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의 지배자-2화 (2/262)

제1장. 누구도 내 경기에서 골을 넣지 못한다. (2)

마틴은 상대 팀 진영을 빠르게 훑었다.

골키퍼까지 뛰어나와 후속 공격에 대비하는 참이다.

리그 게임에서 후반 막판까지 지금처럼 뛰었다면 벌써 승점을 오버시키고 남았을 거다.

‘저 정도로 막을 자신이 있다는 거냐?’

하긴 이 게임을 잡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이 정도 승부는 거는 게 맞다.

이겨야 할 게임이라면 말이다.

삑! 삑! 삑! 삑!

레프리가 휘슬을 불어 대며 선수들을 향해 손바닥을 아래로 눌러 대는 제스처를 보였다.

보이지 않게끔 상의 뒤를 잡아당기고, 팔을 엉켜서 밀고 당기는 몸싸움이 치열했다.

최근에 저렇게 열정적으로 수비했던 적이 있었나?

축구를 지금처럼 악착같이 했던 때가 있었던가?

삐이익!

코너킥을 차라는 휘슬이 울리자 상대 선수가 검지와 중지를 펴서 신호를 보냈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마틴은 기가 막혀서 웃음이 나왔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경기를 얼마 만에 보는 거냐?

스크립터는 아예 넋이 나간 얼굴로 경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주장은? 카알은?

정지우와 시선이 마주친 놈들이 외곽을 지키는 척하면서 슬금슬금 그라운드 중앙을 향해 움직인다.

어쩌자고?

그래서 너희 둘이 프리미어리그 2위 팀을 상대로 골이라도 넣겠다고?

저 동양인 놈이 또 코너킥을 막는다 쳐도 2선에서 날아갈 슈팅을 막지 못한다면 이 게임을 놓치는데?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마틴은 이를 깨물었다.

이 게임은 놓치는 게 맞는데 자꾸만 욕심이 난다.

미친 듯이 열광하는 관중에게, 저렇게 마지막까지 집중하는 선수들에게 프리미어리그 2위 팀을 상대로 한 번쯤은 승리를 거둬도 되는 게 아닐까?

퍼엉!

코너킥은 역시 정교했다.

이번에는 그라운드 쪽으로 날아가다 골대 쪽으로 휘는 절묘한 코스였다.

마틴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파울이다!

공격수 두 놈이 수비수의 등을 잡아당기며 점프했다!

레프리는 시선을 다른 곳에 두고 있었다.

부심이 못 봤을 리도 없지만, 흥행을 위해서 눈을 감았는지 모른다.

휘이익!

미하엘과 루시스!

수비수보다 머리 한 개는 더 올라온 두 놈이 공을 노렸다.

“막아!”

마틴은 있는 대로 악을 썼다.

터엉!

미하엘의 헤딩은 흠 잡을 데가 없었다.

공격수들이 럭비를 하는 것처럼 수비수들을 밀쳐 내는 틈에서 최선을 다해 환상적인 헤딩을 만들어 냈다.

공은 오른쪽 골대 상단을 향해 날아갔다.

‘이건 못 막아!’

그 짧은 순간에 마틴은 ‘차라리 시원하게 공격이나 해 볼걸?’ 하는 생각도 했다.

사람이 생각이나 판단이 멈출 때가 있다.

그저 멍한 상태에서 보고만 있는 거다.

고양이처럼 몸을 날린 정지우의 손이 공 끝에 있었다.

마치 아름다운 한 편의 그림이나 사진을 보는 느낌이었다.

터억!

정지우는 심지어 펀칭까지 했다.

믿을 수가 없다.

저 정도 코너에 박힌 공은 일단 뒤로 넘기는 게 최선이다.

“이- 예에에에!”

터져 나온 함성은 멈출 줄을 몰랐다.

정지우가 쳐 낸 공을 수비수가 걷어 냈고, 카알이 받았다.

주장이 미친 듯이 앞으로 뛰어나갔다.

퍼엉!

그래!

카알의 패스를 받은 주장이 미친놈처럼 달리고 있었다.

“Come on!”

마틴은 결국 흥분하고 말았다.

상대 골대를 향해 몸까지 틀었다.

상대 팀 수비가 뒤따라 나오고, 골키퍼가 급하게 골문을 향해 달린다.

“슛을 해! 슛!”

못 들어가도 지금밖에 없다.

퍼어엉!

달리던 주장이 실제로 슛을 했다.

소리가 뚝 끊기고, 세상이 온통 멈춘 것 같은 가운데 마틴은 공의 궤적만 보였다.

상대 팀 골키퍼가 뒤를 돌아보고는 몸을 높다랗게 띄우며 손을 뻗쳤다.

‘넘어가라! 넘어가!’

마틴은 저도 모르게 허리를 빼며 고개를 최대한 위로 들었다.

투욱!

공이 손에 걸린 것처럼 보였다.

들릴 리 없는 소리를 들은 느낌이었다.

살짝 튀어 오른 공이 골대의 크로스바를 향해 떠올랐다.

‘제- 바알!’

툭.

크로스바에 맞은 공이 아래로 떨어질 때 골키퍼가 몸을 날리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공과 함께 골대로 들어갔다.

“이- 예쓰!”

“우- 와아아아아아!”

이럴 때 피가 끓는다.

