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의 지배자-203화 (203/262)

제2장. Sang의 경기를 보면서 느낀 것. (2)

삐이익!

『스토크 시티, 반 힌겔과 아르노토비치 두 선수를 오뎀윙기와 크라우치로 동시에 교체합니다. 두 선수 오늘 초반부터 많이 뛰었습니다.』

『특히 반 힌겔은 중앙과 유니온 시티 골대를 오가며 평소보다 활동량이 많았구요, 아르노토비치는 신준석을 상대하느라 많이 지친 모습이에요.』

두 선수의 교체가 끝나자 주심이 프리킥을 차라고 휘슬을 불었다.

박상민이 얻은 파울을 꼼빠니가 길게 차 주었다.

퍼어엉!

그러나 이번 공은 윌슨이 막아 냈다.

기다랗게 걷어 낸 공을 웰란이 다시 유니온 시티의 골대를 향해 바로 날렸고, 스토크 시티 선수들이 거칠게 달려들었다.

크라우치는 영국 리그를 통틀어서 신장이 크기로 유명한 선수였다.

높다랗게 날아온 공을 향해 정지우가 달려 나가 점프했는데, 크라우치의 머리가 바로 옆에 있을 정도였다.

꽈아악!

정지우가 공을 잡았고, 크라우치와 가볍게 부딪쳤다.

그는 매너가 있었다.

미안하다는 투로 공을 꽉 끌어안은 정지우의 어깨를 툭 치고 중앙으로 달려 나갔다.

정지우는 라파엘을 향해 공을 세게 굴려 주었다.

완전히 유니온 시티가 리듬을 가져온 경기였다.

스웰던과 신준석의 적극적인 공격 가담, 그리고 박상민의 창의적인 볼 배급이 만들어 낸 리듬이었다.

후반을 10분쯤 남겨 놓았을 때, 오늘 경기 중 가장 환상적인 장면이 나왔다.

투우욱!

스웰던이 반대편의 신준석에게 공을 넘겼고, 신준석이 대각선 너머의 꼼빠니에게, 꼼빠니가 다시 또 대각선 건너의 데니에게 연달아 공을 넘겼다.

스토크 시티의 수비진이 그야말로 휘청휘청할 수밖에 없는 환상적인 패스였다.

투욱!

그리고 데니는 박상민에게 공을 맡겼다.

와락!

박상민은 페널티 에어리어 바로 앞에서 공을 향해 달려들었다.

“예아아-!”

다들 강력한 슈팅을 기대할 때 그는 공을 그대로 지나쳤다.

그 뒤에 달려들 선수는 맥슨이었다. 그 역시 슈팅을 날릴 것처럼 뛰어들어서 가볍게 왼쪽으로 공을 찔러 넣었다.

스토크 시티의 수비수들이 얼이 빠진 것처럼 주춤거릴 때,

와락!

레믹이 귀신처럼 불쑥 나타났다.

투욱!

강하게 차지도 않았다. 그냥 패스하는 것처럼 가볍게 찔러 넣었다.

철렁!

“예에에에에에에-!”

골을 넣은 레믹이 비상구 표시 같은 포즈로 높다랗게 뛰어오르는 동안, 유니온 시티 관중들의 함성이 스토크 시티의 홈구장을 뒤덮었다.

버틀랜드 골키퍼가 양손을 아래로 휘저으며 수비수들을 질책했지만, 이미 스토크 시티 선수들은 사기가 완전히 부러진 상태여서 고개를 떨군 채 반응조차 없었다.

데이빗이 뛰어나와 마틴을 끌어안았다.

최근에 벤치에 있었던 적이 없던 그는 환상적인 패스와 동료들 간의 멋진 호흡, 그리고 완벽한 골을 보는 순간 피가 끓어올라서 무의식적으로 달려 나온 거였다.

“코치! 우리 팀이 이 정도였어요? 믿을 수가 없어요!”

그는 진심으로 흥분하고 있었다.

이럴 때 참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다.

마틴은 데이빗의 어깨를 부둥켜안고 함께 기쁨을 나눴다.

경기가 다시 이어졌으나,

삑! 삑! 삐이익!

“예에에에에에에-!”

스토크 시티와의 경기는 더 이상의 변화 없이 그렇게 끝났다.

『프리미어리그 6라운드 유니온 시티와 스토크 시티의 경기는 유니온 시티의 3 대 0 승리로 끝났습니다.』

『이렇게 되면요, 유니온 시티는 프리미어리그로만 여섯 경기 연속 무실점이구요, 6라운드 현재 유니온 시티가 선두를 유지하네요! 대단합니다! 무실점 기록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이제는 이 점에 관심이 집중되겠어요.』

경기 하이라이트를 보여 주며 중계방송이 끝났다.

한국에서의 반응도 대단했지만, 승격 팀의 여섯 경기 무실점 선두라는 화제도 세계적으로 관심을 끌었다.

경기를 마친 날은 일찍 잠이 든다.

