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의 지배자-259화 (259/262)

제8장. 이제부터는 내 싸움이다. (2)

영국에서도 몸싸움에서 쉽게 지지 않는 박상민이다.

야마구치 호타루가 뻗친 손을 뿌리친 박상민이 페널티 에어리어 라인을 넘었다.

두 명의 수비수가 앞에 있어서 패스하기는 어려웠다.

“쏴! 상민아! 쏴 버려!”

이정렬이 미친 듯이 고함을 지른 직후였다.

『둘을 제친 박상민! 페널티 에어리어 안으로! 박상민!』

『오오-! 걸렸어요!』

『박상민! 슈- 웃!』

박상민은 몸이 휘청할 정도로 거칠게 슈팅을 날렸다.

퍼어엉-!

공은 물을 차고 나는 제비처럼 그라운드를 타고 왼쪽 골대 구석을 파고들었다.

화아악!

하야시 아키히로 골키퍼가 몸을 날리며 손을 뻗었지만, 공이 지나간 다음이었다.

철- 러엉!

“우와아- 아아!”

『골! 박상민! 고- 올! 전반 초반! 예상을 뒤엎고 박상민! 대한민국의 선제골을 기록합니다!』

호프집을 비롯한 대한민국 응원단이 완전히 뒤집혔다.

평소 같으면 가슴을 두드리며 관중들을 흥분시켰을 박상민이었다.

그런데 골을 넣은 박상민은 차갑게 식은 얼굴이었다.

녀석은 그런 얼굴로 마치 조깅하는 선수처럼 느긋하게 달리며 전범기를 들었던 관중들을 바라보았다.

녀석의 뜻을 알아챈 동료들이 그의 뒤를 비슷한 속도로 따라 뛰었다.

임원석 아래쪽이 벤치다.

그곳까지 달려온 박상민을 향해 박용근이 손을 내밀었다.

꽈악!

박용근의 손을 잡은 박상민이 더할 수 없이 공손하게 박용근을 안으며 일본의 임원들을 향해 웃었다.

엄청난 도발이었다.

『6만 3천 명이 모인 사이타마 스타디움이 완벽하게 침묵에 빠져들었습니다.』

송인수 위원이 김문호의 손을 꽉 잡았다.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뛰었다. 그런데 정작 한 일은 그동안 잘못됐던 협회의 이모저모를 땜질하는 수준이었다.

일본과의 평가전도 박용근과 선수들에게 너무나 미안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박상민이 골을 넣고 저런 모습을 보여 줄 거라는 생각을 못해서 그런지는 모르는데 말이다.

느닷없이 가슴이 뜨겁게 달아올라서 무언가라도 움켜쥐지 않으면 소리를 지를 것만 같은 거였다.

전반이 10분도 되기 전이었다.

선수들이 중앙선으로 모였을 때 누군가 애처롭게 ‘니뽄!’이라고 외쳤는데 호응하는 관중은 아직 없었다.

‘멋진데!’

시선을 마주쳤을 때 정지우가 검지로 가리켰고, 박상민이 씨익 웃었다.

삐익!

경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전반 시작과 동시에 터진 박상민의 골 덕분인지 우리 선수들은 긴장을 완전히 털어 낸 모습이었다.

『느린 그림이 나옵니다. 수비수 넷을 따돌리고 슈팅을 날리는 박상민! 다시 봐도 질리지가 않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박상민 선수!』

『양쪽에서 시선을 끌어 준 김오영과 이정렬의 움직임도 굉장했어요!』

박상민은 몰랐지만, 평택의 호박 나이트는 무대에 대형 화면을 설치하고 경기를 함께 관람하는 중이었다.

“박상민이 골을 성공하면 테이블마다 맥주 열 병, 안주 하나를 무료로 드립니다.”

호박 나이트는 호프집 못지않은 열광의 도가니였다.

“도민아! 거길 막아!”

박상민이 손짓하는 대로 선수들이 정말 악착같이 달렸다.

