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정령사-202화 (202/241)

00202  몬스터 웨이브  =========================================================================

마수의 숲과 불모의 황무지는 예로부터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이라 잘 알려진 대표적 장소들이다.

불모의 황무지는 아무것도 없는, 말 그대로의 황무지라서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생명체가 범접할 수 없는 곳이었고, 마수의 숲은 조금 달랐다.

사람의 침입을 거부하는 곳이긴 하였으나 생명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은 조성되어 있었고, 그래서 그런지 온갖 동식물과 몬스터가 들끓었다.

그리고 숲의 이름을 정해준 가장 중요한 존재, 바로 고대종이라 일컬어지는 어떤 마수가 숲 가장 깊숙한 곳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현시대의 사람들은 아무도 몰랐지만 조사대, 또는 돈을 벌기 위해 향한 용병들이 돌아오지 않는 것을 보고 강력한 존재가 있음은 확신했다.

마수의 숲에서 유일하게 무리를 지어 다니는 강한 오크, 검은 귀 부족은 예외였다.

그들은 마스터로 추정되는 무력을 지닌 족장의 지휘아래 인간들과의 접촉을 피하고 있었으니까.

“그곳에 무엇이 있길래 그러십니까?”

여신의 말은 허투루 들어선 안 된다. 아무리 그녀가 장난기도 있고, 청순한 미를 뽐내더라도 대지계열 최고위의 신 가이아 여신이라는 점엔 변함이 없었다.

억겁의 세월동안 존재해온 여신이 무리해서까지 자신의 공간에 불릿을 데려올 이유가 무엇일까?

그가 궁금해 하는 찰나, 그녀의 앵두 같은 입술이 조그맣게 열렸다.

“당신이 이번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태고의 순혈에게 힘을 빌려야 한답니다.”

“…?? 그게 무슨 소립니까? 처음 듣는 얘깁니다만.”

그녀의 말은 온통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로 점철되어 있었다.

몬스터 웨이브를 전쟁이라 표현한 것은 그렇다 쳐도, 태고의 순혈이라는 자와 힘을 빌려야 한다는 점.

게다가 그에게 힘을 빌리지 못하면 패배할 수도 있다는 뉘앙스이지 않은가?

불릿의 물음에 가이아 여신은 깍지를 끼고 윗가슴에 가지런히 올려놓으며 살짝 눈을 감았다.

“인간들의 말로는 그의 가족들을 검은 귀 부족이라 부르더군요.”

“왜 오크에게 말을 높이십니까?”

불릿은 그녀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오크는 인간을 위협하는 가장 대표적인 몬스터, 그런 놈들에게 존대를 하다니 여신의 존엄이 상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의 반응을 예상했는지 가이아 여신은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눈을 반개했다.

“그가 살아온 세월과 업적이라면 충분히 존경받을 만하지 않을까요?”

“…오래 살았나 보군요. 헌데 업적이라 하면?”

“그의 이름은 우락크, 현 오크들의 조상되시는 분이세요.”

“그럼 그놈이 내 백성들을 괴롭히는 오크를 만들어낸 개새끼란 말입니까?”

불릿이 격한 반응을 보이는 데엔 비단 군주라서가 아닌 인간이라는 종족이라면 누구나 분노할 만한 사안이었다.

몬스터치고 인간을 안 잡아먹는 놈은 없다. 인간도 일부 몬스터를 식용으로 쓰거나 동물을 사육하면서 먹는 등, 다른 종을 죽이면서도 그런 면에 대해선 민감하게 반응했다.

“너무 그러지 마세요. 그는 한때 신이었던 자니까요.”

“그건 또 무슨….”

“제가 그 아이를 신의 자리에서 격하시켰었다고 말씀드렸었지요?”

가이아 여신은 슬픈 표정을 보인 후 말을 이어갔다.

“그는 자신의 자손들을 너무도 사랑했고,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혜택을 부여했답니다. 하지만 세상엔 균형이란 것이 있고, 그것들 조절하는 것이 신들의 역할이었기에 그의 편애는 오히려 독이 되었어요.”

우락크는 세상 오크들에게 강인한 체력과 근력, 어디서든 생존할 수 있는 투쟁심을 주었다.

그 외에도 전사로서의 덕목이나 본능적인 전투방법의 체득 등을 종으로서의 특징으로 넣어가던 찰나, 다른 신들에게 이러한 행위들이 발각되어 신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스스로의 신격을 격하당하는 처벌과 더불어 마계의 존재가 중간계에 들어서지 못하도록 막는 문지기의 역할도 강제로 떠맡게 되었다.

