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의 지배자-10화 (10/262)

제4장. 저 녀석은 일어설 거야 (2)

중앙선에 선수들이 모였고, 심판이 휘슬을 불었다.

브리스톨의 윌슨이 공을 건드리며 경기가 시작되었다.

관중들의 함성이 울려 퍼지는 에쉬튼 게이트에서 격투기에 가까운 경기가 펼쳐졌다.

서로 팔을 부여잡는 건 애교 수준일 정도였다.

어깨로 들이받고, 발목을 노린 듯한 위험한 태클이 연달아 날아들었으며, 터치라인 근처에 있던 선수가 A보드까지 날아갈 정도로 과격한 몸싸움이 연신 벌어졌다.

삐익! 삐이익!

주심이 여섯 번이나 구두로 경고를 주었고, 추가로 옐로카드를 네 번이나 꺼내 들었을 만큼 경기는 치열했다.

퍼억!

브리스톨의 테일러가 공을 잡은 레믹을 거세게 들이받은 순간이었다.

“Hey!”

마틴 감독이 두 팔을 위로 들고는 벤치에서 걸어 나왔다.

삐이익!

도대체 축구 경기인지, 럭비 경기인지 분간이 되질 않는다.

“이건 심하잖아!”

마틴은 오른손을 쭉 뻗어 역시나 A보드까지 날아가 처박힌 레믹을 가리켰다.

주심은 곧바로 마틴에게 다가왔다.

“진정해. 감독까지 이러면 이 경기 어려워져.”

“알아. 하지만 저 정도는 경고를 줘야 진정하지.”

주심이 고개를 흔들었다.

저런 걸 일일이 경고했다간 양 팀 모두 남아 있는 선수는 골키퍼밖에 없게 될 경기였다.

아무튼 TV 카메라가 돌아가고, 관중들이 지켜보는 앞이다.

주심이 경고하는 것처럼 오른손을 들어 보였고, 마틴은 존중하겠다는 것처럼 양손을 벌려 보였다.

유니온 시티의 프리킥으로 경기가 재개되었지만, 당장 어느 한쪽으로 추가 기울어지지는 않았다.

프리미어리그보다 거칠다는 챔피언십 리그다.

거기에 농구를 하는 것처럼 빠르게 공수가 바뀌었지만, 골대를 향하는 유효슈팅은 더 나오지 않았다.

삐이익!

그리고 마침내 주심이 길고 처절했던 전반의 끝을 알렸다.

15분의 휴식 시간.

마틴은 라커룸 바로 옆방에서 시계를 힐끔 보았다.

팀 닥터가 정지우를 치료하러 들어갔으니 곧 결과를 알려 올 거다.

섬뜩한 충돌이었다. 그러니 선수를 생각한다면 후반전에는 교체하는 게 맞다.

아무리 선수가 괜찮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후반에는 휴식을 취하게 하면서 상태를 보는 게 현명한 일이다.

그러나 마틴은 이 경기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승점 3점을 얻는 것은 당연하고, 판트와의 4 대 0 대패를 지울 수 있는 아이언 더비의 승리다.

정지우를 교체한다면?

아스널전에 이어 두 번째로 약 먹은 사자처럼 뛰어다니는 선수들의 눈에서 독기가 빠져나갈 게 분명했다.

“후우!”

골키퍼가 승리를 부르다니!

골을 넣은 레믹과 선수들이 정지우를 향해 달려갈 때의 모습을 떠올린 마틴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때였다.

문이 열리고 팀 닥터가 들어섰다.

마틴은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후반전에 방해된다면서 붕대도 안 감겠다고 버티더군.”

“자네 생각은?”

“외견상으로는 괜찮은 것 같은데…….”

팀 닥터가 말을 흐렸다.

판단은 감독이 하라는 의미였다.

마틴은 버릇처럼 검지로 머리를 긁었다.

“일단 후반에도 내보낼 생각이니까 Ji를 유심히 봐줘.”

“그러지.”

답을 한 팀 닥터가 시계를 본 후에 다시 시선을 가져왔다.

라커룸에 안 가느냐는 의미였다.

“데이빗이 잘할 거 같아서. 딱히 할 말도 없고.”

“그렇긴 하지.”

이번에도 팀 닥터는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릴리는 엄마인 메기의 품에 안겨 있었다.

“Ji는 괜찮겠지요?”

“그럼! 휴식하고 나면 다시 용감한 모습으로 나올 거야.”

“엄마, Ji도 아팠을까요?”

