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의 지배자-201화 (201/262)

제1장. 영상을 참고하는 건 아니지? (2)

삐이익!

『스토크 시티의 선공으로 경기 시작합니다. 오늘 스토크 시티는 4-5-1의 포메이션을 선택했습니다. 중앙에서부터 단단하게 경기를 풀어 나가겠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지난 애스턴 빌라에 이어 스토크 시티도 중앙 지역에 집중하는 전술을 들고 나왔네요. 유니온 시티가 워낙 빠른 역습으로 득점을 만들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구요.』

『27번 크르키치, 공을 앞으로 찔러 줍니다!』

크르키치가 넘긴 공을 반 힌겔이 받아서 다시 대각선 방향으로 넘겼다.

정지우의 왼편이었다.

꼼빠니와 데이빗이 앞을 막았고, 뒤편에서 스웰던과 라파엘이 페널티 에어리어를 경계했다.

스토크 시티의 6번 웰란이 공을 받았을 때였다.

‘뭐지?’

정지우는 크르키치와 반 힌겔을 빠르게 살폈다.

수비수가 공격수를 따라다니는 것이 상식에 맞는 거지, 공격수가 수비수에게 달려들어 몸싸움을 벌인다면 이건 뭔가 이상한 거다.

크르키치와 뒤엉킨 라파엘이 당황한 기색으로 몸을 돌리려 할 때였다.

투욱!

웰란이 라파엘과 무둔바의 사이로 공을 찔러 넣었다.

“예에-!”

스토크 시티의 홈구장이라 단박에 기대에 찬 함성이 터져 나왔다.

라파엘이 오히려 크르키치에 갇혔고, 무둔바가 반 힌겔의 등 뒤에 붙잡힌 꼴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를 파고드는 공을 향해 월터스가 빠르게 달려들었다.

정지우는 자세를 낮추고 왼쪽 골포스트를 확인했다.

오른쪽이다. 오른쪽을 비워 놓았으니 그쪽으로 슈팅을 날릴 확률이 높은 거다.

퍼어어엉!

그때 월터스가 강하게 찬 공이 정지우의 왼쪽 아래로 날아들었다. 마음먹고 날린 슈팅이었다. 그라운드를 스치며 날아와서 높이를 가늠하기조차 어려웠다.

화아아악!

왼쪽 아래였다.

늘 하던 그 단순하고 재미없던 훈련처럼 정지우는 빠르게 왼쪽으로 몸을 쓰러트렸다. 그러고는 공이 오는 방향에 대고 손을 긁어 올렸다.

터어억!

공이 정지우의 손에 맞았고, 이어서 높다랗게 떠올랐다.

“예에에에-!”

유니온 시티의 관중들이 들으란 듯이 함성을 내질렀고,

와락! 와라락!

선수들이 달려들었는데, 스웰던이 가장 빨랐다.

퍼어어엉!

그가 중앙선 방향으로 공을 힘껏 걷어 내면서 유니온 시티는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스웰던이 달려와 정지우와 손을 마주치고 제자리로 달려갔다.

『멋진 선방입니다! 정지우!』

『그렇네요! 하지만 슈팅 과정까지가 너무 쉽게 이어졌어요. 웰란이 찔러 준 공을 향해 월터스가 거의 노마크로 달려들었거든요.』

공은 다시 스토크 시티가 잡았다.

『홈에서 경기를 펼치는 스토크 시티, 초반 기세가 무섭습니다.』

『준비를 많이 한 느낌입니다. 카메론과 윌슨이 유니온 시티의 맥슨을 묶었구요, 거기에서부터 유니온 시티의 공격 줄기를 완벽하게 차단하고 있습니다.』

스토크 시티가 빠른 패스를 이용해 유니온 시티의 진영으로 넘어오고 있었다.

정지우는 페널티 에어리어 앞을 빠르게 살폈다.

라파엘과 무둔바를 크르키치와 반 힌겔이 괴롭히는 게 분명했다.

