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의 지배자-219화 (219/262)

제9장. 우리의 우승을 확신하는 경기. (2)

짝! 짝! 짝! 짝! 짝!

일정한 박수 소리가 들린 뒤에,

“We're by far the greatest team(우리는 최고의 팀)!”

홈 관중들이 목청껏 외치는 응원 구호가 들렸다.

프리미어리그에 속한 팀들도 흔히 하는 구호였다.

그러나 오늘 홈 관중들이 이 구호를 외친 것은 승격 전 챔피언십에서 했던 경기를 잊지 말자는, 우리는 그렇게 힘겹게 프리미어리그에 올라왔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전은주와 데이지, 신윤희까지 자리에서 일어나 관중들의 동작에 맞춰 손뼉을 쳤고, 양팔을 앞으로 쭉 뻗었다.

그동안 어떤 노력을 했는지 알고 있어서였다.

이정렬이 다시 돌아오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정지우가 깁스를 풀 때까지 얼마나 답답해했는지, 아스널전 이후로 정지우가 얼마나 승리를 갈망했는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힘을 실어 주고 싶었던 거였다.

짝! 짝! 짝! 짝! 짝!

“We're by far the greatest team(우리는 최고의 팀)!”

관중들의 환호를 들으며 정지우는 골대로 움직였다.

달리지 않았다.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걸었다.

홈구장, 레드 블레이트다.

이곳의 주인은 유니온 시티이고, 유니온 시티의 홈 관중 앞에서 당당한 모습을 보이는 거다.

상대가 그 어떤 팀이라도 기죽거나 급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정지우 선수! 골대로 향하고 있습니다!』

『굉장합니다! 정지우 선수! 저렇게나 많은 관중과 응원, 세계 축구 팬들의 관심이 온통 집중된 경기에서 전혀 기죽지 않고 당당한 모습입니다.』

카메라가 정지우의 상반신을 가득 잡아 주었다.

정지우의 얼굴을 밝혀 준 오후의 햇살이 어깨에서 강렬하게 빛났다.

골대에 도착한 정지우는 우선 오른쪽 골포스트를 발바닥 안쪽으로 툭 찼다.

‘돌아왔다.’

중앙선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나뉘어 선 선수들이 정지우를 향해 시선을 주고 있었다.

맨유 선수들이 기가 막힌 얼굴로 주심에게 손을 벌려 보이며 경기를 서둘러야 하지 않겠냐고 가벼운 항의를 던지고도 있었다.

왼쪽 골포스트에 도착한 정지우가 다시 발로 포스트를 툭 찼다.

‘오늘 레드 블레이트에서 얻은 승리가 우리의 실력을 증명하는 증거가 될 거다.’

정지우가 골대 중앙으로 움직일 때 거짓말처럼 레드 블레이트가 침묵에 잠기고 있었다.

차박, 차박.

스터드에 밟히는 잔디의 감각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골대 중앙에 선 정지우는 포백 앞에 있는 이정렬에게 시선을 주었다.

‘정렬아! 자신 있지? 우리가 꼭 한번 붙어 보고 싶었던 팀이었잖아.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우리 함께 여기 있는 거잖아.’

이정렬이 이를 꽉 깨무는 것이 보였다.

루니가 오른손으로 정지우를 가리키며 주심을 재촉하고 있었다.

크로스바를 슬쩍 올려다본 정지우는,

휘익!

몸을 띄웠다.

투욱!

“예에에에에에에-!”

골이 들어갔을 때만큼이나 엄청난 함성이 터졌다.

삐이이익!

많이 참았다는 것처럼 주심이 곧바로 휘슬을 불었다.

투욱!

마타는 루니에게 바로 공을 넘겨주었다.

공을 받은 루니가 캐릭에게 패스했고, 툭툭 밀고 올라온 캐릭은 9번 앙토니 마시알을 향해 길게 공을 넘겼다.

