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의 지배자-105화 (105/262)

제5장. 알겠나? 숙녀분들? (2)

공은 데이빗의 앞으로 떨어졌다.

『데이빗! 슈웃!』

그러나 그가 날린 슈팅은 2번 클린을 맞고 뛰어나왔다.

이번엔 꼼빠니였다.

『꼼빠니! 슈웃!』

이번에 날린 그의 슈팅은 17번 사코의 발에 걸렸다.

『우와아아아아-!』

TV에서 거대한 함성이 쏟아져 나왔다.

『레믹! 공을 잡은 레믹! 레믹! 레믹 슈웃!』

사회자가 연거푸 레믹의 이름을 부르다가, 그가 날리는 슈팅 동작에 맞춰 목청껏 고함을 질렀다.

화아악!

리버풀의 골키퍼 미놀레가 옆으로 쓰러지는 것처럼 공을 쳐 낸 직후였다.

와라락!

레믹과 맥슨, 데이빗이 달려들었고, 리버풀의 수비수들이 뛰어들었다.

툭툭! 툭! 툭!

마치 동네 축구의 한 장면처럼 골대 앞에 몰린 선수들이 악착같이 공을 향해 발을 뻗었다.

유니온 시티 선수들은 골대를 향해 공을 날리고, 리버풀 선수들은 어떡해서든지 걷어 내려 애썼다.

퍼어어엉!

그리고 7번 밀너가 기다랗게 공을 걷어 냈다.

『유니온 시티! 대단합니다! 한 명이 부족한데도 후반 시작과 동시에 완벽하게 리버풀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지금 보면 페널티 에어리어에서는 무조건 슈팅으로 마무리하는데, 괜찮아요! 나쁘지 않습니다!』

『후반전이 예상과 전혀 다르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7번 밀너가 걷어 낸 공을 유니온의 카알이 잡았습니다. 카알! 꼼빠니에게! 꼼빠니, 카알에게! 카알, 다시 데이빗에게 공을 넘겼습니다.』

『저거 보세요! 유니온 시티 선수들이 전반과 다르게 2선에 다섯 명을 배치했어요! 당장 리버풀 선수들이 공을 잡으면 3명이 달려드는데, 저렇게 45분을 다 뛸 수 있을까 걱정스러울 정도예요.』

『우와아아아-!』

『유니온 시티! 당황하는 리버풀의 오른쪽을 또다시 파고듭니다! 브라운! 브라운! 막아서는 헨더슨! 브라운! 공을 뒤로 돌립니다.』

뒤쪽에서 받쳐 주던 꼼빠니가 브라운이 넘겨준 공을 잡았다.

그는 발바닥으로 공을 한 번 굴린 다음, 그대로 골대 앞쪽을 향해 길게 올렸다.

데이빗, 맥슨, 레믹, 포그이가 공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그리고 리버풀의 수비수 사이를 뚫고 달려들던 레믹이 그라운드에 납작 엎어지는 순간이었다.

『우와- 아!』

커다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삐이이익!』

주심이 휘슬을 날카롭게 불며 달려왔다.

『찍었나요? 지금은……. 아! 찍었어요! 주심이 페널티킥을 선언했습니다! 지금 느린 그림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경기 정말 재미있네요! 전반 시작과 동시에 리버풀이 몰아붙이고 페널티킥을 얻더니, 후반 시작하고는 반대로 유니온 시티가 리버풀을 꼼짝 못하게 밀어붙인 뒤에 페널티킥을 얻어 냈습니다.』

『우와아아아아-!』

카메라가 광분하는 유니온 시티 관중들의 모습을 차를 타고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 주고 있었다.

마틴은 테크니컬 에어리어에 서 있었다.

그리고 주심이 페널티킥을 선언하는 순간에 고개를 돌린 데이빗과 시선을 마주쳤다.

‘우리 이 정도면 되는 거지?’ 하는 도전적인 의미에, ‘페널티킥은 누가 차?’ 하는 의문을 담은 눈빛이었다.

