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정령사-190화 (190/241)

00190  몬스터 웨이브  =========================================================================

펄럭!

빠른 걸음새, 흐트러진 몸가짐, 불릿은 한밤중에 급보를 받고 회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회장이 있는 곳에 다다르자 본래 회장의 출입구를 지키고 있어야할 병사들 대신 경비책임자인 욘 부스타프 천인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각하! 큰일이옵니다, 어서 회장 안으로!”

“음! 알았다!”

얼마나 급했는지 부스타프 천인장이 마나까지 사용하며 문을 열어젖히자 굉음을 내며 굳게 닫혀있던 문이 양쪽으로 벌컥 열렸다.

쾅!

“최고사령관께서 입실하시오!”

부스타프의 외침에 몇 없는 사람들이 심각한 어조로 저마다 외치기 시작했다.

“각하! 몬스터의 침공입니다!”

“서둘러 대비를!”

“늦었소! 지금은 수비에 전념해야 합니다!”

아직 불릿이 자리에 앉지도 않았는데 저마다의 의견을 내뱉는 가신들에게 불릿도 소리쳤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모르는가! 진정들 하라, 이곳엔 본인이 있도다!”

그 말이 효과가 있었던지 가신들은 흥분과 불안감에 휩싸여 있으면서도 불릿이 자리에 착석할 때까지 기다릴 수 있었다.

“무슨 일이지? 여기까지 몬스터가 들어올 수 있던가?”

중앙영지는 팔방을 둘러싼 지방영지들에 의해 외부로부터 지켜진다.

그래서 중앙영지의 병사들은 몬스터사냥을 나가려면 좀 더 외부로 나가야 했는데, 침공이라 함은 소수의 몬스터를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무얼 하다 왔는지 말을 하면서도 옷을 추스르는 불릿의 물음에 같이 들어온 경비책임자인 욘 부스타프가 대답하였다.

“몬스터 웨이브라 하나이다!”

“아직 1년이나 남았는데 몬스터 웨이브라니, 그게 말이나 된….”

불릿은 말을 하다말고 멈칫했다. 언제나 예기치 않은 일엔 누군가가 개입했었기에.

“…혹시 이번에도 쥐새끼?”

“자세한 사항은 알 수 없으나, 마탑으로부터 전 대륙에 같은 내용의 메시지가 계속해서 전해지고 있나이다!”

마탑은 중립을 지킨다. 그런 그들이 전면에 나서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언제나 대륙이 위험에 처했을 때다.

단순히 10년 주기로 발생하는 몬스터 웨이브라면 그들도 주의는 하겠으나 이처럼 경고까지 보내오진 않을 것이다.

“원인분석은 나중에 하도록 하지. 상황부터 보고하라.”

“…몬스터가 발견되는 족족 광폭화에 걸린 것을 발견했습니다.”

“베니스 남작의 데 리치 상단이 연락두절 되었습니다.”

“마수의 숲과 인접한 영지들로부터 최고등급 경고문이 도착했습니다.”

“국경선 인근으로부터….”

물밀 듯이 터지는 보고의 향연에 불릿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부인들(?)과 밀회를 즐기던 것이 거짓이라는 양, 단 하룻밤 만에 난장판이 된 것이다.

하지만 변경백 최고 권력자가 무너질 순 없기에 그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지금부터 전시체제로 돌입한다.”

“충! 명을 받듭니다!”

“충!”

“옛, 알겠습니다!”

전쟁이 터진 것도 아닌데 주의나 경계수준을 건너뛰고 바로 체제를 전환하는 불릿.

전시체제는 말 그대로 지금 이 순간부터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여기며 모든 행동을 거기에 초점을 두는 방식이었다.

그만큼 광폭화에 걸린 몬스터는 무서웠고, 섣불리 대응하다간 삽시간에 쓸려버리리라.

“모든 영지는 문을 걸어 잠그라 이르고, 중앙영지군 소속 군단은 2개 대대를 동원하여 마수의 숲과 인접한 ‘바스톤’과 ‘바람이 머무는 곳’을 지원한다.”

남서에 위치한 브룩 남작의 영지인 바스톤, 그리고 그 위의 북서에 위치한 셰실리코프의 바람이 머무는 곳.

이 두 지역은 몬스터가 준동했을 때 가장 위험하다고 여겨지는 지역이었다.