아픈 아이에게 이럴 땐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모른다.

그래서 메기는 릴리를 꼭 안고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춰 주었다.

“Ji가 하늘로 손을 들었을 때요.”

작은 입술이 깜찍한 말투로 말을 건넸다.

“아파 보였어요.”

“왜 그렇게 보였을까?”

“몰라요. 그냥 그렇게 보였어요.”

“그랬구나.”

메기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릴리는 연신 TV에 시선을 주었다.

얼른 정지우가 나왔으면 하는 눈치였다.

라커룸의 분위기는 아스널전과 또 달랐다.

평소 같으면 소란스러웠을 그 공간에 묘한 긴장과 투지가 선수들 사이를 떠돌았기 때문이었다.

침묵 속에서 주장 데이빗이 정지우에게 걸어왔다.

그는 왼쪽 이마에 큼지막하게 테이프를 붙인 정지우의 곁에 앉았다.

동료들이 힐끔거리거나, 아니면 빤히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 앞이다.

“후반에는 내게도 지시를 줘.”

데이빗은 팔을 들어서 정지우의 어깨에 얹었다.

“이 게임, 꼭 이기고 싶다. 실점만 안 하면 그렇게 될 테니까, 페널티 에어리어에서는 원하는 대로 나를 움직여.”

그의 진심이 나직한 음성, 그리고 전에 보지 못했었던 강렬한 눈빛을 타고 정지우에게 분명하게 전달되었다.

정지우는 알았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문이 열리더니 감독 마틴이 스크립터와 함께 라커룸으로 들어왔다.

그는 가장 먼저 정지우에게 시선을 주었다.

“Ji, 괜찮겠나?”

“물론입니다.”

마틴이 복잡한 표정으로 라커룸을 둘러보았다.

“전반에 잘해 주었다. 후반에도 최선을 다해서 종료 휘슬이 울었을 때, 승점 3점을 가지고 돌아가자.”

“예에!”

데이빗이 구호처럼 소리를 지르며 손뼉을 쳤다.

“예쓰!”

미안했던지 라파엘이 비슷한 동작을 보였고, 선수들이 연달아 비슷한 고함과 함께 손뼉을 쳐 댔다.

띠잉. 띠잉. 띠잉.

알람이 절묘한 타이밍에 후반전을 준비하라고 알려 주었다.

“가자!”

마틴의 지시에 선수들이 일어났다.

놀라운 모습이 또다시 라커룸에서 펼쳐졌다.

선수들이 정지우에게 다가와서 손을 마주치거나, 등을 두드리거나, 뒤통수를 치고 라커룸을 나가는 거였다.

마지막에 시선을 마주친 마틴이 멋쩍은 표정으로 모른 척 라커룸을 나섰다.

피식.

하긴 감독이 여기서 흥분하긴 어려울 거다.

그나저나 다르다.

확실히 아스널전, 그리고 그 이전에 있었던 경기들과 말이다.

자가락. 자가락.

정지우는 선수들의 끝에서 타월을 들고 통로로 나섰다.

잠시 브리스톨 선수들과 마주쳤는데, 누구도 시선 한번 교환하지 않았다.

라이벌전은 이렇게 다르다.

아직 게임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아는 사이라도 친분을 드러내기 어렵다.

“우아- 와!”

선수들이 등장하자 유니온 시티와 브리스톨 관중석에서 동시에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시간 끌 이유가 없었다.

유니온 시티의 선공으로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쿵. 쿵. 쿵. 쿵. 쿵.

“Go, Go, Go my Red! Go, Go, Go my Red!”

유니온 시티의 커다란 응원이 지나가고 나면,

둥둥! 둥둥둥!

“We're by far the greatest team!”

둥둥! 둥둥둥!

“The world has ever seen!”

브리스톨 시티의 관중석에서 지지 않겠다는 것처럼 고함을 질러 댔다.

필드에서 뛰는 선수들도 다르지 않았다.

“Hey!”

고함을 지르며 공을 달라고 외쳤고, 몸을 사리는 법 없이 공을 향해 달려들었다.

유니온 시티는 어떻게 해서든 한 골을 더 넣거나 지켜야 하는 경기이고, 브리스톨 시티는 무조건 한 골이라도 넣어야 하는 경기였다.

밀릴 수 없는 경기, 절대 지고 싶지 않은 경기에서 한 골을 앞선 팀과 한 골을 뒤진 팀의 경기는 동점일 때보다 더 살벌하다.

