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의 지배자-106화 (106/262)

제6장. 세상에! 우리가 승리했어! (1)

정지우가 페널티 에어리어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런데 리버풀은 이미 이런 패턴을 알고 있었던 눈치였다.

루카스와 헨더슨이 정지우의 앞을 막아섰다.

휘이이이익!

정지우는 두 선수 사이로 공을 힘차게 던졌다.

골키퍼인 미놀레까지 앞으로 나와 있어서, 막말로 못 먹어도 던지고 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우와- 아아아!”

공은 빠르고 낮게 레믹에게 날아갔다.

터억! 퍼어억!

“우-!”

그런데 레믹이 공을 잡는 순간에 17번 사코가 거칠게 달려들었다. 충분히 파울을 줄 만도 했는데 주심은 공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퍼어엉!

사코가 유니온의 골대를 향해 길게 공을 넘겼다.

휘이이익!

정지우가 빠르게 뒤로 물러났고, 데이빗과 카알, 무둔바가 공이 떨어지는 지점을 지키기 위해 리버풀 선수들과 뒤엉켰다.

휘이이익!

헨더슨과 무둔바가 동시에 솟구쳤다.

이를 깨물고, 있는 대로 인상을 구기며 머리를 디민 두 선수 사이로 공이 떨어졌다.

터어엉!

무둔바였다.

뒤에서 미는 리버풀 선수들을 이겨 내고, 공중에 뜬 상태에서도 헨더슨과 손과 어깨가 뒤엉킨 채 몸싸움을 벌이던 무둔바가 결국 헤더를 따냈다.

와라락! 휘이이익!

정지우는 곧장 달려 나가 높다랗게 떠올라서 공을 잡아냈다.

투욱!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에 벤테케가 정지우의 어깨를 툭 밀었다. 아까처럼 달려가지 못하게 막고, 그 틈에 수비를 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비틀!

정지우는 분명하게 왼쪽으로 밀리며 휘청거렸다. 그런데 이번에도 주심은 휘슬을 불지 않았다.

와라락!

넘어질 줄 알았던 모양이다. 주심이 휘슬을 불 거라고 기대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정지우가 뛰어나가자 리버풀 선수들이 급하게 레믹을 향해 모여들었다.

“으아아!”

있는 힘껏 앞으로 달려간 정지우가 두 번째로 팔을 커다랗게 휘둘러 공을 던졌다.

휘이이이익!

“우와아아아아아-!”

정지우가 던진 공은 오른쪽에 있는 꼼빠니의 앞으로 날아갔다.

투욱! 툭툭!

그리고 꼼빠니는 공을 잡은 후, 그대로 리버풀 진영을 향해 달렸다. 관중들이 리버풀 골대를 향해 달려가는 그를 보며 미친 사람들처럼 고함을 질러 댔다.

정지우가 보기에 오른쪽을 파고들던 꼼빠니였다.

왼쪽의 골대 앞에서 레믹이 손을 들었고, 그 건너편에서 맥슨이 달려들고 있었다.

퍼어어엉!

꼼빠니가 길게 공을 넘겼다.

그런데 솔직히 조금 길었다.

맥슨이 방향을 틀어서 공을 잡았을 때, 리버풀의 수비수들이 어느 정도 달려와 있었다.

툭툭! 툭! 툭!

이왕 이렇게 된 거 맥슨은 시간을 끌 생각인 것처럼 보였다. 그는 코너 플래그 근처에서 데이빗과 공을 주고받으며 기회를 노렸다.

퍼어엉!

데이빗은 맥슨이 두 번째로 공을 넘겨주자 아예 뒤쪽에 있던 라파엘을 향해 길게 빼 주었다.

투욱! 툭! 투욱!

라파엘이 무둔바에게, 턱으로 땀을 뚝뚝 흘리는 무둔바가 정지우에게, 정지우가 카알에게.

공은 유니온 시티 진영을 맴돌았다.

후반이 10분도 채 남지 않았다.

원래 이쯤이면 ‘헤이! 헤이! 헤- 이! 굿- 바이!’라는 곡을 부를 법도 하련만, 유니온 시티 관중들은 함성만 지르며 자제하고 있었다.