특히나 야간 경기를 마친 뒤라서 집에 도착한 정지우와 박상민은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은 당연하게 회복 훈련을 위해 구장으로 나갔다.

정지우가 라커룸으로 들어섰을 때였다.

“Ji, 점심 먹고 내가 궁금한 것들이 있는데 설명을 부탁해도 될까?”

정지우를 기다리고 있던 데이빗이 곧바로 다가왔다.

“어제 Sang의 경기를 보면서 느낀 것이 있는데, 어제는 경기가 끝난 뒤라서 바로 부탁하기가 뭐했고.”

“그런 걸 뭘 그렇게 어렵게 그래. 얼마든지.”

정지우의 답을 들은 데이빗이 만족한 듯 손을 내밀어서 함께 맞잡았다. 말로 전하는 것보다 확실하게 느껴지는 감사의 표시였다.

간단하게 오전 훈련을 마쳤고, 점심을 먹은 뒤에 식당의 탁자에 둘러앉았다. 그리고 어제의 경기를 처음부터 풀어 보았다.

가뜩이나 교체돼서 나갔던 데이빗이 건넨 질문이었다.

거기에 그가 중간에 지른 고함을 다들 기억하는 데다, 또 라파엘과 무둔바, 꽁꽁 묶였던 맥슨까지 궁금한 점이 많았던 참이다.

여기에 레믹과 꼼빠니, 카알에 이어 다른 선수들이 자연스럽게 참여해서 아예 식당이 토론장으로 바뀌다시피 했다.

30분쯤 어제의 상황에 대해 포지션별로 초반의 고충을 쭉 들었다.

“고민할 것 없어. 초반 스토크 시티의 방식이 우리에게 당황스러웠을 뿐이니까. 문제는 좀 더 강한 팀들을 상대할 때야. 빠르고 정교한 팀들. 그들이 이런 전술을 들고 나오면 어제처럼 쉽게 풀기 어려울 것 같거든.”

아무래도 말로 설명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정지우는 고개를 돌려 문 쪽에 있던 데니를 보았다.

“데니! 사무실로 가서 그라운드를 사용해도 되는지와 우리가 간단하게 두 시간 정도 공을 차도 되는지를 물어봐 줄래?”

“오케이, Ji.”

데니가 사무실로 움직인 다음이었다.

“이러지 말고 만약 괜찮다고 하면 어제의 움직임을 잠깐 짚어 보자고. 6명씩 포지션을 나누면 주장도 그렇지만, 다들 이 움직임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데니는 클락과 함께 돌아왔다.

“그라운드 키퍼가 동의했어. 대신 두 시간을 반드시 지켜 달라는 당부가 있었어. 어시스턴트 코치도 무리하지 않는 수준이라면 상관없다고 하고.”

답을 들었으니 당연하게 다들 그라운드로 나갔다.

그런데 마틴과 코치들이 관중석에 쭉 앉아서 정지우와 선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선수들끼리의 훈련이라니 궁금해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

벤치 바로 위 관중석에서 편안한 자세로 앉은 마틴이 농담처럼 말을 건넸다.

“우리 신경 쓰지 말고 하려던 걸 편안하게 해.”

웃음으로 답을 한 정지우는 우선 팀을 나눴다.

“얀센! 이쪽 골대를 좀 부탁할게. 기예르모! 너는 저쪽 팀 골대를 맡아.”

서브 선수들까지 가세하는 바람에 인원이 좀 더 있었다.

양쪽으로 선수들이 나누어 섰고, 주심은 정지우가 맡았다.

삐익!

휘슬이 울리자 박상민과 포그이가 맥슨을 따라붙었고, 브라운과 멜스가 라파엘과 무둔바를 막아섰다.

박상민의 편에 가세한 레믹이 대놓고 카알과 데이빗을 따라다니며 공간을 막았다.

투욱! 툭!

데이빗은 아직 동선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결국 레믹에게 막혀 공을 엉뚱한 곳으로 흘려 내고 말았다.

어색한 침묵이 흐를 때였다.

“스웰던! 데이빗을 지원해 주지 않으면 이런 압박을 혼자 풀어내는 건 무리야! 준석아! 너도 마찬가지고! 다음 우리의 상대는 아스널이잖아!”

정지우가 스웰던과 신준석에게 검지로 라인을 그려 가며 방향을 알려 주었다.

“다시 해 봐!”

삐익!

그리고 공이 흘러나왔다.

“헤이! 데이빗!”

스웰던이 적극적으로 달려 나오며 고함을 질렀고, 신준석이 근처로 뛰어들었다.

마틴은 흐뭇한 얼굴이었다.

동료 간의 경쟁을 피할 수 없는 프로팀에서 주장을 위해 이런 노력을 보여 주는 팀원들을 본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완전히 유소년 팀을 보는 느낌인데요?”

“Ji는 골키퍼만큼이나 코치로서의 재능도 뛰어나 보입니다.”

어시스턴트 코치와 골키퍼 코치가 건네는 말도 나쁘지 않았다.

“오!”

그때 관중석에 있던 스태프들이 일제히 탄성을 토해 냈다.