“범주야! 나가! 나가서 도와줘! 준석아! 야!”

정지우는 순간순간 수비 라인을 향해 악을 써 댔다.

한 선수도 싫은 기색이 없었고, 지시가 내려올 때마다 이를 악물며 뛰고, 또 뛰었다.

『침묵하는 일본의 응원처럼 스시타카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또다시 공을 뒤로 돌리는 가가와 신지! 우리 이재범에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가가와 신지가 거친 몸싸움을 못 견뎌 한다는 평이거든요. 이재범 선수! 정말 잘해 주고 있네요!』

『오히려 우리 대한민국이 한 골을 만회하려는 것 같고, 일본이 지키는 경기를 하는 팀처럼 보입니다!』

“대- 한민국!”

짝짝짝! 짝짝!

5천 명 한국 응원단의 구호가 또렷하게 들릴 정도로 사이타마 스타디움은 우리 팀의 분위기였다.

『일본 아직 슈팅이 하나도 없습니다!』

『한국도 박상민의 슈팅이 유일한데요, 우리는 그걸 골로 성공시켰어요!』

『100퍼센트 성공률이 아닙니까?』

앵커가 서운한 것처럼 질문을 던졌다.

굉장한 압박이었다.

주길성, 김범주, 강서준, 신준석이 중앙선 부근까지 밀고 올라갈 정도로 일본 팀을 밀어붙였다.

일본의 감독이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손짓했는데, 당장 앞으로 나오기보다는 공을 뺏기지 않는 것이 급해 보였다.

“와아아-!”

하라구치 겐키가 골키퍼를 향해 차 준 공을 따라 이정렬이 악착같이 달렸다.

퍼어엉!

그가 급하게 걷어 낸 공이 홱 휘면서 왼편 터치라인 바깥으로 날아갔다.

“헤에- 이!”

하야시 아키히로 골키퍼가 손을 펑펑 마주치면서 고함을 질러 댔는데 당장 뾰족한 방법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주길성의 스로인입니다!』

주길성이 김오영을 향해 앞으로 공을 던져 준 다음이었다.

터억!

후지하루 히로키가 그 공을 가로챘고, 앞으로 길게 찔러 주었다.

“와아아-!”

침묵하던 일본 관중들이 일제히 고함을 질러 댔다.

“범주야! 거기! 거기 있어!”

정지우는 고함을 지른 뒤에 자세를 낮췄다.

공을 잡은 가가와 신지가 빠르게 앞으로 치고 나왔다.

이재범과 이정렬, 김오영에 맞춰 깊숙하게 들어가 있던 참이라 막아설 사람이 부족했다.

“와아아-!”

가가와 신지가 선도민과 박영길 사이로 공을 찔러 넣자, 사이타마 스타디움이 터져 나갈 것처럼 기대에 찬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락! 와락!

공을 향해 달려든 것은 혼다 케이스케와 신준석이었다.

이를 악문 신준석이 깻잎 한 장 차이로 어깨를 안으로 디밀며 공을 향해 발을 뻗었다.

콰악! 콰다당!

혼다의 가슴에 들이받힌 신준석이 앞으로 커다랗게 엎어지고 말았다.

삐이이익!

“우-!”

『주심! 혼다 케이스케의 파울을 선언합니다!』

『신준석 선수! 저렇게 늘었네요! 보세요! 혼다가 잡아채는데도 어깨를 먼저 넣었거든요! 혼다 케이스케를 완전히 힘으로 눌렀구요, 다음에는 속도로 막아 버렸어요!』

정지우는 얼른 뛰어가 신준석을 일으켰다.

“무슨 일이야? 내가 본 모습 중 오늘이 최고다!”

“야! 나도 아버지 당하는 거 못 참아!”

농담인 줄 알았다. 그런데 신준석은 그답지 않게 눈빛을 번들거리고 있었다.