지금 리버풀이 악착같이 달려들기 때문이었다.

한 골이면 동점이다. 그렇게 된다면 사기가 갑자기 꺾여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러니 유니온 시티 관중들은 선수들에게 힘이 나는 응원가와 응원 구호를 외칠 뿐, 리버풀 선수들을 자극하는 일은 자제하고 있는 눈치였다.

이기고 싶다!

이 결승전에서 승리를 맛보고 싶다.

유니온 시티 동료들에게서 경기 시작 때와 같은 긴장감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신 10분만 버티자는 강한 의지와 독기가 눈과 표정, 공을 향해 달려드는 거친 태도에서 펄펄 풍겨 나왔다.

퍼어억! 콰다당!

루카스에게 부딪쳐 넘어진 레믹이 벌떡 일어나서 다시 뛰었다. 그 옆에서 브라운이 루카스를 향해 거친 태클을 시도했고, 얌전한 플레이를 즐겨하던 꼼빠니와 카알이 연신 거친 몸싸움을 펼쳐 냈다.

퍼억! 콰다당!

압권은 무둔바였다.

헨더슨이 그를 밀어내기 위해 팔꿈치를 사용했는데, 오히려 무둔바의 1톤 트럭 같은 가슴에 밀려 제 풀에 넘어지고 말았다.

“우와- 아!”

유니온 시티 앞으로 날아온 공을 향해 선수들이 달려들었다.

퍼엉!

리버풀은 무조건 슈팅을 날렸다.

터어엉!

이번 랄라나의 슈팅은 라파엘이 몸을 던져 허벅지로 막아 냈다.

“우와아아아-!”

“우우우-!”

어느 팀 관중들이 함성이고, 어느 팀 관중들이 탄식을 내뱉는지 모를 상황이었다.

정지우는 골대의 중심에서 공의 방향에 맞춰 몸을 움직였다.

퍼어어엉! 콰아악! 터어어엉!

이번 벤테케의 강력한 슈팅을 몸을 던진 카알이 막아 냈다.

그리고,

퍼어어엉! 터어엉!

흘러나간 공을 스터리지가 세차게 날렸고, 그 공이 아직 일어나지 못한 카알의 얼굴에 그대로 맞고 위로 튀었다.

와락! 와라락! 와라라락!

정지우, 데이빗, 라파엘, 무둔바가 뛰어들었는데 공은 정지우가 잡았다.

정지우가 공을 안고 카알을 살피러 가는 순간이었다.

“이봐! 빨리 경기하자고!”

헨더슨이 쓰러진 카알의 어깨를 툭툭 치며 일어나라는 손짓을 했다.

“야! 얼굴에 공 맞는 거 못 봤어!”

정지우가 헨더슨을 밀쳐 내는 순간,

“우-!”

또다시 선수들이 뒤엉켰다.

“푸! 푸!”

카알이 침을 뱉으며 일어났다.

만약 팀 닥터가 들어오면 주심이 사인을 줄 때까지 경기장 바깥에 있어야 한다. 한 명이 부족한 경기에서, 마지막에 지친 상황에서, 독 오른 리버풀의 11명을 상대하는 결승에서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었다.

삐익!

그러나 주심은 카알에게 그라운드 바깥으로 나갈 것을 지시했다. 입술 왼쪽이 터져 있어서 치료를 해야 한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카알이 터덜터덜 그라운드 바깥으로 걸었다.

짝짝짝짝짝짝짝짝짝.

유니온 시티 관중들의 박수를 받으며 그가 걷는 동안, 벤치에서 서브 선수 3명이 덧입었던 조끼를 벗으며 상황에 따라 투입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삑!

주심이 양손으로 중앙을 가리켰다.

정지우는 바닥에 공을 내려놓은 후,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포그이가 잠시 카알의 자리를 맡기는 하겠지만, 아무래도 미드필더가 수비수를 대신하는 건 그만큼 위험한 일이기도 했다.

5분쯤 남았다.

투욱!