아무리 요새화되어있는 곳들이라곤 하지만 놈들의 파상공세에 견딜 정도는 아니었기에 지원은 반드시 필요했다.

“각하, 불모의 황무지도 주의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비상소집 된 가신들이 저마다 의견을 내뱉는 사이, 홀로 다른 상념에 잠겨있던 인물이 드디어 의견을 내놓았다.

“옳은 지적이다, 크레파토스. 그럼 군단의 1개 대대를 추려서 방비가 허술한 카텐령을 수비하지.”

그만큼 당해놓고도 불모의 황무지를 방치한다면 그 사람은 바보천치일 것이다.

이렇게 대략적인 윤곽이 잡혀가고 있을 때, 또 다시 문이 벌컥 열리며 다른 인물이 등장했다.

“후우, 후우. 늦어서 죄송합니다, 각하.”

등장한 인물은 바로 군단의 책임자인 레너드 자작이었는데, 그 또한 구울 백작과 맞닿은 영지의 영주였지만 직책이 직책인지라 자신의 영지와 중앙영지를 오고가며 생활하고 있었다.

때마침 이곳에 병영에서 머물고 있었던 터라 그도 경비대로부터 연락을 받았었는데, 자신의 휘하라곤 하지만 서로 임무가 달랐기에 연락방법에 혼선이 와서 다소 늦었던 것이다.

기존 중앙영지군이 군단으로 재편 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벌어진 사고였다.

“어서 와서 앉게.”

“예.”

뚜벅뚜벅.

서로 간결하게 대화를 주고받은 후 긴급회의는 다시 시작되었다.

“다소 당황스럽군요. 마탑에서의 연락과 각 지역에서의 전령이 한꺼번에 도착하다니.”

“지금은 비상사태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지.”

“1, 2구역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자신의 담당지역도 아닌 북쪽과 북북지역의 영토를 걱정하는 레너드 자작의 물음에 불릿은 곧바로 답을 내놨다.

“그 지역들의 성은 방비가 튼튼하니 백성들을 안으로 피신시키면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불릿은 레너드 자작에게 대대병력을 지휘할 천인장을 적절한 선에서 고르도록 명하고 자리를 파한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침을 먹고 난 뒤 9시까지 회의실로 집합한다. 이우우스 행정관이 부재중이니 본인의 수행원으로는, 사무예드?”

“부르셨습니까, 대영주님.”

“자네를 이우우스의 후임으로 명하니 수행원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도록.”

“열과 성을 다하겠습니다, 대영주님!”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이었으나 사무예드는 기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수행원이라 함은 불릿을 곁에서 모시며 가장 높은 자의 아래에 위치한, 말하자면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였다.

실제로 그 정도는 아니라 하더라도 이 기회를 통해 사무직의 설움을 털고 2급, 더 나아가 1급 행정관이 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이우우스 1급 행정관도 그랩 자작과 태티스 남작의 영토를 관리하느라 정신이 없었으니 언제까지고 수행원직을 수행할 수는 없었기에 생겨난 기회였다.

“오늘은 여기서 파한다. 모두 짧게라도 수면을 취하고 회의에 올 수 있도록.”

벌써 시간은 새벽 4시를 향해가고 있었기에 꺼낸 말이었는데, 잠을 자고 안 자고의 차이는 컸기에 몽롱한 상태에서 흐트러진 판단을 내리면 안 되는 사안이었으니 그리 명을 내렸을 것이다.

불릿은 욘 부스타프가 열어주는 문을 통해 침실로 돌아가면서 굳은 얼굴을 억지로 풀었다.

“흙덩이에게 이런 표정을 보여줄 순 없지.”

* * *

“즉시 출정해야 합니다!”

“아니, 지금은 상황파악부터 해야 한다고 못 들었소?”

“자금이 마르고 있는데 태평한 소릴 하는군요!”

“사람이 중요하지 돈이 중요하오?!”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질 못한단 말입니다!”

사람은 위기의 상황에서 본질이 드러난다고, 불릿이 자리에 없자 그들은 금세 티격태격 대기 시작했다.

애초에 그들만으로 영지를 꾸릴 수 있었다면 불릿이 없다하여 파산 직전까지 몰고 가진 않았을 것이다.