미드필더에서 밀리면 끝이라는 절박한 의식이 그 좁은 공간에 선수들을 몰아넣었고, 경기는 점점 치열해졌다.

그리고,

퍼억!

유니온 시티의 스웰던이 공을 몰던 아마디의 다리를 제대로 걷어찼다.

삐익!

심판의 휘슬이 울리는 순간에 뒹굴던 아마디가 벌떡 일어나 상체를 스웰던 앞으로 들이밀었고, 스웰던은 아마디를 밀어내며 감정을 폭발시켰다.

삐이익! 삑! 삑!

레프리가 단호한 표정으로 두 선수 앞으로 달려갔다.

“What!”

마틴은 말도 안 된다는 것처럼 오른손을 높게 쳐들며 튀어 나갔다.

주심이 카드를 꺼낼 거라고는 짐작했지만, 그 색깔이 붉은색일 줄은 몰랐다.

“우우!”

유니온 시티 관중들이 야유를 퍼부었고,

“우와- 아!”

브리스톨 시티 관중들은 환호성을 질러 댔다.

「마틴 감독과 유니온 시티가 곤경에 빠졌습니다.」

캐스터의 음성이 나오는 동안, 화면에서 마틴이 대기심을 향해 강력하게 항의하고 있었고, 주장 데이빗을 비롯한 선수들이 주심에게 다가가 연신 억울하다고 떠들어 댔다.

그런다고 카드 색이 바뀔 리는 없어서, 결국 스웰던은 분노를 참는 얼굴로 그라운드를 걸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때 화면에 정지우의 모습이 나왔다.

이마에 거즈를 붙인 정지우는 허리에 손을 얹은 채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떤 경우에라도 지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그의 표정과 몸짓, 자세에서 확연하게 흘러나왔다.

윌슨이 공을 고정시키고 몸을 세우자,

둥둥! 둥둥둥!

“We're by far the greatest team!”

둥둥! 둥둥둥!

“The world has ever seen!”

브리스톨 시티 관중들이 커다랗게 응원을 시작했다.

“데이빗! 데이빗!”

마틴은 데이빗을 향해 손바닥을 좁히는 동작을 보인 다음, 정지우가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간격을 좁히고, 골문을 지키라는 의미였다.

삐익!

경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함부로 나가지 못하는 경기, 아차 하는 순간에 다 잡았던 경기를 놓치는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뒤집힐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후반전은 정규 시간으로 아직 30분이나 남았다.

마틴은 레믹을 힐끔 보았다.

저놈을 클레이로 교체해서 수비를 두텁게 해?

그러나 그렇게 할 경우, 공격수가 아예 없어지게 돼서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는 경기를 할 수밖에 없다.

30분은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으며 버티기는 너무 긴 시간이었다.

“우와- 아!”

그때 함성이 터져 나왔다.

윌슨이 유니온 시티 진영의 오른쪽을 파고들고 있었다.

투욱!

그는 빠르게 공을 뒤로 빼 주며 수비수의 시선을 뺏었다.

툭!

역시!

공을 받은 모리스가 달려가는 윌슨의 앞으로 공을 차 주며 수비진을 뚫고 완벽한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수비수가 뒤늦게 윌슨에게 달려들었고, 골대 앞에서 선수들이 뒤엉켰다.

정지우는!

마틴은 간절한 바람을 안고 정지우를 보았다.

정지우는 윌슨을 향해 선 데이빗의 뒤, 골대 중앙에 서 있었다.

수비수가 달려드는 순간이었다.

투욱!

윌슨은 간결한 동작으로 골대 앞으로 공을 밀어 주었다.

“헤에이! 헤이!”

마틴은 또다시 그라운드 쪽으로 달려 나갔다.

아마디는 아예 레슬링 선수처럼 말더스를 밀치고, 테일러는 라파엘과 팔이 뒤엉켜 두 선수 모두 움직이지 못한다.

와락!

흘러간 공을 향해 브리스톨 시티의 앤더슨이 달려들었다.

퍼엉!

강력한 슛!

‘제발!’

마틴이 소리 지를 틈도 없이 공은 순식간에 골대의 왼편 구석을 파고들었다.

화아악!

마틴은 정지우가 처박히는 것처럼 왼쪽 골포스트를 향해 몸을 날리는 것만 보았다.

공과 손이 아슬아슬하게 스치는가 싶은 순간,

“우와- 아!”

“이예에에!”

또다시 에쉬튼 게이트가 흔들릴 정도로 커다란 함성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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