마침내 데이빗이 스웰던, 카알과 멋진 패스를 주고받으며 압박을 벗어났고, 꼼빠니를 향해 빠르게 공을 찔러 주었기 때문이다.

퍼어엉!

꼼빠니가 찬 공을 얀센이 막아 냈지만,

짝짝짝짝짝짝짝!

관중석의 스태프들이 박수로 데이빗의 움직임을 격려했다.

정지우가 엄지를 치켜들자, 근처의 동료들이 더 기쁜 얼굴로 웃었다.

***

쥬피터는 무거운 분위기에서 2명의 남자들을 마주하고 있었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이 아무리 넓어진다고 해도 솔직히 동양인 골키퍼는 마케팅 면에서 한계가 있습니다.”

나이에 걸맞지 않은 백발의 남자가 쥬피터를 가르치는 것처럼 말을 건넸다.

“나더러 승부를 조작하라는 말을 이렇게 대놓고 할 줄은 몰랐소. 이 일이 외부로 알려진다면 당신들 사업 전체가 커다란 위기에 직면하게 될 거요.”

“재미있는 말씀이시군요.”

“승부 조작은 재미있는 말이 아니라 극히 위험하고, 불법적이며, 추악한 이야기요.”

“원하시면 얼마든지 외부에 알리셔도 무방합니다. 다만, 승부 조작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면 투자에 관한 비밀 이행 각서에 따라 우리는 회장님과 유니온 시티 이사진에 손해배상을 청구하게 됩니다. 그 점도 잊지 마십시오.”

백발의 남자는 쥬피터의 반응에 전혀 상관없다는 투였다.

“투자 조건일 뿐입니다. 우리가 지원하는 골키퍼가 속한 팀과 대결을 해 달라는 것, 그것뿐입니다.”

“당신들의 요구는 충분히 들어주었소. 그런데 여기에서 또 국가대항전에 참가하라고 하고, 그 뒤에 바로 경기에 뛰게 하는 건 일종의 승부 조작인 거요.”

“그에게 열흘의 휴식을 준 것은 뜻밖이었습니다.”

“부상이 있었다는 것을 알 것 아니오?”

쥬피터는 단호한 표정으로 백발의 남자를 향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내가 아는 우리 Ji는, 당신들이 어떤 스트라이커를 내세우더라도 골대를 지켜 낼 수 있는 위대한 선수요.”

“그는 동양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오랜 시간 동안 공들여 온 시장을 동양인 선수가 망치지 않기를 희망할 뿐입니다.”

백발의 사내가 고급스러운 흰색 커버의 서류철을 쥬피터 앞으로 밀었다.

“계약 내용입니다.”

서류를 밀어 준 그는 옷소매를 당기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Ji의 이적료는 아무리 높아도 2천2백만 유로(한화 300억 상당)를 넘지 못합니다. 그것이 그가 지닌 한계입니다. 우리가 지원하는 골키퍼 한 명이 두 번 이적하면 발생하는 이적료는 그것의 다섯 배에 달하지요.”

서류를 보라는 듯이 백발의 사내가 손짓으로 서류철을 가리켰다.

“그 외에 세계적인 용품 브랜드와의 계약금, 광고비를 더하면 가히 천문학적 수입이 보장됩니다. 골키퍼만큼 유럽의 축구 팬들이 보수적으로 지켜보는 포지션은 없습니다.”

백발의 남자가 지금껏 침묵하던 옆자리의 사내에게 시선을 주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동양인 골키퍼와 유럽이 사랑하는 골키퍼의 대결이 펼쳐진다면, 그 경기를 시청하는 시청자들은 과연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되길 바란다고 생각하십니까?”

“승부 조작은 추악한 범죄요.”

“그에게 골을 먹으라고 권하지 않습니다.”

“그렇더라도 이건…….”

“이번 투자에서 회장님의 지분을 인수하는데 우리가 지불하는 비용만 3천8백만 유로(한화 500억 상당)입니다.”

쥬피터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물론 말씀드렸듯이 우리는 정지우를 이적시켜서 그 비용의 일부를 만회할 생각입니다. 우리에겐 그만한 능력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생각한 정지우의 최고 가치입니다.”

“우리가 챔피언스리그에 나가서 우승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 아니오?”

“회장님이 이 제안을 거절한다면 우리는 정지우의 무실점을 깰 다른 방법을 강구하게 될 것입니다. 협회의 능력을 확인하고 싶으시다면 그 선택도 나쁘지 않습니다.”

말을 마친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바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빠르고 긍정적인 답을 기대하겠습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적인 태도로 악수를 나누고는 바로 몸을 돌렸다.

내내 입을 다물고 있던 남자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백발 남자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이 나가고 난 다음이었다.

“후우.”

쥬피터가 기다란 한숨과 함께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 바닥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러워졌군.”

그러면서도 그는 앞에 놓인 서류철을 가져와 펼쳤다.

“아니라면 내가 순진했든가.”

이런 터무니없는 요구를 감춘 투자를 눈치채지 못했던 건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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