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96화
전투는 길지 않았다.
철화단의 간부들은 복슬이에게 물어뜯기고, 흑염의 칼날에 팔다리가 날아갔다.
푸욱!
“아, 안 돼! 크아아아악!”
철화단 간부 중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뇌명검 카즈마가 고개를 흔들다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신유현이 옆구리에 저주독창을 내려찍었기 때문이다.
“컥! 커헉!”
저주독창의 저주와 독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는지 카즈마는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 꿈틀거렸다.
그 모습을 신유현은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봤다.
“네놈들이 다른 사람에게 가했던 고통을 조금이나마 느꼈으면 좋겠군.”
“비, 빌어먹을…….”
카즈마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신유현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하지만 점점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거기에 전신을 내달리는 격통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잠시 후, 철화단의 마지막 간부인 카즈마는 움직임을 멈췄다.
“끝났군.”
신유현은 싸늘한 눈으로 철화단 놈들의 시체들을 바라봤다.
단원들 또한 물어뜯겨 죽어 있거나, 검에 베여 죽어 있거나, 날카로운 창에 꿰뚫려 죽어 있었다.
스켈레톤 세이버들과 랜서들이 몰려들어서 집단 린치를 가한 흔적들이었다.
‘무기들도 다 챙겼고.’
철화단의 간부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들은 레어에서 익셉셔널 레어 등급으로, 그 가치가 높았다.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 도움이 될 터.
모든 정리를 마친 신유현은 다시 복슬이를 그림자 공간 속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디아를 바라봤다.
아직 어린아이인 디아에게 눈앞의 참상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자주 봐야 할 광경이었다. 인류를 배신한 게티아 숭배자 놈들이나 초인 빌런 놈들을 처단하러 다닐 생각이었으니까.
“디아야?”
“넹.”
자신의 부르는 목소리에 디아는 신유현을 돌아봤다.
그리고 웃으며 말했다.
“전 괜찮아영.”
디아는 말없이 다가와 신유현을 안아 주었다.
신유현의 눈빛 속에 담겨 있는 뜻을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세븐 아크스인 디아는 신유현과 심층 의식이 이어져 있었기에 서로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디아는 겉모습과 달리 여러 경험을 했다.
초대 불사왕과 계약을 하기 전부터 전쟁의 참상을 보아 왔으며, 계약 이후에는 마수들과 수도 없이 싸워 왔으니까.
“고마워.”
신유현은 디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뀨!
그때 디아의 어깨에 올라타 있던 까망이가 촉수를 쭉 뻗으며 신유현의 얼굴을 토닥였다.
“그래, 우리 까망이도 있었지.”
신유현은 웃으며 까망이의 머리도 쓰다듬어 주었다. 디아와 마찬가지로 까망이 또한 신유현과 마음이 이어져 있었으니까.
“그럼 다시 가 볼까?”
“넹!”
뀨!
신유현의 말에 디아와 까망이는 귀엽게 대답했다.
이윽고 신유현은 다음 층으로 이동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지하 4층에 만들어진 훈련장은 폐허 같은 도시뿐만이 아니었다. 사막도 있었고 숲도 있었다.
다양한 상황에 맞게 훈련할 수 있는 장소가 갖춰져 있었던 것이다.
거기다 지하 2층의 연구 시설까지.
‘잿빛 교단의 지원을 받았다고 해도 이 정도라니, 섬 지하에 이런 규모의 시설을 지으려면 돈을 엄청 들였겠는데…….’
철화단의 지하 시설 규모는 예상보다 엄청 컸다.
규모 면에서는 남연아의 아티팩트 연구소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한낱 테러리스트 단체가 과연 이 정도 규모의 시설을 지을 수 있을까?
‘스폰서가 붙어 있는 건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최소한 기업 규모의 스폰서가 붙어 있지 않다면 이 정도 시설을 지을 수 없을 터.
‘철화단의 단장을 붙잡거나 서버실을 털어 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신유현은 철화단의 훈련장들을 지나 5층으로 내려갔다.
