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정령사-168화 (168/241)

00168  불모의 황무지  =========================================================================

“찾았습니다!”

“어디어디?!”

구슬땀을 흘리던 병사의 외침에 모두가 우르르 몰려들자 꽤 넓었던 바위의 틈바구니는 금세 비좁아졌다.

고오오-

병사는 창으로 이곳저곳을 찔러보았던 것 같았는데, 운이 좋았는지 작은 틈새의 돌을 밀어내야만 열 수 있던 곳을 잘도 찾아낸 것이었다.

“잘 했다. 세스터스, 이자에게는 포상을 줄 수 있도록.”

“알겠습니다, 각하.”

“감사합니다, 최고사령관각하!”

운이라곤 하지만 땡볕아래에 구슬땀을 흘리며 열심히 찾았던 것은 사실이기에 불릿은 그에게 포상을 주었고, 세스터스는 그저 받을 뿐이었다.

이렇게 성과를 낸 자에겐 그에 합당한 보상을 주어야 조직은 좀 더 원활히 돌아가는 법인 것이다.

고오오오-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통로의 안을 내려다보던 불릿은 자신의 팔을 끌어안고 있는 흙덩이에게 물었다.

“흙덩아, 저 아래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있니?”

“잠깐만.”

그의 바람에 흙덩이는 정령력을 끌어올려 무언가를 하더니 곧이어 대답했다.

“까만 사람 다섯이 있어. 막 돌아다니는데?”

“다들 들었겠지? 오러를 사용할 수 있는 자들이 선두로 서고 병사들은 그 뒤를 받치도록 한다!”

흑마법사로 추정되는 자들을 드디어 발견했기에 불릿은 흥분한 어조로 외쳤고, 셰실리코프는 냅다 통로로 뛰어들었다.

휙-

“모두 삼광의 뒤를 따른다! 지부장이여, 합류하여 우리를 보호해주시게.”

크레파토스의 부탁에 자베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갑시다, 놈들을 놓칠지도 모릅니다!”

“서둘러, 서둘러!”

“병사들은 방패를 앞세우도록!”

우루루루-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토벌대의 절반만이 진입하고, 나머지는 지상에서 대기하며 주변을 경계했다.

불릿도 들어서려하자 흙덩이가 그를 붙잡았다.

덥썩.

“자기얌, 안 해준 거 있는데?”

“흙덩아, 급하다. 쥐새끼를 놓치기 전에 어서…!”

“나 힘 많이 썼단 말이야. 츄 해줘, 츄.”

“…….”

비틀.

뭔가 힘이 빠지는 소리였으나 최근 그들이 정령력을 회복하는 방법은 마정석처럼 많은 자금이 소모되는 것이 아닌 살을 부대끼는, 그중에서도 성교가 가장 탁월한 방법이었기에 그는 흙덩이의 손길에 그대로 이끌렸다.

“아니면 나하고 그거 하면 기분 좋으면서도 잘 차오르….”

“아니, 키스로 끝내지.”

차마 사람들 앞에서 응응(?)을 할 순 없었기에 키스를 시도하자 흙덩이는 달뜬 비음을 내기 시작했다.

“응읏, 흐으응….”

츄릅, 츄르릅-, 쪼오오오옥-

빨리 끝내려는 욕심에 불릿이 한껏 혀를 빨아들이자 흙덩이의 발끝이 살짝 들리면서 불릿의 목을 감싸 안았다.

뽀옹-!

“헤엑, 헥, 부, 불릿, 너무 센 것 같아….”

“미, 미안하다. 급해서 그만.”

“헤헤, 아니야, 이거 엄청… 자극적이었어. 히힛.”

“두 사람 하는 건 좋은데, 들어가야 하지 않아?”

“아차!”

팔짱을 낀 올리비아의 지적에 불릿은 쾌락에서 깨어나 정신을 차렸고, 얼마나 급했는지 흙덩이를 공주님안기로 끌어안고서 통로로 내려섰다.

다다다다-!

“어어, 같이 가, 자기야!”

“불릿님은 저희가 보호할 테니까 지상을 부탁드려요!”

“충! 고생하십쇼!”

거의 대부분의 실력자가 통로로 들어서자 십인장 하나가 대표격으로 군례를 올리며 한층 경계를 끌어올렸다.

“다크 애로우!”

“애시드 클라우드!”

푸쉬익-

펑, 펑!

“배리어!”

불릿은 계단을 통해 내려가면서도 통로를 울리는 흑마법사와 토벌대의 접전을 들을 수 있었다.

“크아악!”