베니스 남작이 재무대신이라 하지만 상단을 운영하고 있어 다소 깔보이는 모양도 있었고, 이 시대의 사람들은 돈의 중요성은 알면서 무력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나마 온순한 성향을 지닌 루드밀라 출신은 나았지만 외부출신의 인사들은 아무래도 폭력적인 성향이 강했다.

저번 반역 건을 통해 대대적인 숙청이 이루어졌으나 몇 세대 전부터 둥지를 튼 이들까지 쳐낼 순 없던 노릇이었다.

쾅!

“진정들 하시오! 누구의 앞인지 잊은 것이오?!”

“…….”

“윽.”

원탁을 내려치는 헤니발 브라투질라 3급 고문관의 말에 침묵과 신음소리가 장내에 흘렀다.

성격 급한 브라투질라가 이렇게 반응할 정도면 얼마나 의견이 모이질 않고 있었는지 알만 했다.

드디어 장내가 조용해지자 그들을 지켜만 보던 불릿의 입이 서서히 열렸다.

“개판이군.”

“…….”

“……….”

“혹시 본인이 없을 시엔 항상 이랬나, 수행원?”

불릿은 화도 나질 않는지 조곤조곤한 어조로 옆에 서있는 사무예드에게 말을 걸었는데, 그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 말해야 했기에 그 역시 감정을 섞지 않는 어조로 대꾸하였다.

“이렇게 모이는 것도 각하께서 계셔야만 가능한 줄 압니다.”

“흐음, 아무래도 물갈이를 한 번 더 해야 하는 건가.”

“대영주님, 그것은 조금 그렇지 않습니까? 시국이 시국인지라….”

누군가 불릿의 허락도 없이 말을 꺼내자 그는 입을 연 자를 손으로 가리켰다.

“저놈을 직위에서 해임시키고 철저히 뒷조사를 하라. 수상한 놈이다.”

“대, 대영주님?!”

“그리하겠습니다, 여봐라! 저자를 끌고 가라!”

그러자 회장 구석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던 기사들이 그를 끌고 가기 시작했다.

질질.

“대영주님, 대영주님! 이러실 순 없습니다! 저는 아무 잘못도…!!”

“입을 막으라.”

불릿의 추가지시에 기사가 건틀릿으로 입을 막자 숨이 가빴는지 얼굴이 금세 벌게졌으나 그 누구도 나서지 못했다.

그는 싸늘해진 회장을 슥 둘러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루드밀라 출신이 아닌 자들, 적당히 나대라. 반역이라면 지긋지긋하니까.”

“예, 옛.”

“알겠습니다….”

“으으음….”

말 한마디 잘못 놀려서 어떻게 됐는지를 현장에서 똑똑히 지켜봤으니 당분간은 자신의 직위를 가지고 함부로 행동하지 못할 것이다.

불릿도 그들의 모든 행동을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이렇게 조금씩 줄여가다 보면 언젠간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기에 과감히 행했다.

“사안이 중하다, 보고는 소식을 전해온 마탑측에서 직접 한다.”

장내가 정리되자 끊임없이 종이를 훑으며 대기하던 중앙영지 마탑지부장 아크 체인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동안 내전을 겪는 와중에도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던 아크 체인이 나설 정도니 이번 몬스터 웨이브 사태가 장난이 아니란 것을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작일(昨日, 어제) 오후 10시, 대륙 전 지역의 지부로부터 본령으로 일시에 같은 메시지가 보고됨. 내용은 대규모의 움직임이 포착, 파장을 확인한 결과 마물을 비롯한 몬스터의 무리로 판명됨. 그 수가 심상치 않기에 몬스터 웨이브로 1차 지정했으나 아직 확실치는 않음.”

“확실치가 않다고? 그럼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단 말인가?”

자세한 보고는 불릿도 가신들과 마찬가지로 지금 듣는 것이었기에 이상함을 지적하자 아크 체인은 이어서 말을 뱉었다.

“흑마법사에 의한 소행일 여지가 다분, 놈들의 행적이 발각된 시기와 맞물려 시기적절해 습격일 가능성이 높음. 대륙 전역에서 발생된 현상이라 각 지역의 지부에서만 지원이 가능, 사실상 몬스터라는 철창에 갇힌 셈. 이상.”

마지막으로 사물에 빗대어 그들이 어떤 처지에 놓인 것인지를 일러주자 모두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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