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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정령사-169화 (169/241)

00169  죽음  =========================================================================

그로부터 2시간이 지났을 무렵, 자베르를 비롯한 마법사들은 초췌한 안색을 띠고서 침실에서 밖으로 나왔다.

달칵-

“불릿, 불릿은?!”

“그, 그게….”

두 눈이 충혈된 상태인 올리비아가 문을 제일 먼저 나선 마법사를 붙들고 묻자 뒤따라 나오던 자베르가 그녀에게 답을 주었다.

“간신히 체내로 침투한 마기를 잠재울 수 있었습니다.”

자베르가 눈에 보이자 고개를 홱 돌린 그녀는 자베르에의 팔에 매달렸다.

“불릿은, 불릿은 다 나은 건가요?!”

“아닙니다.”

매정한 대답과 함께 고개를 젓는 자베르, 그는 이어서 부가설명을 했다.

“커스 오브 나이트(curse of night), 그것은 와치라 불리는 악령을 소환하기 위한 소환마법입니다. 오직 고위흑마법사만이 펼칠 수 있는 것으로, 적절한 대응을 못한 사람에겐 골수까지 마기가 침투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묻잖아아!!”

“으, 으음….”

핏발이 툭툭 불거지고 헝클어진 머리가 미쳐가고 있다는 듯한 모습이었기에 자베르는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했다.

“…지금이야 날뛰는 마기를 잠재울 수 있었으나 언제고 재발할 수 있습니다. 신관 중에서도 대주교급은 되어야 제거가 가능할 터인데, 그동안 백작님께서 그들을 외면해오셨으니 부름에 응할지 미지수군요.”

“그럼 어떻게 하라고!!”

시종일관 반말을 일삼는 올리비아였으나 자베르는 그녀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기에 이 부분에 대해선 넘어가고 있었다.

“마기를 담아낼 만한 매개체가 있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게 뭔데요? 뭔데요?!”

애달프게 매달리는 올리비아에게 자베르는 그녀를 일으켜 세워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적어도 상급, 제일 좋은 것은 최상급의 마정석이 필요합니다. 중급 밑으로의 품질로는 잠재운 마기만 깨워서 죽음을 재촉할 뿐이지요.”

현재 대륙에 풀린 상급 이상의 마정석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았다.

그나마 있는 것들은 이름 있는 자들이나 대부호들이 차지하고 있었으니, 구하려 해도 구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상급 이상의 마정석은 돈이 있다하여 구할 수 있는 물품이 아니었다.

“10일 안에 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골수에 스며든 마기를 치료하지 못하면 이전 직스 자작처럼 미치거나 아니면 병사들처럼 죽거나, 둘 중 하나일 것입니다.”

“나보고 어떡하라고….”

털썩.

바닥에 주저앉은 올리비아의 등을 두드려주던 자베르는 한숨을 쉬었다.

“저희도 방법을 찾아보겠으니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럼 이만…. 갑시다, 여러분.”

우르르르-

마법사들은 올리비아에게 붙들릴까봐 서둘러 걸음을 옮겼고, 그들이 사라지자 올리비아는 허겁지겁 침실로 들어섰다.

끼이익…

“부, 불릿, 불릿, 아아, 나의 불릿….”

반쯤 실성한 것인지 잠들어있는 불릿에게 기듯이 다가간 올리비아는 그의 볼을 연신 쓰다듬었다.

스윽, 스윽.

“불릿, 불릿….”

“…….”

아무리 애타게 불러도 그는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익스퍼트에 들어서면서 좋아진 감각엔 불길한 기운이 불릿에게서 은은히 뿜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니…, 아니, 거길 갔으면 안 됐어….”

스윽스윽.

볼을 아무리 문질러도, 소매로 땀을 닦아줘도 그는 여전히 잠들어 있었고, 듣는 이가 없어도 올리비아의 입은 멈추질 않았다.

“내가 어, 어떻게든 해줄게, 네가 날 구원해준 것처럼, 나도 널 구원해줄게….”

뚜욱, 뚝.

“흑, 흐으윽…, 왜 이렇게 누워있어 불릿….”

단순히 정령력의 탈진으로 실신한 것이 아니라 이번엔 진짜 목숨이 위험한 상태였다.

그깟 흑마법사가 뭐라고 직접 발로 뛰어다니다 이런 꼴이 됐는지 올리비아는 믿겨지지가 않았다.

“뭐라고 말 좀 해봐! 엉엉엉! 제발 일어나줘, 불릿! 사랑한다며! 죽지 말란 말이야-!!”

올리비아는 불릿의 머리를 껴안고 울음보를 터뜨렸으나 깊은 잠에 빠져든 불릿은 그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울음소리를 전해들은 것은 불릿이 아닌, 옆방에서 몸을 추스르고 있던 또 다른 여인들이었다.

