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의 지배자-220화 (220/262)

제9장. 우리의 우승을 확신하는 경기. (3)

흥분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100년이 훨씬 넘는 긴 세월을 기다리고 기다려 왔던 선제골인 거다. 충분히 이해할 만한 상황이었다.

쿵. 쿵. 쿵. 쿵. 쿵.

“유니온 시티에는 두 사람이 살지!”

126년 동안 승리는 말할 것도 없고, 먼저 골을 넣어 본 적도 없는 팀, 맨유.

경기 시작 10분 만에 양팔을 이마 방향으로 뻗은 홈 관중들이 유니온 시티 특유의 응원가를 불러 댔다.

쿵. 쿵. 쿵. 쿵. 쿵.

“레드와 블레이트가 사이좋게 지냈지!”

이런 경기를, 이런 득점 장면을 보여 준 것이 고맙다고, 이런 팀을 응원하는 것이 자랑스럽다는 의미로 불러 주는 응원가였다.

쿵. 쿵. 쿵. 쿵. 쿵.

“레드가 시합에 나가면 블레이트는 이렇게 말했어!”

중앙선을 중심으로 선수들이 움직였다.

그때 마틴이 손을 내밀었고, 이정렬이 씩 웃으며 그의 손을 툭 쳐 주고 달렸다.

쿵. 쿵. 쿵. 쿵. 쿵.

“Go, Go, Go my Red! Go, Go, Go my Red!”

응원가가 심장을 둥둥거리며 울릴 때, 페널티 에어리어 앞으로 걸어오던 이정렬이 정지우를 힐끔 보았다.

‘나! 정말 이런 경기 해 보고 싶었다! 미칠 것처럼 좋아!’

감정이 올라와서인지 한순간 녀석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내가 상상하던 골이었어!’

정지우의 웃음을 이정렬은 바로 알아들었다.

삐이익!

경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맨유는 섣불리 나오지 않고 자기 진영에서 공을 돌렸다.

『맨유! 공을 돌리며 전열을 정비하고 있습니다.』

『최근 맨유 경기를 보면요, 골을 허용하면 꼭 저런 식으로 템포를 조절하곤 하거든요. 워낙 기습적인 득점인 데다, 아직 경기 초반이라서 맨유라면 충분히 뒤집을 수 있다고 생각할 거예요.』

공은 맨유의 진영을 느긋하게 돌았다.

퍼어엉!

영이 반대쪽에 있는 다르미안에게 길게 넘길 때도 있었고,

투욱! 투우욱!

마타에서 루니로, 루니에서 슈바인슈타이거로 빠르게 움직일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당장 유니온 시티 진영을 향해 넘어오지는 않았다.

쿵. 쿵. 쿵. 쿵. 쿵.

“오- 오오! 오- 오오!”

귀가 멍할 정도로 엄청난 함성이 레드 블레이트를 휩쓸고 있었다.

『캐릭이 박상민 선수를 맡고 있는데요, 공격할 때는 오히려 박상민에게 묶여 있는 모양새거든요. 사실 캐릭이 중원에서 공을 소유하고 공수를 조율해 줘야 하는데, 그런 점이 맨유의 중원을 답답하게 하네요.』

루니와 캐릭이 주로 공을 주고받았는데, 중간중간에 마타와 영에게 공을 넘겨주곤 했다.

리듬을 찾기 위해 시간을 끄는 느낌이었다.

맨유는 틈틈이 앞으로 나오려고 기회를 노렸다.

그러나 유니온 시티 선수들이 거칠게 달려들고 있어서, 뜻대로 공격으로 연결되지는 않고 있었다.

그렇게 5분쯤 흐른 다음이었다.

퍼어엉!

마시알에게 공이 넘어왔다.

툭툭!

마시알은 특유의 잔발로 밀고 들어왔다.

그러나 그는 카알과 신준석, 데이빗이 동시에 막아서자 뒤편의 영에게 공을 넘겨주고는 다시 중앙선 근처로 움직였다.

『마시알 뒤로 패스! 맨유 선수들, 무리하지 않고 있습니다.』

『맨유도 기본적으로는 빠른 공격을 선호하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마타에 의한 패스나 마시알과 영, 루니의 돌파에 의지해야 하는데 유니온 시티의 수비가 워낙 견고해서 쉽지 않아 보이네요.』

“우와- 아!”