* * *
“흠.”
5층으로 내려온 신유현은 복도를 좀 지나 관제실로 들어올 수 있었다.
철화단의 모든 시설들을 감시할 수 있는 장소였다.
“튀었네?”
신유현은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관제실 내부는 어지럽기 짝이 없었다.
서류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고, 관제실 PC는 전부 켜져 있었다.
모니터에는 파일 삭제 중이라는 표시가 떠 있는 상황.
모니터를 확인한 신유현은 재빨리 PC를 조작해서 파일 삭제를 취소했다.
그리고 가지고 온 USB를 꽂았다.
“얼마나 가지고 갈 수 있으려나.”
신유현이 관제실에 왔을 때는 이미 파일 삭제 중이었기에 얼마나 자료가 남아 있을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철화단 놈들도 급박하긴 한 모양이었다. 보다 확실하게 관제실을 파괴하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 그저 삭제 명령만 해 놓고 튀어 버렸으니까.
‘그래 봤자 내 손바닥 안이지만.’
신유현은 속으로 피식 웃음을 흘렸다.
* * *
‘젠장! 빌어먹을!’
오르카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혈랑이 넘어간 이상 손 쓸 방도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 때문에 기지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위험해.’
이 기지를 지을 때 잿빛 교단의 자금을 끌어다 썼다.
거기다 관제실에서 연락을 한 상관은 직접적으로 철화단에 자금을 꽂아 주었다.
그 때문에 그에게는 파천검가가 침입을 해 와도 걱정하지 말라고 호언장담까지 했다.
그런데 기지를 버려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만약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잿빛 교단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전에 자신에게 자금을 지원해 준 상관부터 가만히 있지 않겠지만.
‘일단 여기서 벗어나고 생각해야겠군.’
혈랑을 손에 넣은 신유현이 관제실이 있는 장소까지 밀고 내려오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그 전에 지하 6층 끝의 도크에 정박되어 있는 잠수함을 타고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어쨌든 살아만 있으면 어떻게든 기회를 도모할 수 있을 테니까.
적어도 오르카는 그렇게 생각했다.
눈앞에서 어떤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전까지는.
“어머나, 벌레가 또 한 마리 왔네?”
“뭐, 뭐야?”
오르카는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계단을 내려와 몸을 옆으로 돌린 순간, 어떤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여기서 도망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건 아니겠지?”
목소리의 주인공, 슈브는 붉은 혀로 입술을 핥으며 오르카를 바라봤다.
“누, 누구냐!”
오르카는 긴장한 표정으로 눈앞의 여성을 바라봤다.
머리 위에 솟아나 있는 검은 산양 같은 뿔과 허리 뒤로 펼쳐져 있는 검은색의 날개.
그리고 검은 공막 위로 위험하게 빛나고 있는 금색 눈동자까지.
금색 자수가 새겨져 있는 칠흑의 드레스를 입고 있는 아름다운 여성이 오르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아, 악마?”
오르카는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름답지만 위험한 금안의 악마.
슈브의 곁에는 오르카처럼 섬을 탈출하려고 한 철화단의 연구원들이 좀비처럼 늘어서 있었다.
그중 일부는 바닥에 엎드려 있었고, 슈브는 그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너도 이쪽으로 오렴.”
슈브는 금안을 빛내며 오르카를 바라봤다. 유혹의 마안을 발동한 것이다.
유혹의 마안에 걸리면 짧은 시간 슈브의 명령에 복종하게 된다.
실제로 슈브의 곁에 있는 연구원들도 유혹의 마안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는 상황.
“아, 안……!”
오르카는 슈브의 눈이 빛나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정신을 잃었다.
* * *
그날 저녁.
가주전 회의실.
이날 파천검가에서는 가문을 습격한 철화단을 어떻게 할 건지 회의를 하고 있었다. 슈브의 심문 덕분에 철화단의 거점을 알아낼 수 있었으니까.
“그럼 어떡하면 좋겠소?”