『맨유의 경기 운영이 확실하게 나오네요. 캐릭과 슈바인슈타이거가 박상민을 완벽하게 마크하고 있구요, 센터백인 스몰링이 레믹을 묶고 있어요. 전반적으로 아스널의 작전을 많이 참고했다는 느낌이네요.』

『세계적인 맨유가 우리 선수 박상민을 경계하기 위해 두 명의 선수를 붙일 정도라는 게 믿기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활약을 보고 싶은 마음에서는 좀 심하다 싶습니다.』

『아무래도 박상민을 자유롭게 풀어 주었던 경기에서 유니온 시티는 좋은 결과를 얻었거든요. 웨스트 브로미치와의 경기에서 나온 후반 세 골도 실제로 박상민이 한 골을 넣었고, 두 골 모두 개입했으니까 당연히 저럴 만하지요.』

박상민이 캐릭과 슈바인슈타이거를 따돌리려 이리저리 움직였는데 반드시 한 명은 바싹 붙어 따랐고, 공이 갈 만하면 바로 나머지 한 명이 끌어안다시피 달려들었다.

유니온 시티는 4-2-3-1의 포메이션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3의 자리 양쪽에 있는 꼼빠니와 카알이 골대 쪽으로 내려와 이정렬, 데이빗과 함께 라인을 형성했다.

수비수 4, 중간에 만들어진 4, 그리고 이리저리 마크 둘을 떼어 놓기 위해 뛰는 박상민 1, 그 앞에서 기회를 노리는 레믹이 또 1.

유니온 시티는 순간적으로 4-4-1-1의 포메이션으로 변형해서 중앙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투욱! 툭! 툭!

마타가 바쁘게 뛰어다니며 공을 연계했고, 루니와 마시알이 파고들 기회를 노렸지만 쉽게 틈을 만들지는 못했다.

『전반 10분이 흐르고 있습니다. 양 팀 단단한 중앙을 바탕으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습니다.』

데이빗이 공을 가로채서 꼼빠니에게 넘기는 순간, 루니가 달려들었다.

콰아악!

거친 동작이었지만, 저 정도로 주심이 휘슬을 불기는 어렵다. 게다가 루니는 힘이 워낙 좋았다.

퍼어어엉!

공을 가로챈 루니가 정지우의 오른쪽 코너로 빠르게 공을 넘겼다.

턱!

가슴으로 공을 받은 앙토니 마시알이 신준석의 앞으로 툭툭 차며 달려들었다.

“예에-!”

『마시알! 신준석을 앞에 두고! 툭툭 치고 들어오는 마시알!』

『저러다가 순간적으로 방향을 바꾸거든요! 신준석 달려들지 말고 방향만 잡아야 돼요!』

정지우는 오른쪽 포스트에서 1.5미터 떨어진 곳에서 허리를 낮췄다.

“우와아아-!”

맨유 팬들의 함성 속에서 루니와 마타, 다르미안이 정지우의 왼편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툭툭! 휘익!

신준석을 향해 움직이던 마시알이 한순간에 방향을 틀었다.

뒤로 물러나며 각도를 줄이던 신준석을 한 방에 떨어 낸 멋진 동작이었다.

“예에-!”

툭툭!

마시알이 페널티 에어리어 중앙으로 파고들었다.

‘슛? 패스?’

잔발이라고 부른다.

마시알의 보폭이 워낙 짧아서 동작을 확신하기가 어려웠다.

퍼어엉!

몸을 튼 마시알이 왼발로 공을 띄웠다.

무둔바와 신준석이 그 한 번의 패스에 완벽하게 뚫렸다.

“와아아-!”

골을 기대하는 맨유 관중들의 함성이 커다랗게 터져 나오는 순간이었다.

체격이 작은 라파엘을 밀치며 루니가 달려들었다.

막으라고 외칠 틈조차 없었다.

무둔바는 아직 몸을 돌리지 못했고, 신준석은 마시알에게 자리를 뺏기지 않으려고 뒤엉켜 있었다.