그곳이 바로 마수의 숲이며 불릿의 영토 바로 옆에 위치한 곳이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듣자 불릿은 머리가 멍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저보고 어찌하란 말씀입니까? 그놈이 되도 않는 짓을 해서 오크들이 바보멍청이 된 것이고, 그래서 인간을 습격하게 됐다는 말입니까? 그리고 전 그런 놈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고?”

“인간들도 서로를 상처 입히고, 때론 죽이기도 하지 않나요?”

“잡아먹힌다는 본능적인 공포를 아시고나 하는 말씀입니까?”

“에…….”

“그딴 놈의 도움이 없더라도 저흰 몬스터 웨이브를 훌륭히 극복하고 흑마법사의 잔당 또한 소탕할 것입니다.”

“사위님…….”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그것은 인생이 끝난다는 것에서 마냥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고, 그 죽어가는 과정이 어떻느냐에 따라 강도가 달랐다.

그냥 늙어서 죽는 거라면 기꺼이 받아들이는 인간이 대부분이겠지만, 몬스터에게 산채로 뜯어 먹힌다고 생각하면 진저리가 처진다.

자신의 가족이, 친우가, 사랑하는 연인이 오크의 몽둥이질에 머리가 박살나고 그 뇌수를 오크가 게걸스레 먹는다면?

죽음이라 할지라도 다 같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제 보니 신이라는 존재들도 완벽하지 않군요. 그런 더러운 역사가 있었다니 말입니다.”

“…….”

“제 예상으론 각 종족마다 담당 신이 있으리라 생각되는데, 맞습니까?”

“말할 수 없어요.”

그러나 말할 수 없다는 말이 곧 긍정임을 불릿도, 가이아 여신도 알고 있었다.

신들의 법칙인지 몰라도 그녀는 불릿에게 최대한 정보를 건네주기 위해 우회하며 전달하는 것이었다.

불릿도 가이아 여신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이내 화를 풀었다.

“후우, 장모님이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대지위에 선 모든 생명을 사랑해야하는 신에게 제가 못할 소리를 했군요.”

그녀의 입장에서라면 오크 또한 사랑해야하는 종족 중 하나였기에 불릿의 말이 거북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밝게 웃었다.

“아니에요. 다 이해하고, 그런 사위님도 밉지 않은걸요? 우리 아이를 아껴주고, 보살펴주고, 사랑해주는 분을 제가 어찌 미워할 수 있겠어요?”

“…사랑고백 같으니까 그만두시죠.”

“헤헤헤.”

걸핏하면 흙덩이를 따라하는 가이아 여신이었으나, 어쩌면 저 모습이야말로 근엄한 신의 직위를 벗어던진 본연의 가이아 여신일지 몰랐다.

“불모의 황무지 중앙에 대체 무엇이 있길래 우락크라는 존재까지 알려주면서 도움을 받으란 겁니까?”

불릿도 72악마군주에 대해선 그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한다.

직접 전쟁을 겪은 당사자이기도 하고, 중간계에 아무런 힘의 소실도 없이 소한된 마족을 없앤 전적도 있었다.

그러니 고작해야 유산만을 노리고 일을 꾸미는 흑마법사는 그리 무섭지 않았는데, 자신보다 까마득히 높은 위치에 속한 여신이 저렇게 행동하니 생각을 달리 안 할 수 없었다.

“원래는 말해선 안 될 일이지만 그들이 먼저 규칙을 어겼으니 괜찮겠지요.”

반개한 눈을 다시 감은 가이아 여신. 다시금 그녀의 눈이 떠졌을 땐 홍채의 색이 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72악마군주 또한 신격을 지닌 자들, 부르는 이름만 다르지 그들 또한 신이라 할 수 있어요.”

“……흠. 신이란 게 영원불멸한 게 아닌 겁니까?”

그의 추측대로라면 소환됐던 마족 또한 신이거나 또는 신의 계보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 신이 인간의 손에 죽었다는 것은 쉬이 믿기 어려웠다.

“우리 아이가 신으로 보이시나요?”

그녀의 물음에 불릿은 자신과 하나가 되어 신음을 흘리던 흙덩이가 떠올랐다.

“본인의 마음을 가져갔으니 사랑의 여신이 아니겠습니까?”

“호호호! 자기 자신을 높게 평가하시는군요?”

“군주 된 자로서 이정도 자신감은 있어야지요.”

“호홋, 그 아이가 부럽네요.”

문득 애달픈 눈으로 그를 바라보던 가이아 여신은 웃음을 지우고서 본론을 꺼내놓았다.

“그녀의 이름은 아스타로트, 한때 그녀도 여신이라 불리던 악마군주랍니다.”

“지금 저보고 신을 죽이란 소립니까?”

