다.

워드도 입꼬리를 올리며 소리 없이 웃고 있었다.

“으헉-”

하지만 이어지는 세인의 대답에 워드는 그만 타고 있던 말에서 떨어져 내릴 뻔했다.

“저… 전 괜, 괜찮아요. 카일 님만 괜… 찮으시다면… 얼마든지….”

귓불까지 붉게 달아오른 세인이 민망한 얼굴로 머리를 푹 숙였다.

시안느와 이엘이 묘한 부러움이 섞인 눈빛을 교환했다.

소리 없는 대화를 하던 이엘과 시안느는 자신들의 행동이 웃기다는 걸 깨닫고, 슬그머니 서로의 시선을 피해 딴청을 부렸다.

그러나 그들은 카일이 어떤 답을 내놓을지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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