정지우와의 동선에 끼어들거나, 아니라면 공이 오는 방향으로 몸을 틀어 등 뒤에 라파엘과 무둔바를 두었다.

여기에서 힘으로 잘못 뿌리치면 페널티킥을 주게 된다.

라파엘이 이리저리 몸을 빼기 위해 애썼고, 무둔바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반 힌겔을 밀어낼 때였다.

투우욱!

웰란이 반 힌겔의 앞으로 공을 찔러 주었다.

투욱!

완벽한 2 대 1 패스였다.

반 힌겔이 건드리다시피 돌려준 공을 향해 웰란이 달려들었다.

와락! 퍼어어엉!

다행히 신준석이 달려와 공을 걷어 냈다.

“우-!”

초반에 이렇게까지 밀린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일방적인 경기였다.

스토크 시티의 스로인이었다.

이대로 밀리기만 해서는 아무래도 어렵다.

정지우는 벤치를 짧게 돌아보곤 다시 공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리듬을 뺏긴 전반이었다.

우렁차게 들려오는 스토크 시티의 응원가 속에서 유니온 시티의 동료들은 다들 허둥댔다.

라파엘과 무둔바가 휘청이자 데이빗과 카알이 바빠졌고, 좌우에 있는 스웰던과 신준석의 자리로 상대 선수들이 파고들었다.

고작 두 명이다.

크르키치와 반 힌겔이 라파엘과 무둔바를 방해하면서 생긴 일이었다.

공격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중앙선 부근에서 달리고, 공격이 전개된 이후에는 페널티 에어리어로 달려와 라파엘과 무둔바를 방해했다.

그렇게 그 둘이 경기의 리듬을 완벽하게 가져가고 템포를 조절하는 바람에, 유니온 시티의 리듬이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예에-!”

『아르노토비치! 유니온의 오른쪽 진영을 무섭게 달립니다!』

『신준석 선수 혼자는 어려운데요!』

『아르노토비치! 안쪽으로! 월터스! 월터스! 슈웃!』

“우-!”

『골포스트를 살짝 빗겨 나갑니다! 빗나가기는 했습니다만, 이런 식으로 계속 슈팅을 허용해서는 좋지 않을 것 같은데요.』

『유니온 시티 선수들이 전반적으로 많이 흔들리고 있어요. 크르키치와 반 힌겔 때문에 수비 라인도 제대로 못 올라오고 있구요. 또 스웰던과 신준석, 이 두 선수가 양쪽에서 너무 쉽게 뚫립니다.』

『유니온 시티! 아직 유효 슈팅이 하나도 없습니다.』

정지우는 장갑을 낀 손으로 손뼉을 치며 수비수들을 돌아보았다.

“무둔바! 침착해! 지금은 일단 가라앉혀!”

크르키치와 반 힌겔이 물러난 틈을 이용해 지른 고함이었다.

“지금처럼 라인만 놓치지 마!”

골대 바깥에서 날아온 공을 받아서 바닥에 내려놓으며 정지우는 우선 시간을 끌었다.

스토크 시티는 선이 굵은 축구를 하는 팀이다.

오죽하면 별명이 남자들의 팀이겠나.

당장 그런 팀을 이기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힘으로 맞서 싸우는 게 최선인 거다.

“준석아! 천천히 돌려!”

정지우는 우선 신준석에게 공을 넘겨주었다.

투욱!

신준석이 무둔바에게 공을 돌렸고, 무둔바가 카알에게, 카알이 다시 라파엘에게 패스하며 숨을 골랐다.

맥슨이 묶이면서 레믹이 고립되었고, 맥슨과 포지션을 바꿔 달려야 할 데이빗과 카알이 자꾸만 동선이 엇나가는 상태였다.

정지우는 골키퍼 에어리어 바깥까지 나가서 손으로 공이 돌아야 할 위치를 가리켜 주었다.

투욱!

공은 스웰던을 거쳐 데이빗에게 전달되었다.

