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의 지배자-200화 (200/262)

제1장. 영상을 참고하는 건 아니지? (1)

유로파 리그 카라바크와의 경기는 17일, 목요일 저녁 7시였다.

쿵. 쿵. 쿵. 쿵. 쿵. 쿵.

“Go, Go, Go my Red! Go, Go, Go my Red!”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유로파 리그 홈경기를 보려는 관중들로 레드 블레이트가 들끓었고, 쥬피터와 이사진이 기대에 찬 얼굴로 VIP석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정지우는 관중석에 있었고, 박상민은 벤치에, 신준석은 선발 출전이었다.

전반 5분쯤 지났을 때였다.

신준석이 길게 찔러 준 공을 맥슨이 바로 흘려주었다.

카라바크가 아직 레드 블레이트의 잔디에 적응하지 못한 상태에서 허를 찌를 멋진 어시스트였다.

투우욱!

수비수 틈에서 불쑥 튀어나온 레믹이 가볍게 차 넣었고,

“예에에에에에-!”

유니온 시티의 유로파 리그 첫 골을 기록했다.

쥬피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뼉을 쳐 가며 기뻐했는데, 전에 흔히 보이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어서 꼼빠니가 한 골을 넣었다.

골대 앞으로 공을 띄운다는 것이 바운드되면서 바로 골대로 들어가 버린 거였다.

후반에 카라바크는 그들이 왜 유로파 리그에 진출했는지를 완벽한 슈팅으로 보여 주었다.

두 번의 패스에 이은 간결한 슈팅이었다.

2 대 1의 상황에서 레믹의 강렬한 슈팅이 수비수를 맞고 튀어나왔고, 그 공을 데니가 욱여넣었다.

그렇게 유니온 시티의 유로파 리그 첫 경기가 3 대 1의 스코어로 끝났다.

홈 관중들은 말할 것 없고, 선수들과 스태프, 심지어 구단 이사들까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한마디로 마틴 감독의 도박이 멋지게 성공한 경기였다.

얀센, 브라운, 포그이, 멜스 등 그동안 선발에서 밀려 있던 선수들을 선발로 기용해서 기존의 주전 선수들에게 휴식을 주었으며, 유로파 리그 첫 경기를 승리로 장식했으니 말이다.

한국의 방송국과 축구 팬들의 기대와 달리 정지우는 물론이고, 박상민 역시 벤치에서 경기를 마쳤다.

다음 날, 회복 훈련에는 정지우도 참가했다.

눈에 올라왔던 멍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고, 또 21일 스토크 시티와의 경기를 준비할 필요도 있어서였다.

팀 분위기는 정말 좋았다.

특히나 유로파 리그에서 두 골을 기록한 레믹은 구름 위를 달리는 것처럼 보였다.

느긋하게 달린 후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어 준 다음, 다시 조금 더 빠르게 달리고 스트레칭을 해 준다.

내리쬐는 햇볕, 스터드에 밟히는 잔디의 감촉, 그리고 동료들 사이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공.

확실히 선수는 그라운드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한 느낌이었다.

오전을 그렇게 마친 정지우는 식당으로 이동했다.

“이봐, Ji. 요즘 같으면 우리 팀, 정말 대단하지 않아?”

데이빗이 정지우의 테이블로 다가오며 건넨 말이었다. 그의 옆으로 카알과 레믹, 라파엘이 줄줄이 자리에 앉았다.

“확실히 대단하지. 특히나 유로파 리그 첫 경기를 승리로 장식한 건 굉장했어.”

정지우의 대꾸에 레믹이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Ji, 21일에 있을 스토크 시티와의 경기를 예상한다면?”

“글쎄… 난 0 대 0 무승부?”

그냥 농담처럼 웃는 얼굴로 오간 대화였다. 그래서 다들 ‘오- 호호호!’ 하며 장난처럼 받아들였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레믹만 빼고 말이다.

“두 경기를 관중석에서 봤잖아. 우리가 준비한 것이 어느 정도인지 알겠더라구.”

포크를 움직이던 동료들이 정지우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FA컵, 커뮤니티 실드, 그리고 지금까지의 리그전까지.”

정지우는 느꼈던 점을 솔직하게 털어놓기로 했다.