쿵. 쿵. 쿵. 쿵. 쿵. 쿵.

“오- 오오! 오- 오오!”

유니온 시티 관중들이 목청껏 외치는 응원가, 주심에게 양손을 내밀며 항의하는 리버풀 선수들, 허리에 손을 얹은 채 앞을 노려보는 미놀레, 그리고 공을 세워 놓고 천천히 뒤로 움직이는 레믹까지.

이전 게임에서 페널티킥은 늘 데이빗이 맡았었다.

FA컵 결승골을 기록할 기회였다. 혹시 비기거나 지더라도 선취골이라는 영예는 남는다.

그런데도 데이빗은 페널티킥을 레믹에게 양보해 주었다.

기복 심하고, 단순하며, 흥분 잘하는 그에게 후반 남은 시간 동안 완벽하게 동기를 주는 배려였다.

“우우우우-!”

선수들이 페널티 에어리어 라인에 늘어서고, 레믹이 힐끔 주심을 볼 때 리버풀 응원단이 거센 야유를 퍼부어 댔다.

삐이이익!

오른손으로 공을 가리킨 주심이 짧고 강하게 휘슬을 불었다.

“우우우우-!”

레믹이 주춤주춤 공을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 한순간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투우욱!

레믹 역시 발 안쪽으로 공을 밀었다.

터엉!

그리고 평범하게 오른쪽으로 날아간 공은 미놀레의 발끝에 걸려 튀어나왔다.

“우-!”

“우와아아-!”

유니온 시티와 리버풀 관중석의 희비가 완벽하게 바뀌었다.

와락! 와락! 와라라락!

레믹이 뛰어들었고, 그의 뒤편에서 대기하던 선수들이 일제히 뒤엉켜 달려들었다.

미놀레가 잽싸게 몸을 일으키는 순간이었다.

촤아아악!

슬라이딩 태클을 하는 것처럼 몸을 날린 레믹이 튀어나온 공을 골대로 욱여넣었다.

툭! 툭툭! 툭!

공은 두 번째로 몸을 날린 미놀레의 팔에 걸려 다시 굴러 나왔다.

투욱!

그런데 레믹의 왼쪽에서 달려들던 맥슨이 수비수 둘 사이에서도 악착같이 발을 뻗어 그 공을 툭 하고 차 넣었다.

결승전이라고 하기엔 정말 모양 안 나오는 우격다짐식 슈팅이었다.

미놀레가 그라운드를 기는 모습으로 공을 향해 움직일 때 황당하게 맥슨이 발만 쭉 뻗어서 골을 넣은 거였다.

철렁!

“이예에에에에에에-!”

맥슨의 위치에 따라 오프사이드일 수도 있는 거였다.

레믹이 힐끔 고개를 돌린 직후였다.

삐이익!

주심은 분명하게 중앙선을 가리키고 있었다.

골인 거다. 확실하게 골이 맞는 거다.

몸을 일으킨 레믹이 맥슨을 향해 높다랗게 떠서 달려들었다.

“휘이- 호!”

레믹은 퍽퍽 소리가 나도록 맥슨의 뒤통수와 뺨을 때렸다. 축하의 의미이지, 다른 의도는 전혀 없는 거였다.

마틴은 움켜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미칠 것 같다.

이런 승부를 직접 경험하고, 그 승부를 지휘하는 감독이라는 사실에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쿵. 쿵. 쿵. 쿵. 쿵. 쿵.

“오- 오오! 오- 오오!”

마틴은 물결처럼 출렁이는 관중석을 보았다.

어깨를 부여잡고 뛰어 대는 유니온 시티 관중들.

아스널전부터였다.

32강에서 시작했던 도전이 점차 모습을 갖추더니, 지금은 결승전에서 선취골을 넣었다.

마틴은 두 주먹을 한 번 더 불끈 쥔 뒤에 선수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후반은 30분가량 남았다.