- …엉엉엉! 흐어엉!

어찌나 구슬피 우는지 벽 너머로도 올리비아의 슬픔이 전해지자 약간 창백한 안색의 유실리아가 입을 열었다.

“좋은 소식을 전해 받지 못했나 봐요….”

“히잉, 불릿, 불리잇….”

유실리아는 침상에 누워있는 흙덩이를 간호하고 있었는데, 흙덩이 또한 그리 상태가 좋진 않았다.

모든 정령력을 소모했기에 시름시름 앓던 흙덩이는 결국 자리에 몸져누웠는데, 정령력을 채워줄 당사자인 불릿이 저런 상태이니 해결 방법이 없었다.

“작은아씨, 일단 이 죽이라도 드셔보세요.”

“…시러…, 히잉, 불리잇….”

루나가 호호 불어서 떠주는 죽도 마다한 흙덩이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선 흐느끼기 시작했다.

“히잉, 불리잇, 히이잉….”

“작은아씨….”

“어쩌면 좋지…….”

이런 흙덩이의 반응에 루나도, 유실리아도 갈피를 못잡고 있었다.

지금 모든 가신들이 난리가 난 상태에서 백방으로 와치에 의한 마기치료방법을 구하고 있었으나, 저항하면 모를까 일단 당하고 나면 치료하기 대단히 어려운, 거의 희박한 확률로 살아날 수 있는 게 와치의 공격이었기에 시간만 흐르고 있었다.

게다가 불릿이 공격을 당한 곳은 다른 곳도 아닌 지하, 그것도 소리가 울리는 동굴 형태의 공동이었다.

와치의 공격은 비명소리였고, 그것이 몸 구석구석 골고루 스며들기 알맞은 장소에서 정통으로 맞았으니 무사할 리 만무했다.

그나마 지금 버티는 것도 중급 정령사로 올라서면서 정령력을 스스로 사용할 수 있게 되어서이다.

“히끅, 히끅, 부, 불릿 어떡해? 죽어? 불릿 죽어?”

“절대 그렇지 않아요, 작은아씨!”

불안에 떠는 흙덩이에게 루나가 이를 부정했으나 이정도로 그녀의 불안을 물리칠 순 없었다.

“우리 자기 어떡해, 히잉, 히끅! 나, 나 때문이야? 흙덩이 때문인 거야? 히끅!”

눈앞에서 쓰러지는 불릿을 생생히 목격하던 흙덩이였기에 자책감이 대단히 심했고, 정령력을 사용할 수 없어 저항력이 낮아진 육체는 불안감과 함께 심신이 쇠약해지고 있었다.

흙덩이까지 불릿처럼 만들 순 없었기에 유실리아는 슬픔도 꾹 참고 그녀를 위로했다.

“작은아씨, 걱정하지 마세요. 그분은 언제나 위기를 헤쳐나오셨잖아요?”

“히끅, 히끅, 히잉, 유실리아…, 나 아파, 아픈데, 불릿이 너무 걱정돼, 흐윽, 흐윽…으아앙!”

“흐윽, 작은아씨….”

결국 울음보가 터진 흙덩이를 유실리아도 이슬 같은 눈물을 흘리며 끌어안았고, 곁에서 보필하던 하녀 루나도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신이시여, 부디 그분을 도와주세요….”

* * *

“오호홋!”

기쁘다는 듯한 웃음소리에 이젠 상당히 밝아진 실내에서 한 남성이 물음을 건넸다.

“뭐가 그리도 좋지?”

그녀가 자신을 찾아오는 경우는 항상 더럽고 추잡한 경우이기 때문에 또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이번엔 대답도 않고 웃고만 있자 기분이 불쾌해지는 남자였다.

“호호호! 왜냐하면 그럴 만한 일이 생겼으니까 그렇지! 호홋!”

“…뭐냐, 말해라.”

무둑뚝한 음성에도 그녀는 구두 굽을 또각이며 남자의 무릎에 앉았다.

풀썩.

“호호호, 드디어 그 망할 정령사가 함정에 걸렸거든. 호호호!”

움찔.

“……바포 백작이?”

“정말 멍청하다니까? 기껏 함정을 알아냈으면서도 경계도 않고서 무작정 들어가다니, 혹시 바보 아냐?”

깔깔깔 웃는 여성의 웃음엔 색기가 어려 있어 남자의 바지춤이 부풀고 있었으나 육체와는 별개로 그의 음성은 지극히 싸늘했다.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우웅, 글쎄? 무슨 짓을 했을까아-? 야.한.짓?”

“장난치지마라!”

남자가 고함을 치자 여자가 아이쿠, 무서워라하는 포즈를 취했다.