정지우는 라파엘에게 공을 넘겨주었다.

떡밥을 발견한 물고기들처럼 리버풀 선수들이 라파엘에게 몰려들었다.

투우욱!

라파엘은 빠르게 정지우에게 공을 돌려주었다.

퍼어어어엉!

거듭 말하지만, 골대 앞에서 공연히 시간 끌 필요 없는 거다.

정지우는 공을 길게 날려 주었다.

리버풀의 사코가 머리로 받아 낸 공이 빗맞았는지 터치라인 바깥으로 나갔다. 그리고 주심의 사인을 받은 카알이 제자리로 달려왔다.

퍼어어엉!

공은 또다시 유니온 시티 골대를 향해 길게 날아왔다.

후반 5분이 채 남지 않았는데 유니온 시티 선수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사실 많이 뛰었다.

팔꿈치에 맞았는지 눈 위쪽이 부은 무둔바가 ‘헉헉’거리며 거친 호흡을 토해 낼 정도였으니, 전후반을 다 뛴 나머지 선수들이야 말할 필요도 없었다.

퍼어엉! 터어어엉!

루카스의 멋진 중거리 슈팅을 데이빗이 머리로 걷어 냈다.

한 명이 부족한 만큼 더 뛰어야 하고, 후반을 거칠게 운영하는 만큼 힘이 더 드는 경기였다.

“우우-!”

튀어 간 공을 잡은 헨더슨이 공을 툭툭 치며 유니온 시티 진영 오른쪽으로 몰고 들어왔다.

정지우는 오른쪽 골포스트를 확인하고 자세를 낮췄다.

퍼어어엉!

바로 공이 날아왔다.

대각선으로 아예 골대 왼쪽을 파고드는 것처럼 날아온 공이었다.

주춤! 주춤!

정지우는 공의 궤적을 따라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와락! 콰아악!

팔을 붙잡고, 상의를 당기고, 어깨로 밀치는 몸싸움이 펼쳐졌다. 이 정도 몸싸움에서 넘어져 봐야 영국 리그의 주심들은 휘슬을 아예 물지도 않는다.

공은 거칠게 솟아오른 무둔바와 루카스를 넘어갔다.

정지우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지금 공이 날아간 쪽에 수비수가 전혀 없는 거였다.

와라락!

정지우가 공을 향해 뛰어나가는 순간이었다.

불쑥!

밀너가 달려들며 공에 머리를 디밀었다.

“우와아아아-!”

터엉! 터어억!

거리라야 2미터가 채 안 됐다.

그래서 밀너가 헤더한 공을 정지우는 반사적으로 휘두른 오른손으로 겨우 막았다. 정지우의 손에 맞은 공은 높다랗게 떠서 골대 구석을 향해 날아갔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순간이었다.

터어엉!

그러나 그곳에 카알이 있었다. 그가 오른쪽 골대 앞에 있다가 머리로 공을 걷어 낸 거였다.

휘이이익!

정지우는 높다랗게 뛰어올라 공을 잡았다.

그리고 공을 잡는 순간, 있는 힘껏 달렸다.

파울을 각오하고, 심하면 옐로카드를 받겠다는 것처럼 달려드는 루카스와 랄라나보다 좀 더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휘이이이이익!

그러고는 앞으로 엎어지면서 커다랗게 공을 던졌다.

“우와아아아아!”

반드시 골을 넣겠다는 의지로 모조리 밀고 올라왔었던 리버풀 선수들이 급하게 레믹을 향해 달렸다.

일대일이다.

골키퍼 미놀레가 악을 쓰는 사이, 헨더슨과 사코가 레믹의 뒤를 거의 따라잡았다.

페널티 에어리어 밖에서 일대일의 기회를 날리면 파울한 선수만 퇴장당한다. 페널티킥을 줄 수 없는 거다.

헨더슨과 사코는 퇴장을 각오하고 골을 막을 생각인 것처럼 달리고 있었다.

“우와아아아아아아-!”