투욱!

그라운드에 떨어져 한 번 튕긴 공을,

퍼어어엉!

루니는 그대로 슈팅으로 연결했다.

제대로 못 봤다. 그리고 라파엘이 너무 쉽게 밀렸다.

‘이이익!’

화아아아아악!

정지우는 본능이 시키는 대로 몸을 날렸다.

최선을 다해 지킨다! 그리고 동료들을 믿는다!

누가 골을 허용한대?

그럴 각오로 공격하라는 거지!

눈 깜짝할 사이에 날아오는 공을 향해 어떻게 몸을 날리는지 설명하지는 못한다.

‘끄으- 응!’

그러나 지금처럼 몸을 날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악착같이 팔을 뻗는 건 한다.

‘이것이!’

정지우는 손에서 벗어나려는 공을 향해 최대한 허리를 뒤로 젖혔다.

‘정지우다!’

터어억!

털썩!

“예에에에- 아아아아아아!”

『정지우! 말도 안 되는 슈퍼세이브!』

『햐아! 와아! 이건 정말 동물적인 반응이라고밖에 말 못하겠네요!』

『정지우! 레드 블레이트에 제대로 불을 지릅니다!』

호프집이 터져 나가는 것 같았다.

“우와아아아-!”

“와! 저게 말이 되냐! 와! 나 미쳐 버릴 거 같네!”

다른 각도에서 잡은 그림들이 연속으로 나왔고, 느린 그림이 흘러나왔다.

“종 울려!”

“사장니- 임! 좀!”

“야! 정지우 선수가 저런 슈퍼세이브를 보인 거야! 저 선수가 누구냐! 여기! 이 옷을 준 정지우 선수 아니냐! 너희도 그날 봤었잖아!”

사장은 이미 이성을 날린 얼굴이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골키퍼야! 그런 정지우 선수가 나한테 두 손으로 유니폼을 줬어! 정지우는 그렇게 겸손한 선수야! 인간성 바른 선수고! 정지우를 응원하는 게 죄야! 내가 그 정도도 못해! 종 울려!”

마지못해 직원이 몸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땡땡땡땡땡땡땡땡!

카운터 근처의 손님이 먼저 달려가 종을 울렸다.

“정지우 선수! 내가 응원합니다! 내 인생에서 골키퍼는 당신뿐입니다!”

직원이 기쁘고 안타까운 눈빛으로 고함을 지르는 손님을 바라보았다.

코너킥이었다.

마틴은 팔짱을 낀 자세로 테크니컬 지역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승부란 그렇다.

오늘 경기에서 승리하면 유니온 시티는 새로운 도전에 성공한 팀이 되는 거고, 경기를 망치면 무모한 욕심을 부리다가 리그 우승을 위태롭게 만든 팀이 되는 거다.

정지우의 선방이 나왔을 때 움찔했다.

감독인데도 미친 사람처럼 소리 지르고 싶었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었다.

저건 새로운 전술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유니온 시티를 이끌어 온 정지우의 능력인 거다.

반 할 감독 좀 봐라.

저렇게 벤치의 감독 자리에서 여유를 부리고 있지 않은가.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맨유와 당당하게 맞서고 있다.

그러니 감독인 마틴이 고작 코너킥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는 거였다.

삐이이익!

주심이 휘슬을 불었다.

마타가 손을 높이 들었다가 공을 향해 뛰어들었다.

퍼어어어엉!

공이 날카롭게 골대 바로 앞으로 날아갔다.

마틴은 허벅지와 무릎에 힘을 꽉 주었다.

정지우가 몸을 높다랗게 띄운 것을 본 직후였다.

골키퍼가 골포스트 높이로 날아올랐다.

독이 잔뜩 오른 표범이 몸을 날려 독수리를 잡아채는 것처럼 보였다.

“예에에에에에에에에-!”

미칠 일이다.

