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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정령사-201화 (201/241)

00201  몬스터 웨이브  =========================================================================

큰 기술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지자 불릿은 흙덩이에게 속삭였다.

“대지의 분노, 부탁한다.”

“응, 알았어. 그런데 왜 대지의 분노라고 지은 거야?”

“…….”

그토록 어마어마한 폭발이 설마 인간의 손으로 이루어낼 수 있으리라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아니, 고위마법사라면 가능할지도 몰랐으나 준비시간도 길고 그녀만큼 쉽게 시전할 수 있진 않을 것이다.

땅거죽이 뒤집히며 주변의 몬스터를 초토화시키는 광경은 마치 가이어 여신이 분노하는 듯한 모습을 연상시켰다.

그래서 그런 이름을 지은 것인데, 흙덩이에게 이런 이유를 말해준다면 어떨지 몰랐다.

‘기분 나빠하려…나?’

최근엔 땅의 정령이 좋아할 만한 문구나 구절을 읊어줘도 반응이 없다.

뭘 말해도 ‘나도 불릿이 좋아!’라고만 하니 사랑에 빠진 소녀로만 보인다.

- 우오오!

외눈박이 거인의 포효에 문득 깨어난 불릿.

그는 잡스런 생각으로 빠져들자 눈을 깜빡이며 흩어버린 후 재차 말했다.

“큰일이다, 놈들이 흩어지려해! 흙덩아 어서!”

“응! 알았어! 손 줘!”

그녀에게 정령력을 전해주기위해 유일하게 맨살이 드러난 흙덩이의 목을 잡았다.

흠칫.

손을 잡을 수도 있지만 정령술을 발휘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그랬던 것인데 발갛게 달아오르는 흙덩이의 얼굴.

그래도 충실히 불릿의 요구에 따라 넘겨받는 정령력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불릿은 거의 정령력을 1/10만 남겨놓고서 남은 4/10을 그녀에게 전해주고 있었는데, 아까의 현기증보다 한층 더 심한 상실감을 느끼는 중이었다.

우우웅-

‘크으….’

정령사에게 있어 정령력은 힘의 근원이다. 마법사가 모든 마나를 소모하면 심장의 마나써클에 금이 가는 것처럼 정령사도 정령력을 모두 소모하면 탈진 후 실신이나 그에 근접한 상태에 빠진다.

기사? 기사는 마나를 소모하는 것도 훈련의 일원 중 하나이다.

그들의 육체단련은 마법사나 정령사와는 비교가 되질 않았기에 그 정도로는 큰 충격을 받지 않는다.

물론 모든 마나를 소모한 상태에서 억지로 힘을 끌어올린다면 기사들의 마나홀도 무사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정령력이 모두 전해졌을 무렵, 흙덩이가 입을 떼었다.

“다 했어! 해? 할까? 쾅 해?!”

쿵-, 쿵-, 쿵-!

끄아아!

챙, 챙!

“아직!”

그들의 주변으론 여전히 병사와 몬스터가 뒤엉켜 있었다.

이 상태로 기술을 펼쳤다간 아까와 같은 참상이 병사들에게도 덮칠 것이다.

불릿은 둘을 스쳐지나가려는 백인장을 붙잡았다.

덥석.

촤앙!

쐐애액-!

자신의 몸을 붙잡는 손길에 진홍색 케이프를 걸친 백인장은 말도 하지 않고 숏소드를 빼들고서 불릿을 찔러왔다.

“나다!”

멈칫.

“각하가 어찌하여 이곳에…?”

의문과 당혹스런 감정의 백인장에게 불릿은 대꾸하지 않고 버럭 소리쳤다.

“병사들을 대피시켜라! 아까의 그것을 할 것이다!”

“헉! 아, 알겠습니다!”

좀 전의 그것이라 하면 중, 대형 몬스터를 포함한 절반가량의 몬스터군단을 몰살시킨 살벌한 기술이 아닌가?

가녀린 흙덩이가 펼쳤으리라 상상도 되지 않는 파괴력. 그게 자신들을 덮친다니 기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후퇴명령을 외쳤다간 이전처럼 혼란에 빠진 병사들이 아군도 버린 채 무작정 뒤로 달려갈 것이다.

백인장은 불릿과 마찬가지로 지나가는 십인장들을 붙잡고서 이 얘기를 전해주었고, 그들도 놀라긴 마찬가지였으나 드디어 하급 마물을 죽일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다.

“흩어져서 진격하는 척하며 놈들을 몰았다가 일시에 후퇴하자.”

“그러다 각하의 공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한 자리에 몰아넣어야 더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거다.”