『유니온 시티가 어렵게 득점에 성공했습니다. 정말 쉽지 않았는데요!』

『이건 정말 집념이 만들어 낸 골이라고밖에 볼 수가 없네요. 보세요. 레믹이 찬 공을 왼쪽으로 몸을 던진 상태에서도 미놀레 골키퍼가 기가 막히게 걷어 냈거든요.』

화면이 조금 전의 상황을 천천히 보여 주고 있었다.

『이걸 다시 레믹이 욱여넣었고, 미놀레가 두 번씩이나 막아 냈단 말이죠! 이 정도면 사실 수비수들이 공을 먼저 걷어 내 줬어야 해요! 그런데 여기 보세요! 맥슨에게 수비수가 두 명이나 붙어서 밀착마크하고 있잖아요.』

맥슨이 뻗어 낸 다리 끝에 걸린 공이 위로 튀는 것처럼 골대로 들어갔다.

『선수도 놓치고, 공은 못 걷어 내고!』

『후반 17분에 맥슨이 골을 성공시켰습니다. 지금 유니온 시티 선수들이 동료인 정지우 선수에게 일제히 달려가 있습니다. 이런 일이 흔하지는 않지요?』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전반에 페널티킥을 막아 준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 같은데요. 이렇게 되면 두 번이나 공을 막아 냈던 미놀레 선수, 좀 억울하겠어요.』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Go, Go, Go my red! Go, Go, Go my red!”

흥분한 유니온 시티 관중들과 팔짱을 낀 채 입을 다물고 경기를 지켜보는 리버풀 관중들.

관중석의 분위기만으로도 현재 어떻게 경기가 펼쳐지고 있는지를 완벽하게 알 정도였다.

중앙선에 공을 놓은 리버풀 선수들이 주심을 바라보았다.

삐이익!

랄라나가 스터리지에게 공을 넘겨주었다.

투욱! 툭툭!

스터리지는 작정한 것처럼 페널티 에어리어를 파고들었다.

카알과 꼼빠니가 그를 막아섰고, 두 사람의 뒤에서 무둔바가 위치를 지키고 있었다.

투욱!

“우와아-!”

스터리지가 공을 앞으로 밀어 놓고 몸을 빼서 달렸다.

콰당! 철퍼덕!

그리고 무둔바와 부딪치는 순간에 높다랗게 떠올랐다가 그대로 그라운드에 처박혔다.

“이예에에-!”

삐이이익!

주심이 휘슬을 불고 달려왔고, 데이빗과 카알, 무둔바가 카드를 쥐는 동작을 보이며 스터리지를 가리켰다.

주심 역시 스터리지가 넘어진 것이 페널티킥을 유도하기 위한 헐리웃 액션이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우-!”

“우와아아-!”

주심이 옐로카드를 치켜들자, 억울하다는 듯 고개를 흔든 스터리지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저놈 덕분에 또 5분이 흘렀다.

정지우는 주심이 지정한 자리에 공을 내려놓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간을 끌고 안정을 찾는 것 따윈 바라면 안 된다.

양 팀이 침착하게 경기를 진행한다면 당연하게 리버풀이 유리하게 된다.

투욱!

정지우는 라파엘에게 공을 넘겨주었다.

와락! 와라락!

마음 급할 거다. 그래서인지 라파엘이 공을 받기 무섭게 스터리지와 밀너가 그에게 달려들었다.

투우욱!

라파엘이 얼른 정지우에게 공을 넘겨주었다.

이런 때에 시간을 끄는 건 바보짓이다.

퍼어어엉!

정지우는 굴러오는 공을 힘껏 걷어찼다.

리버풀은 밀고 올라올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유니온 시티의 2선을 맡은 5명의 역할은 그만큼 중요했다. 그쪽에서부터 공을 지켜 줘야 하고, 밀고 올라온 리버풀의 뒤를 찌르는 공을 뿌려 줄수록 수비가 편해진다.