파천검가의 대호법이자 가주 대리를 맡고 있는 신성현이 가문의 가신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각 검전의 부전주들과 가주 직속 부대의 대장들이었다.
그리고 신씨 일가 친척들까지 모여 있는 상황.
“어떻게 하긴? 놈들을 쓸어버려야 하지 않겠소!”
신성현의 말에 주작전의 부전주인 이주혁이 이를 갈며 말했다.
그는 신철진이 어릴 때부터 옆에서 보좌해 온 가문의 가신이었다.
나이는 50대이며, 가문에서도 손가락에 들어가는 5성 최상급의 실력자이기도 했다.
이주혁은 이미 오래전 병사한 죽은 가주 신성일의 첫째 부인이자 신철민, 신유라, 신지아, 신철진의 어머니인 이선화에게 신철진을 부탁받았다.
또한 신철진의 어린 시절을 함께한 터라 거의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어이없게 신철진을 떠나보내게 된 것이다.
그 때문에 이주혁은 신철진의 죽음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철화단을 용서할 수 없었다.
“가문이 동의한다면 내가 당장에 가서 놈들을 뿌리 채 뽑아 오겠소!”
이주혁은 입에서 불이라도 내뿜을 것처럼 열정적으로 소리쳤다.
“청룡전은 동의하오.”
“백호전도 동의합니다.”
“파천검대도 동의하오.”
“흑영대도…….”
파천검가의 각 부서에서 이주혁의 말에 찬동했다.
마지막으로 신성현은 현무전을 바라봤다.
이 자리에 신유현은 참석하지 않았다.
부전주인 최정훈만 있을 뿐이었다.
최정훈은 가주 신성일의 직속 가신은 아니었지만 오랜 기간 현무전을 운영해 왔다.
그 실적은 가문 내에서 인정받고 있었다.
“현무전은 어떻게 생각하오?”
“저희도 이주혁 부전주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신성현의 물음에 최정훈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이로써 전원이 철화단의 거점을 치는 데 동의한 셈이었다.
그때 이주혁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최정훈을 바라봤다.
“현무전의 전주는 왜 오지 않았지?”
“일이 있어 오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최정훈은 고개를 숙였다.
이곳에 있는 자들은 전부 가주 신성일의 직속 가신들이었다.
파천검가의 검왕, 신성일이 신뢰하는 자들.
그리고 본래라면 신유현은 회의에 참석해야 했다.
하지만 점심시간 이후 어디론가 사라진 신유현은 저녁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최정훈이 신유현을 대신해서 현무전의 대표로 회의에 참석해 사과를 한 것이다.
‘으윽, 위장이…….’
그 때문에 최정훈은 속이 쓰라렸다.
“대체 무슨 중요한 일이기에 가문의 회의에 불참한단 말인가? 책임감이 없군.”
이주혁은 혀를 차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신철진이 사망한 경위에 대해 자세히 보고를 들었다.
그래서 신유현에게 잘못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머리로는 알고 있다 해도 가슴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런 마당에 회의까지 불참했다고 하니 기분이 안 좋을 수밖에 없었다.
똑똑똑.
그때 회의실 출입구 문에서 노크 소리가 울려 퍼졌다.
“들어와라.”
노크 소리에 신성현이 말했다.
사실 1분 전에 신성현은 측근에게 귓속말로 보고를 받은 게 있었다.
덜컥.
신성형의 말이 끝나자마자 회의실 문이 열리면서 신유현이 들어섰다.
“신유현! 가문 회의에 왜 늦었지!”
신유현의 모습이 보이자마자 바로 이주혁이 눈살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죄송합니다.”
신유현은 일단 이주혁과 회의실에 안에 있는 가문의 어르신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부터 했다.
하지만 눈빛만큼은 당당했다.
“사정이 있어서 늦었습니다.”
“사정이라고? 대체 얼마나 대단한 사정이길래 회의에 늦은 거지?”
이주혁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그에게 신유현은 미소를 지으며 충격적인 한마디를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