“만약 말려들어서 죽더라도 난 후회 없다. 저 빌어먹을 마물새끼들에게 한 방 먹일 수 있다면!”

그들은 불릿의 요구에 자신들의 경험을 토대로 한 전략을 짜내어 흙덩이의 대지의 분노가 더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부, 불릿, 나 힘들어…!”

부들부들.

그녀의 가녀린 팔이 기다리는 시간을 참지 못하고 거세게 떨리자 더 이상 넘겨줄 정령력이 없던 불릿은 흙덩이의 떨리는 팔을 붙잡아주었다.

덥썩!

“괜찮다, 내가 있어. 조금만 더 힘내.”

“히으윽…!”

“따라해. 후우, 하, 후우, 하아.”

“후우-, 하, 후우-, 하.”

어쩐지 순산을 기원하는 호흡법이 생각났지만 그게 효과가 있었는지 부들부들 떨리던 팔이 멈추기 시작했다.

“아악, 힘들어!”

…아니다, 그냥 착각이었다.

높은 하이톤의 비명이 새어나온 탓인지 저 멀리서 병사들을 학살하던 하급 마물무리가 이쪽을 바라봤다.

“지금이다! 뒤로 빠져라!”

“방패 들어서 몸 가려!”

“와아아!!”

간부들의 지휘아래 전진하는 듯하던 병력이 일시에 빠지자 몬스터들은 치열하게 싸우던 것도 멈추고 공황상태에 빠졌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느라 하급 마물들도 덩치만큼 큰 눈알만 데룩데룩 굴릴 뿐이었다.

- 쿠오, 쿠오.

- 취리릭!

- 크르르르?

이 와중에도 우락부락한 근육의 외눈박이 거인은 주변에 잡히는 소형 몬스터를 집어던지고 있었다.

끼아아악……

…철퍽!

그러나 이미 병력은 뒤로 물러갈 데로 물러갔기에 소형 몬스터는 맨땅에 부딪혀 고깃덩어리가 되었다.

아무런 의미도 없이 무의미하게 죽은 소형 몬스터였으나 외눈박이 거인은 더 이상 놈에게서 신경을 쓰지 않았다.

놈들이 슬슬 움직이려할 때, 고요해진 전장에 남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금이야, 흙덩아!”

“지금이야, 흙덩아!”

몬스터군단이 움직이려하자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던 불릿의 외침.

이에 한껏 일그러졌던 얼굴의 흙덩이가 억제되었던 힘을 해방했다.

“이거나 먹엇!”

그러자 흡사 지진이라도 일어나는 것처럼 마물들이 뭉쳐있던 땅이 흔들렸다.

쿠쿠구구구-

“취익?!”

“끼악! 끼악!”

“끄으응, 아우우!”

소형 몬스터들이 미칠 듯이 날뛰자 하급 마물들은 무언갈 알아챘는지 5미터가 넘는 거대한 동체를 움직이며 앞으로 나아가려 했다.

쿵쿵쿵!

그러나 때는 늦었다.

터져나가려던 힘을 강제로 억지했던 탓인지 이전보다 정령력을 적게 사용했음에도 폭발음은 너무도 컸다.

콰아아아아앙--!!!

“크윽, 흙덩아, 돌벽! 삼중으로!”

“으, 응! 꺄악!”

드드드득-

미처 땅굴을 파 숨을 새도 없이 뻗어나가는 폭발에 흙덩이와 불릿까지 휘말리게 만드는 거대한 폭발은 달려나가던 자세 그대로 죽음을 몰고 오는 여신의 분노에 휩쓸려버렸다.

* * *

백색의 공간, 아무것도 없는 그곳에 쓰러져 있던 병사의 몸이 움찔했다.

흡사 시체와도 같이 멈춰있었기에 죽은 줄 알았었는데 아닌가보다.

“크으윽….”

신음을 내며 움찔거리던 그가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서니 얼굴은 찡그려져도 잘생긴 불릿의 외모가 드러났다.

불릿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확인하다가 안색이 굳었다.

“여긴…?”

그가 마계의 악령 와치의 비명에 의해 죽음에 직면했을 때, 그를 구해주었던 그녀가 있던 곳.

“설마 또 목숨이 위태로운 건가…?”

온갖 안 좋은 생각이 들게끔 만드는 백색의 공간이었기에 그가 불안해하자 그를 안심시켜줄 자비로운 음성이 귓가에 맴돌았다.

“사위님은 괜찮답니다?”

“으헉!”

“어머, 호호호.”

화들짝 놀란 불릿이 뒷걸음질 치는 리액션을 취하자 입가를 가리며 우아하게 웃는 가이아 여신.

흙덩이와 쏙 빼닮은, 아니, 흙덩이가 그녀를 닮은 거겠지만.