이렇게 멋지게 허공에 솟구쳐 공을 막아 내는 정지우를 보는 것이 말이다.

“와아아- 아!”

정지우가 쳐 낸 공을 라파엘이 머리로 넘겼고, 이정렬이 받아 달렸다.

“Run(뛰어)! Lee! Come on(달려)!”

마틴은 결국 고함을 지르고 말았다.

그가 포기했던 이정렬이 그라운드를 가르는 미친 황소처럼 달리고 있었다.

박상민과 레믹이 빠르게 중앙선을 향해 달려 나왔다.

캐릭과 슈바인슈타이거가 반사적으로 박상민을 따라 끌려 나왔고, 레믹을 따라 달리던 스몰링이 주춤하고 멈춰 선 순간이었다.

투우우욱!

이정렬이 레믹에게 공을 넘겼다.

“예에에에에-!”

스몰링이 다시 레믹에게 달려 나왔고, 맨유의 18번 영이 이정렬을 막기 위해 뛰고 있었다.

투우욱!

레믹은 공을 받자마자 영이 비운 자리에 공을 찔러 넣었다.

“우와- 아아아아!”

이거다!

이게 정지우가 말했던 공간이다.

빈 곳을 향해 날아간 공을 카알이 잡았다.

툭!

카알은 바로 공을 뒤로 뺐다.

데이빗이다.

그는 아예 노마크로 혼자 움직였다.

놀란 블린트가 달려드는 순간에,

투욱!

데이빗은 훈련했던 그대로 골대 앞으로 공을 찔러 주었다.

와락!

마틴은 목덜미에서 소름이 쫙 올라와 턱과 볼, 귀, 그리고 머리끝까지 솟구치는 느낌이었다.

이정렬이 수비수 틈에서 불쑥 튀어나와 공을 잡은 거였다.

퍼어어어엉!

골대 오른쪽에서 공을 받은 이정렬은 몸이 붕 뜰 정도로 거칠게 슈팅을 날렸다.

휘이이이익!

데 헤아가 몸을 날렸다.

세계적인 골키퍼다.

반사 신경이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골키퍼!

데 헤아가 몸을 날리는 것까지만 봤다.

마틴이 고개를 불쑥 앞으로 내밀었을 때,

철렁!

골대 그물이 커다랗게 흔들렸다.

“예에- 아아아아아아아!”

마틴은 꽉 움켜쥔 주먹을 허공으로 내질렀다.

“예쓰! 예쓰! 예에쓰!”

미쳤다고 욕해도 좋다.

품위를 잃었다고 해도 상관없다.

맨유를 상대로 126년 만에 레드 블레이트에서 선제골을 넣은 감독이니까 그 정도 상관없는 거다.

관중석을 배경으로 높다랗게 뛰어오른 이정렬이 하늘을 향해 굳게 쥔 주먹을 치켜들었다.

“예에에에에에에-!”

완전히 이성을 잃은 관중들이 부둥켜안은 채 펄쩍펄쩍 뛰고 있었고, 스태프, 서브 선수들이 하나로 뒤엉켜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호프집 사장은 카운터로 뛰어 올라갔다.

“종 울려! 제발!”

땡땡땡땡땡땡땡!

그러나 이번에도 다른 손님이 먼저였다.

산적같이 생긴 남자 손님이 붉게 물든 눈으로 거칠게 종을 울리고 있었다.

왜 골을 넣은 건데, 그것도 영국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서 터진 골인데, 이렇게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건지.

아무튼,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손님들 대부분이 비슷한 모습으로 열광하고 있었다.

『이정렬! 126년 만에 맨유를 상대로 선제골을 기록한 유니온 시티의 선수가 됩니다! 골입니다! 고- 올!』

『이건 정말! 오늘 우리 선수들! 정지우의 슈퍼세이브에! 와아! 이정렬의 골! 믿을 수가 없습니다! 믿기지가 않습니다! 와아아!』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해설자가 연속해서 감탄사를 커다랗게 토해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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