“우리를 이기겠다고 달려드는 팀을 상대로 우리는 분명하게 승리를 따냈지. 악착같은 수비, 빠른 역습, 그리고 상대를 단숨에 무너트리는 골 결정력까지.”

율동처럼 동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애스턴 빌라처럼 틈을 안 주는 팀에게서는 좀처럼 기회를 만들지 못하더라구.”

동료들은 완벽하게 실감하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우리는 역습에서 우위를 점하지만, 반대로 그들이 템포를 천천히 가져가면서 점점 더 우리를 조여 올 때는 경기를 쉽게 풀지 못하더라구. 스토크 시티도 비슷한 전술로 나오지 않을까?”

정지우의 말에 갑자기 식사 분위기가 뻑뻑해졌다.

“우리 지금까지 내내 그랬었잖아? 그들의 압박을 잘 견디다가 한순간 반격하는 거?”

“그때는 우리의 역습 루트를 그들이 몰랐던 거고, 지금은 완벽하게 꿰뚫고 있는 거지.”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만, 심정적으로 정지우의 말이 너무 큰 염려가 아닐까 하는 얼굴들이었다.

“애스턴 빌라의 작전이 반쯤 성공한 거라고 보니까 틀림없이 스토크 시티도 비슷한 작전으로 나올 거야. 데이빗, 카알, 맥슨이나 상민이를 잡아서 중간 고리를 자르는 거.”

“Jun이 뒤에서 바로 넘겨줄 수도 있어.”

“레믹, 한 경기를 치르면서 한 번도 기회가 생기지 않는 적은 없어. 그 단 한 번의 기회에 네가 골을 만들어 준다면 우리는 분명 좋은 결과를 얻겠지.”

레믹이 당연하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가 말하는 건 그럴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거지. 앞으로 점점 더.”

입맛을 다신 동료들이 포크를 내려놓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서로의 의견을 묻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혹시 해결책을 생각해 놓은 건 있나?”

“코치와 스태프들도 문제점을 알고 있을 거야. 조만간 그에 맞는 전술 지시가 내려오지 않을까 싶고. 만약 나보고 대책을 세우라면 미드필더 라인에서 계속 스위칭을 하는 게 최고라고 생각해.”

“공수 조율을 그런 식으로?”

정지우는 고개만 끄덕여서 답을 했다.

“쉽지 않겠는데?”

“엉덩이를 뺀 상대 팀을 아예 주저앉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가 먼저 골을 넣는 거 아닐까?”

대강 대화가 끝났다.

“난 우리 팀의 이런 분위기가 진짜 좋아. 어떻게 해야 다음 경기에서 승리할 수 있는지를 토론하는 팀이 과연 몇 팀이나 되겠어?”

레믹이 과장되게 떠드는 것으로 점심이 끝났다.

점심 이후에 정지우는 마틴과 마주 앉았다.

“컨디션은?”

“충분히 휴식을 취했습니다.”

“그렇다면 안심이군.”

대꾸를 한 마틴이 책상에 놓인 자료에 힐끔 시선을 주었다.

“다음 경기는 스토크 시티와의 원정, 그다음이 아스널과의 홈경기다. 이제부터 자네가 우리 팀의 골대를 든든하게 맡아 줬으면 좋겠다.”

“알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경기에 나가고 싶었던 참이다. 정지우는 분명하게 답을 했다.

“점심에 동료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해 주었더군.”

“관중석에서 보며 느꼈던 점들입니다.”

“내가 박 감독과 의논한 것들이기도 하지. 내일부터 그 부분에 대한 전술 훈련을 할 테니까 역습 상황에서 참고했으면 좋겠다.”

이것 또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정지우가 답을 한 것으로 마틴과의 면담이 끝났다.

다음 날부터 이어진 사흘간의 전술 훈련은 그다지 성과를 거두기 어려워 보였다.

무엇보다 데이빗과 카알이 그동안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동선에, 평소보다 훨씬 많은 활동량을 그들에게 요구하기 때문이었다.

사흘째 훈련이 끝나고 데이빗은 벤치에 앉았다.

골대에서 통로를 향해 걷던 정지우는 얀센에게 먼저 가란 말을 하고는 데이빗에게 걸어갔다.

“무슨 일이야?”

시선을 든 데이빗이 픽 하고 웃었다.