어찌됐든 닮은 외모의 그녀가 눈웃음을 짓자 불릿은 괜히 얼굴이 벌게졌다.

화아악.

“가, 갑자기 나타나시면 어떡합니까.”

“보고 싶으니까 불렀겠죠? 헤헷?”

“…놀리지 마시지요. 흙덩이 따라하지도 마시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제 가슴은 왜 보시는 건가요?”

“……크흠.”

어디서 봤던 것인지 지금 그녀의 복장은 윗가슴이 그대로 드러나는 고대풍의 의복을 착용한 상태였다.

뭔가 뱅글뱅글 달팽이처럼 도는 문양이 의복 곳곳에 자리 잡아 있으나 불릿의 시선이 뚫어질 정도로 가슴을 훑으니 살짝 가리며 말했던 것.

욕구가 쌓였던 터라 불릿은 저도 모르게 시선처리를 잘못했기에 사과의 말을 전했다.

“죄송합니다. 실례를 저질렀군요.”

“괜찮아요,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않았으니 쌓일 만도 하지요.”

또 다시 붉어지는 불릿의 얼굴. 전쟁 중에는 하지 않기로 약속했었기에 쌓일 대로 쌓인 중이었다.

그런 약속도 바스톤의 일을 처리하고 나면 밤새도록 하기로 흙덩이가 허락해주어 내심 들뜬 상태였기에 그녀와 닮은 장모님(?)을 보자 저도 모르게 시선이 꽂혔던 것.

“이렇게 부르셔도 괜찮으십니까?”

“호호, 말을 돌리려고 하시네요.”

“…말씀해주시지요.”

“음, 그럼 넘어가드릴게요. 헤헤.”

장난스럽게 흙덩이를 따라하던 가이아 여신은 이전에 보았던 슬픈 표정을 지었다.

“우리 아이는…잘 지내고 있나요?”

분명히 지켜보고 있었을 텐데도 이상한 가이아 여신의 물음에 불릿은 차마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잘 지낸다고 하기엔 최근 자신이 울린 횟수가 많기에 그걸 가지고 잘 지낸다고 해야 할지, 그리고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알 수가 없었기에 머뭇거리자 가이아 여신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그 아이의 슬픔이 전해졌어요.”

“무슨 의미인지요.”

“그 아이는 저의 핏줄이지만 정령의 특성을 일부 물려받아 그녀가 느끼는 감정을 저는 알 수 있답니다.”

아마 대지계열 최고위 신의 권능 중 하나를 말하는 것 같았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신이 자신의 신도들의 기도를 들을 수 있고, 때론 힘을 나눠주거나 고민도 해결해주는 등의 일을 할 수 있으리라 불릿은 짐작했다.

“그 아이, 흙덩이의 부탁을 저버리셨더군요. 제 말이 맞나요?”

“…지켜보았듯이, 그리 됐습니다.”

질책하는 듯한 상황이었기에 불릿은 고개를 숙인 후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가이아 여신은 그게 아니라는 듯 자신도 옷자락을 옆으로 쓸어내며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그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사위님이 그 상황에서 그러한 선택을 하신 것은 가장 알맞은 것이라 저도 생각해요. 제가 무리를 해서라도 사위님을 불러드린 데엔 그런 연유가 아니랍니다.”

알쏭달쏭한 말이었으나 불릿은 침착하게 그녀의 말을 듣기로 했다.

시선은 되도록 위로 올려 아래를 안 보려 애쓰면서.

“욕구는 흙덩이와 푸시라구요? 자꾸 그러시면 저도 부끄러워요.”

“크흠.”

슬쩍 가슴을 가리며 몸을 비트는 가이아 여신.

그녀는 다시 감정을 살리며 말을 잇기 시작했다.

“조금 전 우리 아이가 검은 끈을 발견했다 하였죠?”

“흠흠, 예, 그렇습니다. 흑마법사의 수작이겠죠.”

그렇지 않고서야 하급 마물이라지만 다섯이나 되는 놈들이 뭉쳐서 인간을 습격하진 않았을 것이다.

등급이 설정될 정도의 마물은 각자 자신이 왕이라 생각하기에 누군가의 밑에 들어가지도, 손을 잡지도 않기 때문.

때때로 지성이 높은 놈들은 잠시 손을 잡는다고도 하지만 이내 통수를 때리는 것이 마계의 섭리이자 진리였다.

“인간들이 불모의 황무지라 부르는 곳에 가기 전에 마수의 숲이라 불리는 곳에 먼저 가셔야 해요.”

흑마법사에 대한 주의를 줄줄 알았던 가이아 여신에게서 예상치 못한 발언이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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