“소드 붐!!”

콰아앙!

부스스-.

“으득….”

생각보다 저항이 격렬한 것 같자 불릿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자신도 모르게 이를 악물고 있었다.

타다다닥.

이윽고 계단이 끝을 보이자 불릿은 자신에게 안긴 흙덩이가 다치지 않도록 조심히 내려놓으며 외쳤다.

“본인이 왔다! 길을 열어라!”

그러자 방패를 앞세워 진입하고 있던 병사들이 일제히 길을 열어주었다.

“각하께서 오셨다!”

“길을 열어라!”

쾅, 쾅!

“커스 오브 나이트!(curse of night)”

끼야아아-!

흑마법사의 주문에 여자의 비명소리가 울리며 공중에 붕 떠있는 악령이 등장했다.

“제기랄, 자베르! 사일런스, 사일런스로 대응!”

“알겠습니다, 사일런스!”

불릿의 요구에 자베르가 소리를 차단하는 사일런스 마법을 시전하는 순간 여자악령의 비명소리가 증폭되었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악!!!!!!

구구구구구-

가뜩이나 지하인지라 소리를 내면 울리는 형태였는데, 워낙 소리가 큰데다 마기까지 섞여있다 보니 익스퍼트인 기사들도 좀체 움직이질 못했다.

“크으으윽!”

“크악! 귀, 귀가아!”

“우웨엑-!”

병사들은 가진바 마나가 미천해 저항도 못한 채 바닥에 쓰러져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몇몇 이들에게선 귀, 눈, 코, 입 등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피가 흐르는 것이 심상치 않은 반응.

“으앙, 불릿! 아파, 아파아!”

흙덩이 또한 이 영향에서 벗어나질 못해 머리를 부여잡으며 고통스러워하자 불릿은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간신히 입을 떼었다.

“쿨럭, 흐, 흙덩아! 죽음의 대지! 어서! 커헉!”

털썩.

간신히 명령을 내린 불릿이 무릎을 꿇자 그래도 정령력을 통해 몸을 보호할 수 있던 흙덩이는 정령술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이 나쁜 놈들아! 죽음의….”

끼야아아아아아!!!

여자악령의 외침에 묻히던 흙덩이의 목소리,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는 뚜렷했다.

“대지이!!”

파슈슈슈슈슉!!

슈슈슈슉, 슈슈슈슈슉!

푸확!

흙덩이 또한 고통스런 상황이었던지라 이런 고통에 익숙하지 않던 그녀는 정령력을 조절하지 못하고 천장까지 닿을 정도의 기다란 지옥송곳을 수백 개나 만들어냈다.

“끄아악!”

“저, 정령, 게르르르그르그극!”

“도망치, 께윽!”

순식간에 흑마법사 셋이 꼬챙이가 되며 사지가 몸에서 분리되는 순간, 그나마 가장 강해보이던 흑마법사가 저주 섞인 비명을 내질렀다.

“이런 수준의 정령술이라니! 말도 안…, 끄뤠에!”

드드드득-

으지지직!

“나쁜 놈아!”

흙덩이가 특별히 신경을 쓴 것인지 대장으로 보이던 흑마법사는 송곳이 아니라 돌벽을 천장에서부터 소환해 내려찍었고, 그대로 눌린 흑마법사는 핏물로 산화해버렸다.

이 어마무시한 광경에 자베르는 그녀를 보며 흠칫했고, 나머지 기사들도 정신이 없는 와중일 텐데 덜덜 떨고 있었다.

“크흑, 으으으….”

“자기야, 자기야! 아프지 마, 자기야!”

도도도!

불릿이 정령력을 체내의 힘으로 돌릴 수 있다곤 하지만 그것은 기사의 오러와 비교했을 때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렇다고 마법사처럼 몸을 보호할 수 있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던 것도 아니니, 지금 칠공에서 피를 흘리는 병사들보다 약간 더 나은 수준일 것이다.

우웅…

“아프지 마, 아프지 마! 불릿! 불릿!”

“으으윽, 가, 각하?”

진입하자마자 기습공격으로 흑마법사 하나의 목을 날려버렸던 셰실리코프.

그러나 그는 상대적으로 수준이 떨어지는 크레파토스와 세스터스를 마법에서 보호하느라 제대로 역량발휘를 하지 못했다.

“쿨룩, 쿨룩! 자베르, 각하를, 각하에게 치료마법을!”

세스터스의 부축을 받던 크레파토스의 외침에 퍼뜩 정신을 차린 자베르가 조심스레 흙덩이에게 다가왔다.