레믹과 꼼빠니, 카알이 부지런히 달리며 공을 뺏으려고 할 때마다 기대에 찬 함성이 터져 나오곤 했다.

투욱!

앞에서 공을 받은 마타가 뒤쪽의 슈바인슈타이거에게, 슈바인슈타이거가 습관처럼 얼마 떨어지지 않은 캐릭에게 공을 넘겨줄 때였다.

와락!

느닷없이 박상민이 캐릭에게 달려들었다.

터억!

워낙 붙어 있다시피 했던 두 사람이었다.

거기에 박상민이 뒤에서 달려드는 바람에 캐릭은 대비할 틈도 없었다.

콰당!

박상민에게 밀려 엎어진 캐릭이 시선을 들었으나 주심은 아무런 제스처도 보이지 않았다.

“우와- 아!”

화악!

방향을 튼 박상민이 곧바로 맨유의 골대를 향해 치고 달렸다.

『공을 가로챈 박상민! 맨유의 진영을 파고듭니다!』

『비었어요! 밀고 가야죠! 양쪽이 모두 뚫렸어요!』

꼼빠니, 카알, 이정렬, 데이빗, 심지어 신준석까지 공격을 위해 일제히 뛰어들었다.

“예에에-!”

당황한 맨유의 수비수들이 우왕좌왕하며 유니온 시티 선수들에게 급하게 달려들었다.

투우욱!

박상민은 오른쪽의 빈 곳으로 공을 찔러 넣었다.

곧바로 카알이 달려들었다.

퍼어엉!

달리던 자세 그대로, 카알은 골대를 향해 공을 날렸다.

제대로만 날아갔으면 박상민과 레믹에게 완벽한 찬스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공이 너무 평범하게 날아갔다.

날카로움도 없었다.

화아악!

달려 나온 데 헤아가 높다랗게 뛰어올라 공을 잡았고, 곧바로 페널티 에어리어 끝을 향해 있는 힘껏 뛰었다.

휘이이이익!

데 헤아가 빠르고 날카롭게 던진 공이 다르미안에게 연결되었다.

“예에에-!”

맨유 관중들의 함성이 터져 나온 직후였다.

투우욱!

공을 받은 다르미안이 루니에게 그대로 패스를 찔러 주었다.

유니온 시티 페널티 에어리어 왼편이었다.

공격을 위해 이정렬과 데이빗까지 달려 나간 상황이었다.

맨유의 마타, 마시알, 영이 유니온 시티의 수비수 스웰던, 라파엘, 무둔바의 사이로 파고들었다.

『공격수 넷! 수비수 셋입니다!』

『잘라야죠! 스웰던이 달려들어야죠!』

실제로 스웰던은 루니를 막아섰다.

투욱!

루니는 뒤쪽에서 달려오던 다르미안에게 공을 넘겨주고는 페널티 에어리어 안쪽으로 뛰어들었다.

이정렬, 데이빗, 신준석이 뒤늦게 뛰어왔고, 그 뒤에서 꼼빠니와 카알이 달려오고 있었다.

『유니온 시티 선수들! 이제야 들어옵니다!』

『맨유 선수들을 잡아 줘야 해요! 마시알과 영이 자유롭게 움직이거든요! 붙어 줘야 해요!』

이런 상황 때문에 실점을 각오했었다.

슈팅으로 공격을 마무리하지 못하거나, 공격하던 중간에 차단당하면 바로 이런 위험한 장면이 벌어진다.

수비수까지 가세한 템포 빠른 공격을 구상할 때, 가장 먼저 각오했던 상황이었다.

투욱!

다르미안이 골대 안쪽으로 공을 띄웠다.

와락! 와라락!

선수들이 뒤엉킨 직후였다.

움찔!

공을 향해 달려 나가려던 정지우가 재빨리 그 자리에서 자세를 낮췄다.

처음 봤다. 그래서 예상하지 못했다.

힘이라면 지금껏 절대 밀린 적 없던 무둔바가 루니에게 밀려 정지우가 움직여 할 공간으로 들어와 버린 거였다.