“체력이 못 따라가. 동선도 이해하기 어렵고. 전술에 따라 선수 기용을 해야 한다면 난 아무래도 실격인 것 같아서.”

정지우는 털썩 데이빗의 옆에 앉았다. 그러고는 허벅지에 상체를 숙인 자세로 그라운드를 바라보았다.

“관중석에 있으니까 그동안 못 봤던 것들이 보이더라구.”

“건너편에 멋진 아가씨라도 있었어?”

둘이서 비슷한 얼굴로 웃었다.

“주장과 카알의 호흡은 기가 막혔거든. 그런데 맥슨을 끼워 넣으면 어딘가 어긋나는 그림이 나와. 영상을 참고해 봐. 그리고 주장이 이렇게 있는 건 별로 보기 안 좋아.”

정지우를 따라서 데이빗이 몸을 일으켰다.

“이봐, 그 닥터하고는 어때?”

“뭐가?”

“혹시 여자와의 데이트도 영상을 참고하는 건 아니지?”

“응?”

데이빗이 팔을 뻗어 정지우의 어깨에 걸쳤다.

“방심하다가 놓친다. 공을 잡듯이 꽉 잡아 버려.”

장난기 가득한 데이빗의 표정이 웃겨서 정지우는 웃음을 터트렸다.

***

마크 보웬 2군 감독과 앤디 쿠이 골키퍼 코치의 앞에서 에디 수석 코치는 전술판에 그려진 선수들의 동선을 화살표로 빠르게 그려 나갔다.

“애스턴 빌라의 방식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유니온 시티의 동력인 맥슨, 데이빗, 카알을 움켜쥐면 전체적인 리듬은 물론이고, 역습도 어느 정도는 막아 낼 수 있습니다.”

“Sang이 출전하면 맥슨보다 상대하기가 까다로운데?”

“우리 수비 라인에서 윌슨과 카메론이 그를 전담하고, 크르키치가 협력하면 그를 어느 정도 막아 낼 겁니다.”

마크 보웬 2군 감독의 질문에 에디 코치가 막힘없이 답했다.

“앤디, Ji의 약점은?”

“쉽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런 선수가 왜 여태 두각을 보이지 않았는지 궁금할 정도입니다.”

“이봐, 이제 와서 그의 평가를 듣겠다는 건 아니잖나.”

앤디 쿠이 골키퍼 코치가 자료를 꺼내 들었다.

“Ji의 최근 훈련 내용입니다. 반사 속도를 높이는 훈련인데 그것과 영상을 바탕으로 특이점을 알아냈습니다.”

앤디 쿠이가 자신의 앞에 있던 서류를 들어서 두 사람에게 전달했다.

“Ji의 수비 방식은 포백을 최대한 제자리에 붙들어 두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Ji가 나온 경기를 보면 FA컵 아스널전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경기에 수비 라인을 직접 지휘합니다.”

“흠! 그래서?”

“스웰던과 Jun, 양쪽 윙백의 공격 가담이 적은 것도 그 이유에 속합니다. 또 여길 보시면…….”

앤디 쿠이가 다른 자료를 다시 두 사람에게 건네주었다.

“슈팅 각도에 따른 수비수의 동선 자료입니다. 무둔바가 정면의 포지션을 차지하고, 데이빗과 카알이 페널티 에어리어 코너를 맡아 줍니다. 그런 뒤에 스웰던과 Jun이 개인 마크를 하는 겁니다.”

“그는 페널티킥이나 기습적인 슈팅에서도 동물적인 반응을 보였어. 그렇게 따지고 보면 이건 그저 결과만 놓고 평가한 단순한 자료가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그의 빈틈을 파고들 생각입니다.”

에디 코치가 선수들의 동선을 표시한 전술판으로 앤디 쿠이가 움직였다.

“우리가 오히려 무둔바와 라파엘을 막아서는 겁니다. 게다가 영상을 보면 Ji는 공격수가 슈팅할 공간을 절묘하게 유도합니다. 우리는.”

에디 코치가 무둔바와 라파엘이 서 있는 곳에 커다랗게 동그라미를 그렸다.

“이 무둔바와 라파엘을 향해 슈팅을 날립니다. 그래서 웰란과 반 힌겔이 공을 연계하거나, 아니면 그 자리에서 직접 슈팅을 노리는 게 좋습니다.”