정지우가 내민 손을 꽉 잡고 오른쪽 어깨를 부딪친 신준석이 자리로 돌아갔다.

페널티 에어리어 바로 안쪽이었다.

정지우는 선도민을 향해 공을 차 주었다.

투욱!

선도민은 바로 박상민에게 연결하고 안으로 뛰었다.

“니뽄!”

둥! 둥! 둥!

일본 응원단의 구호가 막 터져 나오는 순간이었다.

선도민에게 패스할 것처럼 몸을 기울였던 박상민이 느닷없이 공을 치고 달리기 시작했다.

놀란 수비수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박상민! 두 번째 질주입니다! 수비 숫자가 너무 많습니다!』

『일단 뒤로 빼는 게 좋겠어요! 너무 갇혔어요!』

앵커와 해설자가 안타까운 음성으로 상황을 전한 직후였다.

투욱!

박상민은 둘러싼 수비수들 발 사이로 공을 찔러 주었다.

“와아아-!”

『박상민! 일본 수비수를 완전히 농락하는 패스입니다!』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장면이 이어졌다.

『이정렬! 이정렬이에요! 우리 이정렬!』

수비수들 틈에서 불쑥 튀어나온 이정렬이 공을 향해 달려들었다.

화아아악!

하야시 아키히로 골키퍼가 공을 향해 몸을 날린 직후였다.

투욱!

이정렬은 골키퍼의 손을 피해 공을 몰고 뛰었다.

『이정렬! 골키퍼까지 제치고! 이정렬! 이정렬 슈웃!』

투욱!

텅 빈 골대를 향해 이정렬이 공을 밀어 넣었다.

와락! 와라락!

쇼지 겐과 사카이 히로키가 미끄러지며 달려들었는데, 공과 함께 골대 안으로 들어가 그물에 엉겼다.

“우와아- 아!”

『골! 이정렬! 한국의 두 번째 골! 추가골의 주인공은 이정렬입니다! 이정렬이 대한민국의 두 번째 골을 만듭니다!』

이정렬은 마치 권투 선수처럼 짧게 끊어 치는 듯 주먹을 내지른 뒤에, 달려온 김오영과 이재범의 머리를 다독여 주었다.

“정렬아! 고맙다!”

땀범벅이 된 얼굴로 뛰어온 박상민의 외침을 다 들었다.

골을 넣은 선수가 어시스트해 준 선수에게 하는 인사를 박상민이 한 거였다.

아버지를 위한 골, 그 의미를 선수들은 모두 알아들었다.

이정렬은 정지우를 향해 양손 검지를 들었다.

‘지우야! 나도 하나 했어!’

‘잘했어!’

정지우는 검지로 이정렬을 가리켜 주었다.

간단한 제스처였는데, 이 의미를 모를 선수는 없어서 모두의 가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대- 한민국!”

짝짝짝! 짝짝!

“대- 한민국!”

짝짝짝! 짝짝!

『사이타마 스타디움이 한국에 있는 경기장 같은 분위기입니다! 카메라가 귀빈석을 비춰 줍니다!』

『김문호 위원 옆이 일본 임원들이거든요. 표정들이 심각하네요!』

『잔칫상을 완벽하게 뒤집어엎는 우리 대표팀! 일본은 우리 팀이 정말 밉겠습니다! 그중에 누가 제일 미울까요?』

해설자의 낄낄거리는 웃음이 고스란히 TV를 통해 흘러나왔다.

박용근은 정장 차림이었다.

세레머니가 끝나자 그는 평소처럼 벤치로 움직여 자리에 앉았다.

TV 화면에 악을 바락바락 써 대는 일본 감독이 잡혔고, 그 뒤편에서 그라운드를 바라보는 박용근의 모습이 나왔다.

전은주는 울컥 올라온 눈물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남편이다. 사우디아라비아전의 예선전에서도 그랬지만, 축구를 그 누구보다 사랑하고 좋아하던 사람.

그가 축구로 대한민국을 뜨겁게 만들고 있었다.