“헤이!”

투욱!

정지우의 고함을 들은 데이빗이 공을 골대로 차 준 직후였다.

“예에-!”

크르키치와 반 힌겔이 무섭게 정지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정지우는 당황하지 않았다.

투욱!

가볍게 움직여서 간단하게 패스했다.

공을 받은 것은 신준석이었다.

퍼어엉!

신준석은 정지우가 넘겨준 공을 그대로 데니에게 차 주었다.

『유니온 시티! 스토크 시티의 오른쪽을 뚫습니다!』

『왼쪽에 레믹이 있어요!』

『데니! 치고 달립니다! 오른쪽을 파고드는 데니!』

스토크 시티의 페널티 에어리어로 뛰어든 데니를 윌슨과 피에터스가 막아섰다.

투욱!

데니는 페널티 에어리어 뒤쪽으로 공을 흘려주었다.

“예아-!”

모처럼 터진 유니온 시티의 함성이었다.

카알이 공을 향해 달려들었고, 레믹이 양손을 들어 앞쪽을 가리켰다.

툭툭!

그러나 카알은 공을 찔러 주지 못했다.

스토크 시티의 수비 라인이 이미 레믹의 바깥쪽으로 다들 뛰어나온 뒤라서 오프사이드에 걸리기 때문이었다.

공을 두 번쯤 치고 달린 카알이 오른쪽의 데니에게 다시 공을 넘겨주었다.

『중간에 연결할 선수가 필요해요! 맥슨이 겉돌면서 공을 뿌려 줄 줄기가 잘린 꼴이거든요!』

『데니가 바로 공을 넘겼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데니, 공을 몰고 들어가는 데니!』

퍼어엉!

골라인 근처까지 달려간 데니가 골대를 향해 공을 날린 직후였다.

삐이익!

주심이 휘슬을 불어서 공이 아웃되었음을 알렸다.

마틴은 벤치에서 고개를 오른쪽으로 기울였다.

“Sang을 투입하는 게 어떨까요?”

유정호가 빠르게 마틴의 말을 전했다.

“맥슨을 생각하신 것 같은데 데이빗을 교체했으면 싶습니다.”

마틴이 의외란 얼굴로 박용근을 보았다.

“데이빗과 카알이 맥슨을 지켜 줘야 하는데, 지금 전혀 움직임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맥슨을 빼면 계속 같은 문제가 생깁니다.”

전술판에 선수들의 움직임을 그려 보인 박용근의 답이었다.

마틴은 그라운드로 시선을 주었다.

전반 25분경이었다.

주장이고, 유소년 팀에서 축구를 시작해 지금껏 유니온 시티를 위해 헌신해 온 그를 이 시간대에 교체하는 것은, 뭐라고 해도 그의 자존심을 크게 상하게 하는 일이다.

마틴이 알기에 박용근은 그런 점을 모를 리가 없는 지도자였다. 시선에 담긴 의문을 알아차린 것처럼 박용근이 입을 열었다.

“판단은 감독님의 몫입니다. 이런 움직임을 훈련할 때 데이빗은 이미 힘겨워했기 때문에 지금의 교체에 좌절할 수도 있고,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 점은 감독님께서 따로 면담을 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맥슨과 교체하는 건 효과가 떨어질까요?”

마틴의 질문이 건너온 직후였다.

“예에에-!”

스웰던 쪽을 파고든 웰란이 골대 앞으로 공을 날렸고, 반 힌겔이 다이빙 헤더로 골대를 노렸다.

화아아악! 터억! 털썩!

“예아아아-!”

정지우가 바운드된 슈팅을 가까스로 쳐 내고 벌떡 일어나고 있었다. 저런 헤더를 막아 냈다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교체하지요.”

마틴은 결심을 굳히고 클락에게 고개를 돌렸다.

“Sang을 준비시켜! 데이빗과 교체!”

클락은 물론이고 스태프들이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으나, 마틴의 지시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었다.