“으아앙! 아저씨, 우리 불릿 살려줘요!”

흠칫.

“으, 으음. 작은아씨….”

흑마법사를 대단히 끔찍하게 죽인 자라곤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슬피 우는 소녀의 모습에 자베르는 그녀를 어찌 대해야할지 고민하다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비켜보십시오.”

“불릿! 불릿!”

정령력을 남김없이 사용했던 탓일까, 흙덩이의 치유능력은 도통 말을 안 들었고, 그런 그녀를 내버려둔 채 자베르가 마법을 시전했다.

“힐링! 리커버리!”

차례로 시전되는 마법에 불릿의 상태는 약간 호전되는 듯했으나, 죽음을 부르는 마기가 몸속 깊숙이 침투한 탓인지 진전이 느렸다.

“사, 살려….”

투욱.

지금 이 순간에도 곳곳에서 병사들이 죽어가고 있었으니, 그들 틈에는 간신히 몸을 일으키고 있는 올리비아와 유실리아도 포함되어 있었다.

“으으,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아악, 머리가 깨질 것 같아요….”

“안 돼, 죽지 마, 죽지 마아!”

이때 내부를 울리는 흙덩이의 통곡에 그녀들도 퍼뜩 정신을 차렸다.

“헉, 이, 이게 무슨…, 앗, 불리잇!”

“불릿님! 히익, 바닥에 사람들이…!”

병사들이 신음과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자 화들짝 놀랐으나 흐릿했던 초점이 돌아오며 흙덩이가 울고 있는 곳이 보이자 그녀들은 서둘러 그곳으로 향했다.

“헉, 헉, 불릿!!”

“불릿님!!”

“리커버리! 리커버리!”

“끄르윽….”

불릿은 흙덩이에게 명령을 내리기 위해 대응하는 것을 포기했었기에 마기가 섞인 여자악령의 비명소리를 정통으로 맞아버렸다.

그는 혼미해지는 정신의 사이로 난장판이 되어버린 공동을 보며 힘없이 쓰러져갔다.

‘흙덩이가…우는데….’

털썩.

머릿속을 아련히 울려대는 소녀의 울음소리에 불릿의 손이 조금 올라갔다가 아래로 축 늘어졌다.

* * *

또각또각.

또각또각, 또각또각.

공황장애라도 걸렸는지 잠시도 가만히 있질 못하고 문앞을 서성이는 이가 있었으니, 의아스럽게도 그 사람은 드레스차림의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머리를 틀어 올린 색정적인 분위기와는 다르게 그녀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했는데, 연신 방에서 들려오는 신음소리에 흠칫흠칫 몸을 떨었다.

- 끄으윽!

“힐링! 리커버리!”

“큐어 포이즌!”

“턴 언데드!”

- 끄아아악!

짜악!

“이런 미친놈을 봤나! 백작님을 죽이려고 환장했어?! 스며든 마기가 터지면 어쩌려고!”

“죄, 죄송합니다!”

- 크허, 크허헉!

갑자기 급박해진 대화소리와 비명에 방문앞을 서성이던 여성이 벌컥 문을 열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윽, 마님, 괜찮습니다, 호전되고 있어요!”

“괜찮긴 뭐가 괜찮아요! 방금 그건 무슨 소린데요?”

올리비아의 호통에 자베르는 진정하라고 연신 요청했으나 그녀는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서도 잘도 다가왔다.

척, 척, 척.

탁!

“당신이지?”

“그, 그게….”

흠칫하는 마법사에게 올리비아는 손가락질을 하며 위협을 가했다.

한눈에 보아도 그만이 치료마법을 중단하고 주눅이 들어있었기에 그가 실수했단 사실은 조금만 살펴보아도 알 수 있었다.

올리비아는 그의 멱살을 쥐고서 살기를 있는 대로 뽑아냈다.

“만일 당신 때문에 불릿이, 불릿에게 큰일이 생긴다면 내가 손수 당신을 죽여버릴 거야아!!”

“히이익! 죄, 죄송, 죄송합…!”

하이톤의 비명과도 같은 협박에 제대로 대꾸도 하지 못한 마법사가 목을 움츠리자 자베르가 그녀를 말렸다.

“위험한 상황은 막았습니다! 제발 진정하십시오!”

자베르의 대답에 올리비아는 마법사의 멱살을 풀고서 살벌한 말을 내뱉었다.

“당신 탓이 아니라곤 하지 말아요. 내 모든 것을 걸고서라도 쥐새끼들과 싸잡아서 숨통을 끊어놓을 테니까.”

0