귀를 파고드는 함성, 자리에서 일어난 서브 선수들과 스태프들, 고통스러운 얼굴로 달려오는 리버풀 선수들, ‘막아! 쓰러트려!’ 하며 고함을 지르는 리버풀의 골키퍼 미놀레까지.

헨더슨이 앞으로 엎어질 것처럼 휘청이며 손을 내미는 순간이었다.

투욱!

레믹이 왼쪽으로 달릴 것처럼 몸을 기울인 다음, 곧바로 오른쪽으로 공을 넘기며 치고 달렸다.

“우와아아아아아아-!”

관중들만이 아니다. 정지우조차 멍한 눈으로 바라볼 정도로 환상적인 드리블이었다.

휘청인 헨더슨이 왼쪽으로 넘어질 것처럼 뒤뚱거렸고, 사코는 방향을 바꾸기 위해 급브레이크를 잡은 트럭처럼 곡선을 그려 내며 달려왔다.

투욱!

레믹이 한 번 더 공을 튕기며 골대를 향해 달렸다.

페널티 에어리어를 넘어섰으니 여기서부터 그를 넘어트리면 퇴장에 페널티킥을 얻을 기회였다.

주춤! 주춤!

미놀레가 허리를 낮추고 반걸음씩 앞으로 움직였다.

“오른쪽을 노려! 오른쪽! 미놀레는 왼쪽 슈팅을 기대하는 거야!”

퍼어어엉!

실제로 레믹은 미놀레의 왼쪽, 정지우와 레믹이 보기에 오른쪽으로 강력한 슈팅을 날렸다.

철렁!

공이 얼마나 빠른지 하얀 작대기로 골대를 푹 쑤신 것처럼 보였다.

“이예에에에에에에에-!”

웸브리 스타디움이 무너지지 싶은 함성이었다.

골대를 지나친 레믹이 코너 플래그 근처에서 높다랗게 뛰어올라 구부린 주먹을 치켜들었다.

그가 뛰어오른 뒤편에서 관중들이 옆에 있는 이들과 끌어안으며 이성을 잃은 사람들처럼 미쳐 날뛰고 있었다.

“예쓰! 예쓰! 예쓰!”

마틴은 하늘을 향해 주먹을 뻗어 냈다.

“이예에에에에에-!”

시작이다! 유니온 시티 관중들이 상의를 벗어서 집어 던지며 웸블리 스타디움을 수놓는 것이.

박용근은 전은주, 유정호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손뼉을 쳤다.

축구가 직업인 삶을 살았다.

이런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면 언젠가는 마틴처럼 이런 경기를 지휘하고 싶다. 물론 그것들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게 하나 더 있었다. 오늘 같은 결승전에서 정지우를 지켜본다는 것이었다.

정지우는 장갑에 입을 맞추고 하늘을 바라본 후에 검지를 높게 들었다.

‘보이니? 약속했던 세레머니야! 다음번 경기는 건강해져서 운동장에서 직접 봐줘.’

벤치로 달려간 레믹이 뽀빠이 흉내를 냈는지 ‘미스터! 어메이징!’ 하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릴리는 메기를 꼭 끌어안은 채로 TV에 시선을 주었다.

정지우가 두 번째로 보여 준 키스였다.

9만 명의 관중들이 함성을 지르고 있었고, 유니온 시티와 리버풀에서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TV로 시청하는 경기였다. 그 엄청난 경기 한가운데에서 정지우가 자신만을 위한 세레머니를 펼치는 거였다.

“마미! 오늘이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에요!”

릴리는 얼마 전 외출했던 때보다 더 행복한 얼굴이었다.

“뭐야!”

조동익의 외마디 비명이 불쑥 튀어나왔다.

중앙선을 넘어와 툭툭 치고 다가오던 쿠웨이트의 선수가 센터링처럼 날린 공이었다.

그런데 그 공이 골대로 쑥 들어가고 말았다.

『뿌! 뿌뿌! 뿌!』

쿠웨이트 관중들이 희한한 나팔을 불어 대며 날뛰고 있었고, 그 옆의 화면에서는 유니온 시티 관중들과 선수들이 미친 사람들처럼 흥분하고 있었다.

후반 추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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