이런 맛에 축구를 시작했고, 감독이 되었다.

움켜쥔 양손을 허공에 흔들며 마틴은 참으로 오랜만에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쿵. 쿵. 쿵. 쿵. 쿵. 쿵. 쿵.

“Go, Go, Go my Red! Go, Go, Go my Red!”

자리를 박차고 나온 스크립터도 끌어안았다.

관중석에서 눈물을 닦아내는 덩치 큰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축구를 보기 위해, 유니온 시티를 응원하기 위해, 육체노동의 고단함을 대가로 표를 지불한 관중인 거다.

오늘 경기가 당연하게 유니온의 패배로 끝나리라는 각오를 하고서도 응원 온 관중!

그가 무식할 정도로 커 보이는 손바닥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프리미어리그 2위 팀이다.

정규 시간은 이미 지났고, 추가 시간만…….

“우- 우우!”

추가 시간이 5분?

부상자 한 명 없이 게임이 진행되었는데?

“주장! 흥분하지 마!”

마틴은 악을 쓰며 가라앉히라는 손동작을 해 보였다.

그때였다.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유니온에는 두 사람이 살지!”

마틴은 순간 울컥하고 눈물이 솟아올랐다.

승리를 이루었을 때, 관중들이 인정할 만한 최고의 경기를 했을 때 들려주는 응원가였다.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레드와 블레이트가 사이좋게 지냈지!”

이렇게 엄청난 응원가를 들어 본 적이 얼마 만인가?

흥분해서, 미칠 듯한 감동을 주체할 길이 없어 터져 나오는 응원가를 말이다.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레드가 시합에 나가면 블레이트는 항상 이렇게 말했어!”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Go, Go, Go my Red! Go, Go, Go my Red!”

마틴의 심장이 ‘Go, Go’ 하는 함성에 맞춰 뛰었다.

삐익!

경기가 재개되었다.

툭. 툭. 툭툭. 툭툭, 툭툭.

뛰어난 팀일수록 확실한 인내심을 지닌다.

시간이 촉박해도, 숨이 막힐 것처럼 긴장된 순간에도 결정적인 기회를 만들기 위해 참고 참는다.

마지막 순간에 골을 만들어 줄 거라고 자기가 속한 팀의 동료들을 믿는 거다!

콰악!

“우- 우우!”

삐익! 삐익!

카알이 무리한 태클을 시도하는 바람에 잠시 시비가 있었다.

“잘했어!”

“코치!”

스크립터가 빠르게 마틴을 불렀다.

공개적으로 위험한 태클을 칭찬하는 것은 입방아에 오른다.

마틴은 모른 척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삑.

아쉬운 놈이 일어나는 거다.

넘어졌던 상대 선수가 기다시피 그라운드 밖으로 나오고 경기가 재개되었다.

퍼엉!

공은 파란 그라운드 저 너머로 날아갔다.

툭. 툭툭. 툭.

그리고 패스 네 번에 다시 반대편으로 돌아와 있었다.

“우- 와아!”

수비수 둘을 속인 상대 팀 선수가 낮게 깔리는 패스를 날렸다.

벌떡!

마틴은 용수철이 튄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났다.

타악!

표범처럼 날래게 튀어나온 미하엘이 슛을 날렸다.

달리던 반대쪽으로 절묘하게 찼다!

정지우는 미하엘이 달리는 방향으로 상체가 넘어간 상태였다.

툭!

그런데 정지우는 발끝에 눈이라도 달린 놈처럼 공을 걷어 냈다.

“우- 와!”

함성이 제대로 터지기 전이다.

흘러나온 공을 루시스가 또다시 밀어 넣었다.

빗맞았다.

“안 돼!”

정지우는?

언제? 도대체 언제?

콰악!

공을 가슴에 꼭 끌어안은 정지우가 그라운드에 길게 엎어져 있었다.

“우- 아아아아!”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유니온에는 두 사람이 살지!”

일어나서 좌우로 움직이며 시간을 끄는 정지우를 본 마틴은 곧바로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레프리!”

마틴은 악을 쓰며 시계를 오른손 검지와 중지로 세 번이나 두드렸다.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레드가 시합에 나가면 블레이트는 항상 이렇게 말했어!”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Go, Go, Go my Red! Go, Go, Go my Red!”

정지우가 ‘퍼엉’ 하고 공을 찰 때였다.

삐익! 삐익! 삐이이익!

레프리의 휘슬이 길게 울렸다.

“우- 와아아아아!”

“Oh my god!”

마틴은 저도 모르게 신음처럼 탄식을 뱉어 냈다.

선수들이 다가와서 정지우의 뒤통수를 툭 때리고는 긴 팔을 뻗어 안았다.

“Good job, Buddy!”

약속을 지켰다.

그것도 중계되는 경기에서 말이다.

카메라가 번갈아 골을 넣은 주장과 정지우를 향해 움직였다.

주장이 다가와 정지우에게 팔을 뻗었다.

“잘했다! 정말 잘했어!”

완전하게 지친 얼굴인데도 팔에 힘이 남아 있었다.

정지우가 몸을 돌린 순간이었다.

“Hey!”

상대 팀 키퍼가 정지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지금까지 내가 봤던 그 어떤 경기 중 최고였다.”

진심으로 보여서 정지우도 손을 뻗어 상대의 손을 잡아 준 다음 어깨를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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