“이봐, 아무리 Ji가 현재까지 무실점을 기록했다고 해도 수비수를 향해 슈팅을 날리겠다는 건 너무 치욕적이잖아.”

“몇 번이면 됩니다. 무둔바와 라파엘이 흔들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성과를 못 내도 우리의 방법을 본 아스널이라면 충분히 성과를 올릴 겁니다.”

마크 보웬은 어쩐지 내키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Sang과 데이빗, 카알을 묶는 것은 흥미로운데.”

탁. 탁. 탁. 탁.

그는 들고 있던 연필로 정지우의 이름을 콕콕 찍어 댔다.

“골을 만드는 것이 문제로군. 일단 휴즈 감독에겐 미드필더 봉쇄와 웰란과 반 힌겔이 무둔바와 라파엘을 마크하는 선에서 보고할 테니 그렇게 알아 둬.”

긴 회의가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끝났다.

***

스토크 시티와의 경기는 영국 시간으로 월요일 저녁 7시였다. 금요일에 다시 캐피털 원 컵, 웨스트햄과의 경기가 잡혀 있어서 주전 선수들의 피로가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한 주였다.

월요일 오후 7시다.

퇴근하고 오기 빠듯한 시간임에도 스토크 시티의 홈구장 브리타니아 스타디움은 승리를 염원하는 홈 관중들로 가득했다.

쿵. 쿵. 쿵. 쿵. 쿵. 쿵.

“오- 오오! 오- 오오!”

유니온 시티의 응원가가 브리타니아 스타디움을 메웠다.

유로파 리그 예선에서의 통쾌한 승리가 관중들을 더 달군 건지도 모른다.

선발 골키퍼로 나서게 된 정지우는 장갑을 만지며 경기를 기다렸다. 경기를 준비할 때야 생각이 많을 수 있지만, 지금은 오로지 골대를 지키는 일에 집중할 때였다.

경기를 준비하란 신호가 들렸다.

“후.”

숨을 털어 낸 정지우는 동료들과 함께 라커룸을 나섰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프로 축구 클럽과 하는 경기, 스토크 시티는 그런 팀이다.

유니온 시티만큼이나 과격한 스토크 시티 원정 관중들이 양팔을 이마 방향으로 뻗고서 ‘오- 에-!’ 하는 주문 같은 함성을 질러 댔다.

정지우는 동료들의 중간에 서서 앞으로 나가기를 기다렸다.

아는 선수들끼리 눈인사를 하는 동안, 스태프가 밖으로 움직이라는 사인을 보내 주었다.

짝짝짝짝짝짝짝짝짝!

통로를 빠져나가자 관중들이 박수로 선수들을 맞았다.

『지금 시간이 새벽 3시니까, 경기가 끝나면 시청하셨던 축구 팬들께서는 바로 출근을 준비해야 할 시간입니다.』

『유로파 리그와 캐피털 원 컵 때문에 일정이 좀 몰렸거든요. 아스널과의 리그 7라운드 경기부터는 그래도 여유가 좀 있을 것 같네요.』

『오늘 유니온 시티는 우리 정지우 선수와 신준석 선수를 선발로 내세웠고, 박상민 선수가 벤치에서 출발합니다.』

선수들이 벤치 앞에 서 있는 동안 캐스터가 빠르게 선수들을 소개했다.

『어떻습니까? 현지에서 정지우 선수의 무실점 기록이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야구에서 퍼펙트게임처럼 정지우 선수의 무실점 기록이 다른 팀들에게 치욕으로 받아들여진다는 말도 있습니다.』

『아직 공론화는 되지 않았는데요, 현지에서는 어느 팀이 정지우를 상대로 골을 먼저 넣느냐는 것에 대해 베팅이 생겨난다는 말은 있었습니다.』

“와아-!”

『지금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정지우 선수, 골대로 다가가 양쪽 포스트를 발로 확인합니다. 중앙으로 돌아온 정지우 선수! 점프!』

“예에에에에에-!”

『부상에서 돌아와서 그런지 유니온 시티 관중들, 엄청난 응원을 보내 주고 있습니다.』

정지우가 신준석을 보며 웃는 모습이 화면에 가득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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