빌라에서, 길 건너 상가들에서 터진 함성을 들으며 전은주는 새삼 힘들 때의 박용근을 떠올렸다.

전은주 몰래 달리기를 하고 왔던 남편이다. 그러고도 마음 쓸까 봐 젖은 옷을 오후 내내 입고 있던 남자, 옷장 안에 넣어 둔 국가대표 유니폼을 하염없이 만지던 남자.

전은주는 바보처럼 입을 삐죽이며, 앞으로 든 손으로 연신 물개 박수를 보냈다.

『경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팀 패스를 잇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김오영과 이재범 선수! 이 두 선수는 칭찬 안 할 수가 없네요! 박상민, 이정렬 선수만큼 많이 뜁니다! 앞에서 이 네 선수가 일본 팀 전체를 틀어막아 버린 느낌이 들 정도네요!』

해설자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한 경기에서 3명의 박상민이 뛴다는 말이 나올 정도인데, 이건 3명의 이정렬에, 3명의 김오영, 3명의 이재범이 가세한 꼴이니 말 다 했다.

“우-!”

심지어 공을 뺏기지 않으려 버둥대는 일본 선수들을 보며 야유를 보내는 일본 관중들이 나올 정도였다.

『이렇게 통쾌한 경기가 또 있었나 싶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전이 있었지요!』

『그랬습니다!』

오늘 앵커와 해설자는 어째 손발이 맞지 않았다.

공을 받지 못한 원톱 공격수 혼다 케이스케가 동료들을 향해 자꾸만 손을 벌려 보였다.

롱패스를 해서라도 일단 공을 보내 달라는 의미였다.

와락! 콰악!

그러나 어쩌다 혼다에게 연결되는 공이 있어도 선도민, 박영길이 어찌나 악착스럽게 따라붙는지 패스할 곳이 없어서 결국 뺏기는 형국이었다.

말은 안 했지만, 정지우와 박상민, 이정렬은 신준석에게 놀라고 있었다.

“도민아! 나가! 왼쪽 패스만 막아!”

신준석은 아예 정지우에게 공이 안 가게 하겠다는 것처럼 미드필더들과 수비수들에게 연신 고함을 질러 대고 있었다.

“서준아! 거기만 지켜!”

그뿐만이 아니라 신준석은 완전히 우리 진영을 휘젓다시피 뛰고, 또 뛰었다.

『수비수 신준석이 세 명쯤 있는 것 같습니다! 조금 전까지 분명 중앙선 부근에 있던 신준석이 페널티 에어리어 앞에 있고, 지금은 다시 중앙을 지원합니다!』

『우리 선수들! 대한민국 축구가 어떤 것인지를 세계에 제대로 알려 주고 있네요! 정말 감격스럽습니다!』

『정지우 선수! 전반이 거의 끝나도록 공을 잡아 보질 못하고 있습니다! 저 정도면 심심하겠는데요?』

일본이 변변한 기회조차 만들지 못한 채 전반 35분이 훌쩍 지났다.

지쳤다는 것처럼 일본 감독이 손을 털어 내며 고개를 저을 정도로 전반의 일본은 엉망이었다.

안 될 때는 동료들 간에 원망이 쌓인다.

혼다는 자꾸만 공을 달라고 손을 뻗고, 가가와 신지는 이재범에게 짜증스러운 반응을 연달아 보였다.

“대- 한민국!”

짝짝짝! 짝짝!

일본의 사무라이 블루가 침묵해서 한국의 응원만 들렸다.

“와아아-!”

이번엔 김오영이었다.

공을 잡은 그가 왼쪽을 파고들었고, 방향을 틀어 골대를 향해 치고 달렸다.

퍼어어엉!

이정렬, 박상민, 이재범이 동시에 골대를 향해 높다랗게 솟구쳤고, 쇼지 겐, 사카이 히로키, 야마구치 호타루가 그들을 막기 위해 몸을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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