어이가 없었는지 감정이 그대로 표정에 드러나는 불릿에게 가이아 여신은 이어서 말했다.

“그래서 우락크를 찾아가란 거예요. 현 중간계에서 오직 그만이 신격에 일격을 가할 수 있답니다.”

결국 몬스터 웨이브는 막을 수 있더라도 흑마법사들의 구심점인 아스타로트를 없애지 못한다면 끝없는 전쟁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불릿에게 있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뜻.

신관도 아닌 불릿이 신탁도 아닌, 신과의 1:1 면담으로 전해 받은 이야기니 거짓도 아닐 것이다.

“후우, 차라리 당신이 몽마였다면 아무리 유혹하더라도 웃어 넘겼을 것을, 하필 장모님이라 때릴 수도 없고….”

“어머, 설마 여자를 때리시겠단 소리세요? 우리 아이를 닮은 저를요?”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아래가슴을 팔로 받치는 가이아 여신.

“…장모님이 흙덩이는 아니지 않습니까. 전 제 부인들에겐 손찌검 안 합니다.”

비록 그녀들의 가장 큰 바람인 자신의 안전을 도외시하긴 했으나 그는 여전히 부인들을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는 중이었다.

이번 여정을 떠나기 직전까지 자신을 피하는 올리비아와 유실리아를 만나지 못했지만, 이번 몬스터 웨이브만 잘 마무리 된다면 남몰래 준비한 선물과 함께 해줄 것이 있었다.

그것이라면 그녀들의 화도 단방에 풀릴 거라고 최측근 가신에게서 정보를 입수했다.

“그럼 제가 부인이 된다면요?”

슬쩍 몸을 밀착해오며 묻는 말에 욕구를 한참 참은 불릿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 그러셔도 소용없습니다! 같은 얼굴이라면 흙덩이가 더 좋습니다!”

불릿의 대꾸에 가이아 여신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몸을 부볐다.

스르륵, 스르륵.

“좋긴 하다는 거네요?”

“…후우, 그래서 결론은 이거 아닙니까. 육체는 이상없고 일을 정리한 후 우락크를 찾아가라. 그 후 불모의 황무지의 중심부에 있는 72악마군주중 하나인 아스타로트를 죽여라.”

“맞아요, 역시 직업이 직업인지라 이런 건 정리를 잘하시네요?”

“직업이라기 보단…예, 그런 것 같군요.”

대답을 하며 그녀에게서 멀어지는 불릿. 분명 정신만 따로 옮겨졌을 텐데도 살짝 부푼 바짓춤이 그의 정신세계가 한계에 도달했음을 알려주는 듯했다.

가이아 여신도 그걸 봤지만 그저 웃음만 지으며 입을 뗐다.

“이 일을 통해 저는 천 년 동안 중간계에 개입할 수 없게 되었어요. 그러니 제 딸을 잘 부탁드립니다.”

꾸버억-.

가이아 여신이 가슴골을 가리며 허리를 숙이자 불릿도 자연스레 귀족의 예로 이에 보답하였다.

다시 고개를 든 그녀의 얼굴엔 미소 대신 서글픔과 함께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나의 사랑, 나의 미련, 나의 소망…. 그 아이를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는 게 너무도 한이 되네요.”

“신격을 포기하실 순 없으십니까?”

“…저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 제가 사라진다면 세계는 붕괴하기 시작할 거예요. 그 어떤 생명도 자랄 수 없고, 태어나지 않으며 결국 모든 생명이 사라지고서야 새로운 신이 탄생하겠지요.”

매우 살벌한 소리였기에 불릿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떡 삼켰다.

가이아 여신의 말이 사실이라면 세계의 멸망을 뜻했기에 관두라는 소리도 못하게 됐다.

우우웅-

이전처럼 새하얀 백색공간이 흔들리며 그녀의 신형이 흐릿해지자 불릿은 서둘러 입을 열었다.

“당신이 지켜볼 수 없더라도 흙덩이의 행복은 제가 지키겠습니다.”

“가여운 아이….”

마음이 아팠는지 가슴을 움켜잡으며 흐느끼기만 하는 그녀에게 불릿은 마지막으로 물었다.

“아직 물어볼 게 있습니다.”

“무엇인가요?”

“현재 아스타로트가 악마군주 중에서 서열 몇 위에 안착해 있습니까?”

치열한 마계에서의 싸움에서 서열은 곧 힘이었기에 전력파악에 나서려던 불릿.

그리고 그의 물음에 세상이 까맣게 변하는 순간, 그녀의 음성이 뇌리에 꽂혔다.

“서열 1위, 마계대공의 자리를 차지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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