지금 무둔바를 밀쳐 내 봐야 괜히 정지우까지 엉키고, 타이밍만 뺏긴다.

골대 오른쪽 바로 앞을 차지한 무둔바와 루니의 앞쪽에서,

휘이익!

맨유의 영이 달려들던 탄력을 이용해 높다랗게 뛰어올랐다.

“우와- 아!”

함성이 귀를 파고들었고, 하늘을 배경으로 거대한 괴물이 뛰어드는 것처럼 보였다.

정지우는 순간적으로 양팔을 위로 들었다.

영은 머리를 움직이지 않았다.

정지우의 왼쪽에서 날아온 공을, 오른쪽에서 뛰어오른 영이 머리를 움직이지 않은 채 헤더한 거다.

‘왼편!’

정지우는 악착같이 공에 집중했다.

헤더가 무서운 건 선수 자신이 의도했던 것과 다르게 날아올 때가 많아서다.

터엉!

영의 머리에 맞은 공이 불쑥 시야에서 사라졌다.

‘끄응!’

화아아악!

정지우는 왼편으로 기울던 몸을 단번에 오른쪽으로 날렸다.

무둔바와 루니 앞에서 공이 사라졌다.

오른쪽으로 날아오는 거다.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몸을 날렸고, 오른쪽 크로스바가 달려드는 것처럼 다가올 때, 정지우의 시선에 공이 들어왔다.

예상보다 높은 곳에서 날아들고 있었다.

골을 먹을 수 있다.

이런 상황 짐작했고, 각오했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 말이다.

그런 마음을 먹고 나서부터 시선이 좀 더 날카로워졌고, 몸이 훨씬 더 빨라진 것 같은 거다.

‘이이익!’

정지우는 있는 힘껏 왼손을 휘둘렀다.

안 맞으면? 실점이다. 그것뿐이다.

세상이 망하는 것도, 죽는 것도 아니다.

정지우란 골키퍼가 실점한 것뿐이다.

대신 유니온 시티는 승리할 거다!

반드시!

터억! 티잉! 털썩!

『정지우! 슈퍼세이브!』

『오오오!』

정지우가 튕겨 낸 공이 크로스바를 맞고 앞으로 튀었고,

『골대를 맞은 공! 어떻게! 영! 라파엘!』

양 팀 선수들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관중석과 양 팀 벤치의 모든 이들이 머리에 양손을 올린 자세로 안도와 놀라움, 이어진 긴박한 순간에 집중했다.

휘이익!

크로스바를 맞고 튀어나온 공을 향해 영이 몸을 띄웠다.

그러나 그를 아슬아슬하게 넘어간 공이 뒤로 떨어졌다.

벌떡!

정지우가 자리에서 일어난 그 순간에,

마시알이 강하게 슈팅을 날렸다.

골키퍼 바로 앞에서 날리는 강한 슈팅은 둘 중 하나를 노린다.

골키퍼의 얼굴, 아니면 반대편 모서리.

마시알은 정지우의 얼굴을 노렸다.

퍼어엉!

공격수가 작정하고 힘껏 찬 공이 정지우 얼굴을 향해 잔인하게 달려들었다.

훅 하는 순간에 공은 눈앞에 있었다.

휘이익! 터억!

정지우는 토스를 하는 배구 선수처럼 공을 위로 튕겼다.

짜그락!

손가락이 완전히 뒤로 밀렸다.

이대로 밀리면 이건 또 골이 된다.

‘끄응!’

뒤로 눕다시피 상체가 꺾인 상태에서도 정지우는 악착같이 공을 향해 팔을 뻗어 냈다.

휘이익!

위로 들린 정지우의 시선에 크로스바를 넘어 뒤로 날아가는 공이 보였다.

털썩!

정지우가 뒤로 주저앉은 직후였다.

“예에에에에에-!”

『정지우! 두 번에 걸친 슈퍼세이브!』

『이건 뭐! 실력이 더 는 것 같은데요! 정지우 선수! 부상에서 돌아온 건데요! 매번 느끼지만, 저 정도 거리에서! 저런 슈팅을 두 번이나 막아 냈다는 게 믿기지가 않을 정도입니다!』

『정지우가 유니온 시티를 또다시 위기에서 구해 냅니다! 정지우를 바라보는 마시알! 황당하다는 느낌의 시선입니다!』

『영도 그렇고요, 맨유 선수들 표정이 그런 느낌이네요!』

오른손 중지에 울리는 듯한 통증이 있었다.