스토크 시티의 코너킥이었다.

이렇게 아예 정해진 공격이라면 라파엘과 무둔바가 손해 볼 이유가 없었다.

선수들이 뒤엉켰고, 주심이 휘슬을 불었다.

『아르노토비치! 공을 향해 달려듭니다!』

퍼어엉!

공은 강하게 날아왔고, 골대를 높이 지나서 바로 골라인 밖으로 나가 버렸다.

삐이익!

『유니온 시티, 이른 시간에 선수 교체입니다! 아! 박상민 선수가 나옵니다! 이렇게 되면 역시 맥슨과…….』

『주장 데이빗과 교체네요. 이건 좀 뜻밖인데요? 오늘 데이빗은 나쁘지 않았거든요. 오히려 계속 압박을 벗어나지 못한 맥슨을 교체해 주는 것이 어떨까 싶은데요.』

데이빗이 굳은 표정으로 천천히 그라운드를 벗어났다.

짝짝짝짝짝짝짝짝!

관중들이 박수로 그를 격려했고, 그 역시 손을 들어 답을 하고는 있었지만, 그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박상민의 손을 쳐 준 데이빗이 그라운드를 벗어났다.

툭툭.

마틴이 어깨를 다독여 주었는데, 데이빗은 점퍼를 받아 들고 그대로 벤치의 뒤쪽으로 움직였다.

선수들에게도 뜻밖의 교체였다. 특히 카알과 맥슨이 의아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렇게 되면 포지션 변화가 어떻게 될까요? 맥슨과 자리를 바꿀 수도 있고, 아니면 데이빗의 자리를 맡을 수도 있습니다.』

『극단적인 경우는 유니온 시티도 4-5-1로 갈 수 있겠네요. 맥슨이 압박을 벗겨 내지 못하기 때문에 굳이 앞으로 나가 있을 이유도 없어 보이구요.』

그라운드로 들어온 박상민이 맥슨과 카알에게 손짓하고는 데이빗의 자리에 섰다.

『지금 봐서는 단순히 데이빗의 자리로 들어간 것 같습니다. 데이빗의 컨디션이나 움직임이 나빠 보이지 않았는데, 이 교체는 좀 의아합니다.』

『전술적 변화를 가져오고 싶은 느낌인데요, 박상민 선수가 워낙 활동량이 많거든요. 그리고 축구 지능이 뛰어납니다. 공이 없는 지역에서의 움직임을 기대하는 거 같네요.』

정지우가 라파엘에게 공을 넘겨주었고, 그 공이 곧바로 박상민에게 연결되었다.

툭툭.

『박상민, 스토크 시티 진영을 향해 움직입니다!』

투욱!

박상민이 카알에게 공을 차 주었고,

툭!

카알이 2 대 1 패스로 박상민에게 공을 연결했다.

중앙선과 페널티 에어리어 중간 지점이었다.

앞쪽에 고립된 맥슨이, 그 너머에 레믹이 손을 들고 있었다.

투욱!

박상민의 선택은 뜻밖에도 데니였다.

“예에-!”

『데니! 오른쪽을 뚫고 달립니다!』

『아까와 비슷한 상황인데요!』

투우욱!

그리고 데니가 박상민을 향해 공을 빼 준 것까지 조금 전 장면과 비슷했다.

투욱!

박상민은 발뒤꿈치로 공을 뒤로 밀었다. 그리고 골대를 향해 뛰어들었다.

투우욱!

뒤따르던 카알이 박상민을 향해 공을 찔러 주었고,

“예아아-!”

『박상민! 완벽한 찬스! 박상민! 박상민!』

누가 봐도 슈팅 찬스였다.

퍼어어엉!

그런데 박상민은 왼쪽에서 뛰어든 레믹을 향해 공을 차 주었다.

골키퍼 버틀랜드의 앞에서 휘어 나가는 절묘한 패스였다.

와락! 콰아악!

레믹이 불쑥 나타났고, 카메론이 그 앞에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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