“자꾸 그러면 똘똘이 안 만져줄 꼬얌?”

“크으으….”

이미 그녀의 포로가 되어버린 사내였기에 부들부들 떨면서도 반항기를 수그려트렸는데, 그와는 별개로 하체는 팽팽히 치솟아 터질 것처럼 보였다.

“깔깔깔! 이 아스타로트에게 저항하겠다니, 꿈도 야무진 거 아니야? 우린 이미 살도 섞은 사이잖아, 자기양? 아잉?”

“끄으, 끄으윽….”

“참나, 날 맛보았으면서도 저항하려고 애쓰다니, 혹시 마조세요?”

“다, 닥, 쳐어!!”

“아이쿠, 무서워라. 호호호!”

그녀는 가죽본디지로 아슬아슬하게 가려진 육감적인 몸매를 드러내며 남자를 유혹했는데, 이미 함락된 것인지 남자는 도통 눈을 돌리지 못했다.

“바-보. 그래도 당신 덕분에 인간계의 정령력을 한껏 낮출 수 있어서 다행이야.”

“끄, 으윽!”

“결사대라니, 멍청하기는. 마법사와 정령사가 득실댄 덕분에 내 계획도 성공적? 대성공? 깔깔깔!”

횡설수설, 이상한 소리를 내뱉는 그녀. 자신을 아스타로트라 칭하는 여성이 현 대륙의 마법과 정령술의 질이 낮아진 데에 한몫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아? 무지개 오빠아-? 앗차, 레인보우 아틱 커맨더라고 불러줘야 좋아하려나? 키득키득.”

강렬히 발산되는 색기의 유혹에 남성은 간신히 저항한 듯 숨을 헐떡였다.

“허억, 허억, 그는, 허억, 죽었나? 허억.”

사내, 레인보우 아틱 커맨더의 물음에 아스타로트는 떨떠름한 표정을 보였다.

“어쭈, 웬일로 견뎠네? 쩝. 좋아, 알려줄게. 죽어가고 있다는 게 정확하겠지?”

“후우욱…, 무, 무슨 방법으로?”

“내가 왜 거기까지 알려줘야 하는데?”

“크으으, 같은 동족도 제물로 바치더니 겁이 많은 모양이군.”

움찔.

“지금 뭐라고 했어?”

고오오오-

“커헉, 컥, 케헥!”

그녀가 발산하는 마기에 숨이 막히는 듯 눈알이 희까닥 뒤집히는 아틱 커맨더.

곧 죽으려는 모양인지 발딱 선 하체에선 하얀 물줄기가 주룩주룩 뿜어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죽기 전 자손을 남기려는 생물의 본능이었기에 그녀는 서둘러 마기를 거뒀다.

“쿠웨웩! 크허허헉!”

“에비, 디러. 하마터면 죽일 뻔했네.”

그가 내뱉는 토를 피한 아스타로트는 가슴을 살짝 가린 본디지를 손가락으로 잡아당기더니 소리가 나게 튕겼다.

팅-

“좋아, 알려줄게. 어차피 그 정령사만 죽고 나면 더 이상 날 방해할 녀석은 인간계에 없으니까.”

극도로 낮아진 정령사의 수준, 이런 상황에서 중급 그 이상의 힘을 낼 수 있는 불릿은 단연 독보적이라 할만 했다.

“뭐, 인간마법사야 어차피 지들끼린 별로 힘도 못 내니까 걱정은 안 되고, 그래서 바포 백작이란 놈을 노린 거거든? 와치 알지? 소리 잘 지르는 계집애.”

“콜록콜록, 크흐…, 와, 와치?!”

“응, 그 계집애가 비명을 빵! 동굴 안에서 노래하니까 아주 잘 들었겠지? 깔깔!”

“으으, 아, 악독한…!!”

와치의 비명소리는 익스퍼트에 올라선 기사급이 아니고선 견뎌낼 수준이 아니었다.

골수까지 스민 마기는 천천히 죽음으로, 자신이 미쳐가는 것을 알려주며 나락으로 떨굴 것이다.

“아, 아쉽다. 가까이서 보고 싶었는데 멀리서만 구경하려니 답답해 죽을 것 같네.”

양손의 엄지손가락으로 가슴을 엇갈린 밴드형태의 본디지를 튕기던 아스타로트.

“걔만 죽고 나면 네가 나머지 쫄다구들을 끌고 가서 짜잔! 하고 나타나는 거야. 그러면 인간들이 영웅이라고 받들어주겠지?”

“크으으….”

그녀는 욕정을 풍기며 혀를 날름 핥았다.

“아이를 많이많이 낳자구, 인간계는 나 아스타로트가 가이아 대신에 모두의 어머니가 되는 거야.”

초승달처럼 휜 그녀의 눈에서 사이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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