이게 의사들이 염려했던 그 통증일 거다.

수비수들이 모두 자리를 차지했고, 이정렬과 데이빗까지 맨유 선수들을 막아서기 위해 바쁘게 뛰고 있었다.

코너킥 상황이었다.

삐익!

마타가 곧바로 띄운 공을,

휘이익! 터엉!

무둔바가 몸을 솟구쳐 머리로 공을 걷어 냈다.

『다시 맨유의 코너킥입니다!』

“무둔바!”

정지우가 내민 손을 무둔바가 툭 하고 마주치고는 위치로 움직였다.

삐익! 퍼어어엉!

마타가 두 번째로 올린 코너킥이었다.

휘익! 휘이이익!

선수들이 뒤엉켜 뛰어올랐고, 공은 슈바인슈타이거의 머리에 맞았다.

그가 헤더한 공이 크로스바 위를 높다랗게 넘어가 버렸다.

실망한 맨유 팬들은 머리에 붙인 양손을 내릴 줄 몰랐고, 유니온 시티의 철강 노동자들은 ‘오- 오오!’ 하는 거친 함성으로 그들을 자극했다.

정지우는 뒤에서 넘겨주는 공을 받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골키퍼 에어리어 앞에 놓았다.

공에서 서너 걸음 물러난 정지우가 신준석을 보았다.

‘뭐 하냐?’

‘어? 열심히 뛰었어!’

만약 말로 나눈 대화였다면 킬킬거리고 웃었을 거다.

투욱!

정지우는 라파엘에게 공을 차 주었다.

전반이 15분쯤 남았다.

두 번의 기회를 골로 만들지 못한 맨유 선수들이 뺨을 맞은 듯한 얼굴로 유니온 시티 선수들에게 달려들었다.

“우-!”

“와아-!”

관중들이 전혀 상반된 느낌의 탄성과 함성을 동시에 질러 댔다.

박상민 때문이었다.

이건 누가 누굴 맡은 건지 모를 정도로 캐릭의 움직임을 박상민이 바싹 따라붙어서 달리고 있는 거였다.

『관중들의 지금 함성이 박상민 때문인 거 같습니다.』

『그런 것 같네요! 박상민 선수가 저렇게 나오면 캐릭은 수비를 조율하기도 어렵거든요. 슈바인슈타이거는 공수를 조율하는 능력에는 아무래도 물음표가 붙으니까요.』

『경기 내내 달리는 것은 박상민이 한 수 위일 텐데요?』

『그렇죠! 박상민 선수는 대개 경기당 12킬로미터를 넘나들 게 뛰니까요. 저런 선수를 맡게 되면 정말 싫을 것 같은데요.』

“우-!”

삐익!

『캐릭! 신경질적으로 박상민을 밀쳐냅니다!』

『이 정도면 주심이 구두 경고를 줄 거예요.』

『오늘 박상민! 맨유 입장에서 보면 정말 얄밉겠습니다.』

맨유는 포메이션을 유지하고, 라인을 정비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한 번의 실점과 두 번의 결정적인 찬스를 놓친 나쁜 기억을 털어 내고 다시 리듬이 생겨나는 거다.

이럴 때 그라운드에서 그 역할을 조율할 선수가 필요하다.

맨유에서는 캐릭이 그런 선수였다.

“우우-!”

삐이이익!

『캐릭! 또다시 박상민을 거세게 밀쳤습니다! 이번엔 박상민이 공을 받으려던 순간인데요?』

『경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아서 화가 난 것처럼 보이네요. 저 상태에서 박상민이 공을 잡으면 맨유 중앙이 또다시 뚫리거든요.』

맨유 선수들이 당황했다는 의미였다.

이럴 땐 캐릭을 대신해서 다른 누군가 중심을 잡고 동료들을 북돋워 줘야 한다.

삐이익!

주심이 휘슬을 불자 카알이 데이빗에게 공을 차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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