콰다당! 콰당!

삐이이익!

어깨로 헨더슨과 몸싸움을 벌이던 꼼빠니가 A보드까지 날아가 처박혔다.

와라락! 퍼억!

그런데 대뜸 달려간 데이빗이 헨더슨을 거칠게 밀어 버렸다.

“적당히 하라고! 적당히! 해 보자는 거야!”

“뭐 하는 거야!”

헨더슨이 다시 데이빗의 가슴을 밀쳤고, 이어서 곧바로 양 팀 선수들이 뒤엉켰다.

삑! 삑! 삑! 삑!

“데이빗! 헨더슨! 분명하게 말하는데, 한 번 더 이런 모습이 나오면 분명하게 카드를 꺼낼 거야.”

두 선수의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민 주심은 양손 검지를 좌우로 벌려 가며 분명하게 주의를 주었다.

주심은 유니온 시티의 공을 선언했다.

어쩌면 데이빗의 행동에 파울을 주었어야 맞는 건지 모른다. 그러나 분위기상 그것은 어려웠다.

정지우가 보기에 오른쪽, 미놀레가 상대하기에는 왼쪽 터치라인에서 얻어 낸 프리킥이었다.

수비라인을 따라 선수들이 뒤엉켰는데, 레믹은 얍삽하게 리버풀 수비수 앞과 옆을 깡충대며 뛰고 있었다.

삐이익!

꼼빠니가 공을 향해 움직이자 라인을 지키던 선수들이 일제히 주춤거렸다.

퍼어어엉!

그리고 공이 떠오르는 순간에 일제히 골대로 달려들었다.

페널티킥을 받았으면 주눅 들 만도 한데, 리버풀의 몸싸움은 양보가 없었다.

철퍼덕!

레믹이 또다시 바닥에 주저앉았고, 뛰어들던 맥슨이 가슴을 밀려 뒤로 넘어졌다. 달려 나오며 억울하다고 항변하는 레믹과 맥슨에게 주심은 대꾸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때부터였다. 중앙선 부근에서 거친 몸싸움이 연달아 벌어졌다.

손으로 악착같이 랄라나의 상체를 잡아당기는 포그이, 공을 잡기 위해 뛰어가는 레믹의 어깨를 거세게 들이받는 루카스, 그리고 또다시 그런 루카스에게 불같이 달려드는 데이빗을 카알과 라파엘이 악착같이 붙들었다.

“조심하라고!”

데이빗이 고함을 지르고 돌아선 직후였다.

양 팀 선수들을 뜯어말리기 위해 달려와 있던 정지우를 보며 그가 눈빛을 번득였다.

“Ji! 오늘 처음으로 스웰던이 왜 그렇게 자제하지 못했는지 이해된다!”

피식!

정지우의 웃음을 본 데이빗이 비슷하게 웃으며 수비 위치로 움직였다.

퍼어어엉!

리버풀이 빠르게 공을 날렸다.

후반이 15분쯤 남았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데, 그런 만큼 공격의 정밀도는 떨어지고 있었다.

벤테케와 스터리지가 무둔바를 밀어내려고 안간힘을 써 댔으나, 번들거리는 눈을 한 그를 움직이게 하지는 못했다.

휘이이익!

확실히 실전만큼 경기 감각을 살려 주는 일도 없다.

무둔바는 어느새 상대 공격수의 헤더를 방해하기 위해 함께 점프를 하고 있었고, 그런 다음은 곧바로 정지우가 지정해 준 자리를 지켜 냈다.

텅! 터덩!

밀너의 발에 맞은 공이 정지우 앞으로 오자 무둔바가 등과 팔로 앞을 막아 주었다.

공을 잡는 순간이었다.

허리를 숙인 채로 달리는 자세에서 정지우는 시선을 들었다.

‘한번 해 봐!’

레믹의 놀람 반, 설렘 반의 저 표정을 박용근에게 꼭 보여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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